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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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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 목사의 처신
lhyunsik

임동선 [ E-mail ] 딤전3:1-8 교회 안에서 목사의 처신 딤전3:1-8 교회 안에서 목사의 처신에 대해 1.신약교회 안에 있는 두가지 직분 사도 시대의 교회에서 성도들 가운데는 오직 두 가지의 직분만 있었습니다. 그것은 감독, 혹은 장로라고 불려지는 목사와 집사였습니다. "...빌립보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1:1) 만일 여기에 감독과 목사, 혹은 장로가 다른 직분이라면 "빌립보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 또한 감독들과 목사들과 장로들과 집사들과 권사들과 권찰들과...."뭐,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2.목사, 장로, 감독의 의미에 대하여 신약 성경은 목사와 감독, 장로가 동일한 직분을 말하고 있음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목사라는 말은 "목양하고 가르친다"는 뜻이 있습니다. 에베소 4장 11절이 말하는 "pastor and teacher"는 목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감독이라는 말은 "위에서 보다(overseer)"라는 뜻이 있습니다. 일을 관리하고 진행하는 사람들을 총칭 "감독자(the bishops, overseer)"라고 합니다. 한 지역교회 안에는 여러 명의 감독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지역교회 안에서 교회의 전반적인 부분을 총 관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감독(A bishop)"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디모데에게 이런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디모데는 에베소의 첫 번째 감독이었습니다. 장로라는 말은 "연장자(elder)"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육신적인 개념에서의 나이에 따라 말하는 호칭이 아닙니다. 디모데는 장로회에서 안수받은 장로였습니다. 그의 나이는 상관없습니다. 육으로 난 것을 가지고 영적인 것을 평가하려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영적인 면에서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본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그런 본이 되는 사람을 목양을 위해 세울 수가 있습니다. 3.최초의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 신약교회에서 최초 목사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목양자이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poiman)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주거니와"(요10:11) 물론 여기서 "목자"에 해당하는 단어가 흠정역에 "shepherd"로 번역되어 있지만 이 말은 에베소서 4장에 나오는 "pastor"와 같은 헬라어 원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위대한 "pastor" 였습니다. 그것을 알았기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리켜 "목자장(the chief Shepherd)"이라고 말했습니다(벧전5:4). 히브리서를 기록한 성도는 예수님을 가리켜 "양들의 큰 목자(great shepherd of the sheep)"라고 증거했습니다(히13:20).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우리의 혼의 목자와 감독"(the Shepherd and Bishop)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벧전2:25). 목사나 장로, 감독의 호칭이 다 한가지 직분에 대해 말하는 것을 알면서도 목사의 호칭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거기에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주신" 목자의 자세가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는 장로로 통일해서 그 호칭을 쓸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감독으로 통일해서 그 호칭을 쓸 수 있습니다. 다 좋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것들이니까요.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목사"라는 것이 아주 영광스러운 호칭임을 확신합니다. 형제교회의 성격을 가진 그룹들 중에는 모두가 형제라는 생각만을 강조하다보니 "목사", "감독", "장로"에 대해 소홀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평신도 중에 어떤 사람이 장로로 피택되었던 장로교회의 영향을 따라,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성도가 교회의 리더가 될 때, "장로"라는 호칭을 쓰는 것을 더 부담없어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분명히 성경에 나와 있는 그 직분에 대해서, 도대체 "목사"가 성경에 어디 있냐는 식으로까지 극단적으로 주장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신학교육을 받았든 받지 못했든, 교회를 통해 훈련받고 성도들에 의해 목회적 직무로 세움을 입었다고 한다면 그는 목사입니다.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주신 선한 목자 예수님을 따르는 목사인 것입니다. 4.목사와 장로 감독은 하나의 직분 1)베드로의 경우에 의해서 주님은 주님의 어린양들을 베드로에게 넘겨주셨습니다. 베드로를 향해서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요21:15). 또 "내 양들을 먹이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요21:16,17). 베드로가 맡게 된 양은 모두 주님의 양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분께서 맡고 계셨던 양떼를 돌볼 수 있는 권한을 베드로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베드로는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양떼를 맡았던 목양자 베드로가 그 자신을 소개하기를 "나 역시 장로요"(벧전5:1)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장로들에게 권면하기를(벧전5:1)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고 감독할 때"(벧전5:2) 이리 이리 해야한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양떼를 치는 목자였으며 또한 장로였고, 감독의 일을 하였습니다. 목사, 장로, 감독은 모두 동일한 직분임을 알게 됩니다. 2)에베소 교회의 경우에 의해서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는 중 밀레도에 머물면서 에베소의 교회의 장로들을 청했습니다(행20:17). 그들은 분명 "장로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이 감독자로 세워진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행20:28). 장로인 그들은 교회의 감독자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양떼에 주의할 필요가 있는 목양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양떼를 먹여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장로, 감독, 목사는 동일 직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3)디도의 경우에서 디도서에서도 장로의 자격을 말하며 그것이 감독과 같은 것임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딛1:5,7) 오늘날에는 목사와 장로가 서로 다른 것처럼 가르쳐지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목사는 성직자로 분류하고 장로는 평신도 중에 수장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들은 신약성경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5.목사(牧師)의 처신에 대하여 목사는 이것저것 하다가 만사불통이기 때문에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쉽게, 또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일하기를 사모하는 것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과 같습니다(딤전3:1). 때문에 저는 인천생명침례교회 안에서 많은 목사님들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성경적으로 바르게 훈련된, 유능한 일꾼들이 나올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한 검증이 없이는 되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자격조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으로서 성경이 제시하는 조건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조건 하나쯤은 어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자세입니다. 아래의 열 일곱 가지는 목사들의 자격을 말할 때 가장 많이 말해지는 내용들입니다. 또한 저는 이것이 처신 문제를 논할 때도 주지되어야 할 사항들임을 상기시켜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목사는 이런 삶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목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1)blameless-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합니다(딤전3:2) 감독은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책망받을 것이 없다는 말은 "저지할 수 없는"이란 뜻입니다. "그는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 일을 하게 해서는 안된다"라고 일컬어지는 것들, 특히 윤리적으로나 교리적으로 그런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의 사역에 방해가 될만한 책망거리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2)the husband of one wife-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합니다(딤전3:2). a.이 말은 장로의 직분이 여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휘오 여사의 장로직은 비성경적입니다. 더군다나 이휘오라는 분이 남자라고 할 때, 그리고 김대중이라는 분이 여자라고 할 때도 이휘오 여사의 장로직은 비성경적입니다. 왜냐하면 아내가 불신자인데 남편이 어떻게 장로직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내가 믿지 않는데 남편 혼자 목사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 존엄한 직분이 남편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집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딤전3:12). b.이 말은 목사의 가정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목사가 이혼이나 재혼을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c.이 말은 목사가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릴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직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했습니다. 경건치 않은 부부생활, 몰몬교주의자들처럼 일부다처제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이미 목사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만일 교회 안에서 목사가 어떤 여신도에게 자기 아내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행동을 하고 있다면 이것은 이미 목사로서 처신하는데 빗나간 것이며 죄로 밝혀져야 합니다. d.또 이 말은 목사에게는 독신생활을 강요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만일 그의 아내가 죽은 후라면 재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이혼하지 아니한 자와 하든지, 사별 후 홀로 남게된 여자와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왜 아내와 사별한 목사가 재혼을 해야 합니까? 그것은 다른 남자성도들과 마찬가지로 돕는 배필이 필요하기 때문이고(창2:18) 혼인을 금하는 어떤 법령도 성경이 지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딤전4:3). 왜 이 같은 일이 조건, 혹은 처신이 필요했는가 하면 가정을 잘 다스리는 것은 교회를 잘 다스리는 것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기 아내나 남편을 잘 섬기지 못한 사람, 그래서 그 가정을 이혼이나 재혼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경우라면 주님의 교회를 깨뜨릴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잘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3)vigilant - 깨어 있어야 합니다(딤전3:2). 그것은 모든 일에 "절제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지나치지 않으며 적당하게 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목사들에게는 절제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4)sober-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딤전3:2). 맑은 정신을 가진다는 말은 "냉정하고 진지한 자세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모든 사역을 진지하고 열심히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그가 유모가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가 근엄한 티를 내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가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어쨋든 그의 사역에 있어서 냉정하며 진지하고 열심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5)good behaviour-행실이 바른 사람이어야 합니다(딤전3:2). 모든 목사들은 그가 가르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바른 행실로 인정될 것입니다. 여기서 행실이 바르다는 말은 여자들이 단정한 것(딤전2:9)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본래 "풀이 죽은 눈"에서 유래한 말로서 "겸손하고 낮추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자신을 낮추는 행실들이 목사들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6)given to hospitality - 나그네를 대접하여야 합니다(딤전3:2). 이것은 낯선 자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했는데, 왜냐하면 믿는 자들이 핍박을 피해 종종 여행을 하며 다녀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는 복음 전도를 위해 다니는 여행자들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초대교회 안에서는 손님 대접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3) "나그네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는 이로써 알지 못하는 가운데 천사들을 대접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니라."(히13:2) "사랑하는 자여, 네가 형제들에게나 낯선 자들에게나 무엇을 행하든지 신실하게 행하니..."(요삼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사님들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는 다른 교회에서 방문한 성도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야 합니다. 어떤 특별한 사정과 이유로 인해 우리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 방문자를 따뜻하게 대접해서 보내는 것이 우리의 자세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회개해야만 합니다. 7)apt to teach - 가르치는 재능이 있어야 합니다(딤전3:2) 가르치는 것은 장로의 주된 임무입니다. 사실 많은 학자들은 목양자들과 교사들을 하나로 묶어서 한 사람 장로 안에 있는 두 가지 기능으로 보았습니다(엡4:11). 목사는 자동적으로 가르치는 자가 됩니다. "주의 종은 결코 다투지 아니하며 오직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우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인내하며"(딤후2:24) 그러므로 가르치는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꼼꼼히 연구하는 자세와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만일 잘 알지 못한다면 바르게 가르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목사가 되려 한다면 바르게 가르칠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8)not given to wine - 자기를 술에 내어주지 아니하여야 합니다(딤전3:3). 바울이 디모데의 질병을 위해 포도즙을 쓰라고 권한 것은 사실이지만(딤전5:23), 술을 즐기라고는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술은 그리스도인을 넘어뜨리는 것이 됩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만찬 때, 발효된 포도즙을 사용하므로서 술취하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고전11:21). 바울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만찬을 잘못할 경우에 생기게 되는 결과들을 설명하면서 경고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로마카톨릭의 사제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만찬 때에 절대 포도주 잔을 교인들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그들만이 그것을 즐깁니다. 그리고 만찬 때 뿐만 아니라 다른 시간에도 종종 그것을 즐깁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술에 자기를 내어주고 있는 것은 이미 익숙한 현실입니다. 챨스 치니키가 캐나다의 퀴벡 주에서 금주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많은 로마 카톨릭 사제들과 그들의 종교가 술에 대해서 무방비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금주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로마 카톨릭마저 떠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9)no strike - 구타하지 않아야 합니다(딤전3:3). 목사들이 제일 많이 싸우는 곳은 총회장입니다. 멱살을 움켜잡고 욕지걸이를 하고...목사의 구타에 맞는 사모도 있다고 합니다. 목사들을 구타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그런 일들이 목사의 생활 속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10)not greedy of filthy lucre-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않아야 합니다(딤전3:3) 왜 목회를 하는가? 그것은 어떤 감투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의 인기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편한 생활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런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교회가 바르게 자라는 것 이외에 다른 것도 꿈꾸지 않습니다. 11)patient - 오직 인내해야 합니다(딤전3:3) 인내라는 말에는 "신사적(gentle)"이라고 번역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보복하지 않으면서 비평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독재적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섬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말합니다. 12)not a brawler - 말다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딤전3:3) 목사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논쟁이나 파당이나 싸움이 일어나는 것에 주동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목회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이 있을 때, 오랫동안 사역을 하기 위해 다투지 않으면서 이해시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주의 종은....자기 자신을 대저하여 행동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일깨워 주어야 하리라..."(딤후2:24,25) 13)not covetous - 탐욕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딤전3:3) 만족할 줄 모르는 곳에서 탐욕이 생깁니다(히13:5). 돈이든, 집이든, 명예든, ...그러므로 목사가 총회장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목사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애쓰는 것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목사가 좋은 집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14)ruleth well his own house -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딤전3:4)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교회나 가정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한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한 교회를 다스리는 것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가정의 가장이 누구입니까? 남편이자 아버지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다시 여자가 목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이 구절의 첫단어가 무엇입니까? "남자가"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돌아볼 일들이 남자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다스린다는 것은 "사회한다. 주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만일 여자가 목소리가 커서 남편을 짓누르기 좋아하고 거역하기를 좋아하고 제 멋대로라고 한다면 그런 남편은 목회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가정에 본이 되지 않습니다. 15)having his children in subjection-자녀들로 하여금 복종하게 하는 자이어야 합니다(딤전3:4) 물론 이 말은 반드시 자녀를 낳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좋은 본을 위해 자녀들이 순종하도록 양육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벧전5:3). 하나님의 교회를 돌본다는 말은 선한 사마리아 인이 강도 만난 자를 돌볼 때 쓰는 말과 같습니다. 16)Not a novice - 초신자는 안됩니다(딤전3:6) 초신자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새롭게 심겨진"이란 뜻이 있습니다. 나이는 성숙함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영적으로 성숙함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서 많은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회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이 같은 중대한 임무, 즉 교회를 돌아보는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유치원생이 대학원생들을 돌보아 주는 것과 같습니다. 17)a good report - 밖에 있는 자들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합니다(딤전3:7) 목사는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합니다. "바깥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걷고 시간을 되찾으라"(골4:5)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바깥 사람을 향하여 정직하게 걷게 하고 또 너희에게 아무 궁핍도 없게 하려 함이라"(살전4:12). 6.왜 이런 권면이 필요했을까요? 첫번째로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의 감독으로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장로회의 안수를 통해 목사가 되었습니다(딤전4:14). 바울은 그러한 디모데에게 다시 한번 감독의 자격을 상기시키면서 디모데가 신실하게 사역할 수 있기를 바래서 이런 권고를 하였습니다. 만일 교회 안에서 목사가 처신을 바로 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분명히 혼란을 빗게 될 것입니다. 목사는 사탄의 공격목표가 됩니다. 사탄은 알고 있습니다. 목자가 쓰러질 때, 양떼가 흩어진다는 것을...실지로 어떤 사탄 숭배자는 전세계의 목사들이 여자문제나 돈문제, 명예 등으로 인해 타락하기를 원해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들의 모든 짐승에게 먹이가 되었도다."(겔34:5) "내가 보매 이스라엘이 목자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는데..."(왕상22:17) "...그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지치고 널리 흩어졌음이라"(마9:30) 주님의 교회에서 목사의 위치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 목사가 넘어진다면 교회가 위기에 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디모데 뿐만 아니라 오늘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모든 종들은 계속 이 디모데전서 3장을 통해 그 자신이 바르게 사역하고 있는가를 비추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번째로 디모데는 그 사역을 혼자서 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다른 목사들을 세워야 했습니다. 동역자들입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들 가운데서 내게 들은 것, 바로 그것들을 신실한 사람들에게 맡기라. 그들이 또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 교회를 감독하는 한 사람은 안수받은 사역자들을 교회에서 활동하도록 임명할 수가 있었습니다. 또 어떤 목사는 모든 것을 감독하는 목사로부터 임명되었습니다. 이것은 니콜라주의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크레테에 남겨둔 목적은 너로 하여금 부족한 것을 바로잡고 또 내가 너를 세운 것 같이 각 도시에 장로들을 임명하게 하려 함이니"(딛3:5). 바울은 디도를 목사로 임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를 세웠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제는 디도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너를 세운 것 같이 너도 다른 사람을 세우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교회에 목사들을 임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디도가 크레테 교회에서 홀로 사역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디도를 도와 사역할 수 있는 사역자들을 임명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목사는 다른 감독하는 목사(디도:head pastor)로부터 임명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더 많은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그 필요한 일꾼들이 아무렇게나 세울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서 제시된 자격을 갖추고 지속적으로 바른 처신을 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교회는 혼란스러워집니다. 입회할 때, 회원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듯이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 역시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여러 명의 일꾼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일꾼들을 신중하게 선임해서 교회를 섬기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디모데가 사역하는 에베소교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교회에도 필요한 자세인 것입니다. 2002년 8월 11일 주일 오전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