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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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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8장
lhyunsik

잠언(2) 2005-07-02 08:03:00, 조회 : 3, 추천 : 0 말씀: 잠언 2-8장 요절: 잠언 잠언 2장입니다. 잠언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지혜와 지식, 권면과 충고, 훈계와 경고의 말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1은 “내 아들아”(My son)란 말로 시작됩니다. 이 표현은 잠언에만 23번이나 등장합니다. [참조-잠언 1:8,10,15; 2:1; 3:1,11,21; 4:10,20; 5:1,20; 6:1,3,20; 7:1; 19:27; 23:15,19,26; 24:13,21; 27:11; 31:2]. 이는 하나님 아버지가 성도들을 향해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아들로서 우리는 아버지의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 합니까? 이 문제는 오늘날 성도들이 “설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하는 매우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첫째,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귀를 우리에게 기울여 주실 것을 구한 반면(시17:6, 71:2, 88:2, 102:2), 잠언 기자는 우리의 귀를 주님께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잠2:2. 4:20). 둘째, 마음을 다해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납니다. 신·구약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책망 중 하나는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입니다. 듣지 못하는 자는 우상과 같습니다. 우상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우상들을 만드는 자들도 우상들과 같으며 우상들을 신뢰하는 자들도 다 그와 같도다](시115:6...8). 듣지 못하는 자는 반역하는 자와 같습니다. [사람의 아들아, 네가 반역하는 집 한 가운데 거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나니 이는 그들이 반역하는 집이기 때문이니라.](겔12:2). 셋째,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이 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또한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를 드림은 너희가 우리에게서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들 안에서 효력 있게 일하느니라.](살전2:13). 설교를 듣는 자세는 항상 이러해야 합니다. 고넬료는 이점에서 모든 성도들의 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그런즉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여기 하나님 앞에 다 있나이다, 하니라.](행10:33). 넷째, 마음속에 숨겨야 합니다(잠2:1). 특히 청년들이 정욕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말씀을 마음속에 숨기는 것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숨겼나이다.](시119:11). 다섯째, 두려움과 떨림으로 들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고, 주님의 보살핌을 받는 첩경이 바로 두려움과 떨림으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주]가 말하노라. 오직 가난하고 영으로 통회하며 내 말에 떠는 자는 내가 보살피느니라.](사66:2). 우리의 마음은 명철에, 지식에, 훈계에 쏟아야 합니다(잠2:2,22:17,23:12). 2-4절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성경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라는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귀와 눈과 마음이 혼연일체가 되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 들이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보화가 묻혀있는 광맥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찾는 광부의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4). 그 때에 성도는 “주 두려워 하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아는 것을 발견합니다.”(5). 배교한 교회와 성도들은 교회는 다니지만 진리에 대한 이런 노력이 없기 때문에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습니다. 주님은 번제 헌물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원하십니다(호6:6). [이는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기 때문이니 하나님을 아는 것이 번제 헌물보다 나으니라.](호6:6).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대신에 무지한 열성으로 주님을 배척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니라.](롬10:2). 이는 오늘날 헌신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범하는 오류이기도 합니다. 열정은 있으나 기본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진리의 지식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동시에 진리를 아는 지식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면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의에 대하여 깨어 있고 범죄하지 말지니 이는 어떤 자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하노라.](고전 15:34).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나누어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일꾼으로 인정받기 위한 것입니다.1) 우리는 잠언 기자의 말대로 귀와 눈과 마음을 동원해서 성경을 공부함으로 주를 두려워하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발견하고, 지혜와 지식과 명철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6). 성도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지 못한다면 그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할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이 주님의 은혜를 더 많이 얻는 길이듯이(약4:6),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우리에게는 은혜와 평강이 더욱 넘칩니다. [하나님과 예수 우리 {주}를 아는 것을 통하여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을지어다.](벧후1:2).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은 명령입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토록 그분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벧후3: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바울이 기도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도록 기도합시다. 골로새서 1:10,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하시고](골1:10).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날 때 얻는 유익은 첫째, 주님이 그 사람에게 방패가 되십니다(7). 둘째, 판단의 행로들을 지키시며 성도들의 길을 보존하십니다(8). 셋째, 의와 공의와 공평을 깨닫게 됩니다(9). 넷째, 분별이 우리를 보존하며, 명철이 우리를 보호하여(11) 악한 자와 비뚤어진 길로부터 건짐을 받습니다(12). 3장입니다. 3장 역시 ‘내 아들아’(1)란 권면과 충고로 시작됩니다. 1-4절에서 아버지는 4가지를 충고했습니다. ‘내 법을 잊지 말고’(1), ‘네 마음으로 내 명령들을 지키고’(1b), ‘긍휼과 진리를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들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기록하라’(3). 그렇게 할 때, 하나님과 사람의 눈 앞에서 은총과 큰 명철을 얻습니다(5). 땅에서 장수하게 됩니다(2). 화평을 얻게 됩니다(2). 화평없는 장수는 의미가 없습니다. 온갖 슬픔과 고통으로 점철된 긴 날과 오래 사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평안히 오래 사는 비결이 바로 잠언 3:2입니다. 이는 오늘날 의사들과 심리학자들, 스포츠 과학자들, 점쟁이들이 결코 말해 주지 않는 장수 비결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몇 가지 장수의 비결을 살펴보면 첫째,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출20:12, 엡6:3). 둘째, 주님께 기도하여 구하는 것입니다(시21:4, 시91:16). 솔로몬은 자신을 위하여 이것을 구하지 않았지만 히스기야는 구했습니다. 셋째, 주님의 지혜로 충만하면 장수합니다(잠3:16).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주님을 두려워함으로 악을 떠나고 지혜를 얻는다면 그는 분명 오래 살 것입니다(잠9:10-11,10:27). 넷째, 자기 혀를 지켜 악에서 떠난 자는 오래 삽니다(벧전3:10). 다섯째, 주의 말씀을 듣고 받으면 생명의 날수가 하루 하루 더 길어집니다(잠4:10). 5-6절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방법입니다. 첫째,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할 것(5), 둘째 자신의 명철을 신뢰하지 말 것(5)- 이것은 현대의 지성인들, 특히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거의 불가능한 명령처럼 보입니다. 세상에는 너무 똑똑하고 잘 난 사람이 많아서 주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셋째 모든 길에서 주님을 인정할 것(6)입니다. 주님은 모든 길에서 인정받으셔야 합니다. 성도는 자신이 원하는 길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길까지 전적으로 모두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의 행로를 지도하십니다(6). 다윗이 말한바, [주께서 선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시37:23). [주께서 주의 권고로 나를 인도하시고 나중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시73:24). 7-10절에도 계속해서 규칙들이 나옵니다. · 자신의 눈에 보기에 지혜롭게 되지 말 것(7)- 이렇게 하다가 망한 사람이 롯입니다. 지금도 자기 눈으로 보기에 지혜롭게 되려다 망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어리석은 자의 길은 자기 눈에 항상 옳은 법입니다. [어리석은 자의 길은 제 눈에 옳으나 권고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지혜로운 자니라.](잠12:15). · 주를 두려워 할 것(7). 이것은 잠언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진리입니다. · 악에서 떠날 것(7) · 재물과 모든 첫 소출로 주를 공경할 것(9)입니다. 이런 진리는 오늘날 성도들이 반드시 기억해서 실천해야 할 것들입니다. 이 때 주님이 주시는 보상은 첫째, 몸의 건강입니다(8). 둘째, 뼈들의 건강입니다(8). 셋째, 창고가 가득찹니다(10). 창고가 채워지는 것은 주의 인도하심의 결과이지, 그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어리석은 부자처럼 창고를 가득 채워 주신 주님보다 가득찬 창고만을 바라보고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넷째, 포도즙틀에서 새 포도즙이 넘치게 됩니다(10). 11-12절은 성도들이 매우 꺼리는 것이지만 성숙과 성장을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자기 자녀를 사랑한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내 아들아, /너는/ [주]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며 그분께서 바로잡아 주심을 싫어하지 말지니 이는 [주]께서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바로잡아 주시기를 마치 아버지가 자기가 기뻐하는 아들을 바로잡아 주는 것같이 하시기 때문이라.](11-12). 우리는 이런 징계를 받을 때 싫어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5, [또한 자녀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하시는 권면의 말씀을 너희가 잊었도다. 이르시되, 내 아들아, 너는 {주}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며 그분께 책망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12:5). 욥은 이런 징계를 통해 바로 잡히는 자가 행복한 자라고 말했습니다. [보라,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시는 자는 행복한 자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욥5:17).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운다면 고난이란 징계를 통해 말씀을 알게 되고 주의 뜻을 찾게 되는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13-20절은 지혜의 우월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혜는 은이나 금으로 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으며 이익입니다(14). 지혜는 루비보다 귀합니다(15). 은이나 금, 루비로 결코 살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것을 지혜로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가 주는 것은 장수(16), 즐거움과 화평(17), 화평(18), 위기 때의 안전(23), 평안한 잠(24), 강한 확신(26) 등입니다. 18절의 생명 나무는 잠언에서만 4번이나 등장하는데, 이것은 창세기 2:9, 3:22, 24이나 계시록 2:7, 22:2,14의 말씀과는 다릅니다. 창세기와 계시록의 생명 나무는 실제로 생명 나무 실과를 맺는 문자 그대로의 나무이며, 이 실과를 먹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이 실과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잠언에서는 지혜를 붙잡는 자들에게 지혜가 바로 생명 나무가 된다는 말로서 이는 장수를 의미합니다. 11:30에서는 구령의 열매, 즉 혼을 얻을 때 그 것을 생명 나무라고 합니다. 잠언 13:12에서는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15:4에서는 온전한 혀를 생명 나루라고 합니다. 27-29절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행동 윤리입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그것을 받을 자들에게 선 베풀기를 금하지 말며](27).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으면 죄가 됩니다. 특히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모른체 하거나, 넘어 가 버리는 것은 선한 양심, 순수한 양심을 지닌 성도라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성도들을 향해 우리는 기회가 있는대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할지니라.](갈6:10). 악을 행하는데는 느리게 지체하다 빼 먹어 버리는 것이 잘하는 것이지만 선을 행하는데는 내일로 미루면 안됩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네게 /베풀/ 것이 있거든 네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고](28). 이것은 구약의 율법이며(레19:13,신24:15), 동시에 신약 성도들의 생활 윤리입니다. 4장입니다. 주의 자녀들이 지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지혜를 얻고, 잊지 말고, 버리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4-8). 말씀들을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합니다(4,21). 그리고 열심을 다하여 그 마음을 지키면 됩니다(23). 하나님의 아들들은 지혜와 훈계와 명철을 높이고, 존귀히 여기고, 사랑하고, 보존하고, 간직하고, 사랑해야 하는 반면, 16-17절에 나오는 사악한 자들을 향해서는 분리와 성별해야 합니다. 14-15절에는 무려 여섯 가지의 부정어가 나옵니다. 들어가지 말라(Enter not). 다니지 말라(Go not). 피하라(Avoid it). 지나가지 말라(Pass not by it). 돌이키라(turn from it). 떠나라(pass away). 성도들은 이 여섯 가지 원칙을 사회 생활에서 그대로 적용해야 합니다. 은밀한 거래를 위한 자리, 술자리가 있는 회합이나, dance party가 있거나, 남의 아내를 만날 가능성이 있는 모임이나 동물적 욕구를 발산시킬 목적이 있는 모임이 있다면 그 모임에 들어가지 말고, 그 모임의 길에 가지 말고, 피해야 하며, 그 길 근처로는 지나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행여나 마주치면 돌아서야 하며, 즉시 떠나야 합니다. 21절은 성경 읽기와 암송에 관한 말씀입니다. 23-27절은 일곱 가지 권면의 충고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23). 이 충고는 신구약 전체에서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 삶의 문제들이 모두 거기서 나옵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도 마음에서 나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든 마음으로 믿어야 하며, 성경은 마음으로 순종하고, 마음을 다해 공부하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진리입니다. 둘째, 비뚤어진 입을 네게서 버리며 뒤틀어진 입술을 네게서 멀리하라(24). 진리를 왜곡하는 말, 거짓, 욕설, 험담, 시기하는 말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마음에서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오는 연고로, 그 입술은 마음의 어떠함을 나타내는 잣대라 할 수 있습니다. 은혜로운 말, 때에 적절한 말, 건강한 혀는 먼저 마음의 문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무익한 말을 할지라도 다 심판을 받게 되는데, 이는 혀와 입술에 앞서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네 눈으로 바로 보게 하라. 주님은 우리의 눈을 비둘기의 눈, 단일한 눈(single eye)를 갖도록 하셨습니다. 넷째, 네 발의 행로를 곰곰히 생각하라(26a). 다섯째, 네 모든 길을 굳게 정하라(26b). 여섯째,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치우치지 말라(27a). 일곱째,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할지어다(27b). 5장입니다. 5장은 아들에게 낯선 여자를 조심하라는 권면입니다. 낯선 여자를 피하고, 자신을 지키는 길 역시 ‘지혜에 주의를 기울이며, 명철에 귀를 기울이고, 분별을 중시하고, 네 입술로 지식을 간직’(1-2)함으로 가능합니다. 3-14절은 낯선 여자의 특징입니다. 이 여자는 신약 성경에서 종교적 음녀인 로카 캐톨릭 교회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15-23절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만족하라는 권고입니다. 15절에서 우물(well), 18절에서 샘(fountain)은 단수로서 아내를 가리킵니다. 16절은 샘들(fountains)은 자녀들을 가리킵니다. 15,17절은 자기 아내만을 사용하고 다른 사람으로 그녀를 손대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16,17절은 많은 자식을 둘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 둘 다 오늘날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들의 가정에서 거부되고 있습니다. [자기 화살통에 이것이 가득한 자는 행복하도다. 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성문에서 원수들을 마주 대하여 말하리로다.](시127:5). 태의 열매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6장입니다. 1-5절은 빚 보증에 관한 말씀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절대 보증을 서지 말라고 말합니다(1). 잠언11:15, 17:18, 22:26은 모두 보증을 서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6-11절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근로 노동의 모델로 개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때 불신자들이 개미들은 여름에 먹을 것을 준비하지 않는다고 웃었지만, 후에 과학자들의 손에서 개미들이 그렇게 일한다는 사실이 밝혀 졌습니다. 12-15절은 버릇없는 자(naughty)와 사악한 자들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 말해 줍니다. 이는 적그리스도가 하는 일의 행태와 결과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16-19절은 주께서 싫어하시는 것 여섯 가지와 가증한 것 일곱 가지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① 교만한 눈빛, ② 거짓된 혀, ③ 무죄한 피를 흘리는 손, ④ 사악한 꾀를 꾸미는 마음, ⑤ 신속히 해악으로 치닫는 발, ⑥ 거짓들을 말하는 거짓 증인, ⑦ 형제 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리는 자입니다. 20-23절은 이미 앞에서 나온 내용(4:3-4)의 반복입니다. 24-35절은 간음에 대한 것입니다. 간음하는 자들은 거지로 전락하며(26), 마음이 불타게 되며(27), 죄를 갖게 되며(29), 명철이 없으며(32), 자신의 혼을 파멸시키며(32), 상처와 불명예를 얻고(33), 치욕을 씻을 수 없게 됩니다(33). 아무리 상황 윤리와 개방적인 성(性) 도덕관을 가졌다고 해도 위에서 말한 것들은 피해 갈 수 없습니다. 27-28절은 간음에 관한 죄는 이기기 보다 피하는 것이 최선책임을 보여 줍니다.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도 자기 옷을 태우지 아니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뜨거운 숯불을 밟고서도 자기 발을 태우지 아니할 수 있겠느냐?](27-28). 34-35절은 율법 하에서는 엄격하게 실행되었습니다. 지금 민주사회에서는 위자료를 요구하거나, 공개석상에서 수치를 주어 사회적 매장을 시키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지만, 법이 허락한다면 대부분의 남편들은 사형을 요구할 것입니다. 보상금, 합의금을 아무리 많이 제시해도 상처받은 감정은 사형에 처하지 않고는 결코 아물지 않습니다. 7장입니다. 아들에게 주는 아버지의 간절한 권면은 첫째, 내 말들을 지키라(Keep my words)입니다(1). 둘째, 내 명령들을 지키라(1-2)입니다. 타락하고 더러운 이 세상을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이것 외에 달리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의 명령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라고 한 말씀과 같습니다. 6-23절 말씀은 누가 읽어도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 구절을 교회에 적용하자면 19-20절을 주목하십시오. [이는 집 주인이 먼 여행을 떠나 집에 없는데...](19)란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이 땅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여인은 마태복음 24:48-51의 악한 종처럼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악을 행하며,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4 가지 말로 유혹했습니다. 첫째, 남편은 집에 없다(19). 둘째, 남편의 여행은 장기 여행이다(19). 셋째, 남편은 정한 날에야 집에 올 것이다(20). 넷째, 그러므로 지금은 마음놓고 죄를 지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모두 전적으로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얼마든지 먼저 올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자기 들이닥칠 수 있습니다. 종들은 마땅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수소같이 되며(22), 차꼬에 묶인 죄수처럼 되며(22),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으로 죽게 되며(23), 많은 남자들이 이미 그녀에게 상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26). 그 여자의 집으로 가는 길은 지옥으로 내려가는 길이며(27), 그녀가 있는 침실은 ‘사망의 방’이라는 사실(27)에 무지한 것입니다. 이런 길은 지나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8장입니다. 지혜가 완벽하게 의인화되어 나옵니다. 6-9절은 지혜가 바로 ‘내 입의 말들’이란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모두 지혜의 말들입니다. 메시지, 내용, 교훈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해야 하고, 말씀을 받아야 하며,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의 말들(words)은 결코 어려운 용어들이 아니며, 깨닫는 자들에게 매우 쉽습니다(9).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어려운 말(고어, 잘 쓰이지 않는 말)들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밀턴이나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고쳐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을 매일 읽는 사람, 매주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어떤 어휘도 고어(古語)가 될 수 없고, 사어(死語)가 될 수 없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모든 어휘는 최신 어휘며, 살아 있는 어휘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혜의 가치는 은, 금, 루비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11). 하지만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 정작 성경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진정한 부자는 누구인가? 보이지 않는 지혜란 무형의 자산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12절의 지혜는 ‘나 지혜는...’(12)이라고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12-21절은 지혜이신 주님의 자기 계시라 할 수 있습니다. 18-19절은 지혜를 통해 영적 부요함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해 줍니다. 자본주의 시대의 성도들이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21절에 상속이란 말에 유념하십시오. 우리가 얻을 상속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며,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22-26절은 창세기 1:1절 이전 시기를 언급하고 있으며, 27-30절은 창세기 1:1-2을 가리키며, 31절은 아담의 타락을 건너뛰어 요한복음 13-17장 사이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구절이고, 32-36절은 성령 자신께서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을 권고하는 것입니다. 36절, [누구든지 나를 대적하여 범죄하는 자는 자기 혼을 해치는 자요, 나를 미워하는 자는 다 사망을 사랑하는 자니라.](36). 이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자신의 종교와 신앙, 믿음, 교리, 신조, 선행, 인격, 사회적 발전과 화합을 도모하는 모든 사람들의 일이 실상은 자기 혼을 해치는 일임을 보여 줍니다.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거부했으니, 이는 병자가 낳을 수 있는 약을 거부한 것보다 더 심한 자기 혐오라 할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미워했지만 그들 중 누가 ‘나는 사망을 사랑하노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주님을 미워하는 자들은 다 사망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을 미워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통치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요, 성경을 왜곡시키고 변개시키며, 가끔 하는 짓이 성경이나 교회를 세상의 정치나 자기 목표에 이용해 먹는 것입니다. ---------------------- 1)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