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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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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울부짖음 - 찰스 스펄젼
lhyunsik

까마귀의 울부짖음 바이블파워 찰스 스펄젼 『그는 짐승들과 우는 까마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시며』(시 147:9).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까마귀는 새끼들이 깃털이 나고 멀리까지 날을 수 있을 때까지 둥지에서 기른 다음, 그들을 둥지 밖으로 떠밀어서 스스로 살아가도록 한다고 합니다. 어린 새끼들이 둥지에서 떠밀려 첫 비행을 할 때, 그들은 먹이를 구하는 법을 전혀 모른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까마귀는 이 점에 있어서 놀라울 정도로 단호하다고 합니다. 어미 까마귀는 새끼들이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있게 되자마자 새끼들에게 더 이상 먹이를 물어다 주지 않으며, 새끼들이 부모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머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제 본문 시편 147:9에서 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짐승들과 우는 까마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시며』 새끼 까마귀들이 둥지에서 쫓겨나서 먹이 부족으로 배회할 때 누가 이들에게 먹이를 공급하겠습니까? 바로 주님이십니다. 이들이 둥지에 있었을 때나 둥지에서 쫓겨난 후에도 그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이는 바로 공중의 새들을 손수 기르시는 주님이 아니시겠습니까? 솔로몬은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서 보고 배우라고 말했습니다. 바위너구리와 회색 사냥개와 거미들에게서도 배울 것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해 배우고 살펴보았을 때 교훈을 얻은 것처럼, 이제 오늘밤에는 까마귀들의 둥지로 가 보도록 합시다. 한 번은 주님께서 까마귀들을 예로 들어서 아주 강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목적은 일시적인 환경에 지나치게 짓눌려서 걱정하는 그분의 종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힘을 돋우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주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까마귀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씨앗을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며, 곡물 창고에 모아 들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들보다 더 귀하지 아니하냐?” 주님의 논리에 따라 오늘밤 저는 이렇게 주장하고자 합니다. 까마귀들의 부르짖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알아들을 수도 없고 거칠고 쉰 소리로 그들의 필요를 알릴 때, 하늘의 아버지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먹이를 보내십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순간 주님의 호의를 간절히 구하면서 기도해 왔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까마귀들보다 더 귀하지 않습니까? 까마귀들도 돌보시는 그분께서 왜 그들보다 더 귀한 여러분을 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아직 깃털도 나지 않은 어린 까마귀 새끼가 배가 고파서 먹이를 달라고 울부짖을 때 그들에게 먹이를 공급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의 얼굴과 호의를 구하는 가난하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에게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밤 저는 자비를 구하며 기도했지만 아직 응답받지 못한 여러분들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몇 날 몇 달 동안 계속해서 무릎을 꿇고 통렬하게 부르짖었으나 화평의 길을 찾지 못한 분들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여전히 자신들의 죄가 목에 매달린 맷돌처럼 무겁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골짜기에서 빛도 없이 고통스러워하며 신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는 것을 잊으신 걸까? 간절히 간구하는 혼들의 기도에 그분은 귀를 닫으셨는가? 죄인들의 가련한 부르짖음에 경청하지 않으시는가? 참회의 눈물이 땅에 떨어져도 이제 그분은 더 이상 연민을 발하지 않으시는가?” 마귀는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가와서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고, 죽을 때까지 부르짖도록 내버려 두실 것이며, 한숨과 눈물로 생을 소진하다가 결국 비참하게 죽을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밤 여러분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더 열렬하게 부르짖게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서 여러분의 혼이 갈구하는 은혜를 찾을 때까지 십자가의 그늘을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감동하셔서 에스더처럼 “왕에게 들어가리니,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처럼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고 한 맹세를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새끼 까마귀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그분의 자녀들인 여러분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시겠습니까? 1. 하나님은 여러분의 울부짖음을 들으실 것입니다. 까마귀가 아무리 간절하게 부르짖어도 까마귀는 결국 까마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러한 까마귀들보다 훨씬 더 귀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까마귀를 불쾌한 새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을뿐더러, 설사 까마귀 몇 마리쯤 죽는다해도 피조 세계에는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내일 당장 까마귀 천 마리의 목이 비틀어진다고 해도 우주에 극심한 슬픔과 비애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많은 수의 새들이 죽은 것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런 까마귀들을 위해서는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여러분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현재의 생이 지나가도 그것이 끝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영원한 생의 바다에 들어선 것과 같습니다. 영원한 생을 시작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은 눈 덮인 산들이 산산조각이 나서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달도 그 희미한 빛마저 잃어 창백하게 되고, 태양도 그 강렬함을 잃어 영원한 어둠 속에서 꺼질 것이지만, 여러분은 여전히 영원한 행로를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신다면 그 행로는 영원히 비참한 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순간 있다가 사라져버릴 하찮은 새의 부르짖음도 들으시는데 하물며 그분과 영원히 거할, 불멸의 혼을 지닌 여러분을 듣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께서 까마귀 소리도 들으신다면,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 아닙니까! 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까마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더럽혀지고 일그러지고 천한 우리 인류에 대해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다른 피조물에게는 없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입니다. 아담의 가장 비열한 자녀에게도 최고로 고상한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들의 모든 짐승들에게는 없는 고상함이 인류에게만은 있다는 것입니다. 독수리라 해도 인간의 혼이 올라가는 곳만큼 높이 오르지 못하며, 사자도 사람의 영이 갈망하는 그런 고상한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그처럼 열등하고 천박한 피조물인 까마귀의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신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이 만일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 길이 항상 공평하신 그분을 너무도 오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처럼 어리석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본성 자체도 인간이 공중의 새들보다 더 잘 돌보심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어린 새끼들의 부르짖음의 의미를 알 수 있다면, 그들에게 먹이를 주고 싶은 연민이 우러나올 것입니다. 새들을 도와주고자 하면서도 죽음 앞에 내버려져 울부짖는 어린 아기의 소리를 듣고서 그 소리를 무시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까마귀를 도울 정도로 연민이 있는 사람이 거리에서 병든 채 밤의 적막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의 가엾은 외침을 무시하겠습니까? 까마귀를 돕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길거리의 병든 사람도 분명히 도울 것입니다. 까마귀에게조차 연민을 보인다면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한 동정을 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명하신 하나님께서 아직 깃털도 나지 않은 어린 새들도 돌보신다면 여러분을 돌보신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이성을 거슬러서 여러분의 마음에 불신이 고개를 쳐들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아, 그렇지만 까마귀는 나처럼 죄가 있지는 않다! 까마귀는 더러운 새일지 모르지만 나만큼 도덕적으로 불결하지는 않다. 까마귀는 색이 검지만 나는 죄로 검구나. 까마귀는 안식일을 깰 수도 없고, 맹세할 수도 없고, 나처럼 죄악들로 스스로를 더럽힐 수도 없지 않은가!” 물론 저도 그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상태가 까마귀보다 더 절망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죄를 지을 수 있는 피조물이고, 그래서 지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러나 까마귀는 그렇지 않습니다. 까마귀는 단지 본능적으로 부르짖지만, 여러분은 지성을 갖고 의지적으로 주님께 나와 간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점을 고려해 볼 때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하나님의 자비의 귀’라는 청중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그분은 여러분의 기도를 까마귀의 울부짖음보다 멸시하거나 경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의 부르짖음을 존중하시며 그들의 기도를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까마귀에 대해 하신 말씀이 죄인에게 용기를 북돋워 줍니다. 옛날 누군가도 다음과 같이 기술한 적이 있습니다. “공중의 새들 중에서 그분은 통치자들이 기르며 크게 칭찬받는 매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달콤하게 노래하는 나이팅게일이나 음악적으로 아름다운 새들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썩은 고기를 먹어치우는 밉살스럽고 악의에 찬 새를 선택해서 말씀하십니다. 그 새를 보면 하나님의 섭리와 친절하심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음산한 색으로 옷 입고, 노래 소리는 엉망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쾌하게 여기거나 불길하게 생각하는 피조물인 까마귀에게 먹이를 공급하십니다. 여름에 먹이를 모으는 개미를 먹이시는 것에서도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보게 되지만, 까마귀에게서는 더 큰 하나님의 돌보심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까마귀가 자신을 위해 먹이를 준비하는 것을 잊거나 그 일에 부주의해도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위해 먹이를 공급하시고 저장해 두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손으로 만드신 작품은 어떤 것도 멸시치 않으십니다. 까마귀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그들도 하나님께로부터 먹이를 공급받게 될 것입니다. 아름답고 순결한 비둘기뿐만 아니라 못난 까마귀도 하나님께로부터 먹이를 얻습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까마귀처럼 검은 죄인인 여러분이 부족하다고 해도 그것이 여러분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는 것을 가로막지는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여러분의 무가치함을 제거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더러움을 완전히 깨끗하게 없애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화평을 찾게 될 것입니다.” 2. 여러분의 부르짖음과 까마귀의 부르짖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까마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까마귀들은 자연적인 본능으로 먹이를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이들의 부르짖음 자체는 이들의 부족함을 자세히 표현해 주지 못합니다. 이들의 외침이 먹이를 달라는 것임을 여러분은 즉시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이들은 한 단어도 발음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까악까악거리며 부르짖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압니다.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해도 여러분의 마음은 그 쓰라림과 끔찍한 고뇌를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한숨과 신음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화평과 용서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그분의 보배로운 피와 그분의 온전하신 의가 필요함을 알고 있습니다. 까마귀가 까악까악하며 내는 생소한 울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면, 가련하고 궁핍하고 죄 있는 혼이 그분께 부르짖는 “하나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합리적이고 풍부한 표현의 기도를 그분께서 들으시리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게다가 까마귀 새끼들에게는 명철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논리를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까마귀들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할 수도 없습니다. 까마귀들에게는 배고픔이라는 한 가지 외침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까마귀들은 그것조차도 질서 정연한 언어로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수많은 논리를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들을 정리하고 배열해서 은혜의 보좌를 포위할 수 있습니다. 말 못하는 까마귀의 필요가 하나님을 움직인다면 하물며 여러분이 그분 앞에 자신의 상황을 내려놓고 여러분의 입에는 논제를 담고 그분께 나아간다면 지극히 높으신 분을 훨씬 더 잘 설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망한 사람은 와서 주님을 시험해 보십시오! 슬픔에 찬 가사의 작은 시가 자비의 귓가에 울려 퍼지게 하십시오!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 터질듯한 마음을 열어놓고 눈물로 마음을 쏟으십시오. 그러나 까마귀는 때로 기도로 하나님을 구하는 죄인들보다 더 많은 잇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까마귀 새끼는 사람들이 자신의 혼에 대해 열심을 내는 것보다 먹이에 더 큰 열성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열심이 까마귀의 부르짖음보다 덜하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까마귀의 그런 열심을 여러분이 지금 보다 더 열심을 낼만한 이유로 삼으십시오. 까마귀들은 먹이가 부족하면 그것을 얻을 때까지 부르짖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배고픈 까마귀 새끼는 입이 먹이로 채워질 때까지 조용히 있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열망하는 죄인은 그 마음이 하나님의 자비를 얻을 때까지는 조용히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보다 더 열렬히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옛날 한 청교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늘의 문을 폭파시키기 위해 하늘의 문에 장치된 대포이다.” 즉 도성을 갖고자 한다면 습격을 해서 그 도성을 쟁취해야 합니다. 안락한 상황에서는 하늘나라의 보물을 얻을 수 없습니다. 순례를 떠나야 합니다. 달콤한 잠을 자면서 영광의 땅에 갈 수는 없습니다. 꿈꾸는 게으름뱅이는 지옥에서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혼에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신다면 살아서 깨어있는 사람처럼 외치십시오. 열심을 내십시오. 큰 소리로 외치십시오. 아끼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까마귀의 외침을 들으신다면 여러분의 외침 소리를 들으시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합니다. 3. 여러분이 기도하는 문제는 까마귀의 외침보다 더 간절한 것입니다. 까마귀 새끼는 먹이를 달라고 웁니다. 그들에게는 썩은 고기를 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외침은 이보다 훨씬 더 하나님의 귀를 즐겁게 해 드립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피를 통해 용서를 간구하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 영적 선물을 주시는 것은 자연의 선물을 주시는 것보다 더 고상한 일입니다. 은혜의 시내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옵니다. 그분은 너무도 겸손하셔서 까마귀 새끼의 입에 먹이를 떨어뜨리실 때조차도 불친절하게 행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화평과 용서와 화해를 주시는 일에는 이보다 더한 위엄이 있습니다. 영원한 사랑으로 인해,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에 자비를 베푸시는 방법을 정하셨으며, 무한한 지혜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분명컨대 주께서는 사람들의 아들들을 구원하시기를 아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들의 짐승에게 먹이를 공급하시는 것을 기뻐하신다면 그분의 자녀에게 공급하시는 것을 훨씬 더 기뻐하신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황소에게 먹이를 줄 때나 곳간 문에 날아든 새들에게 보리를 뿌려 주는 것보다 자신의 자녀들을 돌보는 것이 더 유쾌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까마귀 새끼보다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일을 더 기뻐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비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나의 추측이 아닙니다. “그분은 자비 가운데서 기뻐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실 때 매우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으로 일하실 때 슬프실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행복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하나님께서 그 어느 때 보다도 기뻐하시는 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통해서 죄인들을 용서하실 때입니다. 자비를 구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실 때일 것입니다. 아, 죄인이여, 여러분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하실 수 있는 기회를 그분께 제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용서하기를 기뻐하시며, 에프라임을 그분의 가슴에 안기를 기뻐하시며, 탕자에게 “그는 잃어버렸다가 찾았으며, 그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말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살진 송아지를 먹이거나 수천 개의 언덕에 있는 가축을 돌보는 것보다 이 일이 아버지의 마음을 더 흡족케 해줍니다. 그러므로 친애하는 성도들이여, 여러분은 까마귀에게 먹이를 선물로 주시는 것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높이는 일을 하나님께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의 논리의 망치가 여러분에게 아주 강력한 타격을 주어 오늘밤 여러분의 불신을 산산 조각 내리라고 생각합니다. 참된 위로자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강력하게 역사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까마귀들에게 먹이를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구하는 죄인들에게 화평과 용서를 부어주시기를 결코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제 말을 시험해 보십시오! 지금 이 순간 그렇게 해 보십시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하나님께 자비를 호소한다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에게 자비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4. 여러분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또한 까마귀들은 그 어디서도 울부짖으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까마귀들이 울부짖으며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고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반면 여러분에게도 기도로 하나님의 보좌에 접근하라는 하나님께서 권고하신 보증의 말씀이 있습니다. 부유한 사람이 초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집 문을 연다면 하물며 초대한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까마귀들은 초대받지 않은 채 오지만 빈손으로 돌려보냄을 받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직접 말로써 초대받은 손님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어떻게 여러분을 부인하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주신 초대의 말씀이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으리라.” “고난의 날에 내게 부르 짖으라. 내가 너를 구원하겠고,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의 인격에 상관없이 하신 권고입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을 값없이 초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쫓아내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창문은 열려 있고, 까마귀가 날아들고 있습니다.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그 까마귀를 내쫓지 않으십니다. 문은 열려 있고, 약속의 말씀은 여러분에게 오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을 부인하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은혜롭게 영접하고 값없이 사랑”하시리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5. 여러분의 부르짖음은 까마귀 새끼들의 것보다 더 호소력이 있습니다. 까마귀 새끼의 울부짖음은 피조물의 본능적인 외침일 뿐이지만 여러분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까마귀는 아무리 간절하게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다 해도 까마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울부짖을 때, 여러분 안에서 성령 하나님이 울부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셔서 울부짖게 하신 것은 새로운 생명으로 그곳으로부터 성실과 진리 안에서 더 깊은 교제를 갖고 더 깊은 의사소통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르다면 자녀들을 가르쳐서 그들이 기도할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로 “기도”하도록 가르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기도책”을 만들 수도 있지만 “기도”의 알곡을 책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가족 기도를 “읽을 수”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런 관습을 비난하지는 않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런 “기도”를 칠십 년 간 읽는다 해도 결코 단 한 번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단순한 말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과 마음을 교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돛에 바람을 싣고 그 배를 항구로 인도할 때까지 그 마음은 결코 하늘의 항구와 영적인 무역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자기 자신에게 나오지 않은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신다면 그분에게 나온 외침은 얼마나 더 잘 들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외침이 자연적인 것인지 영적인 것인지 분별하느라 당혹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의심할 바 없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부르짖음이 어느 쪽에 속하든지 계속해서 주님을 구하십시오. 아마도 여러분은 자연적인 외침을 하나님께서 들으실까 의심스러워할 수도 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언젠가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이 있는 곳에서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나는 어린이들에게 설교하며 그들에게 기도하라고 권고하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나는 실제로 개심하기 아주 오래 전에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했었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극히 순수한 나의 영적으로 어린 형제들에게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이들은 모두 내 주위에 몰려들어서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의 본성과 습관에 따라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이들에게 알미니안 주의보다 더 나쁘게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본능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누군가가 그들에게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본능의 기도를 들으실 수가 있지요?” 내가 가만히 멈춰 서 있는 동안 붉은색 옷을 입은 한 노부인이 나를 둘러 싼 그 작은 원 안으로 밀치고 들어와서 이스라엘의 어머니처럼 그들에게 아주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잊어버렸니? 하나님께서 본성에서부터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말하는 이유가 뭐지? 까마귀 새끼들이 그분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지 않니? 너희들은 까마귀들이 영적인 기도를 한다고 생각하니?” 곧장 이 투사들은 부리나케 달아났습니다. 완전한 패배였습니다. 이들은 살아가면서 자신들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깊이 느꼈음에 틀림없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런 사실이 여러분에게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본성으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영적인 기도인지, 혹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나오는 기도인지 그렇지 않은지 지금 당장 알아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여러분을 몹시 당혹스럽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라면 주님께 도달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울부짖음도 들으시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의문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지만 여러분이 그 사실을 모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6. 까마귀 새끼들이 울 때는 홀로 울지만 여러분이 기도할 때 여러분보다 더 강력하신 분이 여러분과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죄인의 외침을 들어보십시오. 그분과 함께 위로 올라가는 또 다른 부르짖음이 들립니까? 여러분은 듣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귀는 무디고 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들으십니다. 여러분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부드러운 다른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 목소리는 여러분의 것보다 더 강력한 호소력을 가진 목소리로 여러분의 부르짖음과 함께 올라갑니다. “아버지, 나의 보배로운 피를 통해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죄인에게 울려 퍼지는 속삭임은 천둥처럼 장엄합니다.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시지 않는다면 죄인은 진정으로 기도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의 성령으로 여러분의 혼의 깊이를 뒤흔들 때는 항상 주님의 혼 또한 뒤흔들립니다. 오, 죄인이여!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도달하면 그 기도는 여러분에게서 나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때로 가난한 사람들이 어떤 회사나 저명인사에게 진정서를 보내기 위해 제게 옵니다. 그 진정서를 제게 가지고 와서 자신을 대신해서 그들에게 보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철자도 형편없고 아주 이상하게 기록되었지만 대개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알릴 수 있으며 그들의 의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저는 깔끔하게 복사본을 만든 다음 이들의 상황을 진술하고 끝에 제 이름을 덧붙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진정서 아래에 서명한 제 이름의 권세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이와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의 형편없는 기도를 그렇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깔끔하게 복사해서 그분 자신의 속죄의 피라는 인장으로 인쳐 주시고 끝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해 주셔서, 그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주님의 기도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 기도가 설득력을 갖는 것은 그것이 주님의 기도이기도 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까마귀들은 홀로 형편없는 부르짖음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데 하물며 가련하고 두려움에 떠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하는 것은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받을 만하십니다. 오, 주님, 예수님을 위해서 제게 그 일을 이루어 주십시오.”라는 축복된 말로 그분 자신의 논증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의 기도는 얼마나 더 응답 받겠습니까? 오랫동안 부르짖어 오고 있으면서도 결코 자신의 기도를 듣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혼들은 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으리라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조만간 은혜로운 화평의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마음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해도 은혜의 날이 임할 때까지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는 까마귀들에게는 없는 약속이 있습니다. 간구하라는 약속을 가지고 떨며 기도하는 사람은 은혜의 보좌에서 번영하게 될 것입니다! 울부짖었지만 아직 응답을 받지 못한 죄인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일곱 번 더 간구 하십시오. 그래도 안 되면 일흔 번씩 일곱 번 더 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가 여러분의 유일한 희망임을 기억하십시오. 물에 빠진 사람이 손에 잡은 밧줄에 달라붙듯이 그렇게 밀착하십시오. 보배로운 피를 통해 은혜를 간구하다 죽는다면 여러분은 그렇게 죽게 되는 유일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계속 울부짖으십시오. 계속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믿으십시오! 믿으면 새벽별이 보이고 여명이 옵니다. 존 리란드의 아내인 베티가 병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지는 오래 되었지만 그녀는 심한 마음의 고뇌 속에 있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좀 색다른 방식으로 그녀와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베티, 왜 그렇게 괴로워하는 거지?” “여보, 나는 죽어가고 있어요. 내게는 희망이 없어요!” “그렇다면 여보,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나는 지옥에 갈 거예요!” 남편은 평상시의 유머로 자신의 깊은 번민을 가리며, 핵심을 찔러서 그녀의 의심을 없애려 하며 말했습니다. “베티, 당신이 지옥에 가면 거기서 뭘 할 거요?” 이 여인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리란드씨는 계속했습니다. “당신이 거기 가면 기도하리라고 생각하오?” “여보, 저는 어디서나 기도해요, 저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서 이렇게 말할 거요. ‘베티 리란드가 여기서 기도하고 있다. 그녀를 내쫓아라. 여기서는 아무도 기도하지 않는다. 그녀를 내쫓아라.’하고 말이요” 이런 이상한 방식의 말로 인해 그녀의 혼에는 빛이 비치었고, 그녀는 즉시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구하는 혼이 그분의 임재에서 영원히 내쫓긴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를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울부짖으십시오. 계속 그렇게 하십시오! 아이가 울 수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비의 보좌를 포위할 수 있으면 여러분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칠 뿐만 아니라 들으십시오. 그리고 들은 것을 믿으십시오. 믿음을 통해서만 화평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중에는 밝은 환상을 보고자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으로는 여러분이 결코 만족할 수 없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전혀 무가치하기 때문입니다. 기적의 시대 이후로 있었던 세상의 모든 환상은 다 합쳐도 결국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꿈은 헛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저녁을 너무 많이 먹어서 꿈을 꾸는 것입니다. 소화불량이나 뇌의 병적인 활동일 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개심한 증거가 그게 전부라면 의심해 보아야만 할 일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에 만족해서 쉼을 얻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쓰레기 위에 영원한 희망을 세운다는 것은 비참합니다. 전기 충격과 유사한 뭔가 특이하고 이상한 감정을 찾아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소중히 여기는 이상한 감정은 여러분에게 필요치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개심과 연관해서 말하는 그런 이상한 감정들은 유익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여러분에게 한두 가지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죄인인 것을 믿습니까?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는군요. “죄인”이라는 말을 다른 식으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법을 깨뜨렸음을 믿는다는 뜻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정부를 거스르는 무익한 무법자입니까? 여러분은 모든 계명을 깨뜨렸으며 따라서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마음으로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믿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내가 매일 지고 다니는 짐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군요. 한 가지 더 해 봅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모든 죄들을 제거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여러분을 구원하시리라고 믿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구원받기 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여러분을 구원하시리라고 믿을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미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신뢰한다면, 나의 친애하는 성도들이여,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은 확실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구원의 증거가 여러분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거룩함과 성령의 은혜들같은 다른 증거들이 따르지만 거듭난 사람에게 있는 최상의 증거는 이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여러분 내부나 여러분 외부의 모든 것에서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와서,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근거로서 갈보리에서 그분이 드린 희생과 그분의 온전한 속죄의 사역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더 이상 어떤 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를 믿는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않으리라.”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느니라.” 만약 내가 이 문으로 나가서 교회 부속실로 가다가 복도에서 천사를 만났는데 천사가 내게 “찰스 스펄젼, 자네가 용서되었다는 말을 해주기 위해 하늘나라에서 내가 왔네.”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당신이 내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아도 다 압니다. 당신보다 훨씬 더 좋은 권위에 근거해서 저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내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천사의 말보다 더 낫습니다. 그분이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에 나는 정죄받지 않습니다. 천사가 구태여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고민에 싸인 여러분, 천사와 증표와 증거들과 이적들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일을 의지한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구원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것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말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까? 하나님을 의심하는 마음은 얼마나 천박한 마음입니까? 여러분은 그런 일을 하지 않으리라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아버지의 자비와 아들의 피의 권세와 성령님의 강권하심으로 믿게 하셔서 죄인들을 그분께로 인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친애하는 청중 여러분, 나오십시오. 나오셔서 우리와 함께 기도에 합류하셔서 은혜로 인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요롭게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