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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기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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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7
든자리와 난자리

 

 밤새 좋지 않은 생각에 꿈이 뒤숭숭했다.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잠이 들만하면 아폴로가 그 큰머리를 내 다리에 올려놓아 또 잠을 캤다. 가뜩이나 잠을 못 이루는데 아폴로가 무려 세 번이나 머리를 내 다리에 올려놓기를 반복해 비몽사몽으로 지낸 밤이 드디어 밝았다. 샤워를 하고 안방을 나오니 아폴로가 따라 나올 듯 바닥으로 내려온다. 나오라고 손짓을 하니 나를 힐끗 한번 보더니 뒤돌아 서서 훌쩍 침대로 올라가 버린다.

 안방을 나와보니 조용하다. 며칠 전에 비해 집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집안이 훨씬 넓어진 것 같다. 집안을 둘러보았다. 꼬마들 장난감 한두 가지만 구석에 있을 뿐 아이들의 모든 살림살이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그리고 시끌벅적함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아폴로도 자다가 아이들 소리가 나면 문 열어달라고 컹컹 짖고 난리를 치더니 아이들이 없으니 저렇게 다시 들어가 잔다. 아폴로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과자들을 흘리면 주워먹었는데, 이제 아폴로의 간식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약 한달 전부터 집사람과 매일 걷고 있다. 당, 혈압 그리고 콜레스테롤 때문에 운동을 꼭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몇 주전부터 걸으면서 집사람이 “애들이 곧 이사 나간데” 한다. 딸내미가 시집갈 때는 집을 나간 상태에서 결혼했기 때문에 별로 섭섭하지가 않았는데, 이제 모두 같이 살다가 나간다고 하니 너무 섭섭하단다.

작년 5월초에 자기네 집을 고친다고 3식구가 우리 집에 들어왔고, 7월 말에 작은 손녀가 태어났다. 이 좁은 집에서 6명이 아폴로와 함께 일년 반 동안 생활을 했고 지난주 모든 짐을 뺏다. 화요일 아침에 사위가 마지막으로 애들 침대를 분해해서 복도에 놔둔다. 이제 여기서 자는 건 어제로 마지막이라는 거지…그걸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애들 침대 외에도 이것저것 갖다 놓는데 분량이 꽤 됐다. 그것을 혼자 차에 싣는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가 혼자서 끙끙거리고 나르는 것을 바라만보고 괜히 전화로 문자를 보내는 척, 전화를 거는 척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나를 보더니 딸내미가 “아빠, Are you sad?” 하고 묻는다. “No, I am Okay” 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사위가 혼자서 짐을 다 싣더니 가면서 오늘 저녁은 우리집에서 먹는단다.

 집사람의 가게가 끝나고 St. Louis 에서 치킨윙과 립 등을 Takeout 해서 저녁을 차렸다. 6시쯤 제이미를 선두로 모두 들어온다. 작은 손녀딸 라이언은 역시 환한 웃음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반긴다. 제이미도 우리와 헤어짐을 아는지 며칠 전부터 나에게 훨씬 싹싹하게 대했다. 식사를 하며 와인 한잔씩 따라서 마지막 저녁을 역시 시끌벅적하게 보냈다. 이제 여기서 애들을 보기보다는 애들집에서 애를 보는 일이 훨씬 많겠지.

 오늘은 토요일이라 제이미는 학교를 가지 않고 나도 별일이 없으면 아이들과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갑자기 아무 일도 할 일이 없는 것 같다. 집사람도 가게를 나갔고 며칠 전부터 시작한 크리스마스 카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아폴로가 안 보인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뭐하나 찾아봤더니 소파에 푹 파묻혀서 자고 있다. 아이들과 즐겁게 놀던 일, 손에 있던 과자를 어른들 안 볼때 빼먹던 일 등을 회상하고 있나 보다. 애가 힘이 푹 빠진 것 같다.

주차장에 항상 차가 네 대나 있었는데, 아이들이 차 두 대를 가져가고 내 차는 아이들이 짐을 뺀 차고에 넣어두었으니 집안이나 밖이나 모든 게 널널하고 여유가 있다. 그리고 집안이 깨끗한데 뭔가 빠진 것 같고 허전한 것 같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더니…

 아이들과 같이 사니까 생활비도 꽤 나갔다. 집사람과 코스코에 장보러 가면 보통 오백불 전후를 사 오는데 며칠 지나면 또 먹을 것이 모자란다. 두 손녀딸도 워낙 식성이 좋고, 집사람이 음식을 잘하니까 딸과 사위도 더욱 잘 먹는다. 모두들 체중이 꽤 불었을 거다. 가끔은 딸내미가 장을 봐오는데 제 엄마 닮아 손이 큰지 바리바리 사 들고 와도 며칠이 지나면 또 필요한 것이 있고.

 Enbridge 에서 가스 고지서를 받으면 너희 집은 다른 집에 비해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친절하게 그래프까지 그려 보내준다. 사람이 많으니 전기도, 물도, 그리고 가스도 더 쓰는 건 당연하지.

 1년 반을 같이 살면서 서로간의 갈등이 전혀 없었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물론 우리도 갈등이 있었다. 그런데 주된 갈등은 그들과 우리와의 갈등이 아니고 그들간의 갈등 우리 안에 갈등이 많았다. 작년 연말 그들 부부가 크게 싸움을 할 때 나는 사위에게, 제이미가 시집갈 때쯤 해서,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사위야, 너도 제이미 남편 되는 사람이 제이미에게 소리지르고 하면 기분이 어떻겠니?”

며칠 후 잘 마무리 됐다. 우리 부부는 항상 그렇듯이 오랫동안 아무 문제없이 지나가면 탈 나는 집안이라 주기적으로 티격태격 할 때면 아이들이 눈치를 설설 본다. 그리곤 다음날 또 정상으로 돌아오고. 사위도 우리와 살면서 전혀 심심하지는 않았을 거다. 오늘은 왜, 어떻게 우리 장인 장모가 다툴까 기대했을지도 모르지.

 같이 살면서 가장 신경 쓴 것 중의 하나는 혹시 아폴로가 손녀들에게 어찌하지 않을까 특별히 신경을 썼다. 아무래도 아폴로는 맹견 종류의 하나이고, 아이들이 너무 어려 자기 방어능력이 떨어지니까 잠깐의 실수가 큰일로 번질 수도 있기에 어른 네 명이 항상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비상이 걸리면서 초기에는 특히 조심했다. 한 삼 개월은 아예 외출을 하지 않았으니까.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과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 코로나의 좋은 점도 있다. 어쨌거나 무사히 있다 가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일 끝나고 집에 온 집사람이 집안을 정리하다 TV 보고 있는 나에게 내려온다. “제이미가 보고 놀던 I PAD 를 보니 눈물이 나네” 나도 이 글을 쓰면서 몇 번 울컥했지만 그 사실은 감추고 “아 이사람 참 싱겁게” 하고 말았다.

 아기들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 여럿이 먹는 저녁상, 시끌벅적함, 여기저기 어질러진 장난감, 현관에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신발들, 이런 인간들의 냄새 나는 모습이 그립다. 내일은 딸네집에 다녀와야겠다. (2020.12.12)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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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3
마라도나의 죽음

 

축구계의 영웅 마라도나가 60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지구인 모두가 즐기는 축구에서는 펠레와 함께 최고의 공격수로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던 그도 노인의 문턱에 오르기도 전에 건강문제로 생애를 마감한 것이다.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도 결국은 나이가 들면서 건강문제를 안고 있었다.

 

 나도 이번 여름에 생일을 넘기고 보니 어쩔 수 없이 노인의 대열에 합류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여론조사를 할 때 10대면 10대, 20대면 20대끼리 묶다가 50부터는 넉넉하게 64까지 묶는다.

 

그러다가 65+ 라는 것이 나오는데 그것은 65 이상은 죽을 때까지 한꺼번에 뭉뚱그려 넣는다. 그러니까 65세 이상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인이라는 것이다.

 

노인들의 건강문제가 심각하다. 이제 내가 아는 사람들은 거의가 노인들이고 그러다 보니 주위에 아프지 않은 사람은 찾을 수가 없을 정도다. 경중의 차이가 좀 있을 뿐 모두 문제를 안고 있다. 암이나 희귀한 죽을병만 아니라면 그냥 병과 같이 동행하며 가는 것이다.

 

3월에 락다운이 시작되고는 거의 모든 식사를 집사람이 음식을 만들어서 먹었다. 딸네도 같이 사니 음식을 할 일이 무척 많았다. 그러다 집사람이 손녀를 안다가 왼쪽 팔목이 삐끗했단다.

 

음식을 하다가 큰 냄비를 들어야 하거나 물을 끓여야 하면 나보고 들어달라고 하면서 팔목에 붕대를 감았는데, 솔직히 ‘저사람 좀 오버하는 것 아니야, 조그만 아기 안았다고 저렇게 엄살 피다니’ 하고 생각했었다.

 

며칠 전 집사람이 부엌에서 불렀다. 꿀병을 열어야 한다. 왼손으로 병을 잡고 오른손으로 뚜껑을 돌리니 꿈쩍하지 않는다. 꿀병을 몸으로 감아 안고 돌리기 시작했다. 병만 미끄러질 뿐 꿈쩍도 않는다. 병에도 고무줄을 감고, 뚜껑에도 고무줄을 감고 용을 쓰기 시작했다. 힘을 몇 번이고 줬는데 꿈쩍도 하지 않자 집사람이 됐다고 다른 걸로 대체할 테니 그만 놔두라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 바로 바닥을 쓸려는데 왼쪽 손목이 시큰거리면서 힘을 쓸 수가 없다. 아니 어디서 넘어지거나 부딪히질 않았는데 왜 그러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꿀병을 돌릴 때 좀 무리를 했나 보다. 아니 넘어지거나 충격을 가해야 부러지거나 금이 갔었는데 용을 좀 썼다고 마치 금이 간 것 마냥 손목이 아프다.

 

무엇을 쥐거나 들어야 할 경우 손목에 부담이 간다면 시큰거려 손목을 쓸 수가 없다. 예전에 스키 타다 부러진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렇게 용 좀 썼다고 손목에 이상이 생기다니, 나도 별수없이 노인 축에 들어간 거다. 나이는 숫자가 말해준다. 올 스키시즌에 조심하라고, 네 뼈는 예전의 너의 뼈가 아니라고 나의 몸이 나에게 미리 알려주는 것 같다.

 

금요일 친구들과 Brampton 에 있는 Turnberry 골프장에 갔다. 첫 홀과 마지막 홀만 Par 4 이고 나머지는 모두 Par 3 인 골프장이다. 골프장의 전장은 짧지만 매 홀 물이 있는 곳이 많아 우스운 골프장이 아니었다.

 

첫 홀 티샷을 하는데 손목에 신경을 쓰다 보니 두 번의 쪼루를 냈고, 다음부터는 왼손은 힘을 빼고 오른손으로 쳤는데, 버디 두 개에 점수도 상당히 좋았다. 엄살 부렸다고 생각한 집사람에게 상당히 미안한데, 속으로 그랬으니 혼자 속으로 사과했다. ‘여보 미안해’

 

며칠 전부터 양쪽 어금니가 아파 밥을 잘 못 먹겠다. 풍치인가 보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건강 문제에 더욱 신경을 쓸 일이다.

 

 “마나도나, 부디 하나님 품안에서 편히 쉬세요. 당신의 플레이 환상적이었습니다” (2020.12.1)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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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5
어머니와 김장 그리고 주말농장

 

 11월 1일 눈이 함박 내렸다. 그리고 우리는 김장을 마쳤다. 부엌에 쭉 늘어서있는 김장통들을 보니 뿌듯하다. 갓김치 한통, 석박지 한통, 열무김치 한통, 배추 포기김치 두통 그리고 막김치 반통. 그리고 삶아서 얼려놓은 우거지나 무청 등은 겨우내 된장과 함께 우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15년 전, 어머니의 암수술이 끝나고 어머니의 삶도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당신의 아파트로 집사람과 여동생을 부르셨다. 아파트에는 전날 내가 사다 놓은 배추와 무 등 김장을 할 재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며느리와 막내딸의 도움을 받아가시며 당신의 마지막 김장을 마치셨다. 그때까지는 홀로 김장을 하셔서 아들네와 딸네 집에 대셨는데, 마지막으로 김장하는 방법을 며느리와 딸에게 전수하신 것이다.

 

그래도 주로 김치를 사다 먹긴 했지만 가끔가다 집사람이 김치를 담그면 사온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손맛이 있는지 음식을 하면 무척 맛있다. 집안에 손님이라도 올 때면 식당음식보다는 자신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려 사흘에 걸쳐 김장을 한 것이다.

 

 지난주 아는 목사님 사모님께 문자를 받았다. 베더스트/제퍼슨 농장으로 오면 산마늘 김치와 함께 배추를 좀 주시겠단다. 집사람께 이야기했더니 열무김치도 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목요일 농장에 들렸다.

 

베더스트를 운전하다 보니 여러 가지 작물이 자라고 있는 농장이 한눈에 보인다. 차가 여러 대 서있는 주차장에 세우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누가 나를 부른다. 보니 집사람 친구인 송여사님. 킹스라이딩에서 골프치고 (9번홀 이글에 77을 쳤다고…세상에 가정주부가 그렇게 골프를 잘 치다니) 가는 길에 채소를 사러 왔단다.

 

몇 에이커의 땅을 여러 사람이 경작하니까 다양한 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창고도 여러 개 있고, 텐트도 여기저기 쳐있다. 창고에는 각자의 농기구들을 보관하는 것이고, 텐트에서는 일을 하다 식사를 하거나 쉬거나 한다. 또한 큰 물통들이 있는데, 무엇을 씻거나 마시거나 하는 물인 것 같았다.

 

 목사님네가 산마늘 김치와 배추 큰 백(공사용)으로 두 개, 고추 그리고 대파를 주시고, 다른 분들에게 돌산갓 한 백(가베지백), 총각무 두 백, 그리고 커다란 무 두 백을 구입하니 차의 트렁크가 꽉 찼다.

 

 농장을 둘러보니 많은 분들이 각자의 자기 밭에서 흙을 나르기도 하고 땅에 덮어주기도 하고 뭔가를 심기도하고, 열심히들 일하고 있었다. 목사님은 올해 은퇴하시고 소일거리로 일을 하시는데, 건강에도 좋고 무척 보람이 있으시단다. 한 분은 암수술을 받고 건강이 안 좋았는데, 거기서 일을 하면서 몸이 건강해졌다고 하신다.

 

 집에 와서 채소를 내려놓으니 어찌나 많은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 베란다에 늘어서 있는 일곱 백의 채소들. 며칠 전에 세차한 차는 엉망이 됐고, 집사람이 퇴근하고 와서, 나는 채소를 씻고 심부름하고 설거지 하는 것으로 보탬이 되고, 무려 3일간 열심히 일한 끝에 다섯 통 반의 김치가 완성된 것이다.

 

 김장이 다 끝나고 설거지를 하면서 밖을 보니 눈이 수북이 내렸다. 김장을 한 분위기가 최고조로 오른 것이다. 추운 겨울의 시작 그러나 나는 준비완료, ‘겨울이여 올 테면 오라’ 두렵지 않다.

 

 우리 딸과 아들도 집사람의 김치를 먹으며 추억을 쌓겠지. 울 어머니 저 위에서 흐뭇하게 웃으실 것 같다. “어머니 이것 한번 잡숴보세요”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www.youtube.com/watch?v=vMS16uIqi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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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7
2020년 추수감사절

 

 팬데믹이 이 세상을 덮쳤음에도 세월은 유유히 흘러간다. 모든 것이 갇히고 제약이 있음에도 지난주에는 추석이, 어제는 추수감사절이 찾아왔다. 우리에게는 추석이 그냥 볼거리일 뿐 피부에 와 닫는 것은 추수감사절이다. KBS에서 방영된 가황 나훈아의 비대면 공연이 오랜만에 멋진 볼거리를 보여주었다. 영혼이 자유로운 예술인, 할말을 할 줄 아는 호인 나훈아는 항상 봐도 멋지다.

 

 새해를 맞이하고 한 해를 살다 보면 잘될 때도 있고 잘 안될 때도 있다. 우리가 사는 방식에 따라 그리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부모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 편하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의 우리 때에 건너온 이민자들은 바닥부터 열심히 다져야 했다.

 

크게 부를 일군 사람들도 있고, 그저 집 한 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아직도 열심히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저…로 시작하는 부류에 끼어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 나이가 이제 인생의 추수감사절 시기가 아닌가 한다.

 

 우선 이때가 되면 온타리오의 단풍들이 화려함을 뽐내는데 아직은 시기가 아닌지, 군데군데 “와” 하고 탄성이 나오는 곳이 가끔 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는 한 주정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작년에는 아가와 캐년으로 2박3일 단풍구경 잘했는데 올해는 차 타고 다니며 마주치는 광경이나 감상해야 할 것 같다.

 

 지난 금요일 친구가 경영하는 초보농장에 다녀왔다. 옥수수밭도 보고 흑염소들도 만나보고 그리고 간 김에 도살장에서 운영하는 정육점에 들려서 T-Bone steak 도 몇 개 샀고, 호박농장에 가서 호박도 몇 개 사왔다. 세상에, 스쿼시라고 불리는 호박 하나를 $1에 팔고 있으니 호박 한 트럭을 사봐야 골프 퍼더 하나 값 밖에 안 된다.

 

 그 넓은 농장에 이것저것 심고, 가꾸고 수확해봐야 공장에서 찍어내는 전자제품에 비하면 그 값어치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 온종일을 일을 하고 수확한 옥수수를 하나에 $1정도로, 호박 하나를 $1에 판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화 하나에 $1000 이라는 가격이 얼마나 실감이 나는가.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이야 단시간에 찍어낼 수 있지만(물론 그 물건을 개발하기까지 그 노력은 감안해야 한다) 농작물은 심고 가꾸고 거두기까지 오랜 기간이 지나야 하고 또한 농부의 정성에 날씨까지 받쳐줘야 하니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탈바꿈한 대한민국은 얼마나 탁월한 선택인가.

 

 어제는 사위와 딸이 오후부터 부엌에서 뭔가를 한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더니 사부인도 오시고 큰 처형도 오셨다. 손녀딸과 놀다가 부르기에 올라갔다. 저녁상이 잘 차려져 있었다. 와인까지 곁들이며 먹는데, 올해 한번도 보지 못한 아들이 걸린다. 팬데믹 때문에 여름 휴가 때도 오지 못했는데, 올 연말에는 볼 수 있을는지, 이놈의 코로나는 언제나 수그려들 건지 여러 가지로 걱정이다.

 

아무래도 때가 때인지라 저녁식사 시간도 예전처럼 웃고 즐기는 분위기가 아니고 그저 이 저녁을 맞이한 것 자체가 고맙고 감사했을 뿐이다. 모든 사업체가 어렵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할 젊은 세대가 불확실성의 세상에서 무척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폭탄 터지고 피 튀기는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것이 아니고 농부들의 헌신 덕에 먹을 것이 풍부한 나라에 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올 크리스마스 때는 더 많은 식구들을 보고 싶다. (2020.10.13)

 

(PS. 사실 이번 주에는 글을 안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새벽부터 자꾸 머릿속에 이번 주에 글을 써야 한다고 깨우는 뭔가 있었습니다. 잠을 푹 자려고 했더니 잠까지 방해하네요. 그래서 가볍게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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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9
1번으로 올라서다

 

 팬데믹이 시작된 지 반년이 넘어섰다. 우리의 행동을 제한하고 영업을 제한하고 많은 고통 끝에 바이러스가 조금 진정되나 싶더니, 아이들의 등교가 시작되고 많은 영업들이 재개되면서 다시 바이러스가 창궐하나 보다. 확진자 수가 확 늘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두렵고, 어디에 가는 것도 두렵다. 이러다 소매업들의 경기가 죽을까 걱정이다.

 

 며칠 전 골프 치다 오래 전에 써먹던 조크가 생각났다. 아버지 칠순 선물로 아들이 골프채를 선사했단다. 다음날 평생 처음으로 골프를 다녀온 아버지에게 아들이 어떠셨냐고 물었단다. 물론 좋은 대답을 기대했겠지. 아버지가 아들 귀싸대기를 날리며 하신 말씀 “이놈아, 이 좋은걸 이제야 가르쳐주냐”

 

그런데 이 조크를 처음 대했을 때는 내가 아들의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아버지의 입장으로 바뀌었다. 내 주위의 형님들이 칠순이 되었고, 나도 이제 육십 중반에 들어섰으니, 그 세월이 많이 흘렀다.

 

 생각해보라. 예수님의 태어나신 시점을 기준으로 BC, AC로 바뀐다.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 시절이 아주 까마득한 옛날 일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이 AC 2020년, 내가 살아온 세월이 65년. 2020년의 세월 중에 내가 살아온 세월이 무려 전체의 3% 넘는 세월이다. 앞으로 얼마를 더 살지 모르지만 4%도 가능하고 그 보다 더한 세월도 가능할 수 있다.

 

 세월이 가면서 늙는 것은 억울하지만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고, 그저 허락되는 한 일 하고, 골프도 치고, 유튜브도 만들며, 이런저런 소소한 것들을 즐기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큰 부자나 권력자로 태어나지 못해 호사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살아왔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갈 곳도 없다 보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작년 5월에 시작된 딸네 집의 공사가 끝나지 않아 아직도 두 손녀가 우리와 같이 살고 있다. 큰 손녀는 3살이 넘어 이젠 조잘조잘 말을 하고 있고, 작은 손녀는 이제 무언가 잡고 일어나 걷는 연습을 하고 있으며 제 딴에는 자꾸 뭔가 말을 한다고 하는데 아직 단어가 다듬어지지 않았고, 손가락으로 자기가 만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지적한다.

 

 우리 집에 다섯 명의 사람과 아폴로가 있으니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1번부터 6번까지 번호가 매겨질 수 있겠다. 어른들은 그렇다 치고 큰 손녀는 확고하다. 제 엄마는 부동의 1번, 그리고 공동 2, 3번으로 아빠와 할머니…그러면 나와 아폴로는 5, 6번으로 밀릴 수 밖에 없다. 할아버지 I am going to playground with mommy and daddy and 할머니. You and Apollo stay home….큰 손녀가 하는 말이다. 내게 무엇을 사달라고 하거나 부탁을 할 때는 좀 바뀌기는 하지만 그래 봐야 4번이지.

 

 지난주 딸네가 어디를 간다고 손녀들을 사부인께 맡기려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빠에게 안겨진 손녀에게 팔을 뻗었더니 나에게 안겨온단다. 내가 안고 있는데 아빠가 오라고 팔을 뻗자 고개를 확 돌리며 안 간단다. 그러자 부엌에 있던 집사람이 장난 삼아 오라고 팔을 뻗치자 안 간다고 도리질을 친다. 그때의 행복감이란! 드디어 상위권인 2위에 올라선 거다.

 


 그때 가져갈 물건을 차에 놓으러 밖에 있던 딸이 들어왔다. 사위가 다시 팔을 뻗자 손녀가 고개를 확 돌리며 안 간다고 한다. 그 광경을 본 딸이 다가와 팔을 뻗었다. 그러면 손녀가 순순히 엄마의 품에 안기고 할아버지를 2번에 남겨도 행복했을 텐데, 아이가 웃으며 엄마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모든 식구들이 세 방향에서 팔을 뻗었다. 그때 손녀가 도리질을 치며 나의 품에 꼭 안기며 얼굴을 내 어깨에 파묻는다. 드디어 생애 첫 대망의 1번이 된 것이다. 작은 손녀딸은 평소에도 특히 나를 좋아한다. 나를 보면 활짝 웃고 뭐라뭐라 못 알아들을 말로 인사를 한다.

 

 세상 천지에 구박받고 천대받는 할아버지들이 많은데 나를 행복하게 해준 작은 손녀딸이 너무 고맙다. 큰 손녀딸도 예쁘기는 하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작은 손녀딸이 더 예쁜 건 나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가 없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어수선해도 가족이 있고 손녀딸들이 있어 이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어서 고맙다. 코로나가 물러나는 그날까지 재미있게 즐겁게 살아야겠다. RYAN, What do you want for Christmas? (20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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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3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3월 중순 팬데믹이 시작되고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었다. 4월과 5월은 이민 와서 처음으로 가족들과만 지내며 푹 쉬는 것으로 소일했다.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컴퓨터로 부동산 시장 동향을 살펴보기는 했지만,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었다.

 

그러다 6월부터 시장이 서서히 달궈지기 시작하더니 7월이 되니 팬데믹 전에 일어나던 현상들이 시작되었다. 낮게 리스팅하고 높게 파는 일들이 벌어졌다. 나오는 것마다 팔리기 시작했다.

 

어떤 분은 묻는다, 어디가 좋아요? 어디가 좋다 나쁘다는 여러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가격이 많이 오르는 곳이 좋은지, 살기 편한 곳이 좋은 건지 아니면 고급동네가 좋다는 건지. 어디가 좋고 나쁜 것은 자신의 형편에 맞춰서 따져봐야 한다.

 

내가 살수 있는 여력 내에서 따져봐야 하고, 나의 직장이나 자녀들의 가야 하는 학교에 근접해야 하고, 또한 내가 생활하는데 편해야 하고. 가격은 고급동네라고 해서 오르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요즈음은 토론토의 렌트시장이 너무 가격이 오르다 보니까 첫 집을 구입하려는 분들이 무척 많다. 그래서 콘도나 타운하우스 등 저가 물건들의 물량이 모자를 정도로 오퍼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왜 그럴까?

 

사실 팬데믹이 시작되고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수입이 없으면 집을 살수 있는 사람들의 여력이 없어지니 집값이 내려가는 것이 맞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는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좋아졌다. 집값이 내려가야 하는 요인이 많이 줄어든 거다.

 

정부에서 수입이 없어진 개인과 사업체에 보조를 해주기 위해서는 돈을 찍어내는 수밖에 없다. 즉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인플레가 도래한다. 요즈음 식품을 사러 가보면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알 수가 있다. 집값이 분명히 오르는 요인이 된다. 거기다 사상 최저의 몰게지 이자율이 더 부추긴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미국이나 유럽은 큰 고통을 치렀거나 치르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캐나다는 안정적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캐나다에 들어오고자 할 것이며, 들어오는 이민자의 60% 이상이 GTA로 온다. 거기다 다른 주로 이민을 했던 사람들도 결국은 GTA로 오게 되어 있다. 이것 또한 집값이 오르는 큰 요인이 된다.

 

홍콩의 자본이 중국과의 합병을 피해서 조금씩 밖으로 나오고 있다. 홍콩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가 캐나다이다. 홍콩의 부동산 값은 토론토에 비해 월등히 높으니 그들의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부동산값이 내려야 할 요인은 하나인데 그나마 위력을 잃어가고 있고 올라야 할 요인은 많다. 토론토의 월세가 비싼 것도 작은집들이 잘 팔리는 요인이다.

 

어떤 이들은 첫 집을 사는데, 꼭 원하는 집을 사려고 다니다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금액 내에서 가장 좋은 집을 찾기 위해 많은 집을 보다가 결국은 못사는 경우가 많다. 그 후에는 더 작은집을 봐야 하는데 어디 사람 마음이 그런가. ‘그때 살걸’ 하는 후회만 하게 된다.

 

자본이 부족하다면 웬만하면 집을 사고, 그 집값이 오르면 내 자본이 늘어나게 되니까 그때 집을 팔고 원하는 집으로 옮기면 된다. 즉 $10만 다운해서 $50만짜리 집을 사서 몇 년 살다가 $70만에 판다면 내 자본은 $10만에서 $30만으로 늘게 된다. 그때는 다운페이가 $30만이 되니 내가 살수 있는 여력이 훨씬 넓어지게 된다.

 

첫 술에 배부르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고 그 첫 술마저 못 뜰 수가 있다. 그렇다고 절대로 아무거나 사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웬만하면 꼭 맘에 들지 않더라도 사는 것이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값이 오를 때는 빨리 사는 것이 유리하고 값이 내려갈 때는 빨리 파는 것이 유리하다. 뒷북만 치다가, 정작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눈높이를 더욱 낮춰야 한다. (20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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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6
다시 다짐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내 차를 도난 당한 날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었고, 극도의 경계 속에 살게 되었다. 밖에 나가지도 않고, 누가 찾아오지도 않고.

 

외부사람들과의 대화는 화상통화를 이용해 그나마 숨통을 틀 수 있었다. 그것이 오래가니까 우선 너무 불편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어찌 동떨어져 살수 있으랴. 그리고 정부에서 야외활동과 몇 가지 사업체의 제약을 풀어주면서 대인간의 약간의 접촉이 허용된 거다.

 

 골프장에 가게 되면 몇 달간 또는 몇 년간 못 보던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이는 보통은 주먹이나 팔꿈치를 내밀며 범프를 한다. 그런데 가끔은 악수를 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다. 얼떨결에 손을 내밀며 악수를 하기도 한다. 포옹을 가볍게 할 때도 있고. 물론 여태껏 아무 일이 없었다. 대개 골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바이러스를 가진 채 아무 증상 없이 건강한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 바이러스 없이 건강한 사람도 오늘 지나온 경로 중에 누굴 만났으며 무엇을 만졌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물론 그들이 봤을 때는 내가 그 대상이 되는 거다. 사람들과 접촉한 횟수만큼 바이러스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보면 된다.

 

 지금이야 상점을 들어가거나 할 때는 무조건 마스크를 쓰지만 한달 전만해도 마스크를 잘 쓰지 않았다. 앞뒤 사람과의 거리만 잘 지키려고 노력했다. 상점이나 은행에 가서 무엇을 요구해야 할 때 메모지에 써서 보여주며 되도록이면 말을 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루는 캐네디언 타이어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려는데 그날이 토요일이라 줄이 꽤 길게 섰다. 앞사람과는 2미터 정도 떨어져 서있는데 내 뒤쪽에 한 여자가 내 뒤에 바짝 붙어있었다 마스크를 한상태로.

 

나는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몇 번 뒤돌아 서서 그 여자를 쳐다보며 눈치를 줬는데도 아랑곳 않고 내가 한 발자국 나서면 그 여자도 한 발자국 다가왔다. 계속 내 뒤에 바짝 붙어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Please~” 하며 좀 떨어지라고 손바닥을 세워 보여줬더니 하는 이야기가 왜 마스크를 하지 않았느냐고 따진다.  

 

나는 말을 하고 싶지 않고 네가 제발 내 뒤에 바짝 붙지만 말아달라고 했다. 그러고 나니 앞뒤에 서서 서먹서먹해졌다. 사람들 많은 데서 뭔 망신이람.

 

 몇 주 동안 친구들 모임을 가지면서 골프모임을 몇 번 가졌다. 골프를 치다 보면 한 사람이 먹을걸 가져와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남의 골프채를 집어주기도 하고, 가까이 서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심지어는 재미로 동전을 몇 개씩 내놓고 하나씩 빼먹는 게임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모든 것을 다 금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서로의 접촉을 줄이는 것이 이 팬데믹 시대를 지나가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최소한 동전 내기라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큰일을 당한 사람들이 큰일 때문에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바퀴에 작은 못이 박혀 큰 차가 사고를 당하고, 작은 돌멩이 하나 잘못 밟아 달리기하던 건강한 청년이 넘어져 크게 다친다. `새 한 마리가 비행기 프로펠러에 부딪혀 비행기가 추락하기도 한다.

 

 이 팬데믹 시기를 잘 이겨내야 그 후에 올 더 좋은 세상을 우리가 접할 수 있다. 골이 깊으면 뫼가 더 크다 하니까. 무조건 이 시기에 살아남는 것이 골프에서 홀인원하는 것이요, 섰다에서 장땡을 잡는 것이다. 너무 야박하지는 말아야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긴장을 풀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 모두 바이러스가 물러갈 때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합시다.

 (20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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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1
꿈의 실현-항공기 조종사

 

 1977년 1월에 이민을 온 후 고등학교를 며칠 다녔다. 하루는 교무주임이 나를 부르더니 칼리지에 가서 공부를 하란다. 그래서 세네카칼리지 영어학교를 몇 개월 다니다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그 해 9월에 세네카 Finch 캠퍼스에 등록을 했다.

 

그때 본 그 캠퍼스는 어디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상당히 컸기에 나는 약간 주눅이 들기도 했다. 드디어 선진국에서 교육을 받게 되는구나, 끝나면 좋은 직장이 날 기다리고 있겠지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선택한 과는 Aviation, 한국말로 항공항과. 스물 갓 넘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청년의 눈에 그 과가 멋있어 보였나 보다. 이민 오면서 처음 타 본 비행기가 그렇게 클 줄 몰랐고, 그렇게 안정되게 날아오르는 줄 몰랐다. 학과를 결정하는데 가장 먼저 나온 학과가 Aviation 이 아니었나 한다. 알파벳 순으로 나올 테니까. 그래서 일말의 의심도 없이 결정을 했겠지.

 

 학교에서 인터뷰하는 날 앞에 앉은 교수님(?)이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아무래도 너에게는 항공학과가 무리일거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모든 다른 과목은 공부를 하다가 한과목이 떨어지면 그 과목을 다시 선택하던지 또는 재시험을 보면 되지만 항공학과는 모든 과목 중에 하나만 떨어져도 전 과목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한단다. 아무래도 버벅거리는 말을 듣고는 이건 아니다 싶었나 보다. 그래서 과를 바꾸게 되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뜨거나 안착할 때 기장과 관제탑간에 긴밀하고 급박한 이야기들이 오고 갈 것이다. 수백 명이 타고 있는 비행기를 서툰 영어로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전달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불상사는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다. 내 지금 영어로도 안될 텐데, 그때 영어를 듣고 난 그 교수님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 상상만해도 웃긴다.

 

 두 달 전부터 유튜브를 시작했다. 그 동안 근 20편을 만들었으니 상당히 열심히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사람이 만든 유튜브를 보니 공중에서 찍는 영상이 나왔다. 우리가 날수가 없으니 카메라를 날리는 거겠지. 그러고 보니 내 친구 J 가 드론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것이 생각났다. 그에게 전화를 하니 이것저것 조언을 해준다. 그래서 작은 드론 하나를 구입했다.

 

 처음 구입해서 집 마당에서 날리려니 가까운 곳에 비행장(다운스뷰)이 있으니 제약이 있다고 주의가 나온다. 몇 번 연습하다, 처남 집 뒤에 넓은 공터가 있기에 거기서 날리려고 했더니 거기도 비행장이 가까이 있어(버튼빌) 제한구역이라고 주의가 나온다.

 

여기저기 다니며 몇 번을 날렸는데, 나에게서 조금만 멀어지면 보이지가 않고, 또 이것이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헷갈려 몇 번을 벽에 부딪히기도 했고, 나무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면 영락없이 추락이다. 한번은 우리 집 나무에 부딪혀 나무 가지에 걸렸는데 사다리 타고 올라가 긴 작대기로 내려야 했다.

 

 만약에 내가 지금 항공사라면 대형사고를 몇 번을 냈을 텐데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조그만 항공기가 나에게 좀 더 좋은 영상을 선사해 줄 것을 믿는다. 아직도 조종이 서툴러서 비행체가 서서히 돌면서 촬영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확 돌기도 하고 좌우가 헷갈려 엉뚱한 촬영을 하기도 한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라는 프로를 보면 주인공이 산길을 걷는 장면이 나온다. 한참 뒤쪽 위에서 찍거나, 앞쪽에서 찍는 장면을 보면서 처음에는 몇 명이 미리 가있거나 멀리 뒤따라 오면서 찍으려면 사람이 많이 필요할 텐데 하고 쓰잘데 없는 걱정을 했었다. 그게 이제 생각해 보면 드론을 사용해서 찍은 영상이다.

 

 정식 항공사는 못되었지만 드론을 날리고 있으니 꿈이 실현된 건가? (202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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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2
아폴로의 반찬투정

 

 가게에 나간 집사람이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아폴로 밥 먹었어요?” 부엌으로 올라가 아폴로 밥그릇을 보니 아침에 준 듯한 밥이 그대로 있다. 집사람이 집에 있는 나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는 말은 대개 두 가지 문장이다. ‘아폴로 똥 쌌어요?’ 아니면 ‘아폴로 밥 먹었어요?’ 그녀는 내가 일을 봤는지, 밥을 먹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아폴로의 그것이 중요하지.

 

 작년에 딸네가 들어와 살면서 아폴로는 찬밥 신세가 되었다. 갓난애기와 두 살짜리 애기가 있으니 혹시 아폴로가 애들을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심에 더욱 아폴로를 경계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폴로가 조금만 이상한 행동, 큰손녀가 뛰면 아폴로도 같이 옆에서 뛰던가 또는 점프를 하던가, 을 하면 딸과 사위가 더욱 아폴로를 다그치고, 아폴로는 억울한 듯 그 옆에 꿇어앉기도 하고 어떨 때는 울분을 표하는 건지 컹컹 짖기도 한다.

 

 어젯밤만해도 집사람이 손녀들을 안고 있고 내가 아기를 받으려고 다가가니까 아폴로가 으르렁대며 방어를 했다. 내가 아기를 받는데 점프하면서 아기를 살짝 물었나 보다. 아폴로는 정말 좋아하거나 좀 만만한 사람은 친근감의 표시로 살짝 무는걸 좋아한다. 자기의 원주인인 아들 앤드루와 사위 존을 살짝살짝 윗니로 물었다. 사위가 몇 번 혼내자 이제 사위는 물지 않는다.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고 아폴로는 내 옆에서 으르렁대길래 다시 아기를 아내에 돌려줬더니 집사람이 아기의 다리를 살펴봤다. 정강이 쪽에 이빨자국이 나 있다. 딸네에게는 쉬쉬하면서 지나가고 말았다. 지난주에는 아기 발을 밟고 점프하는 바람에 발등에 상처가 났었는데… 그것도 딸네에게는 비밀로 했다. 그들에게도 뻔히 보이는데도 혹시 물어보면 불편해할까 참는 거겠지.

 

 그래서 아폴로가 스트레스를 받는지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아폴로가 처음 왔을 때는 사료를 먹다가 얼마쯤 지났을 때 Frozen 된 여러 가지 생고기를 먹이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은 잘 먹더니 올 봄부터 생고기 중 몇 가지는 냄새를 맡아보고는 고개를 돌리며 먹지 않더니, 얼마 전부터는 아예 생고기는 거부해 입에 대지를 않았다. 집사람이 삶아서 익혀줬더니 그것도 며칠 먹다가는 또 거부를 했다.

 

 옆집 신사장님네 진도개가 먹는 사료를 사다가 먹이는데 중간치 쌀자루 만한 것 한 포대에 무려 $60 이나 한다. 그것도 한두 번 먹다가는 거부를 한다. 그러자 집사람이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삶아서 사료 사이사이에 넣어주면 할 수 없이 밥을 다 먹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통하지 않게 되었다.

 

 밥그릇을 힐끗 쳐다보고는 옆에 있는 물그릇의 물로 배를 채우고는 자기 자리에 가서 주저 앉는다. ‘반찬도 없는 밥을 어떻게 먹어. 자기들은 이것저것 여러 가지 먹으면서, 왜 나는 똑 같은걸 매일 먹으라는 거야’.

 

 아폴로가 올 10월 8일이면 여덟 살이 된다. 사람나이로 치면 50대 중반이 되는 거다. 아마 아폴로도 나이가 들어가니까 음식을 소화시키는 기능이 약해졌는지, 아니면 노후대책을 생각하니 밥맛이 떨어졌는지 모를 일이다. 나도 젊었을 때 무지무지 하게 먹었었는데 지금은 그때의 반에 반도 못 먹고, 조금만 먹어도 그리 배고픈 줄 모르겠다. 아마 아폴로도 그런지 모르겠다.

 

 아폴로, 부디 입맛을 찾아서 네 엄마 걱정하지 않게 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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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8
나의 글의 오류-박정희는 친일파다

 

 2017년 11월 16일자 부동산캐나다 칼럼 중에 나의 졸필 ‘우리의 4대 영웅’라는 글이 있다. 박정희 전대통령에 관한 글이었다. 글의 내용은 그가 친일파였었지만 대한민국을 가난에서 구출해낸 위인이므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고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과 함께 4대 영웅 중에 한 명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 대한 나의 잘못을 고치려 한다.

 

박정희는 1917년 경북 구미에서 빈농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 시절은 한일합방이 일어나고 조선의 모든 것이 일제치하에 있었다. 그는 나이 20살에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3년간 교직생활을 한 다음 1940년 만주군관학교를 들어갔다. 수석 수료 후 일본 육사로 전학 1944년 졸업, 관동군에 배치되었다가 해방을 맞는다.

 

 만약에 내가 태어났을 때 세상이 일제치하였다고 치자. 그리고 우리 집은 지지리도 못사는 빈농이라면 나는 무엇을 먼저 해야 했을까? 배를 움켜쥐고 내가 보지도 접하지도 못한 나라를 위해 독립만세를 외쳐야 하나? 아니면 지긋지긋한 가난에 벗어나기 위하여 공부하며 나의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할까.

 

 만약에 한국이 캐나다보다 훨씬 잘 살았다면 내가 지금 캐나다에 있을까? 아니면 한국에 있을까. 나는 나의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캐나다에 왔다. 정말 한국을 사랑해서 비록 배는 곪지만 애국심을 발휘하여 한국에 있을 일은 없다. 그리고 내가 캐나다에 와서 잘 살고 있는 것이 더욱 한국을 위한 길이다.

 

 박정희가 학비도 변변히 대주지 못할 형편의 가정에서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것만 봐도 그의 엄청난 노력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교직생활을 하면서 자기의 신분상승을 위해서는 뭔가의 전환점이 필요했고, 그래서 그는 군인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때 유럽에서는 세계 제2차대전이 한참 중이었고, 아시아에서는 중일전쟁이 일어나 군인들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어 식민지출신의 가난한 청년이 출세가도에 들어가려면 그 길 밖에 없었다.

 

일본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게 되니 창씨개명은 당연한 것이다. 일본군장교를 키우는 사관학교에서 독립군으로 싸울 사람을 키워주겠는가? 이름이 일본식이 아니면 받아주질 않겠다는데 박정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입학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캐나다에 사는 동포 중에 영어이름 가진 사람 많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한국을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살기가 편해서, 영어권에 왔으니 영어를 쓰는 것뿐이다. 만약에 캐나다정부에서 영어이름을 안 쓰면 영주권을 안 주겠다고 하면 모두 영어이름을 쓸 것이다.

 

 독립군군사학교 이야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시 미국과 맞짱 뜰만한 강대국 일본의 육군사관학교와 망한 나라의 독립군군사학교의 질은 사실 비교할 필요도 없다. 만약에 나보고 택일을 하라면 100% 일본육군사관학교를 택했을 것이다.

 

그가 일제치하에서 받은 교육과 지식은 대한민국을 발전시키는데 엄청난 공헌을 했다. 그가 관동군에 배치되고 곧 일본이 항복하는 바람에 그는 자기의 역랑을 일본을 위해 발휘한 것은 없다. 대한민국이 지금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것은 오로지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과 그의 애국심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친일파였다는 나의 말은 큰 오류가 있다. 그는 일본에서 배워서 한국을 발전시킨 대한민국 최고의 영웅이다. 일제시대에 창씨개명만을 했다는 이유로 그의 공을 깎아 내리거나 그를 모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박정희대통령은 대한민국을 5000년 동안 이어져 온 가난에서 구출해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그리고 작금의 고국 사태를 볼 때 그분의 강한 리더십과 애국심이 더욱 그리운 시절이다.

 

미친 개는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 “아폴로 미안해 미친XX을 미친 개로 표현해서, 이 말은 박 대통령님께서 도끼만행사태 이후 북괴를 보고 한 이야기야”  (20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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