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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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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17)
lhyunsik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2005-05-07 06:08:19, 조회 : 4 오늘은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내용을 한 번 정리하는 기회로 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란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해보고,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예수님은 평생을 기도로 사셨고, 기도를 가르치셨으며, 친히 기도의 본을 보이셨으며, 십자가 위에서 기도로 이 생을 마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무려 일곱 차례에 걸쳐 제자들에게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는 마치 자신의 법적 권리와 모든 권한을 위임장으로 작성해 주신 것과 같습니다. 이름은 권위와 신분, 존재를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범죄 행위를 숨기기 위해서, 또는 신분 노출을 꺼릴 때 가명이나 차명(借名)을 사용합니다. 때로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뭔가 된 줄로 과시하기 위해서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사칭(詐稱)하기도 합니다. 이는 이름이 갖는 고유한 속성입니다. 어떤 분은 친지나 주위 사람들, 아랫사람들에게 어디 가서도 절대 자신의 이름을 팔아먹거나 이용해 먹지 말라고 엄히 명하기도 합니다. 이름을 이용한 이런 범죄는 사람 사는 세상에는 어디에나 있는데, 이 분야의 대가는 마귀입니다. [그분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속지 않도록 주의하라. 이는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할 것임인즉 너희는 그들을 따르지 말라.](눅21:8). 마귀는 하나님의 허락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인 것처럼 속입니다. 사탄은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합니다(고후11:14). 마귀의 사역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서 속입니다. [이는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 하며 많은 사람을 속일 것임이라.](막13:6).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너무나 존귀하고 가치 있는 이름이어서 누구나 사용하고 싶어하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권위와 능력은 예수의 이름으로만 시행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란 이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사용되는 이름이며, 그 이름과 관계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란 이름은 신약 성경에서 935회나 나옵니다. 마리아가 처음으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이 이름을 들었습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 그 다음으로 요셉이 꿈에서 예수란 이름을 들었습니다. [이 일들을 생각할 때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녀에게 수태된 이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것임이라, 하니라.](마1:20,21).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친히 지어주신 예수란 이름은 “여호와는 나의 구원자이시다.”란 뜻입니다. 예(JE)는 여호와(JEHOVA)의 준말입니다.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란 뜻으로 신성을 나타냅니다. 수(SUS)는 SAVIOUR의 준말입니다. 이는 주님의 사역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말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그분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물 한 그릇을 떠서 대접하더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할 때 상급이 있습니다(마10:41-42).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 하여 내 이름으로 마실 물 한 잔을 주면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자기 보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막9:41). 찬송을 해도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 하고(마21:9, 23:39), 침례를 받을 때도 주의 이름으로 받고(마28:19,행2:38), 마귀를 내쫓더라도 주의 이름으로 쫓아야 하며(막9:38, 눅10:17, 행16:18), 회개와 죄들의 사면 역시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 가운데 선포되어야 하며(눅24:47), 생명을 얻는 것도 예수의 이름으로 얻고(요20:31), 병자가 일어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행3:6).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행3:6). 우리는 은과 금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지치고 힘든 5000명의 무리들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마14:16, 막6:37, 눅9:13).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먹을 빵과 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빌립은 즉시 200 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주님은 은과 금으로 먹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당시에 배운 영적 교훈을 사도행전 3장에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모두 금과 은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난한 자 같아도 부유한 자입니다. 사도행전 4장은 예수의 이름이 당시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주된 쟁점이었음을 잘 보여 줍니다. [너희 모두와 이스라엘 온 백성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곧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 사람이 온전하게 되어 여기 너희 앞에 서 있느니라.](행4:10). 그들은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은과 금을 주는 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즉시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을 불러 명령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결코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라.](행4:18).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복음 전도와 사역에 필수 요소였고, 언제나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모든 것을 행했고, 대적들은 예수님의 이름이 마치 적성 국가의 두목 이름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이에 그들이 그의 말에 동의하고 사도들을 불러서 때리고 명령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하고 놓아주니라.](행5:40).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이는 기도문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하고 마치란 뜻이 아닙니다. 성경의 기도를 살펴보아도 우리가 지금 하는 것처럼 마지막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하는 형식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어떻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는가를 보십시오. [주의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또 표적과 이적이 {주}의 거룩한 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허락하옵소서, 하더라.](행4:30).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이 낫고, 표적과 이적이 일어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이는 자신들이 하는 모든 일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도록 구한 것입니다. 수치를 당해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해야합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인하여 수치 당하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겨진 것을 기뻐하며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1). 이는 이들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눅21:17). 주님의 이름은 기도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의 전 분야에 다 사용됩니다. 바울은 논쟁을 벌일 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논박했습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그리스 말 하는 사람들을 논박하니라. 그러나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하매](행9:29). 형제들에게 권면을 할 때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청했습니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다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판단으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고전1:10). 명령을 할 때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했습니다. 감사를 할 때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했습니다. [모든 일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5:20). 장로들은 병든 자에게 약을 쓸 때도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발랐습니다.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장로들은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약5:14). 우리는 모임을 가져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야 합니다. [이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그들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니라.](마18:20). 손님을 대접하고 영접하더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접할 때 주님은 그것을 자신을 영접한 것으로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니](마18:5). 이와 같이 성도들은 삶의 전 분야에 걸쳐 철저하게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만 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권위, 권한, 권리의 위임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돌리라는 말입니다. 간단한 예로 제가 제 이름으로 된 통장의 돈을 사용하는 것과 교회 이름으로 된 통장을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교회 명의로 일을 할 때는 교회 명의로 된 수표를 사용하고, 교회 명의로 계산을 합니다. 어떤 행사를 계획해도 교회 이름으로 합니다. 이는 제가 이 교회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공무원은 공무 수행을 할 때 자신의 이름으로 하지 않고 자신의 부서나 국가의 이름으로 일을 합니다. 돈을 써도 자신의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출장비나 법인 카드를 사용합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 돈으로 하라. 회사 이름으로 하라. 회사 명의로 등록하라....”와 같은 말은 권한과 권리를 위임받아 일을 하지만 책임은 회사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적인 목적이나 이익을 추구하는데 회사나 부서의 이름을 사용하면 회사에서 징계를 받거나 그에 따른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주님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사역을 할 때 자신의 권위와 권한, 권리를 마음대로 사용해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6:23-24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구하지 아니하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3-24).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권위를 전적으로 100% 다 위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행하는 일을 할 것이요, 또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요14:12)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밖에서 경찰이 문을 두드리면서 "경찰서에서 왔습니다. 문을 여십시오!"하고 말합니다. 그때 여러분은 얼른 문을 열어줍니다. 만일 그가 '나는 윤 성목입니다. 문을 좀 열어 주십시요!"하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윤 성목이 누구지"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문을 선뜻 열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경찰이라는 이름을 듣고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경찰서에서 보낸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될 때 속히 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한 개인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상징하고 대표하는 경찰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전도하러 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 침례 교회에서 나왔습니다.”라고 말하면 나는 말씀침례 교회의 이름으로 온 것이며, 그 이름으로 문을 두드린 것이 됩니다. 여러분 가정에는 누군지 이름은 모르지만 ‘여호와의 증인’이 왔다 간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개인의 이름을 모릅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는 것은 그의 이름이 아니라 그가 여호와의 증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기도할 때 나 자신의 이름을 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으로 하나님과 하늘의 모든 권세들에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러한 기도 상황에서 주님을 대신하여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기도가 예수님의 이름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갈 때 그 기도는 믿음의 지름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 기도의 범위는 제한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이름에는 아무런 지위도, 능력도 없음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사용할 이런 권한과 권위를 성도들에게 위임하신 것은 영적인 일은 결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도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5:30a)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이는 나 없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요15:5).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 된 철저히 의존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은 받은 바 명령대로, 하나님이 주신 뜻대로만 그 권위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군인이나 경찰이 국가에서 준 명령이나 권위의 위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체포하거나 구금할 수 없듯이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신 권위의 위임 없이는 어떤 영적인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회사의 직원이라도 나에게 주어진 권한 이상의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때로는 사장의 싸인이 필요하고, 어떤 것은 회장의 결제 싸인이 필요합니다. 구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결제 싸인이 있느냐?에 따라 결정납니다. 스스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 역시 그렇습니다. [이는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으로 생각할 만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요, 오직 우리의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기 때문이니라.](고후3:5). 모든 것은 주님에게서 나며, 주님의 이름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경찰에게 제복과 신분증과 같은 것이며, 왕에게는 인장(옥쇄)과 같은 것입니다. 성도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곧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는 공무를 수행하라고 주신 신분증, 임명장과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결코 예수의 이름으로 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의 서명이 있어야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청구 내역이 지급될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내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일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개인적인 이익과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일 때 우리는 언제나 즉각적으로 담대하게 필요를 구할 수 있습니다. 군대의 보급 장교가 급히 본부로 필요한 보급품을 보내라고 무전을 치고, 전보를 칩니다. 때로는 전령을 보내기도 합니다. 제때에 도착하지 않으면 고함을 지르며 물품을 보내라고 난리를 칩니다. 마치 본부에 자신의 물건을 맡겨 두거나 빌려 준 것처럼 당당합니다. 이유는 자신이 구하는 것이 부대의 일이며, 합법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는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이후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아시고 자신의 이름을 그들에게 사용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하나님은 일을 하라고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일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을 구축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를 포기함으로써 주님의 이름을 평생 동안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예가 허다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매일 예수의 이름으로 자신의 육체적 사욕과 정욕을 채우기 위해 헛된 것을 구하는 예 또한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마치 예수의 이름을 부적의 주문처럼 사용하는 경우인데, 이는 주의 이름을 헛되이 망령되이 취하는 것으로 십계명 중 세 번째 계명을 범하는 범법입니다. 성도는 누구나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 지혜,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이렇게 살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들을 청구해야 하는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나의 말과 행동, 나의 삶의 방향과 목적이 모두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하나님을 향한 것이란 뜻입니다. [오직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일꾼이 주인을 위해서 일하려고 하면 주인에게 일꾼의 지위를 부여받아야 하고, 필요한 지시 사항을 받아야 하고, 일하는데 필요한 자금과 필요한 모든 것들을 받아야 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3-14).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사기꾼이 아닌 이상 누구도 남의 이름을 사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기꾼들이 자신의 이름을 사용한다고 해서 덜렁 필요를 내 주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에게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도록 주었으며, 누가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지 다 아십니다. 주님은 양들의 음성을 다 알아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떤 뛰어난 보안 장치보다 더 뛰어난 보안 장치이며, 안전한 결제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허술해 보이지만 가장 안전합니다. 주님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너희란 제자들을 말합니다. 너희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주님은 “너희(제자들)”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도록 권세를 위임하신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이 말씀하신 “너희”에 해당되십니까? 주님은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알라나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믿는 제자들에게만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나님 자신이시며, 구약에 약속하신 구속에 관한 모든 하나님의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내가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만 유효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나의 공로나 의가 아니라 우리 주님이 흘리신 피의 공로와 의로 구원받은 것을 근거로 하나님 앞에 나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게 되었나니](히10:19). 이 사실은 너무나 중요한 내용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기도하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성경도 많이 읽었고, 좋은 일도 많이 했어. 오늘은 기분이 좋고, 성질도 안 부렸고, 별로 죄도 짓지 않았어' 이것이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내 마음이 즐겁고도 밝은 양심을 소유했다고 해도 나를 하나님 보좌 앞으로 데려가는 것은 나의 기분, 내가 행한 어떤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하늘의 보좌로 데리고 가실만한 이유는 "언제나, 오직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근거합니다. 어떤 이는 내가 행한 죄 때문에 주님께 나아가지 못합니다. 가장 주님께 나아갈 필요가 있는 때가 바로 그런 때입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죄를 좀 해결하고 어느 정도 깨끗해지면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은 모두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자기의 의(義)를 기반으로 주님께 나아가려는 잘못된 의도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이 말한 ‘너희’에 해당한다면 우리는 엄청난 특권의 소유자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3-14).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남아 있게 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다 주시게 하려 함이라.](요15:16). 주님이 우리를 택하여 세운 이유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서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아버지께서 다 주시게 하려 함’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할 때 아버지께서 무엇이든지 다 주시도록 조처해 두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예수님이 직접 아버지께 구하는 것이나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예수를 기준으로 삼으란 것입니다. 신앙, 삶, 가치관, 생각 모든 것에서 예수님이 기준이 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무엇을 구하든지”라고 하셨는데, 이는 많은 성도들에게 믿음의 확신과 담대함을 준 말씀인 반면 믿음이 어린 형제들에게는 오해와 혼란을 불러 일으킨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란 말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란 말은 주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지, 주님이 아멘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주님이 Yes한 것은 무엇이든지란 뜻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주님이 허락하신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는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라면 아버지 하나님은 전적으로 다 응답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좀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자선을 베풀어도 예수의 이름으로 하면 받는 사람은 예수님을 기억하게 되지만 교회 이름이나 자기 이름을 내면 예수님께 감사하거나 찬양할 수 없습니다. 요즘 회교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테러를 저질러도 ‘알라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고, 건물을 부숩니다. 전쟁을 해도 자신들이 믿고 섬기는 ‘알라의 이름으로’ 합니다. 그래서 끔찍한 테러가 발생해도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범죄자의 얼굴이나 신상이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 문화, 이슬람 종교, 이슬람에 관한 기억이 강하게 자리잡습니다. 이들이 알라의 이름으로 테러를 자행하면 그 자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의 뜻이 아니라 자신들이 믿는 알라의 뜻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저항을 이슬람의 저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이들의 행위를 미워하지만 그 가운데 배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지 않는가?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렇게 죽음에 이르도록 사랑과 희생, 봉사와 섬김을 하지 못하는가? 그런 것입니다.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 속에 예수란 이미지를 선명하게 남겨 두지 못하는가? 회개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17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행위에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골3:17)고 말합니다. 모든 말과 행동에 예수님으로 한다면 세상은 우리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을 기억하게 되고, 교회와 기독교 정신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 날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라.](요16:26a).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로 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아무 권세도, 권위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마귀도 그분의 명령에는 두려워 떱니다. 바다의 풍랑도 그분의 명령에는 잠잠해 집니다. 이는 주님의 이름에 있는 무한한 권세 때문입니다. 이 권세는 죄인들을 구원하는 구원의 권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란 이름은 구원의 근거입니다.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느니라.](행4:12). 그래서 마귀도 자신이 구원자인 것처럼 속일 때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며, 마귀의 사역자들 역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란 이름은 설교의 주제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강단에서 예수님을 선포하는 대신 윤리 도덕적인 설교만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귀를 긁어주는 설교는 인기는 좋을지 몰라도 영적 유익이 없습니다. 빌립의 설교 주제를 보십시오. [이에 빌립이 입을 열어 그 성경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에게 예수님을 선포 하니라.](행8:35)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다 정작 예수님을 선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전도의 주제, 설교의 주제는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오직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선포하고 또 예수님을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었음을 선포하노라.]4)(고후4:5). 예수님을 선포해야 할 강단이 다른 주제로 가득 참으로써 교회는 생명을 잃어 버렸고, 거룩함과 경건의 능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나눔, 섬김, 봉사 등과 같은 말만 교회는 생명이 없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만 그런 것은 예수님을 선포하면 자연스럽게 따라 오는 것들이지, 그런 주제가 예수님을 대신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란 이름은 사역의 목표입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자들이니라.](행15:26).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데는 많은 기쁨과 즐거움, 유익도 있지만 때로는 생명의 위협도 있습니다. 주님은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내 이름로 인해 받는 고난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으면 너희도 핍박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키리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보내신 그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요15:20-21).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난과 박해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란 이름은 모든 것을 굴복시키는 권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로 하여금 다 예수라는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빌2:9-10). 예수란 이름은 섬김의 동기입니다. [...이는 그들이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들에게서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하였음이라.](요삼5-8).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주님의 사역자들을 물질로 후원하는 이들을 칭찬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헌금을 하고, 아낌없이 드렸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서 무엇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자들을 위해 필요를 채우는데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이후에 이 말씀은 이후 신약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기도의 정형화된 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기도가 끝나는 기도문 말미에 주문(呪文)처럼 꼬리말을 붙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아무 의미없이 기도의 끝맺음은 이렇게 하는 것인가 보다란 생각으로 그렇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는 큰 잘못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예수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영화롭게 되도록 해야 합니다(행19:17,살후1:12). [이 일이 에베소에 거하는 모든 유대인과 그리스인들에게 알려지니 그들 모두에게 두려움이 임하고 주 예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니라.]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너희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2. 예수의 이름으로 말해야 합니다(행4:16-18,5:40-41). [...그들을 불러 명령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결코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라.] [이에 그들이 그의 말에 동의하고 사도들을 불러서 때리고 명령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하고 놓아 주니라.] 3. 예수의 이름을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행9:27-29). [바나바가 그를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다마스커스에서 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선포한 것을 밝히 말하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그리스파 유대인들을 논박하매 그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하거늘] 4. 예수의 이름으로 고난받아야 합니다(벧전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하여 비방을 받으면 행복한 자로다. 이는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심이라. 그분께서 그들 편에서는 비방을 받으시나 너희 편에서는 영광을 받으시느니라.] 5. 예수의 이름으로 죽어야 합니다(행21: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슬피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하는 것 뿐만 아니라 죽는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노라, 하니] 6.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야 합니다(마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그들 한 가운데 있느니라.] 7.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골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행위에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 8. 예수의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약2:7). 만약 저와 여러분이 입만 살아 있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예수란 이름은 사람들 가운데 조롱당할 것입니다. [그들은 너희가 일컬음을 받는 그 귀한 이름을 모독하지 아니하느냐?](약2:7).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감사하고, 선포하고, 고난받고, 결박당하고, 함께 모이고, 영광을 받으시도록 해야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권세이며,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