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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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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에 순종한 아브라함(히11:8)
lhyunsik

임동선 [ E-mail ] 부르심에 순종한 아브라함(히11:8) 1.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훗날 상속으로 받게 될 곳으로 나가면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나갔으며 "(히11:8) 우리는 이 한 말씀을 통해 네 가지 귀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둘째, 아브라함은 그 부르심에 순종했다. 셋째, 순종한 아브라함에게는 상속이 주어졌다. 넷째, 그가 순종할 때 받게 될 상속의 모습은 부르실 때 전혀 보이지 않았다. 2.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1) 하나님은 복음으로 죄인들을 부르신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온전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나니 내가 의로운 자를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막2:17)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을 통해 죄인을 부르고 싶어하십니다. 그 죄인을 불러서 회개하는 삶을 통해 더 좋은 상속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이것을 위하여 그분께서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셨느니라."(살후2:14)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성경대로 셋째 날에 일어나셨습니다.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죄인인 우리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초청장입니다. 거기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초청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흘리신 피는 어떤 죄인이라도 깨끗이 해주시며 받아주시겠다는 약속의 증표입니다. 2) 이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이 있다. 다 이 복음에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롬10:16).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질 결말은 끔찍합니다. 그들은 모두 타오르는 불로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살후1:8). 하나님의 집 사람들도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구원은 받게 되겠지만 어떤 사람은 받은 은혜에 합당하게 처신하지 못하므로 부끄러운 순간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집 사람들에게 이런 심판이 있다면 복음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이 겪게 될 심판은 얼마나 끔찍한 것이 되겠습니까?(벧전4:17) 그러나 감사한 일은 이 아브라함처럼 부르심에 순종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으로 부르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그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해 그들은 정직하게 그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합니다. 또한 그들의 힘으로는 그들이 범한 죄를 조금도 깨끗이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또한 그들의 육체적 본성으로는 죄의 지배를 벗어버릴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그 자신을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내 모든 죄를 용서해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그 흘리신 피로 정결케 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아울러 그분의 죽으심과 묻히심,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주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셨습니다(롬4:16). 3)이렇게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상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속이란 아버지가 그 자녀에게 누리도록 물려주는 어떤 것들입니다. 부유한 아버지들은 그 자녀들에게 많은 상속을 넘겨줄 수 있습니다. 아무나 죽어가는 부자의 유산을 넘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그것을 물려받을 정당한 특권을 가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돌아가시는 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그분이 준비하신 좋은 것들을 누리도록 허락하시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죽으면 바로 지옥으로 끌려갈 것입니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부자처럼 그렇게 끌려가서 고통 중에 괴로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낙원이라는 곳에 가서 위로 받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임하시기 전까지 그 영과 혼이 위로 받으며 쉬는 곳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가 누릴 수 없는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조만간 이 시대에 큰 환난이 닥칠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없었던 환난입니다. 앞으로도 그 같은 환난은 있지 않을 그런 환난입니다(마24:21). 그때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지상의 남아있는 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공중으로 들림 받아 변화된 몸으로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으로 부르셨던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한 사람은 그 누구도 거기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거기는 십자가에서 피흘리사 그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한 마음으로 그 자신의 구원자로 인정하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기로 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혼인 잔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누릴 수 있는 상속입니다. 또 주님께서 지상에 재림하셨을 때, 모든 땅과 피조물들이 에덴으로 회복될텐데, 그 낙원을 경험할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살아있는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통해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회개한 사람만 거기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변화된 몸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그 좋은 곳을 다스리며 지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은 사람, 죽기까지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 왕국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끔찍한 지옥에서 비명을 지르며 자기들의 회개하지 않았음을 후회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한 것을 괴로워하면서 지내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주님께서 크고 흰 왕좌의 심판을 배설하실 때, 모든 죽어있던 죄인들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한 모든 죄인들이 다시 죽지 않는 몸으로 살아나서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영원한 불 못으로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던 사람들은 그 누구도 거기에 불려나가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죄를 추궁 당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죄 때문에 부끄러움 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를 대신해서 형벌 받으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짐을 지고 찢기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모든 죄인들은 비록 죄 가운데서 인생을 보냈다 할지라도 의롭다하는 판정을 받고서 크고 흰 왕좌의 심판에 끌려 나오는 일은 없습니다. 크고 흰 왕좌 심판이 끝났을 때, 이 땅은 그 있던 자리마저 보이지 않게 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영원한 왕국이 거기서 시작될 것입니다. 그곳은 죄가 없는 곳입니다. 그곳은 어둠이 없는 곳입니다. 그곳은 죽음이 없는 곳입니다. 그곳은 병들거나 슬픈 일이 없는 곳입니다. 그 영원한 왕국을 상속하는 일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도 완고하게 고집부리는 모든 사람들은 거기에 한 구석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상속 중에 가장 끝에 있는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좋은 상속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만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 이는 너희가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음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힘입어, 아바, 아버지, 라 부르짖느니라.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상속자니..."(롬8:14-17a)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 속에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더 이상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상속자니라"(갈4:6,7) 4)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사람들에게 주어질 상속은 오늘날 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우리 중에 누가 셋째 하늘이라고 부르는 낙원에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곳은 우리 눈에 보이는 이런 하늘이 아닙니다. 별들이 촘촘히 떠있는 그런 하늘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그분의 성도들의 영과 혼이 지상에 내려오기 전까지 쉬는 하늘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우리 중에 누가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어떤 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은 그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정확히 그것이 환난 중 어느 시기에 일어날 일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우리 중에 누가 하늘의 왕국을 구경한 적이 있습니까? 사자가 양과 뛰놀며 어린이가 독사 굴에 손 넣고 장난치는 그런 모습을 실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크고 흰 왕좌 심판이나 영원한 왕국은 어떻습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떻습니까? 새 예루살렘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분명히 약속되어있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사람들에게 상속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그 상속받을 곳을 보지 못했지만 순종하며 나아갔던 것처럼, 그리고 마침내 그 상속의 땅을 밟게 된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받게 될 상속을 본 적은 없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주님의 말씀들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그 모든 것은 결국,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3.아브라함의 순종에 있어서 장애물 하나님께서 지시하실 그 상속을 누리기 위해서 아브라함이 해야했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구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따로 세워 놓으시려 함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1) 고향(환경)을 떠나라... "그런데 전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에서 나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1) 2) 가족, 친족(사람)을 떠나라...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이여, 아버지들이여, 들으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거주하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너는 네 고향과 친족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들어가라, 하시니"(행7:2,3) 4.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는데 있어서 방해할 수 있는 것들 1) 살아온 환경 아브라함에게 했던 "고향을 떠나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더 이상 환경의 지배를 받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환경이라는 것에 매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은 우상숭배가 심한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그곳에 거하며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수24:2).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우상숭배의 자리에서 떠나기를 원하십니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절대 주님께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가장 무서운 우상은 태양신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신은 어떤 조각신상이 아닙니다. 자아라고 하는 신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자아를 섬기고 있습니다. 내 자아가 높임 받는 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 있습니다. 내 자아가 인정받는 것을 위해서라면, 내 자아가 대접받는 위치에 서는 것을 위해서라면...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고집, 시기, 분쟁, 교만, 자랑, 탐욕, 이 모든 것이 무엇과 연관되어 있습니까? 다 자아를 높이려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 앞에서도 그 자아는 뻣뻣하게 서있습니다. 종종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말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덕스럽지 않은 냄새를 풍깁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 이런 사람이 되었다. 나를 고치려고 하지 말라. 나는 나대로 두라!" 물론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강경하게 자기 입장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 그렇게 하면 그는 곧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사람으로 비쳐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에게 결코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에게 결코 긍휼을 베푸시지 않습니다. 교만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 죄인을 부르십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는 어떤 죄인들은 말합니다. "놔둬라. 여태까지 이렇게 살아왔다. 이제서 날 고치려고 하지 마라..." 그는 불 속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완고함, 그것으로 인해 영원히 고통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앞에 순종하기를 원하면서도 불순종의 길을 가게 되는 원인은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 자신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금 바꾸는 흉내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들을 생각해서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바꿀 생각이 없는 사람은 늘 불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향해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고향을 떠나라" 그때, 아브라함이 "난 어려서부터 이 고향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이곳을 떠나라 하십니까?"라고 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을 떴습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자기의 기질, 성품을 바꾼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드로를 잘 알지 않습니까? 그는 다혈질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나서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최고가 되어야 했습니다. 즉흥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했을 때 달라졌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네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3:6)면서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자기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일으켰습니다. 또한, 그 사건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자 "어찌하여 우리를 쳐다보느냐? 이것이 어찌 우리의 권능으로 된 것처럼 우리를 주목하느냐?"라고 말하면서 모든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는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행3:12). 그뿐 만 아니라 자기 보다 늦게 주님을 안 후배 사도로부터도 질책을 받을 줄도 알았습니다. 또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했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예루살렘 초대교회 안에서는 주의 동생 야고보를 돕는 위치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모든 것을 알거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글 중에 더러는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해서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베드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베드로는 오히려 그의 서신서에서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라고 말할 수 있는 변화된 사람이 되었습니다(벧후1:3-11). 요한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를 사랑의 사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과 함께 다니면서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마리아를 여행하다가 주님을 거절한 사람들을 놓고 주님께 이렇게 요청한 것을 아십니까? "주여, 엘리야가 행한 것같이 우리도 불에게 명령하여 하늘에서 내려와 이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거늘"(눅9:52-54) 만일 베드로나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고 한다면 그들은 결코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라"거나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자"(요일3:18)라고 가르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달라졌습니다. 옛사람이 아니라 새사람으로 살기를 추구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배우지 못한 환경에서 살았습니다(행4:13). 그렇지만 배우지 못한 것을 가지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행4:19, 행5:29). 모든 옛날의 습성, 환경, 배경 등이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는데 방해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2) 가족들, 혹은 가까운 사람들 가까운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그만 불순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남자들에게 제일 가까운 존재는 아내일 것입니다. 아내를 따르다가 낭패를 본 사람 몇을 소개해야겠습니다. 성경은 아담을 불순종한 사람으로 표현합니다(롬5:13). 그런데 하나님은 이 아담에 대해 "네가 네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령한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은즉"(창3:17)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보다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 아담은 저주가 무엇인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들을 부르십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통해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돌아와 그분 안에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누리기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부르십니다. 그런데 그런 중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지 말지를 누구와 상의하시겠습니까? 아내에게 묻겠습니까? 내가 죄 때문에 지옥에 가지 않아야 하는 문제를 아내의 결정에 따르겠습니까? 정직하게 죄인인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로 들고 싶은 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창16:2). 하나님의 처음 부르심에 응답할 때,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한 씨를 받는 문제에 있어서는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봅시다. "아브람이 사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니라."(창16:2). 결국 그녀의 말을 듣고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으나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삭을 핍박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앞에 놓고 그 가까운 가족들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말아야 합니다. 또 어떤 하나님의 사람은 대언자에게 속았습니다. 물론 그 대언자는 그가 진실로 하나님의 사람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고 그 결과 사자에게 찢기게 되었습니다. 대언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불순종하게 만든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왕상13:23-26).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도 대언잘세"하는 말에 속아 지켜야 할 명령들을 버립니다. "나도 신학을 했네. 내 말을 듣게." 하는 말에 속습니다. "나도 목회를 오래 한 사람이네 내 말을 듣게"...모두 속아서 주님 앞에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속아서 불순종하더라도 하나님은 찢으십니다. 속았다면 봐주실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없습니다. 찢기시기 전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속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명령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명령대로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사자에게 찢겼던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신실함입니까? "오 그 사람 신실해...!" 신실이란 말은 충실하다는 뜻도 됩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은 다 신실합니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다 신실합니까? 나보다 오래된 사람은 다 신실합니까? 나보다 많이 배운 사람은 다 신실합니까? 나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다 신실합니까? 성경은 거짓사도, 속이는 일꾼들이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고후11:13)이라고 말합니다. 거짓 사도들이 정말 거짓의 일꾼처럼 보이려고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고후11:14)합니다. 사탄의 사역자도 그 자신을 의의 사역자로 가장(고후11:15)합니다. 우리는 자기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하는 어떤 사람들의 말에 끌려 불순종의 길로 들어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게 한다면 어쨌든 그 순간에 그들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만난 적이 없던 사람들은 나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내가 전혀 어디에 사는 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은 나를 괴롭히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십시오. 적처럼 활동하게 되는 사람들은 가까운데 있습니다. 아주 가까운 어떤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고 해서 내가 맡은 임무에 불충하는 것은 나의 손해입니다. 아주 가까운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다고 해서 형제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교회를 섬기고 신실하게 봉사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어리석은 자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친족과 아버지 집을 떠나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로부터도 구분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혼란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가까이 있어 우리의 신앙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 주님께 순종하는 생활을 방해하는 그 사람들로부터 영향받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아브라함의 순종이 처음부터 온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버릴 수 없어서 하란까지 그와 함께 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친족을 버릴 수 없어서 롯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모두를 버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대로 홀로 가나안 땅에 섰을 때, 하나님은 그의 씨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들처럼 많을 것에 대해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그가 믿음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곳, 상속으로 받을 그 곳에 순종하며 나아갔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왔을 때, 그곳은 대대로 그 후손들이 거하는 땅이 되었으며 천년왕국 때도 그 자손들이 거기 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하늘을 본적이 없습니다. 낙원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죄인들이 가게 될 지옥을 구경한 사실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 모든 것들이 사실임을 믿고 죄인들이 당하게 될 형벌과 죄의 종노릇을 피하고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될 모든 것들을 받아들였으며 조만간 그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경험될 것을 믿으며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순종을 위해 우리가 살아온 환경이나 가까운 사람들의 영향도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