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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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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가
lhyunsik

A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가? 2005. 5. 15 사무엘상 2:12-17 부권회복 운동의 하나로 펼치고 있는 LG전자 구미공장 부녀회원들의 남편 기 살리기 십계명이라는 것이 있는데 여러분들에게 한 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 남의 남편과 비교하지 않는다. 2. 아침을 반드시 먹고 출근하게 한다. 3. 아이들에게 아빠의 훌륭한 점을 자주 이야기한다. 4. 남편에게 용돈을 충분히 준다. 5. '당신이 최고야!' 등 칭찬을 하루 한 번 이상 한다. 6. 시댁식구들에게 잘 한다. 7. 남편 퇴근시간에 집을 비우지 않는다. 8. 남편과 함께 있을 때는 웃는 얼굴로 대한다. 9. 남편을 예의바른 자세로 대한다. 10. 옷을 항상 깨끗이 준비한다." [J. H. 페스탈로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모의 본능적인 사랑만으로 자녀를 잘 키울 수 없다.' 이제 우리도 아버지 역할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다운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이 하는 일을 보충할 것입니다. 더 유능하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이 일을 대신해 줄 것입니다. 다른 역할은 누구라도 채워 주고 보충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역할만큼은 불가능합니다. 오늘, 이 시대의 급선무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되살리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바로 찾을 때 가정도 소망이 있고 교회도 소망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면 어떤 아버지들이 되어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엘리를 통하여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지 배우기를 원합니다. 엘리는 실패한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로서 실패한 엘리의 모습을 보면서 교훈적으로 우리는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가를 같이 보기를 원합니다. 어떤 아버지들이 되어야 할까요? 1. 믿음을 가르치는 아버지가 되라. 엘리는 믿음을 계승하는 일에 실패한 아버지였습니다. 12절 말씀을 다같이 보시겠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 이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를 느끼고 그의 사랑을 깨달아서 하나님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3:17-19절에서 에베소성도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엘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알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가정적으로 성전에서 태어나서 성전에서 생활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40년간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도 제사장으로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런 조건들을 볼 때 더욱 더 하나님을 알고 체험할 수 있는 좋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엘리의 아들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습니까? 12절에서는 불량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량자라는 말은 '벨리알의 아들들' 이라는 뜻으로 사악하고 무가치한 자, 불경건한 자, 배도자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7절에는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소년들이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현장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들을 마음대로 취했고 심지어는 22절에서 보면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을 범하는 음란한 일까지 행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멸시하며 더럽히는 범죄를 행한 것입니다. 25절에는 또 그들의 죄가 지적되고 있는데 아버지의 훈계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불량자고,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자였고, 자기 욕망대로 행하는 자였고, 아버지의 말도 듣지 않는 사람 이였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교회에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 하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모든 것에 우선해서 하나님을 잘 알고 섬기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엘리의 가정이 이렇게 문제의 가정이 되고. 엘리의 아들들이 이런 문제의 아들들이 된 원인에 대하여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9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정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두 가지 원인을 지적하고 있는데 첫째는 “너희가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7절에서 엘리의 아들들의 죄를 지적하였을 때 말씀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그 엄청난 죄를 범한 것은 아버지 엘리에게 그런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자녀들이 도덕적인 타락, 또는 신앙적인 타락은 부모의 삶을 그대로 자녀들이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의 자녀가 신앙이 없습니까? 왜 자녀들이 예배를 멸시합니까? 엘리처럼 내가 예배를 멸시하고 있기 때문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엘리와 같은 모습은 없습니까? 두 번째 원인은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잘해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을 모든 것의 우선순위에 두는 일입니다. 엘리의 결정적인 잘못은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아들과 연관되었을 때는 하나님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제사장이면서도 자녀들에 대한 본능적인 애정은 있지만 하나님은 중히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가장 중요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자녀들이 가장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니 자녀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자기 욕망대로 마음대로 행하고 있는데도 훈계하거나 책망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3:13절 말씀입니다. 엘리와 엘리의 가문을 향한 비극적인 마지막 선언을 다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왜 자녀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자기 욕망대로 마음대로 행하는데 훈계하거나 책망하지 못합니까?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녀들을 망치는 잘못된 부모들의 사랑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떤 아버지가 되고 부모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에베소서6:4에서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으로 양육하십시오. 그리고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잘못된 행위를 발견했을 때는 훈계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양육하는 아버지가 되고 부모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23:13-14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자녀를 훈계하는 궁극적 목적은 그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14절에서 뭐라고 합니까?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스올"이란 죽음의 장소, 무덤, 죽음의 상태, 형벌과 멸망의 장소 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13:24),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잠29:17)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시 127:3에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업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존재인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길러야 하겠습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을 가장 존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양육하는 부모들이 되고 아버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8세기의 패트릭 헨리가 자기 가족에게 유산을 물려주면서 '나는 이제 내 모든 재산을 내 가족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가족에게 한 가지 더 주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신앙입니다. 가족이 이 신앙을 유산으로 받는다면 내가 그들에게 1실링을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부유해질 것이며, 그러나 그들이 그 신앙을 유산으로 받지 않는다면 내가 그들에게 이 세상 전부를 준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가난해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 유산입니다. 아버지 여러분들은 교회의 직분자이기 전에 여러분 가정의 제사장임을 잊지 마십시오. 어머니 여러분들은 가정의 제사장인 아버지를 세워야 하는 또 다른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으로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합니까? 믿음을 가르치는 아버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좋은 품성을 가르치는 아버지가 되라. 엘리는 아버지로서 믿음을 가르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좋은 성품을 길러주지 못했습니다.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엘리의 아들들을 하나님을 멸시하였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말도 듣지 않고 멸시하였습니다. 좋은 품성의 하나는 부모에 대한 순종하는 태도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교육은 인간의 권리를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는 잘 못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강조가 지나쳐서 저항하고 반역을 부추기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몇 일전에 영국의 한 교사가 학교 수업시간에 찍은 비디오를 텔레비전을 통해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수업을 진행하는 데 교사의 말을 듣지를 않습니다. 조용히 하라고 하니까 “당신이 왜 참견하느냐 왜 나의 권리를 침해하느냐”고 하면서 아수라장이 되어도 통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컴퓨터 수업시간이 되었습니다. 교사가 가르치는 것은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다. 음란 채팅을 하고 음란사이트를 보고 있는 것을 교사가 하지 말라고 지적하는데 학생들이 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느냐며 반항을 합니다. 선생님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영국의 교육의 현실이라며 심각하게 보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영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문제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이들의 품성을 기르는 것이고, 그 품성이 권위에 대한 순종하는 태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8절에 보면 예수님이 한평생을 걸고 배우고자 하셨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지만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 온전하게 되셨다.” 예수님이 한 평생 배우기를 원하셨던 것은 순종이었습니다. 성경은 불순종의 이야기, 반역이 초래한 비극의 이야기로 꽉 차 있습니다. 마귀의 기원이 무엇입니까? 천사 장이었던 루시퍼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반역이었습니다. 타락한 천사와 타락하지 않는 천사의 차이는 한마디로 불순종과 순종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 교육의 중요한 한 가지 목표는 순종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사람의 품성을 보여주는 태도인 것입니다. 잠언22:6절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어떻게 이런 품성을 가르칠 수 있습니까?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불순종이 체질화된 사람을 나중에 가서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어릴 때부터 순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본문 13절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있습니다. 13절을 다같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고 부도덕하고, 반항적인 태도가 습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의 자녀들이 하루아침에 불량자가 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들이 되고, 부모의 말에 불순종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오래된 습관 이였던 것입니다. [에스라 일즈]는 말하기를 “습관은 나무껍질에 글자를 새긴 것과 같아서 그 나무가 커짐에 따라 글자는 점점 확대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바늘도적이 소도적 된다.”고 하였습니다. 작은 것을 훔쳤지만 나중에는 큰 도적으로 발전해 간다는 말씀입니다. 습관은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좋은 성품이 아이들의 몸에 습관이 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이 되도록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더서가 믿음의 사람이 되고 민족을 구하는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누구의 영향인줄 아십니까? 이 여인을 기른 모르드개의 영향이라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민족이 풍전등화와 같은 죽음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나아가 민족을 구할 수 있도록 탄원해야 한다고 가르쳤을 때 에스더의 태도를 기록한 말씀이 있습니다. 에스더서 2:20절 말씀입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명한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고하지 아니하니 저가 모르드개의 명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좇음이더라.”(에2:20) 에스더는 어렸을 때 양육 받을 때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양육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커서 성장한 여인이 되었을 때도 모르드개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양육 받을 때 그 부모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처럼 커서도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순종을 배우지 못한 자녀에게는 커서도 순종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어떤 품성을 지니고 있습니까? 부모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있습니까? 부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 욕망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까? 자녀들에게 좋은 신앙의 품성을 가르치는 아버지가 되고, 부모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릴 때부터 좋은 품성을 가르칠 뿐 아니라 부모 자신들의 삶이 자녀들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는 이미 자녀들에게 본이 되고 있는데 문제는 좋은 본인가? 나쁜 본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늘 주시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2장과 20장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거짓말 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창세기 26장에서는 후에 아들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에 대해 똑같은 거짓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실수와 결점이 아들인 이삭의 생애 속에 정확하게 동일한 모습으로 반복되어 재생되고 있는 이 비극의 현장을 보십시오.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11: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완전하기 때문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녀들이 좋은 품성과 인격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부모 되신 여러분들이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인격이 되고 순종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신앙과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복종과 순종 없이는 결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3. 올바른 가치관을 가르치는 아버지가 되라. "자기가 옳다고 믿는 신념"을 우리는 가치관이라고 부릅니다. 어느 사람이든 그의 값을 정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소유한 가치관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품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가치관은 성공의 출발점이요 행복의 출발점이 됩니다. 바울은 구원받고 난 후 가치관이 변화되었습니다. 빌립보서3장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가장 존귀하게 여겼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가 존 녹스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을 자신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그가 죽고 난 후 사람들은 그의 무덤에 [여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누워서 잠을 잔다]고 비문을 썼다고 합니다. 당신의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엘리의 아들들은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7절을 보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보다 자신의 욕망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몫으로 지정된 고기를 먹지 않고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마음대로 먹었습니다. 또한 제물을 먼저 하나님께 태워서 드리고 그 다음 제사장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먼저 그 고기를 억지로라도 빼앗아 먹을 정도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제사를 멸시하였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악행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0절에서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고 멸시하였습니다. 3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맡겨준 사역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멸시하고 여호와의 예배에 대한 아들들의 모욕과 경멸을 방치한 것은 엘리의 가치관이 하나님보다 자신의 아들을 더 중하게 여겼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들들이 범죄행위를 계속할 때, 엘리는 제사장으로서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많은 주경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엘리 자신도 자식들이 가져온 죄의 소득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9절 후반부를 봅시다. 하나님이 엘리를 책망합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그리고 4장 18절에 보면 엘리가 상당히 비둔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처음에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가 먹는 기름진 음식들이 하나님의 제단에서 강탈해 온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미 엘리는 자신이 누리는 죄의 소득들을 맘껏 즐기는 도중이었기에 그 아들들의 행위를 금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엘리는 두 아들을 아무런 간섭도 책망도 하지 않고 방치하였습니다. 이것이 가문이 심판을 당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할까요? 자녀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가르치는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중요하며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이며 어떤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가정의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로부터 지금은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커서 성인이 되었을 때 자녀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부모들이 되어야 합니다. 무디 선생은 "세상의 모든 사람의 존경을 다 잃더라도 나는 불행하지 않다. 그러나 자식에게서 존경심을 잃으면 나는 불행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양육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양육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둘째, 믿음의 품성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셋째, 성경적인 가치관을 갖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 B. 쫗은 아버지 되기 ( 한국일보 기사 내용 ) 1. 아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2. 비밀 지키는 법을 가르친다. 3. 취침시각을 엄수하도록 한다. 아이들은 잠이 많이 필요하다. 4. 낮잠 자는 것이 나쁘지 않음을 가르친다. 5. 산잭을 데리고 나가 벌레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5. 배움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