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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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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교회
lhyunsik

지역 교회 오늘은 성경이 말하는 교회에 대해서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라도 가정에서 자라야 하듯이, 어디서 거듭났든 그 사람의 영적 생활은 지역 교회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정이 없는 아이가 정상적인 성장과 양육이 어렵듯이 지역 교회에 속하지 않는 성도의 양육과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맨 먼저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다음은 국가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 셋에 다 소속되어야 합니다. 어느 지역 교회에 소속되지 못한 사람은 가정에 소속되지 않는 사람이나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 못지 않게 비참하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지역 교회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유일한 신약적 조직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기관이나 조직들을 사용하시고, 복주시고 크게 하셨습니다. 특히 선교 단체들이나 신학원들을 통해 많은 일꾼들을 양성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역 교회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신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께서 권위를 부여하신 것은 오직 지역 교회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성경적 의미의 교회는 신약 성경에서 세워집니다. 문자적 의미로서의 교회는 구약에서부터 있었지만 주님이 말씀하신 교회는 분명히 신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예수 그리스를 믿는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세워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교회의 의미는 지역 교회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차이에 대한 인식의 결여로 발생합니다. 어떤 이들은 지역 교회만을 교회로 아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둘만 모여도 교회’라며 몸된 교회, 즉 영적인 의미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한 가지만 알고 한 가지를 무시한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없으면 지역 교회는 없습니다. 반면 지역 교회가 없으면 몸된 교회는 보여 질 수 없습니다. 이는 살아 계신 말씀이 있음으로 기록된 말씀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성도들을 몸으로 하는 영적 유기체는 지역 교회를 통해서 나타나 보여집니다. 지역 교회는 오순절에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날 신약 성경의 제도입니다. 교회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대로라면 [....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무리들]이란 뜻입니다. 이 말은 에클레시아(Ecclesia)란 헬라어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무리들이 가정에서 모이면 가정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레몬서 2절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하는 동료 군사된 아깁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2)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가정 교회입니다. 골로새서 4:15에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의 집에 있는 교회에게 문안하라.](골4:15). 이를 통해 교회는 가정에서부터 모임을 가져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몇 가지 구분해야 할 용어들을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 교회는 왕국이 아닙니다. 교회는 유기체이지만 왕국은 조직체입니다. 교회는 왕이 없습니다. 반면 왕국에는 왕이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둘째,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는 다릅니다. 보이는 교회는 지역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교회에는 장로와 집사, 교사 등 다양한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보이지 않는 교회는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는 목사도 장로도 교사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 되십니다. 셋째, 지역 교회와 보편적 교회는 다릅니다. 지역 교회란 일정한 지역안에 있는 지역 회중들을 말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라고 말할 때는 고린도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모두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갈리다아의 교회들(고전16:1), 아시아의 교회들(고전16:19), 마케도니아의 교회들(고후8:1)이라고 지칭한 것은 그 지역의 특정 한 교회가 아니라 모든 교회를 지칭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현재 지방 교회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약간의 오해가 있어서 한 지역에 한 교회만을 주장합니다. 반면 보편적인 교회는 모든 교회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지상에 한 교회만을 주창하는 로마 캐톨릭이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캐톨릭은 자신들만이 이 지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보편적 교회(Universal Church)라고 주장합니다. 넷째, 현실 교회와 이상적 교회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나오는 이상적 교회상을 현실적 교회에 적용하며 비판합니다. 현실적 교회는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꾸준히 완전함을 추구하고 있는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상적 교회는 앞으로 드러날 완전한 성도들로 구성된 그런 교회입니다. 점도없고, 흠도 없고, 주름잡힌 것도 없는 영광스런 교회가 바로 이상적인 교회입니다. 현재 이 지구상에 이런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주님의 재림으로 인해 완성될 교회입니다. 어떤 성도가 완벽한 교회를 찾아 이 교회, 저 교회를 순례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목사님이 말하기를, “당신이 찾는 완벽한 교회가 나타나거든 절대 그 교회에 가지 마시오. 당신이 가는 순간 그 교회의 완벽은 깨어지고 말 것이니 말이요.”라고 충고했습니다. 다섯째, 전투하는 교회와 승리한 교회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전투하는 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들로써 영적 전투를 지금 수행하고 있는 우리들을 가리킵니다. 반면 승리한 교회는 하늘에 가 있는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란 의미에서 최초의 지역 교회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로 구성된 8명의 가정 교회가 처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던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았습니다. 불러냄을 받지 않고, 세상과 분리되지 않는 지역 교회는 성경적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 속으로, 세상과 더불어, 세상과의 가교 역할을 자임하는 자들은 성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다만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이론과 연관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교회는 무엇인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 대해 증거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그의 세대가 물 심판을 받을 것이란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불러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의의 전파자]였습니다(벧후2:5). 그 다음에 성경에 나오는 교회는 아브라함과 그의 친족입니다. 원래 주님은 집단으로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혼자서 떠나라는 말을 들었지만 아버지와 친족 롯이 그와 함께 따라 나섰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지역의 모든 우상들과 당시 님롯과 세미라미스를 신격화하여 달신과 태양신을 숭배하는 것이 마귀로부터 나온 것임을 증거하기 위해 불러냄을 받았습니다.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증거하고 전파하는 일이 아브라함에게 맡겨진 임무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성경에 나오는 교회는 교회란 이름이 직접 붙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이 광야의 교회라고 말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세상의 모형인 이집트로부터 하나님은 살아 계신 전능하신 분이요,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지지자이시며, 거룩하신 분이요, 죄를 차마 용납할 수 없는 분이란 사실을 민족들 가운데 증거하기 위해 불러냄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에서 모든 민족들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역사 하심을 모두 증거 했습니다. 지역 교회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광야 교회를 모델로 연구하면 거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를 목자로 200만이 넘는 교인이 모인 대형 교회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교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집사급들이 산채로 땅이 갈라져 지옥으로 떨어지고, 온통 불만과 불평이 쏟아지는 광야 교회의 모습에서 누가 그 교회 목사로 초빙받았다면 선뜻 맡을 수 있겠습니까? 모세는 분명히 목자였습니다(사63:11). 신약 교회의 모든 문제는 이 광야 교회에서 다 발견됩니다. 형제들간의 불화, 목사 아내에 대한 험담, 재정적 어려움, 배후에서의 공격, 거짓 형제들간의 지도력 쟁탈전(신15,16), 목사를 몰아내자는 사람들의 건의, 하나님께서 회원을 죽이시는 일, 목사의 타락, 젊은이들을 위한 육신적인 프로그램 요청, 세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 믿음의 결여, 목자에 대한 불신 등등... 현재 신약 교회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동일하게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주님은 항상 그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이는 지금의 신약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다음으로 나오는 불러냄을 받은 무리들은 마태복음 10장에 나옵니다. 12제자들입니다. 주님은 친히 이들을 호명하시고 불러 내셨습니다. 그들 중에는 도마와 같은 불신자도 있었고, 구원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 앞에서 주를 저주로 맹세한 베드로 같은 사람도 있었으며, 교회의 재정을 관리하던 유다같은 마귀도 있었습니다(요6). 지금까지 나온 불러냄을 받은 무리들은 단지 문자적 의미로서 적용해 본 교회였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아닙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늘의 왕국을 선포하고 증거하기 위해 불러냄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아들이며, 유대인의 메시아요, 다윗의 보좌에 앉을 분이란 사실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해 부름받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사건으로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교회로 바뀌었고, 신약 성경적 교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들의 증거는 유대인의 메시아일뿐 아니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피의 대속과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부름을 불러냄을 받았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교회란 말이 117번이 사용되었고, 그 중에 107번이 지역 교회란 의미이며, 10번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유기체적이고 영적인 몸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지역 교회와 몸 된 교회는 복수와 단수의 차이입니다. 지역 교회는 얼마든지 세울 수 있지만 몸 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누구도 세울 수 없고,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 지상에서 지역 교회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 봅시다. 우선 3가지가 있습니다. 특히 지역 교회의 목자들은 두 가지에 각별히 주의하고 전념하면 됩니다. 사도행전 6:4에 따라 말씀의 사역과 기도입니다. 이 둘을 저해하거나 방해하는 일이 있다면 즉시 집사를 선출해서 모두 맡겨 버리고, 말씀의 사역과 기도에 전무해야 합니다. 교회 행정이나 성도들의 집안을 살피고, 그들의 뒷치닥거리에 시간을 쓰는 것은 목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목자들이 성도들의 비위를 맞추고 눈치를 보느라 돌잔치, 생일 잔치, 회갑잔치, 결혼식, 가족의 대소사까지 불려 다니는 한심한 꼴을 자주 봅니다. 제가 미국에 왔을 때 한 목사님이 제게 주신 첫 번째 충고는 “절대로 공항에 마중 나가지 말라.”였습니다. 이민 사회의 목사가 운전 기사 되는 것은 한 순간이라고 몇 번이고 충고를 했습니다.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리라” 이는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신학교수나 학자들에게 말씀의 사역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역 교회는 세 가지 활동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첫째,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각 개인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일은 성도들이 자원해서 자발적으로 해야 합니다. ‘언제 모여서 복음 전하러 가자!’ 이것은 성도들이 자원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자기 동네이든, 시장이든, 학교이든,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성도들이 복음을 전해 혼을 이겨올 때 지역 교회는 강성해 지며, 살아 있는 교회란 증거를 얻게 됩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아무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교회는 점점 약해지고, 존재 의미마저 사라지고 맙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남이 이끌어 주거나 강제로 할당량을 정해주지 않으면 좀처럼 일하지 않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도 교회의 목사나 교사가 강제로 날자를 정해주고 나오도록 해야 나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알아서 하는 예가 좀처럼 없습니다. 그렇다고 정해주면 이런 일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앓는 소리를 해 댑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침례교회들의 특징은 모두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전도 모임을 갖고, 거리 설교 팀을 조직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성경적인 거리 설교를 처음 시행한 것은 “20세기 순회 설교자의 회고록”이란 책을 읽은 몇몇 형제들이 합심해서 모여 자발적으로 거리 설교를 시작하고 전도지를 나누어 준 일입니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형제들이 합심했고, 한달이 지나지 않아서 거리 설교팀은 3팀으로 늘어났습니다. 그 때는 저는 “거리 설교 수칙”과 거리 설교에 관련된 책들을 번역해서 형제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20세기 순회 설교자의 회고록”도 그 때 번역한 책입니다. 백화점 앞에서, 역전에서, 시장에서 행해지는 거리 설교는 다른 교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도권 교회를 제외하고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자치적인 독립 침례 교회에서 목사가 교회에서 거리 설교나 전도 프로그램을 정해주고, 회원들에게 의무적으로 참석하도록 광고하거나 강요하는 것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강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복음 전파에 부담이 있고, 자원하는 형제들이 처음에는 한 명, 두 명에서 시작되어 3, 4명 10, 20명으로 자연스럽게 늘어나야 합니다. 자원하는 형제, 자매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꾸준히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전도지를 만들고, 소책자를 만드는 일, 설교나 강의 테이프를 제작하는 일 등은 모두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는 기도 모임을 통해 형제들의 거리 설교나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일, 방문 전도 등에서 열매를 얻도록 간절히 기도로 지원해야 합니다. 교회는 선교사들을 훈련해서 보내거나, 그들을 기도로 물질로 지원해야 합니다. 라디오나 신문, TV 방송을 통해 복음을 증거 하는 일도 모두 지역 교회가 해야 할 일이며, 길거리에 커다란 교회 간판을 세우거나, 복음 간판,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게시판을 세우는 일도 교회의 몫입니다. 둘째, 믿는 성도들의 믿음을 세워 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믿음을 세워 주고, 덕을 세워주고, 진리의 지식을 가르쳐 주고, 성령의 열매맺는 삶을 살도록 훈육해야 합니다. 성경을 구절, 구절 비교해서 가르치는 일, 서로 모여 함께 기도해 주는 일, 불신을 책망하는 설교, 세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를 끊어 버리는 일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셋째,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영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모든 것은 주님이 채우신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구주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누구와도 어떤 단체와도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 타협을 거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역 교회는 이상의 세 가지 일에만 전념하면 됩니다. 죄인에게 복음을, 성도들에게 믿음과 진리의 지식을, 구주를 영화롭게 하는 일은 언제나 교회의 최우선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적인 지역 교회의 특징을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성경적인 지역 교회는 바울 서신서를 교리적 기준으로 삼으며 마태복음이나 사도행전, 히브리서 등에서 나오는 모순되어 보이는 구절들에 앞세웁니다. 이는 성경이 모두 우리를 위해 기록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말씀이 다 우리에게 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면 모든 이단들은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에서 교리적 입장을 취하며, 바울 서신서보다 앞세웁니다. 둘째, 성경적인 지역 교회는 성경을 거부하는 어떤 교회나 단체, 어떤 신자들과도 연합하지 않습니다. 성경적인 지역 교회의 원칙은 연합대신 분리, 개혁되신 성별을 택합니다. 셋째, 성경적인 지역 교회의 집회에는 자유와 해방이 있습니다. 틀에매인 의식이나 형식이 없으며, 언제나 자유롭게 예배를 봅니다. 넷째, 성경적인 지역 교회에는 천국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어떤 지역 교회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재림의 실제적인 믿음과 소망이 충만합니다. 다섯째, 성경적인 지역 교회는 과학과 철학, 교육에 대한 신뢰나 숭배가 없습니다. 여섯째, 성경적인 지역 교회는 절대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최상의 권위로써 성경에 대한 믿음이 있으며 성경으로 모든 종류의 종교 지도자들, 학자들, 목사들, 교사들의 견해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성경적인 지역 교회는 어떤 형태로든지의 유아 세례(침례)에 대해 절대적으로 거부합니다. 여덟 번째, 성경적인 지역 교회는 어떤 형태로든지의 구원을 얻는 수단으로서의 종교적 의식 또는 행위에 대해 절대 거부합니다. 아홉번째, 성경적인 지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자신의 구원에 대해 솔직하고도 공개적인 증언이 있습니다. 믿음에 대한 공개적인 증언이 없이 덮어두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열번째, 성경적인 지역 교회는 하나님께는 향기로운 냄새를, 종교인들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향기를 내 뿜습니다. 열한번째, 성경적인 지역 교회는 세상으로부터의 분리가 있습니다. 세상과의 비타협, 불일치, 분리 이것이 바른 교회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이런 특징을 가진 지역 교회입니다. 신약 성경의 기본 단위는 언제나 지역 교회였고, 세상을 대항할 때는 성도 개개인이 아니라 지역 교회가 세상에 대해 증거합니다. 신약 성경은 개개인을 다루기 보다 지역 교회를 기본 단위로 다룹니다. 지역 교회가 기도했고,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교회가 다른 교회를 돕고, 교회가 핍박을 받고, 교회가 성장하고, 교회가 타락합니다. 하나님은 교인들이나 성도가 어떠 어떠하다고 말씀하시는 대신 교회를 기본 단위로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세상은 물론이고 성도들에게도 무시 받고 경시 받는 것이 바로 지역 교회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일꾼이지 교회의 일꾼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매우 무식하고도 어리석은 말입니다. 교회의 일꾼이 아니면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전쟁이 났을 때 정규군이 아니어도 학도군이나 의용군으로 자원해서 국가를 위해 싸울 수 있습니다. 국가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매우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모집하지 않는 비정규군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바울은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이었지만 그는 먼저 교회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지시를 따라 지역 교회 장로들에게 안수를 받았고 파송받았습니다. 그는 혼자 독자 플레이를 한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교회의 사역자가 된 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자 함이니](골1:25). 교회의 일꾼이 아닌 하나님의 일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로마서 16:1에서 바울은 뵈베를 교회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겐그리아에 있는 교회의 종 우리의 자매 뵈베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롬16:1).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림 받고 싶어하지 교회의 종이라고 불리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곳 말씀 침례 교회를 섬기는 교회의 종이요, 교회의 사역자입니다. 하나님은 각 지체들에게 있어야 할 처소에, 해야 할 보직을 맡기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지역 교회인가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역 교회에 속해 있지 않는 사람 가운데 제게 영적인 감화력을 미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고 믿음이 성장했다는 그리스도인은 만난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지역 교회가 없이는 어떤 성도의 믿음도 유지될 수 없습니다. 성경적인 교회의 의식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다양한 의식이 있는 것처럼 가르치지만 성경은 단지 두 가지 의식만 있을 뿐입니다. 첫째,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침례입니다. 지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에게 침례를 줍니다. 둘째, 성만찬이라고 불리는 주의 만찬을 행합니다. 이 둘은 모두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지역 교회에서 끊임없이 행해질 의식입니다. 이 둘 외에 어떤 다른 의식도 성경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날이나 절기를 지키는 것은 신약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지역 교회들은 왜 여러 종류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이미 계획하신 것으로 왕국보다 앞서 목적되어 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신비가 밝혀 진 것은 사도 바울에 의해서 처음 계시되었습니다. 에베소서 5장에는 교회의 참된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는 교회 설립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갈보리에서 피로 교회를 사셨으며, 이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나타날 것입니다(엡5,시45,계19). 그러나, 이런 몸된 교회를 구성하는 지역 교회는 다양합니다. 많고 많은 교파가 있고, 종파가 있지만 2000년 교회사에 일곱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나머지 교회들은 모두 여기서 파생되어 나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 정교회(희랍 정교회, 동방 정교회) 둘째, 로마 캐톨릭 교회. 셋째, 루터파 교회. 넷째, 영국 국교회. 다섯째, 장로 교회. 여섯째, 감리 교회. 일곱째, 침례 교회입니다. 이 중에 특정 시기에 어떤 인물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는 유일한 교회가 침례 교회입니다. 이 중에 물 침례를 구원의 수단으로 믿지 않는 유일한 교회가 침례교입니다. 침례 교도들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다른 교회들은 세례를 받거나, 교인 명부에 이름을 올리면 되지만 침례교회는 침례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만을 인정합니다. 둘째, 지역 교회의 자치와 독립입니다. 침례 교회는 지방 정부, 국가, 다른 교회들이나 종교 단체들, 특정 개인들에 의해 외부적 간섭과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교회의 행정이나 믿음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셋째, 어떤 이유로든지 유아 세례를 행하지 않습니다. 넷째,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습니다. 이는 한번 구원받은 성도가 어떤 이유로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교리입니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고 가르치는 교회는 성경대로 믿는 침례교회 외에 아무 곳도 없습니다. 다섯째, 성도들의 만인 제사장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몇몇 개혁주의 교회에서도 이 교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실행하는 교회는 침례교회 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은 모두 같은 형제이며, 평신도와 제사장 계급을 나누지 않습니다. 다섯째, 반 캐톨릭 노선을 걷습니다. 침례교란 캐톨릭의 모든 종교적 의식이나 행위, 그들의 믿음, 그들의 영향력과 지배권 등 모든 것을 반대해 왔으며, 앞으로도 반대할 유일한 교회입니다. 다른 모든 교회는 이미 친캐톨릭으로 돌아섰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침례 교회란 이름을 가지고 교회를 시작하였고, 계속해서 이런 교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오는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극히 일부를 개략적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과 교회에 대해서 바른 지식을 갖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