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ON
추천업소
추천업소 선택:
추천업소 그룹 리스트
  • 식품ㆍ음식점ㆍ쇼핑1
  • 부동산ㆍ건축ㆍ생활2
  • 미용ㆍ건강ㆍ의료3
  • 자동차ㆍ수리ㆍ운송4
  • 관광ㆍ하숙ㆍ스포츠5
  • 이민ㆍ유학ㆍ학교6
  • 금융ㆍ보험ㆍ모기지7
  • 컴퓨터ㆍ인터넷ㆍ전화8
  • 오락ㆍ유흥ㆍPC방9
  • 법률ㆍ회계ㆍ번역10
  • 꽃ㆍ결혼ㆍ사진11
  • 예술ㆍ광고ㆍ인쇄12
  • 도매ㆍ무역ㆍ장비13
  • 종교ㆍ언론ㆍ단체14
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16 전체: 176,433 )
베들레헴 여행 (찰스 헤이든 스펄젼)
lhyunsik

베들레헴 여행 (찰스 헤이든 스펄젼) 찰스 헤이든 스펄젼 ▲ 찰스 H. 스펄젼 『그 천사들이 그들을 떠나 하늘로 간 후 목자들이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보자』(눅 2:15).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떠나려고 합니다. 물론 현재의 베들레헴이 아니라 예수님 당시의 그 옛날의 베들레헴으로 말입니다. 여러분이 유다의 오래된 도시인 예루살렘을 지금 방문하신다면 아마도 저으기 실망하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6마일 떨어진 경사진 언덕에 자리잡은 자그마하고 볼품없는 마을인 베들레헴은 그 규모나 거주민의 재산으로나 역사상 한 번도 내세울 만한 것이 전혀 없었던 그런 곳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아담한 뜰이나 마굿간이나 구유 같은 것을 상상하셨다면 그런 기대는 그곳에 도착하는 즉시 완전히 무너질 것입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모두 천박하며 번지르한 것들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대하는 대로 보존되어 있기는커녕 오히려 말소시키려 했다는 느낌만 받게 될 뿐입니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면 바닥은 대리석으로 깔려 있고 벽은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또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들과 카톨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러한 물품들이 널려 있습니다. 아름답게 장식한 작은 동굴에 다다르면 우리 주님의 탄생은 완전히 미신으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은으로 만들어진 별과 보석들과 황금램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복음전도자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우화가 되고 맙니다. 진실로 베들레헴은 작으며, 유다의 수천 중에 가장 작지는 않을지라도 어쨌든 이제는 역사적인 이름으로만 유명할 뿐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당시의 베들레헴의 사건을 기억하길 원하며, 우리에게 주신 아들인 그리스도의 놀라운 탄생을 오늘 우리의 시점으로 가져와서 이야기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 사건이 지금 일어났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상상 속에 펼쳐지는 그림에 생생한 색채를 입혀드림으로 여러분이 이 위대한 진리를 보다 잘 이해하며,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된 사실들에 대해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감명을 받으시길 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베들레헴을 방문하는데 있어서 다섯 명의 동반자를 데려가기를 원합니다. 첫째는 나이든 유대인입니다. 다음은 늙은 이방인입니다. 다음은 죄의 찔림 가운데 있는 죄인입니다. 그리고는 초신자이며, 마지막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 이들을 모두 구유로 데려가 하나님이신 갓난아기를 보여주고는 각자 그분께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들어보려고 합니다. 1. 나이든 유대인 수염을 길게 기른 존경스러운 형제인 그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시므온 입니다. 그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그 아기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광경에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이를 팔에 꼭 껴안고 외칩니다.『주여, 주의 말씀대로 이제는 주의 종을 평안히 가게 하옵소서. 이는 내 눈으로 주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이니이다』(눅 2:29,30). 신실한 아브라함의 아들은 말합니다. “이제 수천 가지의 예언과 약속과 희망과 기대와 나의 가문의 기쁨이 성취되옵니다. 여기에 모세의 율법에서 요구되었던 모든 신비한 상징들과 모형적 제물들의 원형이 계시옵니다. 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인 당신은 아브라함의 약속의 씨입니다. 야곱이 예언했던 그 실로이며, 위대한 다윗왕의 위대한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의의 왕이니이다. 우리의 선지자들이 선지서의 매 페이지마다 예언했던 분이 이제 마침내 오셨나이다! 시인들은 앞다투어 아름다운 시로써 당신을 찬양했었나이다. 아, 행복의 순간이여, 이 천하고 침침한 두 눈으로 주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반기게 하시다니! 오 하나님, 이제는 족하옵니다. 저는 지금 죽어도 좋겠사옵니다.” 나이든 유대인이 이렇게 말할 때 저는 그의 얼굴을 환하게 밝히는 기쁨에 넘치는 미소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떨리는 깊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는 아기를 응시하면서 이사야의 말들을 인용합니다.『이는 그가 그 앞에서 연한 싹 같고...』(사 53:2). 그리고는 그는 옆에 있는 동정녀 마리아를 바라봅니다. 그녀 또한 다윗왕의 가문의 후손입니다. 그는 다시 죄 없는 아기를 쳐다보면서『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것이며...』라고 말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유대인 어르신, 당신의 말은 제 귀에 참으로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당신의 모든 형제들이 본향으로 돌아와 우리의 예수님을 자신들의 메시야와 왕으로 시인할 그 날이 빨리 밝아오길 바랍니다. 2. 늙은 이방인 그는 총명한 사람입니다. 그의 신앙심에 대해서는 제게 묻지 마십시오. 그는 애초부터 하나님의 일들에 정통한 사람입니다. 비록 복음의 진리들이 아직 그의 마음 속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처한 도덕적으로 캄캄한 상황을 간파하기에 충분한 빛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를 회의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그는 이방인의 관점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의적으로 마음을 왜곡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거짓 희망을 거부하였으나 진정한 희망을 가진 상태로 아직 옮겨가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 이방인은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는 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가는 동안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제게 유대인의 경전을 읽을 때 느끼는 즐거움에 대해서 털어놓으며, 선지자들이 예견했던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자신이 얼마나 고대해 왔는지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로 그 집 앞에 다다랐습니다. 한 별이 하늘에서 밝게 빛나며 마굿간 위에 멈추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기를 바라봅니다. 나의 동행자는 환희에 차서 외칩니다. “이방인들에게 비치는 빛이로다!”그는 말하기 시작합니다. “약속의 아들이여, 당신의 탄생은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화평의 통치자여, 당신은 화평의 통치를 펼치실 것입니다. 왕들이 당신께 예물을 가져올 것입니다. 모든 나라가 당신을 섬길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당신의 오심으로 즐거워할 것이며 당신은 그들에게 공의를 베푸실 것입니다. 억압하던 자들은 당신의 오심으로 떨 것이며 당신의 입술을 통해 그들을 향한 심판이 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는 부드럽게 마굿간을 가득 채운 빛나는 소망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익숙해 있는 기록된 많은 구약의 약속들이 바로 그 시간에 자신이 보고있는 그 놀라운 아이에게 적용되는 것을 보고 있는 듯했습니다. 이방인이 복음적인 예언들을 인용하는 것을 듣는 것은 참으로 신선했습니다.『또한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울 것이요,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하며 어린 아이가 그들을 이끌리라』(사 11:6). 그 이방인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만 여러분께 제가 느낀 소감을 한두 가지 더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노 가운데 그분의 얼굴을 야곱의 집으로부터 숨기셨을 때, 주님은 이방인들에게 호의의 빛을 들어 올리셨습니다. 그 비옥한 땅이 사막과 광야가 되었을 때, 동시에 주님의 정원으로서 꽃피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 두 가지 사건을 모두 고대했습니다. 영감받은 선지자들은 두 사건을 모두 다 보았습니다. 유대 민족의 마음은 살쪘습니다. 무거워 감겨진 그들의 눈과, 듣는 데 무뎌진 그들의 귀는 하나님의 심판의 성취를 알리는 시계가 되었던 반면, 이방인들의 마음은 주님께서 메시야라는 증거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복음을 기꺼이 수용하는 극도의 민감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1500년 전에 말씀하신 것입니다.『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게 질투를 일으켰으며 그들은 그들의 헛된 것들로 내게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들로 그들에게 질투를 일으키며 나도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에게 진노를 일으키리로다』(신 32:21).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에게『...이제부터는 내가 이방인들에게로 가리라.』고 말함으로써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게 된 사실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십시오(행 18:6). 저는 바울과 바나바가 일차 선교여행에서 택했던 여정을 주의깊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선교여행을 시작했던 도시인 안티옥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곳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지만 자기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자 그들은 놀랍게도 즉각적으로 그들을 고무시켰던 이방인들에게로 향했던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기쁨으로 복음을 받았으며, 주님의 말씀을 영화롭게 해드렸습니다. 여러분이 사도 바울의 다양한 여행을 관찰하신다면 여러분은 그의 여정이 항상 북쪽, 특히 서북쪽을 향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물결은 우리가 높이 칭송하는 그 섬(영국)의 중심에 이르기까지 서쪽으로 여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 듯합니다. “우리는 당신과 동행한 두 사람에게 찬사를 보낼 만큼 그렇게 시대에 뒤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음의 세 사람은 여러분과 그다지 동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이들의 표현 속에서 여러분 자신의 생각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3. 눈을 뜬 죄인 어서 오십시오. 자매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매님과 함께 베들레헴까지 오게 되어서 참으로 기쁩니다. 아니 왜 뒤로 물러서십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곳에 자매님을 놀래킬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어서요. 떨리는 모습으로 자매는 아기가 누워 있는 낡은 구유 앞으로 다가섭니다. 그녀는 마치 기뻐하기를 두려워하는 듯이 보이며, 겉잡을 수 없는 놀라움으로 거의 기절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녀는 제게 말합니다. “아니 선생님, 이것이 정말로 위대한 경건의 신비란 말이예요? 이런 구유에서 제가 지금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보고 있다는 말인가요? 저는 뭔가 아주 다른 것을 기대했었는데요” 그녀는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아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 그녀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탄생하신 이 비천한 곳에 이렇게 떨며 회개하는 한 죄인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기 모이신 회중 가운데도 그녀 같은 분이 많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신비가 어떻게 풀리는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입구에는 번쩍이는 칼을 치켜들고 여러분을 막는 사람도 없습니다. 문 앞에서 입장 허가증을 요구하는 하인도 없습니다. 직위나 귀족 칭호를 새긴 문장도 없습니다. 가장 허름한 곳에 누워있는 가장 고귀한 아기를 보려면 그저 자유롭게 다가가면 됩니다. 그의 머리에는 둥그런 후광이나 번쩍이는 삼증관도 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너무도 초라하여 어느 시인이나 미술가라도 가난한 집의 어린아이로 묘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초라한 외관으로부터 “우주의 통치자”를 발견해 내는 것은 오로지 믿음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4. 초신자와 함께 이제 저는 초신자인 형제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가고자 합니다.『우리가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보자』(눅 2:15). 저는 그가 성육신의 신비에 접근할 때 그의 얼굴에 나타난 경건하고도 상기된 표정을 주목합니다. 저는 종종 그가 교리적으로 민감한 부분들에 대해 관심있게 토론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요한 마음으로 그는 하나님인 이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합니다. “진리가 땅에서 솟아났습니다. 여자가 그녀의 아들을 낳았으니, 의가 하늘로부터 내려다봅니다. 진리이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는 이 어린 아기를 지극히 동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마치 봄이 태동할 때에 느끼는 거룩한 감사가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 같았습니다. “환상도 없고, 상상도 없고, 신화도 없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살과 피의 진정한 참여자이십니다. 그분은 천사의 본성을 입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씨로 오셨습니다. 하늘과 땅이 우리를 축복하려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능력과 연약함이 이곳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아기에게 경배를 드린 후에 계속했습니다. “이토록 조그맣고 힘없고 연약한 장막에 거하시나이까, 오 영광스러운 하나님! 참으로 자비와 진리가 이곳에서 함께 만났으며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습니다. 오 구주 예수여, 당신은 자비 그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의 부드러운 자비가 주님 안에 표현되셨습니다. 주님은 진리이십니다. 나의 혼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지만 찾지 못했던 그 진리를 이제 당신의 얼굴을 바라볼 때 발견하였습니다. 한때 저는 진리가 뭔가 심오한 논문이나 혹은 학식있는 책 속에나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주님 안에 진리가 계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 예수님, 당신은 또한 의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그 유일한 의가 되십니다. 주님의 겸손과 인내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요! 오 주님, 얼마나 고요히 누워 계시는지요. 주님께서 연약하고 미숙한 신생아의 그 수치를 견디신다는 것은 얼마나 낯선 일일까요, 얼마나 드문 일일까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신 주님 앞에 서서 주님을 내려다 보는 것이 참으로 제가 드릴 합당한 예배이겠습니까? 연약하고 무기력하게 지상의 어머니의 시중을 받으시는 것이 주님께는 과연 어떤 일이겠습니까? 놀라우시며 막강하신 하나님 께서 이렇게 웅크리시고 끝없는 비천함 속에 계시다니요!” 저는 그의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에게서 믿음과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경건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성령으로 의롭게 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로 들려올라 가셨음이라』(딤전 3:16). 5. 성숙한 그리스도인과 함께 이제 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가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나 요한 정도의 영적 나이라고 할까요? 그는 우리 교회의 회원들 가운데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분입니다. 차분하고, 조용하며 유순한 그는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훈련받았으며 성령의 거룩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과도 같아, 마치 그리스도 자체가 된 것 같습니다. 그의 인격은 성숙했고 그가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것은 점점 뚜렷해집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예언된 아기”를 보았을 때, 이 나이든 성도의 눈에서는 눈물이 반짝였습니다. 그는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한 말은 나의 다른 어떤 동행인이 했던 것과도 같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너무나 정확히 짧막한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그는 천천히 그리고 깊이 숙고하면서 그 말들을 했고, 그의 억양에는 영적인 감동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인용했던 몇 구절들만을 언급하려고 합니다. 먼저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하늘에 있는 인자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3). 그는 이 말씀으로부터 제가 전에는 한 번도 발견한 적이 없는 어떤 것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인자이신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도 하늘에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기를 보고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그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요 1:2). 그리고 그는 세 개의 짧은 구절을 연달아 말했습니다.『태초에 말씀이 계셨고...만물은 그에 의하여 지은 바 되었으며...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요 1:1,3,14). 그는 이 위대한 신비가 무엇인지 깨닫고 있는 듯했습니다. 만물을 처음 만드신 분도 우리 주 예수시며 그 후에는 그 자신이 육신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는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손을 마주하고는 외쳤습니다.『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 하셨는가』(요일 3:1). 우리가 구유와 마굿간으로부터 물러나왔을 때, 그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손을 내 어깨에 얹고는 말했습니다. “젊은이, 나는 종종 베들레헴에 왔다네. 이곳에서 내가 배운 한가지 교훈은 이렇다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이 되셨지. 전능하신 분께서 약하게 되시는 것을 수락하셨다네. 자신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는 그분께서 기꺼이 무력하게 되신거라네.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분께서 잠시 동안이지만 말도 못하는 상태가 되신 걸세. 이 모든 일들 가운데서 그분은 그분의 아버지의 뜻을 성취시키신 것이지. 그러니 자네 또한 그처럼 다루어진다고 해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게나 그분의 아버지는 또한 자네의 아버지이기도 하니 말일세. 고대에 맺어졌던 영원한 언약에 머무른다면 그 당시의 자비에 간신히 매달려 있어야 한다네. 자네는 그분의 식탁에서 주의 가슴에 기대었지만, 이제는 너무도 약해져서 여인의 돌봄에 의지해야 할지도 모른다네. 자네의 혀는 천사의 제단으로부터 취한 숯불로 정화되었지만 자네의 입술은 아직도 어린아이의 것처럼 봉해져 있을 수도 있다네. 자네가 더 깊은 겸손함으로 내려가야 한다 할지라도 자네는 결코 예수께서 겸손하시어 자신을 낮추셨던 그 깊이까지는 낮아질 수 없을 것이라네.” 사랑하는 여러분, 베들레헴으로 각각의 동행자를 데리고 갔던 제 목적을 달성하려고 저는 노력했습니다. 이들 모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아, 그런데 여러분 중에는 위에 말씀드린 어떤 사람들의 유형과도 맞지 않는 분도 계시는군요. 이 모든 것도 없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 신비에 대한 지식이 없이 죽는다면 여러분의 삶은 두려운 공백 일뿐이면, 여러분의 영원은 참으로 끔찍할 것입니다. 6. 온 가족과 함께 잠시만 더 제게 여러분의 관심을 집중해 주십시오. 저는 이제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려고 합니다. 저는 온 가족을 모두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가려고 하는데 아마 하나님께서도 이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바를 한 가족을 통해 표현하려고 합니다. 오늘이 그리스도께서 태어난 날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한 그리스도인 아버지가 화롯가에 모든 가족을 모았습니다. 유쾌하게 담소하던 중에 아버지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그들의 대화의 주제로 삼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아이들도 다 한 마디씩 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들 각각의 말에 대해서 짧은 논평을 할 것입니다. 그는 하녀인 마리아도 들어오라고 해서 모두들 편안한 자세로 둘러앉게 했습니다. 7. 나 같은 어린아이 예수님의 탄생 사건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아버지는 막내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윌리,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제 막 주일학교에 출석하게 된 작은 꼬마는 그곳에서 배운 노래를 두 소절 부릅니다.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어요 “잘했구나,” 아버지는 말합니다. “나 같은 어린아이셨지.”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아기들처럼 태어나셔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다른 아이들처럼 작고, 가냘프고, 약하셨으며, 진실로 돌보심이 필요하셨습니다. “아기 예수만 강조하면서 예수님이 아이들 같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란다. 사악한 우상 숭배자들이 그런 일을 하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형제들과 같은 모습이 되셨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란다. 그분이 우리 같지 않으셨던 부분은 하나도 없으셨지. 다만 죄가 없으셨던 것을 빼고는 말이다. 주님은 음식을 드셨고, 음료를 마셨으며, 주무시고, 깨시고, 웃으시고, 우시기도 하셨으며, 또 어머니를 껴안기도 하셨지. 다른 아이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말한 대로 예수님께서는 한때 나 같은 아이셨단다.” 8. 가난한 사람의 아이 “존” 아버지는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소년을 부르며 말하십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 아버지,” 존이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으셨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누리는 많은 편안함을 갖지 못하셨다고 생각해요. 훌륭한 유아실이나 따스한 침대 같은 것 말 이예요. 말이나 소, 낙타 같은 동물들이 주님을 괴롭히지는 않았을까요? 주님께서 그런 마굿간에서 지내셨다는 것은 제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일이예요” “매우 타당한 말이구나” 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복되신 주님께서 어떻게 가난한 자들의 자리에 처하셨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단다. 동방으로부터 현자들이 왔을 때 처음에는 그들도 무척 놀랐겠지. 예수께서 가난한 사람의 아이로 나셨다는 것이 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했고, 그들의 보물상자를 열어서 주님께 매우 값비싼 예물들을 드렸단다. 그것은 금과 유향과 몰약이었지. 아,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이 땅으로 그토록 엄청난 걸음을 하시다니! 주님은 번쩍이는 왕궁도 마다하시고, 부유하고 고귀한 사람들이 사는 대리석 집도 마다하시고, 가난한 집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셨다. 그분은 ‘태어날 때부터 유대인의 왕’이 셨는데도 말이다. 존, 너는 어떤 아이가 처음부터 왕으로 태어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 물론 없겠지. 아이들이 왕위의 상속자나 왕자로 태어날 수는 있겠지만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왕으로 태어난 사람을 없단다. 우리 구주의 가난한 환경은 그분의 인격의 영광스러운 위엄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과도 같단다. 너는 다윗, 히스키야, 요시야 같은 훌륭한 왕들에 관해서 읽어본 적이 있지. 그들이 왕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란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다르시단다. 그분께서는 왕궁에 있는 다른 어떤 왕들이 소유했던 것보다 더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위대함을 지니셨단다. 예수님은 단지 어린 시절에만 가난한 분은 아니셨지. 그분이 자라서 성인이 되셨을 때도『여우들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자기 머리 둘 곳조차 없노라.』라고 말씀하셨단다(눅 9:58). 내 아들아, 우리의 편안함은 주님의 고난의 대가란다.『너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거니와 부요하신 분이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것은 그 가난함으로 인하여 너희를 부요하게 되도록 하심이라』(고후 8:9). 그래서 우리는 복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보다 얼마나 좋지 않은 환경에서 지내셨는지 기억할 때마다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려야한단다.” 9. 죄없는 삶 “이제 네 차례구나,” 아버지는 어린 딸을 보시며 말씀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제 막 어머니의 가사 일을 돕기 시작한 매우 총명한 소녀입니다.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는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 모르겠어요! 그분은 잘못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거든요.” “정말 그렇단다.” 아버지가 대답하십니다. “네가 말한 그 부분을 생각해 보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란다. 그분의 본성은 죄가 없으셨으며, 그분의 생각은 순전하였지. 그분의 마음은 투명하셨고 그분의 행동은 전적으로 옳으셨단다. 너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인 어린양이 어떠해야 하는지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 읽어보았겠지. 그것들은 점도 없고 흠도 없어야 했단다. 만약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그 아기에게 하나라도 불결한 흠이 있었다면 그는 절대로 우리의 구주가 될 수가 없으셨단다. 가끔 우리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곤하지. 또한 하나님만 아시는 악한 일을 할 때도 있어. 하지만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구주께서는 그렇지 않으셨단다. 그분은 단 하나의 흠도 없으신 분이셨단다. 그분의 기쁨은 주의 법안에 있었기에 주님은 밤낮으로 그것을 묵상하셨지. 우리가 어떤 고의로 죄를 범하진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해야 할 의무들을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으셨단다. 그분은 강가에 심겨진 나무 같아서 때를 따라 열매를 맺으셨지, 주님은 자신에게 대한 기대에 어긋나신 적이 결코 없으시단다.” 10. 놀라운 마음 방안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려고 기숙사에서 이제 막 돌아온 덩지 큰 소년이 하나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 소년에게 말합니다. “프레드, 다음으로는 네 의견을 듣고 싶구나.” 프레드의 대답은 매우 짧고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그분은 매우 놀라운 마음을 지니셨어요.” “정말 그렇단다.” 아버지는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마음이 우리 안에도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다. 그분의 마음은 무한하셨지, 그분은 하나님의 영원한 상담자로 계셨단다. 하지만 나는 네게 좀 다른 방향의 생각을 제시하겠다. 예수님의 마음은 정결함과 순수함으로 인도하는 빛과도 같단다. 우리는 종종 잘못된 매개체를 통해 잘못 인도 받기도 하지. 우리는 그릇된 인상을 받고, 그것으로 인해 후에 고치기 힘든 어떤 문제에 봉착하기도 하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선과 악을 바르게 분별하실 수 있는 명철을 지니셨단다. 그분의 마음은 편견으로 가득 찬 적이 한 번도 없으셨지. 그 분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셨단다. 주님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무엇을 보거나 다른 사람의 머리에서 태동한 생각을 기준으로 판단하시거나 인도받지 않으셨단다. 그분은 자신 안에 빛을 지니셨고 그 빛은 사람들의 생명이셨기에 그분은 너무도 놀라운 능력으로 무지한 사람들을 깨우쳐 주시고 그들의 걸음을 화평으로 인도하셨지. 그분의 마음은 너무도 순수하여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쉬운 이해력과 사고의 발달이나 증대와는 차원이 달랐단다. 어떤 부패한 상상도 그분의 밝은 시야를 흐릴 수는 없었단다. 그분은 언제나 하나님과의 조화 속에 계셨고, 인간을 향한 호의를 지니고 계셨단다. 그래, 프레드. 네가 말한 대로 주님은 놀라운 마음을 지니셨단다.” 11. 고난받으실 운명 아버지는 이제는 자신의 아내에게 묻습니다. “여보 당신은 오늘밤 우리의 대화에 상당한 관심이 있는 듯이 보이는구려. 당신의 소감을 듣고 싶소.” 어머니는 자신의 머릿속에 펼쳐진 생생한 장면들로 인해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을 하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마치 구유에 누이신 아기를 직접 보고 계신 듯한 표정으로 가장 자연스럽고 어머니답게 말합니다. “지금껏 있었던 중에 얼마나 사랑스런 아기인가요!” 그리고는 깊은 한숨과 함께 덧붙이십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 걱정과 고난 그리고 고뇌가 귀하신 분을 엄습할텐데.... 그분의 용모는 그 누구보다도 상하셨고, 그분의 몸은 어떤 사람의 아들들보다 더 망가지시겠지요!” 아픔 섞인 슬픔이 이 경건한 어머니의 표정 구석구석에 흘러내립니다. 여성의 부드러움이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은혜로 인해 성화되어 보입니다. 아버지가 이윽고 침묵을 깨고 말합니다. “아 여보, 당신이 가장 훌륭한 것을 말했구려. 그 분의 마음은 비방으로 깨어지셨지. 주님의 비천한 탄생은 더욱 비천한 생애의 서곡이셨으며, 그분의 죽음은 더욱 굴욕적이셨지. 당신의 표현이야말로 당신이 주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가장 귀중한 증거 같소.” 12.. 영광받기로 예정되심 “이제 그만하기로 하자.” 아버지는 활기에 넘치는 표정으로 가족들을 둘러보며 말합니다. “너희들이 어머니의 말에 대한 논평을 듣기를 원하는 것 같구나. 물론 나는 너희 어머니의 견해가 가장 마음에 들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단다. 더구나 이 행복한 날을 우울하고 슬픈 이야기로 끝낸다는 것은 말이다. 나는 너희 사내 녀석들을 보면서 생각한단다.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그것에 대항해서 성공적으로 싸워 나갈 수 있는 한 겁내지 말아라.’ 이제 내가 직접 구유를 연상하며 그곳에 누으신 아기에 대해 말해 보겠다. 저 작은 손은 어느 날엔가 우주적인 제국의 통치의 홀을 잡게 되실 것이다. 저 작은 팔은 어느 날 원수인 ‘사망’을 붙들어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 작은 발로는 뱀의 목을 짓밟으시며 미혹하는 자의 머리를 부수실 것이다. 아직 발음조차 할 수 없는 그 작은 혀로는 모든 인류의 마음을 기름지게 하실 말씀들을 강물처럼 쏟으실 것이다. 또한 그분의 가르침을 세상의 문학에 부어 넣으실 것이며, 또 잠시 후에는 그 혀를 사용하셔서 하늘의 심판석에서 전 인류를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는 영광의 하나님께서 너무도 낮아지신 것에 대한 모든 놀라운 점들을 생각해 보았구나. 하지만 언젠가 고통의 사람이셨던 그분께서 그렇게 높임을 받으실 것을 생각하면 더욱 놀랍지 않느냐? 땅은 그분을 위한 더 이상의 밑바닥을 찾을 수 없었단다. 마찬가지로 하늘도 그분을 위한 충분한 높은 곳을 찾을 수가 없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사실은 단 하나밖에 없는 거란다. 그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이란다. 우리는 혹 환경으로 인해 변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절대 그렇지 않으시며 앞으로도 결코 그럴 수 없는 분이시지. 우리가 구유에 누인 모습을 보면서 ‘그의 이름은 경이로운 분이라. 상담자라, 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했던 바로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편에까지 높아지실 주님이시지.” 이제 난로 주위에 둘러앉은 한 그리스도인 가정의 여러 지체들의 생각들을 알아보는 것을 종결하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이제 자러 갈 시간이라고 말씀하시며, 모두에게 “잘 자거라”고 인사합니다. 저도 똑같이 말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