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ON
추천업소
추천업소 선택:
추천업소 그룹 리스트
  • 식품ㆍ음식점ㆍ쇼핑1
  • 부동산ㆍ건축ㆍ생활2
  • 미용ㆍ건강ㆍ의료3
  • 자동차ㆍ수리ㆍ운송4
  • 관광ㆍ하숙ㆍ스포츠5
  • 이민ㆍ유학ㆍ학교6
  • 금융ㆍ보험ㆍ모기지7
  • 컴퓨터ㆍ인터넷ㆍ전화8
  • 오락ㆍ유흥ㆍPC방9
  • 법률ㆍ회계ㆍ번역10
  • 꽃ㆍ결혼ㆍ사진11
  • 예술ㆍ광고ㆍ인쇄12
  • 도매ㆍ무역ㆍ장비13
  • 종교ㆍ언론ㆍ단체14
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74 전체: 178,868 )
마태복음(3)
lhyunsik

마태복음(3) 2005-05-22 06:45:17, 조회 : 6, 추천 : 0 말씀: 마5:1-48 요절: 마5:48 5장에서 7장은 크리스찬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산상수훈이라고 일컫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사실 산상수훈은 천년 왕국의 헌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곧 다가올 왕국에서 왕이되실 주님께서 어떤 왕국을 건설하실 것인가?와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입체적인 요약입니다. 누가 읽어보아도 이 시대에 산상수훈의 가르침에 따라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율법을 훨씬 능가하는 ‘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율법도 우리에게 멍에가 되고, 아무도 지킬 수 없는 것이었다면 산상수훈의 말씀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오늘날 교회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적용하고, 교리적으로는 누구에게 해당되는 말씀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장에서 왕의 계보와 어떻게 탄생했는지 구약 성경으로 입증했고, 2장에서 어디서 태어났는지 성경과 동방의 현자들을 통해 입증했고, 3장에서 왕의 전령 침례인 요한과 성부와 성령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자신을 왕으로 소개받고, 왕국의 건설이 가까웠음을 선포했습니다. 4장에서 왕은 남을 다스리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철저히 시험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써, 왕국을 받을 자로서 검증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친히 제자들을 부르시고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4:17)며 온 갈릴리에 선포하시고 이적과 표적을 통해 증거를 확실히 하셨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왕국을 세우기에 앞서 왕국의 성격과 왕국의 헌법이 온 백성들에게 선포되었습니다. 산상 수훈은 결코 교회의 교리로 선포된 것이 아닙니다. 이 때는 교회도, 크리스천도 없을 때였습니다. 심지어 12 사도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마10). 산상 수훈은 영적으로 많은 교훈을 주고,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지만 교회 시대에 그대로 문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산상 수훈의 핵심은 지금까지 율법 아래에서 살아온 유대인들에게 외적인 의, 종교적인 의, 육신의 행위보다 하나님의 의(義), 내적인 의(義)가 훨씬 더 중요한 것임을 말해 줍니다. 산상수훈에는 십자가도 보혈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의 회개와 고백도 없습니다. 거듭남도 없습니다. 부활에 관한 말씀도 없습니다. 반면 가장 작은 율법 하나라도 행하고 지키라고 말합니다(5:19).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갈보리의 보혈의 힘을 덧입고 많은 의를 행할 수 있지만 아무도 율법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를 염두에 두고 본문에 들어가야 합니다.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나아오매 그분께서 입을 열어 그들을 가르쳐 이르시되,](1-2). 장장 3장에 걸친 주님의 설교는 그 때 당시 백성들은 전혀 들어 볼 수 없는 혁신적인 설교였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의는 외적 행위의 문제라고 설교한 반면(마23:23-28), 주님은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1-16). 바리새인들은 죄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행위의 문제로 가르친데 반해(눅18:9-14), 주님은 죄란 외적인 행위보다 먼저 마음의 문제라고 가르치셨습니다(5:17-48).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종교 행위를 한데 반해 주님은 사람에게는 숨기고 하나님께 보이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6:1-18). 바리새인들은 탐욕에 찌들어 돈을 탐했던데 반해, 주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설교하셨습니다(6:19-31).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을 빠르게 판단했지만 주님은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7:1-2). 이런 주님의 말씀은 혁명적인 설교였으며, 백성들이 놀랄만한 것이었습니다. 3절부터는 소위 말하는 8복입니다. “복되도다”로 시작되는 이 설교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보여 주는 하나님의 인물관, 하나님의 사람보는 기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돈많고, 학식있고, 인물좋고, 권세있고, 가문좋은 사람들을 복되도다란 기준에 넣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은 누구의 것입니까? 힘있는 자들의 것, 부자들의 것, 권세있는 자들의 것, 악인들의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인정받고, 복된 사람, 출세의 지름길은 세상과 너무나 달라서 영이 가난한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영이 가난한 자들을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영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상한 영, 통회하는 영을 소유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3절은 자신에 대한 태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영이 가난한 자들을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임이요.](3). 이사야 61:1,2 [주 하나님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온유한 자에게 좋은 소식을 선포하게 하셨음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를 싸매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감옥에 결박된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66:1-2). 마음이 상한 자들은 주님의 위로와 치료를 받지만 마음이 나뉘어지고, 갈라지고, 두 마음을 품는다면 징계를 받습니다. [이는 이 모든 것을 내 손이 만들었기 때문이라. 그것들이 지금까지 존재해 왔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오직 가난하고 영으로 통회하며 내 말에 떠는 자는 내가 보살피느니라.](사66:2). 이사야 57:15, [이는 높고 높으시며 영원히 거하시고 이름이 거룩이신 이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고 또한 통회(痛悔)하며 겸손한 영을 지닌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것은/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들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57:15). 4절은 죄에 대한 태도를 말씀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4). 죄에 대해 애통해 하고, 회개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며 회개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위로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죄에 대해 무감각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마치 한잔의 커피 마시듯 가볍게 먹고 마시며, 그 속에 뒹굴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울며, 금식하며, 회개했는지 주의 깊게 살펴 보시기바랍니다. 시편34:18, [[주]는 상한 마음을 가진 자들을 가까이 하시며 통회(痛悔)하는 영을 가진 자들을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이 세상의 슬픔은 사망에 이르게 하지만 주님을 향해 슬퍼하는 것은 회개에 이르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7:8-10, [비록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서신이 잠시 동안만 너희를 근심하게 한 줄을 내가 알기 때문이라. 이제 내가 기뻐함은 너희가 근심하였기 때문이 아니요, 오히려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에 이르렀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어떤 일에서도 우리로 인하여 상처를 받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거니와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기 때문이니라.](고전7:8-10).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한 자신의 죄에 대해 애통함으로써 용서받았고, 위로받았습니다(세 차례에 걸쳐). 반면 가룟 유다는 자신의 행위에 후회함으로써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5절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태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온유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임이요,](5). 이 말씀은 시편 37:11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상속하며 넘치는 화평 속에서 즐거워하리로다.] 온유함은 주님의 성품입니다. 온유함은 연약함이 아닙니다. 온유함은 하나님께 받은 성품을 사람들에 보이는 행위입니다. 디도서 3: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말다툼하는 자가 되지 말며 오직 부드러우며 모든 사람에게 온전히 온유함을 보이게 하라.] 온유한 자들은 주님으로부터 지도를 받고, 주님의 길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분께서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시리니 온유한 자에게 자신의 길을 가르치시리로다.](시25:9). 온유한 사람들은 주님을 더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온유한 자들도 스스로 더 많이 [주]를 기뻐하겠고...](사29:19a). 지금까지 역사상 온유한 자가 땅을 상속으로 받은 예는 없습니다. 이 말씀은 재림 때에 주님께서 유업으로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을 때 이 상속을 받습니다(롬8:17,딤후2:12). 상속은 구원과 달리 선물이 아니라 보상입니다. 6절은 하나님을 향한 태도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filled)것임이요,](6).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義)이십니다(롬10:1-4, 요4:14, 마6:33).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든, 구원받은 사람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구하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으로 충분히 채워질 것입니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진정으로 의에 주리고 목말라 있다면 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영접함으로써 충만해 질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4:31에서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해 짐으로써 이 말씀이 이 세대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긍휼(矜恤)을 베푸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을 얻을 것임이요,](7). 주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긍휼을 베푸셨습니다(엡2:4-7). 주님은 긍휼을 받은 자가 마땅히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8:25,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는 주께서 주의 긍휼을 보이시고 곧바른 자에게는 주의 곧바르심을 보이시며](시18:25). 누가복음 6:36, [그러므로 너희 아버지께서 긍휼을 베푸시는 것같이 너희도 긍휼을 베풀라.] 긍휼을 얻었기에 긍휼을 베풀고, 긍휼을 베품으로써 긍휼을 얻는 이런 선순환의 관계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확립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긍휼과 심판의 악순환의 고리가 맺어집니다. 야고보서 2:13, [이는 긍휼을 베풀지 않는 자가 긍휼 없는 심판을 받을 것임이니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기뻐하느니라.](약2:13).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 긍휼에 풍성한 자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8절입니다. [마음이 순수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8). 이 세대에 마음이 순수하다고 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말씀은 천년 왕국 때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마음에 악을 품은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불꽃 같은 눈동자를 감히 쳐다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시편 24:4, [곧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순수하며 헛된 것을 향하여 자기 혼(魂)을 들지 아니하고 속임수로 맹세하지 아니한 자로다.]란 말씀에서 인용한 이 구절은 분명히 재림 문맥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이 구절을 우리 안에 영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순수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성경의 목적은 성도의 머리를 굵어지게 하거나, 마음이 교만해 지게 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기록된 말씀의 목적은 온전한 사람,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데 있습니다. 순수한 마음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람이 갖는 가장 기본적인 품성이요, 특징일 것입니다. [이제 이 명령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1:5). 혼탁한 세상에서 더럽혀지기 쉬운 것이 마음이요, 양심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순수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가? [너희가 /성/령을 통해 진리에 순종함으로 너희 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없이 형제들을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1:22). 성령을 통해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영과 혼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에 순종함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검은 숯덩이처럼 변하고 말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음으로서 순수한 마음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두번째 서신을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서신으로 /너희의/ 기억을 되살려 너희의 순수한 마음을 일깨우고자 함은](벧후3:1). 보혈의 능력은 언제나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겨 줍니다. 말씀의 물 역시 우리를 정결하게 해 줍니다. 주님은 지금 이 설교를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 참된 사람의 표준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며, 이런 삶을 갈구해야 합니다. 9절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9). 이 구절은 많은 종교인들이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화평케 하는 자들’은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들이나 인권상을 수상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은 원수지간이었습니다. 화평의 복음을 통해(롬10:15),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를 허물어뜨리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던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만드는 자들이 바로 ‘화평케 하는 자들’(peacemakers)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오히려 분란을 일으키고, 소동을 일으키는 trouble makers입니다. 주님의 탄생은 헤롯과 온 예루살렘을 소란케 했습니다. 주님의 사역은 온통 분란의 소용돌이였습니다. 제자들 역시 세상을 소란케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동료들 역시 소란케 하는 자였습니다. 사도행전 17:5,6 [¶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은 시기심에 차서 천박한 불량배들을 데려다가 무리를 지어 온 도시를 소란하게 하고 야손의 집을 습격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어떤 형제들을 끌고 도시의 치리자들에게 가서 외쳐 이르되, 세상을 어지럽게 만든 이 사람들이 여기에도 이르렀는데](행17:5-6).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못박힌 사람들이요, 세상을 못박은 사람들입니다. 절대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인해 가정에서도 분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1) 하지만 주님과 불화한 죄인들, 구원받았지만 육신대로 행함으로써 주님과 trouble이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peacemaker로 임명받았습니다. 에베소서 2:14,15,17 [이는 그분께서 우리의 화평이시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사 우리 사이의 중간 벽을 허무시고 원수 되게 하는 것 곧 규례들에 수록된 명령들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없애셨으니 이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 화평을 이루게 하시고 ...또 /그분께서/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에게 화평을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그들에게 화평을 선포하셨으니](엡2:14-15,17). 10-11절을 보십시오.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며 너희를 대적하여 거짓되이 온갖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10-11). 천년 왕국은 구약의 성도들, 신약의 성도들, 환란 성도들이 왕과 제사장이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들’은 아벨 때부터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의 왕국은 바로 이들의 차지입니다. 특별히 땅에 대한 약속이 없는 교회의 성도들은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음’으로 인해 왕국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면 또한 그분과 함께 통치할 것이요, 우리가 그분을 부인하면 그분께서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임이라.](딤후2:12).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멋있게, 평안하게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박해를 받도록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아무도 이런 박해로 인해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런 박해를 받도록 세우심을 받은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아느니라.](살전3:3).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예외 없이 박해를 받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다 핍박을 받을 터이나](딤후3:12). 주님은 우리에게 ‘하늘의 왕국’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구약의 믿음의 영웅들은 영웅적인 일대기를 산 것이 아니라 박해 가운데 일대기를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12). 8복 강화는 많은 교회에서 너무나 많이 설교되고 있지만 성도들이 이것을 삶의 표준으로 삼고자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산상수훈을 교회의 교리로 가르침으로써 성도들을 절망하게 하는 반면 어떤 교회들은 이것을 오직 천년 왕국의 교리로만 강조함으로써 성도들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유익을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이 구절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되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마땅히 영이 가난하며, 죄에 대해 애통하고, 주님처럼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해야 할 것입니다. 형제들을 향해 긍휼을 베풀고, 마음과 양심은 늘 순수함을 유지하고, 화평의 복음을 전함으로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되고, 이로 인해 핍박을 받는 것을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믿음과 소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현재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십자가에 못박힌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음에 합당한 삶과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13-16절은 일차적으로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땅의 소금입니다. 주님은 이들과 소금 언약을 맺으셨습니다(민18:19). 유대인들이 언약의 백성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버려졌습니다. 예레미야에는 이들이 어떻게 이방 땅에 버려지고 철저히 짓밟히는가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해 놓았는데, ‘버려져서’(cast out)란 말이 13번이나 나옵니다. 13절, [너희는 땅의 소금이나 소금이 만일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리요? 그 뒤에는 아무 쓸모 없고 다만 버려져서 사람들의 발 밑에 밟힐 뿐이니라.](13).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버려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만 이 말씀을 그리스도의 언어 생활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너희 말을 소금으로 간 맞추어 항상 은혜가 있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바를 알게 되리라.](골4:6). 주님은 우리 안에 소금을 둠으로써 화목하게 지내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소금이 만일 그 짠맛을 잃으면 너희가 무엇으로 그것을 맛내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9:50).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세운 도시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14)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모두 유대인들을 바라봅니다. 오늘날 국제 뉴스의 초점은 항상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의 문제입니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보도됩니다. 이스라엘은 예언의 시계였으며, 중심입니다. 이 말씀은 성도들에게도 그래도 적용됩니다. 주님은 믿는 자들을 빛의 자녀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눅16:18). 바울 서신에도 여러 번 등장합니다. 에베소서 5:8, [이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걸으라.](엡5:8). [너희는 다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5:5). 우리는 어떻게 빛을 비추는가?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빛을 받아 반사하는 것입니다. 달이 스스로 빛을 내지않고 태양으로부터 받은 빛을 내듯이 우리는 의의 태양이시며,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의 빛이 되고, 빛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16절,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로 하여금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16). 우리의 믿음은 그 자체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의 선한 행위를 통해 보여 질 수 있습니다. 디도서 2:7, [모든 일에 네 자신을 선한 행위의 본으로 보이며 교리에서 부패하지 아니함과 신중함과 성실함을 보이고](딛2:7). 마음 속의 믿음은 몸의 지체들을 통한 행위로 표출됩니다. 이는 가지들을 통해 잎이 나오고, 열매가 맺히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17-18절은 주님이 율법 폐기론 자가 아니라 율법의 완성자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 내가 율법이나 대언자들/의 글/을 폐(廢)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성취하러 왔노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성취되리라.](17-18). 구약의 많은 율법들이 주님의 몸을 통해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안식일 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안식일 법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을 통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음식에 관한 규례나 성전 의식에 관한 법들, 날이나 절기등에 대한 법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주님께서 그런 것들을 모두 자신의 몸으로 십자가에서 처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24, [손으로 쓴 규례들 곧 우리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규례들을 지우시고 그것들을 길에서 취하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으시고](골1:2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으로 인해 율법은 더욱 굳게 섰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을 통하여 율법을 헛되게 만드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 왜냐하면 율법의 역할이 모든 사람들을 죄 아래 가두고, 정죄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갈3:24).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 율법을 종결지으셨습니다2).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롬10:4). 18절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의 보존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은 영감으로 성경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보존하셨습니다3). 보존에 대한 약속은 시편12:6-7, 시편 119:89, 152, 이사야40:8, 마태복음 24:35, 베드로전서 1:24-25 등입니다. 제가 이 시간 단 1초도 걸리지 않고 개역 성경의 13구절을 암송하는 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영어를 단 한 줄도 몰라도 NIV 성경으로 18구절을 1초도 걸리지 않고 완벽하게 암송하는 법이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개역으로는 최대 13구절, NIV로는 최대 18구절까지 완벽하게 할 수 있는데 정답은 “없음”입니다. 참조-마17:21, 마18:11, 마23:14, 막9:44, 막9:46, 막11:26, 눅17:36, 눅23:17, 행8:37, 행15:34, 행28:29, 롬16:24, 계12:18을 펴 보시면 (없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20절을 하나님의 왕국과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서로 다름을 보여 줍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義)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코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20). 성도들은 세 가지 왕국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하늘의 왕국입니다. 이는 이 지상에서 세워질 정치적, 물리적, 메시야 왕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예루살렘을 수도로, 믿는 자들을 왕으로 온 땅을 다스리며 1000년 동안 왕국이 지속될 그런 왕국입니다. 그런데,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유대인들은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나을 가능성이 없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더 나은 의를 얻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믿는다면 ‘더 나은 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하늘의 왕국에서 왕노릇할 것인데, 우리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요, 믿음의 의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이며, 내적인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거듭날 때 들어가는 왕국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또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누가복음 17:20, 21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왕국이 어느 때에 임하느냐고 다그쳐 묻거늘 그분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왕국은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사람들이 이르기를, 보라, 여기 있다! 혹은, 보라 저기 있다! 하지도 못하리니 이는, 보라, 하나님의 왕국이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니라, 하시고](눅17:20-21). 로마서 14:17에 [이는 하나님의 왕국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화평과 희락(喜樂)이기 때문이라.](롬14:17). 21-48절은 왕국의 백성들이 행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 윤리입니다. 많은 부분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그 내용이 바울 서신서에 반복될 때, 우리의 교리적 적용을 할 수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주님은 여기서 외적 행위보다 내적 동기와 마음의 의도를 더욱더 강조하셨습니다. 이런 가르침은 모세의 율법이 제정된 이후로 한번도 행해지지 않는 설교였으며, 놀라운 해석이었습니다. 이는 율법의 수여자이신 주님께서 그 율법의 제정 목적과 의도를 낱낱이 밝힘으로써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입니다. 간음, 살인, 이혼, 맹세, 원수를 사랑하는 문제 등 주님은 엄격한 의를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이런 삶이 가능하다면 지상이 곧 천국이란 말이 통할 것입니다. 이런 세상이 오기 위해서는 첫째, 주님이 이 땅을 다스려야 합니다. 둘째, 우리 몸에 죄의 유혹이 없어야 합니다. 셋째, 마귀가 없어야 합니다. 넷째, 환경이 완벽해야 합니다. 이는 천년 왕국 때 문자 그대로 왕국 백성들에게 법으로 적용될 것입니다. 몇몇 몰지각한 세대주의자들처럼, 이 구절들이 나와 이 세대에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라면 말씀을 흘려들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높은 도덕률, 거룩함, 경건함, 의로움, 깨끗함 등에 대해서 우리는 철저히 자각하고 그런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성경은 눈으로, 입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발견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디도서 1:16에 이른대로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나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하니 가증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이요, 모든 선한 일에 버림받은 자들이니라.](딛1:16). 우리는 내주 하시는 성령을 힘입어 믿음으로,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고 마귀의 속임수와 유혹을 물리치고, 세상을 거부함으로써, 죄를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은혜가 나를 다스리게 함으로써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성령의 열매맺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5장의 결론은 마지막 절입니다. 48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하라.](48). 매 구절을 절절히 교리적으로, 영적으로 다 자세히 다루지 못한 것은 성경 공부 시간으로 미루고, 간략한 개요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5장은 왕국의 시민들이 왕국에서 지켜야 할 성경적 생활 규칙입니다. ------------------------------ 1) 내가 땅에 화평을 보내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보내러 왔노라. 이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딸이 어머니를,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여 불화하게 하려고 내가 왔기 때문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사람들이리라(마10:34-36). 2) 율법은 한시적인 것이었다. [이 성막은 단지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육신에 속한 규례들로만 유지되어 개혁(改革)의 때까지 그들에게 부과된 것이라.](히9:10). 3) ·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신4:2, 12:32) · 너는 그분의 말씀들에 더하지 말지니 이는 그분께서 너를 책망하실 터인즉 네가 거짓말쟁이로 드러날까 염려함이라.(잠30:6) ·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주의 집 뜰에 서서 주의 집에서 경배하려고 오는 유다의 모든 도시들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전하라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렘26:2) ·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 버리면 하나님께서 생명 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몫을 빼 버리시리라.(계22: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