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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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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영적전쟁 -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lhyunsik

1. 원수에게 이기려면 영적 기선을 잡아야 한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1994년 1월호 p20 / 통권 22호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 데 화평을 유지하는 것은 튼튼한 성벽을 두르는 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화평의 근원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 화평은 인위적인 감정의 조작과는 다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평안을 유지할 때 영적으로 안정을 이루고 분별력을 갖추게 된다. 주님은 요한복음 14:27에서 『내가 너희에게 화평을 남겨두나니 나의 화평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화평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사탄은 성도의 마음 속에서 이 화평이 견고한 산성이 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화평을 파괴시키려고 갖가지 간계를 꾸민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평상시에도 죄가 생각나게 하면서 육신을 만족시켜 줄 쾌락을 제안하고, 물질의 풍요와 호화로움을 선망하게 하고, 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을 가치관으로 여기게 하려고 제안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제안을 받아들여서 비록 혼자서라도 즐기게 되면 그 때부터 악의 굴레를 쓰게 되는 것이다. 유치한 발상, 음탕한 정욕, 근거 없는 불안감, 걱정, 의심, 자기연민 같은 것 등을 우리 안에 조성시키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그 뿐만 아니다. 터무니 없는 비성경적 이론, 최종권위가 없는 사람들이 흘린 말들과 주장, 혼자서 고안해 낸 신앙과 성령에 관한 주관이나 교리의 발상등은 철저하게 그 출처가 악의 요새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성도의 생활에서 평안을 앗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돌아서게 하며, 믿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 어떤 시도라면 비록 그것이 다정한 친구에게서 나왔든지, 존경하는 선생에게서 나왔든지, 목사에게 나왔든지, 천사에게서 나왔든지, 유명한 학자가 쓴 책에서 나왔든지 간에 그것은 악한 영들의 체제 속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영적 전쟁에서 권위를 가지려 면 먼저 주님이 주시는 화평을 지녀야 한다. 싸움을 싸우는 중에서도 화평을 유지하게 되면 사탄의 시도, 즉 억압과 공포에 대해 치명타를 가하는 것이다. 우리의 승리는 감정이나 지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데서 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한 환경에 인간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완전히 실감할 수 없게 된다. 어떤 일에 참다운 권위를 유지하면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그 일을 처리하게 된다. 마태복음 8:23-27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폭풍 속에서 대처하셨는가로 우리에게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님은 이 폭풍에 대항하여 싸우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시고 다만 그 분의 권세로 그것을 잠잠케 하셨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완전한 화평을 말해 주고 있다. 또 믿음의 선배들 중 순교자들도 고문과 폭력과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화평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재판 관정에서 겪으신 것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이 지니셨던 영적 권위는 온전한 화평을 지니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순간 예수님이 심문을 받으셨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빌라도와 이스라엘 사람들과 사탄이 심문을 받은 것이다. 빌립보서 1: 28에서 말씀하시기를 『반대하는 자들로 인하여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나니 이것이 그들에게는 정녕 멸망의 표이며, 너희에게는 구원의 표이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셨다. 로마서 16:20에서도 말씀하시기를 『평강의 하나님께서 사탄을 속히 너희의 발 아래서 부수실 것이니라』고 하셨다. 효과적인 영적 전쟁을 치루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영적 권위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영적 권위를 갖게 되면 갈등과 억압으로 가득차 있던 마음에도 하나님의 화평을 심게 되어 영적 기선을 잡게 된다. 어떤 관계에 있어서나 화평이 없는 곳에는 싸움이나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승리가 있는 곳에는 화평이 있다. 우리가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악의 세력들을 다스릴 수 있다는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화평은 영적 능력이며, 성령으로 충만하여 얻는 열매이다. 화평을 유지하는 사람이란 단순히 전쟁에 대항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 영으로 내어준 사람을 말한다. 그 사람이 가는 곳에 하나님께서도 동행하시며, 하나님께서 가시는 곳에 그 사람도 동행하기 때문에 그에게 두려움이 없고 담대함과 화평이 있게 되는 것이다. 사탄이 무서워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점이다. 말로만 소유한 그리스도,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인간적 감정과 충동에 의한 성령 운동, 방언, 신유 등을 사탄이 두려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오산이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이 영적 싸움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모르며 사는 사람도 많고, 적진에 있으면서도 아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적에게 병참지원을 해 주고 있으면서도 아군을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싸움은 1년, 10년, 100년의 싸움이 아니라 에덴 동산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6000년에 걸친 전쟁이다. 성경에서 싸움이 없었던 장은 창세기 1장 2장과 계시록 21장 22장 뿐이다. 이 세상 유사이래 전쟁 없이 지속되었던 것은 30년도 채 못된다. 흔히들 성령으로 거듭나면 아군에서 싸우는 사람으로 간주하려 한다. 우유병 들고 기저귀 찬 아이가 무슨 영적 전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영으로 거듭났으면 말씀으로 성장하고 무장해야 한다. 에베소서 6:12에서 이 전쟁은 혈과 육에 대항하여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고 명시되어 있다. 적의 계획과 활동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유기체 안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 이런 사람만이 영적 권위를 지닐 수 있다. 이 사람은 몸을 주님께 바친 사람이다. 이 사람은 주님의 계명들을 준수함으로써 자기가 주님을 사랑함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세상을 위해 살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가 처한 환경에 관계없이 화평을 지니면 적에 대하여 영적 선제 공격을 가해 권위를 획득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무기인 것이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내가 사망의 그림자의 골짜기를 걸을지라도 악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곳이 곧 우리가 악을 두려워 하지 않는 곳이다. 다윗은 사자도 만났고, 곰도 만났으며, 골리앗도 만났지만, 또 여러번 사망의 그림자가 접근해 왔지만 두려워 하지 않았던 것은 주님을 신뢰한 그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화평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의 어머니이다. 곧 우리의 새 성품이 태어난 곳이다(갈4:6). 옛 성품으로 화평을 감지하는 것은 스스로 만들어낸 기분의 산물일 뿐이다. 이런 화평은 그 근원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적과 조우하기 훨씬 이전에 적이 오고 있다는 소문만 들어도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등지는 배교자가 된다. 죽은 정통주의,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은 말로만 잘 믿는다고 떠드는 사람들일 뿐이지, 왜 하나님의 말씀이 삭제되고 변개되어서는 안되는지도 모르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학교만 크게 짓고 학생들만 많이 모집할 뿐 바른 진리로 참다운 그리스도의 역군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안간힘을 써서가 아니라 위에서 영으로 태어났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엡2:19). 위로부터 태어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만들 때까지 너는 내 오른손 편에 앉아 있으라』(시110:1)고 하셨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자신을 둘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 원수들을 이미 당신의 발 밑에 두셨다는 지식 속에서 쉬어야 한다. 주님은 시편 110:2에서 『네 원수 가운데 다스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싸움터에서도 우리가 첫째로 할 일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인 것이다. 쉼이 다스림보다 먼저이고 화평이 권세 보다 먼저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다스리는데 순종하지 않으면서 마귀만 다스리려 하면 실패하고 만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하나 님을 찾아 만나고 하나님의 임재가 그 분의 평안으로 당신의 영을 채워 주시라고 기도하며그 분의 오른편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안에서 쉬게 될 때 당신은 원수 가운데서 다스리게 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 바란다. BB =============================================================== 2. 마귀는 무엇을 가장 겁내는가? 1993년 11월호 p4 / 통권 20호 조회수 : 2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세상 신, 즉 마귀의 관장 하에 있었다. 마귀가 시키는 대로 크고 작은 죄를 지으면서도 그 마귀의 정체를 알아차릴 만한 지각이 없었다. 그것은 사탄의 교묘한 계략에 속아왔기 때문이다. 사탄은 이 우주에서 하나님 다음으로 영리하다. 이 세상의 어떤 과학자보다도 영리하며 다니엘 보다도 영리하다. 때로는 힘으로, 영향력으로, 죵교로, 교육으로, 뉴스 매체로, 유행으로 위장하며 행동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인 현대인을 속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인간을 파멸시키고 타락시키는 것이 그의 목적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사람의 기호에 따라서 유혹하기에 좋은 것들을 사용하여 끌어들여 놓고, 나중에는 완전한 굴종으로 코를 꿰어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게 만드는 것이다. 술과 마약 등은 그가 사용하는 재료요, 총과 칼 등은 그가 사용하는 무기이고, 음란물, 매음, 변태 성행위 등은 그가 쓰는 도구이다. 살아 오면서 사탄에게 속아 보지 않은사람은 없다.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주이시요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하며, 거짓말을 하게 하고, 음행하게 하며, 세상을 비관하고 자포자기하여 아무렇게나 살아가게 만드는 악의 천사이다. 마귀는 그 사람의 기호를 잘 알며 가장 취약한 부분이 무엇인가도 잘 안다. 그래서 그 기호나 취약한 부분으로 그 사람을 넘어뜨리려 하는데, 마귀는 처음부터 사람의 의지를 공략하려 하지 않고, 먼저 감정에 접근하여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사람의 기호가 이성이면 이성으로 실족할 기회를 주며, 재물이면 재물에 대한 관심으로 유도하며, 명예면 명예로 공략한다. 그러나 사탄은 뱀보다 영리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데 귀재이다. 그의 영리한 수법으로 노아를 술취하게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베드로로 하여금 주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게 하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갔고, 정신을 차려볼 때 쯤이면 이미 많은 것이 망가져 버린 후인 것이다. 정신적으로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공격을 하여 대개는 성공을 거두는데, 유행과 낭만과 젊음을 노래하며 철없이 날뛰는 젊은이들, 돈에 혈안이되어 다른 것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 명예라면 그 무엇에든지 끼어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마귀의 노리개인 것이다. 감옥에 다녀온 사람들이나 지금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귀의 피해자들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종교로 위장된 거짓 신앙들이 포함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주여, 주여’ 부르고 있다. 이들은 영적 전쟁이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어느 쪽이 전선이고 어느 진영이 적인지 아군인지도 모르는 채 ‘주여, 주여’만 부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것이 사탄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흉내내는 것이 사탄이다. 이 종교부대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탄을 분별해 낼 수 있는 안목도 역량도 믿음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닌데(롬8:9), 성령으로 거듭난 경험도 없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의 흉내를 내려할 때 이들은 늑대에게 붙들린 토끼나 마찬가지이다. 가장 큰 마귀의 희생자들은 바로 가짜 교인들이다. 방언을 하면 거듭난 것이라고 배웠다면 그렇게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마귀의 하수인이다. 세례받고 침례받으면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가르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마귀의 하수인이다. 교회만 오래 다니면 그리스도인이라고 가르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마귀의 하수인이다. 하나님의 종과 마귀의 종을 구별하는 것은 간단하다. 성경에 없는 것을 교리로 가르치는 사람은 마귀의 종이다. 성령님은 성경에 없는 것을 진리라고 가르치지 않으시는 반면에 마귀는 성경에 없는 것을 교리로 가르치고 있다.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귀신들의 교리를 따르리라.” 하셨으니 그들 자신의 양심이 화인(불로 달군 인두)으로 마비되어 위선으로 거짓을 말하리라』(딤전4:1,2)고 하였다. 이들이 죽으면 지옥에 가며, 휴거 될 때에 들림받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필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쓰려고 한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 사람을 굳이 아니라고 말할 자격이 내게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증거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때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만일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 이 글을 읽는 순간에 거듭나면 된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의 죄를 구속하시려고 나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 나는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오니 내 안에 들어 오셔서 나의 혼을 구원해 주십시요. 나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주님의 명령을 준행하고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며 주님의 뜻에 합당한 생활을 하기 원합니다. 저의 생을 의탁하오니 인도해 주십시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전쟁 속에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산다. 마귀가 세상에 있는지 지옥에 있는지도 모르며, 마귀가 그리스도인 안에 있을 수 있는지 아니면 세상에만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 사탄은 영적으로 어두운 부분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찾아든다. 물론 사탄은 그리스도인을 소유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의 전이 되었기 때문이다(고전6:19).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며(롬6:18)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이다(고후5:17). 그러나 한 가지 속지 말아야 할 것은 마귀가 그리스도인을 소유할 수는 없지만 “억압”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집을 사서 등기를 하여 자기 소유로 만들어 거기서 사는 수도 있고, 전세를 얻어 살 수도 있다. 소유와 억압의 개념은 이와 유사하다 하겠다. 전세 집에서 계속 살게 되면 자기 집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사탄도 어떤 사람을 계속 억압해서 자기가 시키는 대로 이용할 수 있다면 소유와 억압의 차이는 단어의 차이 외에는 없을 것이다. 사탄이 거듭난 성도들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탄이 속이는 또 한 가지 수법에 불과하다. 거듭났다는 것은 암흑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졌다는 사실 외에 다른 의미가 없다. 그 사람은 거듭났기에 천국에 가게 된다. 거듭난 후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 천국에 갈 때 상도 없고 유업도 없으면 어떻겠는가? 이 세상에서 70년 사는 동안도 할 일이 없으면 무료하고 따분한데 1000년과 영원 세계에서 상도 유업도 받지 못한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한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하늘에다 재물을 쌓으라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 헌금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다가올 세대에서 받아야 할 상과 유업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기다리지 않으면서 그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점점더 좋아진다고 선전하며 산다. 이 세상에 평화가 1000년간 유지되고 나면 그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이 세상에 1천년 간 평화가 유지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또 이미 천년왕국이 시작되었다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다. 전자를 후천년주의자, 후자를 무천년주의자라고 한다. 그들은 인간이 만든 신학 교리로 성경의 권위를 묵살하려고 한다. 이들의 주장대로 성경을 본다면 성경의 80%를 지나쳐야 한다. 교단 교리가 성경 교리보다 앞선 것이 신학을 왜곡시키는 원인이고 병폐인 것이다. 만일 거듭난 것으로 성도의 임무가 끝났다면 주님은 왜 성령의 충만을 명하고 계시며, 왜 전신갑옷을 입으라고 명하고 계시는가? 마귀는 무엇을 가장 겁내는가? 첫째, 마귀는 진리로 무장한 사람을 가장 무서워 한다. 마귀를 대적하려면 무기가 필요한데 그것은 성령의 칼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의 전쟁은 혈과 육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고 정사와 권세, 또 이 세상 어두움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적 세력들에 대한 싸움이기 때문이다(엡6:12). 탱크나 장갑차나 기관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로 모이는 교회는 이 영적전쟁을 할 수 없다. 이 영적 전쟁의 군인들은 변개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무장된 하나님의 역군들이다. 이들은 세상을 위해서 살지 않고 말씀대로 이루어질 다가올 세상을 위해서 대비하는 사람들이다. 진리가 없이 가짜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나타난 사람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 칼과 같아서 마귀가 겁내지 않는다. 미국에서 가짜 성경(NIV, NASV, NKJV 등)을 쓰는 신학교들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황폐해 가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먼저 그 나라에 변개되지 않은 성경이 나오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우리 나라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소개된지 130년 동안 변개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써 왔기 때문에 마귀에게 이 나라는 별천지가 되어 버렸다. 무엇을 하든지 거리낄 것이 없게 된 것이다. 바른 성경이 없으니 성경대로 믿는 신약교회가 없었고, 수많은 교단 교회들과 교단 신학교들이 생겨났지만 성경에 근거한 정통 신학으로부터 거리가 생기게 되었고, 상호 불간섭, 상호 불비평, 상호 눈가림 속에서 자의적으로 가르쳐 왔었다. 가장 한심스러운 것은 가르치는 사람들이 자기가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면서 글을 쓰는 경우들이다. 그런 글을 읽노라면 속이 메스껍고 구토가 날 지경이다. 쓰레기는 쓰레기일뿐 영적 양식은 못된다. 진리로 무장하지 않은 사람은 무장없이 적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과 같다. 둘째, 마귀는 겸손한 사람을 두려워한다. 겸손한 사람은 곧 순종하는 사람이다. 복음을 전할 때 교만한 사람은 복음 을 전할 때 교만한 사람은 복음을 거부한다. 그 결과로 그 사람은 지옥에 가는 것이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교만은 사탄이 쓰는 도구이고 파멸의 도구이다. 죄의 형벌이 사망이 아니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동물을 가지고 왜 구차하게 성막을 찾아야 했겠는가? 죄의 형벌이 사망이 아니라면 왜 죄사함을 받으라고 외치겠는가? 마귀의 공격이 없다면 왜 영적 전쟁에서 마귀를 대적하라 했겠는가?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저항력을 상실하고 오히려 적의 활동 무대를 제공하게 된다. 반대로 형식적인 겸손은 오히려 마귀를 즐겁게 해 준다. 마귀는 당신보다 훨씬 영리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마귀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이다. 셋째, 마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성도가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성도”가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란 용어이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주여, 주여” 부르는 것은 마귀를 부르는 것이다.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신을 부르게 된다. 악령은 자신을 성령으로 가장해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헛소리를 하게 해서 영적인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며, 거짓 환상을 보게 해서 하나님이 역사한 것처럼 꾸며주고, 음성을 듣게 해서 그것이 성령의 소리로 착각하게 만들어 준다. 그 다음은 기도 그 자체인데, 하나님과 정상적인 영적 관계도 맺지 않은 사람이 혼미한 정신상태에서 뭔가를 계속 읊조린다고 해서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과 갖는 영적 교제(Communion)이다. 요즘 많은 기도원들이 세워지고 있고 기도하려고 기도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 곳을 조용해서 찾는다고 해 두자. 무엇을 기도할 것이 그리 많기에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가? 기도는 마음이 준비된 시간에 자기만의 공간에서 주님과 얼마든지 기도가 가능하다. 죠지 뮬러가 기도원에서 기도해서 그 많은 응답을 받았겠는가? 마태복음 12:43-45에는 어떤 사람에게서 나간 한 더러운 영이 쉴 곳을 찾다가 못 찾자 다시 전 집으로 돌아가니 그 집이 비어있고, 소제되고, 단장되었기에 자기보다 악한 영을 일곱이나 더 데리고 들어가서 더 악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귀는 빈 집을 차지한다. 성령이 없는 집, 그 집은 대개 종교심으로 도덕심으로 자기 의로만 깨끗하게 해 놓았을 뿐 영적실체도, 진리도, 오류도, 성경적 예언도 모르는 상태이다. 그뿐 아니라 단장까지 된 것이다. 종교로, 학위로, 사회적 인정으로, 또는 직분으로 단장된 상태이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나는 어느 학교에서 무슨 학위를 받고 무슨 가짜 책을 쓴 아무개 목사, 장로, 안수 집사, 권사’라고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런 상태는 마귀의 놀이터이다. 『누구든지 정복을 당하면 그 사람은 정복한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라. 만일 그들이 주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으로 인하여 세상의 오염에서 피했다가 다시 거기 말려들고 패배하면 그들의 나중 결과가 처음보다 더 악화되나니』라고 베드로후서 2: 19,20에서 말해주고 있다. 어떤 사이비 종교(그 종교를 믿는 사람 자신은 모른다)를 연출해 내는 것은 사탄의 전문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귀신들린 사람을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 분열증(Schizophrenia)이나 공포증 공포(Phobophobia)니 과대망상증(Megaloman- ia)이니 편집병(Paranoia)이니 기타 정신질환 등이라고 이름 붙인다. 정신과 의사는 뇌의 손상으로 인한 환자는 고칠지 몰라도 귀신들린 사람은 속수 무책이다. 오히려 그 정신과 의사에게 악령이 들어가면 그리스도인이 악령을 쫓아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은 마귀의 지배 하에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만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마귀의 공격에 대비하여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 이는 너희 원수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기 때문이니라. 믿음 안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고 말씀하고 있다(벧전5:8,9).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성장해야 한다. BB ============================================================== 3. 당신은 얼마나 오랫동안 사탄의 종이었는가? 1993년 12월호 p20 / 통권 21호 조회수 : 2 “강한 사람이 무장을 하고 자신의 처소를 지키면 자기의 재산이 안전하리라. 그러나 그 사람보다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이길 때에는 그가 의지했던 모든 무기들을 빼앗기고 그 탈취물들은 나뉘게 되리라.”(눅 11:21,22)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완전히 마귀에게 소유되었었다. 그때 사탄은 마치 완전 무장을 하고 우리의 혼을 지켜주는 파수꾼과 같았다. 그러다가 복음을 듣고 구원받던 날 마귀보다 더 강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쳐 부수어 사탄의 무장을 해제시키심으로써 사탄과 연계되었던 우리의 모든 공식 관계는 단절된 것이다. 각 사람이 구원받은 경험은 자연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지만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기에 우리는 세상 신이 주관하는 세상 제도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올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혼을 이겨오는 일(Soul Winning)을 구령이라 한다. 만일 그때 우리가 그 전쟁을 볼 수 있었다면 우리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천사들과 더불어 원수의 첫째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무기들을 파괴시키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구원받지 뭇하도록 방해했던 무기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지금도 저쪽 세계에서 마귀와 그의 세력들이 의존하는 무기들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곧 악과 타협하고 악을 수용하고 동조하는 생각과 자세와 견해들이다. 주님은 이것들을 누가복음 11장에서 무기라고 했고 바울은 요새라고 했다. “이는 우리가 육신 속에서 행하지만 육신을 따라 싸우지 아니하나니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을 통하여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리는 능력이라. 여러 가지 이론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하여 스스로 추켜 세운 모든 높은 것들을 무너뜨리며 모든 생각을 사로 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니”(고후 10:3-5) 여기서 언급한 요새는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이나 경우에 따라 짓는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사상 체계 속에 숨어 있으며 악이라고 인식은 못하는데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말한다. 가장 많이 속고 있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음으로써 모든 잘못된 생각과 자세를 일소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라는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충만함 가운데서 행할 때 할 수 있는 말이지 그 과정이 이미 끝난 것은 아니다. 그 요새들은 아직도 우리의 관념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기의 사랑하는 자식을 빼앗긴 사탄은 그 자식의 영적 국적은 달라졌지만 계속 공략을 가하여 자기의 지배하에 두려고 한다. 거듭난 사람에게 맨 먼저 가르쳐 줘야 하는 것은 악령의 기습 방법과 기도하는 방법이다. 거듭난 사람에게 악령이 맨 먼저 가하는 공격은 오늘 들은 복음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영적 싸움은 없으며 모든 현세의 쾌락과 의미를 포기하지 말고 향유하라고 충동시킨다. 그 다음으로는 실족할 수 있는(죄를 지을 수 있는) 기회들을 부여한다. 이런 일들은 처음 1주에서 4주 동안에 이루어진다. 구령 상담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그 죄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미 해결해 놓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당신은 그 분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가서 죽은 영을 살려주고 당신의 혼을 구원해 주신다는 그 점을 시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함께 영접기도를 한다. 그런데 그 다음날 만나면 감사하다고 해야할 그 사람의 표정은 전보다 더 쌀쌀해지고 무표정하고 인사도 잘 안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이 잘못된 것처럼 생각한 것이 분명하며 그 생각은 바로 악의 세력들에 의해서 주입된 것이 분명하다. 슬프고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런 경황을 알기 때문에 상담하고나면 적어도 4주에서 7주는 믿음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서 우리는 더러운 영이 쉴 곳을 찾는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찾는 쉴 곳은 우리의 관념 생활(Thought Life)이다. 우리가 불신(믿음이 없음)이나 두려움이나 원망, 증오 등 습관적으로 짓는 죄들과 동의하게 되면 그들은 쉴 곳을 찾게 된다. 우리가 적들에게 요새를 허용하게 되는 경우는 아직도 십자가에서 완전히 처리되지 않은 어두운 부분들이 우리 안에 남아 있어 죄지을 가능성이 상존할 때이고 아직도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있어 온전히 주님께 산제물로 드리기를 거부할 때이다. 우리는 종종 일련의 죄가 끝나고나면 자기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불경스럽고 무모한 행동인가를 깨닫게 되는데, 바로 그 시점이 사탄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 때이다. 이런 패배를 한 두 번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신실한 사람들은 내적 투쟁을 통해서 주님께 부르짖어 자기의 의지를 빼앗기지 않고 승리를 쟁취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사탄은 성도의 의지를 공략한다는 것이 어려운 줄 알기때문에 의지를 공략하기에 앞서 감정을 공략한다. 승리하기 위해서 마귀를 대적하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권위를 행사해야 한다. 믿음 안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해야 한다(벧전 5:9). 그리스도인이 된 뒤로 위로를 얻지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첫 날부터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가 된 것이다. 아기가 성장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싸움을 싸우겠는가? 고린도후서 5:17은 갓 태어난 생명들에게 터무니 없는 기대를 갖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들이 사용할 수 있는 요새가 우리 안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이런 요새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불신, 사랑 없음, 두려움, 교만, 용서하지 않는 마음, 정욕, 탐심, 원망, 저주 등이다. 이런 요인들은 일차적으로 성경대로 살려는 성도들에게서 화평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화평을 유지하지 못하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게 된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이런 내적 요새들을 스스로 제거하여 주님이 주시는 화평을 유지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요 14: 27). 우리는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는 본능적 성품 때문에 죄를 합리화시키고 옹호하려 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생활을 시작한지 오래 되었지만 죄와 용서 사이를 수없이 오가면서 죄 짓고 자백하고 죄 짓고 자백하는 생활로 인하여 성장하지 못한채 20년, 30년, 아니 죽을 때까지도 성장된 그리스도인으로 주님과 온전한 영적 교제 속에 생활하지 못하고 끝내게 된다. 우리가 이런 요새의 늪에서 빠져 나오려면 우리는 먼저 정직하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인정하고 구해야 한다. ‘모든 것이 문제없다’, ‘잘 되어 간다’는 식의 가식은 즉시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겸손하게 여미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이 억압에서 구제받아야 된다는 필요성을 절감할 때까지는 이 요새에서 풀려나올 수 없다. 내가 시인해야 할 것은 “나는 거듭났지만, 사탄에게 요새를 제공한 줄을 모르고 살았구나. 내가 성경대로 믿지않고, 의심하고, 주저했던 것도 커다란 실수였고, 죄 짓고도 자백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의 계략에 속아 넘어 간 것이었구나”하고 속은 사실을 시인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악한 세력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생활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기도의 실행이 무슨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양적으로 많이 모였다고 해서 하나님의 축복받은 교회의 성장이라고 보는가? 교회는 거듭난 성도들로 구성된 양우리이지, 병이나 낫고 방언이나 하려는 사람들로 모인 동물원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 목적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서이고 또 우리를 진리에로 인도해 주시기 위해서이다. 그분이 성령으로 인도하실 때 성경적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가르쳐 주시지 않는다. 성경적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가르치는 것은 성령님이 아니라 더러운 영들의 짓이다. 그 일들이 외적으로 아무리 번창했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과업은 진리를 비 진리로 변개시키는 것이다. 성경이 진리이기 때문에 이들은 거짓과 속임수로 성경의 진리를 왜곡시키며, 그와 관련된 일들을 수시로 자행하게 한다. 영으로 거듭나지 않았거나 종교적 열의가 있는 자들 즉, 아직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자들을 써서 오류를 진리라고 믿게하며 전파하게 한다. 사탄의 최종 목적은 성경을 변개시키는 일이기에 가짜 성경을 만들어 내놓고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쳐서 쓰게 하고, 변개되지 않은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을 배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어두움의 세력들에 의해 진리를 배격하여 종교활동을 하려는 자들을 통하여 자행되고 있는데도 이들은 그 사실조차 분별할 영적 분별력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자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분의 명령에 복종한다고 공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귀는 “내가 사탄이다. 내가 더러운 영이다”라고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가장 교묘한 방법으로 속여서 속이는 대상으로 하여금 너무나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케 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자긍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런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성경으로 비춰보면 그 허구와 오류들이 들어나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에게 증오의 책이 되고 공포의 책이 되며, 따라서 그들은 변개된 성경들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공언하시기를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신 반면 사탄의 무리들은 “조금 틀렸으면 어떻습니까? 복음을 전하는데 지장이 없으면 됐지요”라고 한다. 언듯 듣기에는 그럴싸하다. 그러나 그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성경에 따라 수행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사탄은 성도들이 진지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두려워 한다. 영적으로 악한 세력들에게 억압당하여 그들의 종노릇을 하는데서 벗어나기 원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한다. “사랑의 주 예수님, 나의 무지하고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요. 내가 주님께 순종할 것을 다짐합니다. 주님의 능력은 모든 것을 주님께로 복종시키고 요새를 무너뜨리게 하는 것을 믿습니다. 내가 거짓말을 했던 것을 자백합니다. 나는 내가 죄지은 것을 변명하고 나의 믿음을 버렸으며 주님의 임재를 망각했고 예수님을 닮을 수 없다고 거짓말 했습니다. 나는 이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의 옛 성품을 포기하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내 속에 있는 불신의 요새를 허물기 원합니다. 나는 주님께서 완성해 놓으신 구속의 능력으로 구원받았으니 주님과 동행함으로써 변화받아 승리의 생활을 영위하여 주님께 영광돌리기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 3. 사탄은 어떤 사람을 공격하지 못하는가? 1994년 4월호 p40 / 통권 25호 주일날이면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다니며, 찬송을 따라 부르고, 새벽기도에 나가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인가? 그 사람은 교회에 다니는 교인이지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죄인이 자신의 불의를 십자가에 계신 주님께 드리고 그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을 때 되는 것이다.사람들이 구원받은 것은 자신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그의 구원에 필요했던 것은 오직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주님의 대속적 죽음을 믿는 믿음뿐이다. 사람들이 거듭난 확신이 있으면 그 다음은 거듭난 그 영적 생명이 자라나야 한다. 전자를 칭의(justification)라 하고 후자를 성화(santification)라 한다. 성결은 성장의 과정이며 그리스도인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음에 이르러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 이룩하시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게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려고 또한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심이라.』(롬8:29)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지고 계신 계획을 각자의 삶에 실현시켜야 한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것도 우리 자신을 위해 살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로 그리스도를 닮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영위케 하시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성결의 완성을 뜻한다. 주님은 “온전하심” 이란 용어를 쓰셨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바울은 에베소서 4:13에서 『우리 모두가 믿음의 하나됨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의 하나됨에 도달하며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시려 함이니라.』고 했다.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 됨을 말한다. 영적인 사람은 믿음이 있고, 성령으로 충만할 줄 알며, 말씀을 알기 때문에 참다운 경배도 드릴 줄 안다. 이렇게 영적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능력도 갖추게 되면 이런 사람은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가끔 영으로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 열심히 교회에 오가는 것을 보게 된다. 때때로 그는 교회에서 직분도 맡고 있고, 자기 기분으로는 열성을 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이러한 육신적 열성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느냐에 달려있다. 죄 사함을 받은 확신이 있는가, 그리스도의 영이 자기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의 전인가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면 안다. 성령께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신다. 하나님께서 성막의 성소(제사 지내는 곳)를 넘어 지성소에 거하셨던 것처럼, 성령께서는 우리의 거듭난 영에 거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께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새벽기도를 10년간 한번도 안 빠졌든지, 집을 팔아 교회에 갖다 주었든지, 100일을 금식했든지, 그런 일은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피조물에게는 양보가 없으시다.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들의 성품을 소유하게 하도록 그들의 생을 그리스도의 생으로 변화시키시고 성장시키신 후, 영적 전쟁에서 용사로 싸울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영적으로 태어났어야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칭의도 없이 어찌 성결의 과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영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이 전쟁에 참여할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아직 세상의 신, 즉 마귀의 주관하에 있는 마귀의 자식들이다. 마귀의 자식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용사로 쓰실 수 있는가? 영적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말씀의 젖으로 양육되어 빠른 시간 내에 기도하는 사람으로, 영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유혹과 시련에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구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365일 구원의 복음만 전하는 교회는 밥이나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에게 계속 우유만 먹이는 것과 같다. 사탄은 성도를 공격할 때 다양한 방법을 구사한다. 때로는 격분하게 만들고, 낙담하게도 만들며, 미워하게 만들고, 두려움을 지니게도 하며, 비성경적 교리와 타협하게도 만들고, 속임수를 써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게 한다. 어떤 경우든지 진리에서 돌아서게 하는 것은 그들의 술책이다. 사탄의 전략은 성도가 믿음을 형성시켜 하나님께 헌신하여 순종하려 할 때 그 성도의 자세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도 사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탄이 공격할 때,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오지 않고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면 그 공격은 실패하게 되며, 성도가 유혹을 당해도 그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되면 사탄은 물러가고 만다. 하나님께서 사탄의 공격에 대응하는 방법은 인간적인 발상과는 다르다. 이 전쟁은 혈과 육에 대항하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도 증명되는 셈이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사탄과 대결해서 싸우신 것이 아니라, 갈보리에서 이루셔야 할 십자가의 죽음을 이루심으로 승리하셨다. 이 세상의 통치자를 심판하고 그들의 정사와 권세를 무력화 시키신 것은 정면 대결의 방법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자신을 넘겨주심으로써 이루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이 승리의 관권이 된다. 이것을 안 마귀는 우리의 눈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돌이키게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닮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강한 의지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감정과 마음을 자랑한다. 그러나 마음이 변화하지 않은 채 외형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아 간다고 생각할 때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변화된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그리스도를 닮음으로써, 사탄이 우리 안에 활동할 수 있는 한 치의 땅도 허락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받았을 때(롬10:9)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고(고전1:30), 그리스도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시게 되었다(갈2:20).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인이 세상적인 명예와 인간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가치관으로 삼는다면 그 사람의 영적 생활은 이미 끝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사람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기 때문이다(요15 :7). 그러나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신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삶의 가치와 기준이 하늘 지향적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싸우는 영적 전쟁은 한 개인과 사탄과의 단독 투쟁이 아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 세력이 악한 세력의 결집과 싸우는 싸움이다. 엘리사가 열왕기하 6:16,17에서 그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했을 때 산 위에는 말과 불병거가 가득했다. 성도가 주님 앞에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을 때면 하나님의 천사와 마귀가 함께 선다. 그런데 만약 사람이 하나님과 온전한 영적 교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혼미한 정신과 알아 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중얼거리고 있으면 그는 성령의 보호를 받을 수 없고, 오히려 악한 세력들의 억압 속에 있게 된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인도하신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이 외적 형태만 갖고 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간주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실제로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하나님을 찾기만 했던 것이다. 그 사람의 하나님은 하나님(God)이 아닌 신(god)으로, “알지 못하는 신”인 것이다. 우리는 종종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이야기 하려는 것을 본다. 심지어는 성령화나 성신화를 외치며 성령을 일반화 시키고, 마치 성령이 인간의 힘이나 조종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여기는 것을 본다. 그러나 영으로 성령님과 동행하는 성도는 성령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성령을 가장 잘 모르는 사람들이 성령화 운동이나 성신화 운동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성령을 위한 대회를 갖는다 해서 성령님과 영적 교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금식기도 하나면 영적인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만큼이나 어리석은 자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마귀의 공격대상이 되지 않지만 성령화나 성신화를 외치고 있는 사람은 그들의 먹이가 된다.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은 마귀가 공격할 근거를 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림으로써 우리를 보호하시는 주님의 임재 속에서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BB =============================================================== 4. 깨어 있으라 1996년 9월호 p42 / 통권 54호 그러므로 너희는 생각의 허리를 동이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끝까지 바라라 (베드로전서 1:13). 성경을 읽다보면 깨어있으라는 권면을 자주 듣게 된다. 그러나 그 말씀의 대상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스도인도 이전에는 죄와 허물로 죽었으나 성령께서 죽었던 그 영을 살리심으로(엡 2:1)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경배할 수 있게 된 자들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면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어떠한 일에 있어서도 무자격자인 셈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는 같지 않기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자지 말고” 정신을 차리라는 권면을 받는다(살전 5:6).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였기 때문에(고후 4:4) 그들은 결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며,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빛을 알지 못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도 이들과 같이 불순종의 자녀이며 진노의 자녀였으나, 그리스도의 복음(고전 15:1-4)을 받아들임으로 빛의 자녀가 된 것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조건이나 제한도 없다. 누구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처럼 분명한 은혜로 초청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지옥의 불길만이 그들을 기다릴 뿐이다(살후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너희 죄들 가운데서 죽으리라”(요 8:24)고 하셨다. 성경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낮에 속하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처럼 자지 말고 정신을 차리라고 말한다. 낮에는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고난을 견디고, 전도자의 일을 하고 맡겨진 직무를 완수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들이다. 대사들은 본국에서 소환할 그날까지 주어진 직무를 잘 감당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대신한 우리들에게 화해의 말씀이 맡겨졌다(고후 5:19). 이 말씀은 죄를 알지도 못하고, 죄를 지극히 미워하시는 거룩한 하나님과 죄악 가운데 태어나 죄악으로 일생을 허비하는 인간들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딤전 2:5)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죄인이 유일하신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아올 때만이 그분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은 이제 대사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본국으로의 소환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계신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벧전 4:7). 그러나 우리는 그날이 언제인지 알지 못하기 떄문에 주의하여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마 5:13, 막 13:33). 『그러므로 깨어서 항상 기도하라. 그래야 장차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서기에 합당하게 여겨질 것이라.”고 하시더라』(눅 21:36). 『그러므로 너희는 생각의 허리를 동이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끝까지 바라라』(벧전 1:13). 깨어 있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깨어 있지 못하게 하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사탄은 진리와 가장 유사한 모조품을 제시하여 속이는 자이다. 그는 거짓말쟁이며 또한 거짓말의 아비이다. 그는 은사주의, 방언, 치유, 빈야드 운동, 불세례, 유아세례 등 각종 누룩(거짓 교리)을 퍼뜨려 깨어 있지 못하게 한다. 사탄의 수면제에 취한 자들은 그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는 전혀 무익하다. 죽어 있는 자나 잠을 자는 자는 둘 다 어떤 일도 행할 수 없다. 우리의 대적 마귀가 어떠한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그는 흉칙한 괴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만큼 어리석지 않으며 오히려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 사람들을 속인다. 그의 종들도 마찬가지로 의의 종으로 가장하며, 그들은 거짓 사도와 기만하는 일꾼이면서도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가장한다(고후 11:13-15). 그의 목적은 멸망시키고 파괴하는 것이며,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닌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8:44)였다. 그러므로 그의 종들은 성경에 없는 “또 다른 예수”나 “또 다른 복음”을 전파하며, 성령이 아닌 “또 다른 영”을 받게 한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 지금은 가장 어두운 밤이다. 파수꾼은 결코 잠이 들면 안된다. 그러나 이제 곧 새벽이 온다. 의의 태양이 떠오르면 밤을 지키며 말씀과 기도에 깨어있어 믿음 안에 굳게 섰던 그리스도의 용사들에게 상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