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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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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간격이 있는가?
lhyunsik

창세기에 간격이 있는가? : 간격이론(Gap Theory)이란 무엇인가?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Russell Grigg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수십억 년의 ‘간격(공백, gap)‘이 존재하는가? 그래서 진화론적 지질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거기에 기독교인들이 장구한 시대를 편리하게 삽입할 수 있는가? [1, 2] 실제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모세는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가? 창세기 1장에 대한 가장 분명하고 직접적인 해석은, 그것이 초지혜자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어떤 신비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혹은 그의 선조들)에게 계시하신 것들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그가 문자적이고 역사적으로 설명한 것(a literal historic account)이며, 이는 다른 확실한 반증이 없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만약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1절과 2절 사이에 수십억 년의 간격이 있어서 그 기간 동안에 사탄, 죄, 심판, 형벌, 재창조(부록의 ‘간격이론‘을 보라) 등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해시키려 했다면, 그에 관련된 사항 중의 최소한의 일부라도 그분이 저자에게 알려주셨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그것들을 발견할 수 없다. [3] 사실상, 정통파 유대인들과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항상 창세기 1장을 문자적인 역사(literal history)로 읽어왔다. 유신론적 진화론 지질학자(theistic evolutionist geologist)인 데이비스 영(Davis Young)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창세기 1장을 엄격히 문자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종종 있기는 했지만, 18세기까지 기독교계에서 거의 대부분의 보편적인 견해는 지구의 나이가 수천 년 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지구에 대한 현대 과학적 탐구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이런 관점이 교회 내에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4] 2. 성경의 다른 부분들은 간격이론(Gap theory)에 대한 조종을 울리고 있다. • 창세기 1:31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very good)' (이 심히 좋았더라의 히브리 단어 ‘meod tov’ 는 완전하고, 어떠한 종류의 악도 전혀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것은 칼빈(Calvin)과 많은 다른 주석가들이 지적해왔던 것이다). 만약 사탄이 이미 반역을 해 버렸다면,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될 수 없다! 또한 만약, 아담 이전의 인간종족들을 모두 멸망시키고 동물 세계 전체의 멸종을 일으킨 ‘루시퍼-홍수‘들이 있어서 질병, 폭력, 죽음, 부패의 흔적을 가진 수십억의 화석들이 만들어졌다면,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그러한 화석들이 묻혀 있는 땅 위를 걷고 있었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말하실 수 있었을까? [5] (그들의 기념비적인 구약 주석에 의하면, Keil과 Delitzsch는 창세기 1:31절의 ‘심히 좋았더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모든 것은 그 종류대로 완벽했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어떠한 악의 존재도 절대적으로 배제되어진다. 그것은 6일 동안의 작업을 단순히 억누르고 족쇄를 채우려는 반하나님적 악한 가설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 창세기 6-9장은 전 세계적인 홍수를 묘사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 있지 않았던, 코로 호흡하는 모든 육상동물이 죽었다고 되어 있다. 간격이론가들은 화석이 ‘루시퍼의 홍수‘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노아의 홍수는 실질적으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거나 아니면 단지 국부적인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려 한다. 분명히 화석의 원천에 대한 보다 나은 설명은, 성경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은 가상적인 홍수보다,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홍수에 있다! • 출애굽기 20:11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 이것은 창세기 이외의 곳에서 창조의 시간 틀에 대해 언급하는 결정적인 구절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6일 안에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단언적으로 말하고 있다. 간격은 전혀 허용되지 않고 있다. [6] • 로마서 5:12은 이렇게 말한다. ‘… 이러므로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 아담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는데, 고전적인 간격이론은 첫째 날 이전의 간격 동안에 죽음이 있었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이 구절은 아담의 죄 때문에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평범하게 말한다. 이 구절을 인간의 죽음만으로 제한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오히려, 로마서 8:20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담이 죄를 저지르기 이전에는 (증거 없이 주장된 ‘루시퍼의 홍수‘에서 죽은 화석과 같이) 세상에 죽음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간격이론가들은 로마서 5:12과 창세기 3:3이 영적인 죽음만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그렇지 않다. 아담은 육체적으로 죽어가기 시작했고(히브리어: ‘장차 죽는 죽음‘, 즉, 죽음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창세기 3:19은 창세기 5:5에서 완성되었다.), 또한 영적으로 죽었다.[7]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육체적인 죽음과 영적인 죽음을 모두 겪으셨다(마태복음 27:46). 또한 고린도전서 15:21-22을 보라. 간격을 찬성하는 것으로 주장되어지는 성경적 증거들 간격이론가들은 소수의 히브리 단어들에 대한 수정론자의 번역(revisionist translations)에 심하게 의존하고 있다. 1. 히브리 단어 빠라(bara, '무로부터 창조하다‘)와 아싸(assa, '만들다‘). 창세기 1:1은 빠라를 사용하고 출애굽기 20:11은 아싸를 사용한다. 간격이론가들은, 빠라와 아싸를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출애굽기 20:11은 멸망한 세상의 재창조와 재형성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답: 창세기 1장에서 히브리 단어 빠라가 세 번 사용되었는데, 그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실체 -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의 창조를 나타낸다. 창세기 1:1에서 빠라는 하늘과 땅의 창조에 대해 사용되었다. 창세기 1:21에서 빠라는 최초의 정신을 가진 동물(또는 네페쉬) 생명의 창조에 대해 사용되었다. 창세기 1:27에서 빠라는 최초의 사람,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인간 생명의 창조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창세기 1:26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아싸]‘, 반면에 바로 다음 구절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빠라] ‘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빠라와 아싸를 둘 다 사용하여 같은 사건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그 동사들은 분명히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더군다나, 창세기 2:4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아싸] 때에 천지의 창조된 [빠라]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기서 빠라와 아싸가 동의어를 의미하는 병행구로 함께 사용되었다. 이것은 또 다시 모세가 그 단어들을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했음을 나타낸다. 간혹 아싸는 간격이론가들의 반하는 주장에도 (예로 느헤미야 9:6) 불구하고 무에서부터(ex nihilo, out of nothing)의 창조를 의미할 때 사용되어진다. 하나님은 홀로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하늘과 가장 높은 하늘까지 만드셨고(아싸), 그리고 별들의 주인이시며, 땅과 그 위에 모든 것들을 만드셨으며, 바다와 그 안에 모든 것들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생명을 주셨고, 하늘의 하늘들이 경배하고 있는 것이다. 2. “‘와우(waw)’는 히브리어 문자의 이름인데 접속사로 사용된다. 그것은, “그리고(and),” “그러나(but),” “이제(now),” “그리고 나서(then)” 등의 의미로 사용되며, 와우가 포함된 형태와 문맥에 따라 기타 몇 가지 다른 의미로도 사용된다.” [8] 이것은 창세기 1:2의 앞부분에 있는데, KJV에서는 ‘그리고(and, 와우) 땅은 형체가 없고 비어있었다‘로 번역되었다. 간격이론가들은 이 번역을 간격이론을 지지하는데 이용한다. 그러나 원전을 가장 직설적으로 읽으면, 창세기 1장 1절은 주어 + 동사의 주절로 되어 있고, 2절은 3개의 종속절로 되어 있다. ‘이것은 히브리어 문법학자인 게세니우스(Gesenius)가 “와우 설명(waw explicativum)“ 혹은 설명적인 와우 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서, 영어의 “즉(to wit)“에 비견된다.‘ [9] 그러한 와우 접속사는 비동사(non-verb)에 의해서 뒤따라지는 와우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히브리어에서 쉽게 말해진다. 그것은 삽입어구적 문장(parenthetic statement)을 소개하고 있다. 즉, 그것은 이를테면 이전 명사에 관한 서술적 어구임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다음 어구를 괄호에 놓도록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연속적인 시간이 흘러 뒤따르는 어떤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것은 와우 연결(waw consecutive)이라고 불리는 다른 히브리어 구조에 의해서 암시되어질 수 있는데, 여기서 와우는 동사에 의해서 뒤따라진다. (와우 연결은 사실 창조의 다른 날들 이전에 사용되었다. Creation at the academy (Dr Doug Kelly interview을 보라). 따라서 2절을 보다 낫게 번역하면, ‘그런데 땅은(Now the earth) …‘이 될 것이며, 의역을 하면, ‘그런데 땅에 대해서 말하자면…‘으로 할 수 있다. [10] 그것은 창세기의 저자가 (하나님의 지시 하에) 그러한 결합적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두 구절 사이에 중단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 창세기 1:2의 ‘was‘(히, “하야“)를 간격이론가들은 ‘became‘으로 번역하여, ‘그리고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became [or had become])’로 쓰고 있다. 간격이론가 쿠스탄스(A. C. Custance)는 그의 책 ‘혼돈하고 공허하며 (Without Form and Void)’‘에서 거의 5분의 4를 13개의 부록을 포함하여 이 번역, 특히 과거완료 시제인 ‘되었다(had become)’를 옹호하는 데 할애했다. 그러나 저명한 문법학자들과, 사전편찬자 및 언어학자들은 거의 한결같이 ‘되었다(became)’나 ‘되어왔었다(had become)’로 번역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11] 스트롱의 색인(Strong’s Concordance)에 하야(haya,)의 의미 중 하나로 ‘되었다(became)‘가 있는 것 때문에, 창세기 1:2절의 특별한 문장을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기본적인 주석 오류이다. 동사 하야가 접속사 와우와 결합되어지는 것은 단순하게 문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구약 성서의 나머지 부분들에서 ’Waw + 명사 + haya‘ 는 항상 ‘was’ or ‘came’으로 번역 되었다. 그러나 결코 ‘became’은 아니었다. 4. 창세기 1:2에서 히브리어 단어 토후와 보후는 ‘혼돈하고(형체가 없고)‘와 ‘공허하며(비어 있는)‘으로 번역되었는데, 간격이론가들은 이것이 지어져 가는 과정 중에 있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심판에 의한 멸망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12] 그러나 토후는 성경에서 여러 번 나타나는데, 그것은 도덕적으로 중립의 상태에 대해 사용하며, 무언가 덜 끝나서 혼란스러운 것을 나타내지만 그것이 반드시 악은 아니다! [13] 수세기 동안 히브리어 학자들과 교회에서는 창세기 1:2이 천사의 타락에 의해 야기된 악의 상태나 심판의 장면이 아니라, 아직 개발되지 않은 원형의 우주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취해왔다. 모세가 말한 평범하고도 단순한 의미는 첫째 날에 물로 덮인 큰 덩어리가 있었는데, 그 상태는 마른 땅이 없었으며(토후 = ‘아직 형성되지 않은‘) 아직 거주자가 없었다(보후 = ‘아직 채워지지 않은‘)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간격이론을 가르치기 위해 예레미아 4:23절의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을 오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심판의 결과를 묘사하는 ‘tohu va bohu’ 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스탄스(Arthur Custance)와 같은 선도적인 간격이론가들은 “혼돈하고 공허하며(tohu va bohu, without form and void)‘라는 어구가 ”심판에 의한 황폐하게 되었다(laid waste by a judgment)“를 의미하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이 사실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류이다. 히브리어 단어에서 tohu VA bohu 자체가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이 ‘황폐하게 되었다(laid waste)’와 관련짓는 유일한 이유는 그 단어가 발견된 문장에 기인한 것이다. 그 단어는 단순히 ”unformed and unfilled“를 의미한다. 이 언급은 창조되어지는 것, 또는 창조된 것이 제거되어지는 것에 기인될 수 없다. 예레미아 4장의 문장은 창조가 아니라, 예루살렘에 대한 바벨론의 약탈에 관한 예언이다. 사실, 예레미아 4:23절은 심판이 너무도 중하여 마지막 상태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기 이전의 공허했던 것처럼 되어질 것이라는 창세기 1:2절에 대한 하나의 문학적 암시로서 알려져 있다. 예레미아 4:23은 하나의 심판으로서 창세기 1:2절을 해석하는 데에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의 암시는 오직 일방향이기 때문에, 그것은 완전히 앞뒤가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유사한 예를 들어보자. 컴퓨터에서 ‘아래 한글’을 열면, 문서창은 ‘공백(blank)’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내가 어떤 문서를 불러냈다가 전체 문서를 ‘삭제(delete)’ 하였다면, 문서창 역시 공백으로 되어질 것이다. 그래서 공백은 어떠한 글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문서는 내가 전혀 글을 타자치지 않아서 없고, 다른 문서는 있던 글을 삭제하여 없게 되었다면, 당신은 공백(blank) 이라는 단어 자체로부터 문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쿠스탄스와 같은 유형의 해석에 의하면, ‘공백’은 모든 글들이 삭제되어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된 스크린의 모습이라고 결론지어질 수 있다. 그래서 ‘공백’이라는 단어는 아무 것도 없었던 상태가 아니라, 모든 문서들을 삭제해버린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5. 창세기 1:28의 KJV 번역인 영어 단어 ‘replenish(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replenish) 땅을 정복하라)’는 간격이론가들이 주장하듯이 간격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언어학자인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611년 판에 번역되어 있는 “replenish”는 “채우다(fill)”와 동의어이며, 접두사 “re-”는 ‘다시’가 아니라 “완전히”를 의미한다.’[14] 동일한 히브리 단어 마레(male)가 창세기 1:22에서 사용되었는데, 거기서는 ‘바다를 채우라(fill)‘로 번역되어 있다. 따라서 이것을 28절에서는 다르게 번역할 필요가 없다. (What does replenish the earth mean?을 보라) 6. 흑암. ‘하나님은 빛(God is light)’ 이시 때문에(요한일서 1:5), 그리고 성경에서 ‘흑암(darkness)‘은 때때로 사악한 자에 대한 심판(출애굽기 10:21, 이사야 13:10, 요엘 2:31, 마태복음 27:45, 등)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일부(전부는 아님) 간격이론가들은 창세기 1:2절이 악의 상태를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상의 실수이다. ‘상징은 상징화된 것에 의해 혼동되었으며, 급기야는 바로 그 상징 자체가 지금은 악으로 간주되고 있다!‘ [15] 아직 빛이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땅은 흑암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고 하신 창세기 1:3절 말씀은 사실상 그 자체로도 간격이론을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 새로운 간격이론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태초에‘ (창세기 1:1) 태양과 달과 별들이 모두 창조되었다면, 주장되어지는 1절과 2절 사이의 간격 이후에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실(3절) 필요가 왜 있었겠는가? 기타 문제들 1. 매우 많은 동물 화석들이 오늘날 살아있는 동물들의 모습과 사실상 동일하다. 전통적인 간격이론가들은 오늘날의 동물들이 과거에 존재했던 동물들의 직접적인 후손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동일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2. 간격이론가들은 마가복음 10:6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간과했다. ‘창조 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Bu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주님 자신은 분명히 창세기 1:1과 아담과 하와의 창조 사이에 어떤 의미 있는 간격을 염두에 두지 않으셨다. 3. 젊은 지구를 가리키는 수많은 우수한 과학적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6] (See Q&A: Young world evidence) 4. 간격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전체 개념은 '뒤바뀌어진‘ 사고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성경을 기준으로 하여 사람의 견해를 살펴보려는 것이 아니라, 인본주의적인 진화론적 견해를 기준하여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는 시도의 산물인 것이다. 결론 비록 간격이론이 그 선전자들에 의해 잘 정립되어 있기는 하지만, 언어학적, 성경적, 이론적, 또는 실제적 어떤 자료에 근거해서도 인증된 바 없다. 아담이 죄를 짓기 이전에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담의 죄(Adam’s sin)로 인하여 죽음(death)이 들어왔다는 성경의 기록과 위배된다. 바로 그 아담의 죄 때문에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셨으며, 부활하시는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Proposed by Thomas Chalmers (1780–1847), founder of the Free Church of Scotland, the idea of a gap was ‘canonized’ for some Christians when C.I. Scofield included it in the footnotes of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in 1909. 2. The most academic presentation of the gap theory is to be found in Without Form and Void by Arthur C. Custance, Doorway Publications, Brookfield, Canada, 1970. 3. The two Bible passages that are usually invoked about the ‘fall’ of Satan are Isaiah 14:12–15 and Ezekiel 28:13–17. Both of these passages are in the context of prophecies about earthly kings (of Babylon and Tyre), and no explicit reference is made to Satan. However, even if these verses are so taken, there is no indication that any of the events described took place before Genesis 1:2. 4. Davis A. Young, Christianity and the Age of the Earth, Zondervan, Michigan, p. 25, 1982. 5. In other words, if Isaiah 14:12–15 and Ezekiel 28:13–17 do refer to the ‘fall’ of Satan (which certainly is not proven), this more consistently fits after Day Six of Creation Week, and not between verses 1 and 2 of Genesis 1. For further discussion, see my article, Who was the serpent?, Creation 13(4):36–38. 6. For further discussion see Weston W. Fields, Unformed and Unfilled, Burgener Enterprises, Collinsville, Illinois, p. 58, 1976. 7. In the Bible, spiritual death has the meaning of separation from God rather than of annihilation. 8. F. Brown, S.R. Driver, and C.A. Briggs,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Oxford, pp. 251–255, 1968, cited from Ref. 6, p. 81. 9. Kautzsch and Cowley, Gesenius’ Hebrew Grammar, p. 484, section 154a, footnote 1, cited from Ref. 6, p. 82. 10. For a more detailed explanation, see Ref. 6, pp. 81–86. 11. For a more detailed explanation see Ref. 6, pp. 87–112. 12. Ref. 2, p. 168. 13. Ref. 6, p. 129, which summarizes Fields’ arguments on pp. 113–130. Gappists sometimes claim that the two words are only used together (tohu wa bohu) in other parts of the Bible where judgment is in view; however, there is nothing in the context of Genesis, (which there is in these other references) which would independently suggest judgment. 14. Charles Taylor, The First 100 Words, The Good Book Co., Gosford, New South Wales, Australia, p. 74, 1996. 15. Ref. 6, p. 132. 16. See John D. Morris, The Young Earth, Master Books, Colorado Springs, 1994; as well as Dr. Russell Humphreys’ summary, Evidence for a young world, Creation 13(3):28–31, also available as a reprint from the UK, USA, NZ and Australian bookstores. ------------------------------------------------------------------ 부록 1 : 간격이론(Gap Theory)이란 무엇인가? 간격이론은 일부 기독교 신학자들이 창세기를, 우주가 대단히 오래 되었다는 통속적인 오래된 연대 개념과 맞추기 위한 시도이다. 간격이론가들은 문자적인 창세기를 믿지만, 지구에 대해 (막연히) 대단히 오래된 시대를 수용한다. 이런 견해와 일치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장구한 지질학적 시대를 끼워 넣는다. 하지만 그들은 진화론을 반대한다. 결정적인 반-간격(anti-gap) 이론 책인 “혼돈하지 않고 충만하지 않은(Unformed and Unfilled)“의 저자 웨스턴 필드(Weston W. Fields)에 따르면,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간격이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고 하였다 : ”시기를 알 수 없는 아주 먼 과거에 하나님은 완전한 하늘과 완전한 땅을 창조하셨다. 사탄은 혼이 없는 인종이 살고 있는 땅의 통치자였다. 광물질로 이루어진 에덴동산에 살고 있던 사탄은(에스겔 28장) 마침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여(이사야 14장) 반란을 일으켰다. 사탄의 타락으로 인하여 우주에 죄가 들어왔으며, 지구에는 홍수의 형태로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고 (1:2의 물이 그것을 나타낸다), 그로 인하여 태양으로부터 빛과 열이 차단됨으로써 전 지구적인 빙하시대가 왔다. 오늘날 지구에서 보는 식물, 동물, 사람들의 모든 화석들은 이 “루시퍼의 홍수“에서 비롯된 것이며,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식물, 동물, 사람들과 어떠한 유전적인 관계도 지니고 있지 않다 …” (참고문헌 6, p.7). 오늘날의 생물체들은 6일 동안의 재창조(recreation)에 의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멸망도 없었고(no ruin), 복구도 없었다(no reconstruction)는 새로운 형태의 간격이론이 등장했음을 주목하라. 이 이론의 제안자들은 단지 장구한 시간의 간격만을 가정하며, 오래된 우주, 오래된 지구, 또는 둘 다를 이야기 한다. ---------------------------------------------------------------- 부록 2 : 천사를 어디에 끼워 넣어야 하는가? 출애굽기 20:11은 하나님이 천지의 모든 만물을 6일 동안에 만드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천사들과, 원래는 선하게 혹은 거룩하게 창조된 모든 존재들이 포함되어야만 한다 (골로새서 1:16, 유다서 1:6절). 욥기 38:4, 7에서는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 즉 창조의 첫째 날(창세기 1:1)에 땅을 창조하셨고, 아직 그분이 빛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천사들(‘하나님의 아들들‘)이 있었다고 제시한다. 천사들은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처럼 망막이 있는 눈을 가진 것이 아니므로, 아마도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존재들이 언제 반역하여 사탄과 그의 악마 추종자들이 떠났는가의 문제가 등장한다 (베드로후서 2:4, 유다서 1:6절). 이 반역사건은 창조의 마지막 6일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다‘고 선언하시기 이전에는 분명히 불가능하다 (창세기 1:31). 어떤 간격이론가들은 창조의 6일 이후와 창세기 3장의 사건 이전에는 이런 반역이 일어날 만한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가? 우리는 창조의 6일(혹은 제 7일?) 이후에 하와의 유혹이 일어나기까지(창세기 3장)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가인이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므로, 그의 부모가 타락한 이후에 그를 임신했어야 했기 때문에, 그것은 하와가 임신하게 되기(창세기 4:1) 이전이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창조의 6일과 (인간의) 타락 사이에 일주일밖에 없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것은 충분한 시간인가? 다음을 생각하자: 1. 천사들은 영적인 영역/차원에 산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 자신의 공간/물질/시간의 연속체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모른다. 아인슈타인 이후로, 우리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으며, 예를 들면 중력 같은 것에 영향을 받으므로, 영적인 차원에서 시간은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아는 차원에서의 시간과 같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2. 위의 사항이 적용되지 않더라도, 한 주일의 시간도 충분할 시간일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1:2 이전에 간격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시간은 충분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인간적인 수준의 사고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초인간적인 지능을 가진(전지하지는 않지만) 천사들은 분명히 사람들과 유사한 한계로 제한받지 않을 것이다. 3. 심지어 우리 사람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더라도, 어떤 상황에 접근하여 만족할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하루 혹은 한 시간으로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람들을 선동하여 반역에 참가하게 하는데, 왜 꼭 오랜 시간이 필요한가? 평범한 시민들이 주먹질하고 폭도로 변하는 것은 수 시간 혹은 하루나 이틀의 선동만으로 충분하다. 참고로, 예수님의 재판에서 예루살렘의 군중들을 보라. 뒤이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죄를 지은 천사들이 쫓겨나는 것도 그 이후의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몇 분 이내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사들이 반역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간격‘이 있어야 함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러한 관념은 창조의 6일 마지막에 모든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신 것과 상충된다. 출처 : Creation 19(2):35–38, March 1997 URL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9/i2/beginning.asp 번역자 : 이종헌 관련 자료 링크: 1. 위증인(僞證人) 타파하기 : 오래된 지구 창조론자인 휴 로스의 주장에 대한 반론 (Demolishing 'straw men') 2. 오래된 지구 지질학에 대한 성경적 지질학자들의 반대 3. 점진론적 창조론 (Progressive Creationism) 4. 오래된 지구의 신 (The god of an old Earth) 5. 어느 믿음이 최근의 탈선인가? 오래된 지구 또는 젊은 지구? (Which is the recent aberration? Old-Earth or Young-Earth Belief?) 6. 오래된 지구 연대는 진화론의 심장이다 (1) (An Old Age for the Earth Is the Heart of Evolution) 7. 오래된 연대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 (The long story of long ages) 8. 젊은 세계에 대한 증거들 (Evidence for a Young World) 9. 조상들과의 만남 : 창세기 연대기의 정확성과 족장들의 긴 수명 (Meeting the ancestors) 10. 창세기 제1장의 YOWM에 대한 고찰 11. 창세기 1장 (3) - 간격이론(gap theory) 12. 젊은 지구(The Young Earth) 3장. 대조되는 2가지 견해 13. 오래된 지구 연대는 진화론의 심장이다 (2) (An Old Age for the Earth Is the Heart of Evolution) =============================================================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멸하고 다시 창조하셨을까 일부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창조 기사를 현대 지질학과 조화를 이루어 보려는 여러 가지 시 도가 있었다. 그들은 지질학자들이 주장하는 46억 년이라는 오랜 지구의 나이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창세기에 나타나는 지구의 역사를 여기에 맞추어 길게 늘려서 해석하는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 점진적 창조론 (progressive creation), 날-시대 이론(day-age theory), 등을 주장하였는데, 간격이론도 그와 같은 시도들 중의 하나 로서 크리스찬들 사이에 꽤 널리 퍼져 있다. 간격이론의 주장은 창세기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 사탄이 반란을 일으키자 하나님께서 큰 홍수(Licifer's flood)를 일으켜 전 지구의 생명체를 멸하셨고, 그 때문에 2절에서 지구는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으며, 3절 이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창조하셨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는 수십 억 년의 지질학적 시간 간격이 있기 때문에, 성경상의 지구의 역사는 매우 긴 것이어서 현대 과학에 비추어 볼 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층 속에서 발견되는 많은 화석들은 노아의 홍수 때문이 아니라, 1절과 2절 사이에 일어난 Lucifer의 홍수 로 인해서 죽은 생물들의 잔해라고 생각한다. 간격이론의 골자인 하나님께서 지구를 멸하시고 다시 창조하셨다는 이론(ruin-reconstruction)은 오늘날 우리가 관찰 하고 있는 지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과 동일한 사건이 과거에도 누적되어 진행되어온 결과라고 생각하는 학설 (동일과정설)이 널리 퍼지게 되면서 지구의 나이를 전보다 훨씬 길게 생각하게 되자, 이에 맞추어 성경을 다시 해석 한 결과로 나오게 된 이론이다. 이 간격이론은 진화론을 부정하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려는 의도가 있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문제 점이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6일 동안 지으셨다는 성경말씀과 모순된다. 출애굽기 20:11에서는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을 6일 동안 지으셨다고 명백하게 말씀하셨는데, 그 긴 간격을 어디에 넣을 수 있겠습니까?둘째, 2절의 “혼돈하고 공허하며”는 무질서하고 폐허가 된 상태(chaotic and ruined)라고 해석하는 것보다는, 형태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고 아직 생명체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비어있는 상태(unformed and uninhabited)로 해석하 는 것이 타당한다. 셋째, 성경 말씀과는 달리 죽음, 질병, 고통을 아담과 하와의 범죄와 타락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다고 말함으로써 복 음의 기초를 무너뜨립니다. 로마서 5:12에는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15:45에는 아담이 “첫 사람(the first man)”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아담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없었으며, 그가 범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기 전에는 동물과 사람에게 죽 음이 없었음이 분명한다. 인간에게 내려진 육체의 죽음 대신에 영생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죽음의 고통을 당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넷째, 간격이론은 노아 홍수의 증거를 없애버림으로써 의미를 약화시킨다. 만약 화석이 Licifer의 홍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노아의 홍수는 무슨 일을 한 것입니까? 간격이론은 성경상 에 분명하게 나타나지도 않는 Lucifer의 홍수를 전지구적인 홍수로 가정하고, 노아의 홍수를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홍수로 격하시킴으로써 노아의 홍수가 지닌 앞으로 오게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로서의 귀중한 의미를 약화시 키고 있습니다(벧후 3:2-14). 결과적으로, 간격이론은 진화론이 주장하는 오랜 지구의 나이를 수용하려고 함으로써, 성경을 왜곡 해석하게 되어 성경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론임을 알 수 있다. (글쓴이: 창조신앙 부흥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창립된 세계창조선교회의 박창성 회장은 서울대에서 지구과학을 전공 하고, 미국의 창조과학 연구소(ICR)의 대학원을 졸업한 창조과학 전문가로서, 현재 미국 오레곤 성서신학원에서 창 조과학, 변증학, 교육학, 선교학을 강의하고 있다. 창 1-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리라 - 이 말씀은, 땅이 본래 혼돈하지 않던 것이 그 때에 새삼스럽게 혼돈하여졌다는 것이 아니고, 본래부터 그렇다는 말이다. 스코필드(Scofield)는, 본래 좋게 창조되었던 땅이 천사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황폐되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해석에 의하면,땅은 본래 천사들의 거할 곳으로 창조 되었는데, 그들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저렇게 혼 돈되고 공허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성경 다른 부분에서 볼 수 없는 그릇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혼돈하고 공허하며"란 문구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것이다. 곧, 거기 있는말 "하고", 혹은 "하며"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예다 (* )가 "되었다"(became)란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예다(* )는 변천을 의미하지 않고 본래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이 문구의 의미는, 하나님의 창조하신 땅이 아직 생물들이 살 만한 조직된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 뿐이다. 스코필드(Scofield)가 그의 이론 근거로 삼는 성구는, 사14:9-13, 24:1, 45:18 ; 겔 28:12-5 등이다. 그러나 이 귀절들은, 그의 이론을 지지하여 주지않는다. 이 귀절들은 극히 비유적이요, 시적(詩的)인 표현들을 가지고, 바벧론 왕,또는 두로 왕의 교만과 그 타락 상태를 보여 주는 것 뿐이다. "깊음"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테홀(* )인데 깊은 물을 말함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바벨론 신화 티아맛(Tiamt-龍이란 뜻)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 하고, 따라서 성경의 창조 기사가 바벧론 신화에서 유래되었다고 까자 한다. 바벧론 신화에서는, 말뚝(Mardoek)이란 신(神)이 원시적(原始的)바다에 있었던 용(Tiamat)을 잡아 죽이고, 그 죽은 몸의 일부분으로 궁창을 지었고, 티아맛(Tiamt)의 군대 장관 킹구(Kingoe)의 피로써는 사람을 지었다고 한다(R. W. Rogers, Cunneiform Parallels to The Old Testament, Oxford 1912, pp. 3-44; A Jirku, Altorientalischer Kommenter Zum Alten Testament, Leipzig - Erlangen 1923, bldz. 2-12; Hugo Gressmann, Altorientalische Texte und Biklder, Berlin - Leipzig 1926, bldz. 109-129 ; der Babylonier und Assyer, Jena 1921, bldz. 2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