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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홀로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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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홀로서기 딸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어머니가 일어나시어 움직이는 소리다. 다섯 시다. 우리 모두는 곧 일어나야 한다. 일요일 아침, 늦잠으로 한 주일의 부족한 잠을 채우는 도시 사람들의 ‘단잠 시간’이지만 여기선 어쩔 수 없다. “인자 모두 일나라.” 하는 어머니의 기상 신호만이 남았을 뿐이다. 십 분쯤 지났을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자, 모두 일나자. 시원할 때 하우스에 비닐 씨아야 덴다.” 당신의 생신을 위해 고향집에 모인 아들들에게 내린 명령이다. 어머니껜 일 년에 한 번 있는 생신도 사치일까? 생신날 맨 먼저 일어나 하룻일을 준비하시는 어머니께는 당신의 생신보다는 오늘 해야 할 일에 욕심이 있는 듯하다. 모처럼 튼실한 일꾼이 대여섯이나 모인다고 평소 당신 혼자서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을 계획해 놓으신 게 틀림없다. 칠월이 되어 고추밭에서 고추가 하나, 둘 빨갛게 익기 시작하면 고추를 말릴 하우스에 새 비닐을 입혀야 한다. 아침상을 차려야 하는 세 며느리를 빼고 작업복 차림의 삼형제가 아치형 골조만 서 있는 하우스에 모였다. 아침에 비닐을 씌우고, 아침 먹고 비닐하우스 바닥에 깔 갈대를 베어 와서 말려야 하고, 점심 먹고는 고추밭에 농약을 쳐야 된단다. 오랜만에 고향 와서 하는 이 일이 자식인 우리에게 별 소득이 없을망정, 자기 집으로 돌아가 며칠 몸살을 앓을지언정 거부할 수 없다. 어려울 때 우리들 낳아 키워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일흔다섯 연세에 홀로 남아 농사짓고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경제적 논리나 이해타산이 끼어들 틈이 없다. 시부모를 모시며 육 남매를 낳으신 뒤 얻은 위장병을 사십 년째 안고 사시는 어머니요, 어디 가고 싶어도 차멀미가 심해 멀리 여행도 못하시는 약하디약한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가 작년 가을에 강철 같으시던 아버지를 뜻하지 않게 떠나보낸 후 많이 달라지셨다. 아버지가 가신 후 우리 자식들은 이제, 어머니가 농사고 뭐고 다 남 주고 그저 편히 여생을 보내시길 원했다. 어머니도 그러겠다고 하셨다. 양식으로 쓸 문전옥답 한 뙈기와 남새 가꿀 텃밭만 돌보겠노라고 하셨다. 그러던 어머니가 요즘 달라졌다. 일 욕심이 많아진 거다. 한 달 전, 상을 당한 고향 친구 문상 갔다가 집에 잠깐 들르기 위해 몇 시간 전부터 전화를 해도 어머닌 받지 않으셨다. 장례를 마치고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두 시나 되어 고향집으로 향하는데, 농사짓는 아낙들이 쓰는 챙모자를 눌러쓴 채 신작로를 따라 마을로 걸어가는 노파가 보였다. 어머니다. 이제야 오전 일을 끝내고 점심 잡수러 가는 것임에 틀림없다. 가까이 가서 차를 세웠다. 갑자기 나타난 둘째 아들을 보고 흠칫 놀라신다. 왜 여태 점심도 안 잡숫고 이제야 집에 가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하던 일 마저 하고 간다 카다가” 늦었단다. 일 좀 적게 해도 좋으니 끼니 제 때 좀 챙겨 드시라고 했다. 말은 그래도 일을 해 보면 그리 안 된다고 하신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드시면서 올해 농사 못 짓는다고 남 준 논을 내년에 당신이 직접 경작해야겠단다. 몇 달 혼자서 농사를 지어 보고는 용기가 나신 걸까? 생신을 맞아 한 달 만에 다시 와 보니 겨울철 사랑방 아궁이에 넣을 땔감도 많이 쌓아 두었다. 이웃 동네 가구 공장에서 나오는 폐목들이다. 경운기도 못 몰고, 지게도 질 줄 모르시는 어머니가 저 나무들을 어떻게 운반해 왔을까? 아버지 없인 아무 일도 못하실 것 같던 어머니가 혼자 살아가는 방도를 하나씩 터득해 가고 있는 모양이다. 오히려 아버지 눈치 보느라 못 했던 일을 마음대로 하고 있는 듯하다. 한 곳에는 묵밭을 일궈 콩도 심고 고구마도 심어 놓았다. 아버진 잔손질 많이 가는 잡곡이나 채소류 심는 걸 꺼리셨다. 일손만 많이 가고 별 소득이 없어서다. 하지만 어머닌 객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 나누어주는 재미로 온갖 채소와 잡곡을 다 심고 싶어했다. 이 때문에 두 분이 다툴 때도 있었다. 이제 어머닌 아버지 간섭 없이 당신 맘대로 하고 있는 거다 한가한 시간엔 품을 팔러 다니시는 모양이다. 오후에 형제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양파를 가져가라며 몇 자루 내놓으신다. 어디 양파 농장에 일하러 갔다가 얻어온 거라 하신다. 봄엔 읍사무소에서 하는 공공근로에 참여하여 처음으로 월급이란 걸 받아 봤다며 자랑하신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어머니가 혼자 어떻게 적응하실까 염려가 되었지만, 몇 달 만에 일에 재미를 붙이고,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 자식들을 조금 안심시킨다.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귀찮아서도 못하실 텐데, 아버지 돌아가신 후 어머닌 몸도 마음도 강해지신 걸까? 어머니는 지금 실험을 하고 계신다. 55년 간 아버지와 함께 해 온 농사이지만, 이젠 아버지의 조력자에서 벗어나 한 농가의 ‘농업경영인’으로서 홀로서기를 시도하고 있는 거다. 여기에는 부족한 일손일랑 휴일에 자식들을 불러들여 이용한다는 경영전략이 숨어 있는 듯하다. 그런 눈으로 보면 오늘 같이 다 모이는 생신날은 당신께 ‘생산성 향상’의 찬스인 거다. - 박창원(포항 청하중) / '어머니의 홀로서기'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