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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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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셀소 뮤니즈의 간증
lhyunsik

1. 고행으로 구원받지 못한 수도사 - 회심한 사제 셀소 뮤니즈의 간증 1997년 8월호 p47 / 통권 65호 조회수 : 2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무언가 진실되고 확실한 것을 찾던 나는 어린 마음에 사제가 되는 길이 진리를 체험하고 혼의 구원을 받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선생님께서 “사제가 되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돌이 물 위로 떠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12년 동안 신학교를 다녔고,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정해 놓은 규칙을 지키는 생활에 전적으로 헌신했다. 나는 모든 고행을 다 실행했으며, 스페인 오베이도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신학원에서 원장으로 있으면서 고행과 신비주의 신학 과목의 교수로 일하는 동안 고행에 대해 가르쳤다. (고행이란 혹독한 자기 단련과 절제, 육체에 가하는 학대 등을 통해 “자아”를 다스리고 모든 정욕과 욕망과 쾌락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년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기 통제와 평안과 확신을 얻으라고 말했지만, 막상 나 자신은 그러한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내 안에는 결코 평안이 없었으며, 성경에 비추어 본 카톨릭 교회의 교리는 내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고, 오히려 내 안에 갈등만 가중시켰다. 이런 영적 혼란을 겪는 가운데서 해외에서 방송되는 개신교 라디오 프로그램이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들을 갈급하게 만들었고, 결국 성경은 내 혼의 빛이요, 양식이 되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열망으로 나는 라디오 방송으로 들었던 교회와 접촉하게 되었다. 이 교회에서는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근원이었다. 성경을 공부하고 그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면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즉 그분께 직접적이고도 개인적으로 다가설 수 있으며, 그 유일한 방법은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계속해서 성경을 연구하면서 나는 로마 카톨릭 교리의 오류들을 점점 더 명백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회심을 경험하기 원했다. 그러나 동시에 카톨릭 교회를 떠나지 않고서 이 체험을 얻기 원했다. 내 삶은 카톨릭 교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점차 로마 카톨릭 교회가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지극히 복잡한 교회 조직을 이용해서 결국은 그리스도를 제쳐두었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이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내게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내가 회심하게 된 그날 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밤에도 나는 주님과 주님의 말씀 안에서 피난처를 찾았으며 내 마음은 극도의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잠을 아룰 수가 없었다. 기도하려고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내 마음 속으로부터 기도가 솟아올랐고, 지난 날의 죄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하게 떠올랐다. 내 죄들이 그처럼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나는 완전히 죄로 가득 찬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버려진 기분이었다. 어떻게 내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나는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존재였다. 그때만큼 선을 행하는 데 있어서 나 자신이 그렇게까지 무능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성경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나오라고 얼마나 많이 초청하셨는지를 생각했다. 나는 그분께로 강하게 끌리는 것을 느꼈다. 주님은 자유를 주시고 분에 넘치도록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형벌받기 위해 기꺼이 이 땅으로 오신 그런 분이셨다. 결국 나는 나 자신이 무언가를 하겠다는 열망을 내버리고 내 아버지시며, 나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신 하나님의 품에 나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주 예수님, 내게로 오시옵소서. 나의 유일하신 구주이신 주님께 저를 맡깁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몰랐었다. 나는 전에는 결코 느껴 보지 못한, 주 나의 하나님과 완벽한 일치감을 느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 주님, 주님은 내 모든 것 되시며, 나는 영원토록 주님의 것이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내 마음의 모든 혼란과 의심과 주저함들은 사라져 버렸고, 기쁨만이 넘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로마 카톨릭 교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나는 결과야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내 생애를 주관해 주시고 나를 그분과 하나 되게 해 주신 것은 그분께 내 혼을 의뢰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기만 하는 어떤 선한 사람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바로 그 길이신 것이다. 주님은 단지 진리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바로 진리이신 것이다. 주님은 인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은 영웅이 아니라, 그분께로 나아오는 모든 자들에게 생명이 되시는 유일하신 구세주이시다. [고행 신학 과목의 교수였던 뮤니즈는 자아를 통제하고 인간의 모든 정욕을 제어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었다. 이때 뮤니즈는 불교를 비롯한 타종교에서 고행에 사용하는 방법까지도 연구한 바 있다. 한 마디로 그는 거룩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인간이 고안해 낸 모든 방법을 연구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학자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뮤니즈 교수는 과거의 경험에 대해 얘기할 때 다음의 예화를 종종 사용한다.] 전적으로 타락한 나의 죄성을 깨달았을 때, 나는 마치 다 부서진 배에 타고 있으면서 저만치서 빛을 반사하고 있는 해변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처럼 느꼈었다. 해변까지 갈 수만 있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해변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 않지만, 그것은 물 때문에 가깝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배 안에 있는 사람은 헤엄쳐 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꽤 잘 하는 것 같다가 해변에 가까이 가게 되자 파도가 갑자기 그를 다시 바다로 떠밀어가는 것이다. 그는 다시 헤엄쳐가기 시작한다. 파도를 거슬러 해변으로 가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또 시도하고, 다시 또 시도하지만, 해변에 도달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그는 피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른다. 자연의 법칙 때문에 목적은 결코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 아무런 소망도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하나님을 발견하려고 하는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깨닫는 인간이 경험하는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의 힘으로는 심판 날에 받을 형벌에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뿐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해변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계명은 인간에게 거룩함을 요구한다. 이것이 영원한 해변에 결코 다가갈 수 없게 만드는 거대한 파도가 되기 때문에, 인간 자신의 노력으로는 그 해변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그 본성부터 심히 악하고 죄의 성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갑자기 해변에서 헬리콥터 한 대가 이륙했다고 생각해 보자. 조종사는 물에 빠진 사람을 발견한다. 헬기는 파도를 거슬러 외로운 싸움을 싸우고 있는 그 지점으로 다가가 물에 빠진 사람의 머리 위로 밧줄을 내려준다. 물에 빠진 사람이 그 밧줄을 잡으면 헬기는 그를 물에서 들어올려 굽이치는 파도를 뒤로 한 채 안전하게 해안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의 완벽한 모형이다. 주님께서는 영원한 하늘에서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셨다가, 아버지 곁을 떠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받으셨을 때,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파도에 뛰어드셨던 것이다. 그 십자가 사건 이후로 주님께서는 (영적으로 말했을 때) 영광의 보좌를 떠나 파선한 배에 타고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끊임없이 죄인에게 다가오신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의 파도와 씨름하는 죄인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고 계신다. 그때마다 주님께서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다.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믿을 때 그들은 죄의 바다로부터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누리게 된다. 만일 물에 빠졌던 그 사람이 헬리콥터에서 내려진 밧줄을 잡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해변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가정해 보자. 틀림없이 그는 결국 물에 빠져 죽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그가 자기를 구하러 온 사람을 절반만 신뢰했다고 생각해 보자. 한쪽 손은 줄을 잡고 있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여전히 헤엄을 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두 방법 모두 실패하고 그 사람은 물에 빠져 죽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주님께서 죄의 형벌을 모두 제거해 놓으신 것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자신을 의지한다면 - 예를 들어 성사나 면죄, 선행을 하려는 노력 등 - 우리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참된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할 때 받게 되는 것이다. =============================================================== 2.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께로 회심한 사제 존 자논의 간증 1997년 6월호 p50 / 통권 63호 조회수 : 1 1910년에 북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나는 가난하지만 독실한 카톨릭 신도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으며, 1935년 6월 29일에 로시 추기경에게 서품을 받은 뒤 미국으로 파송받게 되었다.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 몇 년 후에 나는 생일 선물로 탁상용 라디오를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라디오 방송을 듣게 되었는데, 평일 혹은 일요일에 나오는 개신교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놀라기도 했지만 어쨌든 방송을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메시지나 찬양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척 강조하는 것이었다. 개신교 설교자들은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진정으로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5,16). 어쨌든 나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 속한 내가 얼마나 옳은지, 그리고 카톨릭 교회 밖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입증하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면 할수록 카톨릭 교회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요한복음에서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즉 성경은 가장 중요한 문제인 우리 구원에 관하여 참으로 분명히 말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제라는 것조차 내 혼의 구원을 보장해 주지 못했다. 나는 사제로서의 나의 열심과 선행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성경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비록 로마 카톨릭 성경이었지만).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9). 이 말씀은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나의 믿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때까지 나는 카톨릭 교회의 모든 교리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였었다. 카톨릭 신자에게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교회의 교리를 의심없이 받아들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출회당하든지, 둘 중 하나였다.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보다도 더 열심히, 그리고 철저히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십자가에서 치러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전적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뜻에 따라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히 10:10). 󰡔그는 대제사장들처럼 먼저 자신의 죄들을 위하고, 그 다음에는 백성들의 죄들을 위하여 제사드리는 일을 매일 할 필요가 없으시니, 이는 그가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 단번에 이루셨음이라󰡕(히 7:27). 더 이상 미사나 고해성사나 연옥 같은 것은 필요치 않았다. 소위 “유일한 참된 교회”인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모든 교리들이 로마 카톨릭이 만들어 낸 가짜라는 사실을 나는 실감하기 시작했다. 내가 성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나는 우리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 대한 신앙이나 성인들이 성경에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리아 자신도 카나 혼인식에서 시중드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 갈 것을 지시했을 뿐이다. 󰡔주의 모친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그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행하라󰡕(요 2:5).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직접 오라고 우리를 초청하고 계시지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처럼 성인들을 통하여 오라고 하지 않으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마 11:2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 󰡔너희가 무엇이나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4). 또 바울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하기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딤전 2:5)고 했다. 또 나는 성인들에게 기도하라는 가르침 또한 카톨릭 교회가 만들어 낸 거짓 교리임을 성경 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생애 최초로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다. 나의 마음을 밝혀 주신 주님께 감사드렸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로마 카톨릭 교회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회를 떠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우기 시작했지만, 막상 교회를 떠나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섰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가슴 아파할 것과, 카톨릭 교회 신자들이 나를 치욕스럽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또한 오랜 친구들과 나의 안전과 명예와 안락한 삶을 잃으리란 것도 알았다. 나는 결정을 유보하고 기도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은 명확하고 확고하게 들려왔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며󰡕(마 10:37). 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마시키기 위해 성경을 덮어두고 전보다 더 열심히 사역에 임했다. 나는 이전에 카톨릭 신학원에서 했던 서약, 특히 서품받을 때 했던 서약을 떠올렸다. 가장 훌륭한 사제가 되겠다고 한 맹세였다. 이것으로 나는 꽤 여러 해 동안 어느 정도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1955년 1월, 조셉 자켈로 목사의 갑작스럽고도 반가운 방문을 받게 되었다. <컨버트 메거진, Convert Mag- azine>지의 편집인이던 그가 미주리주의 캔사스시티에 있을 때 나를 방문한 것이었다. 그가 나에게 구원받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무척 당황했다. 이 질문은 나를 괴롭혔고, 나는 구원의 길을 나에게 다시 한 번 보여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를 책망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뚜렷하게 들려 왔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 생각하지 말라. 나는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노라󰡕(마 10:34). 나는 이 칼을 모든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나 자신을 떼어 놓는 데 사용했다. 주님을 나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후, 나는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옳은지를 경험하고 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부모나, 형제나, 아내나, 자식을 버린 자로서, 현세에서는 여러 배를 더 받지 못하는 자가 없고, 또 오는 세상에서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으리라󰡕(눅 18:29,30). ============================================================= 3. 하나님께 알려지지 못했던 사제 - 회심한 사제 조셉 트렘블레이의 간증 1997년 10월호 p36 / 통권 67호 조회수 : 2 1924년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 적부터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했기에 결국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그로부터 1년 뒤에는 볼리비아 및 칠레에 선교사로 파송받아 그곳에서 13년 동안 사역했다. 나는 사역자로서의 삶을 사랑했으며, 내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했다. 특별히 내가 좋아했던 것은 성경 공부였다. 강의, 모임, 설교 준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연구를 하기 위해 나는 음악을 듣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어느 날 성경 공부중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아름다운 찬송가가 흘러나왔고 찬송이 끝나자 짤막한 성경 구절이 들려왔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이어서 설교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채널을 돌리려고 했다. “이 설교가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내가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내가 이 사람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면 가르쳐 줬지...” 순간 망설였지만 그냥 듣기로 했다. 그런데 그 설교는 정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 설교를 통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 지극히 놀라운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마치 예수님께서 내 앞에 서서 친히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얼마나 그분에 대해 알지 못했던가. 그날 이래로 나는 거기서 나오는 모든 프로그램을 들었고.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는 나를 감동시키곤 했다(그 방송국 이름이 HCJB이며,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것은 설교자들이 계속해서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었으며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그 사람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의로운 행위는 더러운 걸레 같은 것이고, 영원한 생명은 값없는 선물로서 마음으로 받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서 영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내가 가르쳐 온 신학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것이었다. 나는 하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은 자신의 공적과 신실함, 사랑, 희생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쳐 왔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수년 동안 그렇게 해 왔었다. 매우 혼란스러워진 나는 그 복음 방송을 듣는 것을 중단했다. 내 안에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두통과 불면증, 그리고 지옥에 대한 공포가 나를 괴롭혔다. 미사도, 고해성사도 나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내가 만나는 어떤 사람들보다도 나 자신이 간절하게 용서와 위안을 필요로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고, 구원의 확신을 주지 않는 카톨릭 교회에 대한 믿음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나 빛은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내 마음에 비쳤다. 어느 날 나는 “종교적 위선”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본문은 마태복음 7:21-23이었다. 『나에게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아니하였으며,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며, 또 주의 이름으로 많은 경이로운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하리니, 그때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되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리라』 나는 내 교구 신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 주제를 택했다. 선행을 자신들의 부패한 마음을 가리는 가면으로 삼는 것에 대해 경고하려 했다. 그런데 정작 설교를 하던 도중, 나는 내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나에게로 되돌아와 내 귀에 쩌렁쩌렁 울리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나의 하나님, 어떻게 하나님께서 저를 모른다 하실 수 있습니까? 저는 사제가 아닙니까? 제가 치른 모든 희생을 아시지 않습니까? 얼마나 오랫동안 고생하며 공부했고, 부모와 조국도 버렸고, 가난과 복종과 순결의 서약을 했으며, 내 모든 재산과 내 몸마저도 당신을 섬기기 위해 바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를 전혀 알지 못하신다니요? 선교 활동 중에 제가 당한 고난을 아시지 않습니까? 한 번도 배부르게 먹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수백 명의 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수많은 낙담한 영혼을 위로해 주었습니다...저의 생명까지도 당신을 위해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이 모든 항변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전혀 알지 못하노라”는 정죄의 말씀은 계속해서 내 귀를 때렸다. 더 이상 항변할 힘이 없었다. 나는 쓰러져 울고 싶은 심정이었고, 신자들도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눈치 채고 있었다. 결국 나는 쏟아져 내리는 눈물 때문에 설교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무릎을 꿇었다. 내 죄의 실상과 하나님의 정죄를 똑똑히 보게 된 뒤에 느끼는 낙담은 너무나 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철저하게 비참한 상태에 있었으며,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그 순간이 오기까지 기다리셨다.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있는 그때 하나님께서는 내게 구원의 말씀을 제시하셨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거부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발견했다. 나는 내 행위로 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해 왔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은혜로 구원하기 원하셨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와 그로 인한 심판을 이미 해결해 놓았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 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마 11:28). 이제 나는 구원의 확신과 혼의 평안을 얻으려면 그분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예수님,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때 이 말씀이 기억났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계 3:20). 나는 예수님께서 어디 계신지 알게 되었다. 그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까이에 계셨다. 나는 서둘러 그분께 내 마음에 들어오시도록 구했다. “주 예수님, 내 마음에 들어오십시오.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나의 구주여.” 그 순간 나는 그토록 오랫동안 나를 위협해왔던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도 오래 들어 왔으나 한 번도 나에게 실제가 되지 못했던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는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고, 그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하였도다. 우리의 화평을 위한 징계가 그에게 내려졌고, 그가 맞은 채찍으로 우리가 치유되었도다』(사 53:5). 구원을 얻기 위해 더 이상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일을 다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드디어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으며 완전한 화평과 기쁨을 갖게 되었다. 내 모든 설교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고, 그분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집중되었다. 나는 더 이상 카톨릭 교회의 교리를 설교할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 사제직을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주님께서는 나를 해방시키셨다. 죄와 정죄로부터뿐만 아니라 나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억압했던, 인간이 만든 거짓된 종교 체제에서 해방시키신 것이다. =============================================================== 4.그리스도를 만난 신부 회심한 사제 조셉 자켈로의 간증 1997년 4월호 p24 / 통권 61호 조회수 : 1 1917년 3월 22일 이탈리아 북부 베니스에서 태어난 나는 열 살 되던 해 피아센자에 있는 카톨릭 신학원에 입학하여 12년간 수학한 뒤, 1939년 10월 22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나는 바로 위 서열이던 로시 추기경에 의해 미국 시카고로 파송을 받아 그곳에 새로 지어진 “복되신 어머니 카브리니”라는 이탈리아인 교회의 부사제직을 맡게 되었다. 4년 동안 시카고에서 사역한 뒤에는 뉴욕으로 사역지를 옮겼다. 사역을 하는 동안 내가 하는 강론이나 가르침이 성경에 위배되는지에 대해 한 번도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었고, 내 야망은 오로지 교황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1944년 2월경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라디오를 켰다가 우연히 개신교 교회 프로그램을 듣게 되었다. 어떤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개신교 설교를 듣는 것은 금지된 일이었기 때문에 다이얼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호기심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다음의 성경 구절을 듣는 순간, 이제껏 내가 가져온 신앙이 처음으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성경 말씀에 따라 자기가 구원받은 사실을 아는 것이 성령을 거슬러 죄 짓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 뒤에 곧바로 개종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 머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에 대한 온갖 의문으로 가득 찼고, 교황의 교리와 칙령들보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날마다 가난한 신자들이 20분 동안 하는 미사를 위해 5달러에서 30달러씩 가져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연옥에 가 있는 그들 가족의 혼을 풀려나게 해 준다고 내가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단 위에 있는 커다란 십자가상을 올려다 볼 때마다 그 위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비웃으시며 내게 이렇게 말씀하는 것만 같았다. “너는 거짓 약속으로 가난하고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의 돈을 훔치고 있구나. 너의 교리가 내 가르침을 대적하는 것을 아느냐? 믿는 자들의 혼은 고통의 장소에 가지 않는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니라. 이는 실로 그들은 자기들의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요,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따를 것임이라.』(계 14:13)고 내가 말했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되풀이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나의 희생제사는 단번에 온전히 드려졌기 때문이다. 내가 이룬 구원은 완전하며, 하나님께서 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그것을 확증하셨다. 『이는 그가 한 번의 제사로써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기 때문이라』(히 10:14). 만일 사제들과 교황이 미사와 면죄부로 연옥에 있는 혼들을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다면, 왜 미사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사를 드리는 것이냐? 어떤 개가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데 주인이 와서 개를 꺼내 달라고 5달러를 줄 때까지 기다리겠느냐?” 나는 제단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더 이상 쳐다볼 수가 없었다.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절대무오한 반석이며, 그 반석 위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다고 가르칠 때, 그 음성이 또다시 나를 꾸짖는 것만 같았다. “로마에 있는 교황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너는 알고 있지 않느냐? 얼마나 크고 화려한 집에서 수많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의 발에 입 맞추는지 알지 않느냐? 그런 자가 나를 대신한다고 정말로 믿는 것이냐? 나는 사람들을 섬기러 왔다. 나는 제자들의 발까지 씻겼다.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었다. 십자가에 달린 나를 다시 한 번 보아라. 하나님께서 사람 위에 그분의 교회를 세우셨다고 정말로 믿는 것이냐? 성경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느냐?(요 14:26). 『그 반석은 그리스도셨느니라』(고전 10:4). 로마 카톨릭 교회가 사람 위에 세워졌다면, 그것은 나의 교회가 아니니라.” 나는 또 “우리가 따라야 하는 신앙의 법칙은 성경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전통과 교리가 필요하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또다시 내 안에 있는 음성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너는 성경과 정반대로 가르치고 있다. 네가 전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교황이 있어야 한다면, 그들이 교황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무엇이 필요한 것이냐? 나는 전통을 정죄했다. 구원받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믿음으로써 그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20:31).” 나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께 직접 나아가는 대신, 마리아에게, 성인들에게 나아가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음성은 또 이렇게 물으시는 것이었다. “누가 십자가에 달려 너를 구원했느냐? 누가 피 흘려 죽음으로 너의 죄값을 갚아 주었느냐? 마리아냐, 성인들이냐, 아니면 나 예수 그리스도냐? 너를 비롯한 많은 사제들이 스카풀라리오나, 묵주나, 형상이나, 촛불 자체에 어떤 위력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그런 것들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은 ‘단순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상기시켜 줄 단순한 것들이 필요하다.’는 논리 때문이 아니냐? 그것들을 교회가 계속 사용하는 것은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되기 때문이 아니냐? 그러나 나의 교회는 장사하는 곳이 아니다. 나의 성도들은 영과 진리로 내게 경배해야 한다. 그 우상들을 제거하고 너의 신자들에게 기도하라고 말해라.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직접 나아오라고 말해라.” 내 안에 있는 의구심이 가장 나를 괴롭힌 것은 고해실 안에서였다. 사람들은 나에게 와서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들의 죄를 나에게 고백했다. 그러면 나는 십자가를 그어 주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노라고 선언했다. 내가, 죄인이요, 사람인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하나님의 권리를 빼앗은 것이다. 그때 그 음성은 내 양심을 찌르며 이렇게 말씀했다. “너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다. 죄인들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너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야 한다. 그들이 어긴 것은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해야 하고 하나님께만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죄를 용서하는 권세는 어떤 사람에게도 없고 오직 예수에게만 있으며 오직 그만이 죄를 용서한다. 『그녀가 한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니라』(마 1:21).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행 4:12).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딤전 2:5). 나는 더 이상 로마 카톨릭 교회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교황과 그리스도, 이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통과 성경이라고 하는 서로 상반되는 두 교리를 동시에 믿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스도냐 교황이냐, 성경이냐 전통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그리스도와 성경을 선택했다. 그리고 1944년에 카톨릭 사제직과 로마 카톨릭이라는 종교를 떠났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로마 카톨릭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아무 두려움 없이 그들에게 증거하도록 독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