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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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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큰누나
jakim

 

나는 지금 시카고에 와있다. 1월초에 시카고 조카에게서 전화가 왔다. 큰 누님이 오래 전부터 암 투병을 해오셨는데 코로나 때문에 오고 가기도 힘드니 나에게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하셨단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심각해져 알기는 해야 하니까 전화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누나한테 문자를 보냈고 서로 묻고 답하기를 두어 차례. 보내주신 문자는 80중반의 노인이 쓰신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논리 정연했고 철자도 거의 정확했다. 그리고 지난주 수요일 큰누나와 같이 사시는 셋째 누나가 대신 문자를 보냈다.

지난해 약 7개월간 신장부근에 암세포가 발견되어 치료를 받아왔는데 갑자기 암세포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머리가 깨진다고 하셔서 응급실을 갔더니 암세포가 오른쪽 귀 쪽의 신경을 누르고 있어 너무 아프고 그 통증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그래서 누나는 치료를 포기하셨고, 통증이 너무 심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빨리 예수님 곁으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를 부탁하셨고 지금은 코마상태로 들어가셔서 나에게 문자 보낸다고 하셨다.

누나가 암을 심각하게 앓고 있구나. 곧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거다. 갑자기 먹먹해졌다. 눈을 감고 급히 기도를 했다. 내가 갈 동안이라도 우리 누님을 살려달라고. 그리고 누나에게 내가 갈 때까지 제발 살아있어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부랴부랴 비행기표 예약을 했고, PCR Test 를 했고 금요일 시카고에 왔다.

우리 큰누나, 정말 학같이 사신 분이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식 여섯을 남겨놓고 돌아가셨다. 집안이 가난하니 큰누나는 수녀원에 들어가 간호학교를 나오셨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성바오로 병원에 근무하셨고, 아무래도 수녀원생활을 하시면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기가 힘드니 수녀원을 나오셨다.

그 후에는 필동성심병원에 근무하시다 70년대 초반에 그 병원에 간호과장을 지내셨다. 어릴 때 용돈이 필요하면 누나가 계신 병원에 가끔 찾아갔는데 누나의 사무실이 그 병원의 옥상에 있었고 흰옷을 입고 있는 누나가 얼마나 멋지던지.

당시만해도 국내병원의 월급이 작으니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72년도 미국으로 오셨다. 정식간호사가 되면 월급이 많다니까 30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 영어도 시원치 않았을 텐데 그 자격증 공부가 시작되었다.

각 주의 간호사 시험일정이 연초가 되면 발표가 난단다. 그러면 몇 개 주를 정해놓고 그 동네병원에 이력서를 보내 직업을 잡은 후에 그 동네로 이사를 가서 공부와 일을 한단다. 그리고 떨어지면 다음 주로… 수없이 떨어졌을 그 시험을 묵묵히 견디시다 시카고에서 정식 RN 자격증을 따서 이곳에서 일하시다 은퇴하셨다. 참고로 우리 큰누나는 학교 다니시면서 평생에 2등을 해본 적이 없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는 자주 토론토에 운전하고 오셨는데, 연세가 드시면서 열 시간씩 운전하시기가 힘드셔서 그 후에는 내가 일이 있으면 시카고를 왔다 갔다 했다. 항상 단정하신 모습만을 보았고 돈 버는 동생이 갔어도 지폐를 한 움큼씩 집어주시며 “가다가 필요한 것 있으면 사 쓰거라” 하시던 그 누님이 쓰러지셨단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조카 차를 타고 누님 집에 들어섰다. 방으로 들어갔더니 누워계시고 숨을 할딱거리시는데 내가 누나의 귀에 대고 “큰누나, 재기왔어요, 누나 보고 싶어서 달려왔어요” 했더니 입으로 희미하게 “재기?” 하더니 눈을 잠깐 뜨시고는 눈물이 볼에 흘렀다.

그러기를 두 번 그리고는 계속 의식이 없는 상태다. 큰누나가 의식이 돌아오고 “누나 고마웠어요 사랑해요”라고 한마디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하는데 내 기도는 분명 응답 받을 것을 믿는다.

조카와 이야기 중에 내 왼팔이 휜 것에 대해서 큰누나가 미안함을 갖고 있으시단다. 여섯 살 때 마루에 떨어져서 팔이 부러졌는데 접골원에서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워낙 개구쟁이라 팔이 휘었다고 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누나가 근무하는 성바오로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잘못되어 팔이 지금처럼 더 구부러졌다. 당시 큰누나가 정형외과 과장에게 물었을 때는 수술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누나는 동생을 고쳐주고 싶은 마음에 부과장에게 다시 물어봤더니 수술을 해보자고 했단다. 그런데 결과가 잘못 나왔고 누나는 그 55년 전의 일로 나에게 미안함을 갖고 계신 거다. 내가 살아가는데 별 불편이 없음에도.

아버지 없는 집안에 아버지 역할 하시며 자기 일생을 동생들을 위해 희생하신 나의 큰누나. 많은 사람에게 큰 사랑을 주셔서 지금도 그 사랑을 갚기 위해 매일 오셔서 누님을 씻겨주시고 먹여주시는 친구가 있는 나의 큰누나. 은퇴 후에 만난 분과 인생의 마지막 20년을 같이 여러 곳에 여행도 하시고 즐겁게 사시다 가시는 나의 큰누나. 마지막 말년이 행복하신 나의 큰누나.

큰누나 주신 은혜가 너무 커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내 팔 아무 문제 없어요. 팔이 약간 휜 대신에 남보다 좀 더 잘 생겼잖아요. 잘 가시고 저희를 위해 항상 기도해주세요.

 

2022.1.18 아침 동생 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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