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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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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길을 가려면...
lhyunsik

교회의 길을 가려면... 송 은석형제 (일산 갈보리 침례교회) 제목 : 하나님의 교회 말씀 : 롬 12:3-5 『내게 주신 은혜를 힘입어 너희 가운데 있는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으로 자기에 대하여 생각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냉철하게 생각하라. 이는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무를 갖지는 아니하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요, 각 사람이 서로 지체이니라.』(롬 12:3-5) 우리들은 캄보디아에 있는 선교사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고 다닌 적은 없지만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서 알고 부러워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앞날을 궁금해 하며 기대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 편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는 것에 대한 책임감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모양은 많은 다른 선교사들과는 다른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과 위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한 몸, 교회를 이루는 길을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이 땅에 두셨습니다.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인지 나타내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우리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이 ‘교회의 길’이 사람들을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곳에서 하나님께 순종하여 이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다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깨달음이 지극히 부족합니다. 많이 들었지만 혹은 항상 들었지만 알지 못하는 것은 성경을 의지하기 보다는 사람의 책이나 사람의 말, 지식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전하기까지 고민을 하였습니다. 오늘 이런 말씀을 가만히 앉아서 다시 한 번 듣고 나서 충분히 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들을수록 겸손해져서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진리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들을수록 그 진리와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는 분이 있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우리 모두에게 기름부음을 허락하셔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밝은 빛으로 하나님의 교회의 표준을 보고 각 사람이 말씀을 받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보기 위한 조건 로마서 1장부터 12장를 믿는 이들의 다양한 삶의 단계로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로마서 1,2장의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있음에도 나름대로는 믿음의 생활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로마서 3,4장에서 구원의 복음을 깨닫게 되어서 죄 사함 받은 기쁨을 누리지만,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 양 머물러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로마서 5,6,7장에서는 죄에서 해방되어 옛 생명은 죽고 새 생명이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을 깨닫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더 나아가 로마서 8장처럼 성령을 따르고 생명을 풍성히 누리면서 하늘을 유업을 소망하는 삶을 살기도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처럼 로마서 12장의 삶, 하나님의 교회의 모든 풍성을 누리는 삶이 있습니다. 저는 로마서 12장에 있는 교회처럼 몸의 생활을 누리는 그러한 무리에 있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필요를 채웠다면 교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열망하고 노력을 한다고 해도 모양만 갖출 수 있을 뿐 참된 교회의 길은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것은 어떤 특별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 전혀 아닙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알 수 있고 또 모두 다 갈 수 있는 그러한 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가 계시되어 우리 각자에게 나타날 때 다만 겸손히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롬 12:1,2) 로마서 12장 3절 이후로 나오는 한 몸에 대한 가르침 이전에, 바울은 1절과 2절을 먼저 언급합니다. 우리는 얼마 전에 이런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길을 가지 못하는 이유는 로마서 12장 1절과 2절, 이 두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배우나 깨닫지 못하고 교회의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제시된 말씀을 믿음으로 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다 진리이지만 단계가 있고 순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는 데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1,2절의 말씀대로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다음 말씀인 교회의 진리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내 자신을 드림 내 인생은 누구의 것입니까? 나의 시간과 나의 몸과 나의 모든 것은 과연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까, 아니면 내 자신의 것입니까? 어쩌면 고백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과 실제로 사는 것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입으로 어떻게 고백을 하든지, 실제로는 내가 나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고 내 생각대로 사는 한은 교회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진리들을 듣기는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헌신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전혀 어렵거나 무리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귀한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지 않은 무리는 하나님의 교회로써의 본질을 상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드리심으로 교회를 사셨습니다. 이것은 온 우주에서 가장 큰 대가가 지불된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우리들을 자신의 소유로 주장하시는 것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자신의 소유인 우리 몸을 억지로 드리라고 하지 않으시고, 자원함으로 주님께 드리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이들이 자신을 구원하신 목적을 알고 주님께 드리길 원하십니다. 이러한 무리를 통해서 주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우리가 교회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소유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 먼저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세상적인 생각에서 새롭게 변화를 받음 2절에서는 세상과 동화되는 것으로부터 생각을 새롭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은 매우 중요합니다. 생각하는 것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엉뚱한 행동이나 비뚤어진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그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세상과 같은 생각을 하면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하면 또한 그에 따른 행동을 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요란한 것들이 우리 가운데 없다고 해서 우리 속에 세상적인 것들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TV나 요란한 음악 같은 것이 없어도 얼마든지 우리 속에 세상이 충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속에서부터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말씀을 하시기 전에 우리에게 먼저 주시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어떤 모양으로든 세상이 들어오고 자리를 잡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세상과 일치하는 한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교회의 모습은 절대로 우리 가운데서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살펴봅시다.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권리를 인정하며 매일 새롭게 변화를 받는 삶을 살면서 아버지의 뜻을 얻고 입증하는 것이 교회를 이루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머리가 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머리가 합니다. 우리들의 경험과 관점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세상적인 생각으로 무장하게 됩니다. 반면에 그리스도를 우리들의 머리로 삼는다면 우리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실제적인 모든 것을 주장하시도록 내어드림을 통해서 세상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로 모일 때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셔야 함 그러므로 우리가 모일 때에 그리스도를 머리 삼고 모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의 믿음의 분량은 각각 다를지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을 머리삼아 모일 때(마 18:20), 우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흐르는 하늘의 생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들의 세상적인 생각들은 변화를 받아 새롭게 됩니다. 우리들이 경계해야 하는 것은 모임 때 주님을 머리 삼지 않고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모인다고 해서 무조건 주님의 임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 우리 각자가 겸손히 엎드리며 나올 때 주님은 우리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만약 우리들이 높아져 있다면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들의 모임에 주님의 임재가 없으면서도 주님을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주님을 만났다고 생각하며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만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께 드려진 믿는 이들의 모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머리 삼고 모여서 항상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생각이 변화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임재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성숙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의 진리를 받아 들여서 믿음의 길을 가는 모임 가운데는 주님의 나타나심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실제가 존재하게 됩니다. 이러한 단순한 진리와 표준의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3절 이후에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볼 수도 갈 수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길을 가는 것은 믿음과 계시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열심의 부족이 아닌 믿음의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주님이 하신 말씀에 따라서 믿음을 갖는다면 그는 주님의 일하심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각 사람이 교회의 길을 보아야 함 『내게 주신 은혜를 힘입어 너희 가운데 있는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3절) 12장 1절은 ‘형제들아’라고 부르면서 모든 형제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체 형제들을 향해 할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각 사람에게 할 말이 있었습니다. 3절에 보시면 바울은 너희 가운데 있는 ‘각 사람’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각자마다 믿음의 깊이는 다릅니다. 각자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정도도, 믿음 생활의 모습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믿음의 분량이 다른 각 지체들이 동일하게 취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각 사람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야 하는 말씀입니다. 헌신과 세상으로부터의 새롭게 된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 후에 이것에서 더 나아가 각 사람에게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들 속에 묻혀서 하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처음에는 여러 형제들이 함께 하며 같은 마음을 가지고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흩어지는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어떤 이들은 더 전진하기를 원하지 않고 어느 정도만 주님을 따르는 자리에서 머무르는 일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납니다. 그것은 먼저 믿음에서 차이가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러 번에 걸쳐서 같은 것을 말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판단, 같은 믿음을 가지라고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입니다(고전 1:10, 빌 2:2).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함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으로 자기에 대하여 생각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냉철하게 생각하라.』(3절) 우리가 특별히 주의해야 하는 생각이 있는데, 바로 ‘자기’에 대한 생각입니다. 생각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바르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자기에 대해서 정확하고 바르게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서 언제나 높은 점수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하나님 말씀처럼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으로 자기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 자기를 과대평가한다면 그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정직하게 보지 못하는 교만한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어떤 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으로 자기에 대하여 생각하는 대신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냉철하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믿음의 분량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분량이 큰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크고 좋은 것’만을 원합니다. 자기가 받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대신 다른 사람이 받은 것을 부러워하면서 시기와 다툼 가운데 힘들어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교회의 길이란 무엇입니까? 3절 이하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것처럼, 모두가 다 똑같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두신 그 자리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에 감사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주신 것 역시 감사하며 누리는 것입니다. 은사는 서로 시기하며 다투고 빼앗는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누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몸 안에서 손도, 눈도, 입도, 귀도, 발도 모두 서로가 서로를 돕고 위하며 한 몸이기에 조화롭게 활동하듯이 교회의 길도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자신을 높이는 것은 분명히 육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주님의 것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이 가지고 계신 겸손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이 있다면 교회의 길을 가는데 가장 큰 걸림이 되는 요소입니다. 우리들이 보고 있는 많은 교회들의 모습의 특징은 주님이 없고 육체가 만연합니다. 이러한 교회의 특징은 각자가 교만해져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 더 있어 보이고자 하기 때문에 교만한 것입니다. 교만은 주님이 주신 것이 아닌데 주님이 주신 것처럼 가장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주님이 주신 것에 따라서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몸인 교회 『이는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무를 갖지는 아니하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요, 각 사람이 서로 지체이니라.』(4,5절) 교만한 생각은 ‘나’를 중요하게 여기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내’가 아닌 전체적인 ‘몸’을 볼 때에 우리는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내가 남들보다 더 높아져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사람보다 훌륭해보여야 스스로 기쁘고 만족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하나의 ‘몸’ 안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손재주가 뛰어난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은 손만 정말 대단해!’라고 생각하기보다 우리는 ‘그 사람은 참 대단해!’라고 생각합니다. 손이 어떤 일을 잘 하는 것은 손만의 자랑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 즉 몸 전체의 자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속한 모든 지체도 그 몸 안에서는 함께 그 자랑을 누리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은 다르지 않습니다.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다르지 않고 같습니다. 생명이 같습니다. 속한 몸이 같습니다. 분리되어 각각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몸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몸 안에서의 지체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음 누군가 허름한 옷을 입고 머리는 부스스한데 눈 화장만 매우 화려하게 했다면, 그 사람의 눈화장을 멋있다고 칭찬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매우 이상하고 부자연스럽다고 여길 것입니다. 누군가 키가 크고 다리가 길다고 해서 값지고 멋진 바지를 입었는데 상의는 누더기를 입었다면 그 모습 역시 매우 이상할 것입니다. 이런 예를 드는 이유는, 우리의 모습이 그와 같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가장 알맞은 것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알맞은 자리에 두셨습니다. 자신이 몸 안에 있는 것이 맞다면 몸 안의 다른 지체들에게 주신 것은 모두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몸 안에 있는 지체들은 한 몸을 위하며, 또 그것은 각 지체들 서로를 위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지체들이 떨어져 나가고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본다면 매우 끔찍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몸인 교회에 서로 붙어있지 않고 분리되어 살아간다면 그것만큼 보기 싫은 장면도 없을 것입니다. 지체는 몸에 붙어 있으면서 주님이 주신 분량으로 서로를 섬깁니다. 모든 지체가 같은 직무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직무를 다할 때 건강한 몸의 활동이 있습니다. 지체들에게는 기능이 있습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이런 기능들을 귀하게 여기기 위해서는 다른 지체들의 기능들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와 다르기 때문에 시기하거나 무관심한 대신 감사하며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억지로 가장하며 분량 이상으로 넘어서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귀한 것을 나누어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정하며 감사하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모습과 같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 몸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가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본다면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몸을 귀하게 여기시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자신의 몸을 영광과 존귀로 옷 입히시는 분은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 몸이 귀하기 때문에 몸에 속한 각 지체들도 귀한 것입니다. 주님이 귀하게 여기실 뿐 아니라 내게도 꼭 필요하기 때문에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이것이 믿는 이들의 자연스런 삶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까? 자신의 몸의 모든 부분을 아끼고 사랑하고 돌보면서 살고 싶지 않습니까? 내 몸이 지체들을 뭔가 못마땅하게 여기고 받지 못하고 어려워하며 시기하고 미워하는 일을 그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면 오늘 본문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길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주님의 간청과도 같은 주님의 갈망이지만, 아무나 그 영광과 축복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각자가 자신을 주님의 소유임을 인정하고 주님이 각자에게 지정해 주신 위치를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교회가 얼마나 좋은 것임을 조금씩이나마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몸 안에서 머물면서 머리로부터 오는 공급을 자연스럽게 누리고 서로 서로 지탱하며 성장해나가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로마서 12장을 통해서 헌신을 자주 말하지만, 이러한 헌신이 어떠한 것인지 깊이 깨닫기 원합니다. 우리 각자의 헌신을 통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우리 자신을 자원하여 드릴 때에 우리는 성경에 기록하신 주님의 모든 뜻들을 자연스럽게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축복 가운데 들어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