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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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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교회 안에 필요한 본보기
lhyunsik

임동선 [ E-mail ] 딤전1:14-17 주님의 교회 안에 필요한 본보기 딤전1:14-17 주님의 교회 안에 필요한 본보기 1.디모데 전서의 주제는 무엇인가? 디모데전서가 어떤 책인지를 밝혀주는 핵심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디모데전서 3장 15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게 하려 하노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3:15).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해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처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넘치는 하나님의 교회이지만 거기에는 어떤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의 행동을 하더라도 우리의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리가 있습니다. 바울은 선배 사역자로서 후배 사역자인 디모데에게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어떻게 처신 해야할지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2.왜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에 남아야 했습니까? 이런 것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던 것은 어린 나이에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감독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특별한 임무를 부여해서 디모데로 하여금 에베소 교회에 남게 했습니다. 그 특별한 임무란 에베소 교회를 바른 교리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 뿐만 아니라 모든 주님의 교회에 있어서 바른 교리로 무장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미국의 많은 침례성도들은 그다지 교리에 대해 다루지 않습니다. 그들은 생활을 강조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그들은 신앙이 전수되어져 내려오는 오랜 시간 동안 성경교리를 정리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교회는 다릅니다. 이단이 아주 많이 생기는 것을 보십시오. 또 거기에 현혹되어 넘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십시오. 그런 것만 보더라도 이 땅의 교회들이 얼마나 교리적으로 빈약한가를 느끼게 해줍니다. 오늘 우리가 "나의 믿음을 내 행위로 네게 보여주겠다고 하는 것"은 진실한 믿음을 생활 속에서 입증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활을 강조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바르지 않은 교리 안에 머무르고 있다면 어떤 생활의 열매가 있다하더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자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3.디모데는 이 일을 어떤 자세로 임해야 했습니까? 감사함으로 해야만 했습니다. 주님의 사역자가 된 사람들이 주님의 일을 하는 자세는 그것입니다. 상황과 조건이 어렵더라도 주님께서 맡기신 것은 감사함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어려운 실정이라도 우리가 주님을 일을 맡게 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신실한 자로 여기신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를 능하게 하시어 사용하신다는 뜻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주님을 대적하던 우리를 주님께서 쓰시려 한다면 우리는 주님께 감사하고 황공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입니다. 4.디모데가 사역하는 데 있어서 동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일을 하다가 지치고 힘들 때면 우리는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중에서 최고입니다. 사실 이 은혜의 풍성함은 아무나 깨닫지 못합니다. 그 자신을 죄인들 중에 우두머리라고 여긴 사람만이 이 은혜의 풍성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이었습니까?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습니다. 얼마나 그 죄가 끔찍한 것이었는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죽으셨습니다. 그래야지만 우리의 죄가 해결되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죄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 중에 우두머리만이 이 놀라운 가치를 발견합니다. 5.심히 오래 참으시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죄인들 중에 우두머리로서 인생을 마감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술먹으며 개걸스럽게 보내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병으로 이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면 나는 고통에 취해있는 자신을 발견한 채 어두 컴컴한 곳에서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내 딴에는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했지만 만일 내가 복음을 알지 못한 채 인생의 마지막을 당했다면 그 이후로 나는 하나님의 집 밖에서 쫓겨난 것을 발견하게 되어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내가 만일 예수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며 욕하며 살다가 인생을 정리하게 되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심한 정죄를 받고 지옥의 불 길 가운데서 고통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두머리 죄인이 죽음에 이르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이런 우두머리 죄인이 인생을 마감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었습니다. 또 덤으로 주님을 위해 살날들을 얻은 것 역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사신 것이 분명하다면 나는 이제 주님을 위해 살아야만 합니다. 평소에 돈버는 일에만 관심을 갖고 자식들을 챙기며 자기 일에만 골몰하다가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와 안정을 확보한 후에 부모님을 돌아보려고 하는데, 이미 때 늦은 것을 발견하고 후회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다 갚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이만한 모습이 있기까지 그 삶을 희생시키신 부모님들을 위해 살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감사할 일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철이 들었지만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부모님들이 이미 고인이 되어 어떻게 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인 것을 한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상에서 겨우 주님을 영접한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만일 조금만 더 생명을 부지한다면 주님을 위해 살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런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질 줄 알았건만 끝내 병상에서 주님의 부름을 받고 떠나갑니다. 주님을 섬길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런 분들이 구원된 것만도 천만 다행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위해 일한 날을 갖지 못했으므로 주님을 만나려고 섰을 때, 많은 아쉬움들을 갖게 될 것입니다. "조금 더 일찍 회개하여 주님을 믿고 주님을 위해 살아갈 것을...." 때문에 성경은 청년들에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함께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오 청년이여, 네 젊은 때를 기뻐하라. 네 젊은 시절에 네 마음으로 하여금 너를 기쁘게 하여 네 마음이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걸으라. 그러나 이 모든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이끄실 줄 알라. 그러므로 슬픔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육체에서 물러가게 할지니 이는 어릴 때와 젊을 때가 다 헛된 것이기 때문이니라. 이제 너는 젊은 시절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재난의 날들이 이르기 전에 혹은 네가 말하기를, 나는 아무 낙이 없다, 하는 해들이 가까이 이르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기 전에 혹은 비가 온 뒤에 구름들이 되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11:9-12:2) 장년들에게는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함께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하셨은즉 그와 같이 너희도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 이는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한 자가 이미 죄를 그쳤기 때문이라. 그런즉 그는 자기 육체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사람들의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리라. 이는 우리가 색욕과 정욕과 과음과 환락과 연회와 가증한 우상숭배 속에서 걸어 이방인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행한 것이 우리 삶의 지나간 때로 족하기 때문이라"(벧전4:1-3) 아직도 구원받지 못했으나 인생을 마감하지 않은 분들은 주께서 구원받을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만일 이런 순간이 오기도 전에 우리의 인생이 끝났더라면 우리는 영원히 노래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비명과 아우성을 치며 소리를 지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죄인들이 끌려가 당하게 될 끔찍한 형벌의 장소에서... 구원은 받았지만 주님을 위해 살지 못했다고 느끼는 분들은 주님께서 이제부터 주님을 위해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에 대해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기 위해 살아간다면, 우리는 결국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자들이 될 것입니다. 6.왜 주님께서 긍휼을 주시는가?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떤 목적으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실까요? 이 말은 다시 말해 "왜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오래 참으시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분명 수없이 많은 잘못들을 반복하는 우리들인데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우리를 치시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래 참으심이라는 것을 배우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죄들을 반복하며 하나님을 떠나 사는데도 그리스도의 오래참으심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왜 이렇게 그리스도의 오래참으심이라는 특별한 긍휼을 사람들에게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나를 하나의 패턴(본)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본보기가 되게 하고자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7.누구에게 본이 필요합니까? 본이라는 것은 뒤에 올 자들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자식들에게 전수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더 이상 집 안에서 자식들에게 무언가 신앙의 본을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집안에서 찬송을 부를 필요도, 기도를 드릴 필요도, 성경을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된 마음으로 우리의 신앙이 자녀들에게도 전해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집 안에서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녀들은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신앙에 대해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부모님들이 기도하면 "아멘"이라고 소리를 합니다. 우리를 통해 누군가가 구원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굳이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진실된 마음으로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싶다면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통로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본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 새신자가 생겨나는 것을 꿈꾸지 않는다면 본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새로 나온 신자가 주일예배에 자주 빠지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먼저 빠지시면 됩니다. 새로 나온 신자가 수요일에 한번도 안오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먼저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새로 나온 신자가 항상 모임에 지각하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먼저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새로 나온 신자가 이 여름에 나시를 입고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예배드리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먼저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우리에겐 분명히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자유조차도 그리스도를 위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까? 또 성도들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내 멋대로 해도 되는 그런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늘 누군가를 의식하면서 삽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고 또 다른 성도들, 내지는 우리보다 연약한 어떤 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내게 적법(適法)하나 모든 것이 적절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적법하나 모든 것이 남을 세워 주는 것은 아니니"(고전10:23) "모든 것이 내게 적법하나 모든 것이 적절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적법하나 내가 어떤 권능에도 매이지 아니하리라."(고전6:23) 남을 세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래서 나를 통해 다른 성도가 더 혼돈 가운데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분명히 적절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너희의 이 자유가 약한 자들에게 결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8:9)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신앙은 아주 유치한 단계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본보이기 원해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하는 행동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나중 된 자들의 본보기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가 왜 긍휼하심을 입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을 믿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될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1:16). 바울은 다른데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도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고전11:1)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는 말은 위험합니다. 모든 옳지 않은 일들을 합리화하는 그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내 자신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약하다. 어쩔 수 없다.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봐라."라는 그 말은 꼭 "나는 이대로 살테니까 너는 하나님이나 보라"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마귀는 그럴듯한 말로서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는 사실을 내던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평가하는 기준은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닮았느냐?"입니다. 우리는 그런 식의 변명을 하지 말고 정직하게 "내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좋은 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편지" 또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혹은 "맛을 내는 소금" 또는 "세상을 밝히는 빛"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이 세상이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의 편지를 읽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맛을 느끼며,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따로, 우리 따로의 신앙은 바르지 않습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갖 행실에서 거룩할지니"(벧전1: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1:16) "그러므로 너희는 사랑스런 자녀로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되고..."(엡5:1)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마5:48)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8.위선과 본보기의 차이 위선과 본보기는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행동으로서 그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그래서 그 자신에게 영광이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행동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려는 것이 있다면,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려는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본보기라는 것입니다. 9.누가 본을 보여야 합니까? 목양자들에게 주어진 사역 중에 하나가 본보기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상속 백성 위에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3). 바닷가의 게 이야기를 아시지요? 게 가족이 나들이를 가는데 자식들이 자꾸만 옆으로 걷습니다. 화가 난 엄마가 똑바로 걷지 못하냐고 큰 소리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 자신도 옆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본보기도 보이지 못하면서 큰소리만 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본, 말씀을 묵상하는 본, 전도하는 본...목양자들의 삶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점에 있어서 많은 부담을 느낍니다. 신앙이 자라기를 원하는 사람은 본보기에 도전하십시오. 무언가 하나의 패턴을 남기도록 애쓰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델이 되십시오. 본보기 삶은 신앙이 성숙해간다는 의미입니다. 어린 사람보고 아버지의 본이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자가 이제 막 거듭난 자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목양자가 성도들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여기에 더 많이 생기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본보기 삶으로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본보기가 결여된 교회는 비전이 없습니다. 한 번의 본보기는 열마디의 충고보다도 더 큰 효과를 낼 수가 있습니다. 본보기가 없는 충고는 오히려 마음을 상하게 할 뿐입니다. 내 말은 본보기 말인가? 내 베품은 본보기 베품인가? 내 생활은 본보기 생활인가? "만일 누가 말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섬기려거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것은 모든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분께 찬양과 통치가 영원 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벧전4:10,11)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 자신에게 긍휼을 베푸셨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내게 오래 참으셨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믿게 될 사람들의 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0.왜 바울이 이 글을 디모데에게 썼습니까? 그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스스로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본보기가 되기 위해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실지로 바울은 디모데의 본보기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권면합니다. "에베소 교회 안에서 훌륭한 본보기가 되라!" 본보기로서 사역하는 목양자는 훌륭한 목양자입니다. 본보기로서 가정을 다스리는 아버지나 어머니는 훌륭한 부모입니다. 본보기로서 가르치는 선생님은 훌륭한 선생님입니다. 아무리 말로는 능수능란하게 잘 가르치지만 본이 되지 않는 교사는 생명력 있는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11.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적용) 하나님의 긍휼을 안다면 이제부터 본보기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본보기가 되지 않는다면 새신자가 온들 소용이 없습니다. 진실로 영혼구원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본보기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신앙습관이 하나의 본이 될 때, 그 사람은 그것으로 주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입술로만 노래해도 내가 본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찬양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영원하신 왕 곧 죽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아멘)(딤전1:17) 습관적을 주일 예배를 가볍게 여기며 빠져 보십시오. 새로온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배우게 됩니다. 정말 여러분이 교회를 사랑하고 후배 성도들을 사랑한다면 함부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습관적으로 예배 시간에 늦는 것은 좋은 본이 아닙니다. 습관적으로 예배 시간에 자는 것은 좋은 본이 아닙니다. 습관적으로 함부로 말하고 지키지도 못할 말은 함부로 약속하는 것은 좋은 본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이 본이 되지 못했다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주님을 찬양하기 원한다면 본보기 삶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싶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었다고 확신한다면,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오래 참아주셨다고 믿는다면 이제부터는 본보기 삶을 살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인천생명침례교회가 부흥되고 죄에서 회개하고 주님을 믿게 된 새신자들이 많아지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본보기로서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막 교회에 오신 분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오는 것만도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들에게 믿음의 본이 필요합니다. 위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긍휼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줄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 행위로 내 믿음을 네게 보여주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본보기 인생만이 그것을 실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