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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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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언제 못 박히셨는가?
lhyunsik

예수님은 언제 못 박히셨는가? 01. 고난일과 유대인의 절기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이란 양축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수레와 같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다양한 종교적 행사를 하지만, 정확한 성경적 의미를 알지 못한 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성(聖) 금요일이라고 알려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일은 종교적 전통이요, 우화일 뿐 성경의 진리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성경과 유대인들의 절기를 연관하여 주님이 고난 당한 날과 부활한 시점을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언제 돌아가셨는가?를 성경을 통해 찾아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전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까지 성경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대로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장 잘 예표하는 것은 유월절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Thanksgiving Day에 돌아 가셨다면 성경대로가 아닐 것입니다. 보통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은 돌아가신 후 셋째 날로 불립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이 날에 대한 표현이 조금씩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고 사흘 뒤에(after three days) 다시 일어나야 할 것을 비로소 가르치시되](막8:31),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안에(within three days)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막14:5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in three days)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 하시니](요2:19). [이는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three days and three nights) 땅의 중심부에 있을 것임이라.](마12:40).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음을 믿는 우리로서는 이런 구절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실 이것은 유대인들의 관용구와 상관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언어는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로 통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경을 통해서 "셋째 날"이 "사흘 뒤에", "사흘 안에", "밤낮으로 사흘 동안"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는지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런 용례가 있으면 이 모든 구절이 같은 것을 표현하는 관용적 표현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먼저 에스더 4:16과 5:1을 살펴보십시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함께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사흘 동안 밤낮으로(three days, night or day)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이제 셋째 날에(on the third day) 에스더가 왕비의 예복을 입고 왕궁의 안뜰 곧 왕궁의 맞은편에 서니" 비교를 통해서 우리는 "사흘 동안 밤낮으로"와 "셋째 날에"가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대기하 10:5과 12절을 참조해도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사흘 뒤에"와 "셋째 날에" 혹은 "사흘째 되는 날에"가 같은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런 차이는 유대인들의 관용적 표현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음 12장 40절 말씀 즉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three days and three nights) 땅의 중심부에 있을 것임이라."과 누가복음 24장 21절 말씀 즉 "이 모든 것 외에도 오늘은 이런 일들이 있은 지 사흘째 되는 날이요,"이 같은 것을 의미하며 전혀 모순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신 뒤 밤낮으로 사흘이 지난 뒤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삼일밤 삼일낮을 땅의 중심부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이는 72시간을 땅속에 묻혀 있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1:9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낮에 열두 시간이 있지 아니하냐? 사람이 만일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걸려 넘어지지 아니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낮은 12시간이며, 밤 역시 12시간입니다. 현재 시각으로 우리는 낮과 밤의 개념이 모호합니다. 자정(12:00 p.m)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11시 59분 59초까지는 아직 하루가 다 가지 않은 것이고, 자정이 되는 순간 다음날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루의 기준은 자정에 두지 않습니다. 주님은 저녁 6:00를 하루의 기준으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천지 창조 과정동안 계속해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오후 6:00시를 날과 날의 기준으로 삼으셨습니다. 6:00 p.m에서 6:00a.m 까지를 밤이라고 하고, 아침 6시부터 오후 6:00까지를 낮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밤낮의 기준이 지금보다 매우 명확했음을 알 수 있고, 날과 날의 기준이 훨씬 더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의 마지막 날인 안식일 역시 금요일 오후 6시에 시작되어 토요일 오후 6시면 종료되는 것입니다. 토요일 오후 6:00에서 1초라도 지나면 이미 그것은 토요일이 아니고 주의 첫날 일요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약 금요일 오후에 못 박히셨다면 주의 첫날까지는 3일 밤 3일 낮이 될 수 없습니다. 삼일 낮 삼일 밤은 문자 그대로 12시간 씩 3번의 밤과 낮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시각은 성경에 정확하게 나옵니다. 날짜 역시 정확하게 나옵니다. 마태복음 27:45,46, [이제 여섯 시부터 어둠이 온 땅을 덮어 아홉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아홉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50절. 예수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시니라.] 예수님은 성경적 시각으로 아홉시, 현재 우리 시각으로 오후 3시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셨고, 그 이후에 몇 마디 말씀을 더 하신 후에 돌아가셨습니다(막15:37, 눅23:46-아버지여 내 영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나이다. 요한복음 19:30-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식초를 받으신 뒤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여 숨을 거두시니라.) 예수님의 사망 진단은 정확하게 몇 시 몇 초인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오후 3시경이 넘어서 곧 숨을 거두셨으며, 이 날이 바로 유대인들의 유월절 예비일이었다는 점입니다(요19:31). 유월절은 3월 14일 저녁 6:00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이셨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예비일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7, [...이는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음이라.] 이는 구약 4,000 년 동안 예언되어 온 것이며, 출애굽 당시부터 공식적인 년중 최대 명절로 해마다 이 날을 지킴으로써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애타게 기다려 왔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유월절 어린 양의 실체이신 주님이 나타나자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3월 15일부터 22일까지는 무교절입니다. 무교절의 첫날은 안식일입니다. 이 날을 매주 지내는 안식일 아니라 명절의 안식일이기 때문에 큰 날(high day-요19:31)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십자가에 몸을 매달아 두는 것을 부정하게 여겨 빨리 치우고자 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몰약과 알로에 썩은 것을 백근쯤 가져다가 유대인 장례방식대로 향품들과 함께 아마포에 싸서 돌무덤에 안치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일하거나 죽은 시체를 만질 수 없었기 때문에 매우 서둘렀던 것이 분명합니다. 돌 무덤에 안치된 시각은 6:00바로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되었습니다(목요일 오후 6:00까지). 금요일은 평일이었기 때문에 여인들이 향료를 살 수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사람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예수님께 바르려고 사 두었던 향료를 가지고] 이날 저녁 6:00가 되면 매주 지내는 안식일이 됩니다(토요일 오후 6:00까지). 토요일 밤에는 무덤 가로 올 수 없었기 때문에 안식후 첫날(일요일 새벽)에 무덤으로 달려 왔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부활하고 거기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무덤을 막은 돌은 굴려져 있었고, 예수님을 뉘여 놓았던 자리에는 천사가 앉아 있었고,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시각은 토요일 저녁 6:00시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토요일 저녁 6:00부터 바로 주의 첫날이 시작되는 시각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이 바로 인류 역사의 새 날이 시작되는 시각입니다.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새 창조의 첫날입니다. [저녁과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니라](창1:5). 저녁이 되는 시작점에 부활하심으로 무덤에 들어가신지 정확히 삼일 밤, 삼일 낮(72시간)을 지내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잠깐 유대인들의 절기에 대해서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절기는 세대적 진리와 관련하여 엄청난 조명을 우리에게 쏟아 부어 줍니다. 시간 관계상 요약해서 할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 주 수요일 성경 공부 테잎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수요일 성경 공부한 원고임). 레위기 23장을 펴 보시기 바랍니다. 레위기 23장에는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일곱 가지 명절이 나옵니다. 이것들은 주님이 친히 제정하시고, 지키도록 명하셨기에 주님의 ‘나의 명절’ 또는 ‘주의 명절들’이라 부르셨습니다. 레위기 23:1,2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이것이 나의 명절들이니 곧 너희가 거룩한 집회로 선포할 주의 명절들이니라.]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가 처한 처소에서 일년 내내 지키도록 한 명절은 안식일입니다. 흔히 우리는 안식일이 주의 명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안식일은 분명히 주의 명절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엿새 동안을 일할 것이로되 오직 일곱째 날은 안식하는 안식일이니 곧 거룩한 집회라. 너희는 그 날에 아무 일도 하지 말지니 이것은 너희 모든 처소에서 주의 안식일이니라.](3) 안식일의 의미는 매주 주님을 기억하고 친교를 위해 주님이 제정하신 것입니다. 6일간 일하고 하루 쉬며 주님과 대면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주의 백성들에게 필수적인 것입니다. 안식일은 유대인들과 하나님이 맺은 표적입니다. 현재 성도들은 이 안식일 법, 즉 안식일 명절과 아무 상관이 없이 살지만 그 영적 의미와 조명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루를 천년으로 계산할 경우 천년 왕국을 예표합니다. 안식일을 제외하고 일곱 가지 주요 명절에 대해서 주님은 말씀합니다. 이 명절들은 현재 교회 시대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명절들은 다가 올 것들의 그림자이며, 실체는 그리스도입니다. 골로새서 2:16,17 [그러므로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거룩한 날이나 월삭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그 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느니라.](골2:16,17). 신약 성도들이 이런 것들을 지키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헛것으로 만드는 것이며,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이 명절들을 지키면 그들의 가족을 돌보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이 명절을 지키기 위해 모든 남자들이 예루살렘에 가 있는 동안에는 단 한번의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유대의 남자들은 일년에 세 번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와 이 명절들을 지켜야 했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입니다(신16:16).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주의 명절을 지키는 것이 형식화되고, 무관심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의 핵심인 공의와 자비, 사랑은 잊어버리고, 경건한 신앙심도 뒤로 한 채 그냥 모였다가 헤어지고, 성전은 장사하는 집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진저, 너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이여! 이는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되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하였음이라.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저것도 행하지 않은 채 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주님께서 명절을 주신 이유는 그 명절을 통해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 앞에서 인생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 깊은 조명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주의 명절들은 결코 명절을 위한 명절이 아닙니다. 인간의 즐거움과 휴식을 위한 명절이 아닙니다. 명절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이런 것들이 없는 명절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사야1:11-14,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내게 바치는 수많은 희생물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는 숫양의 번제 헌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으로 배불렀으며 나는 수소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며 올 때에 누가 너희 손에 이것을 요구하였느냐? 단지 내 뜰을 밟을 뿐이니라. 13. 다시는 헛된 봉헌물을 가져 오지 말라. 분향하는 것은 내게 가증한 것이요, 월삭과 안식일과 집회로 모이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니 곧 엄숙한 모임 그 자체가 불법이니라. 14. 내 혼이 너희의 월삭과 (너희가) 정한 명절들을 미워하나니// ‘주의 명절’이 ‘너희의 명절’로 바뀐 점에 주목하라. //그것들이 내게는 괴로움이니라. 그것들을 감당하기에 내가 지쳤느니라.](사1:11-14). 우리는 여기서 신약 성도들이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음을 봅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를 드리고, 기도 모임을 가지고, 수련회, 전도 모임, 철야 기도, 부흥회 등 다양한 모임을 가질 수 있고, 부지런히 참여할 수 있습니다. 고난 주간을 지키고, 부활절을 지키고, 추수 감사절, 신년 예배를 지키는 등 성경과 상관없는 집회들이라 해도 본질을 잊지 않는다면 유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형식화된다면 주님은 ‘내혼이 너희의 정한 명절들을 미워 하나니...’라고 말씀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모임은 주의 이름으로 하는 모임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집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집회여야 합니다. 모임의 목적과 동기가 분명히 주님이어야 하며, 주님의 말씀에 따른 것이어야 합니다. 신약 성도들에게는 2-3명이 주의 이름으로 모이기만 해도 주님이 그와 함께 하시겠다는 귀한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만약 수천 명의 회중이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안식일을 제외한 유대인들의 명절은 일곱 가지입니다. 이 중에 제일 큰 명절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입니다. 월별로 보면 유월절과 무교절이 바로 이어서 있는 큰 명절이며 첫째 달에 있습니다. 그리고, 무교절(안식일)의 첫날 바로 다음 날이 초실절입니다. 3월 14일-유월절, 3월15일부터 22일-무교절, 3월 16일-초실절입니다. 초실절로부터 일곱 이레, 즉 50일이 지나면 오순절입니다. 나팔절은 일곱째 달 첫날에 시작됩니다. 일곱째 달은 유대력으로 새 해, 새 달에 해당합니다. 이 달 10일에 속죄일이고 일주일간(22일까지) 장막절입니다. 주목할 것은 오순절이 지난 후 4개월 뒤에 나팔절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이 기간은 교회 시대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제 차례대로 한 가지씩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누구나 잘 아는 명절일 것입니다. 5절, [첫째 달 십사일 저녁은 주의 유월절이요.] 3월이 유대력으로 첫째 달이 됩니다. 유월절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녀들이 구출받고, 구속받은 것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유월절은 유대 국가의 탄생과 그들에게 달들의 시작입니다. 그 달 10일에 흠없는 일년된 어린 숫양을 가족 단위로 한 마리씩 골라내어 그 달 14일까지 간직하였다가 그날 해질 무렵에 잡아 그 피를 우슬초에 적셔서 문 인방과 양쪽 문설주(기둥)에다 뿌렸습니다. 어린양의 고기는 불에 구워서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고 어느 것도 아침가지 남겨 두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를 떠나기 위해서 허리에 띠를 두르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든 채 서둘러 먹었습니다(출12:1-14). 이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대대로 기념하고 지켜야 할 영원한 규례입니다(출12:14). 유월절 양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요, 모형입니다. 문설주와 인방에 있는 피로 인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안전했던 것 같이 갈보리에서 흘린 예수님의 피를 믿는 사람들 역시 동일한 구원의 역사를 이룹니다. 그 날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듯이(유대력1월1일), 구원받은 그날은 우리에게도 새 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7은 유월절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밝혀 놓고 있습니다. [너희는 누룩없는 자들인즉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 버리라. 이는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음이라.](고전5:7). 신약 성도들은 단번에 영원히 드려진 희생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유월절이란 절기를 지키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다시 유월절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둘째, 무교절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 바로 다음날 시작하여 칠일간 계속되었습니다(레23:6-8). [같은 달 십오일은 주의 무교절이니 너희는 반드시 이레동안 누룩없는 빵을 먹을 것이요, 그 첫째 날에는 너희가 거룩한 집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너희는 이레 동안 주께 불로 예비하는 헌물을 들릴 것이요, 일곱째 날에도 거룩한 집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레23:6-8). 유월절과 무교절은 연속해서 붙어서 지켜야 하므로 시간적 간격이 없습니다.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모형이라면 무교절은 성도들의 생활의 모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성도들의 생활은 간격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일주일간의 무교절 기간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신자로서 살아야 할 인생의 전과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죄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무교절 기간 동안에는 누룩을 넣지 않는 빵을 먹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모든 불의와 죄를 벗어버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유월절(14일) 하루를 기점으로 먹고사는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성도들은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먹고사는 삶이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무교절이란 명절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는 이전 세상의 누룩을 버리고, 구원을 받기 위한 종교 행위를 버리고, 새로운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교절이 끝난 다음이 유월절이라면 우리는 종교 행위로 구원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유월절 다음이 무교절인 것은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이 없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고린도전서 5:7-8, [너희는 누룩없는 자들인즉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이는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의와 악독의 누룩으로도 말며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빵으로 하자.] 셋째, 초실절입니다. 초실절은 16일입니다(레23:9-14). 무교절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안식후 첫날이 바로 초실절이 됩니다. 광야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농사를 지어 열매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제물은 양이나 염소가 아니라 수확기의 첫 열매들의 단이었습니다. 땅에서 난 첫 소산물을 가지고 제사장에게로 가져가면 제사장은 그것을 흔들었고, 그 뒤에 번제와 음식제사와 음료 제사가 따랐지만 속죄제는 없었습니다. 번제는 일년된 흠없는 어린 양을 드렸습니다. 다 같이 10-14절을 유념해서 보십시오. 10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 그 땅의 수확물을 거둘 때에 너희 수확물의 첫 열매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 갈 것이요.](10). 수확물의 첫 열매를 주님께 드리는 것이 바로 초실절입니다. 초실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예시이며 모형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셨는데 그분의 부활은 모든 죽은 자의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유월절에서 사흘째 되던 날 초실절이란 사실도 죽은지 삼일만에 일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나타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 알의 밀로써 죽으셨지만 부활하심으로 많은 열매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23, [그러나 각 사람이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2000년 교회사에는 수많은 열매들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전적으로 주님이 행하신 일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이 주님의 뜻에 따라 거룩하게 사는 삶을 말합니다. 초실절 이후부터는 수고와 노력이 많이 드는 신앙의 현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 열매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초실절을 지켰다면 이제는 주님이 주신 땅에서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주님 앞에 뭔가 내 놓을 열매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 16:16,17 [네 모든 남자는 한 해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장막절에 주 네 하니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분 앞에 보이되 주 앞에 빈손으로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주 네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따라 자기의 힘닿는 대로 드릴지니라.] 그것은 바로 구령의 열매입니다. 세상은 주님이 주신 밭이며, 희어져 추수할 곡식들이 있습니다. 구령에 매진하십시오. 구령은 의의 열매입니다. 구령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성취이며, 살아 있는 간증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드려야 할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넷째, 오순절입니다. 초실절로부터 50일이 지나면 오순절입니다. 두 명절 사이에는 일곱 번의 안식일이 있으므로 이 날을 칠칠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5-16절, [너희는 안식일 다음 날 곧 너희가 요제 헌물의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을 채우고 16. 일곱 번째 안식일 다음 날까지 오십 일을 세어 새 음식 헌물을 주께 드리되] 보리와 밀을 수확하는 수확기의 첫날이 초실절이고, 수확기의 마지막이 오순절입니다. 초실절은 보리 수확기에 드리는 것이었고 오순절은 밀 수확기에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초실절에는 곡식단을 드렸는데 반해 오순절에는 낟알을 가루로 만들어 두 덩이의 빵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교회를 형성하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특이한 점은 빵을 만들 때 누룩을 넣어서 만들었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구원받았다고 해도 여전히 불완전하면 육신의 죄과 연약함을 가지고 있음을 예표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순절에는 일년된 흠없는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의 번제물을 음식 제사와 음료 제사와 함께 드렸는데, 이것은 불로 드리는 제사로서 주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습니다. 또 숫염소 새끼 한 마리로 속죄제를 드렸는데, 일년된 어린 양 두 마리를 화목제의 희생 제물로 바쳤습니다. 또 흔드는 빵이 주께 흔들어졌습니다. 초실절에서는 곡식단을 흔들었는데, 오순절에는 빵이 흔들어 집니다. 빵은 교회의 동질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오순절은 주님의 제자들이 성령에 의해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은 그 오순절 날에 성취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13, [이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우리가 모두 한 성령에 의하여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요, 곧 한 성령에 의하여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라.] 오순절과 나팔절 사이에 낀 4개월 동안에는 곡식과 포도의 수확물을 모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쁜 이 기간에는 모이지 않았습니다. 이 기간은 성령이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을 수확하는 2,000년 교회 시대를 예표하는 시기입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머지 않아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고 환란 시대가 도래하면 전 지구상의 유대인들이 모두 팔레스타인으로 집결할 것이며, 그들은 다시 나팔절을 지킬 것입니다(마24:31). 다섯째, 나팔절입니다. 나팔절은 일곱째 달의 첫 날에 지켜지며 일곱 명절 가운데서 두 번째 부분이 시작되는 명절입니다. 레위기 23:24,25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째 날을 안식일로 삼을지니 이 날은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거룩한 집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오직 주께 불로 예비하는 헌물을 드릴지니라.] 이 달 10일에는 속죄일이 오고, 장막절은 이 달 15일에 시작하여 역시 22일인 안식일에 끝납니다. 나팔절은 나팔을 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나팔은 교회나 이스라엘에게나 매우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은 백성들이 속전죄로 모은 은을 가지고 나팔을 만들었고, 회중들이 앞으로 나가거나 모일 때 나팔을 불었습니다. 오순절과 나팔절 사이의 4개월의 기간은 교회 시대를 예표하는데, 이 기간에 아주 중요한 일 두 가지가 일어납니다. 교회의 휴거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모이는 것입니다. 지금 일부가 모여 국가를 형성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유대인들이 미국과 러시아 및 각국에 흩어져 있습니다. 나팔절은 교회의 휴거와 연관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 [이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올 것임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고린도전서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게 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이는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도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요.] 이 나팔은 계시록에서 일곱 천사가 부는 나팔이 아닙니다. 또한 나팔절은 이스라엘의 모임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유대인들)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의 네 바람으로부터 함께 모으리라.](마24:31). 예수님이 유월절에 못 박히셨고, 오순절에 성령이 오셨으며, 예수님이 공중에서 오시는 나팔절에 휴거가 일어나고 다시 7년 뒤인 같은 명절인 나팔절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 속죄일입니다. 속죄일은 새달(오순절이 있는 그달, 7월) 10일이었습니다. 27-28절, [또한 이 일곱째 달의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거룩한 집회라. 너희는 너희 혼을 괴롭게 하며 불로 예비하는 헌물을 주께 드리고 이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지니 이는 이 날이 너희를 위하여 주 너희 하나님 앞에 속죄하는 속죄일이기 때문이요,] 주님은 이들에게 속죄일에 대해서 매우 엄중하게 명령하셨습니다. 9일 저녁부터 그 다음날 저녁까지 안식일로 정하여 지키도록 했으며, 이를 어기고 일을 할 때에는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속죄일은 이스라엘의 죄를 깨끗이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 지켜야 하는 의식은 레위기 16:1-34에 잘 나와 있습니다. 속죄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을 위한 속죄제물을 드리는 대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속죄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9:11-14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앞으로 올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시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성막 곧 이 건물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완전한 성막을 통하여오셔서 황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오직 자기 피를 힘입어 단 한 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대속을 얻으셨느니라. 수소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자신을 점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위로부터 너희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그렇다면 속죄일이 왜 하필이면 그리스도의 재림이 성취되는 나팔절과 천년왕국을 상징하는 장막절 사이에 위치하는 것입니까? 이는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 교회의 구성원들은 모두 유월절 어린 양이 피를 흘린 그날이 바로 속죄일입니다. 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배척함으로 그들의 죄를 씻음받지 못했습니다. 속죄일은 이스라엘 민족의 죄가 씻음받는 그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스가랴 13: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기 위한 샘이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거주민들을 위하여 열리리라.] 이스라엘 민족이 회개하지 않은 채 민족적으로 모였을 때, 그들에게는 민족적으로 속죄하는 속죄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이 찌른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자기들이 그토록 섬기던 하나님이란 사실을 보게 될 것이며, 그들이 배척하던 주가 바로 자신들을 구원한 주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흘리게 될 눈물을 스가랴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주민들 위에 은혜의 영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나 곧 자기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곡하기를 사람이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애곡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기를 사람이 자기의 처음 난 자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듯 하리로다.] 일곱째, 장막절입니다. 이 명절은 일곱 명절 중 마지막 명절입니다. 7월 15-22일에 있습니다. 이는 수확이 끝날 때 추수를 감사하는 명절로써 7일 동안 계속됩니다(신16:13). [너희가 곡식과 포도즙을 거두어들인 뒤에 이레 동안 장막절을 지킬 것이요.] 장막절은 기쁨의 축제입니다. 이는 천년 왕국을 예표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엘 백성들은 이 기간동안 종려나무 가지나 시냇가의 버드나무로 초막을 지어서 거했습니다. 40절을 보십시오. [첫째 날에는 너희가 좋은 나무 가지와 종려 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의 버들을 취항 주 너희 하나님 앞에서 이레 동안 기뻐할지니라.](40). 42절, [너희는 이레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 사람으로 태어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유는 43,44절에 있습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변형산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 장막 셋을 짓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마태복음 17:24, [이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여기에 장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하더니.] 그러나, 진정한 장막절은 천년 왕국이 시작되어 저 하늘의 성도들과 이 땅의 성도들이 모두 같이 거하는 그 때가 되어야 성취될 것입니다. 44절, [모세가 주의 명절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밝히 알렸더라.] 우리는 이 명절들의 신약 성경적 의미를 살펴 보고, 교훈을 얻었습니다. 잠시 정리 해 보겠습니다. 첫째, 유월절입니다. -이는 주님의 죽으심과연관되어 있습니다. 둘째, 무교절입니다.- 이는 성도들의 생활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셋째, 초실절입니다. -이는 첫 번째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되어 있으며, 곡식단인 것을 통해 주님의 부활 때에 함께 부활한 구약 성도들을 예표합니다. 이후부터 본격적인 수확절입니다. 넷째, 오순절입니다. 오순절은 수확 마지막 날입니다. 오순절은 성령 강림과 교회의 몸을 구성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빵 두덩이는 바로 교회를 이루는 구성 요소를 말하며, 누룩있는 빵을 만드는 것은 성도들의 불완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팔절은 교회의 휴거와 연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함께 모이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여섯째, 속죄일은 이스라엘의 죄를 회개하는 날입니다. 장막절은 천년 왕국과 연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