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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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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너져도 옳은 일을 행하라 -로버트 레이놀드 존스
lhyunsik

하늘이 무너져도 옳은 일을 행하라 ▲ 설교자 :로버트 레이놀드 존스 그리스도인은 옳지 않은 것을 지지할 필요가 없으며, 교회 안에 머무르기 위해 자유주의와 타협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야고보서 4장을 주의 깊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구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치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죄가 되느니라.』 야고보서 4장에서는 스스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이 좌절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뭔가를 원했고, 그것을 얻기 위해 애썼지만 기도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욕에다 쓰려고 잘못 구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원수가 됨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대다수의 미국 교회 회원들이 성경이 아닌 이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행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서신서가 “널리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기록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들은 분명히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치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죄가 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미루어 볼 때 그들은 분명히 무엇이 옳은 일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몰랐다 해도 옳은 것을 행치 않는 것은 죄입니다. 밥 존스 대학에 다니는 학생 여러분은 무엇이 옳은 일인지 아십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영어에서 가장 위대한 두 단어는 바로 “옳게 행하라”(DO RIGHT)임을 계속 반복해서 말해 습니다. 저는 지금 “결과에 상관없이 옳게 행하라. 하늘이 무너져도 옳게 행하라”라고 계속 반복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1. 옳게 행하는 데는 희생이 따릅니다. 역사상 오늘날보다 더 원칙을 강조하는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이제 30년이 된 밥 존스 대학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설립되었고, 지난 30년 동안 그 시대의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훈련해 왔습니다. 이 대학은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진리를 고수할 것입니다. 이 학교가 설립된 이후로 어떤 문제를 처리해야 할 때 “어떤 것이 편리한가?”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떤 것이 올바른 일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올바른 원칙이 교단 신학교와 강단에서 편의주의에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종교 운동의 큰 무리를 이루면서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진리보다는 편의주의와 타협해 버리고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불순종으로 낙원이 사라지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모든 세대가 영적으로 죽은 이후로, 틀린 것을 행하기는 쉽고 옳은 것을 행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을 구원시킬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고통 속에 피를 흘리며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함으로써 타락한 인류의 죄들을 제거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라도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분명하게 가르치는 바는 경건하게 사는 사람은 박해를 받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매 시대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짐과 환난과 박해에서 벗어나고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올바르지 않은 것과 전혀 타협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하며, 진리만을 고수하면 할수록, 이 세상에서 당하는 박해와 환난과 반대는 더욱 극심해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날 미국 강단에서는 위대하고 뛰어난 설교자가 죄를 반대해서 설교하는 것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악을 비난하고 사람들에게 옳게 행할 것을 요구하는 강력한 진리의 목소리를 찾기가 힘듭니다. 50년 전 내가 젊은 설교자였을 때는 거의 매주 월요일 아침 대도시 조간 신문에 죄를 질책하는 설교자의 설교가 실렸습니다(때로는 한 개 이상의 설교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종류의 설교가 인쇄되어 나오는 것을 좀처럼 볼 수 없습니다. 2. 복음은 전파하지만, 악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심지어는 정통주의 중에도 “우리는 그냥 복음을 전할 뿐이고 복음 자체가 역사하리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복음은 성경 속에 있습니다. 복음은 “믿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복음을 알아야 하고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뭔가를 대표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든지 아니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는 적대 관계가 되는 것임을 성경은 분명히 밝힙니다. 오늘날 미국의 문제점은, 종교적인 사람들이 일시적인 편의주의라는 “제단”에서 옳은 것을 고수하는 원칙을 “희생”시킨다는 것입니다. 이제 젊은이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인생에서 어떠한 문제에 직면하든지 간에, 진심으로 옳은 것을 알기 원하고 결과에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옳은 것을 하고자 마음의 결단을 내린 사람은 그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을 알 수 있으며 또한 그 문제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옳게 행하라”는 이 짤막한 두 단어는 미국 내 모든 강단에서 울려 퍼져야 합니다. 이는 자유주의 설교자들이 올바르지 않게 행하는 데도, 정통주의로 생각되는 설교자들은 미국 내 종교적인 자유주의를 자신의 교단 내에서 비난할 만한 용기가 없어서인지 잘못된 것을 전혀 지적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들 모두는 잘못된 것을 행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들 모두가 잘못 행하고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인은 잘못을 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룹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듭난 자녀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잘못을 행하고 그 대가를 모면하도록 허락하지는 않으십니다. 성경을 믿으면서도 타협하는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행위의 대가를 치루지 않고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들은 타협의 제단에서 원칙을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한 성경의 모든 인물들은 그 대가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롯도 그랬고, 성경의 다른 인물들도 그와 동일한 일을 했으며, 그들은 모두 그 대가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간증에 흠집을 냈고, 자신들을 지지하던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으며, 때로는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해를 끼쳤습니다. 3. 그리스도인은 성경 교리와 일치하지 않는 교단 프로그램을 결코 지지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내가 가는 모든 곳에서 훌륭한 정통주의 그리스도인들이 내게 와서 말합니다. “우리 목사님은 성경을 믿고 복음을 설교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교회 프로그램을 지지하도록 촉구하는데 우리가 지지하는 몇몇 학교들은 성경 교리와 일치하지 않는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교단의 다른 명분들도 성경 교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것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 교회에서 빠져 나오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의 교리들을 믿고 있으며, 우리 목사님은 그 교리들을 설교하십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지요?”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합니다. “옳은 것을 행하십시오. 지금 바로 하십시오. 당신 목사에게 말을 하고, 필요하다면 교회 이사회에 말하십시오. 꼭 이렇게 해야 한다면 교회 전체 회중에게 말해서, 목사가 설교하는 복음과 당신 교회가 세워진 성격의 근본 교리들에 반대된다고 생각되는 것은 교단 내에서 어떤 것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십시오. 단순히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고,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그 입장을 고수하십시오. 교회 내에 머물기 위해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고수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음을 기억하십시오. 옳은 일을 하기 위한 기회를 얻기 위해 잘못된 일을 하는 것 역시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은혜의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기 위해 설교자가 성경적 교리와 일치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지만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의 성공을 빈다면 우리는 적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이며 적그리스도의 악한 행위들에 참예자가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아, 그래요. 우리는 정통주의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설교자들이 이 나라 전역에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이들은 매 주마다 프로그램 기금을 모금하고 자기 성도들에게 이 프로그램에 동참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들이 조금이라도 분별력이 있다면 그런 프로그램은 복음에 위배되는 프로그램임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프로그램을 지지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전파하는 복음을 믿고 사랑한다고 주장합니다. 4. 자유주의자는 협력하기 위해 타협할 필요가 없지만, 정통 그리스도인이 협력하려면 타협을 해야만 합니다. 얼마 전 한 자유주의 목사가 내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밥 존스 박사님, 우리 자유주의자들은 당신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당신과 당신의 아들 밥 존스 쥬니어 박사가 대단히 선한 일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또한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친구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나는 이렇게 답장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친절할 수 있고 우리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우리에게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당신과 함께 다니면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분명하게 가르치는 바를 어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 행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말한 바에 따르면 당신은 우리와 같이 하기 위해 타협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과 함께하는 대가가 올바른 원칙을 어기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옳게 행할 것입니다. 우리는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주의 캠페인에 들어가서 “종교적인 부흥”을 지지하기 위해 “정통주의 형제들”과 협력할 때 자유주의자들은 타협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이 무엇을 믿든지 그리 대단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타협하는 쪽은 정통주의 집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잘못을 하면서 그것을 변호하려 하지만 결코 변호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 단호합니다. 젊은이 여러분, 나는 오랫동안 설교를 해 왔습니다. 나는 많은 실수를 해 왔습니다. 나는 결코 나 자신을 “온전함의 극치”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인간일 뿐입니다. 내 안에는 아일랜드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나의 기질은 폭풍우처럼 격렬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심판 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나는 여러 해 동안 복음의 설교자로서 모든 문제를 단 한 가지 방법으로 대처하고자 하였습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성경은 그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나는 외모로 판단하려 하지 않습니다. 나쁜 것이 좋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이 옳은가?’이며, 바로 이것을 기반으로 내 삶의 모든 문제를 결정합니다. 어쩔 수 없이 적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는 올바른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내 앞에 남았을지도 모를 몇 해를 계산하기 시작할 때 내 마음은 평온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 나는 나의 모든 적들 또한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배반하거나 인간의 편의라는 제단 위에 복음의 원칙을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5. 감리교도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면 감리교회에 출석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나는 내가 경험하고 대처해야만 했던 시험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가져본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나는 11살 때 감리교회에서 회심했습니다. 그때는 많은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으며, 나는 나 자신을 구원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희생을 계산해 봐야 하고, 그래도 기꺼이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분과 함께 우리의 입장을 취하고 그분의 원수들을 상대하고자 하면,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극히 작은 근본적인 것들을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어머니는 침례교도였지만 집 주변에 침례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때 당시 감리교도에게 침례를 받았느냐고 물으면 “세례는 받았지만 침례는 받지 않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침례교도였기 때문에 어머니는 물 속에 잠기는 것이 침례라고 생각하셨습니다. 나는 감리교 목사에게 물에 잠기고 싶다고 말했더니 목사가 말했습니다. “좋아요. 나도 물에 잠겼었지요.” 그래서 나는 시골 개울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내가 감리교회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내가 믿는 바를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감리교회가 믿는 바를 내게 말했습니다. 감리교회는 성경을 믿었습니다. 동정녀 탄생, 성육신, 대속적인 피의 속죄, 육체의 부활, 그리고 정통주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모든 근본 사항들을 믿었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나는 확고하게 믿습니다.”라고 대답했고 그 대답은 기록되었습니다. 이런 질문을 한 다음에 교회의 규칙에 복종하고, 그 규례들을 준수하고 그 체제를 지원할 것인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가 믿는 특정한 것들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 교회에 합류했습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믿었고, 그 교회가 그런 것들을 믿었기 때문에 그 교회를 지지하기로 동의했습니다. 내가 감리교회에 합류했을 때 11살짜리 시골 소년이었음을 기억해 보십시오. 나는 13살 때 알라바나주 남동쪽에 위치한 어느 시골에서 복음주의 집회를 지휘하고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5살 때 설교할 수 있는 인증서를 받았고 나중에 목사로 임명되었습니다. 목사 임명식 때 결코 잊지 못하고 결코 부인하지 못할 서약을 했습니다. 나는 감리교회의 교리들에 반대되는 이상하고 잘못된 교리들을 배격할 것인지 질문을 받았고,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했습니다. 복음 집회들을 지휘하기 시작했을 때 모든 감리교도들, 장로교인들, 다른 교단들의 회원들이 우리 집회에 모여들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설교했습니다. 나는 모든 정통주의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이는 성경의 근본적인 교리들을 고수했습니다. 정통 침례교, 정통 감리교, 정통 장로교와 다른 교단들의 정통 회원들 사이에는 성경의 축자영감, 동정녀 탄생, 성육신, 대속적인 피의 속죄, 육체적 부활, 그리스도의 속죄하는 피를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는 것에 관한 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몇 년 간 복음주의 사역을 한 다음, 어떤 목사들의 정통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이단이 되는 죄는 끔찍한 죄였기 때문에 나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직 청년이었을 때 어떤 감리교 목사가 큰 도시 교회에서 집회를 열어주기를 원했습니다. 나는 많은 대도시 집회에는 경험이 없었지만 아주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그 목사가 감리교 목사로서 마땅히 믿어야 할, 구약이 영감받아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편지를 써서, 내가 들은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지지할 수 없는 사역을 하는 사람의 후원을 받아서 일할 수 없으며, 그 집회를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내가 취했던 그 입장은 옳았습니다. 그후 계속해서 나는 그런 입장을 취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정통 감리교도들이 세운 몇몇 학교들에서 가르치는 것에 대해 의심스러운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보고가 사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정녀 탄생, 성육신, 피의 대속, 그리고 내가 감리교회에 합류하기 위해 받아들여야만 했던 다른 근본적인 교리들을 믿는 것을 필수적으로 여기지 않는 감리교 목사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목사 서약 때와 그 교회에 합류할 때 나는 근본적인 교리들에 반대되는 교리들을 배격할 것을 서약했습니다. 하지만 감리교 목사들이 그런 서약을 어기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목사에게 우리 교회는 교회가 세워진 근본 사항들에 반대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지지하지 않겠다고 내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과 타협하는 형제들은 내게 문제를 야기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공개적으로 죄인들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6. 성경대로 실행하지 않기에 자유주의 감리교회를 떠났습니다. 나는 그런 대로 몇 년 동안은 잘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회원이었던 교회의 목사가 자유주의자를 강단에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 주일 나는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나의 아들이 예배를 마치고 집에 와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오늘 제 입장을 확실하게 취해야만 했어요. 오늘 목사가 강단에 어떤 박사를 세웠어요. 아버지도 알다시피 저는 대학에서 히브리 역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 역사와 연관된 구약을 아주 주의깊게 공부했기 때문에 구약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해요. 오늘 강단에 선 이 자유주의자는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던 구약의 역사적 사실과 영감설을 짓밟았어요. 예배가 끝나자 제가 목사에게 그 사람의 입장을 알면서도 그 사람을 교회 강단에 세웠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아들과 나는 그 교회의 회원임을 취소했습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서약을 한 지역 감리교 목사였습니다. 어느 날 그 교회의 목사가 내게 알려왔습니다. 교회법에 따라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 내에 있는 교회에서 교회 회원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목사 신임장을 잃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목사 서약을 지키지 못한다면 신임장을 잃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상하고 잘못된 교리들을 배격할 것이라고 목사 서약을 했고, 내게 그 서약을 지킬 것을 요구했던 교단이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 감리교회에 회원으로 있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그곳 목사도 내가 했던 것과 같은 서약을 했습니다.) 내가 그 교회 회원으로 남아서 그 목사와 강단에 내 영향력을 빌려주는 것은 감리교회 교리들과 반대되는 이상하고 잘못된 교리들을 배격하겠다고한 서약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일관성을 지켜야 합니다. 나는 옳은 것을 행해야 합니다. 감리교회에 합류했을 때 나는 근본적인 교리들을 믿는다고 선언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마땅히 목사 임명 때 했던 서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내 말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교하는 것과 지지하는 것을 다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특정한 교리들을 설교하면서 그 설교 내용에 반대되는 것들을 지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감리교 목사 임명장을 포기했습니다. 내 친구 중에는 감리교 목사들이 많으며 엄청나게 많은 친구들이 감리교인입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해야만 하는 일에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내게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나는 옳게 행해야 했습니다. 나는 목사 임명장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내가 믿는다고 말했고 내가 배격하겠다고 약속한 것에 반대되는 것을 지지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마땅히 해야만 하는 것을 하기란 때론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젊은이들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문제에 직면하면 옳은 것을 하겠다고 그냥 결심하십시오. 미치거나 이상하게 되거나 탈선하거나 바보짓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해야 할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안다면 누군가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것이 옳은지 알지 못한다면 성경에 주의를 하고 성경을 읽고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그런 다음 필요하다면 타협하는 사람이 아닌 옳은 것을 지지하고 옳은 것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서 충고를 얻으십시오. 옳은 것을 행하고 싶다면 그 길 항상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7. 침례교인, 장로교인, 그리고 다른 교회 사람들도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내가 단순히 감리교를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날 대부분의 큰 교단들은 교회적으로, 잘 배운 정통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옳지 않다고 판명된 것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편의라는 제단 위에서 옳은 것을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감리교회는 감리교 내의 연계 체제 때문에, 지역에서 자치적으로 운영되는 독립교회에서보다 영향력이 더 급속도로 파급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침례교인들과 장로교인들도 자신들의 교회 교리들과 반대되는 명분을 지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25년 전에 나는 남침례교단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날 남침례교단도 다를 바 없이 잘못된 교리를 수용하고 있습니다. 북부에 있는 내 친구들은 내게 이렇게 말합니다. “남침례교도들이 들어오고자 한다. 그들은 어떤가? 그들은 자신들이 정통주의라고 하던데.” 이 나라에 정통 침례교 목사들은 자신의 성도들에게 자기들이 믿는 것과 반대되는 것들을 지지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감리교도 여러분, 내가 지금 여러분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배반을 당하셨으며, 모든 정통 그리스도인들이 수년 동안 믿었던 근본적인 교리들이 어떻게 짓밟혔는지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학생들, 특히 젊은 설교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교단의 교리를 믿고 있다면, 그리고 그 교리들이 믿음의 근본 사항들이라면 그 교단에서 나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이 여러분을 교회에서 내쫓더라도 결코 틀린 것을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타협하는 것을 그만두고 옳은 것을 하러 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8.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옳게 행하고자 결심한다면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 중에는 아마도 그리스도인이 아닌 여자와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학생들도 그리스도인이 아닌 남자와 사랑에 빠져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일을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그 죄인과 결혼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라고 하신 것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감정이 기울어지는 대로 행해서 그 죄인과 결혼을 하겠습니까?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근거로 스스로를 배반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두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 길에서 안정이 없다고 하십니다. 옳은 것을 행하고 싶어하면서도 잘못된 것을 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으며 이리저리 비틀거립니다. 모든 문제를 한 가지 원칙에 따라 결정하기로 마음을 정했을 때, 그 원칙이 맞다면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손쉬운 것과 옳은 것 중 어느 것을 해야 할지 논의하기 시작하면 결국 손쉬운 길을 택하게 됩니다. 내 인생에서 현재처럼 종교적인 타협이 성행한 적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무언가 마음에 결정을 했을 때,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 의심스럽다면 하나님께 그 의심을 맡기십시오. 마귀에게 그 의심을 맡기지 마십시오.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면 그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면 잘못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손에 셔츠를 들고 창가에 서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뭐하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 셔츠 깃이 더러운지 보려고 하고 있소”라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의심스러우면 더러운 거예요.” 어떤 일을 하면서 옳은 일인지 의심이 가면 뭔가 잘못된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꼭대기의 눈이 하얀색인지 결코 묻지 않습니다. 눈이 흰색인지 물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이미 흰색이 아닙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여러분이 모두 “옳게 행하라”는 이 두 단어가 여러분의 생을 지배하도록 마음을 정했다면 여러분은 이미 인생에서 맞이하게 될 문제들에 스스로 준비를 갖춘 것입니다. 옳게 행하십시오. 영적 전투에서 지옥의 모든 총이 여러분을 조준하고 있다 할지라도 옳게 행하십시오.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다 해도 옳게 행하십시오. 죽어야만 한다 해도 옳게 행하십시오. 잘못된 것을 위해 사느니 옳은 것을 위해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 미국에 남아 있는 성경을 믿는 모든 목사들이 이런 각오로 시작해서 6개월만 설교하고 마땅히 죄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한다면, 이 땅을 뒤덮고 있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가진 무시무시한 불신의 조류를 저지시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