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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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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사들
lhyunsik

임동선 [ E-mail ]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사들(삿21:25)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사들(삿21:25) 2001.10.14.오전 1.오늘 이 말씀의 목적 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용하시고자 하십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이 귀한 사실에 눈뜨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자주 이 세상에서 그릇된 도구로 전락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주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고자 한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과연 나 같은 사람을 쓰실까?"하는 의심을 하면서 "아닐 거야. 그렇지 않아"라고 부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이 날 부리려고 할 때, 아무 거리낌도 없이 세상의 종이 되며, 사람들의 종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고전7:23] 주께서 값을 치르고 사셨으니 너희는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그분의 피값으로 사신 우리들을 쓰시고자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값을 치르고 샀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만든 올무에서 헤어나오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쓰시려는 위대한 사용에서 자꾸만 뒤쳐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 이 시간에 우리의 눈을 크게 뜨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귀한 도구로 사용하시려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크게 세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주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쓰셨는가? 두 번째, 그들을 쓰실 때, 어떻게 하셨는가? 세 번째, 그들을 쓰셨을 때, 오는 유익이 무엇인가? 하는 것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사사란 말의 의미:재판관 a.한자로...士師 선비사+스승사=가르치는 사람들(선비들) b.영어로...Judges:재판관들...옳고 그름을 판단해주는 사람들 [삿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 여호수아 이후로 사울 왕이 세워지기까지의 시대는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는 것이 그 특징이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면에서나 윤리적인 면에서 자기들의 눈에 옳은 것을 따라 행했습니다. 자기들이 복을 위해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며 암몬과 모압족속들의 가증한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에게 그 신을 전수해준 족속들로부터 오히려 압제를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매를 맞아야만 했습니다. 자기 멋대로 구는 아이를 부모님들이 가만 두지 않고 매질을 하듯이,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주님은 이방족속들을 매로 사용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셨으며 그 가운데서 부르짖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때, 재판관들의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을 그 눌림 당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그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구해내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멋대로 하다가 당하는 어려움에서 건져내는 것이었습니다. [삿2:18]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재판관들을 일으키실 때에 그 재판관과 함께 하셨고 그 재판관이 사는 모든 날 동안에는 주께서 그들을 그들의 원수의 손에서 건지셨으니 이는 그들이 자기들을 학대하고 괴롭게 하는 자들로 인하여 신음하므로 주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더라. 그리고 당시의 사람들이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다면, 재판관들은 하나님의 눈에 옳은 것들을 제시해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것들을 제시하며 가르치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주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그것을 제시하였던 사람들인 흔적을 봅니다(삿2:17). 아주 놀랍게도 이 재판관들이 살아있던 시대에는 이스라엘 땅에 평화가 왔고 안식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재판관들이 죽고 사람들이 다시 자기 눈에 옳은 것을 좇아갔을 때, 그 땅에는 블레셋, 암몬, 모압, 미디안 등의 주변 족속들로부터 심한 학대와 압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오늘 우리 시절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미 많은 의견과 이론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신학으로 말해도 매우 많은 이론들이 나와있습니다. 신앙에 대해서도 많은 충고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재판관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옳게 여기는 것을 많이 소개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옳게 여기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시기 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뜻을 옳게 보여줄 수 있고 판결해줄 수 있는 하나님의 재판관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 자신들의 삶으로 다른 이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보여줄 위치에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분의 선하신 의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마치 어떤 죄인이 악을 행하려 하다가도 자기 주위에 있는 선한 그리스도인으로 인해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들을 부르시고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엉뚱한 것에 몰입되어 있다면 주님께서 어찌 우리를 쓰실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더욱 제멋대로 가다가 멸망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3.주님께서 쓰신 재판관들의 특징 1)왼손잡이 에훗 모압왕 에글론이 이스라엘로부터 조공을 받으며 괴롭게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에훗이라는 사람을 재판관으로 부르셨습니다. [삿3:15]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일으키셨으니 곧 베냐민 족속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특별히 에훗을 소개하는데 두 가지의 수식어가 붙습니다. 하나는 베냐민 족속이라는 것과 왼손잡이라는 것입니다. 베냐민 족속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중에 가장 규모가 작은 족속입니다. 아울러 이 에훗을 향해 왼손잡이라고 했는데, 일전에 저는 구원받은 왼손잡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면서 왼손잡이의 의미들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그것은 약하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은 교회 안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진리인데, 유능한 자가 하는 어떤 일이 드러나서 그것을 할 수 없는 약한 자들이 실족당하지 않게 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야곱이 요셉의 장자 므낫세와 차자 에브라임에게 축복하며 죽을 때, 야곱의 오른 손이 차자 에브라임에게 얹어지지 요셉이 그것을 막으려고 했던 것을 봅니다. 요셉은 그의 장자에게 아버지의 오른 손이 얹어지길 바랬던 것입니다. 이런 것들로 볼 때, 왼손이라는 것은 약한 것을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재판관으로 사용된 에훗은 적고 약한 조건들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서 이스라엘을 구해내셨습니다. 2)드보라 가나안 왕 야빈과 그 군대장관 시스라가 이스라엘을 괴롭힐 때는 주께서 여자를 이스라엘의 재판관으로 부르셨습니다. [삿4:4] 그 때에 라비돗의 아내 여대언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을 재판하더니 드보라는 유일한 여자 사사였습니다. 여자재판관이었습니다. 우리는 신약의 교회에게 주어진 명령들을 보면서 여자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삼가며 조용히 남편에게 배우라는 권고를 대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구약에 등장하는 드보라와 같은 여자 대언자는 놀라운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드보라는 한 남편의 아내였습니다. 역시 그녀는 여자였기 때문에 싸움터에서 용맹을 떨치는데는 무리였습니다. 때문에 그녀는 가나안 왕 야빈과 시스라를 물리치기 위해 혼자서 어떤 일을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납달리 족속의 바락이란 사람을 앞세워야 했습니다. 실지로 주님의 뜻을 대언하는 것은 드보라가 했지만 그 뜻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드보라는 바락을 앞장세웠습니다. 이스라엘의 재판관으로 사용된 드보라는 연약한 여자였습니다.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바락과 같은 남자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드보라를 이스라엘의 재판관으로 쓰시면서 바락을 통해 이스라엘을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서 건져내셨습니다. 3)기드온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을 섬기고 있을 때, 그들을 건지시기 위해 불려진 재판관은 기드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어떻게 고백했는가를 봅시다. [삿6:15] 기드온이 그분께 이르되, 오 내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내 가족은 므낫세 중에서 가난하며 또한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그는 그의 입장이 어떠하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는 가나한 집아에서도 가장 작은 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주께서는 그런 기드온과 아주 적은 300명의 용사로서 메뚜기같이 많은 미디안의 군사들을 다 없애버리시고 이스라엘을 건지셨습니다. 4)입다 이스라엘이 암몬 자손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부르신 재판관은 입다였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해 설명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하십니까? [삿11:1,2] 이 때에 길르앗 사람 입다는 강한 용사요, 길르앗의 창녀에게서 낳은 아들이었더라. 길르앗의 아내도 그에게 아들들을 낳았더니 그의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낯선 여인의 아들이니 우리 아버지 집에서 상속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라 그는 창녀의 아들이었습니다. 보통 서자도 아니고 창녀를 통해서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의 배다른 형제들로부터 몹시 괄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심각해서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습니다. 과연 아버지의 집에서도 쫓겨나고 어머니가 창녀였던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전날에 그들을 쫓아냈던 길르앗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그를 재판관으로 사용하셨습니다. 5)삼손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주께서는 단지파의 마노아 부부에게 찾아가셨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갖지 못한 부부였는데, 태중에서부터 나실인으로 구별될 것을 계시하면서 삼손의 출생이 고지되었습니다. 삼손은 수태하지 못하는 부부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사사기를 읽어보시면 어떤 이들에게는 자녀가 35명이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몇십명씩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그 많은 자녀를 가진 사람들의 자녀 중에서 재판관을 고르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자들을 찾아가셔서 아들이 날 것인데 그것도 나실인으로서 태중에서 구별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지금껏 설명한 왼손잡이 에훗, 여자 드보라, 창녀의 소생이었던 입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아들 기드온, 자식이 없었던 집안의 삼손이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쓰시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전1:26-2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신 것을 보라.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강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이것은 어떤 육체도 하나님의 눈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던 재판관들은 이 말씀이 사실인 것을 보여줍니다. 에훗은 가장 작은 지파의 왼손잡이였습니다. 그는 약한 존재의 상징입니다. 드보라는 육체적으로 남자와는 비교도 안되는 연약한 여자였습니다. 그녀 혼자서는 무엇을 해낼 수 없는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입다는 천하고 멸시받는 존재였습니다. 그에게 아버지로부터의 상속은 없었던 참으로 없는 존재였습니다. 기드온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가난한 집안의 막내였습니다. 그는 없고 약한 존재였습니다. 삼손도 만찬가지였습니다. 많은 아들을 가진 집안도 아니고 아들이 하나도 없던 마노아의 집안에 아들 하나를 허락하시면서 그를 재판관으로 부르신 하나님은 참으로 없는 것으로 있는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작정하신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들을 보십시오. 모두가 약한 존재였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천하게 여겨지며 멸시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을 쓰셨습니다. 오늘날 주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쓰십니까? 이와 같이 약한 존재들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고후11:30] 내가 어쩔 수없이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연약한 것과 관련 있는 것들을 자랑하리라. [고후12:5] 내가 이러한 사람에 관하여는 자랑하겠으나 내 자신에 관하여는 연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바울이 정말 자랑하고 했던 것은 자기의 유능함이나, 자기의 귀한 경험들, 자기의 성경에 대한 박식함, 자기의 재능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의 약한 것들밖에 자랑할 게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를 향해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고후12:9]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나의 강한 능력이 약한데서 완전해지기 때문이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 어떤 사람은 그가 이제껏 해온 종교적인 경험들을 큰 자랑거리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살펴온 성경에 대한 해박함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자기가 살아온 신앙연륜을 자랑거리로 생각합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을 쓰실 수가 없습니다. 그 오랜 연륜과 신앙경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아닌 약한 존재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풍부한 재력과 학식, 지식으로써 주님의 일을 도모하려고 합니다. 아마도 그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그 풍부한 재력과 학식, 지식을 소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고 무릎꿇기까지 주님은 그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 힘으로 애쓰다가 나가 떨어질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어둡고 혼탁한 시대에 주님의 재판관들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무릎꿇어야 할 것입니다. 겸손하게 주님의 자비하심과 인도하심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자주 대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속상한 사람은 아직 지켜세울 무언가가 남아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것을 몰라주는 사람들이 미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대접받고, 인정받고자 애를 쓰기보다, 나약한 존재인 내 모습 그대로 주께서 쓰시고자 한다면 드리겠다는 열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내세우고 싶은 어떤 것이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을 쓰실 수가 없습니다. 왜 주님께서는 기드온을 싸움터로 내보실 때, 3만 이천명의 군대를 300명으로 줄이셨습니까? [삿7:2] 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와 함께한 백성이 너무 많으므로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족속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대적하고 자기를 치켜세우며 말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염려함이라. 주님은 자기를 치켜세우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자기를 치켜세울 것이 남아 있는 사람은 주님께서 쓰실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 말고 치켜세울 것이 남아 있다면 아직 주님께서 쓰시기에는 멀었습니다. 가인은 그 제사가 하나님께서 받지 않는 것이 되었을 때, 심히 분하며 침통해할 정도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자기가 치켜세우고자 했던 것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아벨은 무엇입니까? 자기에게는 치켜세울 것이 없어서 대속을 의미하는 양의 희생을 준비했던 것이 아닙니까? 내가 이 정도까지 했는데 이것을 거절하시다니....가인이 만난 분함과 침통은 거기에서 온 것입니다. 저는 또 반대로 말씀드립니다. 지극히 나약한 존재라고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까? 가난하다거나, 병들었다거나, 주님 품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웠으므로 얼마나 오래 주님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없다고 느끼십니까? 나는 배우지 못했는데요? 나는 말주변이 없는데요? 나는 재능이 없는데요.... 약한 자 안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역사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 어둡고 혼탁한 시대에 주님의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로 어떤 사람들을 사용하시고자 하는데, 그들은 그리스도밖에 내세울게 없는 인간적으로 아주 약한 자들이라는 것을... 4.주님께서 재판관들을 쓰실 때 하시는 일 그러면 약하면 다 쓰시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옷니엘에게 주의 영께서 임하셨습니다(삿3:9,10). 기드온에게 주의 영께서 임하셨습니다(삿6:34). 입다에게 주의 영께서 임하셨습니다(삿11:29). 삼손에게 주의 영께서 크게 임하셨습니다(삿14:5,6,19, 15:14). 주님께서 그 약한 사람들을 사용하시기 위해 제일 먼저 무장시키는 일은 성령님이셨습니다. 주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를 주님께서 어떤 순서로 사용하셨습니까? 먼저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교회는 놀라운 일들을 감당해나갔습니다. 오늘날 주님은 우리 개인들을 어떤 순서로 사용하십니까? 믿는 자 안에 허락하신 성령님께서 먼저 충만하게 거하실 때, 비로소 그 일은 가능한 것입니다. 그 일이 있기까지 그들은 오히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철학과, 변론과 지식이 아니라, 성령님이십니다. 우리 교회가 기다려야 할 것, 우리 개인이 기다려야 할 것, 성령님이십니다. 이미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지만 우리가 그분을 거슬러 대적하므로 그분은 억눌림을 당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주님께서 우리를 쓰실 수 없습니다. [엡5:18] 술취하지 마라. 거기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 우리들 모두가 인간들이 만든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삶, 거기에 몰입되거나 푹 빠져 지내는 삶이 아니라, 성령에 취하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그런 삶이길 원합니다. 이것을 위해 매주 오후마다 다루는 성령님에 관한 공부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갖고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전도해야한다는 것을 압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화를 내기보다 용납하고 친철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왜 안되는 것입니까? 성령님께서 우리를 이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나 계획에 의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5.그들을 쓰실 때 오는 유익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사용하실 때 오는 유익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그 땅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땅에 평안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좋은대로 했던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옳은대로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약한 우리들이 성령님의 충만하심에 거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쓰시기에 좋은 일군들이 될 것이며 저희들을 통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첫 번째로,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해질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 개인이나 교회, 가정이 주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 안에서 평안하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하는 일들을 중지하고 하나님께서 무어라 하시는가에 관심가질 것이며 그 뜻을 쫓아 살기를 열망하는 시대가 주어질 것입니다. 6.결론 예수님을 구원을 주시는 분, 안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은혜와 평강을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소견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사사들의 역사는 우리 개인 안에서 성령의 역사와 같습니다. 또한 사사들의 역사는 우리 교회 안에서나 이 세상에서 믿는 자들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비록 약하지만 성령의 충만하심을 입어서 살아갈 한 사람의 재판관이 필요한 시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