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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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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말 - 올리버 B. 그린
lhyunsik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말 - 올리버 B. 그린 ▲ 올리버 B. 그린 『다 이루었다』(요 19:30). 우리 주님의 십자가형 처형에 대해 요한이 설명한 내용이 요한복음 19:16-30에 나오는 한 문단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오늘 설교를 위한 본문은 그 문단의 마지막 절에 나오는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입니다. 영어로는 세 단어로 이루어진 이 말은 한 개의 헬라어 단어인 테테레스테에서 번역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지막 순간에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을 때, 글자 그대로 자신의 생명을 하늘의 아버지께로 되돌리기 바로 전에 죄의 빚을 지불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테테레스테라고 울부짖으셨습니다. 즉 “다 이루었다! 다 성취되었다! 완성되었다! 구속의 모든 사항이 충족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고개를 떨구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최소한 네 가지 이유에서 이 말씀은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 한 말을 능가하는 가장 위대한 말입니다. 1. 그것은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하신 분이 하신 말씀입니다. 먼저 그 말씀은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분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 중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자격이 있는 유일하신 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하게 하신 일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예수님 외에는 없습니다. 그분의 임무는 하나님의 임무였습니다. 주님은 모범을 세우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종교를 창시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지상의 교회나 어떤 다른 조직체를 세우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그분 자신과 화해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저하지 않으시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선포하셨습니다.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니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도다.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명령으로 받은 것이니라.”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지상 사역을 하시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세 번에 걸쳐서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으로 자신의 아들을 증거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 안에서 내가 기뻐하노라.』(마 3: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 변형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 안에서 내가 기뻐하노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이 말씀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진리임을 나타내 줍니다. 요한은 세 번째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 혼이 괴로우니 내가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시여, 이 시간으로부터 나를 구해 주소서. 그러나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이 시간까지 왔사옵니다. 아버지시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하니,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나기를 “내가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였고 또다시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시더라』(요 12:27,28). 하나님께서는 세 번 반복해서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이 증거하셨습니다.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어떤 인간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 안에서 내가 기뻐하노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크신 마음을 온전하게 만족시키신 유일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모든 요구 조건, 모든 바람을 이루셨습니다. 아담은 이 일을 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노아도 이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방주에 탄 생명체를 제외한 모든 생명체를 멸망시킨 대홍수에서 구해냄을 받은 영광스러운 경험을 하고 난 이후에 노아는 육신을 따라 행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에 대해 거짓말을 했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약속하신 땅에 발생한 기근을 피하기 위해 이집트로 갔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실패했습니다. 모세도 실패했습니다. 엘리야도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던 다윗도 실패하고 끔찍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철저하게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고, 잃어 버린 바 되었으며, 소망이 없으며 지옥을 향해 갈 뿐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육신을 통하여서는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 그 육신에 죄를 선고하셨습니다”(롬 8:3).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없었던 것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결코 한 적이 없으며, 자연인으로서는 할 수 있다 할지라도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자신의 모든 존재를 하나님께 굴복시키고, 자신의 모든 의지를 하늘의 아버지의 손에 내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한 마디의 말, 한 번의 행동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이기적인 이유에서 기적을 행하신 적도 없으셨습니다. 언제나 “나를 보내신 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행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육신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결코 한 적이 없는 일을 하셨으며, 인간이 결코 할 수도 없는 일을 하셨으며, 인간이 할 수 있다 해도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을 하신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끝마치시기 직전에, 십자가로 가는 마지막 걸음을 걷기 직전에 『내가 땅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그 일을 완성하였나이다.』(요 17: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아버지께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실제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모든 것을 다 행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삶의 모든 부면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완벽하게 만족시킨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말씀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드리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자신의 편의를 위해 기적을 행하신 적이 없으시며,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해 기적을 행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예수께서 배가 고프셨을 때 돌을 빵으로 만드실 수도 있으셨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버지께 수치를 끼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천 명의 남자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셨을 때 그들이 배고픈 것을 아시고 빵 다섯 덩어리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취하셔서 그것을 축복하시고 떼어서 제자들로 하여금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습니다. 다른 모든 기적들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드리기 위해 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시고, 걸으시고, 가르치시고, 일하셨습니다. 그분께는 집도 없었고 아버지께 존귀를 드리는 일로 지치셨지만, 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리고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행하신 예수님께서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에서 테테레스테, 즉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고 진실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처럼 산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섬기신 것처럼 섬긴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것처럼 사역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께서 고난당하신 것처럼 고난당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처럼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그러신 것처럼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사람은 없습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말씀을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께서 의도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다 이루어졌습니까? 자신의 삶이 끝나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습니까? 십자가가 예수님의 끝이었습니까?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삶을 언급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텅 빈 무덤은 예수께서 오늘 날에도 살아 계심을 증거해 줍니다. 그분은 고난을 당하셨고, 피 흘리셨으며, 죽으셨고 또한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고전 15:1-4). 텅 빈 무덤은 예수께서 오늘 날에도 살아 계심을 증거해 줍니다. 저도 그분이 살아 계심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내 마음속에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분이 살아 계심을 압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거듭난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을 때 자신의 삶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셨다는 것을, 그 임무를 완성하셨다는 것을 세상을 향해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 임무와 그 일에 관한 것이었지, 그분의 생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임무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해 자신을 몸값으로 주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잃어 버린 자를 찾아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들을 지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이 백성의 죄들을 위해 피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그 피의 희생제 때문에 죄들을 지나치셨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은 계속해서 제사를 드려야했습니다. 먼저는 자신의 죄들을 위해서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의 죄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거룩하지 못한 사람은 죄인을 위해 제사를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위한 제사는 점 없고 흠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흠 없이 하나님께 드렸고,” “새 언약의 중보자”(히 9:14,15)가 되셨습니다. 33년 동안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사셨으며, 우리들처럼 모든 면에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주님은 생각으로나 말로나 행위로나 결코 죄를 짓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모든 형태의 죄와 유혹에 노출되셨지만 완벽하게 세상과 육신과 마귀를 이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로므로 예수님, 오직 예수님만이 죄인을 대신해서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아버지께서 내게 이루도록 보내신 일을 내가 완수하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 말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지상에서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하신 분이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2.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언입니다. 두 번째로 그 말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말인 이유는 그 어떤 선언보다도 위대한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탄생이 가장 위대한 선언이 아닙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땅에서 들리우지”(요 12:32) 않으셨다면,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그분이 보여주신 모범과 기적들만으로는 결코 우리를 구원할 수도 없으며 우리의 구속에 연관해서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필연적이었으며, 십자가가 없었다면 예수님께서는 결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죄들로 인해 한 사람이 죽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들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죄 없는 대리인이 필요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의 빚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올린 것같이 인자도 그렇게 들려올려져야만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3:14,15). “들어올리는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예수께서도 직접 말씀하시기를 “내가 땅에서 들리우면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어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떠한 죽음으로 죽으실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가 거하는 아담과 이브의 몸에 가릴 것을 제공해 주시기 위해 에덴의 동산에서 동물들을 죽이신 날부터 죄에 대한 제물로서 피가 요구되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다른 제물은 받지 않으시며, 다른 제물은 받으시려고도 하지 않으십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에덴의 동산에서 시작된 피묻은 발자취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집니다. 피가 없으면 깨끗해짐도 없으며, 죄의 용서도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 드려진 수백만 번의 제사 때 흘려진 모든 핏방울은 모형으로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흘려진 하나님의 어린 양의 피를 가리킵니다. 주 예수께서 십자가로 가지 않으셨다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다면,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은 성취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대제사장은 매년 지성소로 가서 백성의 죄들을 위해 피를 드리되 먼저 자기 자신의 죄들로 인한 피를 드렸으며, 이 두 가지 제사를 매년 되풀이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예수께서 “단번에” 자신의 피를 드렸기 때문에 결코 반복해서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우리 가운데 가장 약한 성도들일지라도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담대하게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히 10:19-21). 죄들을 결코 제거할 수 없는 동물들의 피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구약의 의식들을 행할 필요가 없다니 얼마나 감사합니가! 이제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자신이 현재 있는 곳에서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께 죄들을 자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요일 1:9). 예수님은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흠없는 희생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심으로써 우리 죄들과 전세계 인류의 모든 죄들을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딤전 2:5). 죄로 지친 사람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고 하시는 주님의 초청에 모든 죄인은 응해야 합니다. “오라.”는 말씀은 너무나도 단순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일지라도 이 말의 뜻을 압니다. 어머니가 팔을 내밀고 “이리 와.”라고 말할 때 아이는 반응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선언도 그렇습니다. “오라, 나에게로 오라,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들아, 다 오라.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 얼마나 우리를 위로하는 말씀입니까! 수 십 년 동안 예식과 의식을 행해도 양심에 위안을 주는 데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는데, 이제 이 초청은 너무도 단순합니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네게 쉼을 주리라. 죽은 일들로부터의 휴식, 양심의 찔림으로부터의 휴식, 죄로부터의 휴식을 주리라.” 자유주의와 현대주의 등이 만연하는 이 시대에도 “모두 내게로 오라.”는 이 말씀을 들으면 마음의 위안을 얻습니다. 거기에는 저도 포함이 되고 여러분도 포함이 됩니다. 오십시오 모두를 오십시오 비참하고 지친 죄인들은 오십시오 “다 이루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 놀라운 은혜의 시대에는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나 고백을 해 달라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의 소원을 말하기 위해 어떤 인간에게 머리를 조아릴 필요도 없으며 사람에게 우리의 죄들을 고백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께 죄들을 고백하면 그분이 우리를 구속해 주십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성전과 같은 지정된 장소로 갈 필요도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정해진 시간을 준수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우리가 원할 때는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그리스도께 고백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필요를 채워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으로 그분을 인정한 다음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믿는 마음으로 담대하게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 어떤 필요든지 간에 주님께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걸레와 같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사 64:6).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이 되심”(고전 1:30)을 인정해야 합니다. 바울과 더불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갈 2:20). 우리에게는 보배로운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소망이신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골 1:27).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충만함이 거하게 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 그 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몸의 형태로 거하시나니 너희도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이신 그의 안에서 온전하게 되느니라』(골 2:8-10). 여기에 영광스러운 진리가 있습니다.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우리도 그분 안에서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것에 무엇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다 이루어진 일에 무엇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모든 것을 지불하셨습니다. 내가 빚진 모든 것을 지불하셨습니다. 죄는 피로 물든 자국을 남겼지만 예수님께서 모두 눈처럼 하얗게 씻어 주셨습니다. 에덴에서 갈보리까지 4천 년의 시간 동안 무죄한 동물들의 목에서 흘러나온 피의 강을 보십시오. 제물을 가지고 희생제를 드리기 위해 제단으로 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죄에 찌든 지친 혼들을 보십시오. 해마다 계속해서 가련한 죄인은 자기가 저지른 죄들로 인해 피의 제물을 가지고 똑같은 곳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보십시오. 점도 없고 흠도 없으며, 자신의 피로 단번에 제물을 드려서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신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만이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다른 모든 진리가 이 진리 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다 이루신 일이 없다면 진리는 존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리요”(요 14:6)라고 말씀하셨으며, “진리를 알게 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의 제단에서 살해된 모든 동물들의 피는 “다 이루었다”는 이 선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갈보리 이후의 모든 죄 용서는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구원의 핵심이요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일을 완성하지 않으셨다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임무를 모든 면에서 이루지 못하셨다면, 즉 단 한 가지에서라도 실패하셨다면 구원은 실현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일을 다 이루지 못하셨다면 십자가에서의 그분의 죽음은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종교를 위해 순교한 다른 사람들의 죽음과 다를 것이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순교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죽으셨습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에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죄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리라는 것이 미리 정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지 않으시고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부활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않으셨다면 믿음 안에서 죽은 사람들도 영원히 흙 속에서 소망도 없이 잠자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에 그분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들이” 되셨으며, 그분께 속한 자들도 그분이 오실 때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3.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다른 어떤 말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과 연관됩니다. 테테레스테 즉 “다 이루었다”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말인 이유는 그 어떤 선언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과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이 선언은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시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이땅에 태어날 모든 사람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위대한 선언들이 선포되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선언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에덴에서부터 시대들이 끝나는 순간까지 모든 사람에게 영향를 미치는 선언은 예수님께서 하신 “다 이루었다”는 선언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이 아니라면 화평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담 이후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 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일을 통해서, 죄 많은 인간들은 모든 죄로부터 값없이 의롭게 되어 정죄받지 않고서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롬 8:1). 아담 이후로 수많은 종교들이 있어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백 개의 종교와 종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 분 주와 한 믿음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유일하신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문”이십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생수”이십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생명의 빵”이십니다. 예수님은 “한 분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한 분 중보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진리”이십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생명”이십니다. 예수님,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믿음의 창시자이자 완성자이십니다(히 12:2). 예수님은 우리 구원을 시작하신 분이시자 완성자이십니다. 그분은 처음과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입니다. 그분 안에 모든 충만함이 거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습니다. 하늘로 가는 옆문이나 뒷문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오직 한 개의 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는 그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우회하거나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를 우회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도둑이요 강도입니다(요 10:1-10).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높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일을 믿는 믿음을 행사함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를 높일 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우리에게 죄들의 용서를 허락하십니다(엡 4:32). 피부색, 국적, 재정 상태, 종교 신조와 상관없이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그러므로 그 어떤 사람이라도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모두가 회개에 이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성령과 신부가 말하기를 “오라.” 하더라. 듣는 자도 “오라.” 말하게 하고, 또 목마른 자도 오게 하며』(계 22:17). 이렇듯 놀라운 초청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 이루었다”는 선언은 지금까지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나는 중립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지도 않고 그분의 편을 들지도 않습니다. 나는 모든 종교에 대해 중립을 지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결코 중립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또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흩뜨리는 자니라』(마 12:30). 그러므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그분께 사람들을 모으든지 아니면 그분에게서 사람들을 흩어 버리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분 편에 서거나 아니면 그분을 대적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께 관한 한 중립은 없습니다. 현재 예수님 편에 서지 않은 사람은 지금 즉시 주의 군대에 합류하십시오. 우리만 옳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틀렸다고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종교만 옳고 다른 종교는 모두 틀렸으며, 우리 교회만 옳고 다른 교회들은 모두 틀렸다고 한다고 비난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한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행 4:12). 이 말씀은 이해하기 쉬운 말씀입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이름은 단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는 우리만 옳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틀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전혀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우리는 말했을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께서 테테레스테라고 하신 선언은 지금까지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시대들이 끝날 때까지 태어나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4.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지금까지 쟁취된 모든 승리 중 가장 위대한 승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테테레스테 즉 “다 이루었다”는 말이 가장 위대한 말인 이유는 그 말이 지금까지 쟁취된 가장 위대한 승리를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루시퍼를 하늘에서 내쫓으신 그 날 이후로(사 14:12-15, 겔 28:13-16) 마귀와 전능하신 하나님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은 쉼없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마귀로서 창조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는 “기름 부음 받은 덮는 그룹”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속이는 자나 살인자나 악의 창시자로서가 아니라 “빛을 발하는 자”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만으로 인해 타락하게 되었고(사 14장, 겔 28장) 결국 하늘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마귀는 질투심과 시기심에 불타고 있으며 하나님을 증오합니다. 하늘에서 자신의 거처를 잃은 이후로 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 왔습니다. 마귀는 이미 패배한 싸움을 계속해서 싸워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니께서 테테레스테라고 하신 말씀이 사탄의 왕국에는 혼란과 패배를 의미했습니다. 물론 마귀는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지금도 활동하고 있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께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때가 차면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으로 내던지실 것입니다(계 20:10).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이브를 에덴의 동산에 두신 이후로 사탄은 오랫동안 창조와 관련된 하나님의 계획을 파괴시키고자 했습니다. 이브에게 접근해서 유혹했으며, 거짓된 제안으로 이브를 유혹해서 아담과 이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단 하나의 금지사항을 이브가 범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담과 이브 중에서 이브가 더 연약했기 때문에 사탄은 이브를 공격했고,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이브는 금지된 열매를 아담에게도 주어 결국 아담이 범죄하게 되었다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의 수치스러움을 숨기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노력을 정죄하시고 동물의 가죽으로 몸을 가릴 옷을 만들어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거기에는 피흘림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창 3:15). 이 선언이 선포되었을 때 사탄은 여자의 씨에게 전쟁을 선포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자신의 머리를 상하게할 씨를 부패시키고 파괴시키기 위해 사악한 계략에 착수했습니다. 아담과 이브에게 카인과 아벨 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부모는 두 아들에게 주의 길로 행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시간이 흘러 장성한 아들들은 주께 제물을 가져왔습니다. 아벨은 부모의 권고에 따라서 피의 제물로 어린 양을 가져왔지만 카인은 그것을 무시하고 과일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카인의 제물을 거절하시자 카인은 분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바르게 행하면 내가 너를 받아들일 것이지만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 앞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창 4:7). 그러나 카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지 않았습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카인과 아벨이 들에 있게 되었을 때, 카인은 마귀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아벨을 살해했습니다. 전능하지도 전지하지도 않지만 마귀는 강력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아들이시고 카인의 제물은 거절하셨기 때문에 아벨이 그 씨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마귀는 그 씨를 멸망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씨인 셋을 일으키셨으며, 셋을 통해서 주를 부르기 시작하는 아들들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기 위해 마귀는 다음으로 여자를 부패시킴으로써 모든 씨를 부패시켜서 의로운 씨가 나올 수 없도록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 호의를 보이고 그들을 아내로 취하게 함으로써 악이 만연하게 만들었습니다. 마귀는 간음과 음행과 부도덕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모든 씨를 부패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마귀의 계략은 아주 성공적이어서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고 폭력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창 6:11). 사람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상상이 너무도 악하게 되어서 하나님께서는 지상에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고(창 6:5,6) 지상에서 사람과 짐승을 멸절시키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 은혜를 발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시로 방주를 지어서 그와 그의 가족은 홍수에서 구해냄을 받았습니다. 홍수가 오자 방주 안에 든 생명체를 제외한 다른 모든 생명체가 멸망했습니다. 홍수의 물이 마른 이후로 노아는 주께 한 제단을 지어서 주를 계속 섬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멸망으로부터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구출되는 영광스러운 경험을 하고 난 후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그후 곧바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에게서 약속된 씨가 나올 수 있는 한 계보를 세우실 계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것은 그가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본토를 떠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땅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인도하시는 동안에 마귀도 그에게 영향력을 미쳐서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는 끔찍스런 일을 저지르게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에 대해 두 번 거짓말을 했으며, 사라의 여종 하갈과 동침함으로써 그 결과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믿음의 사람인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지혜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런 모든 일들에서 마귀는 자신의 머리를 상하게할 약속된 씨가 오지 못하도록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실패와 불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세우신 계획을 진척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라를 보호하시고 사라가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이삭을 주셔서 약속된 씨의 선두주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요셉의 형제들을 통해서 요셉을 멸망시키고자 했으며 나중에는 이집트에서 요셉이 하나님께 밀착하지 못하도록 공작을 폈습니다. 또 선택된 민족에게 기근을 가져와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이집트로 가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막강한 파라오의 철장 밑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마귀는 이스라엘 민족을 짓밟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가 이스라엘 민족을 엄격하게 대하면 대할수록 그들은 더 창대하고 번성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크게 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민족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에 약속된 씨를 데려오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지속적으로 추진시키시며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그 백성을 이집트의 속박에서 구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그에게 임무를 부여하시고 그에게 능력을 주셔서 파라오에게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교제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도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켰습니다. 모세가 주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는 특권을 그에게 주지 않으셨습니다. 마귀는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심케 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만들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켜서 자신의 머리를 상하게할 여자의 씨가 오는 것을 막고자 했습니다. 마귀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선민은 끔찍한 과오들과 끔찍한 죄들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그들은 이상한 육체를 따라 갔고 원수의 영역으로 옮겨 갔으며 사악한 이방 족속의 딸들과 결혼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길고도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역사를 통해서 마귀는 그 씨가 오는 것을 저지시키고자 했습니다. 한 번은 약속된 씨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의 어린 소년밖에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랫 동안 숨겨지고 보호되다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던 왕이 죽자 마침내 보좌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대하 22:11,12; 23:11). 그를 통해서 그 계보가 지속되었고, 사탄이 온갖 노력을 다해서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약속된 씨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침내 세상에 오셨습니다. 천사들의 무리가 그분의 오심을 목동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동방에서 온 현자들이 그를 보기 위해 왔는데 그 아이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들은 헤롯에게 가서 그 아이가 있는 곳을 묻습니다. 헤롯은 알지 못했지만 현자들이 아이를 찾으면 자기도 가서 경배하기를 원하니 자기에게 돌아와서 그 위치를 말해달라고 지시했습니다. 경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죽이고자 한다는 헤롯의 의도를 아신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그 아이와 마리아를 이집트로 데려가게 하심으로써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보존하셨습니다. 현자들이 자기에게 알리지 않고 되돌아간 것을 안 헤롯은 격분해서 두 살 이하의 모든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아이를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수많은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한 이 끔찍한 범죄 행위는 마귀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마귀는 항상 여자의 씨인 한 아이를 죽이는 일에 괸심을 기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헤롯의 의도를 요셉에게 알려 주신 결과 아이는 이집트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었는데 반해, 베들레헴과 그 근방에서는 아이들이 도살당했습니다. 헤롯이 죽은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지시하셔서 마리아와 그 아이가 되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요단에서 침례를 받으심으로써 공생애를 시작하는 날까지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에서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침례인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이후에 성령의 인도함으로 광야로 가셔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거기서 마귀는 직접 예수님을 만나서 모든 면에서 “우리들처럼” 그분을 시험했습니다. 먼저 마귀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신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돌로 빵이 되게 만드는 기적을 행하도록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마 4:4)는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셨습니다. 계속해서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예수님께 지상의 모든 왕국을 보여 주며 말하기를 “네가 내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내가 네게 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한 말의 뜻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네가 십자가로 가야 할 이유는 없다. 네가 고난을 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네가 고뇌를 겪여야 할 이유는 없다. 내게 엎드려 경배하라. 그러면 네가 고난을 통해서 얻게 될 것을 고난을 겪지 않고서도 얻게 해 주리라.”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기라』(눅 4: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도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워두고 말했습니다. “아래로 뛰어내리라. 그래도 네가 다치지 않으리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천사들에게 명하셨으니 천사들이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되리라.”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의도를 아셨기 때문에 “너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에 대항하는 전투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처럼 시험을 받으셨고 결국 승리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분 안에서 구원의 상속자들이 된 우리들을 위로하실 수 있으십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기 위해 계속 노력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에 유대인들이 돌을 집어서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도성 밖으로 밀고 가서 벼랑에서 밀어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돌 하나도 예수님의 몸에 던져지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제방 너머로 밀어서 예수님의 생명을 빼앗고자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통과해서 안전하게 걸어나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손을 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분노한 종교주의자들 무리들에게 돌에 맞아 죽거나 벼랑에서 떠밀려서 목이 부러져 죽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올린 것같이 인자도 그렇게 들려올려져야만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3:14,15).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날 밤 예수님께서는 극심하게 슬퍼하셨습니다. 기도 중에 예수님께서는 너무도 괴로우셔서 그분의 인간적인 힘은 완전히 쇠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 하나를 보내셔서 예수님의 힘을 돋워주셨습니다. 마귀는 거기서 예수님의 생명을 앗아가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땅에서 들리우면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어 올”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올린 것같이 인자도 그렇게 들어올려져야만”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조금 후에 동산에서 병사들이 예수님을 체포해서 대제사장 카야파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산헤드린과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으시는 중에 예수님께서는 병사들에게 맞으셨고 “우리가 볼 때 그를 흠모할 아름다움도 없게”(사 53:2) 되었으며, 그분의 몸은 찢겨져서 피가 흐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채찍질당해서 죽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귀와 그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재판정에서 갈보리로 나아가셨습니다. 병사들이 예수님께 처참하게 매질을 가한 후에 이들은 예수님께 자신의 십자가를 지도록 했습니다. 나약하고 지치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무게로 쓰러지셨습니다. 마귀는 이제 예수님을 죽였다고 거의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십자가에 짓눌려 땅에서 죽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은 쿠레네인 시몬을 시켜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갈보리로 운반하게 했습니다. 잔인한 십자가 위에 매달린 채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에 미리 정하신 사람이신” 예수님께서는 “땅에서 들려올려졌습니다.” 사람의 죄들 때문에 최고의 형벌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올려지지 않으셨다면 여러분과 저는 영원을 지옥에서 보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없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6시간 동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신 후 예수님께서는 큰 목소리로 테테레스테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아버지, 아버지의 손에 내 영을 맡기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리 정해지신 대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세우신 계획에 따라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아버지께로 다시 돌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숨을 거두셨고 그분의 몸은 십자가에서 축 늘어졌습니다. 테테레스테 즉 “다 이루었다”는 말씀으로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큰 전투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물론 마귀는 아직도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이미 패배한 전투에서 싸우고 있는 패배한 적일 뿐입니다. 사탄도 이것을 알고 우리도 이것을 압니다. 우리는 누가 이기게 될까 의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께서 이미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조만간 마귀의 머리는 짓밟힐 것이고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에 던져져서 거기서 영원 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테테레스테는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인간이 한 말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말입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 선언 중 가장 위대한 선언이며 이 선언은 그 어떤 선언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 쟁취된 승리 중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 즉 유죄 선언과 죄의 권세와 임재로부터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반대하는 지옥의 권세에 대해 승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제 글을 마치면서 친애하는 독자들에게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신 적이 있는지 묻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면, 왜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을 믿는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했다면, 왜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으십니까? 속으로 ‘구원을 받으면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해야 되지 않나...구원을 받으면 술, 담배, 모든 방탕한 생활을 완전히 끊어야 되지 않나...구원을 받으려면 날마다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아무 일도 안하고 공짜로 구원을 받을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런 생각들이 여러분 마음에 계속 반복해서 생깁니까? 그렇다면 그 배후에는 마귀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미 이루어진 것에는 그 어떤 것도 더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완성된 제품에 뭔가를 첨가하는 것은 그 제품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망칠 뿐입니다. 능숙한 시계 제조공이 만든 시계 하나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시계의 기계 장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 시계가 시간도 잘 맞고 항상 잘 가는 시계인데도 덮개를 벗기도 여기저기 나사를 푼다면 곧 시계를 망치게 됩니다. 자신이 설교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완성하신 일을 설교해야지, 자신의 생각이나 전통이나 교단 교리들을 설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교단이나 프로그램에 맞춰서 왜곡시키고 고치는 사람에게도 자비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사람들을 도우셔서 강단에 서서 죄인들에게 “다 이루었다. 다 완성되었다. 빚이 갚아졌으며, 구속 사역이 이루어졌고 구원이 인간에게 미쳤다. 이 놀라운 은혜의 시대에 초청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라. 그분을 영접하라. 그분을 받아들이라. 그분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분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게 하십니다. 설교자 여러분들은 그 간단한 메시지를 설교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을 구원하거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도록 하기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단순히 어린 아이 같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분께 나아와서 “사랑하는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신 일을 근거로 저를 구속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받아들이시고, 깨끗게 하시고, 눈보다도 더 하얗게 여러분을 씻으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딛 3:5).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그들은 혈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또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요 1:12,13).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내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아들을 믿는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아니하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정죄를 받은 것이라. 이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요 3:18).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예수님께서 다 이루신 일을 믿고 예수님께서 다 이루신 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단 한 가지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예수께서 완성하신 일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머지 일을 처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고서야 어떻게 피할 수 있으리요?』(히 2:3).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평을 갖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은혜에 접근하며,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 가운데 기뻐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셔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 그의 아들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하게 된 우리는 그분의 생명으로 구원받게 되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로 속죄를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 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