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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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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하 1-36장
lhyunsik

역대기하 2005-06-19 21:09:54, 조회 : 4, 추천 : 0 말씀: 역대기하 1-36장 요절: 역대기하 7:17-18 역대기하의 주요 골자는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다윗의 집에 신실함을 보이신 것입니다. 역대기하는 솔로몬의 통치로 시작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유대인들이 다시 귀환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전체 개요를 살펴보면 1:1-9:31까지는 솔로몬의 통치입니다. 10:1-19은 왕국의 분열입니다. 11:1--36:14은 포로기까지의 유다의 역사입니다. 36:15-23은 결론 부분입니다. 열왕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역대기에는 기록되어 있는 특징적인 기사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솔로몬의 기도가 끝난 후 성전에 일어난 기적(7:1-3) · 북왕국에서 쫓겨난 경건한 레위지파를 따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온 북왕국 사람들에 대한 기사(11:13-17) · 일시적인 르호보암의 겸손(12:2-8,12) · 스가랴를 돌로 쳐 죽임(24:20-22). 예수님은 이 사건을 신약에서 의인의 흘린 피로 인정하셨다(눅11:51,마23:35). · 므낫세의 회심(33:10-17) · 여호사밧, 웃시야, 히스기야, 요아스에 대한 기사가 열왕기에 비해 좀 더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했는데, 이는 모세가 성막을 짓는 일과 매우 유사합니다. 성막은 브살라엘을 통해 지었습니다(출31:2). 성전은 솔로몬을 통해 지었습니다(대상28:6). 이들은 둘 다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브살라엘과 솔로몬은 둘 다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명철을 부여 받았습니다(대하1:1,2 출31:3). 성막과 성전을 다 지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7:1, 출40:34). 1장입니다. 다윗의 왕좌를 이어받은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심히 강성하게 하시고, 창대하게 하셨습니다(1). 역대기상 29:25을 보면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위엄을 주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왕들은 자신들의 권위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 권세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의의 일꾼으로 쓰임받기도 하고, 불의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솔로몬은 신하들을 데리고 기브온으로 가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6). 이는 모든 정치를 주의 뜻대로 하겠다는 분명한 결단과 의지의 표현입니다. 주님은 솔로몬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7).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주의 백성들을 잘 보살피고, 양육할 뜨거운 목자의 심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바르게 구하는 것을 보고 지혜와 지식 뿐만 아니라 구하지 않는 부와 재물과 존귀를 더불어 주셨습니다(11-12). 신약의 성도들은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에게도 솔로몬에게처럼 하나님께서 이런 질문을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이런 기도 한 번 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부러움을 가집니다. 주님은 더 이상 우리의 꿈에 나타나 말씀할 필요가 없습니다. 꿈보다 환상보다, 표적과 이적보다 더 분명한 문서로 기록된 약속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약 성도들은 솔로몬의 기도 응답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솔로몬처럼 지혜를 구한다면 지혜는 주어집니다. 야고보서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이외에도 우리에게는 꿈을 통해 말씀하시지 않고서도 주시겠다는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마태복음 7:7,8절, 요한복음16:23, 요한일서 5:14,15 빌립보서4:6-7, 19등을 참고하십시오. 2-4장은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관한 기사입니다. 성전 건축에는 엄청난 물자와 인원이 동원되었고, 주변 국가들에서도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재료들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내에 있는 외국인들을 성전 건축에 적극 활용했습니다(17-18). 이들은 전에 포로로 잡혀 왔던 사람들입니다. 성전의 위치를 주목하십시오. 3:1에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서 성전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곳은 바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용 어린 양으로 드리고자 했던 곳입니다. 17절에 성전 앞에 세워진 두 기둥의 이름이 나오는데 야긴과 보아스입니다. 야긴은 ‘주께서 세우신다’는 뜻이고, 보아스는 ‘그분 안에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4장에는 놋제단(1), 놋으로 만든 바다(2-5,10), 열 개의 물두멍(6), 열 개의 등잔대(7), 열개의 상과 백개의 금 대야(8), 제사장들의 뜰(9), 11-18절은 놋으로 만든 것들, 19-22절은 금으로 만든 것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놋 제단, 물두멍, 등잔대, 상(table), 대야 등은 신약적 의미가 각별한 비품들입니다. 성전 문 밖에나 안에나 복음의 은혜를 예표하고, 앞으로 올 좋은 일, 곧 그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전조가 되는 비품들입니다. 놋 제단은 열왕기에서 이것의 제작 과정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 위에 모든 제물이 드려졌고 그 드려진 모든 것은 거룩하게 구별되었습니다. 성전의 뜰에서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은 제물이 피를 흘려 죽고, 그 위에서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에 그들은 황소와 염소의 피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죄를 없애고 죽음에 끝을 내기 위해 때가 차면 드려질 한 제사를 생각하도록 이끌려졌을 것입니다. 성전 희생제의 진정한 의미는 다가올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위한 모형이요, 그것을 소망 가운데 믿고 바라는데 있습니다. 5-7장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이 건축되자 다윗이 봉헌한 모든 보물들을 주의 성전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가져왔습니다. 11-13절은 열왕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는 부분입니다. 레위의 제사장들과 노래하는 이들은 성소에서 나와 갖가지 악기와 노래로 주님을 찬양했는데 “그분은 선하시며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13)고 노래했습니다. 입술의 찬양은 주님께 드릴 성도들의 합당한 영적 희생물입니다. 히브리서13:5,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리자. 이것은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 호세아 14:2, [너희는 말씀들을 가지고 [주]께로 돌이키며 주께 아뢰기를, 모든 불법을 제거하시고 은혜를 베푸사 우리를 받아 주소서. 우리도 우리 입술의 송아지로 희생물을 드리리이다.] 6:1-11은 솔로몬의 설교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행하신 세 가지를 설교했는데, 주님이 성전이 위치할 장소를 택하셨다는 사실(6)과 성전을 건축할 사람을 선택하셨다는 점(10), 왜 건축했는가(11)에 대한 것입니다. 12-42절은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린 장문의 기도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배울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의 자세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하늘로 들었습니다(12,14).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도 자세였습니다. 신약 성도들도 남자들은 손을 들어 기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8, [그러므로 나는 모든 곳에서 남자들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솔로몬은 왕으로서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기도의 본을 보였습니다(13). 솔로몬은 주님의 신실하심과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란 사실을 고백하고 찬양했습니다(14-15). 그는 먼저 자신을 위해 기도했습니다(16-21). 그리고 무죄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22-23). 다음에는 죄로 인해 원수에게 패할 때(24-25), 죄로 인해 기근이 들었을 때(26-31), 외국인들(32-33), 전쟁의 때에(34-35),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었을 때(36-39) 각각 어떻게 해 달라는 매우 구체적인 기도를 드렸습니다. 40-42절에서 솔로몬은 다시 한번 간구를 드린 후에 기도를 마쳤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 이스라엘은 성전 중심의 신앙 생활의 기틀이 잡혔고, 어느 때라도 성전을 향해 기도하고, 정기적으로 성전에 올라와 주님과 친교를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성전은 주님의 언약궤와 주님의 임재가 거하는 곳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물리적인 성전이 아닌 우리 몸을 성전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의 성전 기도를 우리 자신의 몸된 성전을 기준으로 다시 한번 읽고,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7장입니다. 주님은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셨습니다. 첫째, 성전은 희생물을 드리는 집으로 택하였다(12). 둘째,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요, 성전에서 하는 기도를 주님은 눈을 열고 귀를 기울이신다(15). 셋째, 성전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히 거기에 두리라(16)입니다. 이런 성전의 기능 역시 신약 성도들의 몸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성전된 우리 몸을 주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영적 희생제를 드립니다(롬12:2). 우리는 몸이 성전이기에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주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걸어 다니는 성전입니다. 우리는 우리 몸된 성전을 거룩히 구별해야 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로 인해 모독 받지 않도록 해야합니다(약2:7). [그들은 너희를 부를 때 쓰는 그 귀한 이름을 모독하지 아니하느냐?](약2:7). 주님은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들이 회개를 하면 회복해 주실 것입니다. 대신 죄를 지은 후에 회개하지 않으면 철저히 심판하시고 징계하실 것입니다(19-20). 8장입니다. 8장은 4가지 면에서 솔로몬을 보여 줍니다. 첫째, 건축자로서의 솔로몬입니다(1-10). 솔로몬은 성벽을 쌓고, 견고한 도시를 많이 건축했습니다(1-10). 둘째, 남편으로서의 솔로몬입니다(11). 솔로몬은 많은 아내를 취했습니다. 그 중에 파라오의 딸이 있었는데 다윗의 도시에서 새로 만든 집으로 옮겼습니다. 그는 이방인 아내가 거룩한 도시에 있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셋째, 종교 지도자로서의 솔로몬입니다(12-16). 솔로몬은 주의 명절들을 지키고,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필요한 직무를 다 행하도록 했습니다. 넷째, 무역상으로서의 솔로몬입니다(17-18). 솔로몬은 종교와 정치 뿐 아니라 외교와 경제에 능통한 왕이었습니다. 9장입니다. 솔로몬의 명성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위해 멀리서 찾아 왔습니다. 그녀는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모두 물었고, 솔로몬은 모두 대답했습니다(1,2). 시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와 다스리는 것을 보고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4). 땅의 왕들이 모두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23,24). 이 때의 솔로몬의 모습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 통치 모습을 예표합니다. 10장은 왕국의 분열입니다. 르호보암은 왕이 되었지만 아버지 솔로몬의 말년에 행한 실정을 바로 잡지 않고 북왕국 10지파의 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여로보암을 비롯한 10개 지파는 세금 감면, 공역 감소 등을 요구했습니다. 르호보암은 사흘 동안 참모들로부터 조언을 들었는데 늙은 사람들은 현명한 조언을 했지만(10:6-7) 같은 또래의 청년들은 악한 조언을 했습니다(10:8-11). 조언은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잠언 8:14, [계략과 건전한 지혜가 내 것이니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의로운 자의 생각들은 올바르나 사악한 자의 계략들은 속임수니라.][잠12:5]. 젊은이들의 조언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들에게 옛 길을 걸으라고 말합니다. 옛 길은 이미 검증된 길이요,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는지 저주하셨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은 끊임없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란 말을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이유가 바로 옛 길을 기억하고, 그들이 걸었던 길로 걷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레미야 6:16,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길들 가운데 서서 보며 옛 행로들 곧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 보고 그 길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한 안식을 얻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그 길로 걷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며](렘6:16). 옛 길을 버린 결과는 배교입니다. 예레미야 18:15, [내 백성이 나를 잊어버렸으므로 헛된 것에게 분향하였으며 이러한 것들이 그들로 하여금 옛 길을 떠나 그들의 길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고 길들 곧 닦지 아니한 길로 다니게 하였느니라.](렘18:15). 청년 르호보암은 왕권 강화, 자신의 위엄을 세우는데만 관심이 있었지 백성들을 섬기고, 자신이 낮아지는 것이 진정으로 높아지는 것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르호보암은 잘못된 조언을 바탕으로 잘못된 결론을 내림으로써 북왕국 10개 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고 독립해 버렸습니다. 11장입니다. 르호보암은 즉시 군대를 일으켜 북왕국을 진압하려했지만 하나님은 스마야 대언자를 통해 막으셨습니다. 여로보암은 북왕국의 왕이 되자마자 우상 숭배에 빠져 들었기 때문에 북왕국 지역에 살던 레위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정착했습니다(13-16). 여로보암은 단과 벧엘에 산당들을 짓고, 금 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 중에 가장 천한 자들을 뽑아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덕분에 북왕국에 있던 의식있는 레위 사람들은 다 남왕국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땅에 성경대로 믿는 신자들이 사라질 때 그 나라는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왔을 때, 영국은 급격히 몰락했고 미국은 세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은 3년간 다윗과 솔로몬의 길을 걸음으로써 유다는 강성했습니다(17). 12장입니다. 르호보암은 집권 초기의 위기를 잘 극복하고 나라가 강성해지자 주의 법을 버렸습니다(1). 우리는 여기서 영적 위기는 언제 오는가?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르호보암이 가장 전성기 때, 위기를 이기고 난 후, 잘 나갈 때 바로 그 때가 영적 위기의 순간입니다. 르호보암이 주의 법을 버리자 곧 바로 위기가 닥쳤습니다. 주님은 이집트의 왕 시삭을 통해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을 공격하도록 했습니다(2-5). 우리 주변에서 문제가 터질 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영적으로 깨어 나도록 하기 위한 주님의 손길임을 기억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르호보암과 백성들은 즉시 회개했습니다(6). [이에 이스라엘의 통치자들과 왕이 스스로 겸손히 행하며 이르되, [주]는 의로우시다, 하매](6). 하나님은 이들이 겸손히 행하는 것을 보시고 완전히 멸하시지 않으시고 어느 정도 구원을 베풀어 주셨으나 이들에게 남의 나라 왕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교훈을 주셨습니다. 르흐보암은 이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고 겸손히 행했기에 나라 형편은 다시 좋아졌습니다(12). 그러자 르호보암은 다시 악을 행했습니다(14). 13장입니다.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와 여로보암 간의 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아비야는 전선을 마주보고있는 여로보암과 그의 군사들에게 역사적인 연설을 했습니다. 첫째, 주 이스라엘의 왕국은 다윗과 그의 집에 주신 것이다(5). 여로보암은 반역자요, 배반자이다(6). 유다를 치려는 것은 주의 왕국을 대적하는 것이다(8). 여로보암은 우상을 숭배하고,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을 쫓아내었으며, 성직을 매매했다(9)는 엄중한 경고를 했습니다. 반면 유다는 하나님을 섬기고 구원의 대장으로 삼는다고 고백했습니다(10-11). 이 날의 전쟁은 유다의 대승이었습니다. 18절, [이와 같이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 자손이 이기었으니 이는 그들이 [주]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을 의지하였음이라.](18). 이는 하나님께서 여로보암과 그의 백성들의 배교와 우상숭배로 인해 마땅히 아비야가 집행하도록 허락된 엄중한 징벌이요, 심판이었습니다. 아비야 자신의 성격도 진실로 경건한 것은 아니었지만(왕상15:3) 그는 백성들의 신앙으로 자기 자신을 지켰습니다. 아비야 자신은 믿음과 경건이 없었지만 레위의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신앙으로 도움을 입은 경우입니다. 유다 안에 얼마간의 경건한 예배자들이 있었다는 것과 배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북왕국과 비교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훨씬 더 의롭고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과 위험이 모든 면에 도사리고 있었을 때 그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 항상 열려있는 하늘을 향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위로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믿음의 함성을 더하고, 승리했습니다. 여로보암은 아비야의 검은 피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습니다. 14장입니다. 아사의 개혁 정치입니다. 신앙의 개혁은 곧 신앙의 부흥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을 굴복시키는 선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아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마음먹었고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골몰했습니다. “자신이나 세상의 견해에 옳은 것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하는 자들은 행복합니다.”(Matthew Henry). 부흥의 전제 조건은 악을 제거하는 것입니다(3). 다음에는 주님의 말씀을 구하는 것입니다(4). 악을 제거하지 않는 채 주의 말씀을 찾는 것은 회개도, 개혁도, 부흥도 아닙니다. 부흥의 결과는 안식과 평안입니다. 정직하고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닥치는 전쟁이나 위험은 믿음을 단련하고 시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사에게 닥친 전쟁과 여로보암에게 닥친 전쟁은 동일한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이디오피아 사람 세라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대군을 맞이하는 아사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11절, [아사가 [주] 자기 하나님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여, 많은 사람들로 돕든지 능력이 없는 자들로 돕든지 주께는 문제가 되지 아니하나이다. 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이는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으로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음이니이다. 오 [주]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11). 아사의 기도는 짧지만 진실한 믿음의 언어였고 진실로 하나님을 기대하는 표현이었습니다. 15장입니다. 하나님은 아사랴를 통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사에게 적절한 조언을 주었습니다(2-7). 아사는 다시 한번 철저하게 주님을 섬기기로 결심하고, 언약을 맺었습니다(12-15). 주님은 이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16장입니다. 아사의 말년에 범한 세 가지 죄에 대해 기록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아사의 첫 번째 죄는 주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시리아 왕을 의지한 것입니다(7). 백만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도 주님을 의지해서 간단히 이겼던 그가 이번에는 시리아 왕에게 뇌물을 갖다 바쳐 동맹을 맺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얼마나 기만적입니까? 우리에게 믿을 만한 다른 것들이 없고 궁핍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머무를 다른 것들이 있을 때에는 우리는 그것들에 너무 의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사람과 자신의 육체를 의지할 때 불쾌해 하십니다. 우리가 의지할 반석이요,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대신 상한 갈대요, 썩어질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둘째, 아사의 죄는 자신의 죄를 책망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감옥에 가둔 것입니다(10). 마음이 하나님에서 멀어지면 하나님의 사람들과도 멀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박해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반역하는 사람은 자신이 다스려야 할 백성들을 압제하며, 가족들이나 친구들과의 관계성도 파괴됩니다. 셋째, 자기 발에 병이 났을 때 주께 묻지 않고 의원들에게 구한 것입니다(12). 의원들을 이용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당연한 의무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신뢰하고 하나님께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것을 그들에게서 바란 것은 죄이자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의사의 필요성을 인정합니다. 마태복음 9:12, [예수님께서 이것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온전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니라.](마9:12). 17장입니다. 여호사밧의 통치입니다. 여호사밧 역시 아사처럼 주님을 잘 따르는 왕이었습니다(3,4). 그는 특히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9). [그들이 [주]의 율법 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유다의 모든 도시로 두루 다니며 백성을 가르쳤더라.](9). 여호사밧은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함으로써 경건의 능력을 증진시키고, 주의 지식이 전해짐으로 그들의 양심이 깨어나 지시를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번영을 누렸습니다. 여호사밧이 도시를 건설하고 군대를 강화했기 때문에 주위에서 시비를 걸지 못한 것이 아니라 주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율법 선생들을 그 안에 둠으로써 주위 국가들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군대나 무기보다 왕국의 더 큰 힘이며, 안전책입니다. 우리는 여호사밧처럼 우리 가정에서부터 아내와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보상이 따릅니다. 18장입니다. 열왕기하 22장에서 이미 살펴본 내용입니다. 여호사밧은 많은 재물과 명예를 소유했습니다. 그는 그 때 북왕국 역사상 가장 사악한 왕 아합과 사돈 관계를 맺었습니다. 풍부한 부와 명예는 선한 일을 할 많은 기회들을 주지만 또한 많은 유혹과 덫을 수반합니다.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부를 탐내는 것은 사탄의 술책을 별로 알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의 거짓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재물에는 속임수가 있습니다. 재물에는 찌르는 것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4:19,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속임수와 다른 것에 대한 정욕(情欲)이 들어와 말씀을 숨막히게 하여 열매 맺지 못하게 되는 자들이요,], 전도서 5:13, [내가 해 아래에서 큰 악이 있음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들을 위해 간직한 재물이 그들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전5:13). 여호사밧은 먼저 결정을 한 후에 주님께 물을만한 대언자를 찾았습니다. 그는 미가야의 말을 통해 아합과 함께 전쟁에 나가면 안된다는 경고를 받았지만 그냥 나갔다가 죽음을 당할 뻔했습니다. 아합은 악하게도 변장을 한 채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합을 멸하시고 여호사밧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자들을 무엇이 다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멸하시는 자들을 무엇이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고도 안전했고 아합은 갑옷을 입고도 죽었습니다. 민첩한 자라고 경주를 이기는 것이 아니고 강한 자라고 전쟁을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악한 자들의 세상적인 사업에 뒤얽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설계하는 죄에 관여되지 않도록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신실한 백성들을 그들이 지은 죄로부터 오는 위험과 어려움에서 구하실 수 있고 구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그 손에 가지고 계신다. 복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입니다”(M.H). 아합은 미가야의 말대로 전쟁에서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34). 아합의 모든 대언자들은 주께 속아서 거짓을 대언했습니다. 현재 교회에는 거짓 교사들이 설치고 있습니다. 거짓 목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모두 주께 속아서 거짓을 말하는 자들입니다. 벧후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거짓 대언자들이 있었던 것같이 너희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영벌(永罰) 받을 이단 교리들을 몰래 들여와 심지어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기까지 하고 자기들 위에 신속한 파멸을 가져오는 자들이라.],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가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대언자들이 나와서 세상에 들어왔음이라.] 19장입니다. 아합과의 연합으로 인해 혼이 난 여호사밧은 주님의 은혜로 평안히 돌아왔습니다(1). 우리는 평안 가운데 집으로 돌아올 때 우리의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하심을 늘 깨달아야 합니다. 집을 나서고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특히 일상적인 것 이상의 위험에서부터 보호받았다면 마땅히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구별된 은혜, 특별한 섭리와 보호는 주님에 대한 강한 믿음과 영적 의무감을 갖게 해 줍니다. 선견자 예후는 돌아오는 여호사밧을 엄히 책망했습니다. 2절,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으며 이르되, 왕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돕고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셔야 하겠나이까? 그러므로 [주] 앞으로부터 진노가 왕에게 임하리이다.](2). 성경은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과 악인들과 함께 앉지도, 함께 걷지도, 함께 먹고 마시지도 말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사밧은 이 경고에도 불구하고 뒤에 한번 더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연합하는데 이 역시 큰 죄였습니다(대하20:35). 여호사밧은 책망을 받고 바로 잡혔습니다. 그는 다시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개혁 정책을 폈습니다. 백성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고(4), 재판관들을 세우되 공평하게 재판하도록 명령했습니다(6-7). 특히 이들에게 백성들을 잘 지도하여 주께 범죄하지 않도록 엄히 명하였습니다(9-11). 여호사밧은 무엇이 주를 기쁘게 하는 것인지를 입증하였고, 그에 따라 살았습니다. 이는 죄와 허물 가운데 빠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성도들에게 귀한 교훈을 줍니다. 20장입니다.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의 연합군이 쳐들어 왔습니다(1-2). 여호사밧은 두려움 가운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그는 몸을 주께로 향하고 온 유다에 금식을 선포했습니다(3). 백성들 역시 모두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4). 그의 기도는 기도의 본이 될만한 훌륭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고백(6)과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7), 약속에 근거한 기도(7-9), 그리고 처절한 간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10-12).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적을 앞에 두고 하늘을 쳐다보는 이들의 믿음에 대해 주님은 즉시 응답해 주셨습니다(15-17). 전쟁은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최고의 전사요, 주님의 훌륭한 군사로 손색이 없습니다. 여호사밧은 전쟁을 치를 때 먼저 찬양대를 앞세웠습니다(20-22).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셨습니다. 17절에서 “이 전쟁에서는 너희가 싸울 필요가 없나니...”라고 말씀하신대로 모조리 다 치셨습니다. 주님이 친히 싸우셨다는 소식이 온 사방에 전해지자(29) 아무도 감히 유다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성도들이 눈에 보이는 적들을 무찌르기 위해 부르짖었다면 신약 성도들은 하늘의 영적 악을 대적하여 싸우기 위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대적(對敵)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政事)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라.](엡6:12). 21장입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달리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아 아합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죄는 첫째, 형제들을 죽인 것입니다(4). 둘째,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아 아합의 길을 걸은 것입니다(6). 셋째, 유다의 여러 산에 산당들을 세웠습니다(11). 주님은 엘리야를 통해 이에 대해 엄중한 심판을 선고하셨습니다(13-15). 아내들이 죽고, 자식들이 죽고, 모든 재물들이 약탈당하고, 본인은 창자가 빠져 나오는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악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임합니다. 22장입니다. 다음으로 아하시야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아하시야는 아합처럼 악하게 행한 유다 왕입니다. 아하시야의 악행은 잘못된 조언을 따라 행했기 때문입니다(3,4). 아하시야는 악한 자들에게 이끌려 자신을 포기했습니다. “우리에게 악하게 행하라고 충고하고 멸망하도록 지도하는 자들은 친구인 척 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최악의 적들입니다. 악한 친구들의 악영향을 보고 두려워하십시오. 그들에게 감염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멸망이라도 두려워하도록 해야 합니다”(계18:4). 그는 북왕국의 여호람을 도와 시리아와 전쟁을 했다가 부상을 입고 예스르엘에 있다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하시야가 죽자 어머니 아달랴가 정권을 잡았습니다. 유다 역사상 첫 여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본래 유다 왕의 씨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습니다. 다행히 제사장 여호야담의 아내요, 아하시야의 누이였던 여호사브앗이 요아스를 숨겼습니다. 어린 요아스는 주의 집에서 6년동안 숨어 지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약속의 씨를 다 멸하려는 한 여인과 약속의 씨를 지키려는 한 여인을 볼 수 있습니다. 23장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세력을 강화하여 일곱 살의 어린 나이의 요아스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반역이 아니라 정당한 왕위 복원 문제였습니다. 유다 왕국의 왕은 다윗의 아들들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절, [온 회중이 하나님의 집에서 왕과 언약을 맺으매 여호야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께서 다윗의 아들들에 관하여 말씀하신 대로 왕의 아들이 통치하여야 할지니](3). 여호야다는 이점을 백성들에게 가르쳤고, 백성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했습니다. 여호야다는 맨 먼저 백성들과 왕과 언약을 맺어 유다가 주의 백성이 되게 했습니다(16). 그리고, 바알의 집과 제단들과 형상들, 바알의 제사장을 죽였습니다. 이 세상 역시 다윗의 아들이요, 뿌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위에 오르셔서 다스리시며, 언약을 맺고, 세상의 모든 악을 제거하실 그 날에 백성들의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하나님과 우상 사이의 중립점과 타협은 있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봅니다. 24장입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고, 주의 집을 보수하며, 여호야다의 평생동안 항상 번제 헌물을 드렸습니다(14). 여호야다가 130세의 늙은 나이로 죽었는데, 이후부터 요아스는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대언자들을 보내셔서 다시 돌아오도록 하였으나 그는 대언자들을 듣지 않았습니다(19).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통해 엄중한 경고의 말씀을 주셨으나 오히려 음모를 꾸며 죽이고 말았습니다(21). 하나님은 이에 대해 심판하셨는데 시리아 군대로 하여금 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아스에게는 큰 병을 주셨습니다. 신하들이 배반하여 침상에서 암살 당하였습니다. 요아스의 일생은 여호야다란 훌륭한 목자를 만났을 때와 목자를 잃은 후가 극적으로 대비되는 인물입니다. 예레미야 23:4, [또 내가 그들을 먹일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부족하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렘23:4). 예레미야 3:15, [내가 또 내 마음에 맞는 목양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먹이리라.](렘 3:15). 우리는 늘 선한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따라 선하고, 의로운 길, 좁고 협착한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25장입니다. 아마샤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옳고 그름을 따라 행했지만 전심으로 주님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1-2). 그는 아버지를 죽인 암살자들을 찾아내어 죽였지만 율법에 따라 그의 아들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3-4). 이는 신명기 24:16에 따른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기 자식들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자식들은 자기 아버지들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니 오직 각 사람은 자기 죄로 인하여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24:16). 이 점은 각별히 유념해야 합니다. 조국의 교회들에서 무속적인 축복 상속과 저주의 상속을 성경적인 교리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죄를 자신이 감당하게 하셨지 조상의 죄를 감당하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에스겔 18:20, [범죄하는 그 혼은 죽을지니라. 아들이 아버지의 불법을 담당하지 아니하며 아버지가 아들의 불법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로운 자의 의가 그 의로운 자 위에 임하겠고 사악한 자의 악이 그 사악한 자 위에 임하리로다.](겔18:20). 예레미야 31:30, [오직 사람마다 자기 불법으로 인해 죽을 것이요,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자기 이가 시려서 진저리치게 되리라.](렘31:30). 아마샤는 신앙의 적은 아니었지만 전적으로 성경대로 믿고 행하는 성경 신자도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한 일은 하지만 온전한 마음으로 하지 않습니다. 아마샤는 몇 가지에 일에 위대한 결단을 보여 주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은 일백달란트로 십만명을 고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해산할 것을 말했습니다(7,8).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패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권능이 있어 돕기도 하시고 쓰러뜨리기도 하신다는 경고를 주자 망설였습니다. 이미 백달란트나 들였기 때문입니다. 아마샤는 망설임 가운데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주님은 더 크게 갚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자기를 포기하는 것, 손해를 보는 것은 대가를 만회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충분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누군가와, 무엇인가와 헤어져야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주실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를 만족시킬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자기 부인과 손해보는 순종은 도저히 못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샤와 같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백 달란트를 어찌할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므로 손님을 많이 잃으면 어찌할까? 우리가 이 이득없이 어찌할까? 우리가 세상의 우정을 잃게되면 어찌할까? ' 많은 사람들은 금지된 습속도 필요하다고 가장함으로서 자신의 양심을 잠잠케 하려고 노력한다. 그 대답은 여기에서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능히 이보다 많은 것으로 주실 수 있으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도 그를 위하여 포기된 모든 것들을 갚으신다.”(M.H). 아마샤는 순종을 축복하셔서 승리를 주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경배하는 대신 세일 자손들의 신들을 가져다가 분향하고 경배했습니다(14). 그는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19).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고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전쟁에 패하고, 신하들에게 암살당해 최후를 맞았습니다(27). 26장은 웃시야 왕입니다. 웃시야는 주님을 따랐습니다(4). 그는 특히 스가랴 대언자가 살아 있는 동안 그를 통해 하나님을 구했고 형통했습니다(5). [웃시야가 자기 아버지 아마샤가 행한 모든 것에 따라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며 하나님의 환상에 관하여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그가 [주]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하게 하셨더라.](4,5).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말씀을 가르쳐 주는 목자, 하나님의 사람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다니엘이 있을 때 그를 가까이 한 이방 왕들은 모두 넘치도록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을 가까이 한 파라오는 훌륭한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야다를 가까이 한 요아스(대하24:2), 스가랴를 가까이 한 웃시야(26:5) 등이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를 멀리한 아합, 엘리사를 멀리한 북왕국 왕들은 모두 망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 한 사람, 주를 가까이한 가정과 주님을 멀리한 개인과 가정의 차이는 물어 볼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을 찾고 신앙에 관심을 두는 한 하나님은 그를 번영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번영하게 만드시는 자들만 번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번영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을 때 모든 것은 불리하게 되어져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게으른 자에게 계속해서 복주시지 않으시고 근면한 자에게 계속해서 복을 억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헛되이 그분을 찾는 자들을 결코 묵인하지 아니하십니다. 웃시야의 이름이 이웃 나라 도처에 널리 퍼졌습니다(15). 하나님과 선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름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는 전쟁을 기뻐하지 않았고, 오락에 즐거워하지도 않았으며, 농업을 즐거워하였습니다(10). 성도들에게 시험은 언제 찾아 오는가? 영적 위기는 언제 도래하는가? 16절입니다. [그러나 그가 강하게 되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파멸에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주] 자기 하나님께 범죄하되 곧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焚香) 제단에 분향하려 하였음이더라.] 은혜를 받은 뒤, 승리를 맛본 뒤, 복을 받은 후가 가장 위험한 시기입니다1). 그는 사울처럼 왕으로서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려다 나병이 걸리고 말았습니다(19-21). 27장입니다. 웃시야의 뒤를 이어 요담이 다스렸습니다. 요담은 아버지처럼 주의 눈앞에서 올바르게 행했지만 백성들은 여전히 악하게 행했습니다. 웃시야는 선하고, 의로왔지만 백성들의 악을 고칠만한 용기는 없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선하고 의로운 신앙 생활을 하면서 악을 물리치고, 불의를 대적하고, 사악한 자를 무너뜨리려는 적극적인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는 도시와 성채와 망루를 건설하고 암몬 족속을 굴복시켰습니다. 그의 성공 비결은 6절입니다. [요담이 [주] 자기 하나님 앞에서 자기 길을 예비하였으므로 점점 강하게 되었더라.](6). 백성들의 악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지혜롭고 경건한 지도자들을 데려가시고 자비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을 보내셔서 그들의 어리석음과 악덕으로 백성들을 심판하십니다. 28장입니다. 하나님은 아하스를 통해 유다를 심판하셨습니다. 아하스는 바알 형상을 만들고, 힌놈의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인신 공양을 드리고(2,3), 산당과 작은 산 위와 푸른 나무 밑에서 희생물을 드리며 분향했습니다(3). 하나님은 이에 대해 시리아 왕과 이스라엘 왕에게 넘겨주심으로 심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십만명을 포로로 잡아가고, 재물을 노략해서 사마리아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이때 주님은 그들을 노예로 삼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죄를 상기시키셨습니다. 죄인들이 자신을 돌아 보지 않고, 다른 죄인들을 심하게 대하는 것은 더 큰 악입니다. 우리는 동료 그리스도인들, 형제들에게 늘 자비와 친절의 법을 베풀어야 합니다. 비록 그들을 책망하고 분노하여 싸웠다 할지라도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지은 죄가 있고, 은혜를 입은 죄인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10).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낮추셨습니다(19).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하나님은 심판과 징계를 통해 그를 낮추어 버리십니다. 문제는 이런 심판과 징계를 통해 나아지지 않고 더욱 나빠지는 자들은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아하스가 그러했습니다. 그는 더욱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가 고난 당할 때에 더욱 [주]께 범법하였으니 이 사람은 곧 아하스 왕이더라.](22). 고난이 유익인 사람이 있고, 고난이 더욱 멸망을 앞당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은 고난을 통해 연단받은 사람입니다. 시편119:50, [내가 고난 당할 때에 이것이 내 위로가 되었사오니 이는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시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길을 잃었사오나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하오니 이로써 내가 주의 법규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29장입니다. 히스기야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먼저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성전에서 더러운 것들을 제거하게 했습니다(3-6). 아버지 아하스 왕이 더럽히고 버리고 부순 성전의 모든 기물들을 다시 정결하게 복원했습니다(18-19). 그리고, 율법에 따라 희생물을 드리고, 경배했습니다. 왕은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이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섬기도록 했습니다(29,30). 히스기야는 산적한 정치, 경제, 교육, 사회, 군사, 외교 문제들을 제쳐두고 가장 먼저 성전 개혁과 백성들의 마음을 주께로 돌리는 일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이는 일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 주는 예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은 그들의 일을 바르게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등을 돌린 자들은 진실로 하나님을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 태만이 있습니다. ‘등불’로 예표되는 말씀을 충분히 읽지 않거나 펴지 않는 것이나, ‘분향’하는 것으로 예표되는 기도와 찬양이 드려지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의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그들이 겪는 재앙의 원인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죄들을 애도하고 버리는 것만으로는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씀에 따라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회개와 개혁이 용서를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와 그분을 인하여서만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제물들이 단 위에 있었을 때 레위인들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죄에 대한 슬픔이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방해하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예배드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에 있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감사와 찬양의 영적인 희생제를 드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이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로 드려져야 합니다.” 30장입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이 모두 유월절을 지키도록 성전으로 소집했습니다. 그는 유다 뿐만 아니라 북왕국의 모든 지파들에게도 전령들을 보냈습니다. 핵심 내용은 “너희가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하나님이 너희에게로 돌이키시리라.”입니다(6,9). 누구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주님은 모든 것을 회복시키십니다(9). 이것은 위대한 은혜요, 축복의 복음입니다. 9절, [이는 너희가 만일 [주]께로 다시 돌아오면 너희 형제들과 너희 자녀들이 그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간 자들 앞에서 불쌍히 여김을 받아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올 것임이라. [주] 너희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긍휼이 많으시므로 너희가 그분께 돌아오면 자신의 얼굴을 돌이켜 너희를 떠나게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였더라.](9).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하면 하나님 역시 우리를 향해 회개하십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회개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내릴 심판과 징계로부터 회개하십니다. 왕의 파발꾼들이 전달하는 이 말씀에 사람들은 그들을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10). 그러나 그 중에도 여러 사람들이 자신을 낮추어 예루살렘에 왔고, 함께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모두 왕의 파발꾼들처럼 발길이 닿는 모든 도시들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주로 멸시를 받겠지만 열매를 얻을 수 도 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려 모인 사람들 가운데는 주의 율례대로 하지 않았습니다(18). 히스기야는 그들을 위해 주님께 용서해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18,19). 주의 법대로 하지 못하는 모든 일은 죄입니다. 죄는 용서를 필요로 합니다. 용서를 얻는 방법은 기도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우리 주님처럼 백성들의 죄를 대신 기도했습니다.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얻어집니다. 31장입니다. 유월절 이후에 거기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형상들을 산산 조각내고, 작은 숲어 베어내고, 산당들을 무너뜨리는 등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습니다(1). 이것이 집회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요, 부흥입니다. 예배의 모임, 기도의 모임, 찬양 모임 등 여러 가지 영적 집회들은 바른 마음으로 드려지면 큰 은혜를 얻습니다. 모임에 동참하지 않는 어떤 사람들도 이런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예배의 모임은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집과 우리의 직장을 죄의 불결함으로부터 깨끗하게 하도록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차고 넘치도록 헌금과 헌물을 드렸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유난히 헌금이나 돈 문제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속적으로 복을 비는 마음으로 탐욕적인 헌금을 하는 것도 비성경적이지만 자신의 물질을 아끼는 마음으로 헌금을 게을리 하거나 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영적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결코 비용에 인색하지 않습니다(5). 20,21절은 히스기야의 순수한 영적 동기와 열성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두루 이같이 행하되 [주] 자기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올바르고 참된 것을 행하였으니 그가 자기가 시작한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집에서 섬기는 일에서나 율법에서나 명령에서 자기 하나님을 구하고 온 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20-21). 32장입니다. 히스기야는 앗시리아의 대군을 맞아서 오직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함으로 승리했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용기를 내고 아시리아 왕이나 그와 함께한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이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께서 그와 함께하는 자들보다 위대하시기 때문이라. 그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는 [주]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인하여 안심하니라.](7-8). 신앙을 가진 왕은 백성들의 두려움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이런 믿음은 겉치레가 아니라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와 주님을 모독하며 항복을 촉구할 때 그는 대언자 이사야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자신 역시 친히 주의 집으로 들어가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문은 열왕기하 19:15-19에 잘 나옵니다. [[주] 앞에서 기도하여 이르되, 오 그룹들 사이에 거하시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는 땅의 모든 왕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나이다. [주]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주]여, 눈을 여시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꾸짖으려고 보낸 말들을 들으시옵소서. [주]여, 진실로 아시리아의 왕들이 민족들과 그들의 땅을 멸하고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즉 나무와 돌이기 때문이니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 신들을 멸하였나이다. 그런즉, 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간청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땅의 모든 왕국이 주는 유일하신 [주] 하나님인 줄 알리이다, 하니라.](왕하19:15-19). 산헤립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방신들의 하나님과 같은 부류의 우상으로 취급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주님이 우상이 아닌 살아 계신 유일한 주 하나님인 줄 알게 해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의 곤경은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위선적이고, 교만하고, 불경한 자들에게는 공포밖에 이야기할 수 없지만 낙담한 신자에게는 위안의 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후에 히스기야는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눈물로 통곡하는 기도를 함으로써 15년간 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그는 병이 나았다는 표적으로 해를 10도 뒤로 물러나는 이적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 때 히스기야는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25). 주님은 히스기야의 마음을 시험하셨습니다. 31절, [¶그러나 바빌론의 통치자들이 사신들을 히스기야에게 보내어 그 땅에서 생긴 이적(異蹟)에 관하여 묻는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시고 그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친히 그를 시험하셨더라.](31). 그러나 이 시험에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시험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창22:1).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셨습니다. 신명기 8:2, [[주] 네 하나님께서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너를 인도하신 그 모든 길을 기억할지니 이것은 그분께서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또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려 하는지 그렇지 아니한지 알고자 하심이라.] 주님은 성도들을 시험(try)하십니다. 잠언 17:3, [도가니는 은을, 용광로는 금을 단련하거니와 [주]는 마음을 /단련/하시느니라.]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단련)하십니다(벧전1:7). 그러나, 주님은 악으로는 시험하시지 않습니다(약1:13). 역대기상 29: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시험하시고 올바른 것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또 아나이다. 나로 말하건대 내가 올바른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자원하여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니 심히 기쁘나이다.], 시편26:2, [오 [주]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시며 내 속 중심과 마음을 단련하소서.], 예레미야 17:10, [나 [주]는 마음을 살피며 속 중심을 시험하고 각 사람의 길과 각 사람의 행위의 열매대로 각 사람에게 베푸느니라.] 히스기야는 말년에 실패했습니다. 이는 위대한 신앙인들이 말년을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엄숙한 교훈을 줍니다. 평생을 교회 사역, 출판 사역, 제자 양육에 전념하다 말년에 마음이 주로부터 떠나지 않도록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33장입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왕이 되어 악을 행했는데 2-7절은 그가 행한 악한 일의 목록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지만 그들은 받지 않았습니다. 10절, [[주]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이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아니하니라.](10). 하나님은 앗시리아 왕의 군대 대장들을 보내어 그를 바빌론을 끌고 갔습니다. 그는 왕궁에서 호화 생활을 하다 졸지에 가시 가운데 넣고 족쇄로 결박당한 채 바빌론으로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열왕기에는 그의 사악함에 초점을 맞춰 기록한 반면 역대기는 그의 회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2-13절은 자기를 낮추고 회개하는 므낫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의 권능을 보여 줍니다. 므낫세는 고통 가운데 주께 기도했고, 죄를 고백하고, 자신을 책망하고, 겸손히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주님은 그의 간청하는 말과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데려 오셨습니다. 이 때 비로소 므낫세는 주께서 하나님이시란 사실을 알았습니다(13). “그는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새로운 성품을 인격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므낫세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배교하고 반역한 많은 날들을 되돌아볼 때 누가 그가 견딘 양심의 가책과, 비탄의 아픔과, 진노의 두려움과, 괴로워하는 후회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많은 사람들을 죄와 파멸로 인도했고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박해하고 살해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죄인이 하나님의 왕국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누가 구원의 문이 어렵고 힘든 길이라 하겠습니까? 아주 악한 사람 므낫세도 회개의 길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그 사람의 죄가 아니라 회개치 않는 완악한 마음입니다! 34장입니다. 요시야는 8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조상들의 행한 우상의 잔재들, 죄와 불법들을 깨끗하게 하는데 전력했습니다(3-7). 그는 어린 나이에 벌써 하나님을 잘 알았고,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께 헌신되는 것이 얼마나 큰 유익인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발견한 모세의 율법책을 통해 조상들이 지은 죄와 하나님의 심판, 민족의 운명 등을 다 들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죄를 깨닫고, 성경을 통해 주의 손길과 징계를 깨닫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복과 재앙은 까닭없이 임하지 않습니다. 모든 복과 재앙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임합니다(24-25). 요시야는 주의 율법책을 모두에게 읽어 주고, 자신의 처소에서 주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31절, [또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주] 앞에서 언약을 맺되 자기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를 따라 걸으며 그분의 명령과 증거와 법규를 지키고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이 언약의 말씀들을 수행하기로 하고](31). 요시야의 이런 결단은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믿음까지 굳게 붙들어 주었습니다(33). 35장입니다. 요시야가 우상숭배를 멸절한 것은 열왕기하 23장에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기에는 그가 유월절을 지킨 기사가 나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역대기는 성전 중심, 제사장 중심의 관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의 의식을 준수하는 것은 경건과 헌신이 자라난다는 것의 증거이며, 자신들을 구원한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유월절과 주의 만찬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주의 만찬을 통해서 우리는 단지 의식이 아닌 우리를 위해 희생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요시야는 말년에 이집트 왕 느고가 길그미스와 싸우러 올라 올 때 전쟁에 참여했다가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20-24). 그는 이 전쟁에 관여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유다는 급격히 쇠약해졌습니다. 대언자 예레미야는 요시야의 죽음을 애곡했습니다(25). 36장입니다. 요시야가 죽자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았는데 그는 3개월만에 이집트의 왕 느고에게 쫓겨나 이집트에 볼모로 사로 잡혀갔습니다. 느고는 여호아하스의 동생 엘리아김을 여호야김으로 개명해서 왕으로 삼았습니다. 여호야김은 주 앞에서 악을 행하다 느부갓네살에게 결박당해 바빌론으로 잡혀갔습니다(6).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을 왕으로 삼았는데 그 역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다 100일만에 폐위되고 바빌론으로 잡혀 가고, 왕위는 여호야긴의 숙부인 시드기야에게로 넘어 갔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를 왕위에 앉히면서 성전의 모든 보화와 기명들을 바빌론으로 가져 가 버렸습니다(10). 시드기야 역시 대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를 낮추지 아니함으로 더 이상 구원의 방법이 없게 되었습니다. 15,16절, [[주]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자신의 거하는 곳을 불쌍히 여기사 자신의 사자(使者)들을 통하여 백성에게 /말씀을/ 보내고 늦기 전에 일어나 보내셨으나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들을 멸시하며 그분의 대언자들을 학대하여 마침내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향해 진노하사 구제할 방법이 없게 되었으니](15-16).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의 반란을 철저히 진압하고 예루살렘을 초토화시켰으며, 모든 사람들을 포로로 끌어 가 버렸습니다. 그들은 70년이란 긴 시간을 바빌론에서 종살이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주로 왕들의 죄를 지적했지만 백성들의 죄도 심판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의 율법대로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레위기 25:4, [칠 년째 되는 해에는 그 땅에 안식하는 안식이 있게 할지니 이것은 [주]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네 밭에 씨를 뿌리거나 네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그러나, 이들은 계속해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원수들의 땅에 옮기신 후에 그 땅에 안식을 주셨습니다. 레위기 26:34,35 [이러면 너희가 너희 원수들의 땅에 거하는 동안에 그 땅이 황폐하여 안식을 누리리라. 바로 그때에 땅이 안식하며 안식을 누리리니 너희가 그 땅에 거하며 안식할 때에 그 땅은 안식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그 땅이 그 황폐한 동안에 안식하리라.] 주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70년이 차면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10,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빌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아보고 너희를 향한 나의 선한 말을 이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리고 그 정해진 시간. 시온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로 한 시간이 마침내 왔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쓰러지더라도 아주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분의 백성들은 징계되더라도 아주 버려지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용광로에 던져지더라도 아주 파멸되지는 않으며 불순물이 제거되기까지만 그곳에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다투시지만 언제까지나 다투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사건들을 신실하게 기록한 역대기를 접기 전에 죄가 이 세상, 아니 하나님의 교회에 어떤 황폐함을 가져오는지 생각해 봅시다. 역대기를 통해 주님께서 그분의 증인들을 남겨두신 것을 발견하지만 우리는 이 책에 기록된 것들을 보면서 떨어야 합니다. 죄를 철저히 미워하시고, 자기를 낮추며 회개하는 영혼들을 넘치게 복주시는 은혜의 주님에 대한 분명한 조명을 얻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1) 여호수아가 언제 패배했는가? 여리고의 승리 이후이다. 다윗이 언제 인구 조사를 했는가? 가장 강성한 후이다. 히스기야가 언제 무너졌는가? 기도를 통해 15년 간의 생명이 연장받은 후이다. 시험은 영광스런 승리를 쟁취한 후에 찾아온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자기에게 행하신 은혜대로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 위에 진노가 임하게 되었더라.](대하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