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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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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축복을 물려주는 부모
lhyunsik

2005.5.1 창세기22:1-19 가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18세기말에 미국에 [조나단 에드워드]와 [스미스]라는 평범한 사람의 가정을 조사하여 연구를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2백년이 지난 뒤에 이 두 가정을 조사를 해 보았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먼저 조나단의 가문입니다. 이 집안 후손 가운데서 부통령이 1명, 주지사가 3명, 대학 총장이 13명, 변호사가 149명이 나왔습니다. 판검사가 48명, 목사가 116명, 장·차관이 82명, 사업가가 75명이나 나왔고, 발명가가 25명, 의사가 68명, 교수가 66명이 배출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스미스 가문입니다. 지난 2백 년 동안 109명이 사형을 당했고 후손의 3분의 1이상이 정신병을 앓았고. 절반 이상이 문맹자로 마약 사범과 알코올 중독자, 범죄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야말로 패가망신한 가문이 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이 두 가문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이 두 가문을 결정적으로 구별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두 가문을 연구한 전문가들은 이러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자녀는 달라진다." 조나단 가정은 평범했지만 부부가 참 화목했어요. 정직하고 성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부부였어요. 반면에 스미스 가정은 알코올 중독과 도박이 끊이지 않았고 부부 사이도 나빴다는 겁니다. 신앙심도 없었고 생활 태도가 바르지 못했다는 거예요. 이러한 일은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여럿 있습니다. 일제 시대 때에 기독교 3대 인물로 소문난 분들이 있어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평양 산정현 교회의 주기철 목사님과 그 교회의 조만식 장로님, 그리고 유계준 장로님이십니다. 이 유 장로님은 8남매를 두셨는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에 충성하고 전도도 열심히 하며 주님의 일에 일생을 바치며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았던 분이에요. 그의 후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첫째가 메디컬센터의 원장이었던 유기원 박사예요. 둘째가 치과 의사인 유기형 박사, 셋째도 의사로 유기선 박사, 넷째는 서울대 법대를 법대로 만들었다고 인정받는 6대 학장이었던 유기천 박사, 다섯째가 의사로 유기진 박사, 여섯째가 역시 의사로 유기옥 박사, 일곱째가 약사로 유기숙 박사, 여덟째 막내가 의사로 유기묵 박사입니다. 8남매가 의사, 약사, 교수, 모두가 다 박사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손자, 증손자들을 모두 합하면 그 후손이 모두 108명인데 거의 다 박사라는 것입니다. 가문의 한 사람인 유기준 장로님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행복하게 사니까 그의 후손들이 그 믿음을 본받아서 번창하고 사회에서도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자녀들은 부모가 물려주는 만큼의 세계를 산다는 겁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부모가 물려주는 유산이라는 것이 물질적인 것도 아니고 학문적인 것이 아닌,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좋은 조건과 학문과 물질을 남겨주는 것으로 자녀들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비록 그러한 것들을 남겨주지는 못하였다고 해도 부부가 그저 언제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나타내 보이면 자녀들은 그러한 부모의 모습을 보고서는 배워서 그대로 산다는 겁니다. 학자들이 낸 통계적인 수치이니까 믿을만한 겁니다. 그러면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녀들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신앙의 모습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같이 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믿음의 부모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주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1. 순종하는 믿음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 아들이삭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다같이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아브라함은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아들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지시한 곳을 향해 떠납니다. 자식을 죽여야 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러나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아들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나무를 쪼개는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유명한 설교가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태울 번제에 쓸 나무를 패고 있었을 때 그는 나무를 쪼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을 쪼개고 있었다.” 순종은 결단입니다. 마음이 결정되지 않은 채 따라가다 보면 방황하게 됩니다. 상황이 좋을 때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위기에 부딪히면 방황하고 흔들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결정이 선 사람은 위기가 와도 가던 길을 계속 순종하여 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는 이미 결단이 있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헌신과 순종이 있었습니다. 3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고민하거나 지체하지 않고 즉시 하나님께 지시하신 땅으로 갑니다. 이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순종할 수도 없는 사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믿음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는 무슨 명령이든, 감당할 수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자신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믿음이란 순종입니다. 어떤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고 따라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앤드류머레이]라는 분은 “우리가 그리스도인 되는 순간 우리는 순종이라는 학교에 입학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버지로서의 슬픔과 고통과 번뇌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믿고 따르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이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은 순종 앞에서 승화되고 새로운 차원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가능이 가능해지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없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자손들에게도 축복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입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나라.”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인 뿐 아니라 자녀가 축복받은 사람이 또 있습니다. 열왕기상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입니다.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食口)가 여러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 17:15∼16)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순종하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바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을 했더니 통에 가루가 없어지지 않고 병에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은 그릿 시냇가의 기간을 빼고 대략 2년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가루를 뜨면 가루가 또 생기고 또 생기고, 기름을 부으면 기름이 또 생기고 또 생기고 계속해서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과부들은 친척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아마 사르밧 과부도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길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입장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가뭄이 들었을 때 이제는 거꾸로 친척들을 도와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을 나주어 주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저주받은 과부, 가난한 과부라고 손가락질을 당했으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축복받은 과부가 되었습니다. 또한 외아들이 병들어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는 기적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왕상 17:17 이하).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7장 23절에 예레미야는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결코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순종을 통해서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 1906∼1945)는 “신앙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믿음도 신앙도 다 순종입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합니다. 헌신합니다. 충성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시면 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줄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주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2.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그 어떤 것도 아끼지 않고 드렸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이란 어떤 삶을 말할까요? 사전적인 뜻은“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공경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배우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제일 귀한 것입니다. 제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였을 때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드린 아브라함을 가리켜 하나님을 경외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중요하게 여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창세기22장의 명령은 아브라함의 사랑의 중심, 사랑의 정체성을 드러내라고 요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복으로 준 이삭을 더 사랑하느냐 아니면 복의 근원인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나님은 이것을 점검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중 첫째가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예수님은 마태복음22장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명령의 테스트에 아들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경외하십니까?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 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삭의 모습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명령을 순종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이해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해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8-10절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한다고 하더니 자기를 결박하고 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이삭이 온전히 아버지가 하는 그 일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은 아끼지 않고 드렸더니 이삭도 아버지께 자신을 아끼지 않고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헌신하고, 내가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면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헌신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축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의사이자 교회 권사이신 원종수 박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원 박사님은 어릴 때 어머니 말씀에 “아니요.”라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부모님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여기고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원 박사님이 고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불러서 갔더니 선생님은 성적표를 보이시며 심각한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종수야, 너는 480명 중에 350등이다. 성적이 밑바닥이구나. 홀어머니만 계신 집의 외아들인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그는 그 얘기를 듣고 그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를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학기말 시험에서 전교 5등을 했습니다. 선생님도 놀라고 친구들도 놀랐습니다. 졸업할 때는 전교에서 1등을 하고, 서울대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는 전국 의사국가고시에서도 1등을 했습니다. 상금으로 10만 원을 받아 어머니에게 갖다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첫 열매는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며 봉투째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믿음을 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어머니로부터 배운 아들은, 후에 미국에 가서도 암전문의가 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신이 받은 은사로 주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경외해야 할 대상이 세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입니다. 시편 115편 13절에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부모님입니다. 레위기 19장 3절에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에베소서6:2-3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남편입니다. 에베소서 5장 33절에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까? 그러면 부모를 남편을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남편을 경외하고, 부모를 경외하는 모습을 본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들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축복된 자녀들이 될 줄 믿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주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그러면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을 아브라함으로부터 물려받았듯이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신 5:5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 하나님께서는 대를 이어 심지어 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가정에 은혜 내려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말씀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주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3.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15-19, 12절)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했습니다. 조이 데이비드맨은 십계명에 관한 자신의 저서 “Smoke on Mountain”에서 그림동화 하나를 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동화에서 자녀와 더불어 연세가 많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한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아버지는 나이가 드셨고 거동이 불편하셨습니다. 그래서 식사 때 국이나 음식을 흘리지 말아야 할 곳에 여기저기 흘리곤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그 부부는 불편하게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했지만 그 아버지는 정말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부부는 아버지에게 가족과 함께 식탁에 앉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방 한 구석에 앉아 이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그 아버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노인이 전혀 먹을 수 없게 될 때까지 따로 떼어 놓는 것에 불과 했습니다. 혼자서 전혀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자 그 부부는 아버지의 음식을 여물통에 주었고, 수저, 포크 나이프를 모두 치웠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먹거나 입을 직접대고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더 악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이들이 헛간에서 놀고 있는 것을 부부가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나무, 톱, 망치, 못 등으로 무엇인가 만들고 있었습니다. 부부는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뭘 만들고 있니?”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늙으면 쓸 여물통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그 동화가 주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본받는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는 것을 똑같이 자녀들이 한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주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가 되십시오.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 그 순종이 그 사랑이 인정받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두 가지 면에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인정과 함께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6절-18절 말씀을 보십시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저는 물질을 물려주기 보다는 지식을 물려주는 부모가 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주어도 그 자녀가 물려받은 재산을 잘 간수하지 못하면 형제들끼리 싸우고 방탕한 생활을 하여 마지막에는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부모들은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집을 팔고 땅을 팔아서라도 자녀들을 훌륭하게 가르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녀에게 지식을 물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요즈음은 취직을 하려고 해도 학력이 우선입니다. 많이 배울수록 승진이 빠르고 보수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물질보다 지식을 물려주는 것이 더 위대한 부모라고 믿습니다. 물질보다 지식을 물려주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만 그 보다도 더욱 위대한 것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온갖 가치관이 범람하여 우리 자녀들이 마음이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세대에 정말 위대한 부모는 자녀들이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소유하여 가치 있는 인생을 살도록 믿음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질보다는 지식을, 지식보다는 신앙을 물려주는 위대한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의 모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