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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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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그 이후(구원의 영원한 보증)
lhyunsik

구원 그 이후(구원의 영원한 보증)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기독교의 구원, 복음이 종교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입니다. 구원은 이제 영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영적 생명을 받은 출발점입니다. 오늘은 구원 그 이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종교인들은 구원을 목표로 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기초로 삽니다. 종교인들은 구원받기 위해 선행을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선행을 합니다.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한 것입니다. 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 나서는 구도의 과정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꼈?잃어버린 자를 찾아 오신 것입니다. 종교는 자기 자신의 의를 쌓아 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의를 받는 것입니다. 종교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구원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종교는 겉모습을 바꿉니다. 구원은 내적 변화를 일으킵니다. 종교는 겉을 꾸밉니다. 구원은 속을 단장합니다. 종교는 행위(doing)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구원은 존재(being)를 강조합니다. 종교는 많은 가르침과 원칙들을 준수하라고 합니다. 구원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합니다. 종교는 진리에 도달하라고 합니다. 반면 구원은 진리를 얻으라고 합니다. 종교는 시도하라고 합니다. 구원은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종교는 훈계를 위한 책에 의지하지만 기독교는 영감 받은 책에 의지합니다. 종교는 부분적인 진리를 내포하고 있지만 성경은 진리 그 자체입니다. 종교는 신에 대해 말하지만 기독교는 참 하나님에 대한 계시입니다. 종교는 창시자의 무덤을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는 빈 무덤입니다. ● 내가 구원받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당신이 언제, 어떻게, 무엇을 믿었는지만 정확히 확인할 수 있으면, 구원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었다면 그 순간이 정확하게 구원받은 것입니다. 구원의 교리를 깨달은 순간이나, 눈물을 펑펑 쏟았다거나, 강한 체험을 한 순간에 구원이 임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순간 구원을 선물로 받았으며, 영이 거듭났습니다. 이는 나의 이성과 감정이 아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이 그 사실을 알려 주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으며](요3:36).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 내가 어떤 죄를 지으면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습니까? 이는 흔히 하는 질문이면서도 매우 심각한 질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은 후에도 구원을 잃을까봐 불안해한다면 이는 성령의 역사가 아닌 마귀의 역사입니다. 자살을 해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가? 살인과 간음을 해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가? 등의 질문에 대해 성경의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이는 구원이 우리의 행위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행위로 받은 것이 아니므로 행위로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딛3:5). 구원은 행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2:8,9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죄가 우리의 구원을 빼앗을 수 있다면 구원을 능히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성경의 어떤 위대한 인물도 죄를 짓지 않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완전한 사람이었지만 쉽게 죄에 무너졌습니다. 노아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의인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그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다니엘은 구약의 3대 의인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지만 죄를 지었습니다. 모세, 여호수아는 출애굽의 영웅들이며, 믿음의 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죄를 지었습니다. 삼손은 정말 죄로 얼룩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믿음의 영웅입니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롯입니다. 그는 어떤 믿음의 본도 보여 주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말년은 술에 취해 두 딸 사이에 자식을 낳았지만 신약에서 그는 “의로운 롯”이라고 불립니다. 베드로는 구원받은 후 죄를 지었고, 외식을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크게 다투고 싸웠습니다. 직접적인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들을 허다하게 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을 속인 죄로 즉사(卽死)했지만 역시 구원받았습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구원받은 형제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나 교회사에서나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주위 환경을 통해서도 구원은 절대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짐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6:23에서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한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니라.]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한 하나님의 선물이지 우리의 행위에 따른 보상이 아닙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하나님의 의(義)를 충족시켰으며, 죄 값을 다 지불했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심판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사람의 의로 말미암아 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생명의 칭의에 이르렀나니](롬5:18). 여기서도 선물이 주어지는 이유가 나옵니다. 한 사람의 의(義),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로 말미암아 값없는 선물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이 선물을 거부하지 않는 한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값없이 주신 선물을 어떤 이유로 빼앗아 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조건이지 선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구원은 점진적으로 완성해 가는 과정이 아닙니까? 어떻게 단숨에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구원은 단번에 일어나는 사건이지 과정이 아닙니다. 성장과 성숙은 과정이지만 구원은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이는 모태에서의 육신적 출생과 마찬가지로 영적 출생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바로 일어납니다. 구원을 완수해 나가야 하는 것처럼 오해하는 이유는 변개된 성경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여 이 젖으로 자라가도록 하라. 너희가 {주}의 은혜로우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2:2,3).-킹제임스 성경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3) 개역 성경. 변개된 성경은 구령의 원수이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악한 씨를 뿌립니다. 또 다른 구절은 빌립보서2:12,13절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완수하라(work out your own salvatio).이는 너희 안에서 일하시며 (For it is God which worketh in you)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3) 완수하라(work out)는 말은 내 안에 이루어진 구원을 “표출하라”는 말입니다. 구원은 영적 생명의 출생이며, 새로운 탄생입니다(요3:3, 벧전1:23). ● 거듭난 자녀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단절되거나 파기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요일3:2). [이는 너희가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음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힘입어, 아바, 아버지, 라 부르짖느니라](롬8:15). 한 번 아들은 영원한 아들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멀어 질 수 있고, 껄끄러워 질 수 있습니다. 이는 친교의 문제이지(fellowship), 관계성(relationship)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것도, 누구도 아들이란 사실을 부인하거나 바꿀 수 없듯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변할 수 없습니다. [이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政事)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능히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할 것임이니라.](롬8:38,3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점을 분명하게 확언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2중 잠금 장치로 철저히 지키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그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크시매 아무도 내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요10:28-30). ● 마귀나 다른 어떤 것이 우리의 구원을 빼앗을 수 없다면 나 자신이 스스로 포기할 수는 없나요? 예를들어 자살을 하든지, 성령님을 모독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래도 구원은 안전합니다. 마귀를 비롯한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있는 나의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없듯이 나 스스로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올 수 없습니다. 주님은 어떤 경우에도 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의 생명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라.](히13:5). 하나님께서는 "결코(NEVER)"라고 말하심으로 어떤 경우에도 구원은 상실되거나 잃을 수 없음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주님은 “결코...아니하리라”는 말씀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in no wise) 내쫓지 아니하리라.](요6:37). 일단 예수님께 나아 왔다면 주님은 자살이든 신성모독이든 어떤 죄를 지었다해도 그 이유를 들어 나를 쫓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IN NO WISE(결코)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살이든 살인이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동일합니다. 이는 죽이는 대상이 남이냐? 자신이냐?일 뿐입니다. 자살은 지옥행!이란 교리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일 뿐입니다. 마가복음 3:28,29은 초신자들이 매우 어려워하는 구절입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들의 아들들의 모든 죄와 그들이 범하는 신성 모독은 다 용서받되 성령님을 대적하여 모독하는 자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고 영벌(永罰)의 위험에 처하게 되느니라, 하시니](막3:28,29). 이 구절은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신 이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마귀들렸다고 배척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시는 이적들을 현장에서 듣고 보면서 “부정한 영에 사로잡혔다”고 말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을 마귀의 사역이라고 말하니 어찌 구원받을 수 있으며,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 반면 현재 이 지상에서 성령을 대적하여 모독하는 죄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과 이적을 현장에서 보고,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요한 일서에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분명히 구원받은 사람이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요한일서 5:16,17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짓는 것을 보거든 간구할 것이요, 그러면 그분께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아니하는 자들로 인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나니 이로 인하여는 그가 기도하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느니라.](요일5:16,17). 사망에 이르는 죄,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있습니다. 여기서 사망은 육신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 그대로의 죽음이지, 의미를 확대해석해서 지옥이라고 해석하면 안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많은 성도들은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다가 죽기도 하고, 병들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육신대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을 끊으실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몇 명은 죽여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가 같이 모일 때에 내 영도 함께 있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그 육체를 멸하게 하려 하였으니 이것은 그의 영이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전5:4,5). 이는 모두 육체의 죽음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 구원받은 성도의 몸을 병들게 할 수 있고, 죽일 수도 있지만 혼과 영은 건드릴 수 없습니다. ● 성경을 읽다보면 구원을 잃어 버릴 것같은 구절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구절들은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는 성경에서 주의깊게 다루어야 할 책입니다. 마태복음은 교회가 아직 태동하기 전인 구약적인 상황을 다루면서 신약 성경을 열고 있습니다(구약과 신약의 과도기). 사도행전은 교회가 막 태동할 무렵 유대교에서 이방인들을 포함한 기독교로의 전환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은혜의 복음은 사도행전 10장에서, 그 교리가 확정된 것은 사도행전 15장에서입니다(유대교와 기독교의 과도기). 히브리서는 교회 시대에서 환란 시대를 접어드는 과도기적 시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바울 서신서의 교리와 일치할 때 우리의 교리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교회 시대의 교리가 아닌 환란 시대의 교리입니다. 예를들어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 곧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마24:13). 여기서 끝은 생명의 끝이 아니라 환란의 끝입니다. [형제들아, 혹시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는(IN DEPARTING) 자가 하나라도 있지 아니할까 조심하라.](히3:13). [이는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님께 참여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권능을 맛본 자들이 만일 배교(背敎)하면(FALLING AWAY) 다시 그들을 새롭게 하여 회개에 이르게 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니 그 까닭은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새로이 십자가에 못박아 드러내 놓고 그분을 모욕하기 때문이라.](히6:4-6). 이 구절들은 현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뼈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그분의 몸과 그분의 살과 그분의 뼈들에 속한 지체(肢體)이기 때문이라.](엡5:30). 주님과의 유기체가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구절들은 모두 환란 성도들의 이야기입니다. 교회 시대의 저와 여러분들의 구원은 너무나 확실하며, 절대 변경되거나 떨어질 수 없습니다.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 다 지체라.](고전12:27). 우리는 주님과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친 조직체가 아니라 생명의 관계요, 유기체입니다. ● 만약 처음에는 믿었다가 나중에는 믿지 않는다든가 다른 종교로 개종을 해 버린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설마 이런 사람마저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타락하여 불교로 개종하여 승려가 된 예도 있습니다. 선교단체의 신실하고 열심있는 형제들이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 통일교로 빠져 든 예도 많이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다면, 후에 이를 번복한다 해도 주님은 그의 구원을 번복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니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느니라.](딤후2:13).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벽합니다. [또한 너희는 모든 정사(政事)와 권능의 머리이신 그분 안에서 완벽(COMPLETE)하며](골2:10).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완전합니다. [이는 그분께서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음이라.](히10:14) ●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보존됩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자신의 하늘 왕국에 이르기까지 보존하시리니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딤후4:18). ●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너희는 마지막 때에 드러내려고 예비하신 구원에 이르도록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벧전1:5). ● 하나님은 끝까지 구원하십니다. 이는 중간에 어떤 사유로 변경되거나 취소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나니 그 까닭은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仲保)하시기 때문이라.](히7:25). 주님은 우리를 구속의 그날까지 인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救贖)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4:30).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를 구원하는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고 또한 그분을 믿은 뒤에 저 거룩하신 약속의 영으로 인치심을 받았나니](엡1:13). 성경의 이런 약속은 구원받은 이후의 우리의 삶에 관계없이 신분 보장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말씀들입니다. 사람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성경의 가르침은 확고합니다. 이런 구원의 영원한 보증은 신자들에게 죄를 지어도 좋다는 면허증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 그에 따른 손실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신자가 짓는 모든 죄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심판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구원의 심판이 아니라 유업에 관련된 심판입니다. [각 사람의 일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그 일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 일이 불로써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것인지 시험할 것임이라. 누구든지 그 기초 위에 일을 세웠는데 그 일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보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일이 불타면 /보상을/ 잃게 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로써 받는 것 같으리라.](고전3:13-15).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를 죄의 종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의의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진리의 지식을 배우고, 성령의 열매를 많이, 더 많이 맺음으로써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자유의 법 아래 있으며, 생명의 성령의 법에 따라 걸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시고 정결하게 하신 목적이 방탕하고, 제 멋대로 살라고 하신 것이었겠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우리를 구속(救贖)하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2:14). 구원을 거져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희가 성경에서 가르치는 구원과 구원의 영원한 보증 교리를 매우 싫어합니다. 이들은 우리가 너무 쉬운 구원, 너무 쉬운 신앙 생활을 가르치기 때문에 성도들이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값없는(free) 구원"의 은혜는 성도들을 게으르거나, 안일하게, 열매없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지 않습니다. 값없는 은혜의 구원은 성도를 가장 성도답게, 경건하고, 절제있고, 재림을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로 만듭니다. [이는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우리를 가르치시되 경건치 아니한 것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저 복된 소망 즉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라.](딛2:11-13). 하나님의 은혜는 단지 구원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 그 이후 우리를 다스리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보장 교리를 의심합니까? ? 그들은 기록된 말씀보다 감정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FACT→ FAITH→FEELING의 순서를 바꾸면 안됩니다. ? 그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보다 교회의 전통이나 가르침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예외 조항을 두었으며, 사사로운 해석을 가르쳐 왔습니다. [너희의 전해 내려온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가 되게 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기 때문이니라, 하시더라.](막7:13). ?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표준으로 정해 놓고 그에 미치지 못한 사람들의 구원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각 교회나 교파마다 자기들만이 진정한 교회이며, 참된 신앙을 소유한 교회이며, 나머지 교회는 모두 거짓 구원, 종교인들로 매도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자기들처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이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형제들이 이외로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자기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