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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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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와 양떼들이 받는 책망
lhyunsik

임동선 [ E-mail ] 목자와 양떼들이 받는 책망(겔34:1-6, 17-22) 목자와 양떼들이 받는 책망(겔34:1-6, 17-22) 2001.11.11 주일 오전 말씀 I.이 말씀의 배경 1.에스겔의 활동 에스겔은 유다의 멸망 시기에 활동했던 대언자 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다가 멸망할 때, 그는 다른 많은 유다인들과 함께 그발 강가로 유배되었습니다. 그발 강가는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이 정착하도록 마련된 장소였습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하나님께로부터 대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그는 유다인들을 책망하며 하나님의 심판과 앞으로 오게될 다윗 왕국, 다시 말해 천년왕국에 대해 소개하는 대언을 하였습니다. 2.우리가 오늘 관심 가지려는 부분 그 중에 오늘 우리가 관심 가지려는 부분은 유다의 멸망의 원인이 되었던 것을 살피는 것입니다. 그들이 멸망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방인들과의 연혼, 가증한 우상숭배, 윤리적인 타락, 율법을 외면한 삶 등...그러나 그 중에서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목자와 양떼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오늘날 이 교회가 받아야 할 교훈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3.목자와 양떼 사실 이 부분이 말하는 목자는 백성의 통치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양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합니다. 다윗은 본래 아버지의 양떼를 치는 목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의 목자로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대상11:2, 삼하5:2). 그리고 앞으로 오는 세상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목자로 다시 세움을 받을 것입니다(겔34:23,24). 성경은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제대로 이끌어주지 못한 왕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멸망당한 원인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목자와 양떼라 바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오늘날 교회에 적용시키려 합니다. 교회 안에 존재하는 목자와 양떼에 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만일 목자가 바로 서지 않는다면, 그리고 양떼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과 같은 결말을 교회 안에서도 맛보게 될 것입니다. II.세퍼드와 같은 목자 1.이스라엘에 존재하는 세퍼드 본문에 등장하는 목자라는 말을 "세퍼드(shepherd)"라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퍼드"란 본래 목자를 도와 양을 치는 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왕들을 세우시고 그분의 뜻을 따라 백성들을 인도하는 세퍼드가 되게 하셨습니다. 2.교회 안에 존재하는 세퍼드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우리 혼의 목자"(벧전2:25) 또는 모든 목자들의 "목자장"이시라고 말씀합니다(벧전5:4). 또한 그분을 가리켜 "양들의 큰 목자"(히13:20)라고 말씀합니다. 교회 안에 존재하는 목사라는 말은 본래 목양자, 양떼를 치는 일을 맡은 자들에 대해 주어진 것입니다. 교회 안에 존재하는 세퍼드는 다름 아니라 목사님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가 잘못되었을 때, 그 민족의 멸망이 빨리 임했던 것처럼 한 교회의 목양자들, 곧 목사들이 바로 서지 못한다면 교회는 더 이상 비전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목사님들이 얼마나 중요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를 깨닫기 바랍니다. III.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책망받는 내용 1.그들은 자기의 양떼를 먹이는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주께서 "마땅히 양떼를 먹여야 하지 아니하냐?"(겔34:2)라는 말씀을 하시며 책망하십니다. 왜 이런 책망을 하셔야 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양떼를 먹이는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먹인다는 것은 자랄 수 있도록 음식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 일을 소홀히 한다면 자라는 일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여름, 토끼를 기르는 형제님 한 분이 포도껍질을 모아다가 꼬박꼬박 토끼의 식량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먹이는 일입니다(feed). 또한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주는 것은 먹이는 일입니다. 젖을 때더라도 이유식이나 기타 다른 음식을 챙겨서 자라도록 하는 것은 먹이는 일입니다. 이 먹이는 일이 제대로 되어야지만 발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먹이는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그 중에 어떤 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화롯불에 던져 넣기도 하고 그 중에 어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대언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2.그들은 양떼에게서 갈취하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언제 그 살찐 양을 잡아먹을까?", "언제 그 털을 뽑아 옷을 해 입을까?" 그런 것에만 골몰해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잘못된 통치자, 곧 왕들은 백성이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빼앗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한 예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가로채기 위해 그 아내가 거짓증거자를 세워 나봇을 죽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봇이 죽게 되자 자연스럽게 그의 조상대대로 상속해왔던 포도원을 빼앗고 말았습니다(왕상21:1-16). 3.그들은 양떼들에게 무관심했습니다. 병들었다면 돌아보고, 아프다면 위로하며, 상한 것은 싸매주고, 쫓겨난 것은 다시 데려오며,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겔34:4] 너희가 그 병든 것을 강하게 하지 아니하고 아픈 것을 고쳐주지 아니하며 상한 것을 싸매주지 아니하고 쫓겨난 것을 다시 데려오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아니하고 오히려 폭력과 학대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중국에서 마약사범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형집행을 당한 한국인 신모씨의 사건이 한동안 언론에 큰 뉴스거리로 소개되었습니다. 중국측에서는 수차례 판결에 대한 통보를 해왔기 때문에 우리 정부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졌으면 죽음은 면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운 목소리들이 있었습니다. 뒤늦게 사건이 터지고야 정부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수습업무에 들어갔습니다. 한국에 있는 주한 미군 등, 미국인 범죄자를 보호하려는 미국정부의 의지에 비하면 한국정부의 해외에 거주하는 자국인 보호의지는 너무 약하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대하면서 주 예수님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여러분의 범죄를 합리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범죄를 저질러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범죄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이 연약해서 범죄할 때, 우리 혼의 목자이신 주 예수님은 범죄한 우리들에게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피로 사신 우리들,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주신 그분께서는 계속적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우리에게 관심가져 주십니다. 아무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게 하시며 아무도 그분의 손 안에서 우리를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분은 진실로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4.그들은 폭력과 학대로 양떼를 다스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들, 곧 통치자들, 왕이라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폭력과 학대로 그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그들의 말대로 하지 않는 자들의 가산을 몰수하며 죽이는 등, 심한 학대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직언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는 종들을 잡아 죽이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유명한 하나님의 종 엘리야는 아합왕과 그 아내 이세벨에 의해 수차례 죽을 뻔하였습니다. 5.이것이 가져온 결말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에 목자가 없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겔34:5). 그러나 과연 목자가 없었던 것입니까? 북 이스라엘 왕국에 얼마나 많은 왕들이 있었습니까? 남유다 왕국에는 또 얼마나 많은 다윗의 후예들이 왕으로 활동했습니까? 그럼에도 목자가 없었다는 말은 진실한 목자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주님과 같은 선한 목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뜻입니다. 결국, 그로 인해 양떼가 흩어졌으며 양떼가 들짐승들에게 먹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은 도처에 포로로 끌려가야 했으며 이방족속들에게 짓밟혀서 많은 이들이 죽음에 처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IV.교회 안에서 주님께 책망받는 목자 저는 이 이스라엘 중에 있었던 그릇된 목자들을 통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책망받을 수 밖에 없는 잘못된 목자의 모습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1.성도를 먹이는 일에 소홀한 목자들은 책망받습니다. 자기 성도들의 양육을 위해 골몰하지 않고 오히려 엉뚱한 일에 더 관심을 가진 목자들은 주님께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유명세를 타는 방법을 연구한다든지, 총회장이나 기타 특별한 모임에서의 감투를 추구한다든지, 아니면 말씀사역을 통해 재산을 축척하고 넉넉한 삶을 추구한다든지, 종교적인 일을 통해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을 추구하며 가는 등, 이런 것들은 책망받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목자는 말씀 연구와 묵상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본래 초대교회에서 집사와 같은 특별한 일꾼들을 세웠던 것은 목자의 일을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영양가 있는 말씀을 전하려고 하며, 그래서 성도들이 자라는 것을 추구하는 목자는 목자장이신 예수님께 많은 칭찬을 듣게 될 것입니다. 2.성도들에게서 이득을 취하는 데만 급급한 목자들은 책망받습니다. 자기의 성도가 영적으로 죽고 사는 것에는 관심 없는 목자는 책망받습니다. 이런 목자들은 자기의 성도가 배나 지옥자식이 되는 것도(마23:15)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얼마나 많이 헌금하느냐? ", 또는 "그가 얼마나 교회의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느냐?"이런 것들을 보면서 1등 성도의 비행기를 태웁니다. 진실한 목자는 어떤 일을 맡기거나 취하는 것을 우선시 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목자는 그 안에 "주님의 생명이 있는가?", "거듭났는가?", "구원받았는가?"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거듭나지 못했다면 생명을 얻도록 인도해주며 거듭났다면 그가 수고한대로 보상이 주어질 것을 가르쳐서 열심히 살아가도록 인도합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문제를 걸러뛴 채, 어떤 수고만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평생 주님을 위해 산다고 하는 그 순진한 성도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것과 다름없는 안타까운 처사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는 채, 안수집사를 하고 장로wr분을 받은 순진한 양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혼의 구원을 위해 어떻게 수고하셨는지도 명백히 알지 못한 채, 그저 교회와 목사님에게만 충성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양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목자들은 구약의 아론이나 대제사장들의 예를 들어 목사가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 중보자 역할을 한다고 속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를 거역하거나 그 목사의 요구대로 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단절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복을 상실하는 지름길이라고 설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서운 이론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아론이나 대제사장들은 모두 오늘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적한다면 하나님을 등진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의 아론이나 대제사장은 모두 그런 것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목자들의 보호막이 되고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성도인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성경은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딤전2:5] 이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기 때문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 그러므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 누가 되었든지 간에 그 자신이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제사장 또는 중보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건, 예수님을 위해 수고를 많이 하건, 상관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 하늘에서 완벽한 대제사장의 사역을 수행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넘보는 주제넘은 자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라고 하신다면 그분 안에서 모든 목사나 성도들은 다 동일하게 제사장들입니다(벧전2:5,9).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시는 특별한 제사장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목자에게 잘못하는 성도가 있어서는 안되듯, 성도들을 속이고 우롱하는 목자 역시도 주님 앞에는 합당치 않습니다. 3.성도들에게 무관심한 목자는 책망받습니다. . 제가 어떤 분께 "훌륭한 목사는 어떤 요소를 갖추어야 합니까? "라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분은 적절한 대답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대답하시기를 "첫째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목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 목사님 설교 잘하셔!'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하지만 '우리 목사님은 기도가 풍성하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만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다른 많은 것들이 부족하지만 그 중에서도 기도가 부족한 점을 시인합니다. 그분이 대답해주신 두 번째 요소는 말씀을 정확히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대로 먹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양을 치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양을 먹이는 일에 대해 소홀히 한 목자들에 대해 하나님의 책망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대답한 목사에게 있어서 중요한 세 번째 요소는 커뮤니케이션이었습니다. 저는 이 점이 오늘날 목사님들에게 아주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자기 양떼들과 교제하는 일에 담이 없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교회가 몇 천명이나 혹은 몇 만 명이 된다면 아마도 여러분이 담임목사님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든 저와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이나 전화, 방문, 직접 만남, 언제든지 저는 여러분과 만나기를 원하고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대부분 건전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목사님과 자주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모임을 통해서 자주 얼굴을 대하고 개인적으로 상담이나 성경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우리 예배당에는 기둥이 없지만 목사님이 말씀을 전할 때, 기둥 뒤에 앉는 사람들은 수상한 사람들입니다. 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양떼를 돌아보지 않는 목자, 자기 일과 편리를 위해서만 움직이는 목자는 주님께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4.왕처럼 군림하려고 하는 목자들은 책망받습니다. [히13:20]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너희 자신을 낮추어 복종하라. 이는 그들이 너희 혼을 위해 깨어 있기를 마치 자기가 회계 보고할 자인 것같이 하기 때문이니 그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성경은 분명히 교회 안에서 다스리는 자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목자들입니다. 자녀들이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듯, 성도는 목자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적절하게 조언했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 다른 결정을 했을 때, 복종하듯이 그렇게 목자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목자들은 성도들을 어떻게 양육했느냐를 놓고 주님 앞에 회계 결산을 할 것이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철저히 목자들의 다스림에 순복하는 정신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알아서는 안됩니다. 반대로 목자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벧전5:2,3]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진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기꺼운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의 상속백성 위에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떼에게 본이 되라. 성경은 군림하는 목자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교회의 모든 결정이 그 목자에게 달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신의 말이 마치 하나님의 말인 것처럼, 그 자신의 공포가 마치 절대적인 무오한 것처럼 엄포를 놓는 목자들은 그야말로 군림하는 자들이며 폭력과 학대를 행사하는 자들입니다. 목자는 조용히 양들의 소리를 들을 필요도 있습니다. 그들이 왜 울부짖는지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양들은 살피지 않고 무조건 자기 결정에 따르기를 요구하며 반대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사탄의 자식이니, 믿음이 없다느니...하면서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견을 가진 성도들에게 사랑을 가지고 이해시키며 대적하는 자세를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양을 대하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5.목자들이 당하게 될 심판 첫째는 더 이상 양떼 먹이는 일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겔34:10). 또한 그들 스스로도 더 이상 먹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교회의 목자입니다. 제가 바로 서지 않는다면 더 이상 존귀한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한 후 도리어 버림받을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까?(고전9:27) 주님께서 맡겨주신 위대한 일에서 버림받는다면 그가 주님 앞에 가서 받게 될 상은 잃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찬양대 인도자는 찬양대의 목자와 같습니다. 모두는 그분의 지휘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제 내년도에 우리는 목장모임을 운영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이 그 목장을 인도하는 세퍼드가 될 때, 성실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은 여러분들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고 내치실 수도 있으며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양떼는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V.양떼에게 주어지는 심판 1.책망받는 이스라엘의 양떼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양떼는 그 백성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목자들뿐만 아니라 양떼까지도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양떼가 책망받는 내용을 살펴보면, 그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책망받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주님은 교회를 가리켜 양무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했고,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는 등, 많은 곳에서 교회를 양무리와 연관시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2.양떼가 받은 책망의 내용 그러면 그들이 책망받았던 내용은 무엇입니까? 1)숫염소와 같은 성도들은 책망받습니다(겔34:7) 그들 중에는 숫양과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숫염소와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겔34:17). 숫양은 공격할 줄 모르고 동료들과 무리를 지어 목자의 의도대로 잘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숫염소는 그렇지 않습니다. 달린 뿔을 앞세워 들이받기를 좋아합니다. 염소는 들이받기를 좋아하는 성깔이 곱지 못한 짐승입니다. [겔34:21]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떠밀고 모든 병든 것을 너희 뿔로 밀어내어 밖으로 흩어지게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약한 자들을 학대하고 돌아보지 아니하며 자기들의 힘으로 밀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돈있는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고, 권세있는 자들은 힘없는 백성들을 유린하고, 유명한 사람들은 순진한 사람들을 속이며 염소와 같은 짓들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점을 책망하십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은 많은 약한 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우리 자신이 싫어하는 문제를 약점으로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끼리 그런 약점을 용납할 수 없어서 들이받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들이받고, 늦게 믿었다는 이유로 들이받고, 창립회원이 아니란 이유로 들이받고, 성격이 이상하다고 들이받고, 과거의 경력이 좋지 않다고 들이받고, 나와 생각이 다르며 추구하는 게 다르다고 들이받고... [약2:2-4] 만일 너희 집회에 금반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몹시 허름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화려한 옷을 입은 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그에게 이르기를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거기 서 있든지 여기 내 발받침 밑에 앉으라 하며, 너희끼리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우리끼리 차별을 두며 악한 생각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2)자기만 생각하는 성도는 책망받습니다. 자기만 살찌고 야윈 가축을 돌아보지 않는 모든 양떼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겔34:20). 자기가 먹고 남은 것도 남 주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겔34:18). 이것은 무엇입니까? 자기 배만 차면 그만 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목만 축이면 그만 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경고하셨습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끝이 가까워 올수록 자기만을 사랑하는 시대가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딤후3:1,2). 우리는 매주 나와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받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그렇게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영적으로 굶주림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형제나 자매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자 했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그들이 듣지 못한 말씀을 맛볼 수 있도록 전해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전해주려고 노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남들이야 굶든 말든 상관없어. 나만 살지면 돼..." 이것은 교회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이 사람은 다른 이들을 돌보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주님께 책망을 듣게 될 것입니다. VI.결론 저는 이 교회가 주님께서 피로 세운 교회임을 확신합니다. 이 교회가 주님 앞에 서기까지 오랫동안 순결하기를 원합니다. 이 교회는 중요한 두 그룹으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목자의 그룹이며 다른 하나는 양떼의 그룹입니다. 물론 목자나 양떼는 모두 성도임에 틀림없습니다. 목자와 양떼가 각각 자기 위치에서 바로 서있지 못하다면 이 교회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의 멸망은 여러 가지 원인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서지 못한 목자와 양떼들 때문이었습니다. 이리와 같은 사악함이 가득한 이 세대에서 양무리들은 어떻게 그 자신을 지켜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서있는 목자에 의해서입니다. 목자가 바로 설 때, 양떼들은 옳게 인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세워진 목자는 세퍼드입니다. 주인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여서 주인의 사역을 돕는 일을 할 뿐입니다. 왕도 아니며 군림하는 자도 아닙니다. 자기 몫만 챙기고 양떼들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주인에게 심한 야단을 듣게 될 것입니다. 또한 양무리 사이에서 서로를 돌아보고 챙겨주는 일이 없다면 그 모임은 비젼이 없습니다. 늘 염소처럼 들이받기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좋은 모습이 있을 수 없으며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모임을 심판하는 예를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진실로 교회를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주님께서 내 자신을 목자로 세우신 곳에서 성실해야 할 것이며, 양무리로서 함께 있는 곳에서는 서로 돌아보아야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