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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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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기독교의 시작
lhyunsik

오염된 기독교의 시작 콘스탄틴은 성직자들에게 세금을 면제해 주었고(A.D.313), 그리스도인들에 반대하는 이교도 의식들을 폐지하였으며(A.D.315), 구원받지 못한 이교도들로 하여금 주일(Sunday)을 지키도록 하였고(A.D.321), 모든 "기독교 개종자"에게 금화 이십개와 흰 옷을 약속하였다(A.D.324). 자연히 그 다음 해에 기록적인 교회 참가자를 기록했는데, 로마의 초기 카톨릭 교회는 한 해에 12,000명이 세례를 받은 기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틴 자신은 침례받지 않았다. 콘스탄틴은 유세비우스에게 로마 왕궁에서 쓰려고 50권의 성경 제작을 부탁하였다. 그는 친구인 팜필루스(Pamphilus)와 함께 북아프리카 가이샤라에 가서 (그는 가이사랴 주교였다), 시리아 안티옥의 표준원문을 5,800군데나 변개시킨 오리겐(Origen)의 "6란 성경"(Hexapla)을 참조하여 성경 50권을 만들었다. 오늘날까지(1999) 오리겐의 "성경"은 로마 카톨릭의 공인 성경으로 남아있다. 또한 미국표준역본(ASV, 1901), 새미국표준역본(NASV, 1960), 새국제역본(NIV, 1978) 등으로 출판되고 있다. 콘스탄틴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해 놓은 사역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받는 구원을 믿었던가? 천만에! 그는 주교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단 한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임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받은 구원은 그의 말에 따라 "불멸을 보장하는" 물세례였다. 콘스탄틴은 물세례가 "구원을 인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은 그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적대적인 정책에서 그들을 관용하는 타협적인 분위기로 급선회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모임에는 현저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이에 대한 자료는 락탄티우스(Lactantius), 소크라테스, 소조메누스(Sozomenus), 모샹(Mosheim) 등등의 글에 나와있다]. 로마 원형경기장이 장터로 바뀌고, 신전들은 교회 건물로 바뀌었으며, 비너스, 아폴로, 제우스, 아프로디테 동상들은 베드로, 야고보, 마리아, 요셉, 요한 등의 동상으로, 또 이교도의 희생제물의 연기가 그리스도인 "신부들"이 태우는 "향"으로, "물침례 신비 의식"이 "유아세례"로 바뀌어서 교회에 들어왔다. "이교도의 양초"는 "그리스도인의 양초"가 되었으며, "에베소에서 태워버린 책"을(행 19:19) "오리겐과 유세비우스의 북아프리카 위조 사본들"이 대신하였다. 이렇게 이교도 의식이 교회들에 쇄도한 것은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다. "사회풍조"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었다. 기독교는 "인기있었다"9눅 16:15). 이교도들이 교회와 연합할 때 그들은 크리스마스 트리(렘 10:3-6)와 부활절 토끼(행 12:4)를 들여왔다. 이것들의 역사는 잘 알려져 있다. 베스타(Vesta) 여신을 섬기는 처녀들, 긴 옷을 입는 제사장들, 결혼 반지, 종교 의식, 동상을 꾸미는 것, 죽은 자를 위한 지속적인 기도가 수반되었다. 교인을 만드는 것은 "기독교"를 믿는다는 신앙고백의 표시로 물을 뿌리면 그만이었고, 게다가 금화 이십 개와 새 옷의 유혹이 있었기에 구원받지 못한 이교도들이 교회들에 자연히 흡수되었다. 카톨릭 교회는 급속도로 최상의 교회가 되었는데, 콘스탄틴이 동로마를 건설하려고 이스탄불(비잔티움)로 떠날 때에 로마의 주교는 "근사한 거처" 외에도 "로마 교회"를 전격적으로 장악하게 되었다(A.D.330). 그레고리 나지안젠(Gregory Nazianzen, A.D.330-390)은 로마에 보물이 있었기에 도시들 가운데 "여왕" 같은 위치를 누렸다고 말했다. 로마 주교는 거대한 바실리카(교회 건물 양식)를 지어서, 거기에 자주와 진홍색 옷을 입고(계 17),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계 17), 손에는 왕권을 휘두르며(눅 4:6),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할 "천년통치"를 시작하였다. 간음은 금지되었고, 첩을 두는 것도 폐지되었으며, 여자들에게 약간의 권리가 부여되었고, 근친간의 결혼도 제한되었다. 후에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에 힘입어, 교회 회중들은 로마가 새 예루살렘이고, 카톨릭 교회의 주교나 신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을 정복하고(계 6:2; 마 13:33), 보좌에서 다스릴(계 20:2-4) 지상의 통치자들로 믿도록 고무되었다. 시민으로서의 자유권과 인권 및 사회의 모든 영역이 개선되면서 당시의 성경을 거부한 배교자들은 천년왕국이 시작된 것으로 믿게 되었다. 콘스탄틴이 기독교에 관용을 베풀므로 야기된 가장 치명적인 피해는 카톨릭 신자들과 성경 교사들에게 끼친 결과일 것이다. 그 이유는 이때까지는 거의 모든 교부가(오리겐, 클레멘트, 디오니시우스 같은 알렉산드리아의 배교한 학파는 제외하고) "전천년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이 교리를 "칠리아즘(Chiliasm)"으로 불렀다. 칠리아즘은 다음과 같다. 1. 사람은 그의 자연 상태가 성령으로 거듭났다 할지라도, 여전히 악한 본성을 갖고 있다(눅 11:13; 갈 1:4; 창 6:5). 그러므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마 6:10) 이루어지게 할 수 없다. 2.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완전한 평화인 천년통치는(사 11:1-12; 욜 2; 암 9:14; 스카랴 14:1-10; 마 19:28,25:31; 눅 1:30-33; 계 20:1-6) 만왕의 왕으로 오실 때에 비로소 실현되는데, 그 분은 그 왕국을 세우기 위해 눈에 보이는 모습을 하고(행 1:11) 돌아오실 것이다. 그 때 주님은 이 땅의 모든 종교적 정치적 권세를 파괴하시는데(단 2:44),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욜 2:1-17). 이 성경 교리의 지지자들은 바나바(Banabas), 파피아스(Papias), 져스틴 마터(Justin Martyr), 이레네우스(Irenaeus), 터툴리안(Tertullian), 락탄티우스(Lactantius), 코모디안(Commodian), 빅토리우스(Victorinus), 메또디우스(Methdius)였으며, 전천년을 주장한 이들은 A.D.120년에서 311년까지 그 맥이 끊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리겐은 이 중요한 성경 진리를 "유대인의 꿈"으로 격하시켰다[델리취(Delitzsh)는 1886년 정통주의자들에 대해 이것을 "우둔한 직역주의"라고 하였다]. 오리겐이 팔레스타인의 가이샤라로 옮긴 후(A.D.235) 그곳의 주교인 유세비우스 역시 칠리아즘을 거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이후의 어거스틴, 제롬, 칼빈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천년설을 반대하는 주견해는 후천년설이다. 이 주장의 강력한 지지자가(어거스틴)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믿는다고 하였음에도 이것은 인간성의 본질적인 선함을 강조하고 있다. 후천년설은 인간의 적극적이고 진화론적인 관점이다(창 3:1). 따라서 모든 구원받지 못한 무신론자,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 정치가, 성경을 부인하는 교회사가, 그리고 성경을 변개시킨 기독교 지도자가 채택한 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