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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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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불신자와 결혼해서는 안되는 열가지 이유
lhyunsik

임동선 [ E-mail ] 그리스도인이 불신자와 결혼해서는 안되는 열가지 이유 그리스도인은 왜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면 안되는가?(고후6:14-16) 믿는 자라는 말의 의미 청년들은 믿는 자와 결혼을 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왜 믿는 자와 결혼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무어라 말씀하시는 지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미 믿는 자와 결혼한 분들은 진심으로 주님께 감사드리시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분들은 매우 잘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나눌 수 없다는 말씀을 굳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분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대로 가정을 위한 기본적인 바탕을 다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기초를 놓기 위해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기초를 놓아야 할 지 서로 반려자와 옥신각신하며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의 건축물을 아내나 남편과 함께 멋지게 지어 가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믿는 자끼리 하게 된 결혼에도 다소간 문제가 있습니다. 계속적인 갈등과 불화와 끝내는 이혼을 통해 파경에 이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살아가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주님께 무릎꿇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진지하게 주님의 말씀대로 가려는 마음 자세만 있다면 그 가정은 결코 깨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두 사람이 주님께 헌신하기로 한다면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할 것이며 그 가정이 주 안에서 화목하게 되는 것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기 앉아 있는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 매는 일을 시작하시지 마십시오. 아마 여러분들은 어떤 면에서 결혼 배우자로 여러 가지 조건들을 생각해보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반려자가 돈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믿지 않는 자라면 그 결혼하려는 시도는 중단하십시오. 우리 나라에도 최근 많은 부자들이 있었지만 50년을 넘기지 못하고 가문이 몰락하는 예들을 보아왔습니다. 오래가지 못할 것을 조건으로 내세우기 보다 영원을 보장해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찾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반려자가 공부 많이 한 사람이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려 들지 않고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과는 결혼계획을 갖지 마십시오. 수영할 줄도 모르는 박사가 배를 얻어 타고 강물을 건너가며 목에다 힘주면 뭐합니까?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힐 때, 그가 배운 지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비록 배운 것 없이 시골 강촌에서 살았지만 수영하며 자란 촌사람이 오히려 그 위급한 순간에는 더 대단한 몫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반려자가 외모가 걸출한 사람, 혹은 뛰어난 미모의 사람이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주님의 눈에 아름답지 않다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을 꿈꾸지도 마십시오. 벽제 화장터에서 사람들이 다 타버리고 흰 재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까?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외모의 빼어남에 속아 믿음의 사람을 택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기 바랍니다. 제가 드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신다면 한 줌 흙이 될 흰 재를 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반려자가 언변이 능한 사람이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과는 결혼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사람에게 유창하게 말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 같은 죄인이 된다면, 그가 가게 될 곳은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앞에서 능한 언변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된 마음으로 찬양해보지 않은 입술이라면 그는 아직도 절망적인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반려자가 지적으로 보이는 사람이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적으로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과 결혼하기로 하지 마십시오. 그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인데 그분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도대체 그 많은 지식이 그의 혼을 위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저는 군대에서 모든 훈련을 정말 열심히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그것이 내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지적이라 하더라도 자기 생명에 관한 것들을 진지하게 구하지 않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인 것입니다. 오히려 글은 읽지 못하더라도 복음전도자를 통해 복음을 받은 시골 할머니가 더 주님 앞에서 지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반려자가 솔직한 사람이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믿음으로 나아가 본 사실이 없는 죄인이라면 그런 사람과는 결혼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여러분의 눈에 솔직하더라도 자기가 죄인인 것을 시인할 줄 모른다면 그는 솔직하게 아닙니다.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며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을 솔직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반려자가 매사에 진지한 사람이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인생에 대해서 하나님께 신뢰를 두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과의 결혼은 보류하십시오. 그는 경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않은 사람에게 나를 맡기는 것만큼 불안한 투자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반려자가 교회에 잘 출석하는 사람이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교회만 출석했지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대해서 분명한 간증이 없는 사람은 정말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만 다니면 안전하게 생각하는데, 저는 믿는 사람을 추천하는 것이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추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교회에 다니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하지 않았으며 믿는 자와의 결혼해야 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에 다닌다 한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속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사역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완전한 구원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은 종교적인 사람이지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중고등부 시절 존경했던 청년회장님, 목사가 될 줄 알았던 어떤 선배님께서 카톨릭 교회에 다니는 자매님과 결혼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카톨릭 신자인 아내는 남편을 따라 십년을 예배당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십년째가 되던 해에 남편에게 요구하기를 "내가 당신을 위해 십년간 예배당을 다녔으니 이제는 나를 따라 성당에 다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하는 수 없이 그 아내를 따라 성당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 게 어떻게 그 십년 동안 아내의 믿음에 대해 점검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교회만 다니면 된다고 생각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여러분 제가 믿는 자라고 말하는 것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을 자주 읽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도 능숙하게 부를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원을 헤매고 다니며 기도한다고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를 많이 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하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여러분의 반려자가 될 사람이 예배당에 다니고 성경묵상도 하고, 찬양도 능숙하게 부를 줄 알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죄로부터 그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살아가기로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는 믿는 자가 아니란 뜻입니다. 믿는 척 하는 자입니다. 믿는 것처럼 보이는 자입니다. 믿음의 위선자입니다. 아무리 선교를 운운하고 거대한 사역을 말하며 주님을 위한 포부가 크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가 어떻게 자기의 모든 죄들을 용서받게 하는 지 믿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늘 죄 문제를 안고 끙끙거려야만 하는 사람은 아직 믿는 자가 아닙니다. 허울에 속지 마십시오. 포장에도 속지 마십시오. 꾸민 것들에도 속지 마십시오. 진지함에도 속지 마십시오. 그가 정말 생명이 있는가를 확인하십시오. 죄인의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는가를 확인하십시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나 심판 따위를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로 인해 겁먹지 않는 지를 확인하십시오. 죄 문제는 끝났고 오히려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는 결코 그런 사람과의 결혼을 권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제가 그런 결혼을 권장하지 않는 지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그런 결혼은 명백하게 하나님께 대해 불순종이기 때문입니다. [고후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공평하지 못한 멍에를 메지 말라. 의와 불의가 어찌 사귀겠으며 빛과 어둠이 어찌 친교를 나누겠느냐? 물론 이 말씀은 우리의 철저히 분리된 삶을 가르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많은 것에 있어서 분리를 배워야 합니다. 아울러 결혼에 있어서도 이 분리의 가르침을 따라야만 합니다. 멍에란 두 마리의 짐승에게 굴레를 씌어서 함께 가도록 하는 도구입니다. 밭갈 때 쓰는 기구입니다. 보통 여기에는 두 마리의 소를 집어넣습니다. 어찌되었든 그 멍에 아래 들어간다면 두 마리의 소는 늘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가기 싫어도 같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멍에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사람을 함께 묶는 결혼입니다. 성경은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눈에 바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평하지 않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게 된 사람이 어찌 불의한 자, 아직도 자기들의 의를 높이 주장하는 자와 함께 갈 수가 있단 말입니까? 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려는 사람이 어떻게 아직 자기의 의를 내세우려고 하는 사람, 자기를 과신하는 사람과 한 살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빛과 어둠이 사귈 수 없습니다. 친교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침실의 친밀한 친교를 빛의 자녀가 어둠의 자식과 함께 나눌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벨리알은 사탄의 다른 이름입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그 아비가 마귀입니다. 둘은 결코 조화될 수가 없습니다. 일치될 수가 없습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는 결코 한 몫을 나눌 수도 없습니다. 그들의 추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결국은 분쟁과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우상의 소굴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많은 것들이 하나님인 것처럼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믿는 자들 안에 거하고 그들 안에 거닐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 분명하게 믿지 않는 자들과는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여러분이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불순종입니다. 주께서는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드리는 것보다 주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다.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삼상15:22).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버리십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버림받은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않으면서 기도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의 할 바를 다 하지 않고 구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먼저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사람들의 기도를 쉽게 들으신다고 확신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불순종을 깨닫게 하시기도 전에 그 기도를 먼저 들어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을 먼저 깨닫게 하시며 돌이키신 후에 그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자기의 강한 의지를 따라 결혼해놓고 그 가정을 위해서 잘되기만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은 버리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은 구하는 사울왕과 같은 태도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의 결혼은 명백하게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명령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결혼은 하나님의 눈 앞에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와 손을 잡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약4:3]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 분명히 믿지 않는 자는 세상에 속한 자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져 불러내어진 사람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반대편입니다.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평생 친구로 함께 가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와 손을 잡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자는 사탄의 수하에서 다스림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엡2:2]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 행로를 따라 걸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이라. 분명히 성경은 믿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가는데, 이 세상 행로를 열어놓은 것이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 곧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와 손을 잡는 것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원수와 손을 잡을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입니까? 만일 신실한 첩보원이 이중간첩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더 이상 그에게는 어떤 일도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일을 맡기는 것은 고사하고 국가에 대한 이적행위로 인하여 엄한 죄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는 우리의 청년들이 이적행위와 같은 결혼을 하지 않기 바랍니다. 셋째,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게 내 생애를 거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롬2:4-5] 혹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함을 알지 못한 채 네가 그분의 선하심과 관대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가 네 완악함과 뉘우치지 아니하는 마음에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닥칠 진노를 네게 쌓아 올리는도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모험인 줄 아십니까? 여러분은 분명히 그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제가 죽기를 바래서 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이 누구든 그 갈 때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통해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고 배운 사람들이 마치 자기가 택한 반려자는 반드시 예수님을 영접할 때까지 죽음이 뒤로 미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인지 자기 생각을 믿는 것인지 안타깝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반려자가 구원받지 못하고 죽는다면 여러분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반려자로 인해 괴로워해야만 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보다는 하나님의 총애받는 대상을 택하십시오.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 준비하는 형제를 돕기로 하십시오. 하나님께 헌신한 아내를 돕는 배필로 맞이하십시오. 그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지 언제 꺼질지도 모르는 아주 작은 희망에 자기의 인생을 거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넷째, 그것은 잠깐 동안으로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7:26,27]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하리라. 비가 내라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집이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리라. 만일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했는데 그가 구원받지 못한 채 죽는다면 그것은 영원한 이별이 되는 것입니다. 이왕 사랑을 할라치면 영원으로 이어지는 사랑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믿지 않는 자가 여러분의 눈 앞에 죽어갈 때, 여러분은 "Bye Bye"라고 인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반려자가 여러분 보다 먼저 갈 때, 여러분은 "조금만 기다려 나 곧 갈게!"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먼저 가서 주님 품에서 쉬어. 나 곧 갈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와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영원히 헤어지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서는 언제고 다시 만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죽는다면 더 이상 만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그 사랑은 깨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집은 허물어지는 것입니다. 죽음의 폭풍우가 몰아칠 때, 사망의 비바람이 쏟아질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은 그 사랑의 집은 풍비박산이 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모래 위에 세운 집입니다.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모든 것을 세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결혼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기초로 해서 세운 결혼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불어도 심지어 죽음이 그들을 가르려 한다 하더라도 그 사랑의 집은 영원히 든든한 것입니다. 다섯째, 그것은 무거운 짐을 달고 다니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주가 빠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를 얽어매는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쓰임받기 위해서는 최대한 우리의 짐이 될만한 것들을 다 던져버려야만 합니다. [히12:1]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떨쳐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리며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따라 달리기 위해서라면 불필요한 것들은 다 내버려야만 합니다. 발목을 잡아 당기는 어떤 것도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해보십시오. 분명히 그는 내 신앙에 방해가 되면 됐지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어쨌든 그 상대편의 눈치를 보아야만 합니다. 때로는 그 상대편의 요구도 들어주어야만 합니다. 주일에 여러분은 주님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믿지 않는 반려자는 여러분에게 집에 같이 있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나와 함께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요청을 해올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 믿지 않는 자가 지혜롭게 내가 한 주는 교회에 나가 줄 테니 한 주는 나와 함께 산으로 가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한 주 나올 때 금방 변화 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그를 나오게 하기 위해 믿는 여러분이 한 주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그 사이에 여러분이 더 빨리 세속화될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거나 두 사람이 함께 믿어 주님 앞에 신실하게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보다 그것은 무거운 짐을 달게 된 것입니다. 제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보는 바로도 부부가 함께 믿는 사람이 한쪽만 믿는 사람보다도 예배당에 더 자주 옵니다. 주일 예배도 거의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쪽만 믿는 경우는 어떻습니까? 일이 많습니다. 남편이 자주 걸립니다. 현실이 이런데도 왜 믿지 않는 자와의 결혼을 쉽게 생각하시렵니까? 여섯 번째, 그것은 주님과 나의 관계를 보여주는 모형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장차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을 믿는 자들을 그분의 아내로 취하시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 준비된 혼인잔치는 믿는 자들을 아내로 삼으시는 잔치입니다. 장차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여자를 아내로 삼겠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믿는 사람을 그 신부로 취하신다는 것을 믿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믿는 남자를 우리의 남편으로 삼겠다는 것은 조만간 이 믿음을 주신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실들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기들의 삶으로는 그것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행위로는 부인합니다. 입술로만 믿는다고 합니다. 왜 가증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딛1:16]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나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하니 가증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이요, 모든 선한 일에 버림받은 자들이니라. 일곱 번째, 그것은 주님과 상관없이 어렵게 가는 길을 택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의 명령을 어겨가면서 고난의 길을 택하는 것입니까? 분명히 그것은 신앙을 위해 어려운 길입니다. 영적으로 힘든 길입니다. 고난이 수반되는 길입니다. 역경이 가득한 신앙여정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을 위해 욕먹는다면 그것보다 더 영예로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힘든 길을 택한다면 그것은 많은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을 어김으로서 오는 고난이라면 그것은 아무 영광도 보상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상한 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가치 있어 보이는 일도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그것은 주님께 먼저 묻지 않았기 때문에 만난 고난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뜻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하게 된 어려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고집 피웠기 때문에 당하게 된 힘든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벧전2:19] 사람이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고통을 견디면 그것은 감사할 일이나 너희가 너희 잘못으로 인하여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영광이 있으리요? 그러나 너희가 잘 행하고도 그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고 참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니라. 믿지 않는 자와의 결혼은 주님과 상관없이 어려운 길로 가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 그것은 가정교회를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찬송소리가 나고, 기도가 울려나길 바라신다면, 그것도 나 홀로가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그런 일들을 늘 하기 원한다면, 형제들은 믿음의 아내를 구해야만 합니다. 형제들은 가정에서 목사가 되고 아내는 집사가 되어서 자녀들을 복음으로 양육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그 자녀들을 복음으로 양육하고 싶어하지만 때때로 너무나 교회라는 틀에만 매여 사는 것이 곱게 보이지 않는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는 자녀를 재미있는 곳으로 데리고 다닐 수 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한 바가지씩 붓는 것과 한 사람은 붓고 한 사람은 퍼낸다면 어디에 물이 찰 수 있겠습니까? 가정이 기도처가 되고, 가정이 예배처가 되고 가정이 말씀을 실행하며 배우는 곳이 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믿는 자와 함께 가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아홉 번째, 그것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존경과 존중이라는 중요한 원리를 실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발견하는 원리는 남편이 아내를 존중하며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벧전3:7] 남편들아, 이와같이 너희도 지식에 따라 아내와 동거하고 그녀를 더 약한 그릇이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로 여기고 존중하라. 그리하여야 너희 기도가 방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엡5:33]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도 저마다 개별적으로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를 사랑하듯 하고 아내도 주의하여 자기 남편을 존경할지니라. 남편이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해야 존경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세상을 닮아가려고 하는데, 그리스도의 의가 아닌 자기 의를 주장하는데 그를 존경할 수 있습니까? 아내가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해야 존중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조차 방해하는데 그것을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까? 기도를 방해하고 말씀을 읽는 것을 방해하고 전도를 집어치우라고 소리치는데 그 아내의 뜻들이 존중되어야 합니까? 그 믿지 않는 아내의 뜻을 존중하겠다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겠습니까? 그러나 남편이 그리스도를 닮고자 한다면 아내는 그를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아내가 그리스도를 따라 살려고 한다면 남편은 그녀를 존중하게 될 것입니다. 열 번째, 복음전도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를 해보면 압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다 압니다. 한 사람을 구원시키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데도 어떻게 여러분은 "살아가면서 복음전해서 구원받게 하면 되지!"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구원받는 것이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입니까? 내가 마음먹은 대로 다 되는 것입니까? 내가 찍은 사람은 다 누구나 구원받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연초에 이름을 적어놓았더라도 그 열 명이 그 해에 다 구원받는 것입니까? 여러분의 능력을 과신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열어주셔야만 가능합니다. 평생 그렇게 살다가 복음을 받지 않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끝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가 너무 비관적으로 말하는 것입니까? 왜 내 남편이 될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다려줄 꺼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이 사람만큼은 구원시켜주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도 않은 여러분은 어쩌면 그렇게 뻔뻔한 기대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전도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 입만 벌리면 영혼이 구원받을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 전하기만 하면 영접할 줄 아는 사람들, 자기 뜻대로 얼마든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도를 하면서 느끼는데, 하나님께서 맘 문 열어주시지 않으면 백번 전해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구원시키려고 애쓰느라 평생을 보내느니 차라리 믿는 남편이나 아내와 함께 죽어가는 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믿지 않는 아내나 남편을 구원시키기 위해 평생을 끙끙거리느니 차라리 믿는 사람과 함께 주위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령하기 위해 수고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믿지 않는 아내나 남편은 믿는 반려자의 삶을 지켜볼 것입니다. 힘들게 할 것입니다. 요구가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틈이 보이면 그것 때문에 오히려 더 믿음에 대해 간섭하고 신앙을 방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악한 영들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것임을 왜 알지 못합니까? 그 올무로 들어가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출하겠다고 하는 것입니까? 믿음의 사람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결론 이렇게 가르쳤는데도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한다면 저는 그 결혼을 축하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안되길 바란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선택을 위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은 사람을 손뼉쳐 축하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던 사울왕에게 다시는 사무엘이 찾아가지 아니한 것처럼.... 아마, 그럴 것이다가 아닙니다. 성경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는 것은 죄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 죄입니다. 자기 생각에 끌리거나 자기 욕심에 의해서 결정된 것은 다 죄입니다. 이미 믿지 않는 자와 살게 된 사람들을 위해 한가지 더 말씀드립니다.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게 된 사람은 정직하게 자기 욕심에 의해 범한 죄를 시인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 죄 문제를 인정하고 긍휼을 바라며 나아가야만 합니다. 물론 결혼이 먼저였고 그 후에 믿게 되었다면 이 상황은 다른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지금 믿지 않는 사람과 살게 된 분들을 위해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잠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길 원한다면 평생 그 남편이나 아내를 구원하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몸을 주고 마음을 주더라도 천국의 소망을 줄 수 없다면, 그래서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저 방치하겠다면 여러분은 그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를 구원시키려면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내입니다. [벧전3:15,16a] 오직 너희 마음 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하며 선한 양심을 가지라. 첫째로, 여러분은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 그러나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여러분에게 와서 믿음에 관하여 물을 때, 담대하게 진술할 준비를 하고 그날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둘째, 그 날을 기다리되 온유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혈기를 부린다면 그 혈기의 잔상이 아주 사라지기까지 그 기회는 도망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는다고 하면서도 포악하게 굴거나 히스테리적으로 행동한다면 복음 전할 기회는 달아나는 것입니다. 늘 울상을 짓고 신경질 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기회는 뒤로 미루어지거나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유함으로 처신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세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것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변함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말로 유창하게 교회에 대해서 늘어놓고 예배당에 가자고 때 쓰는 사람보다도 조용히 그가 가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전해져올 때,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넷째,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면 선한 양심대로 사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행실이 비방받지 않는 길을 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양심대로 하지 않고 타협하고 나면, 그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는 우리가 말하는 소리를 농담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돌아서면 우리의 뒤에다 대고 "니나 잘 믿어라!"라고 비웃을 것입니다. 선한 양심만이 죄인들에게 빛을 줄 수가 있습니다. [벧전3:1] 아내들아,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것은 혹시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라도 말씀이 아니라 아내의 행실을 통하여 얻고자 함이니 바라기는 현재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와 사는 분들에게 하루 속히 부부가 함께 주님을 믿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직 결혼하지 아니한 청년들에게는 믿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명백하게 하나님의 뜻임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그 믿는 사람이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을 좋아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로 모든 죄를 용서받은 기쁨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묻히셨다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로서 유일한 구원자요, 완전한 구원자이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 믿음의 관계 위에 사랑의 집을 지으십시오. 자녀들을 낳고 주님을 위해 함께 헌신하고...그 사랑은 하늘 아버지 앞에 갈 때까지 계속 될 것이며 또한 죽음도 가를 수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애당초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고 나서 예수님을 영접하신 분들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은 꼭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주위에 있는 믿음의 청년들에게 먼저 결혼하신 분들은 믿는 자와의 결혼이 주님의 명령인 것을 확신 시켜주십시오. 2002.4.28주일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