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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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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악을 행한 주의 백성
lhyunsik

[참고] 상기 음악화일은 임동선목사님과 구 정민 목사님이 2006년 초에 미국선교여행을 다닐때에 찬양곡을 모은 것입니다. 임 동선목사 1. 주의 백성에게 있는 두가지 악(렘2:1-13) 예레미야 2:1-13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악을 행했는지를 고발하는 고소장과 같다. 그들은 본래 주님을 따랐던 백성이다(렘2:2). 광야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었다. 주께서는 그들을 불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면서 그들의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셨다. 그들은 주께 특별한 백성이었다(렘2:3).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들은 결국 다 멸망하게 되었으며 재앙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이 그들에게 있었으며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특별한 보호가 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허무하게 된 백성이었다(렘2:5). 주로부터 멀리 떠나갔으며 허무한 것을 따라 허무한 길을 가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주를 찾지 않는 백성이 되었으며(렘2:6) 주께서 주신 것을 더럽힌 백성이 되었다(렘2:7). 그들의 가증함을 통해 주께서 주신 좋은 땅을 더럽혔으며 그들이 얻은 것을 망치는 자들이 되었다. 심지어 그들을 일깨워야 할 지도자들마저도 타락해서 제사장, 재판관들, 목양자들, 대언자들도 허망한 길에 같이 동참하고 이끄는 자들이 되었다(렘2:8). 그들은 자기들의 영광을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들과 바꿔버린 어리석은 자들이 되고 말았다(렘2:11).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그들이 생수의 샘인 나를 버리고 또 물저장고들 즉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저장고들을 팠느니라."(렘2:13) 이 구절 안에서 생수의 샘은 주님을 말하지만 터진 물저장고는 이방의 신들을 말한다. 샘은 인간의 수고로 만들어지지 않으나 저장고는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인들이 만든 신들에게 매달렸다. 그들은 생명을 주는 하나님을 버리고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신들에게 매료되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포기했으며 그들 스스로 얻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함께 시작한 그 처음을 잊고서 그들 스스로의 욕심에 따라 이리 저리 기웃거리게 되었다. “네 자신의 사악함이 너를 바로 잡고 네 타락함이 너를 꾸짖으리라. 그런즉 네가 주 네 하나님을 버린 것과 네 속에서 나를 두려워함이 없는 것이 악한 일이요, 쓰라린 일인 줄 알고 주의하라. 주 만군의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렘2:19) 주의 백성들에게 있는 악한 일은 무엇인가?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무언가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영광을 다른 것으로 대치시키는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 주는 것에 목말라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에 대한 배신이다.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주님을 두려워하는가? 세상 사람들은 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식상한 교琯?역시 주님을 두려워함이 없이 산다. 주님이 공의로우시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주님이 심판하신다는 것도 알지 못하며 주님이 전지하셔서 모든 것을 보신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주님은 나를 다루시는데 고민하시지 않을 만큼 전능하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주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므로 인해 자기 멋대로 살고 방종하며 회중에게 덕이 되지 않는다. 구원받은 성도라고 하면서 주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이런 지경이 되지 않았는지........? ============================================================ 2. 주의 백성에게 있는 두가지 악의 결말(렘2:14-19) 1. 노략을 당함(렘2:14) 하나님의 백성이 노략을 당하게 되었다. 자기의 것을 잃어도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종이나 노예처럼 이스라엘은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되었다. 본래 이스라엘은 종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후예다. 상속지인 가나안 땅에 대한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민족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했던 모든 것들을 하나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신앙과 삶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당당한 권리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자유를 잃어버린다. 그것을 주장할 수가 없다. 교회를 세우는데 기둥이 될 수 없으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유롭게 일할 수가 없다. 분명히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믿음의 권리들을 많이 잃어버리고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경배하는 시간을 빼앗기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앉는 시간을 빼앗긴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드려야 할 시간을 빼앗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기쁨들을 빼앗긴다. 물질들은 거룩한 일보다도 쓸데없는 일에 소모되며 재능들은 주님을 위해서보다도 세상을 위해서 빼앗기게 된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회개하지 않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2. 황폐하게 됨(렘2:15) 이스라엘 사람들의 땅에는 사람들이 적어지게 되었다. 황폐함이 그 땅에 임했다. 도시들은 불타 폐허가 되어 더 이상 거할 곳이 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며 다른 지역으로 끌려가므로 인해 그 땅에는 사람들이 적어졌다. 이제 젊은 사자들이 그 땅에서 울부짖으며 사람이 살기에 곤란한 지역임을 드러내었다. 여기서 말하는 젊은 사자는 앗 시리아의 왕족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거기에 거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가리켜 가나안 족속들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가증한 일들을 행한 그 가나안 족속들로 인해 그 땅이 스스로 자기 거주민을 토해낸 것이라고 했다(레18:25).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 전에 있던 그 땅의 사람들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 땅이 더럽게 되었느니라. 이것은 너희가 그 땅을 더럽힐 때에 그 땅이 너희 전에 있던 민족들을 토해낸 것같이 또한 너희를 토해내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레18:27-28)라고 말씀하셨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던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땅에 거하던 가나안 족속들의 가증함 못지 않게 하나님의 백성들도 가증하게 행동을 했다. 땅은 더 이상 그들을 용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얻었던 좋은 것들을 잃었다. 주의 백성으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것들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사역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사람들, 좋은 교회를 잃어버리는 사람들, 주님을 섬기며 살 수 있는 건강을 잃어버리는 사람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물질들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해서는 안될 일들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하면서도 회개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3. 미약하게 됨(렘2:16) 놉과 다바네스는 이집트의 성읍이다. 이것은 이집트가 마침내 이스라엘을 짓밟게 된 것을 말한다. 유다의 마지막 시기에 이집트 왕 느고가 올라와서 신앙부흥을 주도했던 요시야 왕을 죽였다(대하35:20-24). 그리고 이집트왕 시삭이 요시아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엘리야김을 여호야 김으로 이름을 바꾸어 왕을 세웠다. 다시 말해 이집트의 세력이 유다의 왕족들을 죽이고 간섭하며 마침내 이스라엘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을 말한다. 사실 이집트는 어떤 곳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생활을 하던 곳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의 통치자들로 인해 심한 괴로움에 빠졌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탄식을 들으셨으며 또한 아브라함과 했던 약속을 기억하사(출2:23-25) 모세를 세워주셨다. 그 위대한 유월절의 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을 빼내는 엄청난 일을 해내셨다. 홍해가 갈라지던 그 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떠났지만 그들을 괴롭히던 수많은 이집트의 군대는 수장되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게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이집트로부터 벗어났던 민족이 다시 이집트에서 올라온 군대들에 의해 짓밟히고 그들의 구속과 벗어남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함을 위해 살지 못하고 다시 구원받기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가는 이 비참한 꼴들이 왜 일어나야 하는가? 개가 그 토한 것을 먹으며 씻겨진 돼지가 진창 속에 뒹구는 것과 같은 일이 왜 일어나야 하는가?(벧후2:22). 그것은 그들이 주께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악을 회개하지 않은 채로 가기 때문이다. 적용: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을 배반하고 엉뚱한 것에 마음 빼앗겨 자기의 의지나 힘으로 삼는 자는 결국 좋은 것들을 다 잃어버리게 되어 있다. 주님으로부터 얻은 기회들,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는 기회들을 다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구속받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그가 구원받은 사람인지 의심받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런 것들로부터 건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진실한 마음으로 돌이켜 회개하는 것밖에 없다. =============================================================== 3.두가지 악을 행한 주의 백성의 모습(렘2:20-30) 1. 창녀(렘2:20) 오래 전에 그들은 이집트이 멍에와 결박을 끊으면서 거룩한 삶을 살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창녀처럼 변했다. 돈을 위해서 몸을 팔며, 정한 남편이 없이 이리 저리 자기 몸을 맡기는 여자처럼 어리석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욕심에 끌려 더럽혀진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창녀라는 소리를 듣다니...... “창녀의 몸값과 개의 몸값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 주 네 하나님의 집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주 네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니라.”(신23:18) 개는 그 토한 것을 다시 먹는 더럽혀진 사람을 말하며 창녀는 거룩한 추구를 잃어버리고 욕심을 위해 자기 몸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 둘이 주 하나님께 가증해서 하나님의 집으로 그들의 몸값을 가져오지 말라는 것은 개나 창녀같은 사람의 섬김에 대해서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신다는 뜻이다. 회개하지 않은 그들의 섬김은 하나님 앞에 무의미하다. 주님은 받지 않으신다. 2. 변질된 초목(렘2:21) 주님은 올바른 씨를 심었다. 잘 자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땐가 다른 나무로 드러나고 말았다. 마치 접붙임을 통해 본 종자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이상한 열매를 내놓는 다른 나무가 되고 말았다. 주께서는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셔서 호의와 사랑과 보호를 주셨지만 그들이 내놓은 것은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3. 더럽혀진 몸(렘2:22) 이스라엘의 모습은 더럽혀진 몸에 비유되었다. 얼마나 많은 불법들이 그들에게 있었는지 천연소다(탄산수를 말함)를 써도 소용이 없고 비누(알카리)도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 그 어떤 것으로 씻어도 기름때가 잔뜩 묻어서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불법은 더 이상 씻기지 않을 정도로 더럽혀진 상태에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불법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오랫동안 깊게 내려와 제거하려 해도 제거되지 않는 것과 같다. 요시야 왕이 신앙부흥을 주도해서 씻어보려고 했지만 워낙 깊게 더럽혀진 그들은 좀처럼 불법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주기는 힘들었다. 그들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4) 암낙타와 암나귀(렘2:23-25) 성적인 것으로 인해 아주 흥분이 되어 있는 암나귀처럼 그들은 바알들과 우상들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아주 열정적이었다. 한 번 거기에 몰입한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흥분한 암나귀가 아무것도 뵈는 것이 없이 자기 쾌락에 의해 달려가듯이 하나님의 백성이 쾌락을 위해 통제불능이 되며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발을 억제하여 벗은 발이 되지 않게 하며 네 몸을 억제하여 목마르지 않게 하라.”(렘2:25중)하셨지만 그들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멸망의 언덕 아래로 힘껏 내달렸다. 그들이 얼마나 심각한지 길을 달리는 빠른 암낙타같았다(렘2:23). 5. 부끄러움을 당하는 도둑(렘2:26-28) 도둑들이 틀킬 때 얼마나 부끄럽겠는가? 그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다 지켜보다가 마침내 그 자리에서 잡혔을 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되겠는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하는 모든 것들이 이렇게 부끄러운 것이 된다. 왕들이든지, 통치자들이든지, 제사장들이든지, 대언자들이든지, 귀한 위치에서 일하던 모든 자들이 얼마나 어리석게 굴었는지는 그것이 멸망할 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살지도 않았으면서 고난당할 때에는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렘2:27)라고 하나님께 요청하는 이 뻔뻔함에 대해 하나님은 그들이 부끄럽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이 가진 도시의 수만큼이나 많은 신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와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그 모든 노력들이 부끄러움을 끝날 뿐이라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6. 바로잡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녀들(렘2:29-30) 잘못은 그들이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실 때, 그들은 하나님을 탓하며 변론하려고 했다. “내가 헛되이 너희 자녀를 쳤나니”라는 말은 징계가 헛되다는 것을 말한다. 주께서는 그들이 돌이키기를 바래서 징계했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징계를 당하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대언자들을 죽이고 공격하는데 바빴다. 이로 보건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랐음이 분명하다. 적용: 하나님의 백성, 성도, 그리스도인, 신자, 얼마나 좋은 호칭들이 우리에게 있는가?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위치를 망각하고 주앞에 악을 행할 때는 우리에게 그런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더럽혀진 명예, 그것이 주께 전혀 영광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 앞에 행한 악을 버리고 돌이켜야만 한다. ============================================================== 4.두가지 악을 행한 주의 백성의 무책임함(렘2:31-37) 1. 우리가 주니(렘2:31) 주께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리가 주니 다시는 주께 가지 아니하리이다.”(렘2:31)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인 것처럼 그렇게 외치지만 사실은 가장 위험한 선택을 한 것이다. 마치 에덴에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것과 같다. 더 이상 주님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영적 구태타를 일으키는 것이다. 얼마 가지도 못할 통치를 위해서 주님의 권위에 도전하며 모든 것을 자기가 보는 시각, 자기가 가진 판단, 자기가 경험한 것들에 의해서 결정하려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지만 여전히 이 유혹 가운데 있다. 자기 스스로가 주가 되려는 유혹이다. 이것이 반복되며 깊어진다면 주의 백성에게 주어졌던 심판을 당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오늘 나의 삶에 주님이 누구이신가? 내 멋대로 계획하는 것은 없는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없는가? 주님의 뜻이 아니라 내 생각과 내 경험을 밀고 가는 것은 없는가? 자기 스스로 주가 되려는 사람들로 인해 교회는 몸살을 앓는다. 그리스도의 진영은 혼란스럽고 세상은 교회를 보더라도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어렵게 된다. 2. 가장 소중한 분, 주님을 잊은 것(렘2:32). 신부는 그 자신이 결혼한 여자임을 드러내는 결혼 장식품을 결코 잊지 않는다. 결혼 예복을 함부로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녀가 새 집안사람이 되었다는 명백한 증거이며 한 남편의 아내가 되었다는 행복한 증거이다. 그것을 어떻게 함부로 다룰 수 있겠는가? 자기의 신분과 장래를 보장해주는 귀한 증거들을 함부로 다룰 수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달랐다. 무엇이 소중한지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분을 망각하고 살아왔다. 주님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시는데 그들이 “셀 수 없는 날 동안 나를 잊었도다.”(렘2:32)라고 했다. 무엇이 그들의 재미와 즐거움을 자극했는지, 그들은 그들을 구속한 주님을 잊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랫동안 그들은 주님을 잊어왔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지내는가? 내 신분과 내 장래를 보장해주시는 그 분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바알을 섬기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에서의 영광과 부와 위치와 명성을 위해서 주님을 저 멀리 뒷전으로 몰아놓고 살지는 않는가? 가장 소중한 그것을 가장 구석으로 밀어놓지는 않았는가? 3. 무죄하다고 주장함(렘2:33-35)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는 가장 심각한 죄는 이것이다. 명백하게 잘못인데도 불구하고 절대로 자기들의 죄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자기들이 잘못했으면서도 주와 변론하려고 하는 이스라엘처럼(렘2:29) 오늘날도 분명하게 잘못을 했지만 그 잘못의 이유들을 환경과 다른 사람과 여러 가지 문제들에서 찾으려 하지 정직하게 그 자신이 옳지 않았음을 시인하는 자는 적다. “내가 무죄하다.”(렘2:35)라는 말을 들을 때, 주님은 기쁘시지 않았다. “내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렘2:35)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하나도 기쁘시지 않았다. 그들은 정직하지 않았으며 자기를 감추고 자꾸만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꾸미려고 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 우리가 그분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들어 또한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10)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변명이 많은 사람이다. 잘못이 분명한데도 다른 이유를 들어서 책망을 피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사울이 그랬다. 그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하나님은 그가 하던 일들을 다른 이에게 넘겨주시기로 했다. 가장 은혜를 누리는 사람들은 자기의 잘못에 대해 정직한 사람들이다. 나단이 다윗의 죄를 지적했을 때, 그는 나단 앞에서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삼하12:13)라고 털어놓았다. 위대한 신앙부흥이 일어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들을 자백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4. 길을 바꾸고 엉뚱한 것을 신뢰함(렘2:36-37) 주님을 따라야만 하는 그들은 이제 앗시리아를, 또 이집트를 신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신뢰하던 것들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가시와 채찍이 되고 말았다. 길을 바꾸고 엉뚱한 것을 신뢰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부끄러움뿐이었다. 그들이 신뢰하는 것은 변덕스럽게 바뀌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바뀌었다. 어느 때는 날짐승의 편에 서고 어느 때는 땅에서 사는 짐승의 편을 들었기에 지금은 그들 틈에서 쫓겨나 동굴에 거한다고 전해지는 박쥐처럼 그렇게 기회나 자기의 유익을 위해 이리 저리 길을 바꾸는 것이 이스라엘의 큰 잘못이었다. 주를 신뢰해야 할 사람들이 때때로 자기 잘못으로 당하는 곤란을 해결하기 위해 이리 저리 기웃거릴 때가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서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주를 신뢰하지 않고 이리저리 순간순간 내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던 것들을 신뢰하며 왔다갔다 하는 것은 옳지 않는 선택이다. 형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