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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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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구령
lhyunsik

개인 구령 - 부산 겅경 침례교회 서문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디모데전서 2:4에서 분명하게 제시되었다. 첫째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며, 둘째는 그들이 진리의 지식에 이르는 것이다. "개인 구령"에 앞서 알아야 할 사실들Ⅰ 그리스도인이 구령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역군으로서 기본적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구분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단지 구령은 그리스도인이면 마땅히 해야 할 일... "개인 구령"에 앞서 알아야 할 사실들Ⅱ 성경에서 영은 항상 바람, 혹은 공기로 비유됩니다(겔 37:1-14, 요 3:6-8). 영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으며(고전 2:11), 모든 동물에게도 공통적으로 있습니다(전 3:18-21). 성경이 가르치는 "구령"의 의미Ⅰ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혈과 육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에 대항하는 것입니다(엡 6:12). 성경이 가르치는 "구령"의 의미Ⅱ 성경적 의미에서의 구령과 전도는 (1) 관심이 있거나 또는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구체적으로 권유하고 "설득시키는 일"(persuading)입니다. 구령자를 위한 실천적인 지침들Ⅰ "지옥" 때문에 우리는 구령해야 합니다. 지옥은 한 장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큼 지옥을 강조하여 설교하신 분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지옥이 실재하는 장소가 아니라면... 구령자를 위한 실천적인 지침들Ⅱ 죄는 교리적으로 범하는 것(a transgression), 악(a evil), 위반(a violation) - 수용된 도덕적 종교적 사회적 규범에 대한 위반 등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구령자를 위한 실천적인 지침들Ⅲ 일정하게 정해진 시간에 구령해야 합니다. 이것은 효과적인 구령과 신실한 구령자가 되기 위한 방법입니다. 이것이 구령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 가운데 하나입니다. 구령자를 위한 실천적인 지침들Ⅳ "변화된 생활"이 전제될 때 구령할 수 있습니다(고후 5:17). 구령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어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 생명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 1.서문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디모데전서 2:4에서 분명하게 제시되었다. 첫째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며, 둘째는 그들이 진리의 지식에 이르는 것이다. 이미 첫번째 뜻에 부합된 사람들은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 위해 성경을 공부해야 할 것이다(딤후 2:15). 이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지식 안에서 자라가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들에 순종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는 육신의 출생을 통해서만 부모의 뜻에 따라 성장할 수 있다. 어머니의 태에서 아무리 선한 행위를 하려고 노력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머니의 배를 아프게 할뿐이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역사가 130여 년이 지났지만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서 교회를 다니는 소위 '교인들'이 너무도 많다. 경험적으로 판단해 볼 때, 현재의 기독교인들 가운데 약 90%는 정확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물론 다수의 사람들이 "구원"이라는 말과 "영접", "거듭남", "죄 사함", "회개", "구원의 확신"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바에 부합된 영적 상태에 서 있지 못하다. 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다가 결국 지옥에 가는 것인가? 우리는 주위에서 "언제 구원받으셨어요?"라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대답들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저는 저쪽에 있는 교회에 다닙니다." "아직 모르겠는데요, 교회에 좀 더 다녀 봐야죠." "전에는 교회 결석을 많이 했는데, 작년부터 열심히 다닙니다." "글쎄요 확실히 잘 모르겠는데요," "그 동안은 새벽 제단을 쌓지 못했는데 얼마 전부터 새벽기도를 하는 중에 마음이 평안해 졌어요," "그런 질문은 구원파라고 의심 받을 수 있으니까 조심해서 물어야 합니다." 이 외에도 이와 같은 종류의 여러 대답들이 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가? 지난 해 여름 어느 날 오후에 나는 보라매 공원에서 구령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과 구령 상담을 마치자 그것을 보고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젊은이 여기 좀 앉아 봐"하며 내 팔을 조금 힘있게 잡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영등포에 있는 큰 장로교회의 원로 장로라고 말했다. 그분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자신이 어려서부터 70여년 동안 교회를 다녔으며, 지금 다니는 교회의 목사도 자신에게는 잘 순종한다고 말했다. 그분은 자신이 친구들과 공원에 와서 가끔 술을 마신다면서 얼굴이 빨갛게 되어 기분 좋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젊은이 수고하네, 그런데 말야 이렇게 가끔 술을 마시는 것이 괜찮지 않은가?" 그분은 내게 동의를 구했다. 나는 "할아버지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할아버지는 죽으시면 하늘나라에 가실 수 있는 확신이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분은 "물론 있지, 나는 70년 동안 교회 다녔고, 원로 장로야, 나는 매일 회개하거든, 또 정도를 걸으려고 하거든," 참으로 70여 년의 교회 생활과 원로 장로라는 이름이 무색한 대답이었다. 왜 70여 년을 교회 생활에 정진한 원로 장로의 입에서 이러한 말이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말씀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호 4:1,6). 이것은 또한 마땅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경대로 전파해야 할 사람들이 구원의 정확한 말씀을 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지 성경에 있는 용어들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자격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로마서 10:14-15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한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파송되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와 같이 "화평의 복음을 전하며 좋은 일들의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하였느니라.](롬 10:14-15) 성경적인 복음에 무지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그 무지의 배후에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기 때문이다(고후 4:4). 사탄은 교회 밖에서 역살할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더욱 교묘하게 역사하여 교회를 통해 멸망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불안, 또는 개인에 따라 다른 어떤 특별한 이유 때문에 가까이 있는 교회나, 아는 사람이 다니는 교회나, 유명한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나, 혹은 큰 교회들을 찾아서 소위 '교인들이 된다. 그렇게 처음에 교회에 나가게 된 한 사람의 교회 생활은 어떤가? 그는 교회에 나가서 등록을 하고, 새신자반에서 성경 공부를 한다. '주일 성수'를 잘하려고 노력하며, 얼마 되지 않아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우게 된다. 모르던 찬송가도 부르게 되고, 서투르지만 기도도 할 수 있게 된다. 몇 달 정도 지난 후에는 학습도 받고 그 후에 세례도 받는다. 설교 중에 들려 오는 성경 책의 이름을 구약에 있는 성경인지 신약에 있는 성경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1년여 정도가 지난 후에는 집사도 된다. 그리고는 "언제 구원받으셨어요?"라는 질문에 "아무게 교회의 집사입니다."라고 대답한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상황에 1,2년 정도 교회 생활을 하면 자신이 어느 정도 구원받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구원에 대해 확신이 없는 그는 죄를 지을 때에 불안해 하기도 하고, 평안도 없다. 그러나 기도원에서 큰 소리로 혼미하게 기도할 때나 부흥회 기간의 며칠 동안 다소 안도하기도 한다. 그래서 소위 '새벽 제단'을 열심히 쌓기도 한다. 그렇게 10년이나 20년, 아니면 그 이상의 세월 동안 열성적인 교회 생활을 하면서 그는 안수 집사나 권사나 장로가 된 후에는 그 연수를 다하고 죽게 될 것이다. 그가 죽은 후에 과연 그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것은 고린도후서 13:5-6의 말씀에 따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버림받은 자들이 아닌 것을 너희가 아는 것이다.](고후 13:5-6) 대부분의 '교인들'이 처해 있는 종교 생활의 실상이 이와 같다. 왜 열성적인 종교 생활에도 불구하고 확신이 없는가? 그 이유는 정확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했으며, 구원의 영원한 보증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로마서 10:2의 말씀이 정확하게 적용된다. [내가 그들에 대해 증거하노니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열성은 있으나 지식을 따라 된 것은 아니니라.](롬 10:2)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우리 나라의 현실을 바로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세상의 신이 구축해 놓은 여러 종류의 연막과 갖가지 속임수와 거짓 가르침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굴복시키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하게 성경대로 전해야 한다. 우리는 구령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구령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6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의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우리 나라의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어떻게 구령해야 하는가?이미 많은 그리스도인이 구령과 전도의 일에 자신들을 드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함으로써 알 수 있듯이 신실한 구령자가 되고 효과적으로 구령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할 여러 부분들이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러한 필요들을 공급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전체 내용 가운데 성경적인 교리의 기반은 주로 피터 럭크만(Peter S. Ruckman) 박사와 클라렌스 라킨(Clarence Larkin)의 저서들을 참고했으며, 구령을 위한 실천적인 방법들은 버디 머프레이(Buddy Murphrey)의 와 잭 하일스(Jack Hyles) 목사의 에서 주로 참고하였다. 그 외에 존 라이스(John R. Rice)와 커티스 허트슨(Curtis Hutson) 등의 저서들을 참고했다. 또한 필자가 지난 10여년 동안 실전에서 얻은 구령의 경험들이 이 책을 쓰는 실제적인 기초가 되었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성경적인 실천을 위해 밥 존스 1세(Bob Jones Sr.)와 피터 럭크만 박사(Dr. Peter S. Ruckman)가 강조한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Cool Head Warm Heart"- Bob Jones Sr. "The warm heart for soul winning, the cool head for doctrinal correctness."- Dr. Peter S. Ruckman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필자를 포함해서 이 책을 읽는 모든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구령을 위해서는 따뜻한 마음을, 교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냉철한 머리를 조화롭게 지닐 수 있기를 바란다. =============================================================== 2."개인 구령"에 앞서 알아야 할 사실들 Ⅰ 그리스도인이 구령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역군으로서 기본적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구분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단지 구령은 그리스도인이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일뿐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정확히 수행하고 있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즉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는 사람들은 구령하는 일을 쉬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면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면 싫어하며, 하나님께서 나누시면 나누고, 하나님께서 합치시면 합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분리하신 것을 정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성경을 알 수 없습니다(딤후 2:15). 이와 같은 믿음의 실행은 구원받고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이나, 올바른 성경이 없을 때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지 않고 원치 않으시는 것을 행했으며, 하나님으로부터는 분리되어 있었고, 혼미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사람으로서 "성경대로 믿는" 구령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개인 구령"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실제로 개인 구령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미리 알아야 할 사실들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입니다. 이제 우리가 공부하는 "개인 구령"에 앞서 알아야 할 첫 번째 사실은 1. 사람이 "세 부분"으로 구성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분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도 반드시 구분해야 할 중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가 영과 혼과 몸에 관한 구분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영혼"과 "몸"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 존재'(Dichotomy)라고 기록하지 않고 "영"과 "혼"과 "몸"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존재"(Trichotomy)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과 히 4:12은 이러한 구분을 정확히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화평의 하나님께서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노라.](살전 5:2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느니라.](히 4:12) 성경 말씀대로 사람이 "세 부분으로 구성된 존재"라는 사실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다음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각 언어에는 인간에게 있는 세 개의 다른 부분들을 나타내는 말이 있으며, 그 말은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글 중국어 영어 히브리어 헬라어 영 靈 spirit 루아흐(ruach) 프뉴마(pneuma) 혼 魂 soul 네페쉬(nephesh) 프쉬케(psuche) 몸 身 body 바살(barsar) 소마(soma) 이제 "개인 구령"에 앞서 알아야 할 두 번째 사실은 2.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세 부분으로 분리된 존재로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창세기 1:26-27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대로(in our image) 우리의 모습을 따라(after our likeness) 사람을 만들자. 그리하여 그들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가축과 모든 땅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것을 다스리게 하자."하시니라.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in his own image)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in the image of God) 그를 창조하셨으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느니라. ](창 1:26-27) 창세기 1:26-27에 기록된 "우리의 형상대로"(in our image), "우리의 모습을 따라"(after our likeness), "자신의 형상대로"(in his own image), "하나님의 형사대로"(in the image of God)라는 말은 어떤 뜻이겠습니까? 사람이 창조된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인데, 하나님의 형상이 어떤 것이기에 사람이 그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이겠습니까? 신학자들과 목사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도덕적 성품을 지니고 있다거나, 이성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거나, 또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성경을 배격하는 세상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창세기 1:26-27의 "하나님의 형상"은 한 인격(a person)으로 대표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히브리서 1:1-3, 고린도후서 4:4, 골로새서 1:15,2:9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여러 번에 걸쳐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를 통하여 그분께서 세상들을 지으셨느니라.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케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있는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니](히 1:1-3) [그들 가운데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고후 4:4)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첫태생이시니](골 1:15) [그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몸의 형태로 거하시나니](골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은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골로새서 2:9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격(Godhead)의 모든 충만함이 몸의 형태로 거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신격"이라함은 삼위일체 하나님(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뜻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의 형태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총체적인 모습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세 부분으로 분리된 영역"을 지니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 삼위일체(Trinity),신격(Godhead)이라는 말은 아버지 하나님(God the Father), 아들 하나님(God the Son), 성령 하나님(God the Holy Spirit)의 구분을 뜻하며-특히 형상이라고 할 때의 세 부분은 하나님께서 각 "위"(격)에 맞는 영, 혼, 몸의 구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27의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셨으며]라는 말씀은 인간이 영, 혼, 몸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개인 구령"에 앞서 알아야 할 세 번째 사실은, 3.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하나님께 영, 혼, 몸의 구분이 있으신 것처럼 사람이 영, 혼, 몸의 세 부분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창세기 2:7의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다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창 2:7) 창세기 2:7의 "흙"은 "몸"입니다(창 3:19, 전 3:20; 12:7). [네가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해졌음이;라. 너는 흙이니 너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하시니라.](창 3:19) [모두가 한곳으로 가나니, 모두가 흙에서 왔고 모두가 흙으로 다시 돌아 가도다.](전 3:20) [그때에 흙은 예전에 있던 대로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전 12:7) 창세기 2:7의 "생명의 호흡"(the breath of life)은 "영"입니다(겔 37:1-14, 특히 37:5,6,8,9,10,14, 요 3:6-8). [주 하나님이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숨(breath)이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내가 너희 위에 힘줄을 놓고, 너희 위에 살을 자라게 하고, 피부로 덮고 너희에게 숨을 넣으리니, 너희가 살리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리라." 하시니라.](겔 37:5-6) [내가 보았더니, 보라, 힘줄과 살이 그 뼈들 위에 오르고, 피부가 그 위를 덮었으나, 그들 속에 숨이 없더라. 그때에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바람에게 예언하라. 인자야, 예언하여 바람에게 말하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오 숨아, 네 바람으로부터 와서 이 살해된 자들 위에 숨을 넣어 주어 그들로 살아나게 하라." 하시니라. 그래서 내가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예언하였더니, 숨이 그들 속으로 들어갔고, 그들이 살아나 그들의 발로 서니, 심히 큰 군대더라.](겔 37:8-10) [내 영을 너희 안에 두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살리라. 또 내가 너희를 너희의 본토에 두리니, 그때에 너희는 나 주가 그것을 말하였고, 수행한 줄 알리라. 주가 말하노라.](겔 37:14)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내가 너에게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고 하시니라.](요 3:6-8) 창세기 2:7의 "살아 있는 혼"은 기록된 그대로 "혼"입니다(창 2:7).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다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창 2:7) 이와 같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영, 혼, 몸)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사람은 영이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영은 성령님(느낄 수 있으나 볼 수 없는 분)입니다. 또한 사람은 혼이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혼은 아버지 하나님(느끼거나 볼 수 없는 분)입니다. 그리고 또한 사람은 몸이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느끼고 볼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영과 혼과 몸을 나누어서 이해해야 하며, 성경의 많은 부분을 이러한 구분과 연결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영과 혼과 몸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겠습니까? =============================================================== 3."개인 구령"에 앞서 알아야 할 사실들 Ⅱ 이제 성경은 영과 혼과 몸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 개인 구령을 위해 알아야 할 네 번째 사실들입니다. 4. "영"과 "혼"과 "몸"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영"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성경에서 영은 항상 바람, 혹은 공기로 비유됩니다(겔 37:1-14, 요 3:6-8). 영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으며(고전 2:11), 모든 동물에게도 공통적으로 있습니다(전 3:18-21). 사람이 죽으면 영은 그 소유주이신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십니다(전 12:7).[참고 - 창세기 2:19] [사람의 일을 그 사람 안에 있는 사람의 영이 아니면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아무도 모르느니라.](고전 2:11) [내가 사람들의 아들들의 지위에 관하여 내 마음 속에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들을 드러내시리니, 그들은 자신들이 짐승들이라는 것을 볼 것이라." 하였도다. 이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닥치는 일이 짐승들에게도 닥침이니, 곧 한 가지 일이 그들에게 닥치는도다. 하나가 죽는 것처럼 다른 것도 죽으니, 정녕, 그들 모두가 한 호흡을 가졌도다. 그러므로 사람이 짐승보다 월등함이 없으니, 이는 모든 것이 헛됨이라. 모두가 한곳으로 가나니, 모두가 흙에서 왔고 모두가 흙으로 다시 돌아가도다.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누가 알리요?](전 3:18-21) 그런데 "타락 이후" 인간의 영은 "죽은 영"이 되었으며(창 2:17, 엡 2:1, 창 5:1-4), 그 결과 영은 "다시 태어나야"합니다(요 3:3,5).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이것이 아담의 세대들에 관한 책이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모습으로 그를 지으셨으니, 주께서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으며,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의 이름을 아담이라 부르셨느니라. 아담이 일백삼십 년을 살며, 자기 모습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불렀더라.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창 5:1-4) [허물과 죄들 가운데 죽었던 너희를 그가 살리셨으니](엡 2:1) 이 말씀들은 사람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지만 타락한 이후에 아담은 자신의 모습대로, 즉 그의 형상을 따라 자녀를 낳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면 처음에는 영, 혼, 몸이 살아 있는 상태로 창조되었지만 타락 이후에 창세기 2:17과 에베소서 2:1의 말씀에 따라 영이 죽은 상태(state)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거듭날 때, "거듭나는 것"은 혼이 아니라 "영"입니다(요 3:6). 이 시대에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죽은 영"을 지닌 살아 있는 육체일 뿐이며 이들은 죽은 자로 여겨집니다(엡 2:1-3, 마 8:22, 눅 9:60). 반면에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썩어질 몸 안에 살아 있는 영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롬 6:2-10, 요 3:6). [허물과 죄들 가운데 죽었던 너희를 그가 살리셨으니, 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은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우리 육신의 정욕대로 행하였으며, 육신과 마음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느니라.](엡 2:1-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라. 그리고 죽은 자들로 그들의 죽은 자를 장사지내게 하라."고 하시니라.](마 8:2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들로 그들의 죽은 자를 장사지내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시니라.](눅 9:60) 마태복음 8:22과 누가복음 9:60에서 처음에 언급된 "죽은 자"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아담의 형상을 따라 태어난 영이 죽은 사람들을 말하며, 뒤에 있는 "죽은 자"는 실제적으로 몸이 죽은 사람을 말합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것(하나님에 대하여 활동하지 못하는 것)이며, 악령이나 마귀에 대하여, 그리고 죄에 대하여는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소멸(annihilation)된 것이 아닙니다. 영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communion), 직관(intuition), 양심(conscience) 등의 "역할"을 합니다. (2) "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혼은 사람의 몸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 몸의 모양(bodily shape)이며(계 6:9-11), 완전히 타 버리지 않은 채 몸의 형태로 영원히 지옥에서 타게 됩니다(눅 16:19-31, 마 10:28). 혼은 개인마다 다른 특성을 지닌 개인적인 피조물이며, 몸의 어느 곳(심장이나 뇌)에 있는 땅콩 모양의 조그마한 물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혼은 단지 몸의 형태만을 지니고 있는 보이지 않는 모습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이 말하는 "자아"(ego), 곧 각 개인의 "나"입니다. [어린 양이 다섯째 봉인을 여실 때 내가 보니, 제단 아래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 때문에 죽임당한 자들의 혼들이 있는데, 그들이 큰 음성으로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오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여,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을 심판하시어 우리의 피를 갚아 주실 날이 얼마나 남았나이까?"하더라. 그러자 그들 각자에게 긴 흰 옷을 주시면서, 그들의 동료 종과 형제도 그들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가득 채워질 때까지 잠시만 더 쉬라고 말씀하시더라. ](계 6:9-11) [또 너희는 몸은 죽일 수 있으나 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차라리 혼과 몸을 모두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그분을 두려워하라.](마 10:28)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요,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라.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매일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더라. 또 나사로라고 하는 어떤 거지가 있었는데, 온 몸에 헌데가 난 채, 그 부자의 문전에 누워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기를 바라니,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더라. 그러다가 그 거지가 죽었는데,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겼고, 그 부자도 죽어서 장사되었더라.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에, 눈을 들어 저 멀리 아브라함을 보았더니(혼은 눈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그의 품에 있는지라, 그가 소리질러 말하기를(혼은 소리질러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시어, 그가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내 혀를 식히게 하소서(혼은 혀도 있고 갈증도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실제적인 몸은 잠시 불타다가 없어지지만 혼은 몸의 형태를 가지고 영원히 불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라고 하니,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아이야, 너는 네 생전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나쁜 것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느니라. 이 모든 것 외에도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커다란 구렁이 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하여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로 건너오고자 하여도 올 수 없느니라.'고 하더라. 그가 말하기를 '그러면 아버지여, 내가 당신께 간구하오니, 당신께서 나사로를 내 아비 집에 보내어 주소서. 나에게 다섯 형제가 있으니, 그가 그들에게 증거하여 그들로 이 고통의 장소에 오지 않게 하소서.'(혼은 연민을 느낄 수 있으며, 사랑을 지니고 있습니다.)라고 하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기를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서 듣게 하라.'고 하시더라.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아니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누군가가 죽은 자들로부터 그들에게 가면 그들이 회개하리이다.'(혼은 구체적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기를 '만일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비록 누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다 해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니라.' 하니라."고 하시니라. ](눅 16:19-31) 첫 사람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그의 몸에 혼을"느슨하게" 담고 창조되었습니다(분리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 후에 혼은 몸과 결합되었습니다. 구약에서 혼이라는 말은 몸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데(레 22:6), 이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혼과 몸이 밀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골로새서 2:11의 육신이 되었기 때문에 영적 할례가 필요하게 됩니다(골 2:11) - [또한 너희가 그의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그리스도의 할례로 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 버린 것이라.] 그 결과 교회 시대에 구원받은 사람은, 즉 그의 영이 거듭났고, 혼과 몸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요일 3:8-9) -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이는 마귀가 처음부터 죄를 짓기 때문이라. 이 목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셨으니, 곧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려는 것이라.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거함이요, 또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라.] 이 시대에 사는 사람의 혼은 그가 죽는 순간 그의 몸을 떠납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혼은 하늘로 가고,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혼은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1:9의 말씀에 따라 구원받은 것은 영이 아니라 "혼"입니다. - [이는 너희 믿음의 결과, 곧 너희 혼들의 구원을 받음이니라.] 혼은 일반적으로 의지(will), 지성(reason/ mind), 감성(emotion) 등의 "역할"을 합니다. (3) "몸"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몸, 즉 육신은 단지 몸(육신)일 뿐입니다(롬 7:18). 몸은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 등의 역할을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육신의 "장막"(고후 5:1-4, 벧후 1:13,14)에 거할 때에는 죄에 노출되어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몸이 무엇인가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혼"은 구원받았고 "영"이 거듭났지만, 몸은 앞으로 주님께서 오실 때에 변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몸의 구속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롬 8:11,19-23). 이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썩지 아니하고, 하늘에 속하는 , 새로운 몸을 입게 됩니다(요일 3:1-2, 빌 3:20-21). [모든 창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받는 것을 우리가 아노니, 그들뿐만 아니라 성령의 첫열매들을 가진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되는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느니라.](롬 8:22-23)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 하셨는가.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나니, 이는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 그대로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3:1-2)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오실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리라.](빌 3:20-21)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영적인 세계의 법칙은 영이 혼을, 혼이 몸을 주관하는 것입니다(롬 8:1-14). 그런데 각 사람의 영이 어떤 영의 인도를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우선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생명의 성령께서 내주 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안에 내주 하시며 그들의 영을 주관하시면, 그들의 영이 그들의 혼을 주관하고 그들의 혼이 그들의 몸을 주관하게 됩니다.(여기서 주관하는 주체는 성령님이시며 그 과정에 혼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사탄의 영이 그들의 영을 주관하고 그들의 영이 혼을, 혼이 몸을 주관하기 때문에 결국은 사탄의 종으로서 생각하고 활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전혀 사탄의 영향을 받지 않겠습니까? 만일 그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 그의 혼이 성령님께 순종하지 않으며, 즉 성령님의 역사를 그의 의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즉시 사탄의 주관 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의 충만한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야 하며, 이것이 곧 사탄에게 승리하는 사람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혼이 그의 영을 통해 들려 오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할 때에만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과 혼과 몸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사실들을 온전히 이해했다면, 이제 "구령"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며, "개인 구령"은 어떤 것인가를 선명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구령할 때에 구령의 대상과 그 배후의 세력, 그리고 그 특성들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통해 효과적인 구령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3.성경이 가르치는 "구령"의 의미 Ⅰ 1. 혼을 이겨 오는 일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혈과 육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에 대항하는 것입니다(엡 6:12). 이런 연유로 성경은 고린도후서 10:3-5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육신 안에서 행하지만 육신을 따라 싸우지는 아니함이니,(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을 통하여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리는 능력이라. 여러 가지 구상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하여 스스로 추켜세운 모든 높은 것들을 무너뜨리며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니] 이와 같은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가 "구령"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우주에 두 개의 "영적인 진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두 개의 영적인 진영 가운데 하나가 "마귀의 진영"입니다. 요한복음 8:38과 8:44은 아버지가 마귀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와 함께 본 것을 말하되 너희 아비와 함께 본 것을 행하는도다."라고 하시니라](요 8:38)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와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자기 안에 진리가 없음이라. 그가 거짓말을 할 때는 자신에게서 우러나와 한 것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라](요 8:44) 모든 사람들은 '육신적인' 아버지들을 통해 태어남으로써 마귀의 진영에 속하게 되는데, 육신의 아버지들은 모두가 아담의 후손들입니다. 창세기 5:3은 아담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리고 아담의 형상을 따라 타락한 죄인으로서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창 2:17, 엡 2:1-3, 마 8:22, 눅 9:60). 그러므로 아담으로부터 사람들은 죄를 물려받으며, 죄의 결과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고전 15:22)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롬 5:12)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이와 같이 아담 안에서 육신적인 출생만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은 마귀를 아버지로 하는 마귀의 진영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라 할지라도" 이 시대에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이 진영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진영"에 속하게 되는 데, 성경은 이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때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2:19과 요한복음 1:12,13 말씀은 하나님의 가족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더 이상 나그네도 타국인도 아니요, 오히려 성도들과 같은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니라](엡 2:19)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서 믿은 결정을 말 합니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그들은 혈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또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였고(육신적인 탄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영적인 출생을 말합니다)](요 1:12-13)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영이 거듭남으로써 하나님의 가족에 속하게 되는 데, 이것은 하늘의 아버지에 의한 영적인 출생입니다(요 3:3). 육신적인 출생으로(물에 의한 출생 - 요 3:5) 육신의 아버지의 가족이 된 것과 같이 영의 새로운 출생으로(성령에 의한 출생 - 요 3:5)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요 3:6).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요 3:6) 그러므로 새로운 출생의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게 되며,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생을 가졌나니](요6:47),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요 3:36), [그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요일5:12), [이로써 우리에게 지극히 크고 귀한 약속들을 주심은 너희로 하여금 이 약속들을 통해서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타락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벧후 1:4) 이와 같이 당신이 마귀의 진영으로부터 성별되어 하나님의 진영 안에 있다면 당신의 몸은 당신 자신의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의 것이며, 성령의 전입니다. 즉 "성전" 인 것입니다. 교회 건물이 상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는 당신의 몸이 성전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9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또한 고린도후서 6:14-18의 말씀은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과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그 신분이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17,18은 새로운 출생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그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스스로 우리와 화해하셨고 화해의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 말씀과 같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롭게 되었으며.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에서 새로운 관계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령이란 이 우주에 있는 두 개의 영적인 진영 가운데 마귀의 진영에 속해서 있던 사람들(혼들, souls)을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대적자 사탄의 소유와 그의 지배로부터 하나님의 진영(나라, 소유)로 옮겨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사탄과 그의 악한 세력들의 관장 하에 있는 사람(혼-의지, 지성, 감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그의 혼(의지, 지성, 감성)이 항복하게 함으로써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오는 것(delivering), 즉 하나님의 말씀의 칼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의지와 지성과 감성을 관장하는 영적 악의 세력인 사탄과 싸워 그 사람 (혼)을 이겨 오는 일(winning)입니다. 잠언 11:30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의 나무니, 혼들을 이겨오는 자는 현명하니라.](잠 11:30) 일반적으로 현재에는 "구령"이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지만, 이 용어가 처음에 사용되기 시작할 때에 성경에서 제시 하는 영과 혼과 몸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구령"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구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제안하지만, 이 용어는 "영"을 "혼"으로 대체했을 뿐이지 혼을 "이겨 온다"는 의미를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령"에 대한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그대로 반영하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혼을 이겨 오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겨오는"이라는 말을 단지 "이긴다"는 말로 사용하는 것은 분명한 표현이 아닙니다. 잠언 11:30의 "winneth"는 사탄과 싸워 이겨서 그의 진영으로부터 하나님의 진영으로 옮겨오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겨 오는"이라는 말이 타당하며, 마지막에 "이겨 오는 일"이라는 표현 역시 요한복음 6:29에 근거해서 "이겨 오는 것"이라는 불특정한 표현보다 정확하고 타당한 표현이 될 것입니다. "구령"은 일정한 한 시간에 확실한 한 구주를 일정한 한 사람이 받아 들이도록 의도하는 일정한 한 노력입니다. 그러므로 "구령"은 하늘에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기 위해서 한 사람을 얻으려고 증거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개인 "구령"(personal "soul winning")이라는 표현 이외에 개인 "증거" (individual /personal "witness")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또한 사도행전 21: 18에서는 "전도자"라는 말이 "좋은 소식을 알리는 사람"으로 설명되는데, "전도자"(evangelist )나 "복음 전도"(evangelism)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개인 증거"나 "복음 전도"라는 말은 "개인 구령"을 포함하는 넓은 뜻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에, 즉 교회에 주셨기 때문에(엡4: 11)지역 교회의 목자(pastor)는 전도자의 일 을 함께 수행해야 합니다,-[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며, 전도자의 일을 하고 네 직무를 완수하라.] (딤후 4:5) ================================================================ 4.성경이 가르치는 "구령"의 의미 Ⅱ 2. 구령과 전도 성경적 의미에서의 구령과 전도는 (1) 관심이 있거나 또는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구체적으로 권유하고 "설득시키는 일"(persuading)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권유하노라.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나타내어졌으며 나는 또 너희 양심에도 나타내어졌기를 바라노라.](고후 5:11) [그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변론하며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설득시키니라.](행 18:4) (2) 마음이 준비된 사람이든지. 마음이 강팍한 사람이든지 그들을 복음을 통해 "낳는 일"(begetting)입니다. [이는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명의 스승을 가졌을지라도 아비들은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참고] 이사야 66:8 [비교] 갈라디아서 4: 19 (3) 사람들을 "돕는 일"(helping souls)입니다. 이것은 전도지, 책, 카세트 테이프, 비디오 테이프, 또는 영화 등을 전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또는 선교사들과 선교 사역을 지원하는 것, 올바로 복음을 증거 하는 라디오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 등을 포함합니다. (4) 사람들을 "데려오는 일"(bringing souls)입니다. 즉 복음의 분위기로 이끄는 것, 교회와 부흥 집회에 인도하는 것, 설교자나 어떤 구령자에게 상담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 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시하는 전도지나 책자나 교회나 상담자들이 드문 우리 나라의 상황에서 사람들을 "전도" 한다는 것은 성경적인 의미가 거의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전도"라는 말은 성경이 제시하는 "전도"와 "구령"과는 동떨어진 말과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의 상황에서는 "구령"이라는 말과 그 의미를 거의 알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 나라의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 전도"는 상대방이 최종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까지는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이 제시하는 "전도", 즉 고린도전서 1:21,23의 말씀은 구원의 복음을 "설교"(preaching)함으로써 믿도록 이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 (preacging)의 어리석음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느니라...우리는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노니(preach).....](고전 1:21,23) 그러므로 현재 우리 나라의 복음 전파 사역은 성경적 의미에서 판단할 때 거의 불모지와 같습니다.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결론은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90%는 분명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대부 분의 "교인들"이나 "비교인들"도 정확한 은혜의 복음을 듣거나 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올바른 성경을 정착시키는 일과 함께 우선적으로 지옥의 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성경대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3. 개인 구령과 거리 설교의 조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개인 구령을 하는 것 외에 거리 설교를 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개인 구령과 거리 설교는 각각의 장점들을 가지고 있으며, 증거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할 부분들로서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 구령은 일정한 시간에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파하여 가시적으로 열매를 얻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개인 구령은 말 그대로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일대일의 개인적인 상담을 통해 상대를 구원으로 이끌기 때문에 상대가 구원받은 직후에 구원의 확신과 변화된 생활, 그리고 교회로 인도하는데 있어서 거리 설교보다는 효과 적인 사역입니다. 그래서 개인 구령은 거리 설교에 비교하면 한 개인에게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거리 설교는 일정한 시간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개인 구령을 통해 누 군가에게 믿음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보다도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계기를 줄 수 있다 는 점에서 개인 구령보다는 효과적입니다. (가시적으로 확인 할 수는 없지만 그 열매는 개인 구령보다 많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개인 구령과 거리 설교를 함께 병행해야 합니다. 직장이나 학교 및 전철이 나 버스 등에서 개인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개인 구령일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혼자서도 설교할 수 있는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위와 같은 장소나 공공 장소에서 여러 명의 형제. 자매들이 함께 있을 때에는 거 리 설교와 개인 구령이 동시에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즉 거리 설교를 통해서 개인 구령과 설교의 장점을 모두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설교를 하면 상황에 맞게 한 두 사람은 전도지를 나누어 줄 수 있으며, 다른 한두 사람은 주의해서 듣거나 관심을 표시하는 사람들을 한 쪽에서 개인 구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역을 위해서는 최소한 네 명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그러므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증거 하는 삶을 효과적으로 실천 하는 것은 두 가지를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병행하는 것입니다. 거리 설교를 할 때에는 장소에 따라서 설교의 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전철 등과 같이 일정한 시간 동안 꾸준히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곳에서는 죄와 사망과 지옥과 보혈에 대해 복음을 체계적으로 전개해서 사람들을 초청하여 기도하게 하는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거리나 버스 정류장 등과 같이 사람들이 짧은 시간 동안 이동하는 곳에서는 위와 같은 설교는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그러한 곳에서는 한 두 문장마다 사람들에게 찔림을 주거나, 믿 고자 하는 계기를 줄 수 있거나, 그리고 죄나 사망이나 지옥이나 보혈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설교를 한 두 문장에 집약해서 선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한 두 마디가 깊게 남아서 그들에게 역사 할 수 있으며, 그것에 귀를 기울이고 듣는 사람이 있게 되고, 효과적으로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효과적인 거리 설교에 관해서 구체적인 공부하기 원하시면 제랄드 수텍(Gerald Sutek)의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5.구령자를 위한 실천적인 지침들 Ⅰ 1. 구령을 위한 동기 (1) 사람들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해야 하기 때문에 구령해야 합니다. "지옥" 때문에 우리는 구령해야 합니다. 지옥은 한 장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큼 지옥을 강조하여 설교하신 분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지옥이 실재하는 장소가 아니라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거짓말의 보고일 것입니다. 지옥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또한 믿는다면 우리는 구령해야 합니다. 지옥은 무덤이 아니라 불 가운데서 실제로 고통받는 곳입니다. 시편 9:17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러하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어둠과 영원한 고통이 있는 불못 가운데서 영원을 보내기 위해 그들의 삶을 보내는 사람들을 볼 때, 지옥의 고통과 형벌을 진정 믿는다면 구령해야 합니다. 고속도로에서 불타고 있는 차를 바라볼 때, 그 안에서 소리치는 사람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을 때,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옥의 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비행기가 착륙할 때 사고로 인해 비행기는 불타고 있었고, 의자 밑에 발이 끼어 있던 한 사람이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내 다리를 잘라." "내 다리를 잘라." 그는 불에 타서 죽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리를 잘라 줄 사람은 없었고 그는 불 가운데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의자 밑에 끼어 있었고 그를 꺼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구원받기 전에는 지옥에 가야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을 안다면 사람들을 지옥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노력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구령"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죽으면 무덤만이 아니라 지옥으로 갑니다. 끝이 아니라 영원한 형벌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구령"입니다. 구령자는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들에 대한 강한 연민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126:5,6의 말씀처럼 "눈물로"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밤낮 울었던 예레미야의 모습을 기억하십니까?(렘 9:1)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마 23:37)우리는 사도행전 20:31에서 바울이 삼 년 동안 밤낮으로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성도들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그렇게 했던 것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령자는 잃어버린 바 된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시편 기자와 예레미야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공유할 때에 형식적인 구령을 탈피하여 간절한 기도와 열정으로 구령할 수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받는 면류관을 소망한다면 구령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이 헛됨을 인정한다면 당신은 구령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믿는다면, 상을 바라본다면 구령자가 되는 것입니다(고전 3:10-15). 고린도전서 3:10-15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현명한 건축가와 같이 기초를 닦았더니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지으니라. 그러나 각 사람은 그 위에다 어떻게 지을지 주의해야 할 것이라. 이 닦아 놓은 기초 외에 아무도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시라. 이제 누구든지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짚이나 그루터기로 지으면 각 사람의 일한 것이 나타나게 되리니 그 날이 그것을 밝힐 것이라. 이는 그것이 불로써 드러나고, 또 그 불은 각 사람의 일한 것이 어떤 종류인지를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일한 것이 세운 그대로 있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의 일한 것이 불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게 되지만 불에 의해서 그렇게 되리라.} 로마서 14:10-12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 이는 기록된 바 "주가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고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들에 관해 직접 설명하리라.} 고린도후서 5:8-10 {우리가 자신에 차 있으니, 정녕 몸에서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을 오히려 원하노라. 이 때문에 우리가 애쓰는 것은 거하든지 떠나 있든지 그 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바라는 것이라.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이든지, 각자가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데살로니가전서 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오실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을 너희가 아니겠느냐?} 시편 126:5-6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귀한 씨를 가지고 나가서 우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의 단들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히브리서 11:6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 (3) 교회를 강성하게 하기를 원한다면 구령해야 합니다. ① 구령하는 것은 형제를 격려하고 도전을 주는 것이며, 세워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령해야 합니다. 구령한 사실에 대한 간증은 그것을 듣는 형제, 자매들에게 어떤 설교보다도 강한 도전과 변화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② 구령하는 것은 신약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따르는 것입니다(고전 4:15). 그리스인들은 성경 필사본을 코덱스(Codex) 형태로 만들었는데, 이것은 성경을 읽고, 찾고, 휴대하기에 용이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바로 거리의 설교자들이, 구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만든 것입니다. 사도행전 8:30, 35 {그러므로 빌립이 거기로 달려가니 그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는지라, 말하기를 "당신이 읽고 있는 것을 이해하느뇨?" 하니... 빌립이 입을 열어 이 성경에서 시작하여 그에게 예수를 전하니라.} 빌립보서 1:14-18 {그리하여 주 안에 있는 형제들 중에서 많은 사람이 나의 갇힘으로 인하여 확신이 커져서 두려움 없이 더욱 담대히 말씀을 전하였느니라.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시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선한 뜻에서 전파하니 저들은 나의 갇힘에 고난이 더하여질 줄로 짐작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 이들은 내가 복음을 지키려고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전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가식으로나 진실로나 무슨 방법으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것으로 내가 기뻐하며 앞으로도 기뻐하리라.} ③ 구령하는 것은 교회를 양적, 물질적으로도 강성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지역 교회가 교회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 (4) 구령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구령해야 합니다. 구령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입니다. 구령은 특정한 사람들만이 하는 특별한 은사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이나 로마서나 어는 서신서에서도 구령이 특별한 은사로 언급되지 않습니다. 구령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순종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명령된 계명으로 주어진 어떤 것을 순종하지 않는 것과 같이 죄입니다. [참고 연구] 명령 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에 그 말씀에 순종하여 구령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느니라. 이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면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판단하기 때문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산 자들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에게 말씀을 통해 강권하십니다. 사도 바울의 예를 로마서 9:13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구령하지 않는 것은 우리를 강권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억누르는 것입니다. (육신 ↔ 성령, 로마서 8장을 참고하십시오.) ⓐ 구원의 체험이 우리를 강권합니다(고후 5:17). 언덕 위에 있는 불꽃이 감추어지지 않습니다. (예) 안드레, 빌립, 사마리아 여인, 바울. ⓑ 복음이 우리를 강권합니다(롬 1:16). ⓒ 지옥에서의 요청이 우리를 강권합니다(눅 16:27-28). ② 하나님께서 주신 화해의 직분과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구령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18-20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그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스스로 우리와 화해하셨고 화해의 직분(the ministry of reconciliation)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과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겨 주신 것이라.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들(ambassadors for Christ)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신 것같이 우리도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해하라.} ③ 빚진 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구령해야 합니다. 로마서 1:14-16 {헬라인들이나 야만인들이나 지혜있는 자들이나 어리석은 자들에게나 내가 다 빚진 자로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참고] 에스겔 33:8-9, 야고보서 5:19-20. 2. 구령하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 (1) 상대방의 반응에 대한 두려움이 구령하지 못하게 합니다. 상대방이 "화를 낼 것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큽니다. 이를 극복하고 구령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신뢰하고 담대하게 구령하는 것입니다. 이때 구령자는 친절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어떤 것에 대해 칭찬할 것이 있으면 칭찬을 합니다. 그리고 전하고 있는 복음이 중요한 것이라는 확신이나 느낌을 주어야 합니다. 또한 호칭에 주의하여 이름이나 적당한 호칭을 정확하게 발음해야 합니다. 주의할 것은 복음의 내용이나 복음 자체에 관해서 그들이 거부하고 화를 낸다면 그것을 수용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것을 수용하려고 한다면 진리를 가리는 것이며, 이것은 타협인 동시에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2)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의식과 두려움이 구령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1번에서 했던 것처럼 기도하고 평안을 유지한 상태에서 담대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3) 구령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구령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구령하는 방법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령할 때 자주 사용되는 성경 구절들을 암기하거나 자신의 성경에 표시함으로써 구령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당신은 지금 이것을 하고 있습니다.) 또는 다른 구령자들과 함께 구령함으로써 그러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3. 구령하지 못하고 실패하게 하는 마음가짐 (1) 무능력하다고 느끼는 마음가짐은 구령을 실패하게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육이나 재능의 결핍 때문에 무력하다고 느끼는 비관적인 마음가짐을 갖습니다.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어떻게 할 지 모르겠어," "나는 아는 것이 없어" 등의 독백을 하는 것은 구령을 실패하게 하는 원인입니다. (2) "구령하도록 이끌린다"고 느끼지 않는 마음가짐은 구령을 실패하게 합니다. 우리 생활의 영역은 "이끌리는 느낌"이 주도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끌린다고 느끼든지 안 느끼든지 당연히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느낌에 좌우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겠습니까? 순종함으로 느낌을 좌우하겠습니까? (3) 구령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은 구령을 실패하게 합니다. 이것은 구령하러 가는 것이 별로 유익하지 않다는 마음가짐이기도 합니다. "구령은 좋지만 나는 다른 일도 너무 많고 바빠서," "나는 종일 일을 했기 때문에 여가 시간을 좀 보내야 돼,"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을 거야," "시간만 낭비 할거야" 등의 생각이 구령을 못하게 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구령이 중요한 것이라는 판단이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매일 해야 할 일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쉼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하되 구령이 생활의 계획 가운데 들어가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 다른 일의 변화에 따라서 행해지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구령이 우리의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는가가 문제의 해결점입니다. 리 박사(Dr. R.G. Lee)는 이렇게 말합니다 : "구령을 우연적이고 흔히 있는 일(a incidental matter)로 보지 말고 하나의 사업(a business)로 보라. 놀이(play)가 아니라 일(work)로서, 시간을 낭비하는(waste) 것이 아니라 유용하게 보내는(spend) 것으로, 지루한 의무(a boresome duty)가 아니라 특권(a privilege)으로 여기라." (4) 성령님께서 이끌지 않으면 구령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마음가짐은 구령을 실패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이끌지 않으면, 즉 하나님의 선택적 역사가 없으면 나의 수고가 무익하다는 마음가짐이 그러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는 이유는 요한복음 6:44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증거 하기 시작할 때에 성령께서는 사람들에게 역사하시고 그들을 이끄십니다. 당신이 구령할 때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지 당신이 구령하기 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어떤 사람을 이끄시기를 기다리지 말고 당신이 다가가 증거 함으로써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면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복음을 증거"하려고 하는" 순간에 상대에게 역사하는 하시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는" 순간에 역사하십니다. (5) 준비된 (마음을 지닌) 사람만 구령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구령을 실패하게 합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나 가서 증거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신, 준비된 마음을 지닌 그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돼"라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입니다. 물론 준비된 사람은 그 마음이 무르익어 있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구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만으로, 이러한 마음가짐만으로 구령에 임하게 되면 진지하게 복음을 듣고서 구원받을 사람들을 놓치게 됩니다. 또한 사람들을 겉모습으로 취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중한 사람들을 간과하고 지나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준비된 사람에게 전하는 반면, 어떤 사람이 전함으로써 그 사람이 준비되고, 그래서 누군가가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준비되기 전에 땅을 일구고 갈아야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만나게 되는 그 사람은 당신의 증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개인 구령의 중요한 역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 6.구령자를 위한 실천적인 지침들 Ⅱ 4. 구령자의 메시지 (1) "죄"에 대하여 ① 죄는 교리적으로 범하는 것(a transgression), 악(a evil), 위반(a violation) - 수용된 도덕적 종교적 사회적 규범에 대한 위반 등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②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4 {죄를 짓는 자마다 율법을 범하는 것이니, 죄는 곧 율법을 범하는 것이라.} ③ 죄는 그것이 행동(acts)이든지 상태(state)이든지 하나님의 성품(character)에 대해 일치되어야 할 것이 부족한(come short) 것입니다. 로마서 3:23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come short)} 그러나 모든 사람은 두 가지를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첫째, 있는 그대로의 "상태"(state)가 죄인으로 규정됩니다. 이는 의가 없는 모든 인간의 타락한 상태입니다. 모든 인간의 자연적 상태가 바로 죄의 상태입니다. 로마서 5:12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 시편 51:5 {보소서, 내가 죄악 중에서 태어났고, 죄 중에서 내 어머니가 나를 배었나이다.} 시편 39:5 {보소서, 주께서 내 날들을 손 너비만큼 주셨으므로 내 연수가 주 앞에서는 없는 것 같사오니, 진실로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도 다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죄는 인간의 본성(nature)입니다. 즉 인간은 죄를 타고납니다(by nature). 그러나 누구든지 구원받으면 옛 사람은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며, 변화된 새 성품은 하나님의 본성(the divine nature)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벧후 1:4). 둘째, 죄는 "행동"(act)입니다. 죄의 성품이 표출되는 것, 즉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 바로 죄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태에 있거나, 갓 태어나거나, 죽기 직전의 사람이나 누구든지 죄인의 상태에 있으며, 죄들을 행하고 있기 때문에 죄인인 것입니다. ④ 인간은 허물과 죄 가운데 죽은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태어날 때부터 진노의 자녀이며 불순종의 자녀입니다. 에베소서 2:1-3 {허물과 죄들 가운데 죽었던 너희를 그가 살리셨으니, 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은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우리 육신의 정욕대로 행하였으며 육신과 마음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느니라.} ⑤ 죄는 아담을 통해서 세상에 들어 왔으며, 그 죄는 사탄과 함께 온 것입니다. 야고보서 1:14-15 {그러나 누구든지 자신의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을 때 시험?당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 로마서 5:12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 이사야 14:12-14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민족들을 연약하게 하였던 네가 어찌 땅으로 끊어져 내렸느냐! 이는 네가 네 마음 속에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가서 내 보좌를 하나님의 별들보다 높일 것이요, 내가 또한 북편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내가 구름들의 높은 곳들 위로 올라가서 지극히 높으신 분같이 되리라." 하였음이라.} ⑥ 죄는 하나님에 대항하여 비방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의심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은 죄 있는 인간의 모습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롬1:29-31). ⑦ 성경 구절을 찾으며 죄를 설명하는 방법 ⓐ 로마서 3:23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 로마서 5:12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 [참고] 로마서 3:10 이 말씀에서 한 사람은 아담입니다. 아담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죽는다는 사실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죄를 지었습니다. 바로 죄는 알면서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아담이 지은 죄는 "불순종"입니다(롬 5:19). 로마서 5:12 /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로마서 5:14 /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 로마서 5:16 / 범죄한 한 사람에 의하여 로마서 5:17 /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로마서 5:18 /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로마서 5:19 /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죄는 세상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이브에게서 죄가 끝났다면 죄가 세상에 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이브는 아담 없이 혼자서 자녀를 낳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의도적인" 죄는 세상으로 들어와 사람들에게 전수되었습니다. 지금도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서 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 시편 51:5 {보소서, 내가 죄악 중에서 태어났고, 죄 중에서 내 어머니가 나를 배었나이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입니다. ⓓ 로마서 1장, 갈라디아서 5장, 골로새서 3장, 디모데전서 1장, 마가복음 7장, 고린도전서 6장 등에 약 50여 가지의 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29-31 {그들은 모든 불의, 음행, 사악, 탐욕, 악의로 가득 찼으며,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하며, 수군거리는 자들이요, 비방하는 자들이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요, 모욕을 주며, 교만하며, 자기 자랑만 하며, 악한 일들을 꾀하는 자들이요, 부모를 거역하며, 몰지각하며, 약속을 저버리며, 무정하며, 화해하지 아니하며, 무자비한 자들이라.} 갈라디아서 5:19-21 {이제 육신의 일들은 분명히 나타나나니, 곧 간음과 음행과 더러운 것과 음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질투와 분노와 투쟁과 분열과 이단들과 시기와 살인과 술취함과 흥청거림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미리 말하노니, 그런 짓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 골로새서 3:5,8 {그러므로 땅 위에 있는 너희의 지체를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색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 즉 분노와 성냄과 악의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과 너희 입에서 나오는 추잡한 말을 벗어 버리라.} 디모데전서 1:9-10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의로운 사람을 위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라, 불법자들과, 순종하지 않는 자들과, 경건치 않은 자들과, 죄인들과, 거룩하지 않은 자들과, 속된 자들과, 아비를 죽이는 자들과, 어미를 죽이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남자로 자신을 더럽히는 자들과, 유괴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과, 거짓되이 맹세하는 자들과 그 밖에 건전한 교리에 역행하는 것들을 위함이니} 마가복음 7:20-23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히느니라. 이는 속에서, 즉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간음과, 음행과, 살인과, 도둑질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눈과, 하나님을 모독함과, 교만과, 어리석음이니, 이런 모든 악한 것은 속에서 나와, 그 사람을 더럽히느니라."고 하시더라.} 고린도전서 6:9-10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나 간음하는 자들이나 여자처럼 행세하는 자들이나 남자 동성 연애자들이나 도둑질하는 자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들이나 주정뱅이들이나 욕설하는 자들이나 착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 [참고] 시편 51:1 - 죄과들(transgression), 시편 51:9 - 죄악(iniquity), 히브리서 3:12 - 믿음 없음(unbelief), 요한일서 5:17 - 불의(unrighteousness) [참고] 바울은 죄인들의 상태를 이렇게 말합니다. 디도서 1:15 {정결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정결하나 더럽혀진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정결한 것이 없고, 도리어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다 더럽혀져 있느니라.} 디모데전서 4:2 {그들 자신의 양심이 화인을 맞아 위선으로 거짓을 말하리라.} [예 1] 과녁에 미치지 못한 화살이 하나님의 의에 미치지 못한 인간과 같습니다. [예 2] 나무에 열린 열매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그 나무는 그 열매의 이름에 따라 그 나무로 불려집니다. 그 이유는 그 나무 안에 그 열매를 맺게 하는 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 3] 유전되는 것 가운데는 외양적이 모습뿐만 아니라 성품, 성씨, 성격, 말씨, 행동 등도 부모를 통해 유전됩니다. 비물질적인 것이 유전되는데 그 가운데 핵심이 "죄"(의 성품)입니다. ⓕ 전도서 7:20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은 땅 위에 한 명도 없느니라.} ⓖ 시편 39:5 {보소서, 주께서 내 날들을 손 너비만큼 주셨으므로 내 연수가 주 앞에서는 없는 것 같사오니 진실로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도 다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 로마서 3: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 기록된 바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고 함과 같으니라.} ⓘ 요한일서 1:8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아무 죄도 없다고 말하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나} [참고] 요한일서 1:7, 요한복음 16:9; 3:18; 3:36 (2) "죄의 삯 - 사망"에 대하여 ① 로마서 6:23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 ② 에스겔 18:4 {보라, 모든 혼들은 내 것이라. 아비의 혼이 그렇듯이 자식의 혼도 내 것이라. 범죄하는 혼은 죽으리라.} ③ 로마서 5:12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 ④ 사망은 삼중적입니다. ⓐ 죄의 삯으로 인간의 영이 죽었습니다. 창세기 2:17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에베소서 2:1 {허물과 죄들 가운데 죽었던 너희를 그가 살리셨으니} [참고] 마태복음 8:22, 누가복음 9:60 ⓑ 죄의 삯으로 인간의 몸이 실제적인 죽음을 맞이합니다.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 ⓒ 죄의 삯으로 인간의 혼은 지옥에서의 형벌과 불못에서의 영원한 둘째 사망에 들어갑니다. 민수기 32:23 {그러나 만일 너희가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보라, 너희는 주를 거역하여 죄를 지은 것이니, 반드시 너희의 죄가 너희를 찾아낼 것임을 알라.} 요한계시록 20:14-15 {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가증스런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마술하는 자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시더라.} 마가복음 9:44,46 {그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그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마가복음 9:48-49 {그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모든 사람이 불로 소금치듯함을 받을 것이며, 모든 제물이 소금으로 소금치듯함을 받으리라.} ⑤ 누가복음 16:19-31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매일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더라. 또 나사로라고 하는 어떤 거지가 있었는데 온 몸에 헌데가 난 채 그 부자의 문전에 누워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기를 바라니,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더라. 그러다가 그 거지가 죽었는데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겼고 그 부자도 죽어서 장사되었더라.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에 눈을 들어 저 멀리 아브라함을 보았더니 나사로가 그의 품에 있는지라. 그가 소리질러 말하기를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시어 그가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내 혀를 식히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라고 하니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아이야, 너는 네 생전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나쁜 것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느니라. 이 모든 것 외에도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커다란 구렁이 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하여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로 건너오고자 하여도 올 수 없느니라.'고 하더라. 그가 말하기를 '그러면 아버지여, 내가 당신께 간구하오니 당신께서 나사로를 내 아비 집에 보내어 주소서. 나에게 다섯 형제가 있으니 그가 그들에게 증거하여 그들로 이 고통의 장소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하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기를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서 듣게 하라.'고 하시더라.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아니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누군가가 죽은 자들로부터 그들에게 가면 그들이 회개하리이다.'라고 하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기를 '만일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비록 누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다 해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니라.' 하니라."고 하시니라.} (3) "죄의 용서 - 보혈"에 대하여 ① 히브리서 9:22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 ②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느니라.} ③ 요한복음 19:34 {그 병사들 중 하나가 창으로 주의 옆구리를 찌르니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 ④ 요한일서 1:7 {그러나 그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간에 교제가 있게 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⑤ 골로새서 1:14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⑥ 에베소서 1:7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가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즉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⑦ 베드로전서 2:24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들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낫게 되었느니라.} [참고] 인간의 노력으로 죄가 용서될 수 없으며,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깨끗케 하셨다는 성경 말씀들.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 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을 통해서는 죄의 깨달음이 있음이니라.} 디도서 3:5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로마서 11:6 {은혜로 된 것이면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 그렇지 아니하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행위로 된 것이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아니하면 행위는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 에베소서 2:8-9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 사도행전 4:12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고 하더라.} (4)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 - 영접"에 대하여 ① 사도행전 16:31 {그들이 말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니라.} ② 요한계시록 3: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③ 로마서 10:9-10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 [참고] 요한일서 5:17 {모든 불의가 죄이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느니라.} 요한복음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 } [참고] 요한복음 3:18, 갈라디아서 3:26, 로마서 3:28. ============================================================== 7.구령자를 위한 실천적인 지침들 Ⅲ 5. "이렇게 하면" 신실한 구령자가 될 수 있습니다. (1) 일정하게 정해진 시간에 구령해야 합니다. 이것은 효과적인 구령과 신실한 구령자가 되기 위한 방법입니다. 이것이 구령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 가운데 하나입니다. 당신이 구령자가 되고자 한다면, 당신은 구령을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여름에는 무덥고 비가 오는데, 겨울에는 춥고 감기도 들었는데, 구령하기 위해서는 좋은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예배를 드리러 가듯이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가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일을 귀중하게 여기고 그 정해진 시간에 수행할 때, 귀중한 한 혼을 구원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적인 생활에 활력과 힘이 넘칠 것입니다. 좋지 않은 시간과 조건에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주님 저에게 구령에 대한 부담을 주십시요" 그러나 단지 부담이 아니라 구령에 대한 원함을 구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기도할 때에도 구령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계획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꾼들과 설교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계획을 세워야 하며, 그 계획에 따라서 생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계획 가운데는 반드시 구령을 위한 일정한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 시간을 다른 시간으로 대체하지 않고 구령을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구령하는 일정한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당신은 신실한 구령자 되지못할 것입니다. (2) 구령에 대한 생각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즉 "혼에 대한 의식"을 항상 지녀야 합니다. 어느 때나 누구에게나 구령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는 곳이 어디든지,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이든지 그 사람들의 "혼"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모든 때에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세요?" "교회에 다니세요?" "구원받으셨어요?" 또는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등등의 말이 당신의 입에서 늘 쉽게 나온다면 당신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렇게 구령에 대한 의식을 지니고 있다면 어떤 설교자라도 주일마다 설교할 때에 특별한 예화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구령을 통하여 한 주 동안 다양한 형태의 영적인 체험들을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구령해야 합니다. 당신의 생활 가운데 당신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저하고 함께 구령하러 갈래요?"라는 말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한 명의 구령자를 훈련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로 하여금 누군가에게 구령하는 모습과 방법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즉 당신이 구령하는 바로 그 시간에 당신은 구령자를 훈련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가서 당신을 관찰하고 배우게 해야 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함께 가기를 청하고, 가서 보고 배워야 합니다. (4) 성경을 가지고 구령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23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누가복음 8장의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좋은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126:5,6 말씀 역시 말씀의 씨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귀한 씨를 가지고 나가서 우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의 단들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유창한 언변이 성경을 앞설 수는 없습니다. 죄에 대한 찔림과 믿음으로 새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로마서 10:17 말씀은 이것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 이를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야고보서 1:5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너희 중에 누가 지혜가 부족하면,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면 그분께서 주실 것이라.} 계획된 구령 시간에 신약 성경만을 가지고 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물론 어느 때든지 신약 성경만을 가지고도 구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신구약 전체의 말씀을 가지고 인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양날이 있는 칼"은 영적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수술 중에 필요한 칼이 없어서 주저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크고 두꺼운 성경이 사람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말씀을 뒤로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을 들고 오는 구령자를 보고서 "어, 저기 설교자가 온다.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는 사람들을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도 경청하는 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한다면 보다 효과적일 것입니다. (5) 성경 구절을 암기하고, 성경에 지도를 그려야 합니다. 구령자는 자기가 하는 말을 자유롭게 성경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구령자는 자신의 메시지를 잘 정리된 상태로 기억하고 있어야 하며, 성경에 자신이 알아 볼 수 있는 지도를 그려야 합니다. 즉 찾아야 할 구절들을 자신의 성경에 기록해 놓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중에 구절을 찾으면서 "어, 어디 있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죄송합니다."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상대는 그 구령자를 신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성경 구절은 잘 찾을지라도 성경을 찾는 동안 여러분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성경만 넘기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설교자가 설교하는 중간에 말을 그쳐서는 안되는 것처럼 익숙하게 한장 한장을 넘기면서 자연스럽고 정확하게 여러분의 입에서는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어야 합니다. (6) 자신과 동년배이면서 동성인 사람을 우선적으로 구령해야 합니다. 구령자가 십대이면 십대에게, 젊은 남자이면 젊은 남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확신이 있다면 이러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이가 많거나 이성이라 하여 구령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일반적인 방법으로 동년배이면서 동성인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구령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7) "복음"이라고 하는 주제에 머물러야 합니다. 당신이 구령하고 있을 때 사탄은 항상 순간 순간 방해합니다. "질문자"인 사탄은(창 3:1) 사람들로 하여금 예전부터 제기되어 왔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구령하는 중간에 전통적인 질문이 나오곤 합니다. "그런데요, 카인은 어디서 아내를 얻었습니까?"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셨죠?" "신라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등등의 질문을 합니다. 이렇게 질문이 나올 경우에는 이렇게 대답하시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 "예, 사람들은 보통 그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그 해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신의 죄와 죽음과 지옥과 구원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저의 이야기를 다 듣고서 구원받으면 그 다음에는 그 해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설명을 해도 이해하거나 믿을 수 없습니다(고린도전서 2장 14절의 말씀을 읽어 주면서 설명하십시오). 저의 이야기가 끝나면 꼭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이 이야기에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질문에 즉각적으로 답하기 시작하면 구원의 복음은 뒤로하고 열매 없는 이야기만 계속하게 됩니다. 그러나 질문의 내용이 복음의 메시지와 연관이 있을 때에는, 즉 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기를 원한다든지, 사망, 지옥, 피의 의미 등과 연관된 질문들일 때에는 상황에 맞게 대답해 주어야 합니다. (8) 구령하기 전에 (성령님의 충만한 인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구령을 위해 이러한 기도는 어떻습니까? "주님 제가 가기 전에 성령님의 인도를 충만하게 받기를 구합니다. 주님께서 누군가 구원받을 사람을 위해서 저를 인도하십시요. 오늘 누군가를 구령하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기도에는 성령님의 충만하신 인도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능력을 주시기를 구하는 단순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진부한 기도로 구령을 위한 시간을 낭비하거나 좋은 시점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시간은 구령을 위한 시간과 분리되어야 합니다. 구령은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기다리고 있든지 모르면서 마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지 훈련받기를 기다리고, 시간이 나기를 기다리고, 가라는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령은 이미 약 2,000년 전에 내려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가는 것으로 순종하면 됩니다. 만일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매 십년마다 두 명을 구령했다면, 또 그 두 명이 십년마다 두 명을 구령했다면 전 세상은 A.D.400년이 되기 전에 그리스도께로 인되었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가 구령자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절대 다수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해 한 사람도 그리스도께 인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복음을 들고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9) 한 사람을 상대로 구령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 사람들을 함께 구령한다면 믿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믿음을 방해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한 사람을 상대로 구령해야 합니다. 만일 한 사람이 믿으려 하고 몇 사람이 믿지 않으려는 의도로 논박하거나 질문을 계속한다면 혼자서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고 그 순간 믿으려 하는 사람은 주의가 산만해 지고 마음은 멀어질 것입니다. 믿고자 하는 사람에게서 성령님의 감동이 사라질 수 있는 틈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구령하는 중에 여러 사람을 함께 구령하게 될 때가 있다면 경청하는 사람이나 반응을 잘 보이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처음부터 분리해서 따로 구령해야 합니다. (구령하기에 좋은 때는 상대가 혼자 있을 때입니다.) (10) 한 사람만 이야기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구령을 하기 위해 나갔을 때, 한 사람은 이야기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조용히 있어야 합니다.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은 구령자와 상대를 위해 마음으로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어린 아이가 있다면 아이를 본다던가, 아니면 어떤 형태든지 두 사람에게 방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처음부터 복음을 전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막고 다른 한 동행자가 중간에 말한다면 상대는 처음의 구령자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혼란이 가중됩니다. 처음에 시작한 구령자에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1) 논쟁을 피해야 합니다. 이것은 때때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 경우는 하나님의 말씀을 옹호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3:15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며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답변할 것을 온유와 두려움으로 항상 예비하고 } 빌립보서 1:7 {내가 너희 모두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내가 너희를 내 마음 속에 간직함이며 또 나의 갇힘과 복음을 지키고 확정함에 있어서 너희 모두가 나의 은혜에 동참자가 됨이라.} 유다서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함께 나누어 받은 구원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글을 쓰려는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들에게 단번에 전해 주신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를 써서 권고해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디도서 1:13 {이 증거가 옳도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을 엄히 꾸짖어 그들로 믿음 안에서 건전해지게 하고 } 만일 복음을 듣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태도가 의도적으로 거부하거나 질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또는 아예 마음의 문을 닫고서 반응하는 것이 파악된다면 전도지를 주고 그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논쟁을 위해 부름 받지 않습니다. 시간을 낭비하라고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제시된 말씀만을 하고 그들과 분리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14 {사람들에게 이런 일들을 일깨워 주어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주 앞에서 당부하라. 이는 아무런 유익함도 없고 오히려 듣는 자들을 파멸시킴이니라.} (12) 상대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면에서 상대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닙니다. 정중하게 말해야 하며, 예의바르게 전해야 합니다. 상대가 인간적인 반감을 느낄 수 있는 언행을 피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8 {끝으로 너희는 모두 한 생각을 품고 서로 동정하고 형제로서 사랑하며, 인정을 베풀고 예의를 지키며} (13) "구원의 영원한 보증"에 대해서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정확히 구령했다면 다음의 질문을 통해서 그의 믿음을 확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이제 죽으면 어디에 가실지 아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노력해야죠, 좋은 곳에 가기를 바랄뿐이죠" 등등의 대답이 나온다면 다시 한 번 복음에 대해 확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반면에 믿음을 바르게 제시했다면 한 번 구원받은 것이 영원히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어야 합니다(요 1:12; 5:24, 엡 2:8-9, 롬 8:33-39). 구원의 보증(assurance)은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것이며, 구원의 확신(confidence, conviction)은 하나님의 보증에 근거해서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14) 사탄의 공격에 대해 경고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설명한 후에는 사탄의 여러 가지 공격들을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탄이 이전보다 죄를 짓는 환경을 더 많이 제공한다거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이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는 등의 사실들을 지적해 주고, 최소한 처음 7일과 적어도 7주 동안은 그 당시의 믿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상대의 연락처와 구령자의 연락처를 교환하여 필요한 때에 연락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때 상대가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는 것에 소극적이라면 전도지에 제시된 교회의 연락처를 확인시켜 주거나 구령자의 연락처만을 건네주는 것이 현명한 행동입니다. 구령하는 과정에서 상대가 당신에게 신뢰를 가졌다면 어는 때든지 영적 필요를 느끼게 될 때, 그는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15) 구원받은 후의 생활에 대해서 알려 주어야 합니다. ① 구령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 주면서 상대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아두는 것은 그를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양육의 기회를 얻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② 주위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올바른 것임을 알려 주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자신의 믿음이 소중한 것임을 스스로 알게 되며, 변화된 생활을 위해 효과적인 방법임을 알게 됩니다. ③ 구령한 후에 7일이 지나기 전에 다시 만나서 교제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믿음을 재충전 해주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또한 주일에 가능한 한 교회에서 간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야 합니다. 성경적인 지역 교회는 그를 잘 양육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모임입니다. 6. 구령할 때의 주의 사항 (1) 상대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신학 용어들이나 성경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구령자는 상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평상적인 언어나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복음을 제시하는 것을 위해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2) 지나친 공포심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정확한 성경적 사실만을 전하고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 위에 머무르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을 목격할 것입니다. (3) 말하는 속도를 빠르지 않고 적당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상대가 안정된 속도의 차분한 말에 주위를 기울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은 열심히 이야기했는데 상대가 알아들을 수 없다면 무의미한 일입니다. (4) 상대의 상태를 무시하고 양육할 때 필요한 내용을 전해서는 안됩니다. 즉 메시지는 복음에 충실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은 이후에 필요한 사실들을 복음을 전하며 말하고 있다면 상대가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령자 스스로 논점을 희석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5) 다른 교파에 대한 첨예한 비판을 피하고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에 머물러야 합니다. (6) 친분 있는 사람이라 하여 올바로 지적할 부분들(죄, 지옥...)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부분은 자신을 먼저 언급하며 모두가 그렇다는 전제 하에서 상대방 자신도 그러하다는 것을 마음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7) 어떤 특수한 이유 때문에 잠시 자신의 입이나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해서 복음을 전하는데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담대하게 증거 해야 합니다. 잠시의 어려움이 영원한 고통을 제거하기 때문입니다. (8) 상대로 하여금 설교하듯이 오랜 시간 이야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구령자는 이야기의 주도권은 가지고 상대를 이끌어야 합니다. 상대는 가능한 한 마음과 생각을 정리해서 "예"나 "아니요", 또는 "믿어요"나 "모르겠어요" 정도의 대답을 할 수 있게 인도해야 합니다. (9) 자신과 똑같은 과정과 경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각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와 같은 방식을 고집한다면 구령에 실패하게 됩니다. (10) 상대로 하여금 어떤 특정한 죄를 끊게 하려고 강조하거나 부담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특정한 죄를 끊을 때까지 믿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죽을 때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어떤 특정한 죄를 단절하는 것이, 곧 구원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변화된 삶은 믿은 이후에 있을 각 개인의 영적인 삶에 맡겨야 합니다. 구령자는 상대로 하여금 현재에 충실해서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구주가 필요함을 고백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1) 다음 기회에 의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구원을 위해 많은 생각과 시간이 요구되지 않음을 설명하고 지금, 현재에 결정할 수 있음을 주지시켜야 합니다. {(말씀하시기를 "내가 기뻐 받아들여진 때에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도다." 하였으니, 보라, 지금이 기뻐 받아들여진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후 6:2). (12) 상대가 듣기를 거부하거나, 눈에 띄게 원치 않는다면 천절하게 인사하고 전도지만을 건네주고 헤어져야 합니다. 전도지도 받기를 거부한다면 그냥 헤어져야 합니다. 원치 않는 사람에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말고 원하는 사람들을 찾아야 합니다. (13) 구령하는 중에 처음 시도했던 사람에게 거절당한 것이나, 열매를 맺을 것에, 또는 지난 주에 했던 구령의 결과에 좌우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형태의 낙심이나 자부심도 구령에 저해 요소가 됩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잠시 않아서 기도하거나 말씀을 읽음으로써 빠른 시간 안에 정상적인 상태로 전환해야 합니다. (14) 구령자로서 당신이 준비한 메시지가 있다고 해서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증거할 때에는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상황에 맞게 적절한 방식으로 전해야 하며, 각각 핵심적인 내용을 전달한 후에는(죄, 사망/지옥, 십자가의 보혈, 믿음/영접...) 그것에 동의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 8.구령자를 위한 실천적인 지침들 Ⅳ 7. 구령을 위한 준비 (1) 내적인 준비 ① "변화된 생활"이 전제될 때 구령할 수 있습니다(고후 5:17). 구령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어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 생명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② "깨끗한 생활"이 전제될 때 구령할 수 있습니다(딤전 2:21). 은밀한 죄나 생활 중의 부정적인 생각과 죄들에서 내적으로, 외적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했다면 자백함으로써 해결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으로, 또한 성령님께 순종함으로 변화되고 성별된 생활이 유지되고 있을 때 구령할 수 있습니다. ③ "말씀을 공부하는 생활"이 전제될 때 구령할 수 있습니다(시 119: 130). 말씀에 능숙하지 못하면, 정확한 말씀의 제시가 없으면 효과적인 구령에 실패하게 됩니다. (2) 외적인 준비 ① 깨끗해야 합니다 : 입이나 몸에서 좋지 못한 냄새를 풍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양치질과 껌 등으로 방지해야 하며, 목욕을 하거나 방향제나 향수 등으로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② 단정해야 합니다 : 머리는 단정히 빗고, 옷을 깨끗이 다려 입어야 합니다. 구두는 말끔하게 닦아야 하고 운동화는 청결해야 합니다. 특히 손톱은 보기 좋게 깎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성경을 찾아서 읽을 때 당신의 손톱이 상대에게 거슬림이 될 것입니다. ③ 전도지와 기본적인 소책자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자신을 밝힐 수 있는 명함이나 필기구가 있으면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명함이 없을 경우에는 전도지에 구령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전도지에 구령한 날과 시간을 적어 주며 구원의 확신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④ 신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일반적인 준비 사항에서 전제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얼마든지 구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에 일정하게 행하는 구령의 시간에는 필수적인 준비입니다. 8. 가족과 가까운 친척 및 친구와 동료를 구령하는 방법 자신을 잘 아는 사람에게 구령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육신적인 모습과 변화된 삶의 차이를 그들이 이해하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두 성품"에 대해 효과적으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그들에게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변화된 삶을 간증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들 앞에서의 논쟁, 말다툼, 험담 등과 같이 이미 알려진 여러 가지 죄들로부터 당신이 성별 되어 있다는 것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2) 그들을 위해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기대하지 않는 조그마한 일로 섬겨야 합니다. 그들로 좋은 것을 선택하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집안 일에서 섬기고, 그들의 혼을 구원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아까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3) 무지한 그들을 향해 구체적인 전후 설명이 없이 정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정한 죄에 대한 부담을 없애야 합니다. "어,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사탄의 일이야" 등의 말은 영적인 세계에 대해 무지한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4) 당신에게서 즐겁고 기쁜 생활과 모습이 드러나게 행동해야 합니다. 또한 일을 할 때에는 자신의 문제를 과장하는 것을 지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말은 신뢰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롬 12:11). (5) 성경과 연관된 문제에 있어서 당신에게 신뢰를 두고 묻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들과 다른 생활 모습과 가치관이 그들에게 알려졌을 때에 가능합니다. (6) 구령하고자 기도하면서 실제의 삶에서 진지한 모습을 보여야 하며, 복음을 전하는 그 순간에는 더욱더 "진지하게" 복음을 제시합니다. 거부할지라도 시간의 간격을 두고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전해야 합니다. 9. 교회의 초청 시간에 구령하는 방법 구령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 가운데 하나가 교회에서의 초청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효과적으로 선용해야 합니다. (1) 누가 구령하기 위해 나가야 합니까? 당신이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나와서 상담할 수 있어야 하며 남자는 남자에게, 여자는 여자에게 가서 구령 상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2) 어떻게 나와야 합니까? 설교후 초청 때에 앞으로 나오거나 설교자와의 의사 교환을 통해 초청에 응한 사람의 자리로 찾아 갈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가면서 성령님의 역사를 위해 기도하고, 사탄의 방해가 막아지기를 기도하며, 상대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3) 어디로 가야 합니까? 앞으로 나와 강단 앞에서 상담하거나, 상담실이 따로 있다면 상담실로 가고, 그렇지 않다면 미리 적당한 장소를 알아두어야 합니다. (4) 무엇을 말해야 합니까? 첫째, 자신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저는 ...입니다. 반갑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이름을 확실히 듣고 기억해야 합니다. 대화 중에 적절한 호칭으로 불러야 합니다.) 둘째, 왜 나왔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구원받고자 나오셨나요,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원하세요, 죄를 용서받고자 나오셨나요, 하늘 나라에 가기를 원해서 나오셨나요, 예수님을 믿고자 나오셨나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나오셨나요..." 등의 질문을 통해서 목적을 확인해야 합니다. 만일 왜 나왔는지 답하지 못한다면 구원의 필요성을 간단히 설명하고 상대가 원함이 있을 때에 복음을 제시합니다. 셋째, 마음이 열린 상황에서 나온 사람에게는 "로마서의 길"을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복음의 핵심적인 사실을 믿는가를 묻고 답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만 설명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마음의 상태를 둔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10. 강단에서 구령하는 방법 (1) 초청을 효과적으로 해야 합니다. 설교와 연관해서 구원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시합니다. 설교의 주제 구절이나 예화를 통해서 초청하면 효과적입니다. 또한 청중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질문으로 그들의 반응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때 이해하기 쉬운 용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2) 메시지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표시하게 합니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기도하기 전에 손을 들게 합니다. 또는 기도하기 전에 믿음을 표시한 사람들을 기도 후에 공개적으로 앞으로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3)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표시한 사람들을 우선을 두고 행동해야 합니다. ① 초청에 응한 사람이 소수라면 다른 사람들은 헌신의 시간이나 기도의 시간을 주고, 초청에 응한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게 하여 자신이 죄인 것과 지옥의 형벌,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을 요약해서 말해 주고 믿음을 확인한 상황에서 영접 기도를 기도하게 합니다. 기도 후에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간단히 설명하거나 예배 후에 따로 교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② 초청에 응한 사람이 많은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은 헌신의 시간이나 기도 시간을 준 상태에서 자신이 죄인인 것과 지옥의 형벌,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을 요약해서 설명한 다음 그 자리에서 영접 기도를 하게 합니다. 이 경우에도 기도 후에는 구원의 확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거나 예배 후에 따로 교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11. 구령할 때에 받을 수 있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 (1) "그런데 주위에 교회 다니는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위선자들이 많아서요..." 골로새서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또 너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라.} 마태복음 24:51 {그러면 주인이 그를 갈라내어서 위선자들과 함께 그의 몫을 지우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 잘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동의하고 성경에서도 이들을 책망하는 것을 알려줍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못한다고 해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겠는가를 물어 보기 바랍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잘못을 알고 반복하지 않는 것처럼 질문하는 사람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잘못하는 사람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면 됩니다. (2) "그래도 선한 행위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죄와 그 결과와 해결 방법에 대해서 다시 설명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8-9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디도서 3:5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 (3)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상태에서 믿겠습니다." 이사야 1:8 {시온의 딸은 마치 포도원의 오두막같이, 오이밭의 원두막같이, 포위당한 성읍같이 남아 있도다.} 요한복음 6:39 {이것이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이니, 즉 그분께서 내게 주신 모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 누가복음 8:13-14 {씨가 바위 위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으므로 잠시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면 떨어져 나가는 자들이라. 씨가 가시떨기 사이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가서 이생의 염려와 부와 쾌락에 억눌려 온전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이요} 주님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나오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할 때까지 나오지 않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그대로 나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4) "나중에 믿겠습니다." 잠언 27:1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라.} 고린도후서 6:2 {(말씀하시기를 "내가 기뻐 받아들여진 때에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도다." 하였으니, 보라, 지금이 기뻐 받아들여진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 (5) "예전에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분(just, righteous)임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분의 판단은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1:18-23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가운데서 진리를 붙잡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거니와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음이라. 세상의 창조 때부터 그분에 속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보여졌고 심지어는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까지도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알려졌으므로 그들이 변명하지 못하느니라. 이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며 도리어 그들의 상상들이 허망하여지고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니 그들은 스스로 현명하다고 말하나 우둔하게 되었고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의 형상과 새들과 네 발 달린 짐승들과 기어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로마서 2:14-15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이 본성으로 율법에 있는 일들을 행할 때에는 율법이 없어도 이것들이 스스로에게 율법이 되나니 그들의 양심도 증거하고 그들의 이성이 송사하거나 서로 변명하여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여 주느니라.)} 신명기 32:4 {그분은 반석이시며 그분의 역사는 완벽하나니, 이는 그분의 모든 길이 공의이심이라. 그분은 진실하시고 악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며, 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마태복음 16:27 {이제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으로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그가 각자에게 그들의 행한 대로 상 주실 것이라.} 로마서 2:1,5,6 {그러므로 이 사람아, 판단하는 네가 누구일지라도 변명하지 못할 것은 네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 스스로를 정죄함이니 이는 판단하는 네가 똑같은 일들을 하기 때문이라... 다만 너의 완고함과 회개하지 아니하는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계시될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을 뿐이로다. 그분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리니} 사무엘상 2:3 {다시는 그처럼 심히 교만하게 말하지 말고 너희 입에서 오만이 나오지 못하게 할지니, 이는 주께서 지식의 하나님이시며 행동들이 그분에 의하여 저울질되기 때문이라.} (6)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자연을 통한 증거(시 19:1, 롬 1:20), 양심을 통한 증거(롬 2:15), 우주론적 증거, 목적론적 증거, 도덕론적 증거, 생명을 통한 증거(시 36:9, 요 11:25; 14:6; 10:28) 등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7)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가요?"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 베드로후서 1:21 {예언은 예전에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니라.} (8) "계속 죄를 짓는데 어떻게 합니까?" 히브리서 9:22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 요한일서 1:7 {그러나 그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간에 교제가 있게 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베드로전서 2:24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들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낫게 되었느니라.} 요한일서 5:17 {모든 불의가 죄이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느니라.} 요한복음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 } 디도서 3:5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에베소서 2:8-9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2 구령 실습 "Let's Go Soul Winning" ============================================================== 8.구령자를 위한 실천적인 지침들 Ⅲ 5. "이렇게 하면" 신실한 구령자가 될 수 있습니다. (1) 일정하게 정해진 시간에 구령해야 합니다. 이것은 효과적인 구령과 신실한 구령자가 되기 위한 방법입니다. 이것이 구령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 가운데 하나입니다. 당신이 구령자가 되고자 한다면, 당신은 구령을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여름에는 무덥고 비가 오는데, 겨울에는 춥고 감기도 들었는데, 구령하기 위해서는 좋은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예배를 드리러 가듯이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가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일을 귀중하게 여기고 그 정해진 시간에 수행할 때, 귀중한 한 혼을 구원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적인 생활에 활력과 힘이 넘칠 것입니다. 좋지 않은 시간과 조건에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주님 저에게 구령에 대한 부담을 주십시요" 그러나 단지 부담이 아니라 구령에 대한 원함을 구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기도할 때에도 구령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계획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꾼들과 설교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계획을 세워야 하며, 그 계획에 따라서 생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계획 가운데는 반드시 구령을 위한 일정한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 시간을 다른 시간으로 대체하지 않고 구령을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구령하는 일정한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당신은 신실한 구령자 되지못할 것입니다. (2) 구령에 대한 생각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즉 "혼에 대한 의식"을 항상 지녀야 합니다. 어느 때나 누구에게나 구령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는 곳이 어디든지,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이든지 그 사람들의 "혼"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모든 때에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세요?" "교회에 다니세요?" "구원받으셨어요?" 또는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등등의 말이 당신의 입에서 늘 쉽게 나온다면 당신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렇게 구령에 대한 의식을 지니고 있다면 어떤 설교자라도 주일마다 설교할 때에 특별한 예화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구령을 통하여 한 주 동안 다양한 형태의 영적인 체험들을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구령해야 합니다. 당신의 생활 가운데 당신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저하고 함께 구령하러 갈래요?"라는 말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한 명의 구령자를 훈련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로 하여금 누군가에게 구령하는 모습과 방법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즉 당신이 구령하는 바로 그 시간에 당신은 구령자를 훈련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가서 당신을 관찰하고 배우게 해야 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함께 가기를 청하고, 가서 보고 배워야 합니다. (4) 성경을 가지고 구령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23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누가복음 8장의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좋은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126:5,6 말씀 역시 말씀의 씨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귀한 씨를 가지고 나가서 우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의 단들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유창한 언변이 성경을 앞설 수는 없습니다. 죄에 대한 찔림과 믿음으로 새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로마서 10:17 말씀은 이것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 이를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야고보서 1:5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너희 중에 누가 지혜가 부족하면,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면 그분께서 주실 것이라.} 계획된 구령 시간에 신약 성경만을 가지고 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물론 어느 때든지 신약 성경만을 가지고도 구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신구약 전체의 말씀을 가지고 인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양날이 있는 칼"은 영적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수술 중에 필요한 칼이 없어서 주저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크고 두꺼운 성경이 사람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말씀을 뒤로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을 들고 오는 구령자를 보고서 "어, 저기 설교자가 온다.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는 사람들을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도 경청하는 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한다면 보다 효과적일 것입니다. (5) 성경 구절을 암기하고, 성경에 지도를 그려야 합니다. 구령자는 자기가 하는 말을 자유롭게 성경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구령자는 자신의 메시지를 잘 정리된 상태로 기억하고 있어야 하며, 성경에 자신이 알아 볼 수 있는 지도를 그려야 합니다. 즉 찾아야 할 구절들을 자신의 성경에 기록해 놓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중에 구절을 찾으면서 "어, 어디 있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죄송합니다."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상대는 그 구령자를 신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성경 구절은 잘 찾을지라도 성경을 찾는 동안 여러분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성경만 넘기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설교자가 설교하는 중간에 말을 그쳐서는 안되는 것처럼 익숙하게 한장 한장을 넘기면서 자연스럽고 정확하게 여러분의 입에서는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어야 합니다. (6) 자신과 동년배이면서 동성인 사람을 우선적으로 구령해야 합니다. 구령자가 십대이면 십대에게, 젊은 남자이면 젊은 남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확신이 있다면 이러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이가 많거나 이성이라 하여 구령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일반적인 방법으로 동년배이면서 동성인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구령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7) "복음"이라고 하는 주제에 머물러야 합니다. 당신이 구령하고 있을 때 사탄은 항상 순간 순간 방해합니다. "질문자"인 사탄은(창 3:1) 사람들로 하여금 예전부터 제기되어 왔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구령하는 중간에 전통적인 질문이 나오곤 합니다. "그런데요, 카인은 어디서 아내를 얻었습니까?"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셨죠?" "신라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등등의 질문을 합니다. 이렇게 질문이 나올 경우에는 이렇게 대답하시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 "예, 사람들은 보통 그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그 해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신의 죄와 죽음과 지옥과 구원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저의 이야기를 다 듣고서 구원받으면 그 다음에는 그 해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설명을 해도 이해하거나 믿을 수 없습니다(고린도전서 2장 14절의 말씀을 읽어 주면서 설명하십시오). 저의 이야기가 끝나면 꼭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이 이야기에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질문에 즉각적으로 답하기 시작하면 구원의 복음은 뒤로하고 열매 없는 이야기만 계속하게 됩니다. 그러나 질문의 내용이 복음의 메시지와 연관이 있을 때에는, 즉 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기를 원한다든지, 사망, 지옥, 피의 의미 등과 연관된 질문들일 때에는 상황에 맞게 대답해 주어야 합니다. (8) 구령하기 전에 (성령님의 충만한 인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구령을 위해 이러한 기도는 어떻습니까? "주님 제가 가기 전에 성령님의 인도를 충만하게 받기를 구합니다. 주님께서 누군가 구원받을 사람을 위해서 저를 인도하십시요. 오늘 누군가를 구령하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기도에는 성령님의 충만하신 인도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능력을 주시기를 구하는 단순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진부한 기도로 구령을 위한 시간을 낭비하거나 좋은 시점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시간은 구령을 위한 시간과 분리되어야 합니다. 구령은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기다리고 있든지 모르면서 마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지 훈련받기를 기다리고, 시간이 나기를 기다리고, 가라는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령은 이미 약 2,000년 전에 내려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가는 것으로 순종하면 됩니다. 만일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매 십년마다 두 명을 구령했다면, 또 그 두 명이 십년마다 두 명을 구령했다면 전 세상은 A.D.400년이 되기 전에 그리스도께로 인되었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가 구령자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절대 다수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해 한 사람도 그리스도께 인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복음을 들고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9) 한 사람을 상대로 구령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 사람들을 함께 구령한다면 믿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믿음을 방해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한 사람을 상대로 구령해야 합니다. 만일 한 사람이 믿으려 하고 몇 사람이 믿지 않으려는 의도로 논박하거나 질문을 계속한다면 혼자서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고 그 순간 믿으려 하는 사람은 주의가 산만해 지고 마음은 멀어질 것입니다. 믿고자 하는 사람에게서 성령님의 감동이 사라질 수 있는 틈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구령하는 중에 여러 사람을 함께 구령하게 될 때가 있다면 경청하는 사람이나 반응을 잘 보이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처음부터 분리해서 따로 구령해야 합니다. (구령하기에 좋은 때는 상대가 혼자 있을 때입니다.) (10) 한 사람만 이야기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구령을 하기 위해 나갔을 때, 한 사람은 이야기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조용히 있어야 합니다.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은 구령자와 상대를 위해 마음으로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어린 아이가 있다면 아이를 본다던가, 아니면 어떤 형태든지 두 사람에게 방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처음부터 복음을 전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막고 다른 한 동행자가 중간에 말한다면 상대는 처음의 구령자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혼란이 가중됩니다. 처음에 시작한 구령자에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1) 논쟁을 피해야 합니다. 이것은 때때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 경우는 하나님의 말씀을 옹호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3:15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며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답변할 것을 온유와 두려움으로 항상 예비하고 } 빌립보서 1:7 {내가 너희 모두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내가 너희를 내 마음 속에 간직함이며 또 나의 갇힘과 복음을 지키고 확정함에 있어서 너희 모두가 나의 은혜에 동참자가 됨이라.} 유다서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함께 나누어 받은 구원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글을 쓰려는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들에게 단번에 전해 주신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를 써서 권고해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디도서 1:13 {이 증거가 옳도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을 엄히 꾸짖어 그들로 믿음 안에서 건전해지게 하고 } 만일 복음을 듣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태도가 의도적으로 거부하거나 질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또는 아예 마음의 문을 닫고서 반응하는 것이 파악된다면 전도지를 주고 그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논쟁을 위해 부름 받지 않습니다. 시간을 낭비하라고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제시된 말씀만을 하고 그들과 분리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14 {사람들에게 이런 일들을 일깨워 주어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주 앞에서 당부하라. 이는 아무런 유익함도 없고 오히려 듣는 자들을 파멸시킴이니라.} (12) 상대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면에서 상대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닙니다. 정중하게 말해야 하며, 예의바르게 전해야 합니다. 상대가 인간적인 반감을 느낄 수 있는 언행을 피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8 {끝으로 너희는 모두 한 생각을 품고 서로 동정하고 형제로서 사랑하며, 인정을 베풀고 예의를 지키며} (13) "구원의 영원한 보증"에 대해서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정확히 구령했다면 다음의 질문을 통해서 그의 믿음을 확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이제 죽으면 어디에 가실지 아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노력해야죠, 좋은 곳에 가기를 바랄뿐이죠" 등등의 대답이 나온다면 다시 한 번 복음에 대해 확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반면에 믿음을 바르게 제시했다면 한 번 구원받은 것이 영원히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어야 합니다(요 1:12; 5:24, 엡 2:8-9, 롬 8:33-39). 구원의 보증(assurance)은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것이며, 구원의 확신(confidence, conviction)은 하나님의 보증에 근거해서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14) 사탄의 공격에 대해 경고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설명한 후에는 사탄의 여러 가지 공격들을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탄이 이전보다 죄를 짓는 환경을 더 많이 제공한다거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이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는 등의 사실들을 지적해 주고, 최소한 처음 7일과 적어도 7주 동안은 그 당시의 믿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상대의 연락처와 구령자의 연락처를 교환하여 필요한 때에 연락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때 상대가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는 것에 소극적이라면 전도지에 제시된 교회의 연락처를 확인시켜 주거나 구령자의 연락처만을 건네주는 것이 현명한 행동입니다. 구령하는 과정에서 상대가 당신에게 신뢰를 가졌다면 어는 때든지 영적 필요를 느끼게 될 때, 그는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15) 구원받은 후의 생활에 대해서 알려 주어야 합니다. ① 구령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 주면서 상대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아두는 것은 그를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양육의 기회를 얻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② 주위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올바른 것임을 알려 주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자신의 믿음이 소중한 것임을 스스로 알게 되며, 변화된 생활을 위해 효과적인 방법임을 알게 됩니다. ③ 구령한 후에 7일이 지나기 전에 다시 만나서 교제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믿음을 재충전 해주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또한 주일에 가능한 한 교회에서 간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야 합니다. 성경적인 지역 교회는 그를 잘 양육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모임입니다. 6. 구령할 때의 주의 사항 (1) 상대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신학 용어들이나 성경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구령자는 상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평상적인 언어나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복음을 제시하는 것을 위해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2) 지나친 공포심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정확한 성경적 사실만을 전하고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 위에 머무르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을 목격할 것입니다. (3) 말하는 속도를 빠르지 않고 적당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상대가 안정된 속도의 차분한 말에 주위를 기울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은 열심히 이야기했는데 상대가 알아들을 수 없다면 무의미한 일입니다. (4) 상대의 상태를 무시하고 양육할 때 필요한 내용을 전해서는 안됩니다. 즉 메시지는 복음에 충실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은 이후에 필요한 사실들을 복음을 전하며 말하고 있다면 상대가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령자 스스로 논점을 희석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5) 다른 교파에 대한 첨예한 비판을 피하고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에 머물러야 합니다. (6) 친분 있는 사람이라 하여 올바로 지적할 부분들(죄, 지옥...)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부분은 자신을 먼저 언급하며 모두가 그렇다는 전제 하에서 상대방 자신도 그러하다는 것을 마음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7) 어떤 특수한 이유 때문에 잠시 자신의 입이나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해서 복음을 전하는데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담대하게 증거 해야 합니다. 잠시의 어려움이 영원한 고통을 제거하기 때문입니다. (8) 상대로 하여금 설교하듯이 오랜 시간 이야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구령자는 이야기의 주도권은 가지고 상대를 이끌어야 합니다. 상대는 가능한 한 마음과 생각을 정리해서 "예"나 "아니요", 또는 "믿어요"나 "모르겠어요" 정도의 대답을 할 수 있게 인도해야 합니다. (9) 자신과 똑같은 과정과 경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각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와 같은 방식을 고집한다면 구령에 실패하게 됩니다. (10) 상대로 하여금 어떤 특정한 죄를 끊게 하려고 강조하거나 부담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특정한 죄를 끊을 때까지 믿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죽을 때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어떤 특정한 죄를 단절하는 것이, 곧 구원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변화된 삶은 믿은 이후에 있을 각 개인의 영적인 삶에 맡겨야 합니다. 구령자는 상대로 하여금 현재에 충실해서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구주가 필요함을 고백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1) 다음 기회에 의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구원을 위해 많은 생각과 시간이 요구되지 않음을 설명하고 지금, 현재에 결정할 수 있음을 주지시켜야 합니다. {(말씀하시기를 "내가 기뻐 받아들여진 때에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도다." 하였으니, 보라, 지금이 기뻐 받아들여진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후 6:2). (12) 상대가 듣기를 거부하거나, 눈에 띄게 원치 않는다면 천절하게 인사하고 전도지만을 건네주고 헤어져야 합니다. 전도지도 받기를 거부한다면 그냥 헤어져야 합니다. 원치 않는 사람에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말고 원하는 사람들을 찾아야 합니다. (13) 구령하는 중에 처음 시도했던 사람에게 거절당한 것이나, 열매를 맺을 것에, 또는 지난 주에 했던 구령의 결과에 좌우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형태의 낙심이나 자부심도 구령에 저해 요소가 됩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잠시 않아서 기도하거나 말씀을 읽음으로써 빠른 시간 안에 정상적인 상태로 전환해야 합니다. (14) 구령자로서 당신이 준비한 메시지가 있다고 해서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증거할 때에는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상황에 맞게 적절한 방식으로 전해야 하며, 각각 핵심적인 내용을 전달한 후에는(죄, 사망/지옥, 십자가의 보혈, 믿음/영접...) 그것에 동의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 9.구령자를 위한 실천적인 지침들 Ⅳ 7. 구령을 위한 준비 (1) 내적인 준비 ① "변화된 생활"이 전제될 때 구령할 수 있습니다(고후 5:17). 구령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어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 생명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② "깨끗한 생활"이 전제될 때 구령할 수 있습니다(딤전 2:21). 은밀한 죄나 생활 중의 부정적인 생각과 죄들에서 내적으로, 외적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했다면 자백함으로써 해결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으로, 또한 성령님께 순종함으로 변화되고 성별된 생활이 유지되고 있을 때 구령할 수 있습니다. ③ "말씀을 공부하는 생활"이 전제될 때 구령할 수 있습니다(시 119: 130). 말씀에 능숙하지 못하면, 정확한 말씀의 제시가 없으면 효과적인 구령에 실패하게 됩니다. (2) 외적인 준비 ① 깨끗해야 합니다 : 입이나 몸에서 좋지 못한 냄새를 풍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양치질과 껌 등으로 방지해야 하며, 목욕을 하거나 방향제나 향수 등으로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② 단정해야 합니다 : 머리는 단정히 빗고, 옷을 깨끗이 다려 입어야 합니다. 구두는 말끔하게 닦아야 하고 운동화는 청결해야 합니다. 특히 손톱은 보기 좋게 깎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성경을 찾아서 읽을 때 당신의 손톱이 상대에게 거슬림이 될 것입니다. ③ 전도지와 기본적인 소책자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자신을 밝힐 수 있는 명함이나 필기구가 있으면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명함이 없을 경우에는 전도지에 구령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전도지에 구령한 날과 시간을 적어 주며 구원의 확신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④ 신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일반적인 준비 사항에서 전제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얼마든지 구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에 일정하게 행하는 구령의 시간에는 필수적인 준비입니다. 8. 가족과 가까운 친척 및 친구와 동료를 구령하는 방법 자신을 잘 아는 사람에게 구령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육신적인 모습과 변화된 삶의 차이를 그들이 이해하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두 성품"에 대해 효과적으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그들에게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변화된 삶을 간증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들 앞에서의 논쟁, 말다툼, 험담 등과 같이 이미 알려진 여러 가지 죄들로부터 당신이 성별 되어 있다는 것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2) 그들을 위해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기대하지 않는 조그마한 일로 섬겨야 합니다. 그들로 좋은 것을 선택하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집안 일에서 섬기고, 그들의 혼을 구원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아까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3) 무지한 그들을 향해 구체적인 전후 설명이 없이 정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정한 죄에 대한 부담을 없애야 합니다. "어,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사탄의 일이야" 등의 말은 영적인 세계에 대해 무지한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4) 당신에게서 즐겁고 기쁜 생활과 모습이 드러나게 행동해야 합니다. 또한 일을 할 때에는 자신의 문제를 과장하는 것을 지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말은 신뢰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롬 12:11). (5) 성경과 연관된 문제에 있어서 당신에게 신뢰를 두고 묻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들과 다른 생활 모습과 가치관이 그들에게 알려졌을 때에 가능합니다. (6) 구령하고자 기도하면서 실제의 삶에서 진지한 모습을 보여야 하며, 복음을 전하는 그 순간에는 더욱더 "진지하게" 복음을 제시합니다. 거부할지라도 시간의 간격을 두고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전해야 합니다. 9. 교회의 초청 시간에 구령하는 방법 구령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 가운데 하나가 교회에서의 초청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효과적으로 선용해야 합니다. (1) 누가 구령하기 위해 나가야 합니까? 당신이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나와서 상담할 수 있어야 하며 남자는 남자에게, 여자는 여자에게 가서 구령 상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2) 어떻게 나와야 합니까? 설교후 초청 때에 앞으로 나오거나 설교자와의 의사 교환을 통해 초청에 응한 사람의 자리로 찾아 갈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가면서 성령님의 역사를 위해 기도하고, 사탄의 방해가 막아지기를 기도하며, 상대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3) 어디로 가야 합니까? 앞으로 나와 강단 앞에서 상담하거나, 상담실이 따로 있다면 상담실로 가고, 그렇지 않다면 미리 적당한 장소를 알아두어야 합니다. (4) 무엇을 말해야 합니까? 첫째, 자신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저는 ...입니다. 반갑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이름을 확실히 듣고 기억해야 합니다. 대화 중에 적절한 호칭으로 불러야 합니다.) 둘째, 왜 나왔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구원받고자 나오셨나요,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원하세요, 죄를 용서받고자 나오셨나요, 하늘 나라에 가기를 원해서 나오셨나요, 예수님을 믿고자 나오셨나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나오셨나요..." 등의 질문을 통해서 목적을 확인해야 합니다. 만일 왜 나왔는지 답하지 못한다면 구원의 필요성을 간단히 설명하고 상대가 원함이 있을 때에 복음을 제시합니다. 셋째, 마음이 열린 상황에서 나온 사람에게는 "로마서의 길"을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복음의 핵심적인 사실을 믿는가를 묻고 답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만 설명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마음의 상태를 둔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10. 강단에서 구령하는 방법 (1) 초청을 효과적으로 해야 합니다. 설교와 연관해서 구원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시합니다. 설교의 주제 구절이나 예화를 통해서 초청하면 효과적입니다. 또한 청중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질문으로 그들의 반응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때 이해하기 쉬운 용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2) 메시지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표시하게 합니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기도하기 전에 손을 들게 합니다. 또는 기도하기 전에 믿음을 표시한 사람들을 기도 후에 공개적으로 앞으로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3)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표시한 사람들을 우선을 두고 행동해야 합니다. ① 초청에 응한 사람이 소수라면 다른 사람들은 헌신의 시간이나 기도의 시간을 주고, 초청에 응한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게 하여 자신이 죄인 것과 지옥의 형벌,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을 요약해서 말해 주고 믿음을 확인한 상황에서 영접 기도를 기도하게 합니다. 기도 후에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간단히 설명하거나 예배 후에 따로 교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② 초청에 응한 사람이 많은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은 헌신의 시간이나 기도 시간을 준 상태에서 자신이 죄인인 것과 지옥의 형벌,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을 요약해서 설명한 다음 그 자리에서 영접 기도를 하게 합니다. 이 경우에도 기도 후에는 구원의 확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거나 예배 후에 따로 교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11. 구령할 때에 받을 수 있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 (1) "그런데 주위에 교회 다니는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위선자들이 많아서요..." 골로새서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또 너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라.} 마태복음 24:51 {그러면 주인이 그를 갈라내어서 위선자들과 함께 그의 몫을 지우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 잘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동의하고 성경에서도 이들을 책망하는 것을 알려줍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못한다고 해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겠는가를 물어 보기 바랍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잘못을 알고 반복하지 않는 것처럼 질문하는 사람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잘못하는 사람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면 됩니다. (2) "그래도 선한 행위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죄와 그 결과와 해결 방법에 대해서 다시 설명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8-9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디도서 3:5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 (3)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상태에서 믿겠습니다." 이사야 1:8 {시온의 딸은 마치 포도원의 오두막같이, 오이밭의 원두막같이, 포위당한 성읍같이 남아 있도다.} 요한복음 6:39 {이것이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이니, 즉 그분께서 내게 주신 모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 누가복음 8:13-14 {씨가 바위 위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으므로 잠시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면 떨어져 나가는 자들이라. 씨가 가시떨기 사이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가서 이생의 염려와 부와 쾌락에 억눌려 온전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이요} 주님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나오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할 때까지 나오지 않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그대로 나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4) "나중에 믿겠습니다." 잠언 27:1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라.} 고린도후서 6:2 {(말씀하시기를 "내가 기뻐 받아들여진 때에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도다." 하였으니, 보라, 지금이 기뻐 받아들여진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 (5) "예전에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분(just, righteous)임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분의 판단은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1:18-23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가운데서 진리를 붙잡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거니와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음이라. 세상의 창조 때부터 그분에 속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보여졌고 심지어는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까지도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알려졌으므로 그들이 변명하지 못하느니라. 이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며 도리어 그들의 상상들이 허망하여지고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니 그들은 스스로 현명하다고 말하나 우둔하게 되었고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의 형상과 새들과 네 발 달린 짐승들과 기어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로마서 2:14-15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이 본성으로 율법에 있는 일들을 행할 때에는 율법이 없어도 이것들이 스스로에게 율법이 되나니 그들의 양심도 증거하고 그들의 이성이 송사하거나 서로 변명하여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여 주느니라.)} 신명기 32:4 {그분은 반석이시며 그분의 역사는 완벽하나니, 이는 그분의 모든 길이 공의이심이라. 그분은 진실하시고 악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며, 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마태복음 16:27 {이제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으로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그가 각자에게 그들의 행한 대로 상 주실 것이라.} 로마서 2:1,5,6 {그러므로 이 사람아, 판단하는 네가 누구일지라도 변명하지 못할 것은 네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 스스로를 정죄함이니 이는 판단하는 네가 똑같은 일들을 하기 때문이라... 다만 너의 완고함과 회개하지 아니하는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계시될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을 뿐이로다. 그분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리니} 사무엘상 2:3 {다시는 그처럼 심히 교만하게 말하지 말고 너희 입에서 오만이 나오지 못하게 할지니, 이는 주께서 지식의 하나님이시며 행동들이 그분에 의하여 저울질되기 때문이라.} (6)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자연을 통한 증거(시 19:1, 롬 1:20), 양심을 통한 증거(롬 2:15), 우주론적 증거, 목적론적 증거, 도덕론적 증거, 생명을 통한 증거(시 36:9, 요 11:25; 14:6; 10:28) 등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7)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가요?"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 베드로후서 1:21 {예언은 예전에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니라.} (8) "계속 죄를 짓는데 어떻게 합니까?" 히브리서 9:22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 요한일서 1:7 {그러나 그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간에 교제가 있게 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베드로전서 2:24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들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낫게 되었느니라.} 요한일서 5:17 {모든 불의가 죄이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느니라.} 요한복음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 } 디도서 3:5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에베소서 2:8-9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2 구령 실습 "Let's Go Soul Win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