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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기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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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6
다시 다짐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내 차를 도난 당한 날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었고, 극도의 경계 속에 살게 되었다. 밖에 나가지도 않고, 누가 찾아오지도 않고.

 

외부사람들과의 대화는 화상통화를 이용해 그나마 숨통을 틀 수 있었다. 그것이 오래가니까 우선 너무 불편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어찌 동떨어져 살수 있으랴. 그리고 정부에서 야외활동과 몇 가지 사업체의 제약을 풀어주면서 대인간의 약간의 접촉이 허용된 거다.

 

 골프장에 가게 되면 몇 달간 또는 몇 년간 못 보던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이는 보통은 주먹이나 팔꿈치를 내밀며 범프를 한다. 그런데 가끔은 악수를 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다. 얼떨결에 손을 내밀며 악수를 하기도 한다. 포옹을 가볍게 할 때도 있고. 물론 여태껏 아무 일이 없었다. 대개 골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바이러스를 가진 채 아무 증상 없이 건강한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 바이러스 없이 건강한 사람도 오늘 지나온 경로 중에 누굴 만났으며 무엇을 만졌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물론 그들이 봤을 때는 내가 그 대상이 되는 거다. 사람들과 접촉한 횟수만큼 바이러스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보면 된다.

 

 지금이야 상점을 들어가거나 할 때는 무조건 마스크를 쓰지만 한달 전만해도 마스크를 잘 쓰지 않았다. 앞뒤 사람과의 거리만 잘 지키려고 노력했다. 상점이나 은행에 가서 무엇을 요구해야 할 때 메모지에 써서 보여주며 되도록이면 말을 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루는 캐네디언 타이어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려는데 그날이 토요일이라 줄이 꽤 길게 섰다. 앞사람과는 2미터 정도 떨어져 서있는데 내 뒤쪽에 한 여자가 내 뒤에 바짝 붙어있었다 마스크를 한상태로.

 

나는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몇 번 뒤돌아 서서 그 여자를 쳐다보며 눈치를 줬는데도 아랑곳 않고 내가 한 발자국 나서면 그 여자도 한 발자국 다가왔다. 계속 내 뒤에 바짝 붙어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Please~” 하며 좀 떨어지라고 손바닥을 세워 보여줬더니 하는 이야기가 왜 마스크를 하지 않았느냐고 따진다.  

 

나는 말을 하고 싶지 않고 네가 제발 내 뒤에 바짝 붙지만 말아달라고 했다. 그러고 나니 앞뒤에 서서 서먹서먹해졌다. 사람들 많은 데서 뭔 망신이람.

 

 몇 주 동안 친구들 모임을 가지면서 골프모임을 몇 번 가졌다. 골프를 치다 보면 한 사람이 먹을걸 가져와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남의 골프채를 집어주기도 하고, 가까이 서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심지어는 재미로 동전을 몇 개씩 내놓고 하나씩 빼먹는 게임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모든 것을 다 금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서로의 접촉을 줄이는 것이 이 팬데믹 시대를 지나가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최소한 동전 내기라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큰일을 당한 사람들이 큰일 때문에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바퀴에 작은 못이 박혀 큰 차가 사고를 당하고, 작은 돌멩이 하나 잘못 밟아 달리기하던 건강한 청년이 넘어져 크게 다친다. `새 한 마리가 비행기 프로펠러에 부딪혀 비행기가 추락하기도 한다.

 

 이 팬데믹 시기를 잘 이겨내야 그 후에 올 더 좋은 세상을 우리가 접할 수 있다. 골이 깊으면 뫼가 더 크다 하니까. 무조건 이 시기에 살아남는 것이 골프에서 홀인원하는 것이요, 섰다에서 장땡을 잡는 것이다. 너무 야박하지는 말아야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긴장을 풀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 모두 바이러스가 물러갈 때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합시다.

 (2020.7.15)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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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1
꿈의 실현-항공기 조종사

 

 1977년 1월에 이민을 온 후 고등학교를 며칠 다녔다. 하루는 교무주임이 나를 부르더니 칼리지에 가서 공부를 하란다. 그래서 세네카칼리지 영어학교를 몇 개월 다니다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그 해 9월에 세네카 Finch 캠퍼스에 등록을 했다.

 

그때 본 그 캠퍼스는 어디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상당히 컸기에 나는 약간 주눅이 들기도 했다. 드디어 선진국에서 교육을 받게 되는구나, 끝나면 좋은 직장이 날 기다리고 있겠지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선택한 과는 Aviation, 한국말로 항공항과. 스물 갓 넘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청년의 눈에 그 과가 멋있어 보였나 보다. 이민 오면서 처음 타 본 비행기가 그렇게 클 줄 몰랐고, 그렇게 안정되게 날아오르는 줄 몰랐다. 학과를 결정하는데 가장 먼저 나온 학과가 Aviation 이 아니었나 한다. 알파벳 순으로 나올 테니까. 그래서 일말의 의심도 없이 결정을 했겠지.

 

 학교에서 인터뷰하는 날 앞에 앉은 교수님(?)이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아무래도 너에게는 항공학과가 무리일거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모든 다른 과목은 공부를 하다가 한과목이 떨어지면 그 과목을 다시 선택하던지 또는 재시험을 보면 되지만 항공학과는 모든 과목 중에 하나만 떨어져도 전 과목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한단다. 아무래도 버벅거리는 말을 듣고는 이건 아니다 싶었나 보다. 그래서 과를 바꾸게 되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뜨거나 안착할 때 기장과 관제탑간에 긴밀하고 급박한 이야기들이 오고 갈 것이다. 수백 명이 타고 있는 비행기를 서툰 영어로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전달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불상사는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다. 내 지금 영어로도 안될 텐데, 그때 영어를 듣고 난 그 교수님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 상상만해도 웃긴다.

 

 두 달 전부터 유튜브를 시작했다. 그 동안 근 20편을 만들었으니 상당히 열심히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사람이 만든 유튜브를 보니 공중에서 찍는 영상이 나왔다. 우리가 날수가 없으니 카메라를 날리는 거겠지. 그러고 보니 내 친구 J 가 드론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것이 생각났다. 그에게 전화를 하니 이것저것 조언을 해준다. 그래서 작은 드론 하나를 구입했다.

 

 처음 구입해서 집 마당에서 날리려니 가까운 곳에 비행장(다운스뷰)이 있으니 제약이 있다고 주의가 나온다. 몇 번 연습하다, 처남 집 뒤에 넓은 공터가 있기에 거기서 날리려고 했더니 거기도 비행장이 가까이 있어(버튼빌) 제한구역이라고 주의가 나온다.

 

여기저기 다니며 몇 번을 날렸는데, 나에게서 조금만 멀어지면 보이지가 않고, 또 이것이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헷갈려 몇 번을 벽에 부딪히기도 했고, 나무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면 영락없이 추락이다. 한번은 우리 집 나무에 부딪혀 나무 가지에 걸렸는데 사다리 타고 올라가 긴 작대기로 내려야 했다.

 

 만약에 내가 지금 항공사라면 대형사고를 몇 번을 냈을 텐데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조그만 항공기가 나에게 좀 더 좋은 영상을 선사해 줄 것을 믿는다. 아직도 조종이 서툴러서 비행체가 서서히 돌면서 촬영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확 돌기도 하고 좌우가 헷갈려 엉뚱한 촬영을 하기도 한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라는 프로를 보면 주인공이 산길을 걷는 장면이 나온다. 한참 뒤쪽 위에서 찍거나, 앞쪽에서 찍는 장면을 보면서 처음에는 몇 명이 미리 가있거나 멀리 뒤따라 오면서 찍으려면 사람이 많이 필요할 텐데 하고 쓰잘데 없는 걱정을 했었다. 그게 이제 생각해 보면 드론을 사용해서 찍은 영상이다.

 

 정식 항공사는 못되었지만 드론을 날리고 있으니 꿈이 실현된 건가? (2020.7.7)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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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2
아폴로의 반찬투정

 

 가게에 나간 집사람이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아폴로 밥 먹었어요?” 부엌으로 올라가 아폴로 밥그릇을 보니 아침에 준 듯한 밥이 그대로 있다. 집사람이 집에 있는 나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는 말은 대개 두 가지 문장이다. ‘아폴로 똥 쌌어요?’ 아니면 ‘아폴로 밥 먹었어요?’ 그녀는 내가 일을 봤는지, 밥을 먹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아폴로의 그것이 중요하지.

 

 작년에 딸네가 들어와 살면서 아폴로는 찬밥 신세가 되었다. 갓난애기와 두 살짜리 애기가 있으니 혹시 아폴로가 애들을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심에 더욱 아폴로를 경계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폴로가 조금만 이상한 행동, 큰손녀가 뛰면 아폴로도 같이 옆에서 뛰던가 또는 점프를 하던가, 을 하면 딸과 사위가 더욱 아폴로를 다그치고, 아폴로는 억울한 듯 그 옆에 꿇어앉기도 하고 어떨 때는 울분을 표하는 건지 컹컹 짖기도 한다.

 

 어젯밤만해도 집사람이 손녀들을 안고 있고 내가 아기를 받으려고 다가가니까 아폴로가 으르렁대며 방어를 했다. 내가 아기를 받는데 점프하면서 아기를 살짝 물었나 보다. 아폴로는 정말 좋아하거나 좀 만만한 사람은 친근감의 표시로 살짝 무는걸 좋아한다. 자기의 원주인인 아들 앤드루와 사위 존을 살짝살짝 윗니로 물었다. 사위가 몇 번 혼내자 이제 사위는 물지 않는다.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고 아폴로는 내 옆에서 으르렁대길래 다시 아기를 아내에 돌려줬더니 집사람이 아기의 다리를 살펴봤다. 정강이 쪽에 이빨자국이 나 있다. 딸네에게는 쉬쉬하면서 지나가고 말았다. 지난주에는 아기 발을 밟고 점프하는 바람에 발등에 상처가 났었는데… 그것도 딸네에게는 비밀로 했다. 그들에게도 뻔히 보이는데도 혹시 물어보면 불편해할까 참는 거겠지.

 

 그래서 아폴로가 스트레스를 받는지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아폴로가 처음 왔을 때는 사료를 먹다가 얼마쯤 지났을 때 Frozen 된 여러 가지 생고기를 먹이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은 잘 먹더니 올 봄부터 생고기 중 몇 가지는 냄새를 맡아보고는 고개를 돌리며 먹지 않더니, 얼마 전부터는 아예 생고기는 거부해 입에 대지를 않았다. 집사람이 삶아서 익혀줬더니 그것도 며칠 먹다가는 또 거부를 했다.

 

 옆집 신사장님네 진도개가 먹는 사료를 사다가 먹이는데 중간치 쌀자루 만한 것 한 포대에 무려 $60 이나 한다. 그것도 한두 번 먹다가는 거부를 한다. 그러자 집사람이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삶아서 사료 사이사이에 넣어주면 할 수 없이 밥을 다 먹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통하지 않게 되었다.

 

 밥그릇을 힐끗 쳐다보고는 옆에 있는 물그릇의 물로 배를 채우고는 자기 자리에 가서 주저 앉는다. ‘반찬도 없는 밥을 어떻게 먹어. 자기들은 이것저것 여러 가지 먹으면서, 왜 나는 똑 같은걸 매일 먹으라는 거야’.

 

 아폴로가 올 10월 8일이면 여덟 살이 된다. 사람나이로 치면 50대 중반이 되는 거다. 아마 아폴로도 나이가 들어가니까 음식을 소화시키는 기능이 약해졌는지, 아니면 노후대책을 생각하니 밥맛이 떨어졌는지 모를 일이다. 나도 젊었을 때 무지무지 하게 먹었었는데 지금은 그때의 반에 반도 못 먹고, 조금만 먹어도 그리 배고픈 줄 모르겠다. 아마 아폴로도 그런지 모르겠다.

 

 아폴로, 부디 입맛을 찾아서 네 엄마 걱정하지 않게 해주렴.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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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8
나의 글의 오류-박정희는 친일파다

 

 2017년 11월 16일자 부동산캐나다 칼럼 중에 나의 졸필 ‘우리의 4대 영웅’라는 글이 있다. 박정희 전대통령에 관한 글이었다. 글의 내용은 그가 친일파였었지만 대한민국을 가난에서 구출해낸 위인이므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고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과 함께 4대 영웅 중에 한 명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 대한 나의 잘못을 고치려 한다.

 

박정희는 1917년 경북 구미에서 빈농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 시절은 한일합방이 일어나고 조선의 모든 것이 일제치하에 있었다. 그는 나이 20살에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3년간 교직생활을 한 다음 1940년 만주군관학교를 들어갔다. 수석 수료 후 일본 육사로 전학 1944년 졸업, 관동군에 배치되었다가 해방을 맞는다.

 

 만약에 내가 태어났을 때 세상이 일제치하였다고 치자. 그리고 우리 집은 지지리도 못사는 빈농이라면 나는 무엇을 먼저 해야 했을까? 배를 움켜쥐고 내가 보지도 접하지도 못한 나라를 위해 독립만세를 외쳐야 하나? 아니면 지긋지긋한 가난에 벗어나기 위하여 공부하며 나의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할까.

 

 만약에 한국이 캐나다보다 훨씬 잘 살았다면 내가 지금 캐나다에 있을까? 아니면 한국에 있을까. 나는 나의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캐나다에 왔다. 정말 한국을 사랑해서 비록 배는 곪지만 애국심을 발휘하여 한국에 있을 일은 없다. 그리고 내가 캐나다에 와서 잘 살고 있는 것이 더욱 한국을 위한 길이다.

 

 박정희가 학비도 변변히 대주지 못할 형편의 가정에서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것만 봐도 그의 엄청난 노력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교직생활을 하면서 자기의 신분상승을 위해서는 뭔가의 전환점이 필요했고, 그래서 그는 군인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때 유럽에서는 세계 제2차대전이 한참 중이었고, 아시아에서는 중일전쟁이 일어나 군인들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어 식민지출신의 가난한 청년이 출세가도에 들어가려면 그 길 밖에 없었다.

 

일본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게 되니 창씨개명은 당연한 것이다. 일본군장교를 키우는 사관학교에서 독립군으로 싸울 사람을 키워주겠는가? 이름이 일본식이 아니면 받아주질 않겠다는데 박정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입학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캐나다에 사는 동포 중에 영어이름 가진 사람 많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한국을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살기가 편해서, 영어권에 왔으니 영어를 쓰는 것뿐이다. 만약에 캐나다정부에서 영어이름을 안 쓰면 영주권을 안 주겠다고 하면 모두 영어이름을 쓸 것이다.

 

 독립군군사학교 이야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시 미국과 맞짱 뜰만한 강대국 일본의 육군사관학교와 망한 나라의 독립군군사학교의 질은 사실 비교할 필요도 없다. 만약에 나보고 택일을 하라면 100% 일본육군사관학교를 택했을 것이다.

 

그가 일제치하에서 받은 교육과 지식은 대한민국을 발전시키는데 엄청난 공헌을 했다. 그가 관동군에 배치되고 곧 일본이 항복하는 바람에 그는 자기의 역랑을 일본을 위해 발휘한 것은 없다. 대한민국이 지금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것은 오로지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과 그의 애국심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친일파였다는 나의 말은 큰 오류가 있다. 그는 일본에서 배워서 한국을 발전시킨 대한민국 최고의 영웅이다. 일제시대에 창씨개명만을 했다는 이유로 그의 공을 깎아 내리거나 그를 모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박정희대통령은 대한민국을 5000년 동안 이어져 온 가난에서 구출해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그리고 작금의 고국 사태를 볼 때 그분의 강한 리더십과 애국심이 더욱 그리운 시절이다.

 

미친 개는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 “아폴로 미안해 미친XX을 미친 개로 표현해서, 이 말은 박 대통령님께서 도끼만행사태 이후 북괴를 보고 한 이야기야”  (2020.6.16)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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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1
아껴쓰기- 팬데믹 이겨내기 4

 

내가 부동산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맨 처음 부동산을 시작할 때 고객의 예산이 $50만 정도라면 $40만 후반부터 $50만 초반까지 매물을 골라 보여주라고 배웠다. $50만 후반대의 매물을 봤으면 그 보다 낮은 매물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정작 사야 할 집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돈이 올라가면 갈수록 집의 눈으로 보는 가치가 확연히 달라진다. 돈은 세상의 모든 것이다. 돈이 없으면 인권도 명예도 권력도 지킬 수가 없다. 지금 한국의 새로 당선된 국회의원이 30년 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을 앞세워 정부의 보조금도 타먹고 수십억을 모금했단다.

 

그 돈을 자기 통장에 입금을 했으며 정작 할머니들에게는 해준 것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자기 말을 안 듣는 할머니들을 윽박질러, 할머니들이 그녀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할머니들을 앞세운 앵벌이, 봉준호의 기생충에 딱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는 돈에 권력까지 얹었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많은 사업체가 문을 닫아야 했다. 그리고 상당수는 지금도 문을 닫고 있다. 공장도 회사도 일을 중단하고 직원들을 집에 머무르게 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면 그 사업체를 운영하던 사람들이나 또는 고용인들은 수입이 딱 끊기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캐나다 정부가 발빠르게 수입이 끊긴 사람들에게 보조해주며, 사업체에게 이런 저런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추 계산해도 평상시 같으면 그 돈으로 생활이 될 것 같진 않았다.

 

 나도 팬데믹이 시작되고 수입이 딱 끊겼다. 물론 우리야 그 전에 해 놓은 딜이 있으니 약간의 수입이 있긴 하지만 팬데믹 기간 중에는 개점휴업 상태라 그 후가 걱정이 된다. 게다가 집사람이 운영하는 세탁소마저도 로블러에서 닫기를 원해 (Essential 사업체라 법적으로는 열수가 있었다) 3월 말로 문을 닫았다.

 

세탁소 문을 연다고 해도 사람들이 출퇴근을 하지 않으니 옷을 세탁할 일이 별로 없고, 또한 혹시 모를 바이러스 전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문을 닫는 것이 나았다.

 

 통장에 많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다시피 하는 캐나다 생활이 아닌가? 그런데 어쩔 것인가 한번 생활을 해 볼 수 밖에. 그렇게 집안에서만 살아가다 보니 돈이 들어갈 일이 별로 없었다. 다만 집에서 6식구와 아폴로가 먹어대다 보니 식품비만 엄청 나가게 된다.

 

집사람과 코스코를 가거나 또는 딸네가 나갔다 식품을 봐 갖고 들어올 때는 수 차례 날라야 할 정도로 바리바리 싸 들고 들어오는데 그래 봐야 수백 불 정도면 해결이 됐다.

 

 우선 집안에만 들어 앉아 있으니 외식비가 들지 않고, 나가서 쓸데없이 사 들고 들어오는 물건도 줄어들고, 돌아다니지 않으니 휘발유 값도 들어가지 않고 게다가 차까지 누가 훔쳐가서 차 리스료까지 내지 않으니 나가는 고정지출이 줄어들었다.

 

골프 치는 것은 작년 연말에 사놓은 쿠폰이 올 한해는 충분히 감당할 것 같고, 또한 19홀이 없이 끝나자 마자 헤어져야 하니 거기서 들어가는 돈도 없다. 다행히 집은 사놓은 지가 오래되어 몰게지가 없으니 고정으로 나가는 것이 재산세와 집 유지비 그리고 보험료 정도다.

 

아껴쓰고 다시쓰다 보니 나가는 지출이 정부의 보조금과 통장에 조금 있던 돈으로 충당이 된다. 다 사람은 살게 되어있나 보다. Lockdown이 끝나고 나서도 아껴쓰고 다시쓰는 생활 습관이 남아 있으면 조금만 벌어도 다시 살아갈 수 있겠지.

 

맞아 그 여자도 모금한 돈을 할머니들에게는 아껴서 자기의 부를 축적했고, 그 돈으로 집을 다섯 채나 사고, 딸을 미국에 유학까지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들은 언제든지 불러서 다시쓰는 습관을 길렀다지. 그래 가끔은 버러지들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는 거다.

 앞으로도 아껴쓰고 다시쓰며 팬데믹을 이겨 나가야겠다. (202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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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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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4
하루에 하나씩 -팬데믹 이겨내기 3

 

 팬데믹 Lockdown 이 시작 된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지구에 있는 모든 나라에서 겪고 있지만 캐나다와 미국 그리고 한국의 소식 외에는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는 별로 없다. 내 코가 석자라 그런가? 안정이 된듯한 곳에서 다시 확산이 되기도 하고 확산이 됐다가도 안정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Corona Virus 가 완전히 끝났다’라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 한 Virus의 존재는 우리를 계속 위협할 것이고 우리는 계속 불안해 할 것이다. Lockdown이 만약에 풀린다 하더라도 혹시 모를 Virus를 피하기 위해서 사람을 덜 만나고 활동도 많은 제약을 받을 것이다. 특히나 나 같이 여러 식구가 같이 산다면 더욱더 그렇지 않을까?

 

 처음 얼마간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않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도 일어나지 않고 곁눈질로 시계를 본 후 9시 이전이라면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9시 반쯤 느지막이 일어나 샤워를 하고 리빙룸에 내려오면 두 손녀딸은 벌써 밥을 먹거나 놀거나 했다.

 

그렇게 있다 보니 몸 안에 있던 뭔가가, 그것이 독기가 됐건 스트레스가 됐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몸은 편안했다. 그러나 같은 일이 장기화 되면서 ‘이게 뭐지? 내가 제대로 사는 건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텃밭을 만들고 YouTube 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도 뭔가가 미진하던 차에 마침 집사람이 운영하던 세탁소를 6월 1일부로 문을 열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가게를 열기 전에 청소를 깨끗이 해야 했다. 그래서 그 일주일 전 일요일 집사람과 함께 청소를 시작했다.

 

컨베이어 벨트 위의 먼지를 하나 하나씩 돌려가면서 털어야 했고 닦아야 했다. 먼지가 오래된 것은 구슬처럼 동그랗게 뭉쳐서 컨베이어가 돌아갈 때마다 앞뒤로 구르고 있었다. 큰 것은 집사람 목거리의 알만 하기도 했고, 사이즈는 다양하게 있었다. 부서지지만 않는다면 엮어서 먼지목거리 만들어 줄 수 있는데.

 

유리창 청소를 하고, 바닥을 닦고, 좁은 가게 구석구석에 있던 잡동사니를 버렸다. 무려 일곱 시간 일을 하고 돌아오는데 몸은 힘들고 피곤한데 마음은 뿌듯했다.

 

‘그래 맞아, 바로 이거야’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나니까 내 몸과 정신에 생기가 돌았다. 그래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팬데믹을 잘 지내기 위해서는 매일 단 한가지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기로 했다. 내 정신건강과 육체 건강을 위하여.

 

하루에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단 한가지씩 이 팬데믹을 이겨나갈 때까지 계속 지속되어야 한다. 집 유리창을 닦기, 마당에 울타리로 둘러쳐진 나무를 다듬기, 찢어진 방충망 갈아 끼우기, 차 안을 청소하기, 가라지 정리하기, 뒤뜰에 있는 패티오 가구를 깨끗이 청소하기, 가라지에서 나오는 문 페인트 칠하기, 차 안도 구석구석 닦기, YouTube 보면서 내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뭔가를 공부하기 등등, 하려고 생각하니 해야 할 일이 계속 생겨났다.

 

 날씨가 좋아지니 여기저기서 골프 치러 가자는 사람도 많았다. 누가 전화해서 골프 한번 치자고 하면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봐야겠고, ‘노’를 못하는 성격이라 지난주에는 무려 5일을 골프를 쳤다. 그러다 보니 몸도 피곤했고, 하루에 한가지씩 일도 해야 했고, 몸이 바빠졌다.

 

 골프를 치고 와서 일을 하려면 몸도 노곤하고 힘이 들어 골프 가기 전에 일을 해야 한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다, 대충 먹고 골프장에 가면 몸의 에너지가 빠졌는지 공이 잘 맞지 않는다. 멀리 쭉 나가는 샷보다는 부채꼴로 나가는 샷(한군데서 치더라고 공은 마치 부채살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는)에 스트레스는 잔뜩 받는데, 집에 갇혀있느니 그래도 초원을 밟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자위를 해 본다. 골프를 치다 보면 항상 하는 말 “어, 왜 오늘은 안 하던 버릇이 나오지?” 이 소리를 올해는 거의 매번 써먹는다.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서 지내야 하는 처지이지만 하루에 한가지씩 만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한다면 그렇지 않고 지내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이 기다릴 것이다. 사실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뭔가를 하는 것보다 더 힘이 든다. “자, 아폴로, 우리 같이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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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8
영화 만들기- 팬데믹 이겨내기 2

 

 몇 년 전 고객의 집을 리스팅을 해야 했다. 집을 내놓기 전에 정리를 해야 하는데 작은 장 하나를 빼내자 장 아래에 있던 부분의 마루바닥이 썩어서 시꺼멓게 변해있었고 심지어 구멍까지 나 있었다. 그 전에 화분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마루가 오래되긴 했지만 깨끗했었는데 한쪽 구석이,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눈에 확 띄어 대략 난감이었다. 나는 걱정이 되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고객분이 “걱정 마세요 내가 고쳐 놓을 테니” 하셨다.

 

 그리고 이틀 후, 집 사진을 찍기 위해 들렸는데, ‘오잉? 이게 웬일인가’ 마루바닥이 감쪽같이 고쳐져 있다. 자세히 보니 고쳐진 부분의 바닥은 새것이고 예전에 있던 부분은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바닥의 색깔이 약간 다를 뿐이지 전혀 표시가 나지 않았다. 그분을 쳐다보자 “이거 유튜브 보면 다 나와 있어요” 하셨다.

 

 그분은 나보다 연배도 5년 정도 많으시고 또한 카페테리아만 오랫동안 하신 분이라 전혀 그러리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정보를 받아 실속을 차리신 거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유튜브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별 관심은 없었다. 그리고 그 집을 내놓은 지 이틀 만에 웃돈을 받고 팔았다. 워낙 깔끔하게 집을 정리하셔서 쉽게 팔 수 있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시간이 나면 유튜브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래를 많이 들었는데 특히나 좋아했던 것은 소프라노 최정원의 복음성가였다. 그러다 그 해 한인합창단 정기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는데 그날 최정원씨가 솔로로 출연을 했고, 공연이 끝나고 그녀가 받은 장미 꽃다발을 내 쪽으로 던져 내가 그것을 받았으며 그날 그녀와 같이 사진을 찍는 행운까지 누렸다. 만약에 유튜브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누구인지 알 턱이 없었고, 또한 그녀의 노래를 듣고 그만한 감동을 누리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스포츠 쪽을 보다가 역사 쪽에 재미를 들였는데 예전에 어렴풋이 알던 역사를 점점 심도 있게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 외에도 건강에, 요리에, 생할상식에 없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심지어 며칠 전에 차 열쇠의 배터리가 다 되었다고 신호가 오길래 ‘XX 차 열쇠 배터리’ 를 치니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무슨 배터리가 필요한지 다 나왔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YouTube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유튜브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나 올릴 수 있다 보니 거짓뉴스도 상당하다. 특히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도 많아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유튜브는 2005년도 2월에 젊은이 셋이 의기투합해서 창업을 했고, 4월에 첫 영상이 올라갔다고 한다. 그리고 불과 일년 반 후에 Google 에서 YouTube 를 무려 16억5천만 불에 인수했다고 한다. 그 젊은이 셋이 공평하게 나눠가졌다고 하면 무려 5억5천만 불씩을 받았으니 그야말로 초대박을 터트린 거다.

 

 작년 여름 친구아들 결혼식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여자분이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한다. 구독을 좀 해달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구독을 해주었다. 그러더니 금방 고맙다고 한다. 세상에, 그렇게 빨리 누가 뭘 했는지 알아내다니.

 

 그녀의 동영상을 몇 개 보았는데 그야말로 우리들이 일상에서 해야 할 이야기들을 친구에게 하듯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다. 말을 잘 했지만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니라 나도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아는 형님도 거북선에 관한 유튜브를 꾸준히 만들어 오고 있고, 한인사회에서도 ‘캐투버’라는 유튜버들의 모임이 생겼다.

 

 마침 팬데믹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도 유튜브 동영상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의욕만 가지고 되지는 않았다. 우선 첫째로 편집기술을 배워야 했는데 어디서 가르쳐주는지 알지도 못했지만 설사 알았다고 해도 Lockdown 으로 인하여 갈수도 없었다. 아, 그렇지 만능선생님 YouTube.

 

 YouTube 에서 동영상 편집기술을 배우는데 어느 정도 지식이 있으면 쉬웠을 텐데, 전혀 문외한이 배우려니 조금 진도가 나가다가도 한군데 막히면 그걸로 하루 이틀을 잡아먹고 머리는 다 빠져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기를 2주, 중간에 때려 치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한편을 만들게 되었다.

 

 많은 실수가 있었지만 급한 마음에 그냥 올리게 되었고, 욕심이 생기니 염치불구하고 여기저기 단체카톡방에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마다 몇 명이나 보았는지 확인하게 되었고. 그리고 일주일 동안 4편을 만들었다. 매 편을 만들 때마다 더 나아지는 것 같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팬데믹시절에 이것만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러다 몇 년 후에 과거를 회상하며 한편 한편 보는 것도 우리가 오래된 앨범 보며 추억에 젖는 것처럼 좋을 것이다. 골프를 좋아해서 프로들의 경기를 열심히 보아오다가 드디어 나도 골프채를 구입하여 필드에 나간 기분이랄까? 아직은 100근처도 못 가는 초보지만 언젠가 나도 100을 깨고 보기플레이어가 되겠지 하는 바램이 YouTube를 시작하며 갖는 바램이다.

 

 그래서 나도 앞으로 남의 것을 보는 것보다 나의 영상을 만드는 것에 더욱 노력할 것이다. 게다가 내가 주연에 감독까지 꿰 찾으니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고 꿩 깃털로 모자까지 만들어 쓴 셈 아닌가.

 

 혹시 나를 만나서 더 늙었다거나 흰머리가 늘었다면 YouTube 배우면서 고생한 대가인줄 아시라. 많은 사람들이 구독과 좋아요 눌러준다면 얼마나 좋으리.

 

1탄 youtube.com/watch?v=tpXMIJZfGtQ&t=56s

2탄 youtube.com/watch?v=cyshYPMUHkc&t=81s

3탄 youtube.com/watch?v=pfU3vLn2B4s

4탄 youtube.com/watch?v=_l85kJxC1ek&t=26s

 

(20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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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식(김치맨)
2020-05-29
모두들 지게들 지고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김재기님은 자전거 타고 씽씽 달려가고 있나 봅니다! 이제 머지 않이 픽업 트럭 장만하셔서 무건운 삶의 짐 다 싣고 달리시기를... 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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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1
텃밭가꾸기-팬데믹 이겨내기

 

 우리 집 앞마당의 작은 정원에 항상 꽃을 심었었다. 재작년 봄부터 집사람이 모종을 몇 개 얻어다 꽃대신 심었다. 그러고 얼마 후부터 저녁때가 되면 밖으로 나가 바가지에 깻잎이나 상추, 고추 등을 따와 고기와 맛있게 먹었다.

 

 간혹 오이를 따오기도 했는데 보이지 않던 오이가 어느 날 내 손바닥 길이만한 실한 것들 두어 개 갖고 들어오기도 했고, 단 한번이지만 근 30 Cm 정도 되는 것이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 대박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식물을 기르다 보니까 먹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들여다보는 것 이었다. 이것들이 얼마나 자랐을까? 오전에 사무실 나가면서 들여다보고 오후에 들어오다 들여다 보고 가끔은 집사람이 바가지를 주며 나가서 뭐 좀 따오라고 시키면 얼마나 반가운지.

 

 상추야 밭에 다가가면 바로 보이니까 그만이지만 고추나 오이는 이파리를 제치고 들여다 봐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 여기 있어요’ 하며 손을 드는 것도 있고 꽁꽁 숨어있다가 손으로 두어 겹 정도 제쳐야 ‘아이쿠 들켰네’ 하고 나오는 것들도 있다.

 

 그러다 단톡방에서 천지농장이 모종을 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 농장주인님이 예전부터 아는 형님이었기에 전화를 드렸다. 서울플라자 주차장에서 5시부터 7시까지 파는데 이른 시간에는 사람이 많이 몰리니 느지막이 오라고 하셨다.

 

 다섯 시가 지나고 5시 40분쯤 주차장에 가보니 줄이 한 삼십 미터 정도 늘어서 있었다. 앞사람과 2m 정도 떨어져야 하니까 얼추 15명은 넘어 보였다. 잠깐 줄에 서있다가 한 사람 빠져나가는데 이삼 분 정도 걸리는지 통 줄어들지 않길래 집으로 돌아갔다 한 30분쯤 쉬었다 다시 가보니 두서너 사람만 있어 집사람이 분부하신 대로 몇 가지를 사다가 앞뜰정원에 심었다.

 

 심은 지 며칠 후부터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단다. 그래서 홈디포에다 덮어줄 비닐을 주문했더니 통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날씨는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사람 세탁소에 가서 세탁물 포장용 비닐을 가져다가 부동산 오픈하우스 팻말 꽂는 철사를 구부려 기둥을 세우고 일일이 덮어주었다.

 

 나는 그저 서리나 막아줄 수 있으면 한 거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밖에 나가보니 상추는 그런대로 견디었는데 고추와 깻잎 모종의 몰골이 크기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하루가 더 지났다. 고추와 깻잎은 상태가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가 않았다. 사나흘간은 더 추워야 한다는데, 이걸 어쩌나.

 

 집사람도 걱정스러운지 “담요를 덮어줄까?”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래 전에 골프대회에서 경품으로 받은 텐트가 생각이 났다. 한번도 써보지 않은 텐트를 가라지에서 찾아다가 텃밭에 덮어주니 사이즈가 맞춤이었다. ‘왜 이제서야 날 불러줬어요, 애들이 이지경이 되도록 뭐하고’ 하는 것 같았다. 낮에는 벗겨주고 저녁에는 덮어주기를 너 댓새, 거기다 한날은 눈까지 와버렸으니.

 

 드디어 추운 날들이 다 지나고 따뜻한 날씨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나가 텐트를 걷었고, 모든 비닐과 철사를 다 철수시켰다. 그리고 모종을 살펴보았다. 중군 상추는 한판(한판은 모종 48개) 전원이 살아남았고, 우군 깻잎은 한판 중 4개만 살아남았고, 좌군 고추는 한판 반이 거의 전멸, 별동대 파는 전원 다(8개) 살아남았다. 마치 전쟁터에서 몇 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처절하게 죽은 모습이었다. 돈 몇 십 불을 잃은 것이 아니고 같이 살던 생명들이 처절하게 죽어간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가만히 들여다 보니 누렇게 처진 고추모종 밑동에 쪼고만 파란 잎이 한두 잎씩 붙어있다. 위의 잎들은 죽은 쥐색이 되어 축 늘어졌는데 아래에서 생명이 태동하고 있는 것 같다. 죽은 깻잎 쪽에도 위는 다 죽었는데 땅에서 올라오는 아랫부분은 생명의 색으로 파릇파릇하다. 이 동상 걸린 용사들을 야전병원에 데리고 가 다 살려야 할 텐데, 그들이 일어날수 있을지, 지켜볼 요량이다.

 

 앞의 텃밭이 너무 작아 사위와 뒤뜰 햇빛 잘 드는 한쪽에 텃밭을 하나 더 만들었다. 땅을 파서 잔디를 뜯어내고 테두리를 박고 흙을 사다 덮어 놓고 매일 받아놓은 빗물을 뿌려주고 날씨가 좋은 때만을 기다려 왔는데 내일 모종을 심어야겠다. 그곳에는 케일과 토마토와 부추를 심을 양이다. 그리고 화분에 쑥을 심어 놓았다, 밭에 심었다간 쑥대밭이 될까 봐.

 

 텃밭을 파놓으니 우리보다 더 좋아하는 식구가 생겼다. 땅을 파서 지렁이가 나오는지 날개는 검고 배 부분이 빨간 새 한 마리가 집 뒤뜰에 나타나 며칠을 홀로 놀더니 지난 주말쯤에 날개까지도 빨간 어여쁜 새 한 마리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람쥐의 출몰도 훨씬 늘었다.

 

 인간들이 자리를 비키니 동물들이 우리의 영역을 채운다. 공간은 충분하니까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Corona Virus 를 이겨내려면 시간을 때워야 하는데 텃밭을 가꾸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우선 생명의 신비를 바라볼 수 있다. 줄기가 자라고 잎이 피고 열매를 맺는 모든 과정을 보는 재미는 웬만한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다.

 

 게다가 자연의 포용성을 느낄 수 있다. 파나 상추, 케일 등은 우리가 뜯어 먹어도 또 그만큼 우리에게 다시 제공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뿌리를 뽑지 않는 한 그들은 우리에게 충성을 다한다. 그리고 우리가 재배한 싱싱한 먹거리를 먹는 맛은 보너스다. 이것으로 코로나를 이겨나가야겠다. (20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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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식(김치맨)
2020-05-26
텃밭을 크게 만드셨다니!!!! 이왕이면 방울토머도(Cherry Tomatoes) 모종도 구해다 심어보세요! 넝쿨이 뻔어 나가는 것 염두에 두시고! 3-4포기 심으면 그것 따먹는 재미도!!!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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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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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4
어머니 다음에 뵐게요

 

 월요일 아침 눈을 뜨고 밖을 내다보니 차 지붕 위에 눈이 하얗게 쌓여있다. 세상에, 5월 중순으로 들어가는 이때에 눈이 오다니.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이 꺼꾸로 돌아가니까 계절마저도 꺼꾸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한 주가 지나갔다. 사실 나는 좀 게으른 편이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데 큰 문제는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쓰려니 쑥스럽기는 한데 그래도 기록은 남겨야겠지.

 

지난 금요일, 오전부터 사위가 분주하다. 어머니날이라고 부엌에서 부지런히 뭔가 자르고 있고 삶고 있고 준비하고 있다. 나는 그저 왔다 갔다 하다가 설거지나 해주면 된다. 그런데 이 설거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싱크에 반이나 찬 설거지를 해놓고 한 시간 후쯤 가보면 또 그 만큼이 쌓여있다. 사람이 여섯이나 살고 있으니 나오는 일감도 장난이 아니다.

 

아래층에서 TV를 보고 있으려니 점심 준비가 되었다고 한다. 올라가보니 접시에 햄버거가 셀러드와 함께 푸짐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빵을 들어 한입 씹는데 빵도 고기도 부드러워 무척 맛있었다. 이름하여 Chicken Breast Hamburger. 나는 한 개 반을 먹었다.

 

여기저기 오는 카톡이나 Face Book 등에 어머니를 그리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데 그것들을 보면서 더욱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라는 단어는 우리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하신다. 아, 어머니 그 어려운 살림 중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내가 혹시 잘못을 하면 줄넘기로 때리기도 하셨던 어머니.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머니의 뜻을 조금이라도 깨달았고 어머니 지나가셨던 연세를 지나면서 어머니의 처지가 이해가 됐다.

 

누군가 보낸 준 카톡에 수탉은 모이를 혼자만 먹어대는데, 암탉은 병아리들 먹으라고 계속 모이를 물어 그들 앞에 놓아주는 동영상을 보았다. 그러면 병아리들이 돌아가면서 엄마가 놓아준 그 모이를 먹는 것이었다. 아빠 쪽에 있던 병아리가 하나도 얻어먹지 못하자 결국은 엄마 쪽으로 가 한 톨씩 얻어먹는 것이었다. 참 그럴 듯했다.

 

우리 집만 보더라도 내가 아이들한테 하는 것과 집사람이 아이들에게 베푸는 것이 다르다. 나는 내 위주로, 집사람은 아이들 위주로. 그래서 종종 그것 때문에 말다툼이 일어난다.

 

점심이 끝나고 오후가 되자 또 사위가 부엌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부엌에 올라가보니 재료가 잔뜩 나와있어 사위에게 좀 도와주려나 물으면 괜찮다고 한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시계를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집안에 연기가 자욱해졌다. 웬일인가 위로 올라가보니 고기를 후라이팬에 구우면서 연기가 나오는 것이었다.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시간이 늦어지니 마음이 급했던거지.

 

우여곡절 끝에 준비가 다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올라가 보니 스테이크 디너가 와인과 곁들여 멋지게 차려졌다. 밖이 껌껌하게 어두워졌으니 더욱 디너의 분위기가 살아났다. 어머니날이니 두 어머니(집사람과 딸) 손에 물 안 묻히게 한다고 사위가 그날 하루 종일 수고 몽땅 해버렸다. 고맙다 사위야.

 

일요일 오후에 집사람하고 밖을 걷는데 동네 몇몇 집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서 돌아다보면 Mother’s Day 라고 자손들이 찾아와 주차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정부지침을 지켜가며 어머니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고 모르긴 몰라도 집안에서 만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날 부모를 찾아왔는데 그런 인륜을 어찌 법으로 다스릴 수 있으랴? 주수상 Ford 도 어머니날에 나가 사는 딸들이 왔다 갔다고 실토하지 않았던가.

 

집에 돌아와 잠깐 있는데 꽃다발 하나가 배달되어왔다. 에드먼튼에 있는 아들이 엄마에게 보낸 것이다. 우리 김여사 그것 받자마자 아들에게 영상통화를 한다. 갑자기 부엌이 환해졌다. 커다란 꽃다발 두 개가 좁은 부엌에 있으니. 이제 집사람도 엄마의 엄마가 되었으니 그런 대접을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지.

 

나도 울 엄마가 보고 싶은데, 언제나 뵐 수가 있을까?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 이번 어머니날은 그냥 지나가고 팬데믹 끝나서 공동묘지 문을 열면 바로 찾아 뵐게요. (202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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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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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7
봄이 왔다

 

 오늘은 좀 일찍 일어났다. 밖을 내다보니 밝은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Lockdown 이 시작되고 별로 할 일이 없으니 자정쯤에 침대에 들어간다. 침대에 누어있으면 그렇게 편할수가 없다. 세상에 모든 괴로움이나 걱정거리는 다 제처두고 편안히 자도록 한다.

 

 자다가 화장실 가느라 한두 번 깨는 것 말고는 대체로 잘 잔다. 꿈도 그냥 편안하고 잘 잊어먹는 그런 꿈을 꾼다. 아침에 항상 일어나는 시간에는 저절로 눈이 떠지는데 특별히 할일도 없고 갈데도 없으니 시계를 한번 보고는 다시 잠이 든다. 그리고 푹자고 일어나면 9시가 훌쩍 넘었을 경우가 많다. 너무 오래 자다보니 허리가 아프기도 하다.

 

 늦게 일어나니 아침이랄 것도 없이 우유 한잔이나 대충 먹고 점심은 늦게 먹게 된다. TV도 보다 컴퓨터 검색도 하다보면 어느새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특별히 하릴없이 꾸물대다 보면 벌써 취침시간이다. 기억에 남는 일 하나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꾸준히 하고 있는 일이라고는 YouTube 틀어놓고 국민체조와 몇 가지 운동하는 것, 오후에 집사람과 아폴로 데리고 Yonge 까지 걷는 것 정도다. 참 너무 허무하게 인생이 낭비되고 있는것 같아 일요일 밤에 선언을 했다. 좀 더 일찍 일어나기로.

 

 리빙룸에 내려왔더니 벌써 두 손녀딸은 깨어 일상을 시작 중이다. 이 집안에서는 가장 먼저 일어나야 할 사람들이 가장 늦게 일어나는 꺼꾸로 집안이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랴 저런들 어떠하랴, 일어나는 순서가 바뀐들 어떠하랴, 어차피 일어나 해야 할 일도 없거늘.

 

 Brown 칼라이던 우리집 담장(삼면이 나무로 심어져 있다)이 4일전부터 조금씩 윗부분만 녹색을 띄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녹색이 전 지역으로 퍼졌다. 완전한 녹색이 되려면 며칠 더 있어야겠지. 뒷집에 있는 나무에도 파릇파릇 새순이 돗아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다는 토론토에 봄의 새생명이 찾아오는 것이다.

 

 지난주에 모종을 사다가 텃밭에 심었다. 상추와 풋고추 그리고 깻잎. 앞마당에 있던 화단에 꽃을 심을 자리에 작년부터 심었는데 고추는 한번 심어 놓으니 한여름 맛있게 먹었고, 오이는 튼실한 것을 하나 따면 집사람과 나눠 먹었고 깻잎 또한 고기 구어 먹을 때 제격이었다.

 

 앞에 있는 텃밭이 너무 작다보니 뒷마당 햇볓 잘 드는곳에 작은 텃밭을 하나 더 만들었다. 삽을 들고 땅을 판다고 낑낑대자 사위가 도와준다고 해서 땅파는 작업을 그에게 맡기고 나는 퍼낸 흙을 버리는 일을 했다. 한 두어 시간 일을 하자 그럴듯하게 작은 텃밭이 만들어졌다. 이제 흙을 사다가 덮어주고 모종만 심어주면 틈틈히 나와 생명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 되겠다.

 

 지난주부터는 날씨가 좋아 집밖에서 놀수있는 기구를 사다놓았다. Lawn Dart 를 사서 경기를 하는데 쉽게 될 것 같은 것이 의외로 쉽지 않아 재미있었고, 넷트를 치고 베드민턴을 하는데 마당이 좁으니 담장 넘어 옆집으로 셔틀콕이 넘어 간다. 그래서 셔틀콕을 열 개 정도 더 주문했다. 다 넘어가고 나면 한꺼번에 줏어오려고.

 

 집안에서는 손녀들이, 담장에서는 푸른 잎사귀가 그리고 텃밭에서는 우리가 즐길 채소가 자라고 있다. 비록 인간은 집안에 갖혀있지만 자연 만물은 도처에서 기지개를 펴고있다. 이 화창한 봄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야 하는데… 그날이 여름이 오기 전에 꼭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20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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