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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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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믿음
lhyunsik

기도와 믿음 2005-05-09 06:06:17, 조회 : 3 오늘은 [기도와 믿음]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성도는 모든 일에 믿음이 있어야 하지만 기도는 특히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믿음이 없는 기도는 성령이 없는 교회, 예수가 없는 종교, 회개 없는 구원과 마찬가지로 전혀 무의미한 읊조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믿음 없는 기도는 무능력자의 넋두리요, 지혜 없는 자의 요행수요, 뿌리 없는 나무처럼 시드는 그런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는 먹는 것도 믿음으로 먹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의심하는 자는 그가 먹을지라도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먹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14:23). 성도는 걷는 것도 믿음으로 걸어야 하고, 서는 것도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도 믿음으로, 싸움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믿음의 선한 싸움).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삶을 믿음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는 신약 성경에서 무려 세 번이나 인용된 삼겹줄과 같은 말씀입니다(롬1:17, 갈3:11, 히10:38).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기도할 때 어떤 믿음이 필요한지 잘 알아서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이 없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자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니라.](히11:6). 우리는 여기서 믿음과 기도의 분명한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의 다른 표현이 ‘하나님께 나아간다, 은혜의 왕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믿음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이란 말씀 역시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님은 부지런히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주님은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응답하시고, 자신을 찾는 자들을 만나 주십니다. 이는 기도의 필수 요소가 바로 믿음이란 사실을 보여 주는 좋은 예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21:22). 이는 제자들이 어떻게 기도할 때 그냥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믿고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무엇을 믿고 구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무 것이나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까? “병이 나을 것을 믿습니다. 제게 성공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희 가정에 복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이런 부류의 기도는 무속(巫俗)이요, 기복(祈福) 신앙이지 성경적 믿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턱대고 하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니 하나님을 굴복시키는 기도를 하려고 떼를 쓰는 것을 믿음인 줄 잘 못 알고 구함으로 응답도 받지 못하고, 기도를 한 후에 도리어 낙담과 실망을 하는 예가 많습니다. 어느 기독교 월간지 기자가 교인들을 상대로 이런 조사를 했습니다. “성도들이 기도를 하지 않거나 적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란 질문을 했는데, 다양한 이유가 많이 나왔지만 “기도한다고 해서 일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란 답이 제일 많았습니다. 이는 기도하는 사람들조차 자신들이 하는 기도에 대한 응답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에 대한 믿음이 없는데 기도할 힘이 날 리가 없고, 기도에 대한 열정이 솟아 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한 것을 받는 줄로 아는 믿음만 있다면 사람들은 매일 기도에만 전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어떤 다른 일보다 기도에 더 역점을 두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열심히 구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을 원하든지 받는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받으리라](막11:24). 우리가 받을 줄을 알게 된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기독교의 특징을 들라면 단연 믿음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온통 믿음에 관한 기사들로 가득합니다. 신약 성경에 믿음(faith)이란 말은 무려 231번이나 나옵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 가장 갈망하는 은사 중 하나는 단연 믿음의 은사일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믿음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은 그런 강한 인상을 받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좀 더 강한 믿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기도에도 믿음이 있으면 그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믿음 좋다’는 평가도 큰 칭찬도 없을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말을 하든지 ‘믿음으로 하라’는 권면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믿음이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조건 믿으면 믿는 것인가? 그것은 망상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대상이 있고 근거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나옵니다. 말씀이 없이 믿음이 있을 수 있습니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즉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느니라.](롬10:17).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옵니다. 예를 들어 회교도들은 알라에 대한 믿음이 확고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아닙니다. 그들의 믿음은 종교적 신념이지 성경이 말하는 믿음(faith)이 아닙니다. 코란에서는 믿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나옵니다. 일부 캐톨릭 신자들은 마리아에 대한 믿음이 확고합니다. 그들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회교도들은 하루에 세 번을 알라에게 절을 하며 경배하고, 기도합니다. 캐톨릭 신자들은 매일 미사를 드리며, 묵주를 돌리며 기도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며, 그들의 기도는 기도가 아닌 염원일 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나오지 코란이나 외경이나 마리아를 믿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믿음과 신념, 믿음과 염원, 자기 확신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것도 떨 정도로 믿습니다(약2:19). 그러나 마귀는 믿음(faith)이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어떤 신자들은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도들, 몰몬교도들을 보고 믿음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자기 종교에 대한 확신, 종교적 신념이 좋은 것이며, 강한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적으로 보자면 전혀 믿음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가진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드리는 기도는 믿음의 기도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은 순교할 만큼 강한 믿음(?)을 가졌는지 몰라도 성경적으로는 그들은 적은 믿음(little faith)도 갖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느니라.](롬10:17). 이 말씀은 믿음의 근원, 출처, 성격을 다 규정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음의 말씀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그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롬10:8). 그렇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말씀들입니다. 믿음의 말씀들이란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믿는 자들에게 믿음을 주는 말씀들이란 뜻입니다. 영적인 생명은 어디서 옵니까? 생명의 말씀을 통해 옵니다(행5:20, 빌2:16, 요1:1). 권능이 어디서 옵니까? 권능의 말씀에서 옵니다(히1:3). 은혜는 어떻게 누립니까? 은혜의 말씀을 통해 누립니다(눅:22, 행14:3, 행20:32). 성경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의의 말씀(히5:13), 화해의 말씀(고후5:19), 진리의 말씀(고후6:7, 엡1:3, 약1:18)이라고 합니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믿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믿음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말씀을 배제한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고집이나 신념입니다. [네가 형제들에게 이것들을 기억하게 하면 네가 도달한 믿음의 말씀들과 선한 교리의 말씀들로 양육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사역자가 되리라.](딤전4:6). 믿음의 말씀들이란 믿음을 생성해 주는 말씀이란 뜻입니다. 생명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생명을 주는 말씀이란 뜻입니다. 은혜의 말씀이란 은혜를 주는(끼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주는 믿음을 지녀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더 뜨겁고 열심히 기도하기 위해서 성경책도 놔두고 기도원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이 쉴 정도로 ‘주여~~~~ 믿습니다.’를 외치지만 그것은 믿음의 기도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결합될 때 믿음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Faith= believe +words of God).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다는 것이며,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능히 이루시며, 신실하게 지키심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믿으라고 믿음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기지 않는 것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며, 그렇게 말한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믿음의 창시자(저자-Author)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히12:2a).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대상인 동시에 믿음의 창시자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님은 우리 안에 믿음을 창시해 주십니다. 때로는 믿음이 예수님과 동의어로도 쓰입니다. 여기서 자세히 유념해서 보실 것은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our)란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 안에서 스스로 생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믿음을 창시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저자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이 저자(author)이십니다. 때로 우리란 말에 자신이 주인인 줄로 착각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저자가 따로 있습니다. 믿음의 저자란 저술을 하는 사람이요, 작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잉크가 아니라 영으로 우리 마음 판에다 자신의 말씀을 기록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들은 영이요, 생명(요6:63)이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우리 안에 기술하셨습니다. [너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서신이니 이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3:3).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곧 그 날들 이후에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 /중심/부에 두고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렘31:33). 이런 이유로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저자(Author)이십니다. 우리는 믿음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알면 알수록 믿음의 삶, 믿음의 기도(약5:15), 믿음의 선한 싸움(딤전6:12), 믿음의 활동(산전1:3, 살후1:11), 믿음의 고백(히10:23), 믿음의 시련(약1:3, 벧전1:7), 믿음의 온전한 확신(히10:22), 믿음의 교제(몬1:6), 믿음의 희생물(빌2:17), 믿음의 하나됨(갈6:10,엡4:13), 믿음의 방패(엡6:16), 믿음의 진보(빌1:25) 등을 이룰 수 있습니다. 믿음에 대한 성경적 조명이 없는 성도들은 아무 것에나 믿음이란 단어를 갖다 붙입니다. 심지어 전혀 믿음이 아닌 것들을 믿음으로 했다고 간증하기도 합니다. 구약을 믿음이 오기 전, 신약을 믿음이 온 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온 뒤에는 우리가 더 이상 훈육 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니](갈3:25).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믿음은 없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없이 생명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아무리 장수촌에서 오래 사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상 그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생명을 어떻게 얻습니까? [아들은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으며....](요3:36).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요일5:24), [나를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을 가졌나니](요6:47). 그렇다고 구약의 성도들이 영원한 생명이 없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왜 그런가? 예수님이 믿음의 완성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는 그들이 어떻게, 무엇을 믿었는가 영광스런 기록들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 성도들의 믿음을 본받을 수 있고, 그들이 걸었던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믿음을 분량대로 나누어 주십니다. [내게 주신 은혜를 힘입어 너희 가운데 있는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으로 자기에 대하여 생각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냉철하게 생각하라.](롬12:3). 주님은 각 사람에게 믿음을 나누어주십니다. 이로써 우리는 주님께 믿음의 은사를 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니, 이것이(믿음)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영생이 믿을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듯이, 믿음 역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한량없는 성령을 부어주시듯이, 믿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는 믿음을 부어 주십니다. 믿음은 성령의 사역으로 인해 열매맺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열매는 생명이 없이 맺힐 수 없습니다. 일(works)과 열매는 분명히 다릅니다. 믿음은 일(행위)이 아니라 믿을 때 주신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해 생기는 열매입니다(갈5:22). 그래서 성령은 믿음의 영이며,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열매맺게 하시는 영이시다.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노라,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영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으므로 또한 말하노라.](고후4:13). 이제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 성경적 조명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성경 본문을 통해 믿음으로 구함으로 응답을 얻고, 칭찬을 받은 사람들과 믿음이 적어서, 믿음이 없어서 책망을 받은 구체적인 예를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런 구절을 읽을 때마다 병든 자들은 나에게 이런 믿음이 없어서 병이 낫지 않는 것일까? 그런 독한 회의를 품어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줄로 압니다. 마태복음 17:20, 누가복음 17:6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 까닭은 너희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로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에게 말하여, 여기서 저 너머로 옮겨가라, 하면 옮겨 갈 것이요, 또 너희에게 불가능한 것이 아무 것도 없으리라.](마17:20). 이 말씀은 힘없고 약한 형제들에게 무한한 능력을 공급해 준 말씀인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걸림돌과 절망을 안겨준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에게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없어서 산은 고사하고 화분하나 옮기지 못하는구나!’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는 산도 옮길 수 있겠구나!라고 확신과 소망이 넘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우리의 믿음을 크게 하여 주옵소서](눅17:5)라고 간구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 제목이기도 합니다. 믿음을 위해 기도가 필요하고 기도를 위해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덨더라면 이 뽕나무에게 이르기를, 뿌리 채 뽑혀 바다에 심겨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믿음의 능력이 이런 것이라면 믿음의 기도는 한 나라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세우기도 할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마가복음 4:40을 보십시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 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4:40). 제자들은 주님과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한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약하거나, 적거나, 있다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풍랑이 치고, 파도가 들이치고, 물이 배 안에 가득하게 되자 예수님께 다급하게 기도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막4:38). 다급하고 간절한 기도는 맞았지만 믿음의 기도는 아니었습니다. 이유는 막4:35절에 있습니다. [그 날 저물 때에 그분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건너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막4:35). 주님은 "건너 편으로 건너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었으면 그들은 믿음(faith)이 있었겠지만 그들은 그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no faith). 그래서 주님은 "어찌하여 너희가 믿음을 갖고 있지 않느냐?/ 없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한 가운데 함께 계시고 동행하셔도 내 안에 주님이 주신 말씀을 담고 있지 않고, 믿지 않을 때 우리는 믿음이 없는 자가 되고 맙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며,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믿음을 저술하시는 저자이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Have faith in God(막11:22). 주님은 왜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신 것입니까? 유대인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주님이 말한 믿음은 일반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도 주님은 제자들이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아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듣지 않으려 했습니다. 특히 십자가에 관련된 말씀은 듣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왜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말씀하셨습니까? 믿음을 가지라고 했습니까? 믿음은 어떻게 가질 수 있습니까? 우리는 마가복음11:21절을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기억이 나서 예수님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선생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나이다, 하니](막11:21). 베드로는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화과 나무가 말라 버린 것을 보고 '주님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그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진작에 믿었더라면 ‘하나님을 믿으라’(Have faith in God.)란 말씀 자체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적은 믿음이라도 있었던 상태가 아니라 믿음이 없었기에(no faith), 주님은 그들에게 믿음을 가지라(have faith....)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함으로써 믿음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날 때 믿음이 생깁니다. 이제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눅7:50). 주님이 말씀하신 ‘네 믿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옥합의 향유를 부은 여인들은 12제자들보다 믿음이 탁월했습니다. 우리는 마가복음 14:8에서 이런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으니 곧 장사(葬事)지내는 일을 위하여 미리 와서 내 몸에 향유를 부었느니라](막14:8). 제자들은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아무리 말을 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향유를 부은 여인은 믿었을 뿐만 아니라 향유를 부음으로 장사(葬事) 지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야말로 진정한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주님이 고난을 당하고 죽을 것을 말씀하신 말씀을 믿었던 유일한 사람이 바로 이 여인인지 모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칭찬 받는,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큰 믿음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no faith(믿음이 없음)이었는데 반해 이 여인은 great faith(큰 믿음)을 지녔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여인들이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도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란 증거를 얻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열 두제자나 70인 제자처럼 곁에서 수행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능력, 예수님의 신성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통해 들려오는 소문, 간증, 멀리서 본 것, 또는 거리나 성전에서 설교하시는 것들을 들음으로써 믿음을 지녔고, 그 믿음은 그들을 넉넉히 고치고 구원하였고, 낫게 했습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성경을 손에 들고 매주 2-3번의 설교와 성경 공부를 들으면서도 이런 여인보다 믿음이 못하다면 정말 곁에 있는 제자들의 꼴이 나고 맙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간략하고 명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는 그를 내쫓지 못하였나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믿음이 없음이로다.](마17:19). 우리 역시 많은 일들을 하고자 계획을 하면서도 전혀 성취를 맛보지 못할 때 주님은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첫째,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욕심을 내도 갖지 못하고, 죽여서 갖고자 해도 얻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워도 갖지 못함은 너희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4:2). 둘째, 믿음이 없음이로다. 구하는 사람은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흔들리지 말라. 이는 흔들리는 자가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기 때문이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을 줄로 생각하지 말라](약1:7). 우리는 믿음이 없이 주의 일을 한다고, 아니면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믿음의 발 걸음이 시작됩니다. 베드로는 단지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바다 위를 걸어 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가 허공을 날게 하소서! 라고 했을지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그런 상황입니다. [만일 주시거든 내게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한 대 그분께서, 오라, 하시니 베드로 배에서 내려 예수님께 가려고 물위로 걸어가되// 바람이 사나운 것을 보고 두려워 하여 가라앉기 시작하니라. 이에 그가 소리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마14:28-30). 베드로는 [오라]하신 주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는데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바다 위를 걷는 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걸었습니다. 말씀을 들었고, 거기에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람이 사나운 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후5:7). 믿음은 보는 것과 정반대입니다. 듣고 마음 속에 숨겨둔 하나님의 말씀이 보이는 환경을 이겨야 합니다. 반대로 환경이 믿음을 압도할 때 그는 적은 믿음이라고 책망을 받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손을 내미시면서 [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끊임없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란 책망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은 늘 염려 가운데 삽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은 하나님과 세상, 성령과 육신, 믿음과 행위 사이에서 저울추처럼 왔다 갔다 하며 삽니다. 먹고 입을 것이 염려된다면 그는 믿음이 적은 사람에 해당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든, 오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물며 너희는 더 잘 입히시지 아니하겠느냐?](마6:30). 염려는 왜 합니까? 주님이 함께 하시고, 필요를 공급하시겠다는 약속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기도입니다. 일찍이 오늘날처럼 믿음이란 말이 남용되고 오용된 예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고후13:5)고 합니다. 여러분 안에 믿음이 있습니까? [네게 믿음이 있느냐?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무엇이든지 믿음에서 나지 아니한 것은 죄니라.](롬14:22a-23b). 믿음이 아닌 것을 믿음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닙니다. 감정적 흥분이나 감화도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감정이나 환경이나 결과에 상관없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적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가?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 있어야 하며, ‘믿음의 근거’가 있어야 하고, ‘믿음의 증거’가 있어야 하며, ‘믿음의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망상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믿음의 근거는 기록된 말씀입니다. 믿음의 증거는 내 안에 계신 성령입니다. 믿음의 결과는 혼의 구원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성령으로 인치시고, 증거로 주신 자신의 법적 서류를 바탕으로 하는 청구서요, 청원입니다. 은행에 돈을 찾는데 계좌도 없이, 통장도, 도장(서명)도 없이 돈을 찾으러 왔다고 하면 누가 돈을 주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찾거나 받을 수 있는 법적 서류가 있다면 찾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그런 것입니다. 큰 믿음이란 오직 말씀 하나로 모든 것이 족한 믿음입니다.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8장의 백부장은 주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하는 제안에도 불구하고 “오직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낫겠나이다.”(마8:8)했습니다. 백부장은 말씀의 능력을 믿었고, 말씀 이외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런 믿음을 큰 믿음이라고 합니다. 백부장의 이 믿음에 예수님의 반응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사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큰 믿음은 결코 보지 못하였노라.](마8:10).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 외에 더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나의 기도는 항상 “주여 한 말씀만 해 주옵소서!”로 족합니다. 우리는 모두 처음부터 큰 믿음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해서 믿음이 강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에 능숙하지 않는 한 믿음은 절대 강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약한 형제들을 돌보고 양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를 너희가 받아들이되 의심에 찬 논쟁은 하지 말라.](롬14:1). 반면 강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해서 영원히 믿음이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에서 벗어나고 타락할 때 믿음은 약해집니다. 시간이 없어 성경을 못 읽을 때, 정신없이 바삐 하루가 지나 기도를 못할 때, 일이 많아 교회 집회를 빠질 때 여러분의 믿음은 이미 많이 약해져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우리는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특히 믿음의 기도를 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구하는 것에 대해 확신과 담대함을 얻고자 한다면 말씀을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성경을 펴놓고 기도하십시오. 성경을 묵상하면서 기도하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셨으니 그대로 이루어지이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누가복음 1:38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을 보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리이다, 하매..](눅1:38). 우리는 매사에 이런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올 한해는 믿음의 기도를 쉼없이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빕니다. 야고보서 1:6을 읽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