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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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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장
lhyunsik

잠언(1) 2005-07-01 07:55:06, 조회 : 5, 추천 : 0 말씀: 잠언 1장 요절: 잠언 1:7 잠언은 흔히 지혜의 책이라고 불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혜이심을 선포하는 글로서, 지혜가 인격화되어 있습니다. 잠언(proverbs)은 pro(instead of -대신에) + verbs(words-단어, 말)의 라틴어 합성어로서 ‘대표하는 말, 많은 말들을 대신해서’란 뜻입니다. 우리말로는 격언, 금언, 잠언이 모두 같은 말입니다. 잠언의 저자는 30:1의 아굴, 31:1의 르무엘과 같이 이름이 밝혀진 잠언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솔로몬이 저자입니다. 1:1, 10:1, 25:1에서 모두 솔로몬이 저자란 사실을 밝혀 두고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箴言)이라.](1). 솔로몬은 많은 잠언을 지었고, 정리했습니다. 그는 삼천개의 잠언을 말했으며, 후에 정리했습니다. 열왕기상 25:1, [그가 삼천 개의 잠언(箴言)을 말하였고 천 다섯 편의 노래를 지었으며](왕상 25:1). 이런 잠언은 왕으로서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전도서12:9, [또한 전도자는 지혜가 있으므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참으로 그가 깊이 주의를 기울이고 탐구하여 많은 잠언을 정리하였으며](전12:9). 잠언의 지혜는 세상 지혜가 아닙니다. 잠언의 지혜는 땅에서 난 지혜가 아니며, 마귀의 지혜가 아닙니다. 잠언의 지혜는 위로부터 난 순수한 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24,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에게나 그리스인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고전1:24). 1:30,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聖別)과 구속(救贖)이 되셨으니](고전1:30). 바울 사도가 말한 바와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골로새서 2:3,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2:3). 잠언을 공부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참된 지혜는 마음의 문제이지 지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잠언 8:22-31을 통해 지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지혜는 영원하면, 모든 것을 창조하였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자신을 내어 드리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지혜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은 우리의 실생활에 관련된 실제적인 지침들을 많이 줍니다. 혀에 관한 것, 돈 문제, 우정, 가정 문제,여자 문제, 부부 관계, 자녀 교육, 보증 서는 문제, 빚 문제, 뇌물에 관한 것, 술 마시는 문제 등 이 세상에서 어떤 처세술 책보다 위대한 처세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잠언은 31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에 한 장씩 읽을 때 일년에 12번을 통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혜를 얻기 위해 잠언을 읽고, 고난을 이기기 위해 시편을 읽고, 세상을 탐하지 않기 위해 전도서를 읽고, 사랑을 알기 위해 ‘솔로몬의 아가’를 읽어야 합니다. 잠언과 다른 성경과의 연관되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세 오경이 하나님의 법을 제시하고, 거기에 구체적으로 순종할 때 누릴 수 있는 복과 불순종할 때 당할 저주에 관한 말씀이라면 잠언은 인생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 어떤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어 줌으로써 복된 삶을 살도록 해 줍니다. 잠언은 율법을 강조하지 않지만 율법의 기록된 목적대로의 삶을 가능하게 해 주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솔로몬과 욥은 당대에 가장 큰 부자였습니다. 둘다 지혜가 넘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욥과 마찬가지로 지혜를 높입니다(잠1:1-9, 욥28:12-28). 욥과 솔로몬은 둘 다 의인이 반드시 이 땅에서 건강과 부를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15:6,16-17, 욥1-2). 시편이 의인과 악인을 날카롭게 대조해서 비교하듯이 잠언 역시 그렇습니다. 시편과 잠언은 둘다 ‘주님을 두려워 하는 것’을 가장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시2:11, 5:7, 22:25, 31:19, 60:4, 119:38, 119:63,74,79,120, 130:4). 전도서와 비교해 볼 때 역시 잠언과 마찬가지로 지혜를 찬양합니다(전9:14-18). 전도서 역시 어리석은 자를 멸시합니다(전10). 둘다 주를 두려워하라고 가르칩니다(전12:13). 전도서 역시 삶의 실제적인 지혜를 가르칩니다. 잠언과 전도서는 둘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란 사실을 다룹니다(20:9, 전7:20). 잠언은 여느 구약 성경과 마찬가지로 신약 성경에서 매우 자주 인용되었습니다. 로마서 3:15(1:16), 히브리서 12:5-6과 계시록 3:19(3:11-12), 야고보서 4:6, 베드로전서 5:5(3:34), 로마서 12:20(25:21-22), 베드로후서 2:22(26:11)을 인용한 것입니다. 잠언에서 제시되는 11가지 적절한 조언을 주제별로 살펴보고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잠언 15:23에 말하기를, [사람은 자기 입의 대답으로 기쁨을 누리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잠15:23)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있도록 성경에 표시를 해 두고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첫째, 좋은 이름입니다(잠언10:7,22:1). 둘째, 훈계와 교육입니다(13:24, 19:18,22:6, 23:13,14).-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인가? 셋째, 사업에 관련된 교훈입니다(11:1, 6:6-11, 10:4,26). 넷째, 결혼에 관한 교훈입니다(5:15,18,11:22, 29, 12:4, 14:1, 19:13, 21:9, 19, 31:10). 다섯째, 부도덕에 관한 교훈입니다(5:3-5, 6:24-32). 여섯째, 악한 친구들에 관한 교훈입니다(1:10-19, 4:17, 23:6-8, 27:19). 일곱째, 지혜에 관한 교훈입니다(3:13-18, 8:35). 여덟째, 절제에 관한 교훈입니다(16:32,25:28).-분노를 참는 것. 아홉째, 술에 관한 교훈입니다(20:1, 23:29-32). 열번째, 우정에 관한 교훈입니다(17:17, 18:24,26:6). 열한번째, 말과 혀에 관한 교훈입니다(15:1, 23,28; 16:24, 17:27, 18:21, 25:11, 26:17, 20,22). 1장은 잠언의 기록 목적이 나와 있습니다. 1:2-4절까지가 바로 잠언 기록 목적입니다. [이것은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明哲)의 말씀들을 파악하게 하고 지혜와 정의와 공의와 공평의 훈계를 받게 하며 단순한 자에게 민감함을 주고 젊은 자에게 지식과 분별을 주기 위한 것이니](2-4). 잠언은 지혜를 알게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잠언을 통해 주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을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을 읽고, 공부한 후에도 주님을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잠언을 헛 공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언에는 무려 16번에 걸쳐 주를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1:7,29; 3:7,8:13,9:10,10:27,14:2, 14:26, 27, 15:16,15:33, 16:6, 19:23, 22:4, 29:25, 31:30). 하나님의 지혜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로 이끕니다(고후7:10). 훈계란 말은 책망과 징계를 통해 훈련시켜 마땅히 알아야 할 것들을 깨우쳐 주는 행위입니다(20:1,22:6,15, 23:13,29:15참조). 명철이란 주님과 바른 관계성을 가질 때만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명철은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들을 깨닫는 능력입니다. 지식이 있지만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고, 지혜가 있지만 명철이 부족한 사람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로왔지만 말년에 명철이 부족했습니다. 다니엘은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이었습니다. 마귀는 지혜가 있지만 명철은 없습니다. 명철(understanding)이란 하나님께서 “지각의 눈을 열어 주셔서” 깨닫게 하는 것이며(엡1:18)입니다. 이 말씀들은 알기 쉬운 평범한 것입니다(잠8:7-9). 하나님은 오늘날 교육자들이 자처하는 것처럼 난해하고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쉽고 단순한 말을 사용하십니다. 명철이란 악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욥28:28). 잠언의 기록 목적대로 우리는 잠언을 통해 지혜와 훈계, 명철의 말씀들을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정의, 공의, 공평의 훈계를 받아 치우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정의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요, 공의란 차이점들을 분별함으로써 참된 판단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공평이란 균형이 잡혀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잠2:9,시98:9,사59:14).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얻을 수 있으며, 잠언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이것들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을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혜로운 계략들을 얻어서 잠언과 해석과 지혜로운 자들의 말들과 어둠에 덮인 그들의 말들을 깨달을지니라.](5-6). 잠언을 공부하게 될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선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매일 잠언을 읽고, 묵상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잠언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지혜있는 자, 우둔한 자, 단순한 자입니다. 지혜있는 자는 듣고 늘립니다. 어떻게 들을 줄 알고, 무엇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지혜로운 자입니다(막4:24, 눅8:18). 무엇을 듣는가? 어떻게 듣는가? 이것이 핵심입니다. · 지혜로운 자의 특징은 훈계를 듣습니다(1:5). · 들은 것에 복종합니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령들을 받아들이되 수다를 떠는 어리석은 자는 넘어지리로다.](10:8). · 자신이 배운 것들을 쌓아 둡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지식을 쌓거니와 어리석은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10:14) 반면 우둔한 자, 단순한 자들은 들을 줄 모릅니다.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자란 첫째, 혼을 이겨오는 사람(11:30). 둘째, 영광을 유업으로 받는 사람(잠3:35), 셋째, 계명을 받아들이는 자(잠10:8), 넷째, 조언을 듣는 자(잠12:15), 다섯째, 자기 혀를 붙드는 자(잠29:11), 여섯째, 지식을 찾는 자(잠18:15), 일곱째, 지식을 전파하는 자(잠15:7), 여덟째, 주를 두려워하여 악에서 떠나는 자(잠14:16)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기준에서 지혜로운 자들입니까? 아니면 어리석은 자들입니까? 7절은 잠언 전체의 요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거늘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7). 흔히 교회에서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경건한 경외심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과 경외심은 완전히 다른 단어입니다. 히브리서 12:28은 경외함과 두려움이 별개의 단어임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 마귀는 시작을 파괴함으로써 아무 것도 갖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로운 자들과 정 반대로 들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자란 첫째,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자입니다(1:7). 둘째, 죄를 비웃는 자입니다(14:9). 셋째,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입니다(20:3). 넷째, 참소하는 자입니다(10:18). 다섯째, 자기가 토한 것을 먹는 개를 닮은 자(26:11)입니다. 여섯째, 땅 끝에 눈을 두고 있는 자(17:24)입니다. 일곱째, 채찍이 소용없는 자(17:10). 여덟째, 자신의 마음을 신뢰하는 자(28:26)입니다. 잠언 이외의 책에서 어리석은 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시14:1). 둘째, 구약 성경을 믿지 않는 자(눅24:25). 셋째,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고전15:36). 넷째, 형식을 본질보다 중요시하는 사람들(마23:17,19). 다섯째, 말이 많은 사람(전5:3). 여섯째, 이 세상의 재산과 소유를 신뢰하는 사람(눅12:20)입니다. 10-19절은 본격적으로 지혜의 가르침이 시작됩니다. “내 아들아...”로 시작되는 이 지혜의 권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먼저 친구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첫째, 분리입니다. 15, [내 아들아, 너는 그들과 함께 그 길로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들의 길에서 떠나라.](15). 둘째, 비일치(참여하지 않음)입니다. 셋째, 비동조(비협조)입니다. 10절, [내 아들아, 죄인들이 너를 꾈지라도 너는 동의하지 말라.](10).이 세상의 친구들에 대해 이 세 가지를 철저히 견지한다면 죄악에 연루되지 않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5: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과 함께 그런 것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라](엡5:7)-비동조. 고린도전서 15:33, [속지 말라. 악한 사귐은 선한 습성을 부패시키느니라.](고전15:33)-분리. 1:20-23절은 지혜가 완전히 의인화되어 있습니다. 23절, [너희는 내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내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23). 여기서 우리는 회개의 중요성을 보게 됩니다. 회개는 회심에 앞서 발생합니다. 회심은 성령을 받기 전에 이루어집니다. 회개의 결과는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회개한 영혼에게 주님은 성령을 부어 주시고, 말씀들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 세상의 어떤 책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회개와 회심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권,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은 회개와 회심 없이는 도무지 공부할 수 없는 책입니다. 24-30절은 회개를 거부할 때 주님 역시 그들을 거부할 것이란 엄중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거절하였고 내 손을 내밀었으나 중시하는 자가 없었으며 도리어 너희가 내 모든 권고를 무시하고 내 책망을 원치 아니하였은즉 나도 네 재난을 보고 웃을 것이며 네 두려움이 이를 때에 조롱하리라. 네 두려움이 황폐함같이 이르겠고 네 멸망이 회오리바람같이 이르겠으며 네게 근심과 걱정이 이르리니 그때에 그들이 나를 부를 터이나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그들이 아침 일찍 나를 찾을 터이나 그래도 그들이 나를 발견하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지식을 미워하고 [주] 두려워하기를 택하지 아니하며 내 권고를 원치 아니하고 내 모든 책망을 멸시하였음이니라.] (24-30). 죄인들이 마음을 돌이켜 주님을 구하면 얻고, 찾으면 찾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지만 심판의 때, 이 세상의 마지막 날들에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란 엄중한 경고입니다. 회개와 회심을 거부한 채 주님을 찾을 수 없고, 불러도 대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구원의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향해 비웃을 수 있다는 이 진리는 배교한 현대의 교회에서는 도무지 수용할 수 없는 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웃음을 공부해 보겠습니다. 첫째, 회의에 찬 웃음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지만 말씀을 문자 그대로, 있는 그대로 사실로 받지 못하는 자들의 웃음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런 웃음을 웃었습니다(창18:2). 참으로 경건하다고 자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문자적 완전성과 무오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부인하면서 완전성을 주장하는 성도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면서 문자 숭배자, 성경 우상 주의자로 매도해 버립니다. 침례와 세례의 차이를 말하는 사람은 마치 성경의 핵심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주장이나 이야기인양 비웃어 버립니다. 요한은 메뚜기를 먹은 것이 아니라 메뚜기 풀을 먹었을 것이다. 입다의 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시집을 안 간 것이다. 모세는 홍해를 건넌 것이 아니라 갈대 숲을 건넜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은 바늘 귀가 아니라 작은 문이다...등등입니다. 이들은 주님, 주님을 그렇게도 외치면서 정작 중요한 성경 문제에서는 말씀을 자기들 믿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바꾸어 버리는 족속들이요, 불신을 드러냅니다. 둘째, 죄를 즐기는 웃음입니다. 전도서 7:6, [이는 가시나무가 솥 밑에서 우지직 우지직 소리를 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의 웃음소리도 그와 같기 때문이니 이것도 헛되니라](전7:6). 이 웃음은 술집과 연회장, 나이트클럽 등에서 울려 퍼지는 웃음입니다. 이런 웃음은 주님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이 세상이 자신들의 천국인줄 알고 웃는 웃음이며, 이런 웃음 뒤에는 곧바로 울음, 통곡, 이를 갊이 뒤따르게 됩니다(잠3:32, 갈6:7,8,잠20:17). 셋째, 승리의 웃음입니다. 시편126:2,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노래가 가득하였도다. 그때에 이교도들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 이르기를,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들을 행하셨다, 하였도다.](시126:2). 이것은 주님께서 이 땅의 성도들에게 최후에 주실 웃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히 죄없고, 화평과 능력,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누리게 되는 복된 상태입니다. 이 웃음은 지금 죄로 인해 애통하고, 슬퍼하고, 주님을 위해 고난받는 혼들이 얻게 될 웃음이며, 새 하늘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웃음입니다(요17:24). 최후에 웃는 자가 진정으로 웃는 자입니다. 지금 웃고 후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과 지금 눈물로 씨를 뿌리고, 주와 함께 고난을 당하지만 최후에 웃는 것 중 우리는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여러분이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넷째, 정죄의 웃음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웃음이 바로 정죄의 웃음입니다. 이 웃음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각자 상응한 보응을 하실 때 웃는 웃음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웃고, 예수 그리스도를 비웃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크리스마스에 술에 취해서, ‘오늘이 예수의 생일이라는군! 허허허..’,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도 안하고 임신했다는군!, 하하하...’, ‘킹제임스 성경은 오류가 없다는군! 호호호’, 하면서 주님을 비웃던 자들을 향해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하하하...]하십니다. 죄인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들의 일생에서 간단한 종교의 선택 여부가 아닙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순간 그들은 하나님의 조언을 거부하는 것이며(25), 하나님의 책망을 거부하는 것(25)이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부하는 것이며(29),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29). 하나님의 조언은 피의 속죄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책망은 우리 인간은 모두 죄인이요,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지 말고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라는 성령의 책망입니다. 성령께서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세상을 꾸짖으십니다(요16:8).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자연을 통해 계시된 지식,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기 길에서 난 열매를 먹으며 자기 계략들로 채워지리니 이는 단순한 자들의 돌이킴이 그들을 죽이며 어리석은 자들의 형통함이 그들을 파멸시킬 것임이라. 그러나 누구든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안전히 거하며 재난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안하리로다.](31-33). 주님을 거부한 자들은 자기 길에서 난 열매를 먹습니다. 자기 길에서 난 열매는 무엇인가? 육신의 열매입니다. 그 안에 성령이 있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고, 의가 있으면 의의 열매를 맺지만 그안에 주님이 없는 죄인들은 죄의 열매를 맺을 뿐입니다. 로마서 7:5, [그 까닭은 우리가 육신 안에 있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들의 활동이 우리 지체 안에 작용하여 사망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하였으나](롬7:5). 예레미야는 주님을 거부하는 자들 위에 내리는 재앙이 그들의 생각의 열매라고 정의하고 했습니다. [오 땅아, 들으라. 보라, 이 백성이 내 말들과 내 법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거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위에 재앙을 가져오리니 /이것은/ 곧 그들의 생각의 열매니라.](렘6:19).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각의 열매를 주실 때, 그것은 바로 심판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잠언을 통해 지혜를 찾을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