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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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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을 끼치는 그리스도의 사역자
lhyunsik

임동선 [ E-mail ] 딤4:13-16 유익을 끼치는 그리스도의 사역자 딤4:13-16 유익을 끼치는 그리스도의 사역자 2002년 9월 22일 주일 오전 말씀 1.하나님께서 왜 그 사역자들을 세우시는가?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전도자로, 더러는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엡4:11,12) 이 말씀에 의하면 몇 가지의 사역자들의 예가 나옵니다. 사도란 "요한의 침례로부터 시작하여 제자들을 떠나 들려 올라가신 바로 그 날까지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었을 때, 주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들 가운데서 세워졌습니다(행1:21). 사도는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따로 세워진 사람들이었스니다. 대언자는 예언과 책망과 훈계와 바로잡음을 위해서 성경을 기록했었던 모든 사람들을 포함해서 구전으로 주님의 뜻을 알리고 선포했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교회를 바로잡는 특별한 기준들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또 교회나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복음전도자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구원의 복음을 알리려 다녔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 특별히 명시된 복음 전도자는 그 일을 위해 모든 시간을 헌신했었던 특별한 일꾼들을 말합니다. 이들의 수고로 주님의 교회가 생겨났으며 이들의 수고로 주님의 교회에 수가 더해졌습니다. 목사와 교사는 한 지역교회 안에서 그들을 양육하고 바로 가르치기 위해 필요한 일꾼들이었습니다. 이들 모두를 그리스도의 사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는 일을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성도를 섬기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을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역자로서 잘 일하고 있는가는 그 사람을 통해 교회가 세워지는냐, 성도들이 유익을 누리고 있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물건의 용도가 있듯이 사역자도 그 용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역할이 있듯이 사역자에게도 역할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와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로서 얼마나 신실한가는 그가 얼마나 교회와 성도들의 유익을 추구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2."유익을 끼친다"는 말의 의미 profiting의 원래 의미는 무리 앞에 서서 나아가며 다른 사람이 따라갈 수 있도록 길을 여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에서도 보듯이 남들 앞에 서서 인도하려고 한다면, 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진보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뒤에 있으면서 남들이 가는 길을 열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개척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는 개척자의 모습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네가 유익을 끼치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는 이 말은 "너의 진보를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라"라는 말로도 설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사역자이며,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을 끼치려 한다면 필연적으로 영적 진보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유능한 사역자로 사역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 기도하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자라가고 있습니다. 영적 성장은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에게 필연 적인 것입니다. 3.바울이 왜 이 말을 디모데에게 해야 했는가 비록 디모데가 연소하다 하더라도(딤전4:12) 그가 영적으로 진보하는 것을 보면 많은 성도들은 그를 따라올 것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연약하다 하더라도 다른 성도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모습을 보면 그의 목양은 주님의 의도대로 잘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성장하며 진보를 통해 다른 성도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 나타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들 스스로가 그리스도의 사역자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진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른 성도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성장해야 합니다. 진보를 이루어야 합니다. 4.디모데가 드러내야 할 진보는 어떤 부분인가? 1)첫번째로 말씀을 읽고 권면하고 교리를 가르치는 부분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마음을 쏟으라."(딤전4:13)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말씀을 읽는 것에 힘써야 합니다. 텔레비젼을 보는 것, 연속극을 보는 것, 영화나 인터넷을 즐기는 것보다도 말씀을 읽는 것에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나름대로 정기적으로 꾸준히 성경을 읽어 가는 일이 없다면 여러분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만일 지난 한 주간 동안도 여러분의 삶이 꾸준히 성경을 읽는 데 힘썼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역자로서 잘 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데 별로 관심을 쏟지 못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 자신이 놓여진 위치를 스스로 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세우셨습니다. 우리들을 통해 누군가를 바로 잡아가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 자신부터 그런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바로 잡아 줄 수가 있겠습니까? "두렵건데 네가 네 존귀를 남들에게 주며 네 삶의 햇수를 잔인한 자들에게 줄까 하노라"(잠5:9) 그리스도의 사역자라는 위치는 존귀한 위치입니다. 이 위치를 망각하며 내 인생을 사악한 마귀가 쳐 놓은 그물들 가운데서 허비하는 것은 분명히 손해입니다. 내가 해야할 많은 사역들을 다른 사람이 하게끔 양도하는 것은 많은 손해입니다. "존귀함 중에 거하는 사람이라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시49:20)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탄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이 예배당 안에 사탄이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는 지금 하나님 앞에도 설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 마음에 그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하루에 수십 번도 그는 우리 마음에 침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마음을 쏟지않는다면 우리는 금새 사탄이 부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권면하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권면하는 대상에는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이제 막 예수님을 믿게 된 갓난 아이 같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교리에 빠져든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그들에게 정확히 권면하려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꼼꼼히 읽는 훈련을 해야만 합니다. 12세기 중엽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생긴 무리로 로마 카톨릭에서 만든 신앙고백대로 순종하지 않고 그들의 양심에 따라 신앙고백을 한다고 하므로서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경멸당한 그룹을 알비겐시스라 합니다. 그 알비겐시스들 중에는 피에르 드 브루에이스라고 하는 복음의 인도자가 있었습니다. 브루에이스가 하던 일은 이름뿐인 교회 신자들(카톨릭 교인들)에게 성경을 읽어주며 상세하게 설명해줌으로 영적 각성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한 일은 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들려주는 일이었습니다. 성경을 읽어주는 일이었습니다. 성경이 무어라 말하는지 알게 해주는 일이었습니다. 다우피니, 랑구에독, 가스코니 등을 여행하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성 가일스라는 곳에서 화형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의 영향으로 프로방스와 남부 프랑스에는 교황의 요구와 가르침을 거부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드디어 종교재판의 창시자인 이노센트 3세는 프로방스 지방을 타도하는 자들에게 면죄부를 하사하겠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십자군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무사들이 프로방스와 남부 프랑스 지역에 들어가 20년 동안 그 지역을 황페화 시키는 작업을 했습니다. 라 미네르브라는 곳에서는 로마 카톨릭 군 지도자 시몬 드 몽포르는 장작더미를 싸아놓고 140명의 알비겐시스 신자들에게 로마카톨릭으로 개종을 하든지 장작더미 위로 올라가는 것을 택하라 했다. 이때, 이 알비겐시스들은 "우리의 최고 권위는 교황이나 사제에게 있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뿐이다"라고 하면서 모두가 장작더미 위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불꽃이 타오르는 그 속에서 그들은 가르침을 받은 그래도 주님의 말씀의 권위만을 높이며 죽어갔던 것입니다. 이들의 영향으로 로마 카톨릭 뚜울루즈 회의(1229)에서는 모든 평신도들에게 더 이상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하는 금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예배나 기타 예전들이 오직 라틴어로만 진행되도록 하는 법령이 만들어졌습니다. 왜 그러한 결정이 내려져야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이단이라 할지라도 정확히 분별해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에 읽는 사람들을 세상이 어떻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그 안에서 진보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려는 자는 법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법대로 경기하도록 다른 사람에게 조언해야만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들끼리 약속한 규범들이 있지만 말씀의 권위를 앞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정확하지 않다면 그리스도의 사역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없습니다. 많은 목사들이 그들 스스로를 사역자라고 말하지만 성도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종교로 고생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씀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마음을 쏟으라"(딤전4:13)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16절에서 "네 자신과 교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것들 가운데 거하라. 이는 네가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 말을 듣는 자들을 구원할 것임이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교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자신이 성경에 이르신 말씀대로 가고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야만 합니다. 그것이 없이 교리만 따지는 사람은 그야말로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들보는 발견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자기 몸에 똥이 묻어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몸에 밥풀이 묻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교리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들을 붙잡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분명하고 확고한 신앙은 교리가 가져다줍니다.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교리를 행해야 합니다. 알기만 하여 행하지 않으므로 그 자신을 속이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되고 행동을 요구하는 그 성경 가르침들에 대해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 16절의 말씀이 행위구원론을 가르친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그 자신을 훈련하는 자는 그 자신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권고나 가르침을 듣는 많은 사람들을 옳게 인도하게 될 거라는 말씀입니다. 유혹하는 영들이나 마귀들의 교리 앞에서도 그들을 지켜 낼 수 있으며 위선으로 거짓말하는 모든 가르침 앞에서도 그들을 건져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두번째로 은사를 활용하는 부분 디모데에는 장로회의 안수를 통해 목회자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그때 대언자의 대언을 통해 그 자신이 어떻게 이 사역을 감당해야할 지, 또는 주어진 은사가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해 제시받았을 것입니다. 은사는 디모데와 같은 목사님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란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은사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령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은사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8:9)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이 모든 것은 한 성령께서 행하사 자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나누어주시는 것이니라."(고전12:4-11)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시는 분은 성령님 이십니다. 디모데는 목회자로서 안수 받을 때, 그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양떼를 가르치며 돌아보는 은사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은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리스마"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카리스마를 남들을 이끄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덧붙여 쓸 때가 있습니다. 은사란 그런 것입니다. 남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탁월한 부분, 또는 어떤 방면에 있어서 다른 이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부분, 그것이 은사입니다. 예를 들어 말씀을 잘 정리해서 가르치는 것도 은사입니다. 디모데에게 주어졌던 은사는 그것이었습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잘 갖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지방의 언어를 하는데 남다른 은사를 가지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병을 고치는 은사도 나타났었습니다. . 또 은사라는 말을 표현하는데 영어 성경에서는 선물(gift)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선물은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거듭날 때, 그들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는 한가지 이상의 선물, 곧 은사를 주십니다. 은사적인 부분에 있어서 진보를 이루어야 한다니까, 방언도 하고, 병고치는 능력도 받고 투시도 받고 가르치기도 잘 하고 예언도 잘하고...등등 한 개인이 다양한 은사들을 확보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내가 가진 떡보다 남의 것이 더 커보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은사를 탐낼 필요는 없습니다. 부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함으로서 그 부분에 진보를 이루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게 됩니다. 성경에는 "오직 너희는 가장 좋은 은사들을 간절히 사모하라."(고전12:31a)고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한 개인이 더 많은 은사를 가져야 하는 거처럼 탐내거나 은사를 받기 위해 이 산 저산을 헤매는 식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은사를 열 개 받았다고 해도 그것을 다 선용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받은만큼 요구하시는 주님 앞에서 부끄럽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은사들은 서로 비교할 때, 좋은 것이 있을 수 있고 보잘 것 없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들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면(고전12:22) 우리가 무작정 타인이 누리는 은사를 나도 취하자는 식으로 탐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은사든지 가장 좋은 길은 사랑으로서 그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또한 너희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주리라"(고전12:31b)라고 말씀하면서 사랑(charity)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어진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것들을 묵상하고 그것들에 그 자신을 드려 활용할 때, 그 사역자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5.성장하는(진보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자 거듭남이 전부는 아닙니다. 거듭남은 시작입니다. 한 사람이 자기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그 아버지를 위해 살아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지금 당장 우리 아이들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바르게 큰다면 어느 때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올바르게 자라는 것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교회 안에서 지금 막,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리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헌신하게 될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돕게 될지 아직 계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서 바르게 양육받는 성도가 된다면 분명히 다른 사람의 영적 유익을 위해 헌신하는 성도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그 갓태어난 성도들에게 관심 갖는 부분은 어떻게 하면 이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을까?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을까? 올바르게 진보할 수 있을까?"인 것입니다. 하나의 씨가 심겨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씨 속에는 뿌리도 있고 줄기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나뭇잎도 있고 가지도 있습니다. 그 조금만 씨 속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결국 꽃이나 열매를 맺게 될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씨로 심겨진 사람들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면서 그것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 안에 효력있게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이 "성장했구나!"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되려 한다면 우리는 진보해야 합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자라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보호하거나 돌아보려고 한다면 우리 자신이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말씀 안에서 진보를 이루고 영적 은사들을 활용하는데 있어서 진보해야만 합니다. 교리적으로 바르게 성장하지 않는 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없게 됩니다. 혈기 가득한 사람, 그래서 말고의 귀를 잘랐던 베드로...그 사람이 후에 신의 성품에 대해 말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마리아 인들을 향해 엘리야처럼 불을 내려 멸하기를 원하시냐고 했던 요한(눅9:54)...그 사람이 후에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는데 일등공신이었던 사울...그 사람이 주님의 교회와 복음을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생명이 있고 성령이 역사는 곳에는 사람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진보가 나타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6.결론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성도와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려는 자는 영적으로 진보를 이루어야 합니다. 성장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진보를 이루려 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을 살피고 말씀을 살펴야만 합니다. 또한 주어진 영적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않고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만 합니다. 나는 오늘 내게 주어진 은사가 무엇인지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만의 독특한 무엇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겠다면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점들을 회개하시고 주님께 보여달라고 하십시오. 분명히 그것이 있습니다. 영적 진보를 이룬 그리스도인은 그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안전하게 인도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성장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