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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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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영혼 구원 (16)
lhyunsik

기도와 영혼 구원 2005-05-06 06:20:54, 조회 : 3 오늘은 [기도와 영혼 구령]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많은 기도 제목이 있지만 그 중에 단연 맨 앞에 와야 할 기도 제목 가운데 하나는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매일 매 순간 드려야 할 기도가 있다면 그것은 영혼 구원에 대한 기도입니다. 나는 전도하러 갈 수 없다고 하더라도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세계 선교는 기도하는 골방에서 시작됩니다. 기도는 선교의 씨앗이며, 영혼 구원은 기도의 열매입니다. 구세군(Salvation Army)의 창설자 윌리엄 부스는 말하기를, “인류의 마지막날이 가까워 올수록 교회마다 종교적인 형식은 있으나 성령의 능력은 없고 교회 조직은 화려해져 가나 예수가 없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오늘날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이미 그런 시대가 벌써 와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회개없는 구원, 믿음없는 경건, 성령이 없는 교회, 열매없는 은사 등, 말씀없는 은혜 등은 모두 기도하지 않는 성도들이 스스로 초래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구원받으면 그 즉시 영혼을 구원해야겠다는 구원의 열정이 불타오릅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갈수록 그런 열정은 식어지고, 점점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합니다. 요즘 연말이 다가오자 “구세군”에서는 자원 봉사자를 받아서 마켓이나 길거리에서 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의 예언은 바로 자기 교단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예화) 윌리엄 부스 대장이 마차를 타고 가면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검푸른 바다에는 성난 파도가 솟아올랐다가 부서지고, 몰려왔다가 물러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성난 파도 속에는 수도 없는 군중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위로 솟았다가 다시 물 속으로 사라지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면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바다 속에서 큰 바위가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대단히 큰 바위여서 그 위에 오르기만 하면 파도의 위험을 면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위 위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받은 것에 감사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새끼줄을 내려보내기도 하고, 나무나 사다리 같은 것을 내려보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만 쉬고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오히려 노래를 부르고 즐기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구조 작업을 하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자 집도 짓고, 쉴 공간도 마련하고, 행사를 준비하느라 이제 아무도 떠내려가는 혼들을 건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저 넓은 바위에 끌어올리기만 하면 살 수 있는데 저럴 수가 있나!' 윌리엄 부스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넓은 바위는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시고 바다에 빠져서 비명을 지르고 구원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죄악 세상에서 구원을 호소하고 있는 군중들입니다. 이 환상이 부스로 하여금 전 생을 걸어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기도를 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에 그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참으로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들이 적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추수하시는 {주}께 기도하여 그분께서 자신의 추수 밭에 일꾼들을 보내 주시도록 하라, 하시니라.](마9:37-38).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 구령의 일꾼들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절박한 기도 제목이 많이 있다 하더라도 이 기도 제목은 결코 빠질 수 없는 기도제목이며, 쉴 수 없는 기도입니다. 곡식이 익으면 황금색 물결로 누렇게 되었다가, 그때도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하얗게 됩니다. [너희가 말하기를,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이미 희게 되어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35). 이 말씀은 영혼 구원의 급박함, 긴박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곡식은 추수해야 할 때를 놓치면 헛농사가 됩니다. 하얗게 되어도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땅에 떨어져 썩어 버리고 마는 것처럼, 영혼을 빨리 제때에 추수해 들이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주님은 추수할 것이 많을 뿐만 아니라 곡식이 희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더 많은 일꾼들이 필요하고, 일하는 일꾼들은 더 수고해야 하는 시점이란 것입니다. 이런 때에 뒷짐지고 있거나 낮 잠 자는 일군들은 매를 더 맞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 매를 맞고, 위협을 받은 후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제 그들의 위협을 보시옵고 또 주의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주의 말씀을 말하게 해 주시오며](행4:29). 그들은 위협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 위협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담대함’을 구했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 전파를 위한 기도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복음 전파를 위해 부름 받았고, 세움을 입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면 참으로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고전9:16). 복음 전파는 해도 되고, 말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유가 있으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 전파는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며, 화가 미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모든 영적인 복을 받은 존재이지만 두 가지 경우에 저주가 선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말한 것처럼 복음을 선포하지 않을 때 ‘내게’ 화가 있습니다. 둘째, 다른 복음을 전할 때 화가 있습니다(갈1:8-9). 모두 다 복음 전파에 관련된 화라는 사실을 금방 알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禍)로다!! 복음을 전하되 은혜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면 화(禍)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은혜의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직업은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성도들은 정작 기도해야 할 때는 기도하지 않고, 기도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능력 있고, 지혜 있고, 권세 있고,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꾸준히, 항상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에 주님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첫째도 기도하는 사람이요, 둘째도 기도하는 사람이며, 셋째도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성령의 동역자요,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사역자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 가지 직업을 갖습니다. 디모데후서 2:4-7을 보십시오. [전쟁을 치르는 자는 아무도 이 세상 삶의 일에 얽매이지 아니하나니 이것은 자기를 군사로 택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또한 우승하려고 애쓰는 자가 법대로 하지 아니하면 월계관을 얻지 못하며 수고하는 농부가 먼저 열매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 마땅하니라. 내가 말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라. 주께서 모든 일에 네게 깨달음을 주시기 원하노라.](딤후2:4-7). 전쟁을 치르는 군사, 우승하려고 애쓰는 자, 수고하는 농부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직업입니다. 첫째, 전쟁을 치르는 군사입니다. 군대는 일반적으로 영토를 빼앗거나 자원을 빼앗는 무엇을 차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국가 간의 전쟁이 주로 자원 확보, 영토를 위한 싸움이라면 영적 전쟁은 혼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입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마귀들에게 잡힌 혼들을 구출해야 합니다. 복음 전파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원수들을 파하는 전쟁입니다. 기도 역시 영적 전쟁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을 통해 기도함으로 적(適)을 물리친 기도의 영웅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모세는 기도로 아말렉을 물리쳤습니다. 사무엘은 기도로 블레셋을 물리쳤습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로 앗시리아를 물리쳤습니다. 이런 예는 너무나 많습니다. 신약에서 성도들의 기도는 눈에 보이는 외적을 물리치는 수단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을 대적하고 물리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도로 마귀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설교자의 무기는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설교는 결코 회심의 열매를 맺지 못하며, 회개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성도들의 무기 역시 기도입니다. 성령의 검은 기도 없이는 아무 것도 벨 수 없으며,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복음에 관한 한 풍성한 계시와 조명을 받았던 사도 바울은 전도자의 직무를 완수하기 위해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살전5:25)고 부탁했습니다. 바울은 누구에게 “우리를 위하여 헌금을 보내라”, “우리를 위하여 교회를 지으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살전5:25)는 부탁은 성경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됩니다. 그가 진정으로 필요로 한 것, 가장 필요로 한 것은 “성도들의 기도”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 역시 누구보다도 더 열렬하게 많이 기도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누군가의 기도의 조력(助力)을 필요로 했습니다. 기도는 설교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며, 그의 능력을 배가시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빠르고 강력하게 전파되도록 하며, 말씀이 효과적으로 성도들의 마음 속에 심기도록 합니다.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설교자를 해치는 것이며,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지옥으로 향하는 죄인들의 눈길을 복음으로 돌리지 못하도록 커튼을 치는 것이며, 그들을 지옥으로 더 빨리 가도록 촉구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마귀에게 항복하는 것이며, 백기를 걸어 놓고 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 전파는 가장 강력한 영적 전쟁이며, 기도는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둘째, 우승하려고 애쓰는 선수입니다. 운동 선수의 목표는 우승입니다. 상금을 타고, 명예를 얻는 것입니다. 생활 스포츠는 참가하는 데만도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프로 선수나 운동을 삶의 한 방편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그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을 그냥 선수라고 하지 않고, ‘우승하려고 애쓰는 선수’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종목이 바울의 말대로 권투(격투기)와 달리기 선수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각종 게임에서 뛰는 운동 선수들을 너무나 자주 보기 때문에 이 구절을 한결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권투 선수는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운동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먹는 것, 자는 것까지 규칙적으로 해야 하며, 절제해야 합니다. 그들은 오직 한 가지 목표한 우승이나 메달을 따는 것에 힘을 집중합니다. 다른 모든 운동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권투(격투기)와 달리기는 매일 일정량의 운동을 쉼없이 해야 하는 종목입니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매일 쉼없이 해야 하는 운동에 속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적게는 자신의 필요에서부터 남의 유익과 필요, 혼들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와 같이 달리되 목표가 없는 것같이 하지 아니하고 또 이와 같이 싸우되 허공을 치는 자같이 하지 아니하며](고전9:26). [경주할 때에 달리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리라.](고전9:24). ‘이와 같이’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세 번에 걸쳐 ‘이와 같이’라고 말합니다. 기도는 경주하는 선수같이, 권투 선수가 정확하게 상대를 목표로 주먹을 달리는 것같이, 달리는 선수가 상을 받기 위해 달리는 것같이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수들은 피땀 흘려가며 열심히 훈련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먹고, 자고, 놀면서 우승한 선수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분명한 목표를 정해 놓고 달리는 선수처럼 분명한 기도 제목과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떨쳐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리며](히12:1). 지속적이고 꾸준한 자기 관리가 없으면 선수는 금방 몸무게가 불어나고, 둔해 지며, 경기를 할 수가 없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지속적인 기도 생활이 없이는 금방 영적 감각이 무디어지고, 성장은 멈추고 대신 비만이 찾아옵니다. 때로 살이 찐 것을 건강해 졌다고 생각하는 바보들도 있습니다. 체력과 체격은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건강하게 보이는 몸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달려갈 수 있는 체력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리며, 상을 받도록 달리려면 체격이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체력이 좋아야 합니다. 격투기를 해 보신 분들은 3분 3회전을 뛰는 것이 얼마나 많은 체력을 소모하는지 잘 압니다. 20Km 단축 마라톤이 얼마나 많은 체력을 소모하는지 해 본 사람은 압니다. 주님은 체격을 키우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체력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경건의 훈련을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직 속되고 늙은 부녀(婦女)들이 꾸며낸 이야기들을 거부하고 도리어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훈련하라. 이는 육체의 훈련은 유익이 적으나 경건은 모든 일에 유익하며 현재의 생명과 앞으로 올 생명의 약속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니라.](딤전4:7-8). 모든 성도는 날마다 성경을 읽고, 그것을 묵상하고, 기도함으로써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훈련하여 강건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 안에서 강건한 자가 되고-[그러므로 내 아들아, 너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 안에서 강건한 자가 되고](딤후2:1), 성령을 통하여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며-[그분께서 자신의 영광의 풍부함에 따라 자신의 영을 통하여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3:16), 주님의 강력한 권능 안에서 강건해야 합니다-[끝으로 내 형제들아, {주} 안에서와 그분의 강력한 권능 안에서 강건하라.](엡6:10, cf 골1:11). 우리가 이렇게 강건하게 되면 우리는 복음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강건하게 하시는 것은 달릴 수 있고, 싸울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복음 전도자 D.L Moody는 전도하지 않는 200명의 신자가 있는 교회보다 전도할 줄 아는 10명의 신자가 있는 교회가 훨씬 낫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우리를 강건하게 하시는 이유는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나와 함께하사 나를 강건하게 하심은 그 선포한 말씀이 나로 말미암아 온전히 알려져 모든 이방인들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獅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딤후4:17). 우리가 강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효과적인 복음 전파를 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은 후 자신의 일생을 온전히 기도에 전념했고, 기도로 도울 것을 요청함으로써 자신의 달렸습니다. 그는 권투(격투기) 선수로서 싸웠고, 달리기 선수로서 달렸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은즉](딤후4:7). 그가 평생을 달려 간 길은 복음 증거와 영혼 구원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결코 나를 움직이지 못하며 또한 내가 나의 생명조차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니 이것은 내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님께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기쁨으로 끝마치고자 함이라.](행20:24). 우리는 바울의 본을 따라 평생 복음 전도자의 삶을 마치 마라톤 경주하는 선수와 같이 꾸준히 하며, 생을 마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수고하는 농부입니다. 농부의 모든 수고는 수확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농부가 일하는 것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농부로서의 그리스도인이 수고하는 것은 당연히 영혼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며 오래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농부처럼 말씀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열매를 얻기 위해 수고하는 농부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혼 구원을 위해서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복음으로 혼을 구원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수고하는 농부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심어야 합니다. 뿌릴 때는 후하게 뿌려야 후하게 거둡니다. 기도를 해도 많이, 힘에 넘치게,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생각나는 사람 몇 명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교회와 국가와 온 세상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한 두 가지를 한 두 번만 기도하지 말고, 주님의 모든 영적인 복을 많이 받도록 후하게 기도해 주십시오. [오직 내가 말하려는 바는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후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후하게 거두리라 하는 것이라.](고후9:6). 농부는 심고 거두는 법칙을 잘 체득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뿌리지 않고, 거두기를 기대하는 농부는 없습니다. 콩을 뿌리고 팥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죄악을 뿌리고 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혼 구령과 부흥을 위한 기도 없이 부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욕심만 구한 기도는 죄인들의 영혼에 어떤 복음의 빛도 비출 수 없습니다.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임이라. 자기 육신을 위하여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는 것을 거두되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갈6:7-8). 어떤 성도들은 기도를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무엇을 얻는 초자연적인 요술 방망이처럼 생각합니다. 기도는 힘들고 고된 노동입니다.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다니엘의 금식 기도나 느헤미야의 금식 기도가 결코 쉽고 가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눈물을 뿌리며, 혼을 쏟아 놓고 기도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는 말씀대로 그런 농부의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고, 온 몸이 탈진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는 인디언 말을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인디언들의 혼을 구원하겠다는 그의 뜨거운 기도로 인해 인디언 원주민들의 혼들을 수확했던 것입니다. 농부는 인내해야 합니다. 기도 역시 인내해야 합니다. 농부가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시간이나 기도한 후 혼들을 거둘 수 있는 시간은 거의 같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하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을 때까지 오랫동안 인내하느니라.](약5:7). 열매를 맺는데는 때가 있습니다. 어떤 유실수는 씨를 심어서 열매를 얻는데 6년이 걸립니다. 어떤 것은 10년이 넘게 걸리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잘 행하다가 지치지 말지니 이는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면 정하신 때에 거둘 것임이라.](갈6:9). 아무리 늦어도 몇 개월은 걸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기도는 금방 응답되지만 영혼 구령을 위한 기도는 좀처럼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가족, 친지, 친구들의 혼을 위해 기도하다보면 지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죠지 뮬러는 고아들이 먹을 빵이 없어 기도하면 항상 식사시간이 되기 전에 기도 응답을 받았지만 한 친구의 구원을 위한 기도는 무려 52년을 기도했지만 그가 죽고 나서야 응답을 받았습니다. 농부는 수고해야 합니다.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기도 역시 수고해야 합니다. 모든 기도는 영혼의 수고가 동반됩니다.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4바람을 살피는 자는 씨를 뿌리지 못할 것이요, 구름들을 주목하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로다. 6/너는/ 아침에 네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네 손을 금하지 말라. 그 까닭은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은 그 둘 다 똑같이 좋을는지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전11:4,6).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도가 먼저 응답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적 성장을 합니다. 반면 열심히 가르치고 기도한 사람은 좀처럼 마음이 변화되지 않고, 성장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농부는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보다 땀을 많이 흘리는 수고를 하지만 어느 직업보다도 하늘을 더 많이 쳐다보아야 하는 직업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끊임없이 하늘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믿는 성도라면 누구나 복음 전파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며,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며, 명령이란 사실을 알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며, 말씀에 순종하는 첫 단계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를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마28:19-20). 하나님에게 사명을 받았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복입니까? 하나님의 손으로 지음 받은 아담이 에덴의 동산에서 “열매를 맺으라, 번성하라...”는 복된 사명을 받았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지음받은 우리 역시 동일한 복된 사명을 받았습니다. 열매를 맺는 일, 번성하는 일은 생명을 부여받은 새 생명의 특권입니다. 죽은 것은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고, 번성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복음의 씨앗이 발아하고, 자라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가서 열매맺게 하려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남아 있게 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다 주시게 하려 함이라.](요15:16). 기도 없이는 어떤 열매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복음 전파의 대업(大業)을 맡기셨습니다. 주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만주의 주로서 우리를 하나님의 왕국의 공직자로 임명하시고, 영혼 구령을 명하셨습니다. [또 회개와 죄들의 사면이 그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 선포되어야 하리니](눅24:47).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막16:15).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임명하신 영적 공무원입니다. 공무원으로서 우리의 신분은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대사의 직무 수행은 복음 전파이며, 영혼 구령입니다. 혼을 이겨 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기도의 힘으로만 가능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결박당한 대사가 되었고, 결박 중에 있었지만 그의 기도 제목은 자신의 감형이나 석방이 아니라 복음 전파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언제나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고, 성도들에게 그것을 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수많은 기도 제목이 있었고, 항상 깨어 기도하며,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특별히 자신을 위한 기도 제목은 늘 ‘복음 전파’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보냄을 받았습니다. 두 구절을 봅니다. [그런즉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大使)가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너희에게 간청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해하라.](고후5:20). [또 나를 위하여 /기도할 것/은 내게 말 할 기회를 허락하사 담대히 입을 열어 복음의 신비를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결박당한 대사(大使)가 된 것은 나로 하여금 결박 중에서도 마땅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엡6:19,20). 그가 로마의 옥중에서 쓴 골로새서에서 그는 자신을 위해 이렇게 기도해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아울러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께서 말씀 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신비를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또한 이것을 위하여 결박당하였나니](골4:3). 복음 전파는 바울의 능란하고 해박한 성경 지식과 풍성한 계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셨듯이, 우리는 늘 영혼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나는 전도하러 나가지 못한다 해도 그는 기도해야 할 의무를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선교하러 먼 외국이나 오지로 나가지 못한다 해도 기도를 쉬어서는 안됩니다. 심지어 감옥에 갇힌다 해도 풀려나는 것보다 더 급한 기도는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해 달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와 영혼 구원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있습니까? 기도해야 한다는 말은 매주 설교 시간마다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너무나 작습니다. 왜 이렇게 열매가 없을까? 왜 이렇게 성장하지 않을까? 왜 이렇게 부흥이 없을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너희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이런 것들을 구했다면 우리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챨스 피니는 ‘부흥론’이란 자신의 책에 기도에 대한 실화 한 편을 소개해 두었습니다. “오랫동안 아무런 부흥이 일어나지 않았던 도시가 있었는데 교회는 거의 다 시들어가고, 젊은이들은 아무도 회심하지 않았으며, 절망은 커가기만 했습니다. 그 도시 한 귀퉁이에 나이 많은 한 대장장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을 심하게 더듬는 사람이어서 그의 말을 듣는 자체가 고통일 정도였습니다. 어느 금요일 그가 혼자 자신의 일터에서 일을 하는 동안 그의 마음은 교회와 죄인들의 상태에 대해 크게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뇌는 너무나 커서 일을 중단한 채 문을 닫고, 오후 내내 기도에만 전념했습니다. 주일에 그는 목사님을 찾아가서 기도 모임을 열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주일 저녁에 사람이 거의 모이지 않을 것을 염려해서 교회가 아닌 큰 가정집에서 집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사람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모였고, 처음에는 서먹한 분위기에서 조용했으나 잠시 후 한 죄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했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모두가 죄에 대한 깊은 자각을 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죄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금요일 그 대장장이 노인이 기도를 시작한 때 부터였던 것입니다.”(Charles Finney, On Revivalism). 사역자들은 누구보다도 많은 기도를 해야 하지만 또한 많은 기도의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기도로 도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로 함께 도울지니 이것은 많은 사람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의 선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우리를 대신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후1:11). 여기서 우리는 사람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주님은 바울과 그 일행을 직접 도우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많은 사람을 사용하여 은혜의 선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기도로 목사들, 선교사들, 교사들을 돕고, 우리를 사용하여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의 뜻을 마음으로 받아 도와야 합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와 그 사역은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의 사역의 초점 역시 복음 전파와 혼들의 구원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주로 성경 공부와 기초 다지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초를 다 다진 후에 복음 전파를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작업은 평생을 소요하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혼들을 이겨 오면서 함께 자라야 합니다. 잠언 기자는 말하기를,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 나무니 혼들을 얻는 자는 지혜로운 자니라.](잠11:30)고 했습니다. 혼들을 얻는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여 그의 혼을 건져 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내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하고, 외적으로는 복음을 통해 혼을 얻어 오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혼을 얻는 것이 의로운 자의 열매입니다. 사도 바울은 특별히 로마에 가서 혼들을 얻고자 했습니다.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이것을/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도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처럼 어떤 열매를 얻고자 하여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이제껏 막혔도다.)](롬1:13). 후에 결국 그는 로마로 가서 열매를 얻었습니다. 혼들을 얻는 것이 바로 열매입니다. 복음이 우리 안에 임하면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고, 밖으로는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데 혼들을 얻어 오는 것이 가장 큰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평생동안 복음을 통해 한 명의 혼도 구원받게 하지 못했다면 주님 앞에 이 기도를 드려야 함을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6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그것을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안 그 날부터 온 세상에서처럼 너희 안에서도 열매를 맺는도다. 10{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하시고](골1:6,10). 성령의 열매는 은혜를 안 그 날부터 맺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수 십년이 걸리는 일이 아닙니다. 복음을 듣고, 은혜를 안 그날부터 열매는 우리 안에 맺힙니다. 하지만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의 기도 제목이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안에 계신 성령과 말씀이 주님의 가지 된 우리 몸을 통해 행동으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파는 내 안에 맺힌 생명의 열매가 다른 사람들에게 씨를 뿌리는 작업입니다. 복음 전파는 유업의 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의 형제들 곧 나의 기쁨이요 왕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굳게 서라.](빌4:1),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환희의 왕관이 무엇이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 앞에 있을 너희가 아니냐?](살전2:19). 이 왕관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영광스런 일입니까? 그래서 다니엘은 [지혜 있는 자들은 궁창의 광채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들을 의로 돌아서게 하는 자들은 별들과 같이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단12:3)고 말했습니다. 혼을 이겨 오는 일은 지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복된 일입니다. [그 죄인을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한 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인즉 그로 하여금 이것을 알게 할지니라.](약5:20).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빚진 자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인이나 바바리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지혜 없는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1:14). 빚진 자는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듯이 우리는 복음 전파의 의무가 있습니다. 먼 훗날 지옥에 간 혼들이 하나님의 심판석에서 우리에게 왜 당신은 내게 빚을 갚지 않았소!라고 말한다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먼저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은 반드시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불문(不問)의 사실입니다. 영혼구원을 위해서 몸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는 일은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이지만 이것보다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며, 훌륭한 동역자입니다.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는 "주여, 나에게 영혼을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나의 영혼을 가져가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프란시스 자비에르(Francis Xavier)는 영혼하나 구원하기 위해 매를 10,000대 맞으라고 해도 맞겠다고 했습니다.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대장은 어느 날 지옥불을 보고 나서 이렇게 미지근한 태도로 전도해서 안되겠다고 해서 지옥에 떨어질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군대를 조직해서(구세군:Salvation Army)나팔을 불며 전도했습니다. 그가 1904년에 영국왕 에드워드 7세가 버킹엄 궁으로 초대해서 앨범(Album)에 싸인하라고 하니까 75세난 그는 허리를 굽혀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각하, 어떤 사람의 야망은 미술에 있고 어떤 사람의 야망은 명예에 있고 어떤 사람의 야망은 황금에 있사오니 나의 야망은 오직 사람의 영혼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영혼하나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물구나무를 서서 춤이라도 추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모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하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며 율법 없는 자들에게 (내가 하나님께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그리스도께 율법 아래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 어찌하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고전9:19-22). 이것이 바로 성육신의 원리입니다. 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인간의 모습을 입으신 것 같이 우리 역시 진정한 자유자이지만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도해야 하며, 기도의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서처럼 자유로운 행로를 가져 영광스럽게 되고](살후3:1). [아울러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께서 말씀 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신비를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또한 이것을 위하여 결박당하였나니](골4:3).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학식 있는 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하여금 피곤한 자에게 때에 맞는 말을 할 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일깨우시되 나의 귀를 일깨우사 학식 있는 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는도다.](사50:4).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각자 그들에게 필요한 말을 해야 하는데 주님이 때에 맞는 말을 할 줄 알게 하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시어 병든 자를 고치시고, 상한 자를 싸매시고, 낙담한 자를 위로해 주시며, 죄의 사슬에 묶인 자를 풀어 주십니다. 시편 107:20, [자신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며 멸망들에서 그들을 건지셨도다.](시107:20).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자신의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들이 흐르는도다.](시147:18). 저와 여러분이 모두 말씀을 받아 말씀을 전할 수 있기 위해 기도하는 종이 되시기를 빕니다. 말씀이 가득하면 복음 전파는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그분에 대하여 언급하지 아니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분의 말씀이 내 마음 속에 타오르는 불 같아서 내 뼈 속에 사무치니 내가 참기에 지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노라.](렘20:9). 엘리후는 자신이 말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이는 내게 말할 것이 가득하며 내 안에 있는 영이 나를 강권하기 때문이로다.](욥32:18).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만 이렇게 말함으로써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내 안에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 앞에 쏟아 놓을 때 복음 전파가 되고, 하나님 앞에 쏟아 놓을 때 기도가 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도 주님의 말씀이 필요하고, 마음이 뜨거워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우므로 내가 생각에 잠길 때에 불이 붙으니 이에 내가 내 혀로 말하기를,](시39:3). 시편 기자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풍성히 거하면 복음 전파든지 기도든지 무엇이든 자유로운 법입니다. 요즘 내 안에 이런 뜨거운 열기가 없다면 이 시간 기도와 성경 읽기라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모두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러 나가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