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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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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들을 찾으시는 그리스도 - D.L.무디
lhyunsik

죄인들을 찾으시는 그리스도 바이블파워 D.L.무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고 또 구원하려는 것이라』(눅 19:10). 성경 전체에서 이 구절만큼 저에게 아름다운 구절은 없습니다. 이 단순하고 짤막한 문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듣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목적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주님은 일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이 구절에는 그 모든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정죄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하여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몇 년 전에 영국의 왕자가 미국에 왔었고, 그로 인해서 나라가 떠들썩했습니다. 신문에서는 기사화해서 토론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온 이유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미국 정부의 형태를 관찰하기 위해서 왔을까요? 건강 문제로 왔을까요? 미국의 제도들을 보기 위해서 왔을까요? 무슨 이유로 왔을까요? 그는 얼마 후에 돌아갔지만 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왕자가 세상으로 내려오셨을 때, 그분께서는 방문의 목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셨고, 그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잃어버린 자를 찾고 또 구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실패할 일을 하도록 누군가를 보내셨다고 기록된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 상태에 있는 삼백만의 사람들을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내기 위해서 모세를 이집트로 보내셨습니다. 모세가 실패했습니까? 처음에는 실패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파라오가 모세에게 『주가 누구기에 내가 그의 말을 복종하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출 5:2)라고 말하는 그곳에 있었다면, 또 파라오가 모세를 내어 쫓으라고 명령하는 그 순간을 보았다면, 모세가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과연 모세가 실패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아합왕에게 보내셨고, 그는 왕에게 “이슬도 내리지 않겠고, 비도 오지 아니하리라.”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왕상 17:1).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대로 3년 반 동안이나 하늘을 닫으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의 품 안에 있는 사랑하는 아들을 하늘의 보좌로부터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여러분은 그가 실패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감사하게도 그는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온전하게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 같은 구절을 읽으면서 저는 위대한 축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는 그것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얻을 수 있는가를 여러 모로 묵상합니다. 본문 바로 앞 장인 누가복음 18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여리코에 가까이 오셨던 사건을 보게 됩니다. 한 불쌍한 소경이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는 그의 자녀들의 손으로 인도되어 그곳에 몇 년 동안 앉아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우리가 가끔 목격하듯이 그들 인도하는 개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그곳에 앉아서 “불쌍한 소경에게 돈을 좀 주십시오!”라고 소리질렀을 것입니다. 어느 날, 그가 여느 날처럼 그곳에 앉아 있을 때에 한 사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와 그에게 말합니다. “이봐, 바디매오, 자네를 위한 기쁜 소식이 있어.” “그게 뭔데?” “이스라엘에 자네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구.” “그럴 리가, 내 눈은 절대로 떠지지 않을 거야. 나는 날 때부터 소경이었고, 아직까지 소경이 눈을 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어. 아마 오는 세상에서는 눈을 뜰 수 있겠지.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장님으로 살아야지 뭐.” “하지만 내가 어제 예루살렘에 갔다가 갈릴리에서 오신 위대한 선지자를 봤는데, 그분이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눈뜨게 하는 것을 보았단 말이야. 너무 잘 보여서 안경이 필요하지도 않을 만큼 또렷이 보게 되었는걸.” 그 말을 듣자 그 불쌍한 소경의 마음에서 희망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지?” “예수라고 하는 그분이 땅에 침을 뱉으시고 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바르시고는,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어. 그는 시키는 대로 했고, 그랬더니 두 눈이 완전히 떠진 거야. 나는 눈을 뜨게 된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아마 예루살렘을 통틀어 그렇게 눈이 좋은 사람은 없을 거야.” “치료비는 얼마나 냈는데?” “없어. 치료비나 청구서는 한 푼도 없었다구. 그냥 예수님께 보기를 원한다고 말씀드린 것 말고는 없어. 그는 공짜로 시력을 찾은 거야. 가난한 자나 부자가 그분께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어.” “그분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나사렛 예수야. 만약 그분께서 이곳으로 지나가시게 되면 그분을 붙잡고 자네의 문제를 말씀드리라구.” “물론이지. 나를 고쳐 주시기 전에는 절대로 그냥 지나가시지 못하게 할 거야.” 며칠 후, 그가 여전히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그는 많은 무리가 오고 있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급히 물었습니다. “누가 오고 있지? 말해 줘요. 누가 오고 계신가요?” 누군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고 말해줍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소경은 생각합니다. ‘아, 소경을 보게 하신 바로 그분이시구나.’ 그리고 그는 목소리를 높여 소리지릅니다. “다윗의 아들 예수여,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모든 기도가 그렇듯이 그의 기도도 하나님의 아들의 귓가에 들렸고, 그분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 명하셨습니다. “바디매오!” 사람들이 말합니다. “힘을 내고 일어서. 그분께서 자네를 부르신다네.” 주님께서는 그를 위한 좋은 것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죄인들은 바로 그것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합니다. 사람들이 소경을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주여,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눈으로 보라.” 주님이 말씀하사자마자 즉시 소경의 눈이 열립니다. 제가 그 때 그곳에 있어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소경의 시선이 처음으로 닿은 대상은 하나님의 아들 그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군중들이 환호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게 된 그 소경 자신만큼 크게 소리지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아마 ‘다윗의 아들에게 호산나’라고 했겠지요. 그 이후의 일을 조금 더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요? 바디매오는 여리코로 들어가서 말합니다. “나의 아내를 직접 보고 이 일을 말해 주어야지.” 새로운 회심자는 항상 그의 친구들에게 자신이 구원받은 것에 관해서 말하고 싶어합니다. 거리를 걷다가 어떤 사람이 그를 지나쳐서 몇 발자국 가다가는 뒤돌아서서 묻습니다. “바디매오! 자네 바디매오 맞지?” “그렇습니다만...” “그래, 자넨 줄 알았지. 하지만 도저히 내 눈을 믿을 수 없군. 어떻게 보게 되었지?” “성 밖에서 만난 나사렛 예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구했을 뿐입니다.” “나사렛 예수라! 그분이 지금 이곳에 계신가?” “그래요. 여기 여리코에 계세요. 지금 서쪽 문을 향해 가고 계신걸요.” “그분을 만나 봐야겠어.” 그는 거리를 뛰어갑니다. 하지만 그는 키가 작은데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아무리 까치발로 서도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좋아,” 그는 말합니다. “나는 꼭 그 분을 보고야 말겠어.” 그는 근처의 뽕나무로 달려가서 그 위로 올라갑니다. “길 위로 뻗쳐 있는 저 가지 위에 매달리면, 그분이 지나가실 때에 틀림없이 잘 볼 수 있을거야.” 부자인 그가 소년처럼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서 나뭇잎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매우 이상한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소란스런 군중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그는 주님을 찾습니다. 먼저 베드로가 보입니다. “저 사람은 그분이 아니야.” 요한이 보입니다. “저 사람도 그분이 아니야.” 마침내 그의 눈은 한 사람에게 머뭅니다. “저분이다!” 삭캐오는 나뭇가지 틈새에서 놀라우신 하나심이신 그분을 경이로움 속에서 내려다 봅니다. 마침내 군중이 나무 밑까지 왔습니다. 예수님은 지나가시다 말고 갑자기 멈추시더니 나무 위를 올려다보시고 말씀하십니다. “삭캐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저는 삭캐오가 바로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누가 그분께 내 이름을 알려 드렸을까? 그분이 나를 아실 리가 없는데....’ 물론 주님은 그를 아셨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 모두를 아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이름과 집과 여러분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여러분은 그분 앞에서 자신을 숨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어디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여러분에 관한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런 회심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삭캐오는 언제 회심했을까요? 분명 그가 나무 위로 올라갈 때까지도 그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무에서 내려왔을 때에는 분명 회심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땅과 나뭇가지 사이의 어디에선가 회심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가 회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던 것입니다! “속히 내려오너라. 나는 다시는 이 길로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다.” 삭캐오는 급히 내려왔고,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이 다른 어떤 방법으로 회심했다는 것을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는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기쁨을 주신 것입니다. 죄와 어두움과 슬픔이 멀리 사라졌습니다. 빛과 평강, 기쁨만이 그의 영혼에 넘쳐흘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있는 높은 곳에서 내려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 영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혹자는 물을 것입니다. “그가 회심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지요?” 증거는 너무나도 확실합니다. 삭캐오의 삶에는 풍성한 열매가 넘쳤기 때문입니다. 그 부유한 삭캐오는 회심하자마자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재산의 반을 내어 놓았으며, 사람들은 이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삭캐오는 “누구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착취한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아 주겠나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아주 훌륭한 증거가 아닙니까? 회심한 사람은 지체하지 않습니다. 삭캐오의 하인들 중 하나가 다음날 아침 100달러짜리 수표를 들고 이웃을 찾아가서 건네주는 것을 상상해 봅시다. “이게 뭐지요?” “내 주인이 몇 년 전에 당신에게 25달러를 착취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그 배상금입니다.” 이것이 삭캐오가 회심했다는 확실한 증거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일들을 보기 원하며, 그래서 어떻게 사람이 어느 한 순간에 회심할 수 있느냐고 의심하는 사람들의 말을 불식시키고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세리의 집으로 가셨고, 그곳에 계시는 동안 바리새인들이 수근거리며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이 그 이후에 사라졌다면 좋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의 많은 후예들이 지금 19세기에도 여전히 남아 있어서 불평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받아들이는도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이 불평하는 동안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삭캐오를 불행하게 하거나, 정죄하거나, 그를 괴롭히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고 또 구원하려는 것이라.” 만약 여러분이 잃어버린 바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여러분께 기쁜 소식을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몇 년 전 어느 토요일 밤에 풀톤 가의 기도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도회가 끝났을 때 한 사람이 제게 와서 다음날 아침에 시 교도소에 가서 설교하도록 주선해 주겠다고 하기에 저는 기꺼이 승낙했습니다. 그 교도소에는 채플이 없었으므로 감옥 안에서 설교했습니다. 저는 작은 철문 앞에 서서 길고 좁은 복도를 향해 그들을 보지도 못한 채 약 삼사백 명의 수감자들에게 설교했는데,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벽에다 대고 설교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설교가 끝났을 때, 저는 어떤 사람들이 설교를 들었으며, 그들이 복음을 어떻게 받아 들였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 설교를 가장 잘 들을 수 있었던 가장 가까운 감방으로 가서 조그만 창문으로 죄수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들은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설교시간 내내 그렇게 한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은 왜 여기 계십니까?” “이보쇼, 처음 보는 양반, 우리는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요. 거짓 증인이 우리들에 대해서 위증을 했지요. 그게 바로 우리가 이곳에 갇힌 이유란 말이요.” ‘아 이 방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아무도 구원하실 수 없으셨구나.’ 저는 다음 방으로 갔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까?” “범인이 나랑 똑같이 생겼지 뭡니까, 그래서 저는 억울하게 여기 있게 된 겁니다.” 그도 역시 결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다음 방으로 옮겼습니다. “무슨 죄로 여기 오셨습니까?” “우리는 나쁜 친구들을 만났고, 그 친구 대신에 우리가 잡혔지요. 우리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어요.” 저는 다음 방으로 갔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재판이 다음 주에 열려요. 그들에게는 나를 잡아넣을 어떤 증거도 없어요. 나는 풀려날 거요.” 저는 거의 모든 감방을 다 돌아보았고,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그들은 아무 죄도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저는 지금껏 결백한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죄를 지은 사람은 정작 그들을 그곳에 보낸 판사들뿐인 것입니다. 그들은 더러운 자신의 의로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이 인간의 역사 6000년의 일인 것입니다. 저는 감방을 돌아다니면서 죄수들에게 매우 실망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변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변명거리를 댈 수 없었다면, 마귀가 그들을 도와서 변명을 생각나게 했을 것입니다. 거의 모든 감방을 다 돌아보았을 때, 한 남자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괴롭습니까?” 그는 저를 쳐다보았고, 그의 얼굴은 양심의 가책과 절망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제 죄들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요.” “그렇다면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뭐라고요? 당신은 우리에게 설교했던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저의 죄를 견딜 수 없어하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시다니요?” “설명드리지요, 만약 당신의 죄가 견딜 수 없을 만큼 크다면, 당신을 대신해서 그 죄들을 맡아 주실 분에게 죄를 모두 맡겨 버리지 않으시겠습니까?” “그가 누구인데요?”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저의 죄를 가져가 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 그렇지요?” “저는 일평생 그분을 거슬러서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들을 어떻게 찾으시고 구원하시는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감옥 문을 여시고 죄인들을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말입니다. 자신이 잃어버린 죄인이라고 믿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시원한 물을 만나는 것과도 같습니다. 저는 그 사람 앞에 서서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를 제시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셨고, 우리의 죄들로 인해서 죽으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긴 시간 동안 그는 자신과 같은 비참한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죄들을 열거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그리스도의 피는 그 모든 죄들을 다 덮어 버릴 수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고 나서 저는 말했습니다. “자, 같이 기도합시다.” 그는 감방 안에서 무릎을 꿇었고, 저는 바깥 복도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당신이 기도하십시오.” 제가 말했습니다. “안돼요, 저 같은 사람이 하나님을 부른다는 것은 그분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그는 꿇어앉은 채로 불쌍한 세리처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처럼 사악한 자에게도 자비를 베푸소서!” 제가 창문으로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을 때, 그의 뜨거운 눈물이 제 손등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는 그가 잃어버린 바 되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그를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는 아직도 어두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저는 호텔에 묵고 있습니다. 오늘 밤 9시와 10시 사이에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그가 어떻게 했을까 너무 궁금해서 시카고로 돌아오기 전에 그를 다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만나자마자 곧 그에게서 죄책감과 절망이 사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천상의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절망의 눈물 대신에 기쁨의 눈물이 솟구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의의 태양이 그의 인생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의 혼은 그분 안에서 기뻐 뛰고 있었습니다. 그는 삭캐오가 그랬듯이 기쁨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했던 것입니다.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그의 간증을 듣기 원했습니다. “예, 정확히 몇 시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아마 자정쯤 되었을 거예요, 저는 오랫동안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의 모든 무거운 짐들이 벗겨졌고, 이제 저는 뉴욕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하늘로부터 오는 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는 세상에서 만나기를 기약하며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감옥 안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그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그가 잃어버린 바 되었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두루 돌아다니는 사탄에 의해서 세상은 완전히 죄에 무감각해져 있습니다. 저는 하늘나라와 지옥을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끔찍한 지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우리는 건강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서 듣고는 그들을 동정합니다. 또 재물을 잃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안됐군요.”라고 말합니다. 명예를 잃은 사람들에게도 “정말 유감이군요.”라고 합니다. 우리는 건강과 재물과 명성을 잃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과 비교해 볼 때 혼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 번은 시카고의 한 안과에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 어머니가 태어난 지 몇 달도 안된 조그마한 아기를 의사에게 데리고 와서는 눈을 검사해 달라고 했습니다. 의사가 검진한 결과 그 아기는 평생 동안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생토록 말입니다. 의사가 그렇게 말하자, 어머니는 아이를 꼭 붙잡아 가슴에 부둥켜 안고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소리가 제 마음을 날카롭게 찔렀고 저는 같이 울고 말았습니다. 의사도 울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 아가야!” 어머니가 말합니다. “너는 너를 낳아준 엄마를 결코 볼 수 없게 되었구나. 의사 선생님, 저는 도저히 견딜 수 없습니다. 내 아가, 내 아가!” 그것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광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력을 잃는 것을 혼을 잃는 것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제 혼을 잃는 것보다 제 두 눈을 잃는 것이 몇 천 배도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제가 제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없이, 아무 희망 없이 지옥으로 가는 것보다는 그들의 두 눈이 뽑혀 나가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혼을 잃는다는 것은 너무도 불행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떠나오게 한 이유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이 보좌를 떠나오신 이유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께서 갈보리로 가셨던 이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것을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신 것은 잃어버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이셨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의 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혼을 잃는다는 것,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만약 여러분이 아직도 구원받지 못하고 잃어버려진 상태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얻기까지는 다른 것들은 다 미루어 놓으시기를 간절히 권고합니다. 만약 여러분께 자녀들이 있다면, 그들이 구원받기까지는 절대로 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아이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것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인자는 백발노인에서부터 어린 아이들까지 모두를 구원하려 오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부자, 가난한 자, 어린이, 노인,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청년 여러분, 만약 아직도 구원받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길을 발견하고 들어가시길 강력히 촉구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고 또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롤랜드 힐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한 번은 야외에 모여든 수많은 군중 앞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레이디 앤 어스킨(백작부인정도)이 지나가다가 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물었고, 그가 그 유명한 롤랜드 힐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의 설교를 들어 보기 위해서 강단 근처로 마차를 몰도록 명령했습니다. 롤랜드 힐의 눈이 그녀에게 향했고, 그는 누군가에게 그녀가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그는 설교를 계속했는데, 설교 도중 갑자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서 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롤랜드가 정말 무엇인가를 팔 생각인 줄 알고 당황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경매에 붙여 팔겠습니다. 이것은 전 유럽의 모든 왕관들보다도 훨씬 귀중한 것입니다. 경매할 것은 레이디 앤 어스킨의 혼입니다. 그녀의 혼을 입찰하실 분 계십니까?...아, 저기 한 분이 입찰하시는군요, 누구시지요? 아, 사탄이군요. 무엇을 주실 거지요? 아, 재물과 명예와 쾌락이랍니다. 네, 그녀의 혼의 대가로 온 세상을 주겠다고 하는군요...아, 저기 다른 입찰자가 있군요, 누구시지요? 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 당신은 무엇을 주실 겁니까? 기쁨과 평안과 그리고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요? 그분은 그녀의 혼의 대가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롤랜드는 레이디 앤 어스킨을 향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혼에 대한 두 명의 입찰자가 있다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둘 중 누가 당신의 혼을 가지게 하실 것입니까?” 그녀는 마차에서 내려서 군중을 헤치고 설교자에게 다가왔습니다. “내 혼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겠습니다. 만약 그분께서 허락하신다면요.” 지금 여러분의 혼을 사려는 두 명의 입찰자가 있습니다. 누가 여러분의 혼을 소유할지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사탄은 그가 줄 수 없는 것을 제시합니다. 그는 거짓말쟁이며,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마귀의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참으로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는 아담에게 거짓말을 했고, 그를 속였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고는 황폐하고 잃어버려진 상태가 되게 한 것입니다. 아담 이래로 마귀의 거짓말과 약속을 믿고 사는 모든 사람들은 실망했고,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께서 제시하시는 모든 것을 능히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누가 그것을 갖기 원하십니까? 때때로 자신은 구원받기를 너무나 원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결코 자신을 찾지 않으셨다는 사람을 만나곤 합니다. 저는 그에게 묻습니다. “뭘 기다리고 있습니까?” “저는 그리스도께서 저를 불러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지요. 그가 부르시자마자 저는 그분께 갈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의 인생의 어떤 “특별한” 시기에 기회를 부여하여 그에게 강권하신다고 믿지 않습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찾지 않으시는 사람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명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먼저 죄인이 있는 곳에 찾아오십니다. 지난 6000년 동안 구원받았던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먼저 찾으셨던 사람들입니다. 아담이 타락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찾으셨습니다. 아담은 놀라서 동산 수풀 사이에 몸을 숨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죄인의 자리에 먼저 찾아오십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먼저 찾지 않으셨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양을 우리로 데리고 오는 목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들이 문을 통과할 때, 그는 옆에 서서 양의 수를 셉니다. 하나, 둘, 셋,...아흔 아홉. “어? 이상한데...100마리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잘못 세었나 보군.” 그리고는 다시 수를 셉니다. “아흔 아홉 마리뿐이야. 한 마리를 잃어버렸구나.” 그는 “자기가 알아서 찾아오겠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산으로 달려가서 쉬지 않고 잃어버린 양을 찾습니다. 그리고는 양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양이 목자를 스스로 찾아왔습니까? 아닙니다. 목자가 양을 찾아서 집으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는 그 양을 찾은 것을 기뻐했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잃어버린 바 되었던 그 양도 양무리에게로 돌아오게 된 것을 기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하자.”고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목자였습니다. 또 동전을 잃어버린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날 그녀에게 은 열 개를 지불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세었습니다. “아니, 아홉 개밖에 없잖아. 열 개라야 되는데...” 그녀는 돈을 다시 셉니다. “역시 아홉 개야. 하나가 없어. 돈을 가지고 나간 적이 없으니까 분명히 집 안에 있을 거야.” 그녀가 돈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립니까? 아닙니다. 그녀는 비를 들고 촛불을 켜서는 샅샅이 쓸며 찾기 시작합니다. 소파와 테이블을 옮기고 의자 밑도 살펴봅니다. 돈을 찾을 때까지 방의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뒤집니다. 마침내 돈을 찾았을 때 누가 기뻐했습니까? 동전입니까? 아닙니다. 돈을 찾은 여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비유에서 하나님께서 죄인을 찾으신다는 위대한 진리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그리스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먼저 그들을 찾으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한 번은 어떤 젊은이가 자신은 구원받기에는 너무 큰 죄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을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죄가 검은 산처럼 여러분 앞에 일어선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들을 깨끗게 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리스도의 피가 해결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크고 부패하고 사악한 죄는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예로부터 전해온 복음을 다시 한 번 선포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고 또 구원하려는 것이라』(눅 19:10). 아담의 타락과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에덴의 동산에 두실 때 그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온 것은 그의 타락과 그의 죄였던 것입니다. 맨체스터에 사는 제 친구 하나가 몇 년 전 시카고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는 시카고에 대해서 무척 흥미 있어 했습니다. 3-40만 명이 사는 커다란 도시이며, 거대한 열차기지가 있고 목재 시장이 있으며, 돼지고기 시장, 곡물 시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시카고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별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수백 마일이나 떨어진데다가, 사람들은 단지 들을 것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시카고에 엄청나게 큰 화재가 발생하면서 제 친구들은 갑자기 시카고에 대해서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기사를 찾아서 읽고, 모든 뉴스를 열심히 들었습니다. 마침내 시카고가 불타고 10만 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고 가족들을 잃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그들은 너무나 관심을 가진 나머지 시카고 사람들을 위해서 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줄을 지어 시카고를 방문하여 구호금을 내고 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재난을 당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수백 달러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맨체스터를 비롯한 여러 도시의 사랑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시카고의 재난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끔찍한 화재를 지켜보았고, 부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날 저녁 그들이 집에 돌아갔을 때는 부자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가난뱅이가 되었습니다. “리버풀에서 10,000달러, 맨체스터에서 5,000달러를 주었고, 런던은 그 시를 돕기 위해서 성금을 보내기로 했다.”는 뉴스가 전파를 타고 퍼져 나가자, 사람들은 감격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우리들의 마음을 감격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그 사랑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이 땅으로 내려와 우리를 위해 죽으시게 한 그런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주님께서 아버지의 보좌를 떠나 잃어버린 자를 찾고 또 구원하시게 한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한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주님께서는 얼마 전 죽은 그의 경건한 누이의 기도에 대해서 그에게 응답하셨던 것입니다. 그녀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떨면서 왔습니다. 저는 그에게 구원의 계획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눈물이 그의 뺨을 흘렀고, 마침내 그는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인자께서는 그의 누이의 기도와 그녀의 죽음을 통해서 그를 찾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혼을 위해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던, 그리고 이제는 하늘에 가 계시는 경건한 어머니를 가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하늘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의 어머니의 기도와 죽음을 통해서 여러분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도록 간청하며, 또 강단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목사가 주위에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슴을 두드리는 설교를 들었을 때, 진리가 여러분 마음 속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갔고 눈물이 주루룩 흘렀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오라고 강권했던 적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 주위의 갓 거듭난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오라고 간청하며 말했던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의 영혼을 찾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내용이 적힌 전도지를 손에 받아들었던 적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영원을 어느 곳에서 보낼 것인가?” 그리고 그 내용은 뼈에 사무치도록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을 찾고 계셨던 때입니다. 여러분 중 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누웠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한밤중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곁에 오시고, 여러분은 문득 하나님의 자녀와 하늘의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의 잃어버린 혼을 찾고 계셨을 때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어려서 죽은 자녀들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죽어갈 때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을 찾으신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관심을 하늘로 돌리기 위해서 여러분이 사랑하는 어린 아이를 데려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마음의 문을 여시고 하늘에서 오신 그분을 맞아들이십시오. 더 이상 그분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이번에는 그냥 가세요. 알맞은 때가 오면 그때 부를께요.”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시간을 여러분의 알맞은 때로 만드십시오. 지금 이 순간을 여러분의 구원의 때로 삼으십시오. 마음의 문을 열고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제 마음으로 어서 빨리 들어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