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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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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마지막 밤 - 드위트 탈마지
lhyunsik

어리석은 자의 마지막 밤 - 드위트 탈마지 ▲ 드위트 탈마지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혼을 네게서 앗아가리니 그러면 네가 장만한 그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시니라』(눅 12:20). 본문은 우리를 훌륭한 농가로 인도합니다. 그 집주인은 놀라운 성공을 거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럴듯한 속임수를 써서 돈을 번 것이 아닙니다. 그는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궁지로 몰아넣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결코 저당물을 담보로 돈을 빌려 준 적도 없었습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 그 저당물을 팔아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령회사를 차려서 주식을 판 다음, 배당금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곤경에 빠뜨린 채 자기에게 유리한 때에 자기만 살아남기 위해 뒤로 빠진 적도 없었습니다. 그는 정직하고, 부지런하며 기업가 정신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곡물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곡식 창고와 곡물 지대는 가득 찼고 사람들과 황소들은 다른 짐들을 나르느라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농사를 하면서 곡식을 저장할 창고의 부족으로 인해 난처한 상황을 겪어 본 사람은 곡식을 저장할 창고를 확장하기 원합니다. 그는 지금 곡식을 저장할 창고를 확장해야 할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횃불을 밝혀 들고 공간을 얼마나 넓혀야 하는지 측정합니다. 옥수수와 밀 수확이 너무 많았습니다. 틀림없이 창고의 면적을 크게 늘려야만 합니다. 새 건물이 완성되면 모든 것을 갖게 될 것이고 그러면 인생을 향유하는 일만이 남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곳간 확장을 기대하면서 그는 팔장을 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번영하고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내가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그때 그의 귀에 “너 어리석은 자야!”라는 말이 울리자 그는 어안이 벙벙하였습니다. 이 목소리가 어디서 나온 거지? 온 나라에서 첫째 가는 사람인 나에게 누가 감히 이런 말을 하는 거지? 그것은 하나님의 목소리였습니다! “너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혼을 네게서 앗아가리니!” 그 즉시 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질병이 어떤 것인지 - 심장마비인지 의사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신비스러운 질병인지 - 나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날 밤 그 사람은 죽었습니다. 그는 결코 확장 공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남아 있는 곡식단들을 거둬들이기 전에 그 자신이 먼저 인생의 추수꾼에게 거둬들여졌던 것입니다. 다음 날 사람들은 곡식 짐을 끄는 대신 긴 행렬을 이루고(성공한 사람들은 항상 성대한 장례식을 치릅니다) 죽은 부자를 따라서 묘지로 갔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묘지에 이런 묘비를 세울 것입니다. “여기에 성공적인 한 사람의 시신이 잠들다. 그는 진취적이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으며, 이웃들 모두 그의 죽음을 애도했노라. 그의 재에 화평이 있기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무덤과 곳간 문에 다섯 글자로 묘지명을 기록하셨습니다. 즉 “어리석은 자”라고 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신 묘비명이 올바르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즉 이 사람은 오랜 세월을 살면서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으며, 그 일을 더 큰 곳간을 갖게 되는 이후로 미루었습니다. 곳간을 더 크게 짓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행복해질 수는 없었습니다. 세상적인 부를 축적함으로써 행복하게 된 사람이 있으면 제시해 보십시오. 가장 근심이 많고 가장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백만장자들입니다. 전보다 오백 만 달러를 더 벌게 된 다음부터 사람들은 더 힘들게 일합니다. 백만 달러를 벌 때는 일을 더 적게 합니다. 5만 달러를 벌 때는 훨씬 더 적게 일합니다. 4만 달러를 벌 때는 일을 훨씬 더 적게 하며, 3만 달러를 벌 때는 더 적게 일하며, 오천 달러를 벌 때는 훨씬 더 적게 일합니다. 그리고 생계를 유지할 봉급만을 벌 때는 가장 적게 일합니다. 근심거리가 가장 적은 사람들은 일당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번영은 소금물과 같습니다. 즉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게 됩니다. “혼아, 편히 쉬거라!” 그런 식으로 혼에 쉼을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물질적인 것이 혼을 먹이리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까? 혼이 밀이나 옥수수를 먹을 수 있습니까?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어떤 사람이 자신이 편하기 위해서 여기서 호보켄까지만 가고 더 이상 가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 사람은 곧 영원한 여행을 떠나야 할 처지인데도 이 땅의 생을 위해서 준비한 것 말고는 전혀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인간 생애의 3, 4미터 정도밖에는 생각하지 않았으며, 무한히 뻗쳐 나가는 수백 만 킬로미터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사람의 죽음에 대해 두세 마디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1. 풍족한 삶이었으나 빈곤자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큰 대조를 보이는 삶이었습니다. 그의 환경은 더 이상 밝을 수 없을 만큼 밝았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집보다는 그 사람의 곳간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지만 그의 곳간을 근거로 그 집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을 돌보는 것보다 자신의 말이나 가축을 더 잘 돌보지는 않습니다. 그의 집은 편리한 물건들과 사치품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식탁이 펼쳐지면 거기에는 그의 식욕을 돋우는 온갖 것들이 그득 차려졌습니다. 포도주는 최고급이었습니다. 사냥꾼들은 최고의 사냥감을 그의 식탁에 보내 주었고, 어부들은 강에서 나는 최고의 생선을 그에게 가져왔습니다. 그 부자는 아무리 비싼 것일지라도 값을 지불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가족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옷 방마다 사치스런 의복들이 걸려있었을 것입니다. 그 집에 손님이 오면 주인은 틀림없이 그들을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말하곤 했을 것입니다. “20에이커의 곡물이 있고 수십 에이커의 옥수수가 있으며 15에이커의 과수원이 있습니다. 계곡 아래에 있는 저 양떼들을 보십시오. 저 언덕에 있는 가축들을 보십시오. 모두 내 것이지요! 와서 저 무화과나무들을 보세요. 무화과가 익었군요. 마음껏 드세요. 아주 많습니다. 저기 포도원은 얼마나 잘 됐는지 보세요. 그리고 이 석류들도요!”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먹을 것도 많고, 입을 것도 풍족하고 축하할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 가운데서 그 사람은 죽었습니다. 얼마나 무례한 죽음입니까! 죽음이 어부의 오두막으로 들어가서 한 생명을 앗아간다면 그렇게 뻔뻔스럽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죽음은 돌연히 옵니다. 가득 찬 곳간을 들여다보거나 올리브를 조사하거나 소떼를 세기 위해 멈추지도 않습니다. 죽음은 노크조차 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마치 그곳을 자신이 다 소유하기라도 한 듯 안으로 들어와서 “이봐, 나와 함께 가야겠어!”라고 말합니다. 죽음은 가장 거친 보안관처럼 아무런 설명도 해 주지 않고 그를 체포합니다. “새 곳간이 완성될 때까지만 기다려 주시오.”라고 그가 말합니다. “안돼!” “내 하인들과 일 처리가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 주시오.” “안돼!” “토지를 팔아서 더 좋은 구획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만 기다려 주시오.” “안돼!” “유언장을 작성할 때까지만 기다려 주시오.” “안돼!” “내가 준비될 때까지만 기다려 주시오.” “안돼!” 죽음은 “나는 아무것도 기다릴 수 없다. 내가 너를 두 번 만지면 너는 내 것이 될 것이다. 한번은 심장을, 다음은 폐를 만질 것이다. 심장을 만지면 맥박이 조용해지고, 폐를 만지면 호흡이 끊어진다.”하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웃들이 묻습니다. “너희가 그를 어떻게 다루든지 나는 관심 없어. 나는 내 일을 했고 이제 너희들은 너희들의 일을 하면 되지”라고 죽음이 말합니다. 친구의 넓은 정원을 돌아보던 존슨 박사가 그에게 말합니다. “아! 나의 친구여, 이것들이 죽는 것을 그토록 망설이게 했던 것들이구나.” 그 다음에 무엇입니까! 기품 있는 환경이 방어 막이 되어 주지 못합니까? 자신의 가득 찬 곳간이나 값비싼 옷 속에 숨을 수가 없습니까? 없습니다. 『자신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스스로 자랑하는 자들 중에 어떤 수단으로라도 자기 형제를 구속하거나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몸값을 바쳐... 그로 영원히 살고 썩어짐을 보지 않게 할 자는 아무도 없도다』(시 49:6,7,9). 알버트 왕자는 윈저 궁에서 마지막 숨을 내 쉽니다. 그리고 챨스 디킨스는 저녁 식탁에서 의식 없이 뒤로 쓰러집니다. 알버트 반즈는 필라델피아 담화실에서 숨을 거둡니다. 링컨은 백악관에서 잠듭니다. 그리고 본문의 부유한 사람은 꿈속에서 그이 혼을 빼앗깁니다. 2. 죽음은 예상치 못한 것이며 갑작스럽고 끔찍합니다. 본문의 사람은 갑작스럽게 퇴장합니다. 이 사건에 이르는 데는 긴 여정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마지막 밤에 한번의 경고를 받았을 뿐입니다. 그것은 점진적으로 차차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런 쇼크였습니다.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끝난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이웃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그 사람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사람이 죽음을 맞는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놀란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의지가 확고한 환자들은 병세가 호전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의사를 기대하거나 기후가 변하면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긴 날 동안 기대만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옵니다. 즉 사업 확장을 기대하거나 곡물을 수확하거나 새로운 곳간을 설계하려고 하는 동안 그 순간은 갑작스럽게 임합니다! 섬세한 유리 제품을 쥐고 있다가 차도에 떨어뜨려 보십시오. 산산조각이 나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립니까? 인생이라는 섬세한 그릇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참으로 정교한 기계이고 섬세한 상태에 있으며, 팽팽한 긴장 가운데 있기 때문에 사소한 충돌이라도 치명적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민감한 기계에서 선회축은 자주 미끄러지며, 용수철은 망가지고, 모든 일들이 한 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육체적인 고통을 겪지 않고 이 생을 떠납니다. 그들은 ‘휙’하고 사라져 버립니다. 화살이 활을 떠나는 순간과 목표물에 적중하는 순간 사이의 짧은 시간을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사역자가 아침 식사 중에 음식을 좀더 청하자 한 아이가 음식을 가져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리쳤습니다. “잠깐만! 잠깐만! 내 주인이 나를 부르셨다. 나는 너와 아침을 먹고 오늘밤에는 나의 주 예수님과 함께 저녁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즉시 죽었습니다. 기차가 다리를 향해 돌진합니다. 다리의 개폐부가 떨어져 있습니다. 기차는 아래로 곤두박질합니다. 웨일즈에서 한 광부가 갱도가 더러운 가스로 가득 찬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성냥을 그었습니다. 즉시 2백 명이 영원 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사람이 죽은 것은 밤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는 시간도 밤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밤 11시와 3시 사이에 죽습니다. 그 시간에는 대기 중에 몸과 혼의 밀착력을 느슨하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친구들도 거의 밤에 죽었습니다. 사고로 죽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밤에 죽습니다. 밤에는 길을 잘못들었다는 것을 눈으로 잘 식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밤에는 화염이 발견되기도 전에 번집니다. 밤에는 도둑과 암살자가 어둠을 틈타 범죄합니다. 이집트의 첫 태생도 밤에 죽었습니다. 본문의 사람처럼 대부분의 사람도 밤에 부름을 받고 사라집니다. 본문의 사람이 살았던 마지막 날의 특징이 어떠했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날씨가 화창한 날이었는지 비가 왔는지, 흥미진진했는지 지루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밤에 대해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밤은 대단한 밤이었습니다. 소름끼치는 밤이었습니다. 엄청난 밤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이 어둠을 관통해서 돌진해 오자 그는 펜을 떨어뜨립니다. 그는 자신의 큰 곳간도 잊어버리고 곳간에 들이지 않은 곡식도 잊어버립니다. 『오늘 밤 네 혼을 네게서 앗아가리니』 3. 죽음을 준비하지 않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그러나 이 죽음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 사람이 죽음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준비하지 않은 것은 머리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라면 빈틈없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무엇을 심어야하고 심은 것을 어떻게 경작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는 그럭저럭 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곳간은 전에는 충분히 컸지만 이제는 너무 작아졌습니다. 곡식이 계속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미국 사람들이 흔히 “영리하다”고 부르고 영국인들이 “똑똑하다”고 부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업을 할 정도의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혼을 구하는 법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시적인 것에는 현명하면서도 영원에 대해서는 어리석습니까! 뭔가를 팔 때는 그 가치를 잘 알면서도, 불명의 혼에 대해서는 아무런 값도 받지 않은 채 물물교환해 버립니다. 이들은 자신의 혼을 제외한 모든 것을 안전하게 간수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멋있는 호칭을 붙이는 데는 관심을 보이면서도 하늘나라 가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은행과 중개인에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데는 신속함을 보이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무감각합니다. 더 많아진 곡물을 저장하기 위해 곳간을 헐고 증축하지만 자신들의 혼의 은신처는 곳간정도도 짓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교한 계략으로 이들을 속여서 백 달러를 빼앗아 가려고 하면 이들은 “안돼, 네가 뭘 하는지 나는 다 알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탄이 이들을 속여서 하늘의 모든 보화를 빼앗는 것은 허락합니다. 본문의 사람이 준비없이 마지막 시간을 맞은 것은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내 생각에 그는 아주 분주한 사람이었습니다.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 잠자리에 들면서 노동자들을 감독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업을 돌보기 위해 할 일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50부대의 밀을 덜 가질 수 있었다면 마지막 순간에 그토록 곤궁에 처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에게도 미래를 위해 준비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영원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한 달이나 일 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앉아서 성경을 읽고 기도라도 해야 하는 듯 말합니다. 청중 여러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장소와 상관이 없습니다. 내일 아침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하는 기도도 주님께는 집에서 무릎을 꿇고 하는 기도만큼이나 잘 받아들여집니다. 월 스트릿에서 한 하나님에 관한 생각은 주일 날 교회에서 하는 생각만큼 고상한 것입니다. 먹고 자고 생각할 시간이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라도 구원받을 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삶은 준비되지 않은 채 죽었습니다. 그는 떨어졌습니다. 여행을 하다가 길에서 쓰러지는 사람처럼 넘어진 것이 아니라, 높은 산 벼랑에서 떨어진 사람을 길가는 농부들이 볼 수 있는 것처럼, 수천 피트 상공에서 내던져진 것처럼 바위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세상적인 번영의 최고 절정에서 그렇게 이 사람은 미끄러져서 떨어졌습니다. 그 부유한 농부의 몸은 너무나 완벽하게 흙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 몸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혼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여러분의 혼이나 나의 혼보다 더 활동적으로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마치 한 시간 전의 일이기라도 한 듯, 그 순간에 받았던 엄청난 충격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늘 밤 네게서 네 혼을 앗아가리니.』라는 준엄한 말씀이 그의 귓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지금 이 시간과 내일 아침 다섯 시나 여섯 시 사이에 이와 동일한 음성이 우리의 귀에 들려온다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당황해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은 다 옷을 입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옷은 헤어질 수도 있고 혹 유행에 뒤진 옷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은 결코 낡아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는 처음에 입었던 그 옷을 가장 나중에도 여전히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이 죄없이 되는 길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죄들과 오염된 것들이 전가될 수 있게 해주셔서 그 결과 여러분들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결혼식에 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결혼식입니다. 왕의 아들의 결혼식입니다. 죽음이 구원받은 사람을 얼마나 상처입힐 것 같습니까? 그 사람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상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에게 의심을 주고 낙담시켜서 마지막 휴식처로 들어가게 하는 사람들은 손에 가시를 든 채 자신들이 그 가시에 긁히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이 여러분을 상처입히는 것보다 더 많은 상처를 입게 될 것입니다. 가장 부드러운 베개이자 포근한 이불이 되어 지상에서 잠자기에 가장 안락한 장소는 그리스도인의 무덤 속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의 옷을 취하셔서 포개셨습니다. 예수께서 무덤에서 나오실 때 수의를 벗어서 무덤 한쪽에 던지셨습니다. 결코 다시는 사용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여러분과 내가 잠시 후에 거기서 잠자고 싶어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의 옷을 취하셔서 그것들을 개어 놓으시어 여러분을 위해서 이불이 준비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쉬는 곳은 독수리 털 위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부드럽고 더 따뜻한 곳입니다. 그것은 다윗이 “전능하신 분의 깃털”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지상에서 부러움을 받아야할 사람이 있다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자신의 죽음 후의 미래를 잘 준비하고 죽은 사람일 것입니다. 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며 주위에 서 있었던 여덟 사람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나의 아버지처럼 순조롭게 죽음을 맞이하지는 못했습니다. 84년 동안 제 아버지는 하나님을 섬기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섬긴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아버지께서 두려워하실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62년 전 아버지의 결혼식 때도 돌아가시던 그날 밤처럼 그렇게 기뻐 하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혼식 때 아버지께서는 55년 간 같이 살아갈 여자와 함께 하기 위해 가고자 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께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 네 혼을 네게서 앗아가리니.』 아버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좋습니다. 기분이 아주 좋아요. 모든 것이 좋습니다. 평화로다! 평화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세상 일들을 정리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행정관들과 집행자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것이고, 이들이 정직하게 벌어들인 것을 그럴 권리도 없는 사람들이 갖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늘밤 여러분에게 갑작스러운 선언이 내려진다면 여러분 가족의 상태는 어떻겠습니까? 가족들이 모두 하늘 나라에 가기에 합당하도록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습니까? “아버지나 어머니로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했는지를 기억할 것이고 그들과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기억할 것입니다. 그들이 나의 사진을 보게 되면 이들은 ‘이분은 그리스도인 부모셨지 나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죽고 싶고 부모님께서 가신 하늘 나라로 가고 싶어.’라고 말할 것입니다.”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이 오르간의 건반은 오르간의 파이프에서부터 12피트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건반들을 만지면 언제나 파이프들이 울립니다. 마찬가지로 여기 계신 부모님들이 현재 끼치고 있는 영향력은 자녀들의 영원 속 멀리까지 울려 퍼지게 될 것입니다. 이들이 지금 찬양을 연주하면 그때도 찬양이 될 것입니다. 이들이 지금 장송곡을 연주하면 영원히 장송곡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나는 여러분이 개별적으로 어떻게 될지 알고 싶습니다. 이 설교가 여러분이 듣는 마지막 설교가 될지도 모릅니다. 오늘밤 부르는 노래가 여러분이 부르는 마지막 노래가 될지도 모릅니다. 오늘밤이 여러분의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릅니다. 『오늘 밤 혼을 네게서 앗아가리니.』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 다음에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습까? 여러분의 자녀들과 친족들과 친구들이 간 곳으로 가고 싶습니까? 아니면 본문의 이 사람이 간 곳으로 가고 싶습니까? 그리스도 없이 죽는 사람은 완전히 망가진 것이며 그렇게 망가진 것은 결코 고치지 못합니다. 본문의 이 사람은 1800년 전에 그가 있었던 바로 그곳에서 오늘밤에도 여전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수천 번의 복음 초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복음 초청을 단 한번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곡물을 모아들이고 있었지만 그것은 영원한 비참함의 수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에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어리석은 자로 죽은 사람은 영원히 어리석은 자입니다. 본문의 남자처럼 여러분도 큰 곳간을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적인 부를 축적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원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이 불멸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백 년 후에 여러분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혹자는 아주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백 년 후에도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천 년 뒤에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백만 년 후에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10억 년 뒤에는 어떻습니까? 1조 년 뒤에는 어떻습니까? 1000조 년 뒤에는 어떻습니까? 영원과 비교하면 백 년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백만 년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10억 년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1조 년도 영원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원을 어디서 보낼지 묻고 싶습니다. 영원을 준비하십시오. 그 준비를 마지막 시간으로 미루지 마십시오. 준비하는 것을 병이 들 때까지 미루지 마십시오. 결코 병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할 때까지 미루지 마십시오.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들 때까지 미루지 마십시오. 이른 나이에 죽을지도 모릅니다. 성령께서 더 강력하게 역사하실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성령께서는 다시는 역사하지 않으실지도 모릅니다.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오늘밤, 바로 오늘밤, 여러분에게서 여러분의 혼을 빼앗아 가실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 여러분이 이렇게 말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무릎 꿇고 기도할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죽음은 이렇게 응답할 것입니다. “지금은 네가 기도할 시간이 없다.” “친구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죽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멈출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나의 이런 모든 죄들을 가지고 영원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회개할 시간을 제게 주십시오.” 죽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회개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오늘밤 네게서 네 혼을 빼앗아 갈 것이다. 그렇다. 바로 지금 그렇게 할 것이다. 바로 지금! 바로 이 순간에 그렇게 할 것이다!” 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지해서 준비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 여러분 앞에 앉아 있는 회중의 등 뒤에서 머리를 숙이거나, 복도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다윗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여,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그분 밖에서는 멸망합니다. 『오 에프라임이여 내가 어떻게 너를 포기하겠느냐?』 어떤 말로 여러분을 설득하겠습니까? 어떤 열정적인 호소력을 가져야 여러분을 감동시키겠습니까? 이 이상은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제 여러분을 구속하시기 위해 죽으신 구세주의 손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나는 하나님께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분 앞에서 여러분은 마지막으로 오늘밤에 주님의 자비를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거절할 것이지 답변해야 할 것입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여! 저는 이들을 초청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님의 손안에 이 불멸의 혼들을 맡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