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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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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2:1-28
lhyunsik

잠언(4) 2005-07-05 07:27:14, 조회 : 4, 추천 : 0 말씀: 잠언 12:1-28 요절: 잠언 12:28 잠언 12장입니다. 이곳과 잠언 18장은 주로 혀에 관련된 잠언입니다. 언어는 인간 생활에 가장 필수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은사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복과 화가 임합니다. 눈은 사람의 몸의 창이라면 입은 사람의 마음의 출구입니다. 마음 속에 가득한 것을 밖으로 드러내는 입을 통해 우리는 더럽게 됩니다. 마음과 입의 관계는 너무나 밀접하여 그 둘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1절을 훈계를 사랑하는 자와 책망을 싫어하는 자의 대조입니다. 책망을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습니다(1). [누구든지 훈계를 사랑하는 자는 지식을 사랑하거니와 책망을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1). 사람은 너무나 짐승 같아서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고 단지 하등 동물에서 진화한 고등 동물의 일종임을 스스로 선언할 정도이며, 학교에서도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간은 단지 짐승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짐승은 책망을 들을 줄 모릅니다. 짐승을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은 징계와 죽음뿐입니다. [길을 버리는 자에게는 징계가 괴로우며 책망을 싫어하는 자는 죽으리라.](잠15:10). 왜 오늘날 사람들은 부모나 선생님이나 친구나 다른 누구에게라도 훈계를 받고, 책망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진화론에 따른 교육, 자신의 조상이 짐승이요, 인간 역시 짐승이란 교육을 받고,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망을 싫어하는 인간이 짐승과 같다면 그들을 가르치는 교육 방법 역시 짐승 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어리석은 자의 등에는 회초리니라.](잠26:3). 2절은 선한 사람과 사악한 꾀를 부리는 사람의 대조입니다. 선한 사람의 대표적인 사람은 사도행전 10:1-6에 나오는 고넬료같은 사람입니다. 주님은 고넬료에게 구원의 은혜와 성령을 주셨습니다. 또 한명의 선한 사람의 전형적인 사람은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를 통해 하나님은 많은 은혜를 주셨으며, 무엇보다 교회에 덕을 세우게 해 주셨습니다. [이는 바나바가 선한 사람이요, 성령님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라. 이에 많은 사람들이 {주}께 더해지더라.](행11:24). 그의 이름은 ‘위로의 아들’이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위로했고, 교회의 사역에 합류케 했습니다. 바나바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마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선한 사람의 전형적(典型的)인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사악한 꾀를 뿌렸던 사람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였습니다(행5:1). 그들은 자신들의 낸 헌금으로 영적 명성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헌신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인정받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사악한 꾀를 부렸을 때 정죄하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사악함을 힘입어서는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로운 자의 뿌리는 흔들리지 아니하느니라.](3). 이것은 열왕기상하, 역대기상하의 왕들의 행적을 통해 너무나 잘 드러나 있습니다. 주님을 의뢰했던 왕들과 우상을 숭배했던 왕들의 차이는 너무나 확연해서 달리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덕스런 여인은 자기 남편의 왕관이거니와 부끄럽게 하는 여인은 그의 뼈 속의 썩은 것과 같으니라.](4). 룻이나 한나 같은 여자는 덕스러운 여자요, 남편의 왕관이었던 여자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남편과 가정을 믿음의 가정이요, 명문 가정으로 만들었습니다. 반면 부끄럽게 하는 여인은 남편에게 관절염이나 골수염같은 존재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의로운 자의 생각들은 올바르나 사악한 자의 계략들은 속임수니라.](5). 사람은 생각을 뿌리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인격이 되고, 인격은 운명이 된다고 합니다. 의로운 자들의 생각은 열매맺는 행동과 삶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의 생각을 아십니다. 사람의 생각은 어려서부터 악합니다. 사람의 생각들은 대부분 헛된 것들입니다.[[주]께서는 사람의 생각들을 아시며 그것들이 헛된 줄 아시느니라.](시94:11). 그래서, 생각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생각해야 할 것들을 생각함으로써 삶의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어떠함같이 그 사람도 그러하기 때문이라...](잠23:7). 메시야가 이 땅에 태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생각을 보십시오. 동방의 현자들은 별을 찾아 유대 땅으로, 헤롯의 궁으로, 다시 베들레헴으로 주인공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주님을 만나 뵙고 경배하는 것이었습니다. 헤롯의 생각은 속임수를 써서 메시야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시민들의 생각은 불안이었습니다. 6절입니다. [사악한 자들의 말들은 숨어 기다리며 피를 흘리는 것이로되 곧바른 자들의 입은 /사람/들을 건지느니라.](6). 사악한 자들의 말은 속임수를 베풀며, 살인을 위해 준비된 입으로서, 성경적인 예로는 역모를 준비하는 압살롬의 말들, 이세벨의 말,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말이 여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반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자고 촉구했던 바울의 입(롬15:25, 고전16:1-3), 전민족의 멸망을 구해낸 에스더의 입(에스더 7장), 주님의 진노로부터 목숨을 건 중보 기도를 했던 모세의 입(민14:13-19)은 사람들을 건진 입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리를 전하고, 구원의 복음을 전한다면 그 입은 사람을 건지는 입니다.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입을 가리켜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돌무덤이라. 그들이 자기 혀로 속임수를 쓰나니 그들의 입술 밑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들의 입은 저주와 악독으로 가득하며](롬3:13-14)라고 말합니다. 이사야는 주님 앞에서 자신의 입술이 부정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때에 내가 이르기를, 화로다, 나여! 이는 내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므로 망하게 되었음이니 곧 내가 입술이 부정한 백성의 한가운데 거하면서 내 눈으로 왕 곧 만군의 [주]를 보았음이라, 하였더라.](사6:5). 우리의 입을 정결하게 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뿌림받고, 말씀의 물로 씻음받아야 합니다. 순수한 마음에서 순수한 말이 나옵니다. 7절입니다. [사악한 자들은 쓰러져서 /더 이상/ 있지 아니하려니와 의로운 자의 집은 서리라.](7).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은 훌륭한 예입니다. [이때에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오랫동안 전쟁이 있었으나 다윗은 점점 더 강하게 되고 사울의 집은 점점 더 약하게 되니라.](삼하3:1). 주님은 우리의 집을 어디에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7:24-25,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하리라.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그 집이 무너지지 아니하리니 그 까닭은 그것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라.](마7:24-25). 육신적인 가문의 명예가 아니라 영적인 명문 가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의 삶은 자신을 일으키고, 집안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모두 왕손이며, 왕가의 제사장들입니다. 혈통으로는 더 이상 좋은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8절입니다. [사람은 자기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비뚤어진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8).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주의 종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현명한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권고와 훈계를 잘 들었기에 지혜로운 아들이 되었습니다. 반면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의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늙은 장로들의 권고를 버리고 자기 또래의 청년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다가 망했습니다. 르호보암은 마음이 비뚤어져 있었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복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들은 마지막 날에 가장 큰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9절입니다. [멸시를 받을지라도 종을 거느리는 자는 자기 자신을 높이고도 빵이 부족한 자보다 나으니라.](9). 이것은 영적인 면을 다룬 것이 아니라 상당히 인간적인 면을 다룬 것입니다. 메튜헨리는 이 부분을 주석하기를, “호위하는 사람은 없으나 자신의 힘으로 양식을 얻는 사람은, 고귀한 혈통과 화려한 의복을 자랑으로 여기나 필수품이 없는 사람보다 행복하다.”라고 했습니다. 멸시를 받을지라도 종을 거느리는 자는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지 못할지라도 중상주의(重商主義)를 주도한 계층이라면 자기 자신을 높이고도 빵이 부족한 자들은 게으른 부랑자들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들을 흔히 철학자 또는 사상가라고 높여 줍니다. 10절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자기 짐승의 생명을 중히 여기나 사악한 자가 긍휼히 여기는 것은 잔인하니라.](10). 경건한 사람은 작은 동물일지라도 필요없는 고통을 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자신이 그런 취급을 받으면 단 하루도 참을 수 없을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자주 합니다. 주님은 동물들을 먹을 양식으로 주셨지만 어느 누구보다 동물 애호가이십니다. 오늘날 사람보다 동물을 더 중시하는 동물 애호가들은 사실은 동물사랑> 이웃 사랑> 하나님 사랑의 잘못된 사랑을 하는 잔인한 자들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동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진화론에 따라 자기 조상들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독재자들 가운데 유난히 동물이나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사람의 생명을 파리보다 가볍게 여기면서 자기 집 개나 고양이에게는 시종을 달아서 섬기게 합니다. 나치 지도자였던 괴링은 자기 집 카나리아가 자고 있는 방에서는 불을 켜지 않았고, 아우슈비츠 책임자였던 자기 카나리아를 장미 숲에 묻으면서 울었다고 합니다.1) 사악한 자들의 긍휼은 실로 잔인하기 그지없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그 무수한 예들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여러 곳에서 동물을 향한 따뜻한 애정과 보살핌을 명하셨지만 결코 그들을 숭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신명기 22:1-4절은 길 잃어버린 소나 양을 못본체 하지 말고 반드시 찾아 주라고 하십니다. 길에 넘어진 나귀나 소는 일으켜 세워 줄 것이며, 안식일이라도 소나 양들이 빠졌을 때는 구해 주어야 합니다.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둥지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새끼나 알을 품고 있으며 함께 취하지 말라고 하십니다(신22:6). 뿐만 아니라 어미 새는 반드시 놓아주라고 하십니다(신22:7). 뿐만 아닙니다. 신명기 25:4, [소가 곡식을 밟을 때에 너는 소의 입에 마개를 씌우지 말라.](신25:4,고전9:9, 딤전 5:18). 사악한 자가 긍휼이 여기는 것은 대부분 아름다운 말로 행해지는 죄악들입니다. 전쟁을 축복하고 부추기는 종교가들의 입에는 항상 주의 뜻과 축복이 쏟아져 나옵니다. 우리는 헤롯을 향해 무례하게 뱉어 낸 침례인 요한의 책망이 점잖은 예루살렘 공회의 종교 지도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보다 훨씬 온유하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자기 땅을 가는 자는 빵으로 만족할 것이나 헛된 자들을 따르는 자는 명철하지 못한 자니라.](11). 이 말씀은 근면함, 자기 일에 대한 의무를 다할 것에 대한 명령입니다. 우리는 흔히 주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생계를 팽개치거나, 의무를 저버리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손수 일한 빵을 먹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자기 손으로 일하고, 자기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또 우리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같이 조용히 지내고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 4:11).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령하기를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 하였으니...이제 이러한 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우리가 명령하며 권면하노니 이러한 자들은 조용히 일하고 자기 양식을 먹을지니라.](살후3:10,12). 다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가족 부양을 해야합니다. 디모데전서 5:8,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부양하지 아니하면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못한 자니라.](딤전5:8). 이것은 육신의 가족들, 친족 뿐만 아니라 믿음의 가족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할지니라.](갈6:10). 그리고 궁핍한 이웃들을 향해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도둑질을 한 자는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말고 오히려 노동을 하여 궁핍한 자에게 줄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선한 일을 할지니라.](엡4:28). 많은 자선 사업가들이 있습니다. 무료 병원도 지어주고, 무료 양로원, 어린이 방, 고아원, 학교 사업 등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 손으로 일을 해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대부분 그들은 자기 손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의 손으로 일한 것들을 가지고 생색을 냅니다. 이것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계속적으로 ‘자기 손으로’, ‘자기 손으로’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사악한 자는 악인들의 그물을 원하나 의로운 자의 뿌리는 열매를 맺느니라.](12). 사악한 자가 가장 선호하는 그물은 통신망(network)입니다. Internet을 비롯한 net 문화에서 급격히 거짓말을 유포시킵니다. T.V, 라디오, 신무, 잡지, 컴퓨터의 그물(net)은 사실이 아닌 것들을 광고하여 사람들의 마음과 돈을 다 끌어들입니다. 13절입니다. [사악한 자는 자기 입술의 범죄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려도 의인은 고난에서 벗어나느니라.](13).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입니다. 한번 오류의 행렬에 마치면 계속되는 오류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잠언 18:7, [어리석은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며 그의 입술은 그의 혼(魂)의 올무가 되느니라.]고 했고, 마태복음 12:37에서는 [이는 네 말로 네가 의롭게 되며 네 말로 네가 정죄받을 것임이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와 같이 그들이 자기 혀로 하여금 자기를 덮치게 하리니 그들을 보는 자들이 다 도망하리로다.](시64:8)고 경고했습니다. 14절은 [사람은 자기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좋은 것으로 만족할 것이요, 사람의 손의 보답이 그에게 돌아가리라.](14).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과도 일맥상통하는 구절입니다. 신약 성경은 우리가 맺어야 할 입술의 열매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찬양입니다(히13:15). 우리의 입술은 믿음을 고백하고, 덕을 세워주고, 주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증거하는데 사용될 때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15절은 현대의 가치관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구절입니다. [어리석은 자의 길은 제 눈에 옳으나 권고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지혜로운 자니라.](15). 세상 사람 중에 아무리 못나 보여도 자기 철학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개똥철학이라도 자기 생각만큼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 눈에는 옳으나”-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적 시각이 아니라 자신의 눈에 옳게 보이는 것은 자신이 모든 것의 기준이요,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21:2, [사람의 길이 자기 눈에는 모두 옳게 보여도 [주]는 마음을 살피시느니라.](잠21:2). 나의 시각, 사람의 시각, 세상의 시각이 아니라 영적 시각, 성경적 시각, 하나님의 시각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눈에 무엇이 들어오는가?는 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잠언 3:7, [네 눈으로 보기에 지혜롭게 되지 말지어다. [주]를 두려워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 말씀은 현대인들이 수용하기에 너무나 힘든 말씀입니다. 절대 진리가 사라지고 상대적인 상황 윤리가 진리인 것처럼 가르쳐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옳고, 너도 옳다면 보기에 따라 그럴 수도 있지! 란 식입니다. 당신이 옳을 수도 있고, 그들은 그들이 옳다고 하고, 내가 보기에는 둘 다 옳을 수도 있으니 서로 따지지 말고 하나가 되자! 란 정신이 화합과 관용의 정신으로 인정받는 시대입니다. 잠언 16:2 [사람의 모든 길이 자기 눈에는 깨끗하여도 [주]는 영(靈)들을 깊이 살피시느니라.], 잠언14: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이 구절은 잠언 16:25에도 그대로 반복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의 진노는 즉시 알려지거니와 분별 있는 자는 수치를 덮느니라.](16). 어리석은 자의 진노로 가장 잘 알려진 예는 모세 앞에 있는 파라오였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진노를 알렸습니다. 야곱에게 진노를 부렸던 삼촌 라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의 양떼가 불어나자 그의 마음속에 있는 좋지 않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끝까지 참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일을 처리했던 사람의 예로는 형제들 앞에선 총리 요셉, 아하수에르 앞에선 에스더 같은 사람입니다. 이들은 위기의 순간이나 평안의 때에 항상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숨기고 분별력 있게 행동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거니와 거짓 증인은 속임수를 나타내느니라.](17). 진리를 말하는 자란 재판에서 올바른 증언을 하는 사람과 영적으로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신약 성도들은 진리를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롬3;21,22,25, 10:1-4)를 제시합니다. 거짓 증인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으려고 시도했던 이세벨의 죄에 동참한 모든 사람들로서 이들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데 동참했던 증인들과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칼로 찌르듯이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건강하게 하느니라.](18). 칼로 찌르듯이 말하는 자란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연관시켜서는 안됩니다. 여기서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칼로 찌르듯이 말하는 자는 험담, 악담, 신성모독, 좌절, 모욕, 속임수 등으로 상대방의 기(氣)를 단숨에 꺾어 버리거나, 꼼짝 못하게 하는 것 등입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말입니다. 이런 말은 사람을 죽이는 말입니다. 마치 잘 갈아놓은 칼로 사람을 찌르듯이 하는 말입니다. 물론 진리를 증거할 때, 이런 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말이나 스데반의 말은 말 그대로 칼이었습니다(행3:37, 행7:54). 지혜로운 자의 혀는 사람을 건강하게 하는데, 이는 마음의 위로와 격려, 용기와 믿음, 주님의 지혜와 사랑을 심어 주는 말일 때 특히 그러합니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이 이것을 흉내내어 열등감, 두려움, 좌절감, 억압 등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고 나서지만 이런 정신 건강은 주님 앞에 나오거나,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강단에서 훨씬 더 효과적으로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19절입니다. [진리의 입술은 영원토록 굳게 세워지려니와 거짓말하는 혀는 잠시 있을 뿐이니라.](19). 진리의 입술은 진리를 드러내고, 말하고, 선포하는 입술입니다. 20절은 어떤 심리학자들의 저서에서도 볼 수 없는 내용입니다. [악을 꾀하는(상상하는) 자들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으나 화평을 꾀하는 자들에게는 기쁨이 있느니라.](20). 마음 가운데 악을 상상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모든 악한 상상에는 자기 기만, 꾸밈, 비현실, 자기 최면 등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런 상상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속게 만들어 버립니다(시10:7,12-13). 화평을 꾀하는 자들이란 거짓되이 화평을 외치는 자들이 아니며,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건설하자고 외치는 정치꾼들도 아닙니다(단8:25, 살전5:3). 화평을 꾀하는 사람들은 화평의 창시자(고전14:33)이신 주님을 전하며,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는(롬10:15, 엡6:15) 복음 전파자들을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어떤 환란과 박해 속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일어나지 아니하려니와 사악한 자에게는 해악이 가득하리라.](21). 이 말씀은 외적인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본문은 내적인 것을 말합니다. 의인들에게도 모든 사람들이 당하는 공통적인 시험이 다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재앙이 되지는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0:13,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시험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하여금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의인들은 마음 가운데, 속 사람이 죄의 더러움, 죄로 인한 재앙을 입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악한 일은 의인들에게 늘상 있는 일이지만 그런 것들로 인해 마음 속이 황폐해지는 법은 없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거짓말하는 입술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진실하게 행하는 자들은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이니라.](22). 17절부터 계속해서 입술, 입, 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잠언 내에서만도 계속 반복되고 있는 진리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분별 있는 자는 지식을 감추거니와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은 어리석음을 선포하느니라.](23). 동양인들은 특히 이 진리를 미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사람들, 일본 사람들, 한국 사람들은 속 마음을 다 내비치지 않습니다. 주님 역시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다 내 보이지 않으셨습니다(마13:35,36). 대신 오늘날 전파 매체를 타고 떠들어대는 명사 특강이나 잡담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밑천뿐만 아니라 남의 것까지 들고 와서 다 떠들어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을 다른 누가 대신 말해 주는 것에 큰 위안을 삼고, 확신을 가지고 다시 떠들어대는 그런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24절은 15:19,19:24,24:30,26:14,19:15등의 본문을 참고하십시오. 앞으로도 계속 반복되는 진리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그것이 마음을 웅크리게 하나 선한 말은 마음을 기쁘게 하느니라.](25). 주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치유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선한 말씀입니다(히6:5). 데살로니가후서 2: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말과 일에서 너희를 굳게 세우시기를 원하노라.](살후2:17). 선한 말은 입에 발린 칭찬이나 아첨이나 가려운 귀를 긁어 주는 말이 아닙니다. 선한 말은 위기의 순간에도 마음이 요동하지 않게 하는 말입니다. 심지어 ‘당신은 3개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당신 아들이 즉사했습니다.’, ‘집에 불이 났습니다.’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말이 선한 말입니다. 마음을 웅크리게 하는 걱정거리들을 날려 버릴 수 있는 말들이 바로 성경에 기록된 선한 말들입니다. 26절입니다. [의로운 자는 자기 이웃보다 훌륭하나 사악한 자의 길은 그들을 유혹하느니라.](26). 의로운 자의 이웃이 악인일 경우 악인은 의인의 선한 행실을 부패시키려 할 것입니다. 악인들은 감화를 받거나, 회심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의인들을 유혹하려고 애를 씁니다. [악한 자들과 미혹하는 자들은 점점 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딤후3:13). 27절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자기가 사냥해서 잡은 것도 /불에/ 굽지 아니하거니와 부지런한 사람의 재산은 귀중하니라.](27). 이것은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구절입니다. 꿩이나 토끼, 노루등을 사냥하면 껍질을 벗기고, 요리를 해서 먹어야 하는데 그냥 며칠을 메달아 두었다가 상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껍질을 벗겨서 깨끗이 손질해서 박피를 하고, 내장은 개나 고양이에게 주고, 고기는 익히거나 구워서 먹고, 나머지 못쓰는 것들은 거름으로라도 사용하기 때문에 모두 귀중한 재산이 됩니다. 짐승이든 생선이든 남김없이 모두 귀한 재산으로 사용합니다. 28절입니다. [의의 길에는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28). 잠언 12장의 결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길이요, 진리이시며, 생명이신 주님 안에서 걷기 때문에 사망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의 고난은 사망의 그림자일 뿐 죽음이 우리를 덮치지 못합니다. -------------------------------- 1) Bible believers' commentary Series- Proverb(Peter Ruckman) 12:10절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