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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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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되이 경배하는 자들
lhyunsik

본문 - 마가복음 7:1-13(5-9)
제목 - 헛되이 경배하는 자들
박 청호목사-
[서론]

외국의 어떤 목사가 퀘이커 교도들이 참으로 영적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배우러 찾아갔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기도만 하고 예배를 시작하지 않자 언제 예배를 시작하느냐고 옆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우리의 예배는 이 예배당을 나가는 순간부터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로 에드가 프랭크(Edgar Frank)는 '크리스챤 센츄리'지에 '제단'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습니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공장 작업대를 늘 제단으로 생각하였고, 어떤 이는 상점 계산대를, 어떤 이는 사무 보는 책상을, 또는 부엌 조리대를 거룩한 장소로 삼았다. …평범한 환경이 길가의 성전이 되어야 하리라'. 이처럼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진정한 예배는 하루 24시간이 되어야 하고, 한 주를 경배로 시작해야 하며, 제단은 그리스도인들이 대하는 모든 것들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예배를 드리는 그 시간만큼은 잘 드리다가도 정작 교회문을 박차고 나가는 순간부터 예배와 전혀 상관없고, 말씀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로 돌변합니다. 이처럼 하루 24시간이 그리스도인이 드려야 할 진정한 예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오늘날 경배가 소홀히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처럼 경배가 강조되는 때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수시로 자기중심적으로 돌변하나 하나님은 변화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항상 신실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참된 경배자를 찾으시는 일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영과 진리로 경배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디에서 참된 경배자를 찾으시겠습니까? 성경대로 믿는 지역교회가 아니겠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지역교회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권위로 믿고 실행하는 세상으로부터 성별된 유일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그리스도인들을 신실하다고 말하십니까?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증거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신실함의 증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된 경배에서 찾을 수 있고, 목사를 통해서 증거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각인하고 그 말씀에 늘 순종하려는 준비를 갖추는데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오늘날 신실하다는 증거를 지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경배드리는 자들의 조건들”에 대해서 설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론]
자,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는 어떤 자들에게서 경배를 받으시겠습니까?
Ⅰ. 참된 경배와 헛된 경배와의 차이를 보십시오(1-8).

“그후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몇 사람이 함께 주께로 와서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더러운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흠을 잡더라. 이는 바리새인들이나 모든 유대인이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자주 손을 씻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또 시장에서 돌아온 후 씻지 않고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받아서 지켜 온 것이 있었으니, 잔과 단지와 놋기명을 씻고 식탁을 닦는 것이라. 그때 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주께 묻기를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씻지 아니한 손으로 음식을 먹나이까?”라고 하니 주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 위선자들에 관하여 이사야가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된 바와 같이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계명들을 교리들로 가르치니, 그들이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들의 전통을 지키니, 단지와 잔을 물로 씻는 것과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자행하는도다.”라고 하시니라.”

주님은 헛된 경배는 가증히 여기시는 반면에 참된 경배를 소중히 받으십니다. 주님이 헛된 경배를 드리는 자들을 가증히 여기시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변질된 마음”으로 경배하기 때문입니다. 변질된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마음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마음은 말씀에서 벗어나고 진리의 기준에서 벗어난 마음을 말합니다. 즉 변질된 마음은 저주받은 마음을 말합니다. 예레미야 17:5에 의하면,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을 신뢰하는 사람과 육신을 그의 무기로 삼는 사람과 그의 마음이 주로부터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경배는 올바르고 온전한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토요일을 귀히 여셔서 주의 첫날에 드리는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최상의 상태로 예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참된 경배를 드리는 방법을 요한복음 4장에서 자세히 일러 주셨습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경배”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경배가 되려면 제일 먼저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알려진 죄로부터 용서함을 받아야 하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죄가 있다면 주님께서 일깨워 주시는 즉시로 숨김없이 자백하겠노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요일 1:9, 잠 28:13).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드리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으로 가득해야 합니다(대하 5:11-14, 시 7:17, 104:33, 147:1). 성령으로 충만해 있지 않으면 누구라도 참된 경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한 경배를 드리려면 자기 뜻과 세상적인 욕망을 버릴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부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누구라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경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보통 어떤 것이 참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를 모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기준”이 되고 “잣대”가 되는 근거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소유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것이 참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통해서 영적분별능력을 배가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마귀가 하는 일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 어떤 일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일들인가를 찾고 그 일들을 신실하게 수행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말씀이 없이는 혼미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없는 사람은 누구라도 방황하게 되어서 마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다가 결국에는 영적파멸로 끝나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귀와 악한 세력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파멸하기를 꾀하고 있으며 시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과 진리로 경배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시는 반면, 사탄도 인간의 전통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자들을 찾아 나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종교적인 사람들을 더 좋아합니다. 잘못된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무엇보다도 말씀에 권위를 두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배제한 경배는 경배가 아닙니다. 바른 말씀이 없는 곳에서 드리는 경배는 경배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없는 곳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지역교회가 될 수 없고 진리가 없이는 올바른 기도도 할 수 없습니다(마 18:20). 진리가 없이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권위에 반역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도 “참된 경배”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피로 사셨고 정상적인 방법으로(선교) 하나님이 세우신 지역교회가 아니면 그 어떤 곳도 참된 경배를 드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교회는 중요한 것입니다! 마귀는 이러한 지역교회들이 와해되는 것을 일차목표로 삼고 오늘 이 시간에도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아는 성도들은 정신을 차리고 기도로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주님은 어떤 자들에게서 경배를 받으시는가?
Ⅱ. 종교적인 위선과 헛된 경배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편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9-13).

“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자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쉬 버리는도다. 모세가 말하기를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했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죽이라.’고 하였거늘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나로 인하여 유익을 받게 될 것은 무엇이든지 코르반, 즉 예물이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해서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여도 무방하다.’ 하였으니 너희는 너희가 전수한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느니라. 또 이와 같은 많은 일을 자행하고 있도다.”라고 하시더라.”

“편법”이라는 말이 지닌 사전적인 의미는 원칙이나 정도(正道)를 벗어나서 쉽게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나 수단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어떠한 형태이든지 요행은 결코 용납되지 않습니다. 마귀의 자식들은 편법을 사용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편법같은 것은 사용하지 않으며, 사용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주님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버젓이 편법을 자행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종교적인 위선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호되게 질책하셨고, “..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의롭게 보이나 속에는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으며(마 23:28), 심지어는 “너희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 어떻게 너희가 지옥의 저주에서 피할 수 있겠느냐?”고 저주하셨던 것입니다(마 23:33).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편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여러 다른 이유로 어떻게 해서든지 경배를 소홀히 하고 있고, 성도들과의 교제를 회피하고 있으며, 여러 다른 이유로 복음전파를 게을리 하거나 아예 하지 않고 있고, 여러 다른 이유로 어려움에 직면한 성도들을 돌아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다른 이유”를 내세우면서 자신의 처지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믿음이라는 원칙을 깨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인데,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생각들을 용납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여기 본문 9절부터 13절까지 보면, 모세의 율법에도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죽이라고 했는데, 이들 종교적인 위선자들은 이 말씀을 지키는데 있어서 “자기 기준”으로 지키려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코르반, Corban"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코르반은 예물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의 보다 명확한 뜻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서 어떤 것을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도 하나님께만 잘하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나 진배없다는 식의 편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코르반이라고 말하면서 예물을 바치면서도 자기 부모에게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12절에서 말하는바와 같이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여도 무방하다.”고 말했습니다.

위선자들은 보통 자기 부모에게는 못하면서 하나님께는 잘 보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부모를 잘 섬기지 않는 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바는 경배를 드리는데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경배드리기 위한 어떤 장소나 외형적인 요소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경배드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태도만을 강조하다 보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경건하고 감성적이며 온통 감정적으로 압도된 분위기 속에서 경배를 드리려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지역교회에 가지 않고도 안방에서 인터넷예배실황이나 위성방송을 통해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쇼파에 편안히 앉아서 다리를 꼬거나 들이 누워도 예배를 드리는데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바로 “편법”이요 “요식행위”입니다.

사람들의 행동은 마음에서 좌우됩니다. 마음과 생각이 지시하지 않는데 행동이 저절로 표출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경주를 하는데 원칙대로 하지 않고 반칙이나 편법을 일삼으면 누구라도 실격자가 되는 것입니다(딤후 2:5).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과 직결됩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과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날에 분명히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왜 그 일을 하지 않았느냐?”, “너는 왜 그 일을 해야만 했느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명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이든지 각자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후 5:10).

요한복음 2장에서 보면 예수님은 이미 성전에서 헛된 경배자들을 행동으로 지적하셨습니다(요 2:13-17). 그들은 이미 진실된 마음이 없이 하나님께 다가서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너트리기 힘든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면 누구나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고후 10:4-6).

이렇듯 종교적인 위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언제나 “편법”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편법을 주님은 “장로들의 전통, 사람들의 계명들, 사람들의 전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지구상에는 두 가지 상반된 권위가 있는데, 참된 경배자들의 권위가 절대권위인 하나님의 말씀임에 반에 헛된 경배자들은 절대권위가 아닌 상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헛되이 경배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전수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쉬 버리고 폐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떤 자들에게서 경배를 받으시는가?
Ⅲ.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된 경배자들에게서 받으십니다!(요 4:23-24)

“그러나 참된 경배자들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릴 때가 오나니 바로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경배드리는 그런 자들을 찾으심이니라.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

앞서 제가 말씀드렸듯이 주님께 경배를 드릴 때 우선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영과 진리로 드리는 자세)에 있지 어떤 장소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의 자세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장소입니다. 경배와 전혀 무관한 장소에서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극장이나 영화관, 술집 등에서는 절대로 들여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들이 하나님께도 어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참된 경배가 오직 참된 마음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진리를 믿습니다(롬 10:9-10). 그리고 우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며, 진리를 따르는 다른 성도들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을 사랑합니다(마 22:37, 요이 1:1).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마음에서 찬송하고(골 3:16), 마음으로부터 믿음으로 순종하며(롬 1:5, 6:17), 마음으로부터 주님께 드리며(고후 9:7), 주님이 거듭난 새사람 안에서 창조하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이 우리의 원함이 되도록 자주 기도합니다(시 51:10,17).

참된 경배자들의 자격요건이란, 첫째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여기서 “영”이 지칭하는 것은 두 가지를 내포하는데 하나가 거듭난 영을 말하고 있고, 두 번째가 성령으로 충만한 영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영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육신적이지 않다는 말입니다. 영은 육신과 정반대입니다. 육신이 된 사람은 하나님께 경배드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섬길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때 성령으로 거듭났지만 거듭난 이후로 줄곧 성령으로 충만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에베소서 5:18에서 “술취하지 말라. 그것은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참된 경배자들의 두 번째 자격요건은 경배를 드리는 사람 자신을 주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내어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에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헌신”입니다. 헌신은 하나님의 계획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고, 각자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자상한 뜻과 계획을 알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참된 경배자들의 세 번째 자격요건은 세상과 성별해야 합니다. 로마서 12:2에 의하면,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와같은 경배에 합당한 조건들을 갖추시고 자주 영과 진리로 주 하나님께 경배 드리려 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경배를 기뻐 받아주실 것입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드리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자기기준”을 버려야만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선한의도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서도 우직스럽게 자신의 뜻을 실현하려고 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우리가 선택한 것은 늘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예,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성경의 원칙대로 살면 됩니다! 성경은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스스로 입증하라.”고 했습니다(고후 13:5). 우리 자신의 믿음의 성숙도는 여러 시험들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자기 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기도가 정확히 응답되었다면 자신이 지금 믿음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믿음 안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다가도 자주 실패하십니까? 왜 실패했는지 분석해 보십시오. 기도하지 않고, 마음의 준비없이 복음을 전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까?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까?

이렇게 여러 면에서 시험해 봤을 때 자신의 미숙한 점이 드러났다면 영적으로 더욱더 성장해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이 신호를 무시하면 누구라도 믿음에 관해서 더 이상의 성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원칙을 지켜야만 합니다. 어떠한 편법도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 중에 믿음의 원칙을 깨고 자기 영달을 위해, 자기 이익을 위해 어떤 편법을 사용해 온 분들이 있다면 그러한 어리석음을 내어버리고 오늘 이 시간에 주님과 올바른 관계설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서 헛되이 경배를 받으실 분이 아니고, 헛되이 경배 받으실만한 일도 전혀 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 편에서 먼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