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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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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있으리요? - D.L.무디
lhyunsik

누가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있으리요? 바이블파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누가 혐의를 씌우리요?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누가 정죄하리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은 그리스도시라. 그분은 또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박해나 기근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와 같이 “우리가 주를 위하여 온종일 죽임을 당하였으며 도살당할 양으로 여김을 받았나이다.”라고 하였느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기는 자들보다 더 나으니라』(롬 8:33-37). 이 본문에는 아주 주목할 만한 3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누가 혐의를 씌우리요?』 바울은 메신저처럼 앞으로 나아와서 위로는 거룩한 천사들을, 아래로는 비판적인 마귀들을, 세상으로는 사람들이 주는 곱지 않은 시선을, 안으로는 자신의 양심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반문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어 그리스도께서 씻은 사람을 누가 고소할 수 있는가?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사람들은 모든 죄에서 깨끗해졌다고 선언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바울은 공의롭고 완전한 방법으로 우주 만물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우러러 보며 『누가 정죄하리요?』라고 말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은 그리스도시라.』 그리스도께서 가장 쓸모없는 자들을 위해 죄값을 이미 지불해 놓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심판에서 “이제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고 선언하기 위한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으리요?』 그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을 세우려고 갈망하는 마귀들의 대장인 사탄의 능력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팔에 안겨 있는 죄인들을 보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으리요?” 비록 수십 만의 피조물이 연합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으려고 결집된 힘을 발휘할지라도 우리를 결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 모든 것보다도 더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기는 자들보다 더 낫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지각을 초월하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비록 그것이 너무나 넓어서 여러분이 측량할 수 없을지라도 파란 하늘과 같아서 안을 분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깊고 깊은 바다와 같아서 그 깊이를 측량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 깊은 곳에 있는 작은 길은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경계 없는 넓이이고 끝이 없는 깊이이고, 정상 없는 높이이며, 바닥없는 깊이입니다. 이미 셋째 하늘에도 갔다 왔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던 거룩한 바울이 이렇듯 깊게 하나님의 것들을 가르쳤다면 연약한 믿음을 지닌 우리도 더욱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지각을 초월한다.”하고 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언급했던 세 가지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사랑, 둘째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는가?” 셋째 우리가 어떤 신분, 어떤 직업, 어떤 상태에 놓였든지 간에 아무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1.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은 언제 시작되었습니까? 영원 전부터였습니다. 『그때 내가 그와 함께 양육된 자로서 그분 곁에 있어 날마다 그분의 기쁨이 되었으며, 그분 앞에서 항상 즐거워하였고, 그의 땅의 거처할 만한 곳에서 즐거워하였으며, 나의 기쁨이 사람들의 아들들과 더불어 있었느니라』(잠 8:30-31). 이 사랑의 강은 세상이 있기 전부터, 즉 땅이 있기 전부터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분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만큼 오래되었습니다. 빛의 광선들이 태양으로부터 발산되기 전에, 강들이 대양으로부터 흐르기 전에 그 사랑이 예수님으로부터 우리를 향하여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피조물들이 있기 전부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너무도 깊어서 감히 그 누구도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이 사랑은 지각을 초월합니다. 누가 그런 사랑을 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신성한 신격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경이로운 분, 상담자, 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화평의 통치자”, “왕 중의 왕이요 주중의 주”, 임마누엘, 구세주이신 예수님, 그의 아버지의 독생자”입니다. 그분의 아름다움은 완벽합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아버지의 영광이 빛나고, 아버지 인격을 닮은 모습이 드러나 있습니다. 거룩함과 순수함과 위엄과 사랑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 완전히 거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빛나는 새벽별입니다. 그분은 의의 태양이며 세상의 빛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샤론의 장미요, 골짜기에 핀 백합화이기에 아무 흠이 없는 깨끗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부요함은 무한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가지신 모든 것은 나의 것이니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주님(Lord)이십니다. 하늘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그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즉 모든 천사와 스랍이 그분의 종이었고, 그분이 모든 세상을 소유했습니다. 그분이 하신 일들은 무한히 영광스러웠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그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 자신들보다 훨씬 위대하신 분에 의해 사랑받는다는 것, 즉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바로 이것이 지각을 초월한 사랑입니다. 그분은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그분은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그분은 “죄인인 나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만일 그분의 깨끗함과 밝은 모습을 투영해 주는 거룩한 천사들을 사랑했다면 우리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이 만일 사람의 아들들 중에서 상냥하고 친절하고 온화하고 부유하고 위대하고 귀족적이고 사랑스런 사람들을 사랑했다면 그것은 그토록 놀라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분은 이 땅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장 비천하고 가장 비열한 범죄를 저지르는 죄인들을 사랑했습니다. 자신의 자녀들을 살해했던 므낫세도, 사기꾼인 삭캐오도, 신성모독자인 바울도, 그분의 사랑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악의에 찬 사마리아 여인을 사랑했고, 죽어가는 강도를 사랑했고, 음란한 고린도 사람들을 그분은 더욱더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진노와 저주 가운데서 마땅히 지옥에 던져져야 할 자들로서 지옥처럼 더러운 자이지만, 그분께서는 이러한 우리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각 성도는 “주께서 썩어짐의 속박으로부터 나를 사랑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 형제들이여!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랑이 아닙니까? 그토록 위대하고 사랑스럽고 깨끗하신 분이 음란하고 더러운 죄로 물든 우리를 택하시고, 주님의 피로 씻어 정결케 하여 그분 자신에게 우리를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이 사랑이 지각을 초월하지 않습니까? 이 사랑을 위해 그분은 어떤 희생을 치렀습니까?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을 때, 그는 그녀를 얻기 위해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마다하지 않고 7년간을 참고 기다리며 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뜨거운 여름 같은 하나님의 진노와 찬 겨울의 돌풍 같은 그분의 아버지의 분노를 견디었습니다. 여인에게 향한 사랑 이상으로 다윗을 사랑했던 요나단은 그 대가로 자신의 아버지인 사울의 잔혹한 분노를 견디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가차없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아버지의 진노를 견디었습니다. 주님을 그분의 아버지의 사랑과 천사들의 흠모와 그리고 영광의 보좌에서 떠나도록 만든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그분을 슬픔의 사람으로 만들었고, 사랑은 그를 배고프고 갈증나고 헐벗게 만들었으며, 사랑은 주님을 예루살렘으로 서둘러 가게 했고, 사랑은 그분을 소망없고 어두운 겟세마네로 인도했고, 사랑은 그를 묶어 십자가를 지도록 하여 심판의 장소로 가게 했고, 사랑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했고, 결국 사랑은 주님을 아버지의 맹렬한 진노 앞에 죽기까지 복종하게 했습니다. 이것보다 더 위대한 사랑을 우리는 결코 소유할 수 없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놓으나』(요 10:11). 죄인들은 지옥의 뜨거운 불꽃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 자신이 그 속에 뛰어들어 죄인들을 대신하여 값을 치르셨습니다. 정의의 칼은 꾸밈없고 양날이 서 번쩍번쩍 빛나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낱낱이 파헤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가슴을 열어 놓고 자신에게 저주의 일격이 가해지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수의 화살들이 날아올 표적이었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 사이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복수의 화살들에 찔렸습니다. 예수님이 그것들에 찔림으로 인해 우리의 혼들은 그분 안에 굳게 붙어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그분께서는 우리에게서 우리의 죄를 완전히 가져가셔서 제거해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각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쪼개진 빵과 잔에 담은 포도즙 앞에 서게 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것이 죽임당했던 어린 양을 다윗의 보좌에서 보게 될 이유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께서 영원토록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존귀하신 어린 양이여!”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이 놀라운 사랑 안에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씻기시어 하나님을 향하여 여러분을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피로써 여러분을 눈보다 더 하얗게 씻어 모든 더러움과 우상들로부터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새로운 마음 또한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양심을 깨끗하게 유지하게 하며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할 수 있게 해줍니다. 주님은 여러분 안에 성령님을 내주하도록 하시어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시고 여러분을 의롭게 하시며, 여러분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온 세상이 여러분을 적대시 할지라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사별하여 여러분이 버려진 것 같을지라도, 광야에 홀로 남겨졌을지라도,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며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밖에 있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참으로 헛될 뿐입니다. 여러분의 친구들이 여러분을 사랑할지라도, 여러분의 이웃이 여러분에게 친절할지라도, 세상이 여러분을 칭찬할지라도, 목사들이 여러분의 혼들을 사랑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피조물이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씻겨지지 않았고, 용서받지 않았고, 거룩하게 되지도 않았다면, 여러분은 지옥에 던져지게 될 것이고 모든 피조물들이 주변에 서 있을지라도 여러분을 돕기 위해 손을 내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내가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노라. 이는 내가 너를 자비로 이끌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처럼 여러분은 그리스도께 이끌렸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서 뭔가 매력적인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외적인 아름다움이나 옷이나 번쩍번쩍 빛나는 보석들에 이끌리게 되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의 선함으로 인해 그분께 이끌렸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마음에 아로새겨진 사랑의 증표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듯이 여러분 또한 예수님을 귀하신 분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안일에 빠진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귀중한 것을 보지 못하며 그들은 보다 더 정욕적이고, 보다 더 세상적인 미소와 보다 더 많은 돈과 보다 더 쾌락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반면에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구원의 능력을 봄으로써 그에게로 이끌립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 같은 위급한 상황에 처한 죄인을 그분께서 구원하시어 그분 안에 굳게 믿음으로 서게 하는 것을 볼 때, 여러분은 그분께 감사함으로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그분은 여러분을 결코 내어 던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대항하여 마음으로 그분을 거부하지 않는 한, 그분은 결코 여러분을 내어 던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생애의 황금기를 죄 가운데서 보냈는데...”라고 말할지라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결코 내던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죄에 찌들어서 살았는데...” “그래도 나는 너를 결코 내던지지 않을 것이다.” 비록 여러분이 믿음에서 타락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사랑의 팔은 죄인된 여러분의 가련한 혼을 껴안기 위해 열려 있으므로 여러분이 돌이키기만 한다면 그분은 결코 여러분을 내던지지 않을 것입니다. 2.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성도들을 떼어 놓으려는 사탄의 지대한 노력은 있어 왔습니다. 사탄은 단 하나의 혼의 경우에 있어서도 결코 성공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그가 처음에 했던 만큼의 열정으로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구세주가 잃어버린 양을 그분의 어깨 위에 들어 올리는 것을 본 순간부터 구원받은 연약한 양을 그의 안식처로부터 낚아채려고 그의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찔린 손이 죄로 떨고 있는 가련한 죄인에게 놓여지는 바로 그 순간부터 사탄은 구원받은 사람을 예수님의 손에서 낚아채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사탄은 이 일을 옛날부터 했습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우리가 주를 위하여 온종일 죽임을 당하였으며 도살당할 양으로 여김을 받았나이다.”라고 하였느니라』(36절). 이 말씀은 시편에서 인용된 말씀입니다. 모든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탄과 세상으로부터 미움받았고 박해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좀 더 분석해 봅시다. 첫째 왜 성도들은 박해를 받았습니까? 그것은 “주를 위하여”, 즉 그들이 예수님을 좋아하고 예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얼마 동안 미움을 받았습니까? “온종일” 즉 아침부터 밤까지 세상은 참된 성도들에 대해 끊임없는 증오심을 품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저녁에는, 아침이면 주님이 오실까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저녁이 되면 주님이 오실까라고 말하게 됩니다. 참된 성도들은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에 대해 결코 증오심을 품지 않습니다. 셋째 어떤 대우를 받았습니까? “도살당할 양으로 여김을 받았나이다.” 즉 도축업자가 도살할 양을 뉘어 놓았을 때보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더 나쁘게 다룹니다. 바로 그 주정뱅이들이 우리에 대한 노래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노래는 옛 성도들의 외침이었습니다. 똑같은 외침이 피드먼트 눈 덮인 정상에서 들려졌고, 후에는 스코틀랜드의 녹음 짙은 언덕과 골짜기에서도 들려졌습니다. 똑같은 외침이 다시는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비참하게 속은 것입니다. 마귀가 변화됩니까? 마귀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합니까? 세상적인 마음이 변화되어집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내려고 하는 또 다른 7가지의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 중 두 가지는 일반적인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고 나머지 다섯 가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특별하게 더 주어지는 것입니다. 먼저 환난과 곤경입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날수가 적고 고통으로 가득 찼도다. 그는 꽃같이 나와서 잘려져 버리고 그는 또한 그림자처럼 사라지고 머물지 아니하도다』(욥 14:1,2). 하나님의 자녀들은 질병, 가난 그리고 친구들을 잃는 상실감 같은 곤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것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 16:33), 『내가 사랑하는 자마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계 3: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이런 환난의 때를 이용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그 혼을 분리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즉 사탄은 성도가 사업이나 세상적인 친구들에게 몰두하게 하거나 아니면 슬픔을 잊어버리기 위해 세상적인 쾌락들을 따르게 함으로써 주의 징계를 경시하도록 유혹합니다. 또 사탄은 성도가 환난과 곤경 속에서 투덜대고 불평하도록 만듭니다. 또한 성도로 하여금 어리석게도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도록 만들어 혹독한 시련 가운데 하나님의 돕는 은혜가 있음을 믿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사탄은 이러한 방법들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성도를 분리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난의 때가 위험의 때입니다. 박해, 기근, 헐벗음, 위험, 칼 - 이 모든 것은 사탄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대항하여 사용하는 무기들입니다. 모든 시대에 있어서 교회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였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마자, 즉 그 사람이 예수님께 밀착하자마자, 마귀는 하나님을 헐뜯음으로써 그에게 의심을 주며 믿음을 파괴하려고 시도합니다. 이 일을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끔찍하고 혹독하겠습니까? 이런 일은 모든 시대에 있어 왔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박해, 기근, 헐벗음, 위험, 칼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아벨이 카인에게 살해된 이후로 그분의 모든 피조물들은 그와 똑같은 것에 노출되어 왔습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지금은 관용의 시대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바뀌지 않듯이 사탄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자신의 기회를 포착할 때, 그는 예전과 똑같은 무기들을 여전히 사용할 것입니다. 3. 아무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 속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한 대단한 승리자들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승리자들입니까? 우리는 전쟁이 이루어지기 훨씬 전에 이미 승리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전쟁에서는 그 전쟁에서 이길 때까지는 승리를 믿을 수 없습니다. 워털루 전쟁에서 프랑스 국민은 프랑스가 이겼다고 생각했을 뿐 확신하지 못했고, 나폴레옹은 자신이 드디어 승리한 것을 알리기 위해 파리에 여러 번 전령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탄 그리고 육신과의 전쟁에서는 승리가 이미 주어졌습니다. 이는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지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보혈로 감추시어 율법의 화살들에 대항하여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분의 거룩한 영인 성령님을 통해서 죄의 능력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하십니다. 그분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 처해 있든지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영적 전쟁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그분은 우리를 더욱 철처히 지키십니다. 그 결과 우리는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찬양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긴 것을 알고 또 이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이 지금보다 백만 배나 더 사악해 질지라도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승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지하 감옥에서 찬양했을 때, 그들은 대단한 승리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이 가진 육체의 가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약함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대단한 승리자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한 싸움을 통해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육신적인 싸움에서는 종종 승리를 잃기도 합니다. 그런 예는 기브아에서 가졌던 이스라엘 민족이 치른 전쟁에서 있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이 슬퍼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거의 끊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쟁취하신 승리에 힘입은 대단한 승리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선한 싸움에서 우리의 적들에 의해 오히려 이익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치르는 영적 싸움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며 죄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고 또한 우리로 하여금 예비된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는 찬란히 빛나는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여러분을 결코 떼어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다는 것과 예수님의 팔이 여러분을 감싸안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기에 또한 죽음도 지옥도 마귀의 어떤 술수라도 우리에게 그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어, 씻기시고, 의롭게 하셨다면 그분이 여러분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의 손길에 여러분을 내어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결코 멀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그분께서 여러분을 씻기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그분과 아무 상관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