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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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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약 교회[지역교회]
lhyunsik

[ 성경은 교회를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 지역 교회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유일한 신약의 조직이다. 성경에서 첫 번째 지역 교회는 8명으로 구성되었다. 교회라는 말 자체는 "에클레시아"로 "불러냄을 받은 모임"(a called out Assembly)이란 의미이며, 따라서 성경에서 첫 번째 실제 교회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 아래 있는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았다. "교회"는 무엇인가를 증거하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노아는 그의 시대가 물에 빠져 죽을 것임을 증거하기 위해 불러냄을 받았고, 그는 일곱 명을 하나님께로 인도했다. 성경에서 두 번째 교회는 아브라함과 그의 친척이다. 원래 그는 모임의 형태로 불러냄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는 홀로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으나, 그의 친척들이 그와 함께 떠났다. 그는 바벨은 바벨이라는 사실과 세미라미스와 님롯이 신으로 숭배되었던 고대 바빌론의 태양과 달의 숭배는 마귀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불러냄을 받았다. 성경에서 세 번째 교회인 "광야의 교회"(The Church in the Wilderness)(행 7장)는 분명히 이스라엘 민족을 언급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인도하시는 살아 계시고 참되신 유일한 한 분 하나님이 계시며, 이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죄를 용납하지 못하시는 분이라는 진리를 세상(이집트)에 입증하기 위해 불러냄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약 200만 명으로 이루어진 지역 교회였다. 모세는 이사야 63:11에서 양떼를 맡은 목자(Pastor)로 불린다. 오늘날 신약 교회의 문제점들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나타난 광야 교회의 모습에서 발견된다. 즉, 형제들간의 분쟁, 목자의 부인에 대한 비평(민 12장), 목자가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한 불평(출 32장), 먹을 것이 없다는 불평, 뒤에서 공격받음(출 18장), 지도자의 지위를 인수하려는 내부의 거짓 형제(민 15,16장) 등에 관한 내용과 이러한 교회의 회원들과 타락한 부목사, 젊은이들을 위한 육신적 프로그램의 요구,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욕구, 지도자에 대한 믿음과 신뢰의 부족 등을 제거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내용들이다. 그 다음으로 불러냄을 받은 모임은 마태복음 16장에 있다. 이 지역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의 태아이며, 오순절 이후에 형성된다. 이 지역 교회는 아직은 구원받은 사람들로만 구성된 (거듭남으로 그 몸으로 들어가는) "그리스도의 몸"은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된 다윗의 자손으로, 유대의 메시아이며 다윗의 보좌에 앉으실 분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불러 낸 지역 모임이다. 이 지역 교회는 오순절 ?살아 있는 유기적인 몸으로 변화하여 그 후로부터 계속해서 주 예수께서는 유대의 메시아이실 뿐만 아니라 "세상 죄를 제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피의 속죄를 이룩하신 온 세상의 구주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불러냄을 받았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라는 단어는 117번 나오는데, 이 중에서 지역 교회에 연관해서 107번이나 사용되었고, 나머지 10번은 그리스도께서 머리 되시는 유기적이고 영적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엡 1:22, 골 1:18, 고전 12:27, 딤전 3:15 등) 요한계시록 1, 2, 3장은 지역 교회에 대해 언급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교회라는 말 자체는 성경에서 5가지로 적용이 가능하다. 1. 이스라엘(행 7:38) 2. 이교도들의 모임(Pagan Assemblies, 행 19:39) 3. 영광스러운 교회(a glorified Church, 엡 5:27) - 죄가 없고 완전한 신부, 아내(고후 11:2) 4. 그리스도인의 지역 모임(계 1-3장): 롬 16:1,4,5,16, 행 15:3,4,21; 19:32,39,41, 고전 4:17, 6:4, 7:17, 11:16. 14:4,5,12,19,23,28,33 등 - 복수(가장 보편적으로 쓰인다) 5.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엡 1:22,23) - 단수 복음 전도자와 성경 교사들은 하나의 지역 교회보다 그리스도의 몸을 더욱 강조하는 반면에, 목사들은 지역 교회를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그들의 수입이 그곳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모두가 성경적인 관점이지만, 그 둘은 확실히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단수(교회)이고, 후자는 복수(교회들)라는 점이다. 전자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나, 후자는 제도화된 기구이다. 살아 있는 유기체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구원받은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으마, 제도화된 기구에는 구원받은 사람 이외에 그저 교회에 눌러 앉아 있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다. "불러낸 지역 교회들"의 종말은 배교이며, 그리스도의 몸의 마지막은 영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전적인 배교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신약 성경에 따라 지역 교회를 세우는 것이며, 비성경적인 입장에 서 있는 어떤 그룹들과도 타협하기를 거절하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에베소서 1장에서 알려졌고, 에베소서 5장에서 묘사되었으며, 마태복음 16장에서 약속되어졌다. 또한 교회는 갈보리에서 실현되었고(행 20:28), 예수 그리스도의 혼인식에서 신부로서 등장하게 될 것이다(엡 5, 시 45편, 계 19장). 진정한 교회가 이 땅에서 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 진정한 교회라면, 이 교회는 우선적으로 3가지 일에 전념해야 하며, 이 교회의 인도자는 우선적으로 2가지 일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사도행전 8:4에서 목사는 지속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에 자신을 드려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며, 둘째는 기도하는 것이다. 매우 간단하지 않은가? 목사는 데모에 참가하지도, 국제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았으며, 어떤 단체에 연루되어 있지도 않았고, 어떤 정치적인 연관도 갖지 않았다.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투쟁"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인종을 혼합하는 일에도 관여하지 않았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와 함께 "대화"하지도 않았다. 오직 말씀의 사역과 기도에만 전념했다. 지역 교회는 3가지 일에 전념해야 한다. 1.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2.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 3. 구세주를 영화롭게 하는 것. 이것이 전부이다. 더 이상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 만약 신약 교회가 되기를 주장하면서 이 3가지 입장, 즉 구령하고, 성도들을 양육하고, 교회의 기초를 세우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일 이외의 다른 것을 주장한다면, 그 교회는 이 지상에 존재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재산과 건물과 조직과 수송 차량과 협력지(신문) 등이 필요하다 해도 이 3가지 일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92년 4월호(창간호) p16. =============================================================== ["성경적 신약 교회"는 "불러냄을 받은 지역 교회"이다. ] 마태복음 10장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불러냄"을 받은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불러냄"을 받은 교회들은 이 지구상에 늘 존재하여 오고 있다. 우리가 "교회"라고 했을 때 이는 그리스도인이 인식하고 있는 의미로서 사용되고 있음을 말해 둔다. 피델 카스트로, 아돌프 히틀러, 하인리히 힘믈러, 조셉 괴벨즈, 프란시스코 프란스, 블루디 메리 등에게 세례를 주었고, 또 이들을 추종했던 로마 카톨릭에 의하여 자행되어 온 수세기 동안의 대 재앙을 통과하며, 이들 지역 교회들은 그 암흑의 시대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성경대로 믿는 "불러냄을 받은 교회들"은 각기 다른 이름들로 불려졌으며, 그들 모두가 "침례교도"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지지는 않았다. 종종 그들은 재침례교도(Anabaptist)들로 불려졌으며, 지역 교회 역사의 초기에 그들은 도나티스트(Donatist), 몬타니스트(Montanist) 그리고 노바티안(Novatians)들로 불렸고, 이들의 적들은 아주 빈번하게 그들에게 네스토리안(Nestorians) 펠라기안(Pelagians), 또는 마니키안(Manicaeans) 그리고 진부한 대체어로 "아리안"(Arian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용어들은 아기에게 물을 뿌려 구원시키는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렇게 명명함으로써 세상으로 하여금 성경적으로 불러냄을 받은 교회들을 '이단'으로 규정짓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이제 성경적으로 "불러냄을 받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특성을 알아보자. 1. 바울의 계시(가르침)는 어떤 기독교 교리들이 바른 것인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서 마태복음, 사도행전, 그리고 히브리서 보다 우위에 놓는다. 2. 성경을 거역하는 교회들이나 성경을 거부하는 어떤 사람들과도 제휴하지 않는다. 3. 교회 안에서 기쁨과 능력을 외부로 나타내는 자유가 있다. 4. 세상적인 교회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열망, 즉 천국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열망이 있다. 5. 과학과 교육은 육신을 변호하는 것으로 신뢰하지 않으나, 그 효용성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장려하는 것이 아니다). 6. 교사들, 설교자들, 학자들, 어떤 부류의 종교 지도자들이라도 그들의 모든 견해들을 판단하는 재판관으로서 성경의 권위와 능력을 절대적이고도 견고하게 믿는 믿음이 있다. 7. 어떤 형태로든지 아기에게 세례나 침례를 주는 것을 거부한다. 8. 어떠한 종교적 의식이나 성례전에도 구원의 능력이 없음을 믿는다. 9. 구원받았음을 공개적으로 간증하는 것만을 구원을 받은 것으로 인정한다. 10. "종교적인" 사람들의 세상적인 간증은 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11.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며, 세상에서 묵과된 "수용할 만한 관습"도 따르지 않는다. 이것을 두고 교육자들과 과학자들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은 "인류를 증오하는 행위" 또는 "이단"이라고 판단한다. 12. 로마 카톨릭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공언하는 비성경적 교육자들로부터 반대와 박해가 있다. 위에 열거한 사항들이 성경적으로 "불러냄을 받은 교회"의 표식이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에 이런 교회가 있는가? "카톨릭"이라는 말이 "전체적인 또는 완전한" 또는 어떤 것의 "전부"라고 의미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런 뜻이 아니다. 이제 이 말은 파시스트, 전체주의자, 성경을 모독하는 종교적 독재자라는 뜻이 되고 있다. "감리교도"라는 말도 한때는 존 웨슬리를 믿고 추종하는 어떤 사람들을 의미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뜻은 "도를 벗어난" 또는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는 뜻으로 전락하였다. 침례교회도 그 예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많은 교회들이 순수한 믿음을 상실한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부르는 침례교회란 반 카톨릭(Anti-Catholic)을 뜻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귀하를 설교자로 부르셨다면, 귀하께서 지역 교회를 왜 시작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몇 가지 알아보자. 하나님께서 모든 젊은이들, 심지어는 한 교회의 목사라고 해도 모두 다 교회를 시작하라고 부르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찌하든 그 문제로 귀하를 다루시고 계시다면 귀하께서 교회를 시작해야 하는 열 가지 이유가 있다. 물론, 오늘날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훨씬 다양한 사역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이런 사역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부르심"으로 확장되어 오고 있다. 그 사역들 가운데 90퍼센트는 신약에서 발견되지 않는 다양한 일들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은 선교사들의 자녀를 교육하기 위한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필요로 하고, 출판사에서 일할 타이피스트와 컴퓨터 오퍼레이터, 복사 공정을 맡아 일할 전기 기술자와 프린터, 버스 운전사, 기술자, 비행사 등등 하나님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신약에서의 기본적 단위는 지역 교회이다. 신약 교회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10가지 정도 있으며 우리는 여기서 그것을 밝히고자 한다. 1. 지역 교회는 지구상에 있는 조직의 형태로서는 유일하게 성경이 인정하는 신성한 기구이다. 2. 지역 교회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든 위대한 복음 전도자들의 종합적 사역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어 왔다. 3. 지역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쟁에 사기를 불어넣어 주고 무기를 제공하는 집결지이다. 4. 지역 교회란 세상으로 하여금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개인적으로 각각 흩어져 있지 않고 그들의 모임이 충만한 나무와 같다는 것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한다. 5.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두 번 정도(때로는 그 이상) 그 구성원들이 살고 있는 사회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단위로서, 세상으로 하여금 앞으로 글자 그대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거대하고 광대한 "불러냄" - "휴거" - 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6. 귀하가 돌이켜 보면, 귀하의 생애 가운데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지역 교회에 관련되어 있지 않으면서 귀하에게 영향을 준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침례교회나 감리교회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초교파적인 사람들도 그들의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십일조에 의존해야 한다. 만약 그들이 어떤 지역 교회의 교회 명부에 이름이 올라있는 사람들로부터 보냄을 받지 않았다면, 그들은 재정적 필요를 얻지 못할 것이다. 7. 귀하가 다른 종류의 사역을 시작했을 때, 귀하에게 찾아와 줄 사람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나 또는 교회 안에서 성장했고 훈련받은 사람일 것이다. 8. 지역 교회를 배제한 채, 지상에서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일은 없다(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일들만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현대의 생활은 교회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예배를 드려야만 겨우 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며, 만약 일주일에 한 번만 예배를 드린다면 그들은 영적으로 무력해 질 것이다. 9. 어떠한 그리스도인들도 지역 교회와 관계가 있다. 에디오피아 내시도 사마리아에 있는 지역 교회에 속한 빌립에게 인도함을 받았다. 10. 만약 지역 교회가 문을 닫아버린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성경 학교, 구령 사역, 젊은이들을 위한 캠프 등을 선용할 수 없으며, 기독교 학교에서조차도 성경을 배울 수 없게 된다. (이 점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지역 교회는 귀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다. 세상에 있는 어떤 학교도 한 명의 복음 전도자가 마을의 한 지역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정도로 귀하의 자녀를 영적으로 성장하게 할 수 있는 곳은 없다. -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92년 5월호(통권 2호). ================================================================ 0. 지역교회 성경은 지상에 있는(건물) 눈에 보이는 교회(Visible Church)를 하나님의 교회(성경상의 의미로서의 교회)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교회는 개개인들이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여 영접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용서받은, 영이 거듭나고 혼이 구원받은 성도들로 이루어진 주님의 몸을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같이 하라』(엡5:25). 1. 교회의 정의 하나님의 교회는 오순절과 더불어 시작하였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휴거와 더불어 끝나게 될 것이다. “교회”라는 말은 희랍어 에클레시아(Ecclesia)에서 연유되었으며 “ ~에서 불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제도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것이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들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고전 1:2). 교회라는 말은 성도들의 지역적 집합체를 지칭할 수도 있다. 『너의 집에 있는 교회에』(몬 2). 『그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노라』(골 4:15). 교회란 말은 또한 우주적(Universal)인 의미의 교회를 지칭할 수도 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자요, 사도라 불리기도 적합지 못한 자니 이는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이라』(고전 15:9). 1. 교회와 천국의 구분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를 보면 천국은 선과 악 양자로 이루어져 있다. 한때 유대인들에 의하여 배격된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세워질 것이다. 2.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의 구분 가시적 교회는 지역교회의 명단에 등재된 사람들로 구성된다. 지상의 모든 교파와 분파와 선한 자나 악한 자나 중립을 지키는 자도 모두다 여기에 포함된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어린양의 생명 책(계 21:27)에 기록된 사람들의 이름으로 구성된다.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사신 성도들로 구성된 주님의 몸이다. 3. 지역교회(Local Church)와 우주적 교회(Universal Church)와의 구분 지역교회란 일정한 장소에 있는 지역적 집회를 의미하며 우주적 교회의 의미란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간 모든 거듭난 성도들이 그의 몸의 지체를 이루고 있는 것을 말한다. 2. 교회의 설립 마태복음 16:16-18에는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했다. 카톨릭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지 않았다. 교회는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졌다 고전 10:4 그 반석은 그리스도셨느니라. 베드로도 자신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석이심을 밝히고 있다(벧전 2:4-9). 마태복음 16:16-18과 요한복음 20:19-23과 마태복음 18:18의 연구는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 보다 더 높은 지위를 받지는 않았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는 성령이 강림하신(행 2장) 오순절에 이후에 세워졌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그 교회에 날마다 더해 주시더라.』(행 2:47). 그들은 모이는 장소를 지정하였다(행 1:13, 5:12, 2:46, 12:12). 그들은 모이는 날을 정하였다(행 20:7)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기 시작함으로 지역교회가 형성되었다. 3. 지역 교회에 회원이 되는 조건 1. 회원의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Saviour)요 주인(Lord)이신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로 믿는 믿음(마 16:16-18)이 있어야 한다. 2. 회원의 간증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을 회중 앞에 간증을 통해 증거해야 한다. 성령을 받고 거듭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의 사람이 아니니라.』(롬 8:9). 3. 회원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마28:19 행10:47,48). 구원받은 사람이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기 위해서 침례를 받는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데 침례를 받게 하거나 받는 것은 옷 입은 채로 목욕하는 것과 같다 하겠다.(의미 없는 행위들이다) 4. 회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회원들은 오직 성경말씀에 따라 믿음을 실행해야 한다. 『그들이 사도들이 가르친 교리와 교제, 빵을 떼는 것과 기도하는 데 전념하더라.』(행 2:42). 4. 보이지 않는 교회의 상징 1.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는 몸의 머리되시며 우리는 그 지체들이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골 1:18) 『... 온 몸이 머리에서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엮어져서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골 2:19; 엡 1:22,23). 2.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 건물, 또는 내재하시는 곳(엡 2:20,21) 그리스도는 중요한 모퉁이 돌이 되시며 우리는 건물을 이루는 서로 다른 부분이 된다. 3. 그리스도의 신부 『이는 내가 경건한 질투로 너희에게 질투를 느낌이라.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켰나니 이는 한 순결한 처녀로 너희를 그리스도께 바치려는 것이라』(고후 11:2). 그리스도는 교회의 신랑이시다(요 3:29). 혼인식은 계시록 19:7에서 거행된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리세. 이는 어린양의 혼인식이 다가왔고 그의 아내도 자신을 예비하였음이라. 이제 그녀에게 허락하사 정결하고 흰 세마포를 입게 하셨으니 ...』(계 19:7,8). 이것은 성도가 휴거 되고 나서 셋째 하늘에서 있게 될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신부된 교회와의 혼인식이다. 5. 지역 교회의 의식 로마 카톨릭은 7가지 성사를 주장하고 개신교에서도 수많은 절기와 의식을 실행하지만 성경은 지역교회에는 두 가지의 의식만이 있다고 가르친다. 1. 침례식(마 28:19,20; 벧전 3:21) 2. 주의 만찬(고전 11:20-34) 6. 교회가 존재해야 할 목적 1. 하나님께 경배하고 지상에서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를 기쁘게 받아들이시어 그 은혜의 영광을 찬양케 하려 하심이니라』(엡 1:6). 2.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삼아』(마 28:19-20; 엡3:8). 3.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함으로써 성장시키기 위하여 『이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여』 (엡 4:11-15; 살전 5:11; 고전 12:1-31). 4.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게 증인이 되리라』(행 1:8). 결론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하나인데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많은 교파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생겨난 것이거나 교단 교리나 전통을 성경보다 우위에 둠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성경을 최종 권위로 인정할 때만 성경대로 믿게 된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목적은 자기 앞의 영광스러운 교회로 나타내서 점이나 주름진 것이나 또는 그러한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 없게 하려는 것이다(엡 5:27).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거나 성경을 벗어난 어떤 것도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원경희 목사(강릉성경침례교회) ================================================================ 1. 교회의 구성과 하는 일 매주 첫날에는 전국방방곡곡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갖가지 방법으로 예배를 드린다. 인간의 방법으로 경건하고 화려하고 거룩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아마 최선을 다했을 겁니다. 순수한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아 주셨을 것이라고 믿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께서 열납해 주시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얼마나 될까요? 한국에 무려 46,000여개의 크고 작은 교회가 있다. 창립예배를 드리면서 교회로 등록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문을 닫는 교회도 있다. 교회는 많은데 갈곳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교회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무리 찾아봐도 알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 이기적이고 사랑이 없다고 하는가 하면, 교회나 절이나 다 잘먹고 잘살아 보자고 믿는 종교가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밤거리를 자동차로 달려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붉은 십자가가 보이는지. 전국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이곳 강릉에도 골목골목마다 또한 큰 건물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각 교파의 교회로 넘쳐나고 있다. 과연 왜 지역교회가 필요한가? 어떤 교회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인가? 어떤 사람이 교회를 인도하는 영적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과연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어떤 일을 하기를 바라고 계시는가? 교회마다 자기 교회가 최고라고 하지요 교회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방법이고 성경 적인 하나님의 일이라고 한다. 교회건물크기와 모이는 숫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누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모든 잣대가 되어야 하는 성경을 외면해 버린 현실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은 아무것도 분별 할 수도 행할 수도 없다. 그래서 바른 성경이 최종권위가 되어야 하고 바른 성경을 믿고 가르치고 행하는 지역교회가 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교회하나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피로 사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믿고 행하는 성경대로 믿는 참된 지역교회를 세우고 회중이 되어야한다.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복음을 외치며 진리를 가르치는 교회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일을 해야한다. 결코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환경과 여건을 의심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쓰임 받아야한다. 교회는 돈으로 세워지는 것도 아니요 세상 적인 조직을 통해서 운영되는 것도 아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도 장로도 아니라 오직 주님이시다. 1.교회의 기원 엡3:9-11 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서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감추어져 왔던 신비의 교제가 무엇인지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려는 것이니 이는 이제 교회를 통하여 천상에 있는 정사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를 알게 하려는 것이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서 계획하신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니라. 교회의 기원은 하늘에 있다. 2.교회의 기초 마16:18 나도 너에게 말하노니, 너는 베드로라. 그리고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의 기초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베드로(카톨릭 주장)는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없다. 교회는 반드시 터(고전3:11)이며 반석(고전10:4)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야한다. 교회의 머리(엡5:23,골1:18)는 그리스도시며 그 몸은 성도(교회)들이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피로 값을 치르고 사신 교회(행20:28)이며 하나님의 교회(딤전3:15)라고 불린다. 이 교회를 탄생시키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셨다(엡5:25) 교회는 순결한 처녀다.(고후11:2) 교회는 점이나 .주름이나 ,흠이 없어야한다.(엡5:27) 교회를 정화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의 물이 필요하다.(엡5:26) 이 교회는 독특하고 유일한 기구다 세상기구와 다르다.(가정. 학교. 직장. 정부......) 교회는 예수님께서 죽기 전까진 없었다((마26장 이후) 이 교회는 양 우리이며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들으며 목자를 안다. 이 목자는 선한 목자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다 과연 이런 교회가 얼마나 있는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의 교회를 라오디케아 교회라고 한다 라오디케아 교회의 특징은 배교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교회가 배교 했는지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분별 할 수 있는가? 올바른 성경도 성경적 지식도 없는데 그러기에 속고있는지 조차 모르는 것이다. 3.어떤 교회가 참 교회인가. 하나님은 지역마다 필요에 의해서 지역교회가 세워지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지역교회를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세운 교회를 통해서는 일하지 않으시기에 대부분 교회들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인간의 일을 할 수밖에 없다. 1).교회를 세우려는 동기 교회가 어떤 지역에 세워져야 하는 이유는 먼저 그 지역을 복음화시켜야 하는 필요성에서 시작된다. 사실상 교회는 무척 많지만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갖가지 이유로 인해서 교회가 생겨난다. 교회 내에서 목사와 장로의 의견차이로 분열되고, 자기적성에 안 맞아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끊임없이 교단과 교파 그리고 초교파 적인 교회가 세워진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나라는 각 교단들이 각 지방에 자기 교단 교회들을 두어야 한다는 교세확장의 목적에서 세워진 것이 대부분이다. 작은 마을에 두 세 개의 교회가 있으며 교인이라야 두 세명의 노인들이 있는 곳도 있다. 어떤 교회이든 명목상으로는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전한다고 하고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어떤 예수를 믿는가? 어떤 복음을 믿는가? 어떤 영을 따르는가는 참으로 중요하다. 고후11:4 읽고, 갈1:8절 참조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교단과 개인의 유익을 위해 세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참된 지역교회가 필요한 실정이다. 지역교회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을 때 느낀다. (1).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2).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3).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기 위하여 (4).상담과 심방을 위하여 2).지역교회 목자의 자질 한단체나 조직을 이끌어 가는데는 리더자의 능력과 생각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특히 영적인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는 극과 극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교단신학을 나와서 전도사생활을 거처 목사고시 후 목사가 되고 교단의 발령에 따라 교회의 목사로 임명을 받아 거쳐가 정해진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증거가 전혀 없어도 신학교를 나오고 시험만 잘 보면 목사가 될 수 있다 세상 적인 능력이나 방법으로 교세를 확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이든 파송 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유능한 목자로 인정받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발상과 의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얼마나 어긋나는 일인가. 성경도 없고 성경도 모르고 거듭나지도 않은 사람이 육신 적인 지식을 가지고 목사가 되니 어떻게 영적인 일들을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육신 적이고 세상 적인 일밖에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또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인정하고 따르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 밥 먹기 위해 선택되어지는 직업이 아니다. 목자는 다음과 같은 자질을 반드시 갖추어야한다. (1).거듭난 사실이 있는가 (2).바른 신약교리로 기초가 잘 정립되어 있는가? (3).하나님께서 부르신 열매가 있는가. (4).죄인들에 대한 구령의 열정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5).성도들을 섬기며 잘 영적 양식으로 양육하는가. 3).교회의 구성요원 교회 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가가 중요하다. 거듭난 사실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있다면 그것은 양 무리가 아닌 동물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를 대적하고 교회를 파괴하는 자들이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름으로 교회를 한다고 해서 하나님은 인정하겠는가? 이와 같은 사람들이 지금도 교회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으며 자기들의 방법대로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다. 그들이 아무리 사람을 속이고 위장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도 분별 할 수 있다. 성경 적으로 잘못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옮기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 성경 적인 근거 없이 자신의 판단으로 다른 교회나 사람들을 정죄 하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 교회를 옮겨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음에도 옮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사를 한다거나 직장관계로 오랫동안 다른 곳에 거주한다거나 교회가 성경적으로 하지 안을 때는 당연히 옮겨야 한다. 딤전6:3-5절 읽고 오히려 분리되지 않는 것은 불순종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나와서 새로운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 그 교회에서 왜 나왔는가. 정식적으로 회중들 앞에 교회를 나가는 이유를 간증했는가. 왜 지금의 교회를 오려고 하는가 등... 교회의 구성원은 목자와 성도들이 구령하여 가르치고 양육시킨 성도들과 참된 진리를 찾아오는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 형제 자매들로 구성 되야 한다. 남의 교회의 회중들을 회유하고 미혹해서 도둑질해서 교회를 성장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 앞에 바르게 설 수 없는 교회라면 하나님 앞에 어떻게 바르게 설 수 있겠는가 또한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설 수 없다면 어떻게 사람들 앞에 서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자신의 방법이나 능력으로 교회를 구성하려는 회중을 아무나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회는 누구나 올 수는 있지만 교회의 회중은 아무나 될 수 없다. 회중이 되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1).구원간증을 하는 자 (2).간증이 성경적으로 인정 할 수 있는 자 (3).교회 회중들이 회중으로 받아들이기로 하는 자. (4).교회 내에서 하는 일이 비성경적이지 않다면 함께 동참 하는 자(모임. 교제. 성경공부. 헌금. 예배.봉사) (5).지체임을 알고 협력하는 자(기도. 심방. 구령) 4).교회가 하는 일 오늘날 교회들이 눈 코 뜰 세 없이 바쁘다고 야단이다. 목자는 물론 교회 회중들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들은 열심히 전도지를 들고 다니기도 하고 성경공부 모임도 갖고 철야예배. 금식기도. 새벽기도, 각종사회단체에 봉사하고 사람들 찾아다니기에 바쁘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이 무엇인지, 무엇이 구원받고 거듭 나는지도 모르고 구원도 지옥도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교회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일을 해야한다. (1).구령하고 (2).성경을 가르치고 (3).성도들을 마귀로부터 보호하고(엡6:11)(약4:7) (4).예배. 기도. 교제. 구제 (5).선교사역 원경희 목사(강릉성경침례교회) ============================================================== 2.교회의 직분 오늘날 교회 안에는 성경에 없는 많은 직분이(안수집사. 권사. 권찰. 여자집사)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사역이 아니라 단지 조직을 강화시키고 교세를 확장시키기 위해 만든 직분에 불과하기에 성경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직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신약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직분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신약교회에서는 오직 2가지 직분만이 있다. 첫째 직분은 목사(감독, 장로)다.(감독, 장로, 목사는 동일한 직분이요 그 호칭만 다르다.) 둘째 직분은 집사이다. 성경구절을 참조하라. 1. 사도행전 20:28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조심하고 모든 양떼에게도 그리하라. 이들을 위하여 성령께서는 너희를 감독자로 세우셨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게 하셨느니라. 2. 빌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쓰노니. 3. 딤전3:1,8 만일 어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원한다면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한다고 한 그 말이 참되도다...이와 같이 집사들도 신중하고 일구이언하지 아니하며,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4. 디도서 1:5,7 내가 너를 크레테에 남겨 놓은 이유는 너로 부족한 일들을 바로잡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읍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비난받을 것이 없고 자기 고집대로 아니하며, 쉬 화내지 아니하고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5. 벧전5:1,2 내가 너희 가운데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도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며 또한 장차 나타나게 될 영광에 동참하게 될 자라.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고 돌보되 마지못하여 하지말고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말고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1. 목사(감독, 장로) 감독과 장로와 목사의 직분이 같다는 것은 라이트풋(Lighfoot), 골드(Gould), 덱스터(Dexter), 플럼트(Plumptre) 등을 위시하여 소위 신학체계를 성경적으로 접근한 사람들은 거의가 이에 동조한다. 그 중 오직 존 칼빈만이 감독과 장로의 구분 짓고있다. 그가 주장한 성경적 근거는 딤전5:17인데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사람으로 여기되 특별히 말씀과 교리에 수고하는 이들에게 그리할지라. 장로와 감독은 한 직분으로 맡은 일의 성질만 다른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더 잘 가르치는 은사가 있으며 어떤 사람에게 더 잘 다스리는 은사가 있는가? 다음 구절들이 이에 대하여 명확히 답변해 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조심하고 모든 양떼에게도 그리하라. 이들을 위하여 성령께서는 너희를 감독자로 세우셨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게 하셨느니라. 또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서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며 또한 너희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일어나서 왜곡된 것을 말하여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좇게 할 것이라. 그러므로 깨어 있어 내가 삼 년 동안 밤낮으로 너희 각 사람에게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하던 일을 기억하라(행 20:28-31). 그가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선지자로, 어떤 사람들은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로 주셨으니(엡 4:11).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들려주던 너희의 인도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행실의 결과를 관찰하여 그들의 믿음을 본 받으라(히13:7). 그러므로 감독은 비난받을 일이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이어야 하며, 절제하고 신중하며, 예의 바르고 대접하기를 좋아하며, 가르치기를 잘하고(딤전3:2). 오늘날 교회운영을 장로가 하는 교회에서는 여러 명의 장로를 두고 있다. 그러나 성경적 의미를 알게 되면 장로들은 바로 목사라는 점이다. 따라서 장로의 임명을 목사의 자격을 규정하고 있는 딤전3:1-7과 디도서1:5-11에 의해서 해야될 것이다. 2. 집사 A. 집사는 무엇을 하는 직분인가? 최초의 집사회는 일곱사람으로 구성되었다(행 6:1-6). 사도교회는 그들의 모든 물품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들은 나쁜 식품을 받았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사도들은 자기들의 사역은 복음 전하고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며 다른 사람을 선정하여 세속적이긴 하나 필요한 이 일을 맡아 처리하게 했다. 사도들은 회중을 소집하여 일곱 사람을 선정하여 이 일을 맡게 했다. B. 집사의 자격은 어떤 것인가? (1) 교회의 안팎을 막론하고 칭찬 듣고 좋은 평판을 지닌 사람 칭찬 듣는 일곱 사람을 찾아서 택하여(행 6:3). 술 취하지 말라. 그것은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 하라(엡 5:18). 주정뱅이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 사람은 자동적으로 실격자가 되는 것이다. (2) 지혜가 충만한 사람 지혜로 충만하여(행 6:3) 이와 같은 과업의 수행을 위해서는 분명히 위로부터 오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만일 능력 있는 사람이 지혜의 결핍을 느끼면 그것은 본인의 실책인 것이다. 약1:5은 성도들에게 지혜를 구하라고 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엄정해야 한다. 집사들도 신중하고(딤전3:8). 신중하고 성숙된 것을 말한다. 가볍고 경박하고 철이 없고 까불어대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 (4) 거짓말하지 않는다. 일구이언하지 아니하며(딤전3:8) 이 말은 한 사람에게 한 가지를 말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 다음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것을 말함을 말한다. 그들은 권위를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하며 존경심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마 7:19). (5) 술에 인 박이지 아니하고(딤전3:8) 이 말은 주정뱅이나 불량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6)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딤전3:8) 유다 같이 되지 않으려면 의연금을 모아서라도 자신을 위하여 얼마를 감추는 시험을 받지 않아야 할 것이다. (7) 순수한 양심에 믿음의 신비를 가진 사람(딤전3:9) 교회에 참된 것을 말한다. (8) 한 아내의 남편(딤전3:12). (9) 자신의 자녀와 집을 잘 다스려야(딤전3:12) 가정을 다스리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C. 집사의 의무 (1) 목사를 도와 효과적인 사역을 하도록 한다. (2) 교회에 필요한 업무와 재정을 맡아본다. (3) 교회 기금을 수집하고 은행 업무와 돈을 간수하는 일을 하며 전기세 수도세 등 을 지불하며 교회 건물을 수리한다. (4)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며 언제 어디서나 힘이 닿는 대로 후원한다. (5) 주일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을 정도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6) 전 회중에게 교회 출석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D. 성경에 없는 여자 집사 여자 집사를 두고 있는 교회들이 있으나 이것은 비 성경적이다. 대개는 로마서 16:1과 딤전3:11를 들고 있으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1) 로마서 16:1의 {교회의 일꾼된 자매 페베}에서 일꾼 "디아코노"는 글자그대로 일꾼이다. 종(servant)이라고도 한다. 섬기는 사람(minister)라고도 하는 일꾼이다. 내가 켄크리아에 있는 교회의 일꾼 된 우리의 자매 페베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지체를 돕는 후원자와 같은 역활이다. 많은 사람이 여자 집사로 알고 있는 "디아코노"라는 헬라어는 는 여성이 아니라 중성인 것이다. 2) 디모데전서3:11은 변개된 성경에서는 여자 집사로 보일지 몰라도 한글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집사의 아내임이 분명히 제시되고 있다. 그들의 아내들도 이와 같이 신중하고 중상하지 아니하며 절제하고 모든 일에 신실해야 하리라. 3) 성경에서 여자 집사의 직분을 허락한 것이라면 왜 다른 성경 구절로 정확하게 제시하지 아니하고 있으며 초대교회 이래로 많은 성경적으로 믿는 교회에서 여자 집사를 두지 않았을까? 4) 여자가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구령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이다. 성경에서 목사, 장로, 감독의 자격과 집사의 자격을 말할 때 {한 아내의 남편}이라 했다. "한 남자의 아내"라는 말은 없다. 만일 여자 집사가 필요했다면 반드시 그 자격을 "한 남자의 아내라"했을 것이다. 성령님이 잘못 기록한 성경이라 믿는가? (5) 많은 희랍어 학자들이 아내(GUNAIKOS)를 여자집사라고 한다. 집사의 아내가 여자집사라면 목사의 아내도 여자목사가 되어야 한다. 에베소서 5:22-25, 28, 31, 33과 골3:18,19은 여자집사가 아니다. 그러나 여자로서 구령할 수도 있고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의 직무는 수행할 수 있다. 교회의 많은 부분에서 자매들의 역활이 매우 기대되나 성경에는 분명 목사와 집사는 여자가 될 수 없다. 결 론 신약교회의 직분은 목사와 집사뿐이다. 교회에서 장로의 개념을 도입한 것은 이스라엘 장로들에서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장로들과 개신교회의 장로의 개념은 당연히 다른 것이다. 이스라엘은 교회 없이도 원로들(장로)이 있었다. 신약 성경에서 명시하지 않는 직분들, 개신교의 장로, 권사, 여자집사. 여자목사 등을 둔 것은 성경을 외면한 교단적 발상인 것이다. 살전5:12,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안에서 너희를 인도하며 훈계하는 사람들을 알아서 그들의 하는 일로 인하여 사랑으로 그들을 극진히 존경하라. 너희는 서로 화목하라고 했다. 원경희 목사(강릉성경침례교회) =============================================================== 3.교회의 징계 . 지역교회가 세워지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지역교회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막중한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믿음에서 떠난 배교자들과 교회를 파괴하려고 하는 자들에 의해서 교회는 시기와 분쟁으로 분열되고 많은 영적으로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실족하게 된다. 교회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어있지만 때에 따라서 징계를 내려야 할 때가 있다. 교회에서 지체를 징계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며 하기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교회의 징계는 단순히 감정이나 보복의 차원이 아니라 사랑의 차원에서 이루어 져야 한다. 교회 징계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징계에 앞서 충분히 검토하고 기도하면서 살펴본 후에 징계위원회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대부분 교회에서 징계에 관하여 여러가지 상황을 언급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드물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 심의를 택하지 말고 교회 심의를 활용할 것을 종용하였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문제가 생겼을 때 불의한 자들 앞에서 재판을 받으려 하고 성도들 앞에서는 하지 아니하느냐? 너희는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세상이 너희에게 심판을 받을진대 너희가 지극히 작은 일들을 심판할 역량도 없느냐? 너희는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물며 이생의 일들이랴!"(고전 6:1-3,12). 징계란 잘못한 그리스도인들을 벌주기 위해서 내리는 제도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행동을 다른 지체들에게 본이 되도록 유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 벌칙으로써 시정책을 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단 교회에서는 이와 같은 징계를 실행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성경 적인 원칙에 따라 행하기에는 교인들은 너무나 위약하고 냉정하기에 사람을 두려워하며 교회가 교인을 잃어버리지나 않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또한 교회에서 징계를 하면 교회 수입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며 하지 못한다. 교인들이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나 거룩함보다는 인기와 돈과 교회성장과 안일함 때문이다. 죄를 지적하는 것을 피하고 오히려 믿는 동료 교인의 죄악을 덮어 주는 실정이다. 그러나 교회는 인정이나 감정으로 인간의 방법으로 운영되어져서는 안 된다. 사도 시대의 교회는 순수했기에 튼튼했다. 초대 교회에는 이와 같은 육신 적인 일들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현대 교회는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위해 타협하고 사람들의 죄를 눈감아 주고 있기에 교회가 나약한 것이다. 1. 교회 징계는 언제 가르치는가? 구원받은 후에 가르쳐야 마땅하나 침례에 앞서서 해야 한다. 침례 절차에 있어서 침례 받은 사람들 앞에 성도의 율례를 정하고 이에 따라 그것을 위반하면 어떻게 처벌하는 가를 가르쳐야 한다. 성도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신중해지고 따라서 올바른 행동을 취한다. 교회의 회중이 되기에 앞서서 그들에게 이러한 중대한 문제를 알려준다는 것은 교회의 책임인 것이다. 2. 징계에 관하여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1). 징계를 집행할 수 있는 권리의 근거 "또 네 형제가 네게 죄를 짓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만 있을 때 그에게 그의 잘못을 일러 주라. 만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너는 네 형제를 얻은 것이라. 그러나 만일 그가 네 말을 듣지 아니하면 너 외에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말을 입증하게 하라. 그래도 그가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교회에다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이방인이나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5-17). ① 과오를 저지른 사람에게 가서 그를 회개하도록 권고하라. ② 만일 그가 거절하거든 두 세 사람을 증인으로 대동하라. ③ 그래도 그가 마음이 강팍하면 교회에 알리라. ④ 만일 그가 자기의 거절을 당연시하거든 한 사람의 범죄한 이교도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2). 징계를 하는 경우 ① 잘못된 성경지식이나 교리를 의도적으로 가르칠 때 "이 증거가 옳도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을 엄히 꾸짖어 그들로 믿음 안에서 건전하게 하고."(딛 1:13). 하나님의 뜻을 떠난 교회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 대항하여 엄히 꾸짖어야 한다. 우리의 교육 제도는 거짓 교사들을 말끔히 씻어버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② 성도가 지은 죄를 공개하라.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책망하여 다른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딤전 5:20). 교회는 파렴치한 죄에 대하여 징계를 내려야 한다. "주께서는 정결한 눈을 가지셨기에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죄악을 볼 수도 없나이다."(합 1:13). "이는 계명을 의한 죄가 심히 죄많게 되게 하려는 것이라."(롬 7:13). 죄가 그처럼 가중함으로 죄를 응징하는데 애쓰게 하고 또한 우리의 심중에서 축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해야 한다. ③ 부도덕함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5:1-5에 있는 그 사람은 자기 아버지의 아내와 음행을 저지름으로써 징계의 대상이 되었다. 3). 징계의 범주 "그러한 자를 사탄에게 넘겨 주어 그 육신은 멸망케 하여도 그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받게 하려 함이라."(고전 5:5). "밖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나니 그러한 악한 사람은 너희 가운데서 쫓아내라."(고전 5:13).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는데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 준 것은 그들이 징계를 받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딤전 1:20). 범죄(Crime)와 죄악(Sin)이 제명에 영향을 받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범죄한 사람이 진짜 참회를 보이면 일정 기간 동안 만찬식이나 그 외의 공식적인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하게 한다.(범죄한 정도에 따라 3개월, 6개월, 1년 등). 이와 같은 결정은 교회 징계 위원회에서 내리게 된다. 3. 징계를 가르치는 요령 먼저 교회와 특별히 교회 심의회는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나무랄데가 없는 때묻지 않게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며 스스로 자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인가? 1). 겸손함으로 "그러므로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고전10:12). 믿음에서 떨어진 패배한 자에게 뽐내지 말라. 만일에 유혹이나 환경이 비슷했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보다 더 큰 죄를 지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죄"도 그 사람의 죄와는 판이하게 다른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에 져야 하는 한계가 이러한 죄과에 따른 최후의 한계가 될지도 모른다. "너보다는 깨끗하다"는 감정이 우월한 사람이라고 해서 남아 있어서도 안 된다. 2). 성실함으로 당신의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말하기 전에 당신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제거하라. "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도 '네 눈 에서 티를 빼내 주마.'라고 네 형제에게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여, 먼저 네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뽑아내라. 그러면 네 눈이 밝히 보여 네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라."(마 7:4-5). 어떤 사람은 "나도 완전치 못함으로 내 형제를 징계치 못하겠다."는 자세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책임을 부과하시면 그것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3). 사랑함으로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고전 13:4). 우리는 분명 징계를 사랑으로 다루어야 한다. 사랑이야말로 한 사람을 의의 분명한 길로 인도하려고 노력하는데 필요한 가장 강력한 기구인 것이다. 그가 비록 우리의 설득과 주장에는 반기를 들지 몰라도 우리의 사랑에는 응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래 참음" 여유 있는 인내를 행사할 줄을 안다.(참다운 회개의 빛이 보이면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라도). 4). 성경적으로 그가 행한 것의 죄가 되는 것은 성경 상에 그런 것이지 "관습적인 규율"에 저촉한 것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말씀 위에 세워졌으므로 교회의 행동강령 역시 하나님의 말씀 속에 깔려있는 가르침과 원칙의 외적 사역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5). 간증으로 주제에 대하여 개인적인 경험을 나눌 마음을 가지라. 이것은 친구와 형제다운 신의를 수립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간증은 우리가 그 사람을 발 밑에 때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고 한 형제로서 대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6). 경험으로 판시엠(Pansiam - 중국 서남부에 있는 지역)에서 교회 징계 3가지를 기억한다. (1). 한 남자가 둘째 부인(첩)을 맞이함으로써 제명되었다. (2). 한 여인이 대륙법을 위반하여 마약을 취급함으로써 3개월간 만찬식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3). 한 과부가 젊은 남자와 놀아남으로써 징계를 받았다. 온순하고 성숙한 성도에게 부적절한 행위는 반드시 징계의 대상이 된다. 결 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징계를 수행할 수 있는 신념과 용기를 주신 것을 기원한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떼는 조심하라. 이들을 위하여 성령께서는 너희를 감독자로 세우셨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게 하셨느니라."(행 20:28). 원경희 목사(강릉성경침례교회) ============================================================= 4. 교회 분열 2005/09/28 biblepower 님의 글입니다. 교회가 분열을 일으키는 데에는 어떤 문제를 놓고 확신이 서지 않는 사람들과 확신의 토대 위에 굳건히 서서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과 노선을 같이 하는 사람들 사이에 미세한 틈이 먼저 벌어지는 법이다. 어떤 문제를 놓고 의견을 달리 할 때, 상대방과 교제를 끊어야 할 기회를 찾는 사람들과 그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당장 그들과 교제를 끊는 사람들 사이에도 미세한 틈이 벌어지게 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 사이에 야기되는 대부분의 문제는 다른 형제가 자기에게 무엇인가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바로잡도록 권고하는 것을 딱 질색하기 때문에 생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흔히 야기되는 분쟁이 어떤 "문제"를 놓고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각자의 "육신적인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해놓고 자신이 바라던 만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서운해 하면서 불평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당연히 표해야 할 감사를 제대로 표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나는 지난 12년 간 목회를 해왔기 때문에(1976년 당시 - 편집자 주) 그리스도인들의 심성을 훤히 꿰뚫어 알고 있다.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들은 뜻을 같이하는 두세 가정끼리 한 데 뭉쳐서 목사에게 먼저 대항해 온다. 나 자신이 그런 쓰디쓴 경험을 한 사람이다. 언젠가 몇몇 집사들이 불만을 품고 나를 법정으로 고소하고 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겪어 보았다. 그 결과 열일곱 가정이 한꺼번에 교회를 떠나 버렸다. 그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는 자신들이 교회 돈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들이 아무도 모르게 교회 돈 수 천 달러가 들어 있는 은행 계좌를 갖고 있는 것을 누군가가 발견하고 그것을 문제삼자 그들이 오히려 나더러 교회를 떠나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응하지 않고 완강히 버티자 그들이 떠났고, 그 결과 교회가 분열되었던 것이다. 어떤 교회는 8년 동안에 다섯 명의 목사를 갈아치운 경우도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그 교회는 한두 번 분열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런 자들을 완강하게 물리쳤다. 교회에 문제가 발생할 때 보면, 교회 회중들 가운데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로 나뉘는 것이 보통이다. 회중의 1/3은 문제 여하를 막론하고 목사가 옳다고 믿는다. 그들은 설사 목사에게 과실이 있다고 해도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알아서 처리하실 것으로 믿고 목사를 지지한다. 반면에 1/3은 문제 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목사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머지 1/3은 나이가 많거나 반대로 너무 어려서 잘했건 못했건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가 하면 또, 교회가 분열할 때에는 언제나 세 가지 방식으로 갈라진다. 그 중 한 가지는 목사가 교회를 떠나는 경우인데, 이 때에 회중의 1/3이 그를 따라 나가고 1/3은 그대로 남는 반면에 1/3은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목사가 떠나지 않고 버티면, 회중의 1/3은 그와 함께 교회를 지키고, 1/3은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를 만들거나, 아니면 다른 교회로 가버리든지 하고, 나머지 1/3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제각기 슬슬 빠져 나간다. 회중들은 믿음의 수준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는 성숙한 사람이 있어 교회가 어려운 때일수록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와는 반대로 다른 형제들을 험담하고 분열만 조장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이곳 펜사콜라 시만 해도 그런 식으로 분열되어 새로 생겨난 교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어떤 데에서는 [친교 침례교회]라는 곳이 분열되더니 불과 네 블록밖에 떨어지지 않는 곳에 [새 친교 침례교회]라는 것이 세워지기도 했는가 하면, [프로비던스 침례교회]에서 몇 마일 떨어지지 않는 곳에 [신 프로비던스 침례교회]가 들어서는 것도 보았다. 교회의 분열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법이다. 그런 교회에 하나님의 "프로비던스"(섭리) 따위가 있을 리 있겠는가? 분열을 일으키고 떨어져 나간 자들이 젊은 목사 한 사람을 모셔다 놓고 새로운 교회를 세운 뒤, "오, 하나님, 이 형제에게 복을 내려 주옵소서. 우리에게 이 젊은 사역자를 보내 주셔서 감사하나이다. 무거운 짐진 그에게 비젼을 주셔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 회중에게 빛을 비추게 하소서." 어쩌구 하면서 기도하는 꼴을 상상만 해도 고소를 금할 수 없다. 자신들이 길잃고 방황하는 무리인 줄을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피터 S. 럭크만의 주석서. 고린도전서. p.23-24 ================================================================ 5.이런 사람들을 교회에서 떠나게 하라. [나는 뱀이 그의 간계로 이브를 속인 것같이, 너희의 마음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부패하여 그같이 떨어져 나갈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또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너희가 받지 않은 또 다른 영을 받거나 너희가 영접지 않은 또 다른 복음을 전파하면 너희가 잘 용납하는도다.](고후 11:13,14). 지역 교회를 설립함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이 있다. 당신의 교회가 믿고 있는 대표적 교리들을 명시해 놓은 팜플렛에서부터 "교회 규칙" 등에 이르기까지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교회 규칙이란 일종의 "내부 규범"으로서 후에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 이것을 구체화할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안정된 모임을 형성하기에 만족할 만한 가정이 모이기 전까지는 그 규칙들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믿음의 가정들과 교제함에 있어 가장 위험한 사탄의 전략은 그 모임을 종교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가장 순수한 동기로 무장하고,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하나님 안에서의 믿음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종교적인 행위의 결국은 사역을 더디게 만들고, 방해하며, 때로는 그 사역을 중단시키게도 하는 협잡으로 달려가게 만든다. 그렇게 만드는 사람들은 물론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들은 비록 종교적인 행위 뒤에 숨어 버리겠지만, 신앙 부흥을 막고 방해하는 사람들은 늘 교회의 '성도들이었다. 지역 교회를 시작하면 곧 다음의 두 가지 특징을 알게 될 것이다. 첫째는 당신의 사역에 가장 상처를 주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과 둘째는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탄도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이제 막 신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들은 '마귀'라는 말을 단순히 "누군가를 이용하는 존재" 또는 "자신들의 사역에 충성스럽지도 신실하지도 않은 누군가"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고린도후서 4:18과 골로새서 3:1-4에 비추어 해결하여야 한다. 이는 골로새서 3장에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휩쓸린 목사나 교사들을 향한 권고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목사의 의미는 목자(Pastor; Shepherd)를 뜻한다.] 많은 목사들과 교사들이 세속화되었다. 그들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잃었고(행 26:19),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 앞에 두지 못한다. 그들은 육신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에 비중을 두지 못하며, 영광된 미래를 현재 앞에 두지 못한다. 만약 젊은 목사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결코 사람들을 어느 곳에도 인도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목사가 이런 문제를 갖고 있지 않다면, 항상 힘겹고 곤란한 많은 일들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이는 거듭남을 경험한 대부분의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롯이나 데마처럼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의 사회구조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불러냄을 받은 교회"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 맞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교회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세 가지의 대표적 교리와 사람들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1. 극단적 칼빈주의: 극단적 칼빈주의란 존 칼빈이 가르친 교리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을 말한다. 칼빈주의의 주된 가르침은 소위 튤립(TULIP)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왔다. 이 교리를 믿는 사람들은 가장 메마르고 무감각하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가장 비합리적인 사람들이다. 이 "고집불통 신봉자"들은 사람이 구원을 받거나 지옥에 가는 것이 완전히 예정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믿으며, 그리스도의 보혈은 오직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유효하다고 믿는다. 즉 그리스도의 보혈이란 그것을 구하고 바라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조직신학에서는 이를 일컬어 "제한된 속죄"라고 하는데, [벌콥(Berkhof), 댑니(Dabney), 모로(Mauro), 핫지(Hodge) 등] 그들은 그리스도의 보혈이 인류 모두에게 골고루 미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보혈이란 회개하거나 믿음을 갖기도 전에 회심하도록 이미 결정지어진 사람들에게만 차고 넘치는 은혜의 보혈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 교리의 깊숙한 내용을 다루는 것이 여의치 않으므로 4페이지의 [비성경적인 주장을 분별하자]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제2호(말씀보존학회 1992. 5.), pp.8-9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칼빈주의자인가](말씀보존학회 간)를 참고할 것을 권한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의 진리란, 지역 교회를 시작하든 시작하지 않든, 기도를 하든 하지 않든, 복음을 증거하든 증거하지 않든, 선교사를 파송하든 파송하지 않든 상관없이 구원받기로 결정된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교리는 세상에 있는 어떤 교회도 결국은 파국으로 이끌고 말 것이다. 만약 복음 전도자가 이 교리를 "성경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비록 일, 200여 명 정도의 사람들과 대체로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갔다 해도 오래지 않아 소수의 신봉자들만이 그 교회에 남게 될 것이다. 만약 이 악취 나는 교리를 교회에 도입하려 한다면, 차라리 교회의 문을 닫아 버리는 편이 낫다. 극단적 칼빈주의 신봉자들을 곧바로 구별할 수 있는 그들 특유의 두 가지 표현이 있다. 그들은 이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첫째는 "만일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의 주가 아니라면 그는 결코 주가 될 수 없다"(이것은 신성을 모독하는 거짓말이다 : 행10, 20장을 보라)는 것과 둘째는 "주권적 은혜"라는 표현이다. 그런 표현은 성경 어디에도 없으며 그 비슷한 암시조차도 없다. 은혜는 결코 "주권적"인 것이 아니며, "주권적"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은혜 베푸시기를 거절하신다는 억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첨가된 것이다. {이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서,}(딛 2:11) {말씀이 네게 가까워(구원받지 않은 로마인)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노라.}(롬 10:8) {그러면 하나님께서 정녕 이방인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주셨도다.}(행 11:18) -"선택된 사람들"이 아니다. 모든 이방인은 회개할 수 있으며 믿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칼빈의 방식대로라면, 그 은혜는 이방인들 가운데 수백 명만을 (하나님께서 회개에 이르도록 허락한 사람) 회개에 이르게 하는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보혈은 여전히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교리를 가지고 오류를 범하지 말라. 그것은 단지 존 칼빈의 가르침일 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나라의 거의 모든 신학교와 교회들이 극단적 칼빈주의의 가르침을 정통 교리로 인정하고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이것이 교회의 적으로 인식되지도 않을 뿐더러 위의 내용을 이설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극단적 칼빈주의는 비성경적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 나라 대다수의 교회들과 달리 성경적인 신약 교회라면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이 교회에 침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을 교회의 성도들에게 공개하여 모두가 알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2. 극단적 세대주의자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 마음대로 변경시켰던 코넬리우스 스탬과 벌링거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다. 디모데후서 2:15에 따르면 성경을 공부하는 모든 학생들은 세대주의자가 되어야 하며, 성경 교사들도 세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올바로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 세대주의는 우리 나라의 신학계에서는 알려지지도 않은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단지 '세대주의란 좋지 않은 것'이라는 귀동냥만을 의지하여 비평한다. 하지만 세대주의는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경영 방침"으로서 매우 성경적인 것으로 극단적 세대주의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성경 해석학(Hermaneutics)을 가르치지 않는 신학교는 없다. 세대주의 없는 성경해석학이란 존재할 수 없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받았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것이라}(요 1:17). 이것이 세대주의이다. 아브라함은 갈보리의 십자가가 없이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모세와 그 백성은 아브라함의 그 믿음이 아니라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로워지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그들을 치리하셨기 때문이다. 그 율법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 어떻게 해당되는 것인가? 세대주의를 배격하는 사람들이 왜 햄과 삼겹살을 먹으며, 죄짓고서 왜 짐승을 성막으로 가져오지 않는가? 이 시대의 한국 사람이 유대인의 율법과 관계가 있는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므로 오해하고 있도다. "극단적" 세대주의는 다음에 열거될 그들의 주장으로써 온건한 세대주의와 그 한계를 가를 수 있다. (1) 사도행전 9장 이전까지 그리스도의 몸(교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며, 그들 중 어떤 사람은 18장 이전, 또 어떤 사람은 28장 이전까지 그리스도의 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2) 물 침례는 "이 세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이 세대"란 사도행전 18장 이후의 모든 세대를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18장까지는 침례를 행했으며,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 관한 바울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고 있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행16:30-34을 보라). (3) 지역 교회에는 집사 직분이 없다고 한다. 사도행전 28장 이후에 기록된 바울 서신서에서 집사의 자격에 관한 내용이 있음에도(딤후 3장) 그들은 이것을 주장한다. (4) 새 예루살렘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지 그리스도의 신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회심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는 목사들 가운데는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이 없다.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거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지 않는다. 그들은 구령하지 않으며, 신앙 부흥 운동도 하지 않는다. 금식하지도 기도하지도 않으며 지역 교회도 설립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역"이란 침례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접근하여 그들로 하여금 침례받지 말아야 했음을 확신시키려고 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들은 이 시대에도 율법 아래서 구약과 같은 방법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한다. 가치 없는 소리이다. 교회에 이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를 모임에서 떠나게 해야 한다. 3. 은사주의자: "극단적 세대주의자들"보다 더욱 파멸로 이끄는 사람들이 바로 은사주의자들이다. '은사주의' 역시 우리 나라의 대다수 교회와 성도들 사이에 옳은 것으로, 성경대로 잘 하는 것으로 더 나아가 매우 '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은사주의자들은 사도행전 2장과 고린도전서 4장, 히브리서 13:8을 가지고 성경 전체를 덮어버리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경을 고찰함에 있어 매우 불성실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특히 말씀 안에서 믿음이 견고하지 못한 성도들에게 영향을 준다. 그들은 아기들의 옹알이만큼도 못한 비성경적인 지껄임(방언)을 하면서 사탄이 교회에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준다. 그들은 특히 사람들에게 바르게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모든 교리적 입장들을 무시해 버린다. 왜냐하면 그들은 감각적인 것과 나눔과 모방과 '사랑'이 우선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들은 양 무리들로 하여금 변질된 교리들과 변개된 성경으로 장식된 동물원으로 가도록 변심시킬 것이다. 그래서 그 교회는 더 이상 양 무리가 아니라 개와 돼지와 이리와 '사자'가 모여 있는 동물원이 될 것이다. 은사주의자들을 교회에서 떠나게 해야 한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대다수의 교회와 같지 않은 참된 성경적인 신약 교회라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세 가지의 대표적 교리들과 사람들을 정확히 분별하여 불러냄을 받은 하나님의 교회를 올바로 세우고 보존해야 한다. 그러므로 위의 내용은 특히 성경대로 하는 신약 교회들에게 유용한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92년 6월호(통권 3호) p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