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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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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 여자들의 처신
lhyunsik

임동선 [ E-mail ] 딤전2:11-15 교회 안에서 여자들의 처신 딤전2:11-15 교회 안에서 여자들의 처신 1.내면과 일치하는 겉모습 속 중심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만 그런 것처럼 꾸미는 것을 위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보시지 않으십니다. 때문에 외모로만 그 자신을 꾸미려는 것은 분명히 문제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속 중심에 주님을 모셨다고 하면서도 주님을 모신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 역시 문제입니다. 주님을 모시기만 하면 되었지 생활이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 그래서 무엇을 보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무엇을 즐기든지, 어떤 옷을 입든지 큰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위험한 태도입니다. 우리를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요,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믿는다면 우리는 함부로 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서 한 행동이지만,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한 행동이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며 다른 사람의 지각을 흐리는 것이 된다면 한번쯤 주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이 문제는 많은 고민을 하는 부분입니다. 지난 주에 저는 여자가 입어야 할 옷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 디모데 전서 2장 9절이 말하는 "단정한 옷으로 자기를 꾸미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타스톨레라고 해서 "아래까지 길게 흐르듯이 드리워진 옷"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꼭 죄이는 청바지라면 그것은 카타스톨레가 아닙니다. 또 하체의 곡선을 그대로 부각시키는 스판이라면 역시 카타스톨레가 아닙니다. 미니스커트는 어떻습니까? 그것도 역시 카타스톨레는 아닙니다. 구약성경에는 이미 여자들이 치마를 입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시대의 남자들이 입는 옷을 스톨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브리치라고 하는 바지와 함께 위에 걸치는 스톨, 거들이라고 하는 벨트로 구성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허리를 동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여러분에게 설명 드렸습니다. 물론 오늘날 그 같은 형태로 옷을 입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남자가 여자에게 속한 옷을 입지 말고 여자가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신22:5).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옷에 구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화장실 안내 표지판에서도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고, 우리 조상들의 옷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성경에서도 치마가 여성을 위한 옷이며 바지가 남성을 위한 옷이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의 분위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디모데를 향해서 어떻게 여자가 그 자신을 꾸며야 하는지를 일러 준 것입니다. 에베소에는 "아데미", 혹은 라틴어로 "다이아나"라는 여신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 신전을 중심으로 많은 창녀들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장식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금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그 자신을 꾸몄습니다. 그리고 신전에 숭배하러 온 많은 여행자들을 유혹하며 몸파는 일로 하루하루를 지냈습니다. 만일 교회에 안에 있는 여자들에게 옷차림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고 그녀들이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한다면 그 에베소 교회는 당장 그 곳에서 유행하는 여자들, 곧 창녀들이 즐겨하는 복장이라도 거침없이 들어올 판이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으며 "이 세상과 동화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세상 자체가 죄는 아니더라도 죄를 장려하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주의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옷을 고르는 것에 대해 한번쯤 고민이 되었다면 그래도 소망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여자의 처신에 관한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교회 안에 있는 여자에게 금해진 두 가지 교회 안에서 공중예배를 드리게 될 경우, 여자에게 금해진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가르치는 것(to teach)이며 또 다른 하나는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to usurp authority over the man)입니다. 여자가 남자들을 가르치는 것이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어떠한 경우에도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어떤 교사들의 가르침입니다. 그런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여자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여권신장을 부르짖는데, 교회라고 그렇게 못하란 법있냐?"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들은 성경의 여기저기서 여자들이 활동했었던 예를 들어 말합니다. 특히 여자들도 대언자였다는 것입니다. 대언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님의 감동하심 아래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 안에는 경고, 책망, 위로, 예언 등이 있습니다. 복음전도자였던 빌립에게는 처녀 딸 넷이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대언을 하였습니다(행21:9). 예수님께서 나실 즈음에 활동했던 아셀지파에 속한 바누엘의 딸 안나도 역시 대언자였습니다. 그녀는 구속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대언하였습니다(눅2:36). 그런 관습으로 인해 고린도 교회 안에서도 대언하는 여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고전11:5). 고린도에는 델피라는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 신전에는 여자 사제들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교도를 숭배하는 그 자리에서 여자들은 사제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또한 음란한 일들의 주범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영향이 고린도 교회 안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여자들이 대언을 한다고 설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대언을 하는 것은 주님의 교회 안에서 결코 권장되거나 칭찬 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자가 머리를 덮지 않고 기도하거나 대언하는 것 자체가 자기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11:5). 여자의 머리는 남자(고전11:3)라고 했습니다. 머리를 덮는다는 것은 남자의 권위에 순복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자는 자기들의 머리에 권능을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고전11:10). 만일 여자가 남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교회 안에서 함부로 대언을 한다면 그것은 자기 남편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더 정확하게 고린도 교회를 향해 다음과 같이 써야했습니다. "너희의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잠잠할지니 이는 주께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고 또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여자들은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았음이라. 여자들이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이는 여자들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이 수치스런 일이기 때문이니라."(고전14:34,35) 이 말씀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자들을 향해 벙어리가 되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교제를 위한 대화는 충분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나서서 이러쿵 저러쿵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모르면 자기 남편을 통해서 배워야 하지, 자기의 모르는 것을 정당화시키면서 교회 안을 어지럽히는 말들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율법에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교회에게 주는 명령이기도 했습니다.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주님께서 여자들이 교회 안에서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또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된다고 했습니다. 3.여자가 교회 안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허락된 부분 그러나 여자는 교회 안에서 전혀 가르칠 수가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1)연로한 여자는 젊은 여자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연로한 여자들도 이와 같이 거룩함에 합당하게 처신하도록 하며 거짓으로 비난하지 말고 자기를 많은 술에 내어주지 말며 선한 것들을 가르치는 자가 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젊은 여자들을 가르쳐서 맑은 정신을 가지며 자기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고 신중하며 정숙하고 가정을 지키며 선하고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2:3-5) 이 말씀에서 보듯이 연로한 여자는 젊은 여자를 가르칠 수가 있었습니다. 젊은 여자로 하여금 가정에 충실하도록 가르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연로한 자매님들이 가정이나 삶에 대해 가르칠 때, 젊으신 자매님들은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같은 자매라 하여 연로한 분들에 대해 함부로 행동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2)그리스도인 여자는 그녀의 자녀들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여자가 가르칠 수 있는 경우는 자기의 어린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녀의 가정에서 자녀들을 신앙으로 바르게 가르치는 역할이 여자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네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이 있음을 회상하노니 이 믿음은 먼저 네 할머니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으며 이제 네 속에도 있는 줄을 내가 확신하노라"(딤후1:5). 디모데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가 에베소 교회의 감독으로 세우심을 입기까지 그는 그의 가정에서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던 것입니다. 이 훌륭한 신앙 가르침이 있었기에 디모데라는 훌륭한 사역자가 생겨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디모데가 어린 아이 때부터 성경을 가르치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딤후3:14,15). 나는 자매님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기의 자녀들을 바르게 인도해줄 수 있는 성경교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자녀를 양육하는 경험이 있는 자매님들이 교회 안에서 어린이 주일학교나 중고등부의 교사로는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그것은 전혀 틀린 것이 아닙니다. 3)그리스도인 여자는 아직 회심하지 않는 남자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남자를 주관하려는 식의 가르침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면 예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아직 제대로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면 여자라도 그들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복음을 전하는 차원으로 이해해야 할 일입니다. 요한의 침례만 받았던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길을 더욱 완전하게 풀어 설명해준 사람은 아굴라와 그 아내 브리스 길라였습니다(행18:24-26). 그런 것들 외에 여자는 항상 교회 안에서 조용해야 했으며 교회가 요청하는 어떤 일들을 지키거나 돕는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4.그러면 왜 이같은 일들이 여자에게는 금해졌는가? 1)창조의 질서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그 뒤에 이브가 지음을 받았으며"(딤전2:13)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그 다음은 이브였습니다. 처음 여자를 이브라고 부른 것도 아담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브의 이름을 지어준 것도 아담이란 뜻입니다(창3:20). 아담 시대에 아담과 이브 말고도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들 중에 아담의 후예가 아닌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아담이 첫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창3:20)을 자세히 보십시오. 이브는 모든 살아있는 자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living)였습니다. 그 당시의 모든 사람은 이브를 통해 존재하게 되었단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브를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브의 머리는 확실히 아담이었습니다. 창조의 질서에 의해서 그렇게 정해진 것입니다. 그 이후로, 지금껏 모든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순복해야만 하는 위치를 갖는 것입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고통과 수태를 크게 더하리니 네가 고통 중에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의 욕망이 네 남편에게 있으리니 그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he shall rule over thee)"(창3:16) 하나님은 이브에게 그 남편의 다스림 아래 들어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온당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교회 안에서도 이 원리는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아내들아, 너희 자신을 낮추어 남편에게 복종하기(submit yourselves unto your husbands)를 주께 하듯 하라."(엡5:22). "아내들아, 너희 자신을 낮추어 남편에게 복종하라(submit yourselves unto your husbands). 이것이 주 안에서 합당하니라"(골3:18) "옛적에 하나님을 신뢰한 거룩한 여자들도 이런 방식으로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여(being in subjection unto their husbands) 자기를 단장하였음이라"(벧전3:5) 부부관계에 있어서 남편이 권위자로 세움을 입게 된 것입니다. 권위란 그것이 계급은 아니라 하더라도 존중되어야 하며 또한 권위자를 향해 복종이 요구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권위자는 그에게 주어진 권위로 권위에 순복하는 자들을 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옛적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신실한 자매들은 자기 남편을 권위자로 알고 존중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창조되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창조되었음이라"(고전11:8,9) 하나님께서는 이브를 만드실 때, 아담을 돕는 자로 만드셨습니다(창2:18). 남자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형상이기 때문에 기도를 할 때에 라든지 대언을 할 때에 그 머리를 덮지 않습니다(고전11:7). 모든 남자들이 간혹 모자를 쓴다 하더라도 기도할 때는 벗어야 합니다. 그 자신의 머리를 덮는 것은 자기 머리인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고전11:4).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머리로 하고 그 남자를 드러내는 것이 주된 삶의 자세입니다. 머리를 덮지 않고 기도하거나 대언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녀는 그 머리인 남편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고전11:5). 그러나 만일 여자에게 긴머리가 있다면 그것은 그 머리를 덮는 것 대신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남자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고전11:15). 만일 여자의 머리가 짧다면 그것은 그 자신에게 수치가 되는 것입니다(고전11:6). 남자의 권위를 무시하고 스스로 남자와 같게 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 머리를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질서에 의해서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며 권위 행사자입니다. 다른 사람의 권위 아래 있는 여자가 다른 권위자들, 곧 다른 여자들의 남편들을 주관하며 그들을 가르치거나 그들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무질서입니다. 오직 여자는 자기 남편에게 배우며 조용하면 아름다운 것입니다. 분명히 감독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했습니다(딤전3:2). 그는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남자이어야 합니다(딤전3:5). 집안을 다스리는 권한이 그 남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집안을 잘 다스린 남자가 주님의 교회도 돌아볼 수 있다고 권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선명하게 있는데 여자가 한 교회에서 권위자와 머리역할을 하려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대한 무지이며 무질서를 조장하는 지름길입니다. 분명히 처음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에서 남자는 권위자로 설정되었고 여자는 돕는 자로서 설정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2)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위치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해보고자 하는 문제는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자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담이 속지 아니하고 여자가 속아 범죄 가운데 있었음이라."(딤전2:14) 왜 여자가 속아 범죄할 수밖에 없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이 아담이었기 때문입니다. 뱀이 여자를 유혹했던 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동산 나무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해 어느 정도 대답은 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가 아담으로부터 전해들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단지 이것이 추측이 아닌 것이, 그녀는 뱀이 물었을 때, 몇 가지에 대해 대답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에 관한 금령은 아담이 받았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을 것임이라, 하시니라."(창2:16,17) 우리가 이 말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하나님은 처음에 그 말씀을 남자에게 주셨고 그 남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키지 못하도록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이브였습니다. 3)여자는 더 약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여자는 마귀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마귀가 유혹할 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뱀이 남자를 유혹하지 않고 여자를 유혹한 것을 보십시오. 그것은 여자가 더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여자가 다 약하다고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잔다르크도 있고, 엘리자베스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만드실 때, 여자로 하여금 남자의 보호아래 있게 했습니다. 여자는 그래서 약한 존재, 보호가 필요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공급이 남편으로부터 필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때문에 어떻게 다른 이들를 지키며 그들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특히 다른 사람의 아내인 여자가 그래서 한 남자의 보호 아래 있는 여자가 어떻게 다른 남자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목양자는 성도들의 보호자와도 같은 것입니다. 물론 서로 돕는 역할은 할 수 있다하더라도 책임과 보호를 하는 권위자의 위치에는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너희도 지식에 따라 아내와 동거하고 그녀를 더 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로 여기고 존중하라. 그리하여야 너희 기도가 방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벧전3:8) 성경은 알고 있습니다. 여자가 유혹받기 쉽다는 것을...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여도 자기 생각이나 어떤 의견들을 가감하므로 넘어지기 쉽다는 것을...그러한 연약한 그릇이 다른 남자들의 권위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도 교회 안에서...? 뱀에게 속아 범죄한 것이 누구입니까? 여자입니다. 비록 여자가 이렇게 약하고 범죄 가운데 있다하더라도 그들이 맑은 정신으로 주님을 믿고 사랑과 거룩함 가운데 거한다면 그녀들이 구원받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딤전3:15). 그러나 어쨌든 주님의 교회 안에서 여자는 남자의 권위 아래 있는 것이었습니다. 4)여자 목사들에 대한 평가 그러므로 모든 여자 목사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종"이 아니라 "자기들 스스로 되어진 종"이 분명합니다. 모든 여자 목사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권위에 대해서 하나도 알지 못합니다. 모든 여자 목사들은 가정의 질서와 교회의 질서도 잘 모르는 것입니다. 모든 여자 목사들은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중적인 자와 같습니다. 모든 여자 목사들은 그들 스스로 상받을 수 없는 허망함 속에 빠져 있으면서 성도들에게 보상을 위해 달리라고 말하는 공허한 자들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 스스로 법대로 경주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법대로 경주하라고 주문할 수 있단 말입니까? 5. 바울은 왜 이런 권고를 디모데에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젊은 여자들이 결혼해서 자녀들을 낳고 가정을 지키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딤전5:14) 결혼해서, 자녀를 낳는 것, 그리고 그 가정의 안주인으로서 가정을 지켜가는 것,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처럼 여자는 교회 안에서 잠잠하며, 다른 남자들을 가르치거나 주관하려 들어서도 안되며, 조용히 자기 남편에게 배우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왜 이것을 에베소 교회에 가르치고 있습니까? 그것은 에베소 교회 안에 있는 어떤 여자들에게 그들의 단정함과 교회 안에서의 처신에 대해 가르칠 필요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님의 교회인 우리 교회가 성경이 가르쳐주는 원리들을 무시하지 않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 바랍니다. 구약에 드보라가 여자 사사였고, 이따금씩 여 대언자들이 등장한다하더라도, 또 어떤 교회에서 대언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주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여자가 말하는 것이나 가르치는 것, 권위를 행사하는 것에 대해 분명히 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전에 활동하던 여대언자들은 특별한 경우였거나 아니면 스스로 그렇게 행동한 것으로밖에 보여지지 않는단 말입니다. 2002년 8월 4일 주일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