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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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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3)
lhyunsik

예수님은 누구신가? (3) 말씀: 계1:8, 22:13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주} 곧 전능자께서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마침이라, 하시더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계속해서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계시 중에서 가장 압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자신을 일컬어 계시록에서만 4번에 걸쳐 글자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다른 곳에 말씀(Word, words)이라고 표현하신 곳은 있지만 글자라고 표현하신 것은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에만 나옵니다. 주님은 사도 요한에게 계시를 주시면서 1:8,11과 21:6, 마지막 22:13에서 한번씩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님에 대해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계시록 1장을 펴 보겠습니다. 요한은 1:1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시작합니다. 요한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요한이 보고, 들은 후 책에 기록한 것입니다. 4절 [...지금도 계시고(하늘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제사장으로), 전에도 계셨고(선지자로서), 앞으로 오실 분(왕으로서)..]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8절,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주} 곧 전능자께서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마침이라, 하시더라.], (1:8). 4절에 반복해서 8절은 다시 한번 강조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주, 곧 전능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요한에게 스스로 밝힌 자기 계시는 바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마침이라.” 하신 것입니다. 11절에서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마지막이라.](11)고 말씀하십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의 첫 글자이며, 마지막 글자입니다. 현재 영어를 비롯한 유럽어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알파벳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발음과 표기는 약간 다르지만 어족이 같고, 뿌리가 같습니다. 알파벳(alphabet)이란 말이 그리스어의 첫 글자인 알파(alpha)와 두 번째 글자인 베타(beta)를 합친 합성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알파벳의 처음이며, 마지막이십니다. 영어에서 “처음부터 긑까지, 모든 것”이란 말을 할 때 from A to Z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From Alpha to Omega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이 알파벳으로 표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언어로 표현되며, 언어로 표기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모두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언어학자인 춈스키는 “그 사람의 언어의 한계가 바로 사고의 한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언어 능력과 사고 능력은 정비례합니다. 그래서, 말을 배우고 난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바로 글자입니다.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이 없다면 그는 바보나 다름없습니다. 주님이 알파와 오메가라면 주님의 자녀들은 주님을 읽을 수 있기 위해서 반드시 글자를 배워야 하며, 글을 익혀야 할 것입니다. 만약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자라면 주님을 읽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귀한 가르침이 있는 책이라도 문맹자에게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이 미국인 친구를 데리고 한국의 문화 유산들을 구경시켜 준다고 생각해 봅시다. 경복궁이든, 해인사이든, 불국사이든 한국의 전통 문화 유산들을 보여 줄 때 그들은 그 앞에 써진 글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당연히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쉽게 대답해 줄 수 있습니다. 한국어는 우리의 모국어이기 때문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님께서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영감을 불어넣어 기록한 성경을 볼 때 불신자들은 “이것이 무슨 뜻이냐?”, “예수가 누구냐?”라고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성경이 낯선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아도 낯선 글자이기 때문에 해독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외국어와 다름없기 때문에 comprehension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쉽게 읽고, 이해하고 답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성경과 주님이 모국어이기 때문입니다. 말씀 침례 교회의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주이시며, ....” 끝없이 나옵니다. 우리는 그 앞에 적힌 안내문을 외우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도무지 읽을 줄을 모르고 떠듬거리기만 합니다. 주님은 글자(알파벳)의 하나님이시며, 단어(word)의 하나님이시기에 성경을 읽지 않는 성도들에게 어떤 영적 조명과 축복도 주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글자만 읽을 줄 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능숙한 문장 독해력과 사고력을 함께 키워 나가야 하며, 행간의 의미(between the lines)를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묵상이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하고, 실제 순종하여 사용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Manual에 적힌 글은 사용해 볼 때 가장 쉽게 이해됩니다. 여러분은 말씀에 순종해서 사용할 볼 때 말씀에 능한 종이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나, 가르칠 때 체험이 수반된 본문이 가장 쉽습니다. 저는 얼마전 인터넷의 연합신문을 통해 "한국민 문서 해독력 OECD 하위권"이란 기사를 보았습니다. 내용인즉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우리 국민의 문서를 읽고 해독하는 능력이 경제 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육개발원 이희수(李熙洙) 연구위원은 2일 지난해 8월 16~65세 국민 1천200여명을 대상으로 OECD 국제성인 문서 해독력 조사(IALS)를 실시한 결과 ▲산문 문해 ▲문서 문해 ▲수량 문해 등 3개 영역에서 고도의 정보처리 능력을 가진 4,5등급에 속한 비율은 2.4%로 23개국 평균(16.2%)에 크게 뒤졌고 칠레(1.5%) 등과 함께 최하위권에 올랐다고 밝혔다. IALS는 단순한 문자해독 능력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문자 그림.숫자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조사로 3개 영역 각각 50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겨 5등급으로 나눈다. 등급은 점수에 따라 단순 정보만 해독하는 능력인 1.2등급, 보통수준의 능력인 3등급, 고도의 정보처리 능력을 갖춘 4.5등급으로 나뉜다. 특히 이번 조사 결과 우리 국민은 문서문해 영역에서 75.7%인 908명이 영수증, 열차시간표, 구직원서, 지도, 약 설명서 등의 그림이나 도표 이해하는 능력이 최하 수준인 1.2등급으로 분류됐다. 문서 문해력 평균 점수는 500점 만점에 237.5점으로 이 영역 조사대상인 20개국 중 19위였으며 1위는 스웨덴(305.6점)이었다. 금전출납 대출이자 계산 등 숫자를 이해하고 계산하는 능력인 수량 문해는 276.87점으로 세계 12위, 기사나 소설 등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인 산문 문해는 269.2점으로 13위였다.” 한국은 미국을 비롯한 어떤 나라와 비교해서 문맹률은 높지 않습니다. 글자를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으며, 기본적인 영어 단어와 한자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 문서 독해 능력은 최하위권이란 사실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한국의 기독교가 엉망인 된 원인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들고 있지만, 읽을 줄도 알지만 막상 읽고 해독하는 능력이 떨어지며, 딱딱한 교리적 문제와 심도 있는 내용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얼마 전 A.W 토저 목사님의 책을 읽었는데 서문에 이렇게 씌여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심도깊게 책을 읽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고, 영적 진리들을 추구해 간다면 나는 이런 책을 쓸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성경 역본들에 관련된 것, 세대주의, 교회사, 캘빈주의와 성령론, 조직 신학과 같은 책들은 탐구하지 못하더라도 성구 사전을 들고 성경을 펴서 이리 저리 탐구하고, 그 의미를 상고하는 습관을 가짐으로써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할 것입니다. 초신자들은 물론이고, 교회에 오래 다닌 신자라 할지라도 주님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은 나의 모국어요, 내가 가장 능통하게 이해하는 수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알파벳(글자)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첫째, 의사소통입니다. 둘째, 계시의 수단입니다. 글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알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알파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의사를 전달하십니다. 히브리서 1:1,2a을 보십시오.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히1:1,2a). 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과 필요와 간구를 아뢰며 응답을 받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3,1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알파벳입니다. 어떤 아이가 기도를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무엇을 해달라는 간구도 아니고, 감사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알파벳만을 천천히 또렷하게 차례대로 읊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저는 기도를 잘 할 줄 몰라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가 말한 알파벳을 마음대로 사용하시도록 기도한거예요. 하나님은 분명히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거예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글자들을 정확히 조합해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의 알파벳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입니다. 요한복음 5:37, 1:18을 보겠습니다.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에 대하여 증거하셨기 때문이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분의 모습을 보지 못하였으며](요5:37).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극소수의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계시의 수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성에 관련된 모든 것을 남김없이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사랑, 긍휼, 거룩, 전지 전능하심, 무소 부재하심, 지혜, 의, 심판 등에 모든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알파벳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고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계신 독생자(獨生子)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요1:18). 알파벳은 한 글자부터 시작하여 무한하게 조합할 수 있습니다. 헬라어 알파벳은 24글자입니다. 예를 들어, I, O, X는 한 글자로 말이 됩니다. I는 이 세상에서 인간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글자입니다. 모든 것이 I로 결집됩니다. O는 한 글자만으로도 인간의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있습니다. 좋을 때, 슬플 때, 놀랐을 때, 기쁠 때...수도 없이 나오는 말이 O(h)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 글자도 변개되거나 첨가되거나 삭제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세 번에 걸쳐 친히 글자를 써 보이셨습니다. 첫째는 시내산에서 모세가 가져온 돌판에다 십계명을 기록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다니엘서에 연회에 들떠 있는 벨사살 왕의 궁중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기록하신 것입니다(단5:24-27). 세 번째는 요한복음 8:6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돌로 쳐 죽이자는 제안을 들고 온 무리들 앞에서 뭔가를 쓰셨습니다. 이 때는 무엇을 쓰셨는지는 나오지 않고 다만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무엇을 쓰셨습니다. 그 손가락은 십계명을 쓴 손가락이며, 궁중 벽에 심판을 알리는 글을 쓴 손가락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님께서 친히 글자를 쓰신 이 세 번의 기록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십계명을 기록하신 손은 우리에게 뭔가를 지킬 것을 명령합니다. 두 번째, 궁중에서 쓰신 손은 죄악을 범한 인간들을 정죄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세 번째 땅에 몸을 굽혀 쓰신 그분의 손가락은 우리를 용서하며, 구원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8:11). 어순을 주목해 보십시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리하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리라.”가 아닙니다. 주님은 이 여인대신에 자신이 정죄를 받으셨습니다(롬8:1). 우리는 전에 주님이 알파벳이란 사실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글자의 조합이 이루어내는 힘을 알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쓰는 컴퓨터는 0과 1이란 두 글자를 이용해서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냅니다. 컴퓨터는 0과 1이외의 수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24글자를 사용하시면 이 우주만물을 만들고, 붙들고 계시는데 아무 어려움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글자가 부족해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색은 세 가지면 충분하고, 음은 7개면 충분하듯이 글자는 24개면 충분합니다.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은 구속의 처음과 끝이되십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주} 곧 전능자께서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마침이라, 하시더라.](계1:8). [또 내게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계21:6).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처음부터 그분이시며, 몸이 구속되어 영화롭게 되는 그날까지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과 기도와 찬양과 영광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께로 돌려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5:9과 12:2을 보겠습니다. [완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가 되시고](히5:9).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히12:2a).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은 창조의 시작과 마지막이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창조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그분을 볼 때에 그분의 발 앞에 쓰러져 죽은 자같이 되니 그분께서 오른손을 내 위에 얹으시며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계1:17). 요한은 알파와 오메가의 주님을 직접 보고 나서 쓰러져 죽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41:4과 동일한 말씀입니다. [이 일을 누가 이루었으며 /누가/ 행하였으며 /누가/ 처음부터 그 세대들을 불러내었느냐? 나 [주]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에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사41:4). 주님은 말씀으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한 마디에 빛이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말씀하시는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창조의 시작이란 말에 대해서 좀 알아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3:14과 베드로후서 3:4을 보겠습니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요,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인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계3:14). 이 구절에서 많은 이단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예수는 피조된 하나님이라는 주장입니다. 특히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주 애용하는 구절입니다. 이 말은 성경과 성경을 비교해 볼 때 전혀 근거없는 낭설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르되, 그분께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모든 것이 창조의 시작 이후에 있던 것같이 그대로 계속된다, 하니](벧후3:4). 이는 주님께서 창조 행위를 시작하신 시점을 기준으로 창조의 시작이후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창세기 1:1부터입니다.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므로 모든 창조의 시작점이 되시는 분이란 뜻이지 주님이 첫 피조물이란 뜻이 아닙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계22: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성경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의 한 글자 한 글자, 한 단어 한 단어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주님이 바로 알파와 오메가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분명하고 뚜렷한 인식없이 거룩한 영적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대언자들은 예외없이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기록된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위엄과 신격,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란 분명한 인식을 내 안에 갖지 못했다면 그 누구라도 악을 미워하고 죄를 멀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입술로는 공경하고 두려워 할 수 있지만 그는 결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격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기독교는 곧 바로 타협과 배교로 치닫게 됩니다. “내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하신 주님의 말씀에 마음으로 화답하고, 그 사실이 내 마음 저 깊은 곳에 깊이 각인되어 있지 않는 사람은 성경을 결코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고 읽지 못합니다.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이 바로 글자의 하나님이며, 어휘의 하나님이란 사실에 대해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인해 강단의 설교는 문자적이고, 교리적인데서 떠나 메시지 중심의 교훈과 예화 중심의 감동과 재밋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살아있고 양날선 칼과 같은 말씀이 졸지에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도덕적 지침서요, 윤리 서적이요, 경건한 처세술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덕과 윤리, 교훈은 읽는 독자들에게 약간의 양심적 가책을 주기는 하지만 결코 두려움과 떨림을 주지 않습니다. 오늘날 성경을 읽는 독자들이 말씀에 대한 두려움과 떨림이 전혀 없는 이유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본 신자라면 많은 말씀이 아니라 단 한마디의 말씀, 단 한 글자에 압도당하며, 완전히 혼이 회심하고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경험들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성경을 필사하는 유대의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넘치는 경외심과 떨림으로 성경을 필사했습니다. 기록자들은 쓰기 전에 단어마다 큰 소리로 발음했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신의 기억력에 의존해서 쓰는 일이 없었으며, 성스러운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할 때는 붓을 경건히 씻었고, 여호와(LORD)란 이름을 기록할 때는 목욕을 했습니다. 이들은 기록한 다음 단어의 수를 세어서 비교했고, 글자까지 세었으며, 한 자라도 잘못되었을 경우에는 전량을 파기해 버렸습니다. 유대 랍비가 기록원에게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대가 그대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특별히 조심하라. 그대의 일은 하나님의 사업이기에 성경의 한 글자도 빼 버리거나 더하면 그대는 세계의 파괴자가 될 것이다!”(J.P. Smith가 전한 말). 알파와 오메가이신 글자의 주님은 말씀을 어디에다 기록하셨는가?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 생각 속에 기록하셨습니다.(히11:6) [그 날들 이후에 내가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내 법들을 그들의 마음 속에 두고 그들의 생각 속에 그것들을 기록하리라, 하신 뒤에](히11:6). 처음에 주님은 돌 판에 말씀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 속에, 생각 속에 기록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록된 말씀을 죄악을 덧칠하는 죄악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의 중심부, 마음 속에 기록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3, 고후3:3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곧 그 날들 이후에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 /중심/부에 두고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렘31:33). 이 말씀은 교리적으로 환란이 끝난 뒤 천년 왕국의 유대인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정확하게 적용됩니다. [너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서신이니 이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3:3). 3. 우리의 이름은 하늘의 생명 책에 기록하십니다(눅10:20,빌4: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들이 너희에게 굴복하는 이 일로 기뻐하지 말고 오직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20). [또한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도 간절히 권하노니 복음 안에서 나와 함께 수고하고 또 클레멘트와 나의 다른 동료 일꾼들과 함께 수고한 저 여자들을 도우라. 그들의 이름이 생명 책에 있느니라.](빌4:3). 4. 하나님의 이름이 성도들의 이마 위에 기록됩니다. [그분의 얼굴을 볼 것이요, 그분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 안에 있으리라](계22:4). 이 성도들은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환란 시대의 성도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계시록14:1을 보십시오. [또 내가 바라보니, 보라, 어린양께서 시온 산 위에 서 계시고 그분과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 안에는 그분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더라.](계14:1).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읽을 수 있도록,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가르칩시다. 우리 자신부터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믿고 행하여 선한 행위의 열매를 풍성히 맺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