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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딸 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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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일) 점심시간. 자전거 페달을 밟는 다리에 불끈 힘이 들어갔습니다. 마음이 급했습니다. 정각 12시면 아버지께서는 어김없이 점심을 드셨는데 요즘은 꼬박 1시간이 늦어졌습니다. 바로 치약공장 점심시간이 오후 1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습관처럼 무서운 게 없다고 12시면 점심을 드시던 분이기에 당연히 허기가 지실 것 같았습니다. 얼른 점심상을 차려 아버지와 마주 앉았건만 아버지는 선뜻 수저를 드시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에미야! 공장 일이 힘드냐? 얼굴이 영 반쪽이다." "힘들기는요. 안 하던 일이라 그렇죠 뭐. 그동안 편하게 살았다고 얼굴이 표를 내나 보네요." "그놈의 돈이 뭔지. 다 이 애비 탓이다." "뭐가 아버지 탓이에요. 몸은 좀 피곤해도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괜한 생각하지 마세요." "잘난 부모 만났으면 니가 이 고생을 왜 해?" "아버지. 저 하나도 고생 안 돼요. 그러니까 자꾸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그나저나 아버지. TV 너무 많이 보지 마세요. 눈도 나빠지고 전자파도 몸에 영 해롭대요." "TV 안 보면 뭐 할 일이 있냐? 네가 사다준 책도 다 읽었고. 하기는 요즘 눈이 좀 침침하기는 하다만…." 오전 내내 맞장구 한번 쳐주는 일 없이 혼자만 지껄여 대었을 TV도 아버지의 좋은 친구는 될 수 없었음인지 잠깐 얼굴을 마주하는 이 딸자식과 그저 몇 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으신지 식사를 하시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말을 시키셨습니다. "근데 그 치약공장에서 하는 일이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이냐?" "네." "뭐 별다른 기술 같은 건 필요 없냐? 그냥 치약을 담기만 하면 되는 거냐?" "네. 그런데 왜 자꾸 그런 걸 물으세요?" "아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런다." 점심시간을 끝내고 공장으로 가기 위해 자전거에 오르는 저를 아버지는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쓸쓸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왠지 아버지의 그 웃음 위로 불안과 허전함이 겹쳐 보여 일을 하는 오후 내내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하루 24시간을 늘 아버지 곁에서 맴도는 이 딸자식의 부재가 어쩌면 아버지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안함이란 게 실은 제게도 잠재해 있었습니다. 가끔은 정신을 놓으시는 분이시기에 오전 11시쯤 쏜살같이 자전거를 타고 꼭 한번씩 집으로 와 아버지 얼굴을 보고 가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래도 오후엔 딸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기에 안심이 되는 터였습니다. 가끔 일을 하다 보면 아버지와 딸아이의 목소리가 공장 담 너머로 들려 올 때도 있었습니다. 딸아이나 아버지나 막상 제가 집에 없으니 생뚱맞게도 갑작스런 심심함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아침.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는 저를 향해 아버지께서 뭔가 하실 말씀이 있는 듯 우물쭈물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에미야 나도 니 따라가면 안 되냐?" "어디? 공장에요? 왜요. 집에 혼자 계시니까 심심하세요?" "아니 꼭 그런 게 아니라,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세요. 같이 가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아버지께 기분 좋은 대답을 해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렵게 말씀을 꺼낸 것에 비해 제 대답이 어쩌면 아버지께 너무 쉽게 들렸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대답을 드릴 수 있었던 건 어제 오후.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는 아버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생은 60부터라는데 올해 아버지의 연세 예순 여섯. 아버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직은 한창 일을 할 수 있는 연세라고 생각 하실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특히나 이런 시골에는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 태반입니다. 그 분들이 젊은 사람 못지않게 논일 밭일을 하시는 걸 아버지와 동네를 산책하다보면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그 어르신들의 모습이 아버지의 두 눈 속에서 오래오래 어른거리는가하면 어느 순간 아버지의 눈동자가 부러움의 파문을 일으키는 걸 보곤 합니다. 해서 어제 오후 내내 아버지의 일상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문 깊은 갈등의 결론은 아버지께 일하는 기쁨을 맛보게 해드려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식의 입장으로서 어쩌면 불효가 되는 일일 수도 있었지만 그저 단순하게 아버지의 무료한 하루와 이 딸자식의 부재로 인한 불안감에서 벗어나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기쁨은 의외로 컸습니다. 힘들게 몸을 움직이고 복잡하게 머리를 쓰는 일이 아니고 그저 단순하게 치약을 담는 일이다보니 바지런한 아버지의 천성과 잘 맞아떨어졌음인지 제법 손놀림이 빨랐습니다. 공장 사람들과 이런저런 농담도 주고 받으셨고,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아주 신나게 따라 부르며 흥에 겨워하셨습니다. 점심시간. 집으로 향하던 아버지께서 기분 좋게 말씀하셨습니다. "에미야! 내가 오늘 자장면 사줄까?" "자장면 드시고 싶으세요?" "아니. 내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오늘 오전에 내가 자장면 값 벌었으니까 내가 번 돈으로 맨 먼저 에미 자장면 사주고 싶어서 그러지." "오전에 아버지 얼마 버셨는데요?" "왜? 오전에 일한 거 자장면 값 안 되냐? 그래도 괜찮다. 오후에 또 벌 거니까." "아버지. 일하시는 게 재미있으세요?" "그럼. 아주 재미있다. 나 내일도 또 따라갈란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집에 오시자마자 얼른 옷을 갈아입으셨습니다. "오후에 또 일하실 거라면서 옷은 왜 갈아입으세요?" "오늘 이 애비가 돈 벌어서 에미 니 자장면 사 준 날이니까 에미 또 글 쓸 거 아니냐. 그럼 사진 찍어야지." 아버지의 그 말씀에 아버지도 저도 한참을 웃었습니다. 결국 오늘 점심은 자장면을 먹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장면을 드시는 내내 몇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에미야! 이거는 이 애비가 오늘 오전에 일한 거로 맨 먼저 네게 사주는 거다.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한다." 아버지께서 기분 좋게 이 딸자식에게 한 턱 쓰시는 것이니 그 맛난 자장면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야 하건만 저는 애꿎은 잔기침만 자꾸 해대고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가슴으로 젖어드는 아버지의 밝은 웃음도 걸리고, 물기 머금은 아버지의 촉촉한 두 눈동자도 걸리고, 아버지의 어깨에 소복하게 내려앉은 부모의 마음도 걸리고, 어느새 깨끗하게 비워진 아버지의 자장면 그릇도 마음에 걸리고…. 오늘. 저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자장면을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