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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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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교회에서 사역의 원동력
lhyunsik

임동선 [ E-mail ] 딤전1:14-17 주님의 교회에서 사역의 원동력 딤전1:14-17 주님의 교회에서 사역의 원동력 2002년 6월 30일 주일 오전 말씀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에 남겨진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를 감독하도록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다른 교리가 가르쳐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주님의 교회에게 있어서 다른 교리는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꾸며낸 이야기로서 논쟁을 일삼케 하는 가르침들로부터 우리는 돌아서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다른 교리가 가르쳐지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마음을 써야 할 것입니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를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실족하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이는 이같은 자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 배만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기 때문이니라"(롬16:17,18) 모든 주님의 교회에 있어서 건전한 교리는 더욱 확고해져야 하며 그것을 거스리는 다른 교리는 금해져야만 합니다. 디모데가 해야할 일의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는가? 디모데는 이 일을 위해 에베소 교회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것이 좀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리를 가르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정확하고 바르게 제시하다보면 거기에 걸려서 실족하는 사람들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수술과 같은 것이라 얼마간의 아픔과 뒷처리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명의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디모데 보다도 먼저 에베소 교회에 머물면서 그 교회의 형편과 입장을 더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먼저 있는 사람들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새로 온 사람이 나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사람들은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뽑으려 한다"고 야단을 할지도 모릅니다. 거기다가 디모데는 나이 지긋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자기보다도 연상인 사람들을 상대해야만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디모데는 자주 나는 병까지 있었습니다. 건강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일을 맡아 에베소 교회에 남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 어려운 점에도 불구하고 디모데는 그의 맡은 일을 어떠한 자세로 해야 하는가? 이러한 디모데에게 바울은 그가 맡은 사역의 가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치를 말하는데 있어서 비록 전날에는 하나님을 모독하고 핍박하고 해를 끼쳤으나 이제는 주님의 신실한 일꾼으로 쓰임받고 있는 자기를 빗대어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너에게 이 중대한 일을 시키신다면 그것은 너를 신실한 사람으로 여긴 증거다!" "만일 하나님께서 너에게 이 중대한 일을 맡기신다면 그분의 능력으로 너를 강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니, 디모데야, 걱정말고 최선을 다해 주님의 일을 하라.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라!" 이것이 바울의 권면이었습니다. 감사하는 자세로 주님의 일을 해야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바울은 그 자신이 주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풍성한 은혜였습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1:14) 그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습니다. 도대체 그 은혜가 무엇입니까? 감사할 수 밖에 없었던 주님의 은혜는 어떤 은혜인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오늘 이 본문을 통해 바울이 고백하는 것을 읽어 보십시오. 그는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딤전1:15)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15절을 통해 바울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는 한 사람의 죄인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하나님을 위한 많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했을 것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바리새 모임에 열심당원이었다 하더라도 죄로 인해 추궁을 받고 형벌의 장소로 끌려들어갔을 것입니다. 할례와 절기, 제사 등, 각종 전통을 지키며 하나님을 섬기는 열정을 드러낸다 했어도 결국은 뜨거운 불 가운데서 고통하는 혼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부분을 통해서 주고 싶은 말은 그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입고 있다. 그 은혜를 생각해봐라. 흉악한 죄인을 위해 그분이 오셨다. 그분이 오시지 않았더라면 너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와 나는 죄인이 당하는 형벌의 장소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아 마땅하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이토록 풍성한데, 디모데야, 우리 그분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 바울이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이제 영원하신 왕, 죽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딤전1:17). "이것은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친히 우리를 받아 주시는 은혜 곧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하심이라"(엡1:6) 우리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했어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한다고 우리의 모든 시간을 바쳤어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찾아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형벌의 장소로 끌려갈 죄인들인 것입니다. "이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기 때문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딤전2:5) 이 중재자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들로서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이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우리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라는 말이 좀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의 몸을 빌어서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셔서 구유에 뉘이셨던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유대땅을 밟고 다니시면서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주님의 왕국에 대해 전하신 것들이 결국은 나를 겨냥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 죄의 잔을 놓고 씨름하던 것이 죄인인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밤새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마26:39)라고 기도하시던 것이 지옥에 들어가야만 하는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유다와 병사들이 주님을 잡으러 왔을 때, 순순히 그 자신을 내어주시면서 끌려가셨던 것이 나 때문이며 거짓말을 일삼던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심문하는 대제사장이나 빌라도 총독 앞에서 마치 털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아무 대꾸 안하셨던 것이 이 다음에 그분의 흘리신 피로 나를 변호하기 위한 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병사들이 주먹으로 그분을 내려칠 때, 사람들이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을 때, 뺨을 후려칠 때, 그 모든 것을 참고 있었던 것이 나를 영원한 부끄러움에서 건져주시기 위한 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나 때문에 그렇게 참고 계셨던 것을 알고 계십니까? 사람들이 그분의 등을 날카로운 채찍으로 내려칠 때, 나의 영적 지병인 죄로부터 치료받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 채찍을 다 맞으시면서 등짝이 패이는 것을 참고 계셨던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도록 했을 때 쓰러지면서 그것을 붙잡았던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무거운 죄의 짐에서 나를 건져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까? 망치 소리가 거세게 울리면서 두꺼운 대못이 주님의 손을 꿰뚫을 때, 그것을 참으셨던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내가 저주받는 것을 원치 않으셔서 그렇게 하신 것을 알고 계십니까? 십자가에 높히 달려서 그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온갖 비난과 조소와 멸시를 벌거벗은 몸으로 당하셨던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나를 온갖 정죄와 비난으로부터 건지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아버지여 내 영을 아버지께 맡기 나이다."라고 외치신 것,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나로 하여금 더 이상 죄짐을 벗기 위해 수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죽어서 땅보다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갔다 오시고, 셋째날 무덤에 누워 계시지 않았던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 빈 무덤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던 것이 결국은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신 것이 바로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제자들과 헤어지던 날 그들에 가서 모든 족속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에 대해서 전하고 주님을 믿도록 전하라고 하신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내가 어느 땐가 반드시 이 소식을 받고 즐거워하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죄인인 내가 회개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주님은 기꺼이 이 세상에 오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분께서 지금부터 이천여년 전에 이 땅을 밟으셨던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나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나는 깨끗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더러운 존재입니다. 마음에 음심이 가득한 존재입니다. 험담과 시기가 가득한 존재입니다. 이기심과 헛된 자랑만 가득한 존재입니다. 탐심이 가득한 존재입니다. 비록 내가 그렇게 더럽혀진 인생들일지라도 주님은 나 때문에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온전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나니 내가 의로운 자를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막2:17) "이는 사람의 아들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음이라. "(눅19:10) "내가 온 것은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만큼 빅뉴스는 없습니다. 누가 이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가치를 느끼겠는가? 그것은 어설픈 죄인이 아닙니다. 선한 구석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죄인이 아닙니다. 아쉬울 것이 없는 죄인이 아닙니다. 그럭저럭 염려 없이 잘 살고 있는 죄인이 아닙니다. 동정 받는 불쌍한 죄인이 아닙니다.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다"라고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은 넘버 쓰리의 죄인들입니까? 핫바리 죄인들입니까? 아니면 왕초 죄인들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들이 가벼운 것입니까? 내 죄 때문에 거룩하고 흠없는 분이 죽어야 했다면 여러분은 별로 심각하지 않는 죄인들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찾아오실 정도였다면 그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실 필요까지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죄는 그렇게 크지 않은 하찮은 종류의 것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죄인들 중에 우두머리입니다. 문제는 이 우두머리라고 여기지 못하는 죄인들입니다. 그들은 구원받기도 어려울 뿐만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은혜의 가치도 모릅니다. 주님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50년을 남부러울 게 없이 살았다해도 우두머리 죄인이 아닌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며 끝내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젊은 날 아무리 그 자신의 능력을 세간의 사람들에게 입증해보였어도 우두머리 죄인이 아닌 대충죄인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며 지옥에서 떨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입모아 부러워하는 존재라 하여도 우두머리 죄인이 아닌 어설픈 죄인은 결국 뜨거운 불 가운데서 고통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직하게 시인하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죄 때문에 죽었는데, 그 죄가 작단 말입니까? 왜 사람들이 이 풍성한 주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가? 사람들이 이 풍성한 주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고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헌물로 삼으신 것이라."(요일4:10)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요3:16-1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롬5:8) 하나님께서는 아들 하나님을 희생시켜서라도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자 하셨습니다. 아들 하나님은 하나님 그 자신입니다. 그 자신보다도 우리를 더 사랑하셨다는 뜻입니다. 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믿게 될 때, 그는 이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두머리 죄인들이라고 여기신 분들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1:14)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서 의로 간주하시는 인간의 믿음이 만나는 곳은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면 어떤 죄인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면 어떤 죄인도 정죄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면 어떤 죄인에게도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라면 과거의 흉악한 우두머리 죄인이라도 주님을 위한 신실한 사역자로 세워질 수가 있습니다. 결론 지금 바울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인들인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찬양하는 마음으로 수고하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들을 죄에서 건지시려고 오신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들이 머뭇거리거나 인색해하거나 계산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라면 구원받은 우두머리 죄인들은 명령을 받들어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있는 자들로 하여금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15)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어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하나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2:14) "이는 우리가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된 자들이기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이 일들을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안다면 우리가 그리스도께로부터 부여받은 사역을 하는데 찬양하는 마음으로 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