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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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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영적 성장
lhyunsik

[도서] 영적 성장 저자 : 워치만 니 참된 영적 생명의 성장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난 후 기쁨과 승리를 맛보며 생활하다가 자신의 영적 생명에 더 이상 전진이 없음을 보게 되는 체험을 합니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만 그 원인과 처방을 모르고 방황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대부분 성경 말씀을 연구하고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면 영적 생명이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영적 생명의 성장은 전혀 다른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이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참된 영적 생명의 성장은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성분이 우리 안에 더해지는 것이며 소극적으로는 하나님 이외의 것이 우리 안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성분은 나가고 성령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의 것이 우리 안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빛을 비추시고 그 빛 가운데서 우리가 성령께 순종하게 될 때 이루어집니다. 그분께서 빛을 비추실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서 진리 곧 실재가 되고 우리를 많은 묶인 것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 비춤 아래서 영에 속한 것을 보고 그 실재를 체험해야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더 나아가 참으로 혼에 속한 것이 무엇인지 영에 속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안내하며 영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과 경건한 생활에 대해 체험적인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 생활을 통하여 더 깊은 기쁨을 맛보는 길과 참된 믿음 생활의 중심은 무엇인지 말씀을 통하여 알려 주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가 추구해 왔던 성경 지식으로만 그 실재를 얻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영적 생명의 성장과 믿음의 진보를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빛을 비춰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이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부어진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을 가득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한국복음서원은 워치만 니(Watchman Nee)가 전한 메시지를 모아 〈열두 광주리 가득히〉라는 제목으로 12권의 책을 출판했었습니다. 이번에 그 책들 중 네 번째 책을 새롭게 개정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원문대조를 통하여 꼼꼼하게 부족한 부분을 바로 잡고,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수정하였기 때문에 이 책은 읽는 이에게 하늘에 속한 풍성한 양식으로 만족을 줄 것입니다. --------------------------------------------------------------- 제1장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심 성경 : 누가복음 1:53, 마태복음 5:6, 열왕기하 4:1-6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가장 부족한 점 두 가지는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것과 하나님의 풍성을 모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알게 되고 주님의 풍성을 알게만 된다면 참으로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모르고 주님의 풍성을 모른다면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원인을 다 이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패하는 원인은 모두 다 이 두 가지에 포함되어 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일은 한 면으로는 우리 자신이 어떠한지 보여 주시는 것이고 또 한 면으로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보여 주시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자신을 알고 그분을 알게 된다면 모든 영적 어려움은 다 해결될 것이다. 자신을 비우는 것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주님의 풍성을 누리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또한 성령께서 역사하시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 하고 반드시 이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이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면 주님 앞에서 무엇이든 얻기를 바라지 말라. 그러면 그 조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비우는’것이다. 만약 우리가 계속적으로 주님의 풍성으로 채우기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계속적으로 비워야 한다. 자신을 비우는 것이 갈수록 더 깊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더 이상 비울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비웠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형제자매여, 우리는 매일매일 자신을 비우는 것이 필요하다. 한 달이 지난 후에도 비워야 하고, 일 년이 지난 후에도 또다시 비워야 한다. 다 비운 것 같아도 얼마 후에 또 비울 것이 있는 것이 우리의 체험이다. 한 번 비웠다고 해서 영원히 비워지는 것이 아니고, 한 번 충만해졌다고 해서 영원히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에 대해 갈수록 깊이 알아야 하고, 주님의 풍성에 대해서도 갈수록 깊이 알아야 한다. 누가복음 1장 53절에서는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준비된 자, 곧 굶주린 자만을 위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만일 우리가 집회에 올 때 무엇을 볼까, 무엇을 들을까를 생각하고 온다면 우리는 반드시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아무것도 들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의 동기가 성경 지식만을 얻으려고 한다면 영적인 면에서의 실제적인 어려움은 해결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하다. 이런 사람에게만 하나님은 축복을 내려 주신다. 모든 영적 성장의 조건이 다 구하는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마태복음 5장 6절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신 것같이 굶주린 자가 곧 배부를 자요, 복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많은 성도들의 체험으로 볼 때, 성령께서 첫 번째 하시는 일은 어떤 사람에게든지 같다. 그 일은 곧 ‘구하는 마음’을 생기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영적 성장의 시작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심으로써 우리 안에 구하는 마음을 생기게 하신다. 언제든지 영적 성장은 성령께서 먼저 시작하심으로써 시작된다. 성령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게 하신다. 즉 현재 자신의 형편없는 상태를 드러내신다. 우리의 영적 생활이 너무나 보잘것없고 너무도 치졸하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 성령께서 하시는 첫 번째 일은 바로 우리에게 자신에 대한 불만을 갖게 하여 우리 속에서 더 좋은 것을 원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시는 것이다. 형제자매여,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현재의 자신의 영적 상태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영적 성장은 언제나 더 좋은 상태를 바라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실패와 퇴보의 원인은 바로 스스로 만족해 버리는 데 있다. 자만이야말로 실패의 시작이다. 언제든지 우리가 자신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그때가 곧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일을 시작하시는 때요, 우리를 전진하게 하시는 때이다. 도리어 자신의 궁핍과 부족을 모를 때가 정지된 상태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퇴보의 시작은 자만이요, 진보의 시작은 주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실은 언제나 변함없다. 언제든지 성령께서 먼저 우리 속에서 원하는 마음을 생기게 하시고, 그 후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만족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풍성히 채우는 역사를 하시기 위해 먼저 우리 속을 비우는 역사를 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비워졌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충만하게 하신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구하는 마음이 있고 참으로 자기 자신의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느끼고 더 아름다운 생활을 하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하면 풍성한 생명을 능히 누릴 수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형제자매여, 만일 당신에게 그러한 느낌이 있다면 안심하라. 그리고 확신을 갖고 이렇게 말하라. “나는 반드시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이러한 마음은 당신 자신에게서 생긴 것이 아니고 온전히 성령께서 당신 속에서 역사하신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비우는 이 일을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충만하게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비우셨으므로 하나님께서 또 우리를 충만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시지 않을 거라면 우리를 비우는 역사도 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비우는 것은 하나의 절차이고, 충만하게 하는 것은 목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비우셨다면 충만하게 하시지 않을 리가 없다. 우리에게 구하는 마음이 있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령의 역사 아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속에서 저지하면 몰라도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성령은 결코 결과 없는 일을 하시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원한다면 반드시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꼭 깊이 알고 기억해야 한다. 즉 성령께서 일을 시작하셨다면 그분은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시고 완성하실 것이다. 그분은 일하시고 또 일하셔서 그 일을 이루시고야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심해도 된다. 만일 우리가 비운다면 그분은 반드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실 것이다. 새로운 어려움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 한 가지 기이한 일은 성령께서 능히 우리를 비우게 하신다는 것이다.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모두 이러한 체험을 갖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이 좋다고 느끼고 어떠한 일에나 자신을 내놓을 만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얼마 안 가서 현재 자신의 생활이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자신의 실패를 보게 되며 더 이상 이러한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고 느낀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되고 하나님으로만 충만하게 되어 참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환경을 마련하실 때 우리는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또 그것을 싫어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할 때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된다. 그때 그것은 우리에게 간증이 되며, 우리는 승리했다고 말한다. 곧 “나는 그때 주님이 충만하여 그 일을 이겼다.”라고 우리는 간증하며 그날부터 감히 승리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이한 것은 얼마 안 가서 그 승리는 사라지고 다시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한때는 승리하는 것이 매우 쉽게 여겨졌었지만, 오늘에 와서는 아무런 능력도 없고 또다시 새로운 어려움이 와서 큰 장벽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 것같이 도저히 길을 뚫고 갈 수 없게 된다. 그때 우리는 과거의 그 승리를 이미 잃어 버렸다고 말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충만하셨었다는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형제자매여, 당신에게 이러한 체험이 있는가? 있다면 이러한 체험 속에는 무슨 뜻이 있는가? 우리는 주님 앞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갈수록 깊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을 비우면 비울수록 주님의 풍성은 더욱더 넘치게 된다. 첫 고개를 넘은 후 우리는 더 이상 높은 생활은 없을 것이라고, 또 더 이상 진보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이러한 상태에서 스스로 풍성한 생명을 다 얻었다고 자족할까 봐 또 새로운 어려움을 주신다. 그분은 어려움 곧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앞에 놓아두신다. 처음에 우리는 그것을 과거의 체험으로써 꼭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때 우리는 자신이 깨어 있지 않았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하여 두 번째는 더 조심하고 더 노력하려고 하지만 두 번째에도 역시 실패하게 된다. 우리는 또다시 자신이 깨어 있지 않았고 노력하지 않았음을 후회하며 좀더 노력하고 좀더 조심해 보지만 결과는 역시 실패이다. 이 고개는 참으로 넘기가 어렵다. 우리는 이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또 이러한 일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정말 모른다. 우리에게는 전혀 승리할 길이 없다. 우리는 왜 이렇게 실패만을 계속하는지, 원래의 순종하던 그 힘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의심하게 된다. 또 한 면으로는 이렇게 실패하는 것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여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더 깊이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더 깊이 비워 하나님으로 더 충만하게 하기 위하여, 그러한 새로운 어려움을 우리 앞에 놓아두시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새롭게 충만하게 되지 않으면 새로운 어려움을 이길 수 없다. 우리가 전진할수록 어려움은 더 많아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어려움은 다 성령께서 안배하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해 갈수록 필요를 느끼게 하고 갈수록 갈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새로운 능력 아! 여리고의 승리를 아이 성으로 가져가지 못한다. 아이 성은 작은 성이다. 아이 성에 비해 훨씬 큰 여리고 성을 당신이 무너뜨렸었지만, 당신은 과거의 체험으로써는 이 작은 아이 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과거에 이루었던 승리로써는 오늘의 영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나간 역사일 뿐이다. 현재의 새로운 영적 어려움은 반드시 새로운 능력으로써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어려움을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필요를 알려 주시는 것이다. 한 번의 승리는 영원한 승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십자가가 우리 속에서 계속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충만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만일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계속 일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승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시험이나 어떠한 어려움이 우리 앞에 놓여지든지 과거의 역사와 과거의 체험은 우리를 조금도 도와 줄 수 없다. 우리는 다시 새로운 능력을 얻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의 환경 가운데서 안배하신 모든 것은 다 우리 속에서 구하는 마음을 생기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체험을 의지해서는 승리하지 못한다. 과거의 승리는 여전히 거기에 있지만 그 승리를 가지고서는 이 새로운 어려움을 이기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승리만을 돌아보고 있다. 그들은 왜 현재 계속 승리하지 못하는지 모른다. 형제자매여, 우리는 하나님이 어제 먹었던 만나를 먹으라고 하시는 분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새로운 어려움이 있으면 반드시 새로운 필요가 뒤따르는데 이것은 과거에는 없었던 것이다. 아, 형제자매여, 우리가 만일 주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없고 새로운 것을 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승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하셔서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주님께 “저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전진은 시작된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일하셔서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구하는 마음을 생기게 하신다. 당신은 아는가? 갈망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그분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하셨고 우리 속에 구하는 마음까지도 주셨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 구하기를 기다린다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조건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우리 자신의 약함과 무능함, 육신의 방해와 교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계속 자신이 부요하다고 생각하며 계속 여리고의 승리만을 기억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하는 마음도 주실 수가 없다. 만일 우리가 과거의 승리만을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계속 첫 승리의 체험만을 의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미 실패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과거의 승리는 절대로 오늘 우리의 능력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더하시는 것은 우리를 더 깊이 파서 주님으로 더욱더 충만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살아 있는 믿음 살아 있는 믿음은 결코 이전의 행위를 본받지 않는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의 ‘믿음’을 본받으라고는 했지만 다른 사람의 ‘믿음의 행위’를 본받으라고 말하지는 않았다(히 6:12, 13:7). 믿음을 본받는 것과 믿음의 행위를 본받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당연히 사도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하지만 그들의 믿음의 행위까지 본받을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사도들의 그림자, 수건, 옷자락으로 병을 고치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행 5:15, 19:12). 우리가 사도들과 똑같이 행동해도 병은 고쳐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믿음의 행위를 본받는 것이기 때문이요, 그들의 믿음을 본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치료해 주셨다고 해서, 우리가 그와 똑같은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도 그와 똑같이 치료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절대로 다른 사람의 믿음의 행위를 본받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가 많은 시간 동안 헛된 길을 간 후에야, 우리는 다른 사람의 믿음의 행위를 모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러한 것은 살아 있는 믿음이 아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른 사람의 믿음의 행위를 본받는 것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참으로 우리가 더 이상 할 수 없고, 우리에게 전혀 길이 없을 때, 우리의 기도는 실재가 되고 우리는 하나님을 구하게 된다. 이전에 했던 우리의 기도는 말뿐이었고 마음에도 없었으며 습관적이었을 뿐이고 진실하게 구하지 않았었지만 이제는 진실한 기도가 우리에게서 나오게 된다. 이때야말로 자신을 비우는 때이다. 이제 우리는 “저는 아무 쓸모없는 자입니다. 이전에 했던 승리도 이제 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어려움과 현재 우리 자신의 능력을 비교해 볼 때, 우리는 그 어려움을 자신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때 비로소 우리에게는 주님을 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이때야말로 우리 자신이 아무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겸손하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겸손하게 된다. 이 겸손은 사람의 가르침으로 된 것이 아니요, 자연히 이루어진 것이다. 이때에서야 모든 것의 헛됨을 참으로 깨닫게 되고 요한복음 15장 5절의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는 말씀을 깨닫게 된다. 형제자매여, 하나님은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구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시련과 어려움을 우리 앞에 두실 때에야 우리는 진실로 그분을 구하게 된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참으로 필요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우리의 뜻대로 일을 할 때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을 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함을 알게 된다. 아, 형제자매여,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십자가 안에 ‘넣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많은 때 자신을 너무 높게 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십자가 안에 넣어졌고 골고다 안에 넣어졌기 때문에 이미 없어졌다. 형제자매여, 언제든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비울 때가 곧 주님께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실 때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미리 말씀하셨다.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 그분은 반드시 주리는 자를 배불리신다. 형제자매여, 하나님은 당신을 이렇게 인도하셨는가?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가? 누구든지 완전히 비어 있는 자는 복이 있다! 그는 반드시 배부를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자신을 부요하다 생각하고, 자신이 모든 면에서 가장 낫다고 느끼고 있다면 당신은 빈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오직 손과 마음이 비어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서 배부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형제자매여, 당신은 참으로 비워져 있는가? 당신은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는가? 당신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자신을 아무 쓸모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일 우리가 참으로 비워져 있고,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원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역사를 시작하실 것이다. 영적 원칙 열왕기하 4장에 기록된 말씀은 우리에게 영적 원칙 한 가지를 보여 준다. 그 여인과 아들에게는 무엇이 있었는가? 오직 한 병의 기름만 있었을 뿐이다. 이 한 병의 기름이 바로, 그 후에 많은 그릇에 부었던 기름이다. 그러므로 원래 있었던 그 약간의 기름이 필수적이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 속에 성령이 있는 사람에게만 성령은 역사하신다. 그 과부의 어려움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그릇의 수가 적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라고 분부했다. 그때 그 여인은 어떻게 하였는가?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여기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이것이다. 곧 그 여인이 가서 빈 그릇을 빌리는 것은 바로 성령께 자리를 비워 드린다는 뜻이다. 또 조금 빌리지 말라는 뜻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한 자리만 비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자리를 비우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것도 비우고 저것도 비우고, 많이 비울수록 많이 충만해진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원칙이다. 영적 성장은 오직 계속 비우고 또 비울 때 계속 충만하게 되고 또 충만하게 되는 데에서 이루어진다. 성령의 역사는 한 번 비운 것으로 영원히 충만하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계속 비우고 또 비울 때 계속 충만하게 되고 또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자매여, 절대로 한 번 비운 후에 비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십자가는 우리에게 갈수록 더 많이 역사하고 갈수록 더 깊이 우리를 파낸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그 기름을 어떤 곳에 붓느냐이다. 집에서 문을 닫는다는 것은 오직 그 여인과 아들과 기름만이 그 안에 갇힌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직접 성령과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은 다 우리 자신과 주님 사이의 일이요, 어려움도 승리도 다 우리 자신의 일일 뿐이다. 그러므로 무슨 문제가 있을 때에는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도 말고 핑계대지도 말고 문을 닫고 오직 우리 자신이 개인적으로 주님과 교제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관계는 다 성령 안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생명에 있어서 풍성하게 될 것인지, 빈곤하게 될 것인지는 우리가 성령과 함께 결정해야 한다. 다만 성령께서 우리의 영적 생명의 풍성을 이루시기를 원해야 한다. 달든 쓰든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면 다 좋은 것이다. 또 하나 가장 귀한 것은 아들이 ‘그릇이 없다’고 말했을 때 기름이 그친 것이다. 성령은 모든 그릇에 다 충만하게 되었고 마지막 그릇에까지도 충만하게 되었다. 만약 거기에 그릇이 더 있었더라면 기름도 더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릇이 없을 때 기름이 그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기름이 먼저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릇이 먼저 부족한 것이다. 그릇이 없을 때, 기름은 그친다. 기름이 그친 까닭은 그릇이 없는 데 있다. 기름을 더 붓지 못하는 것은 그릇을 더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제자매여, 하나님은 우리가 비워 드리기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무한하게 비운다면 성령도 무한하게 충만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은 우리에게 빈 그릇이 있느냐, 즉 우리가 성령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성령께 우리 안에 지위를 내어 드리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더 깊이 파내시고 우리 안에서 더 많은 지위를 얻으시도록 그분께 기도해야 한다. 성령이 충만하고 충만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비우느냐 비우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또다시 말하거니와 우리는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워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비우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실 수 없다. 성령은 우리가 자신을 비우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더 많이 비울 때 더 많이 충만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충만하기를 원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을 비우기를 원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비울 때 성령이 충만하게 된다. 비우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요, 충만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책임이다. 우리가 참으로 비운다면 반드시 충만하게 된다. 우리의 느낌에는 충만하게 되지 않을지라도 충만의 사실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형제자매여, 하나님은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신다고 하셨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구하는 마음을 생기게 하시고 또 우리를 파서 비우게 하셨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실 것을 믿으라. 그러나 스스로 부요하다고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