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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greenon
프랭크의 수석과 목조각 공예와 모니카의 케나다의 삶을 주제로 살아 나가는 생활상을 소개하고 함께 하는 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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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잊지못할 Dominon Grocery Store
evergreenon

평생 잊지 못할 캐나다 Dominion Grocery Store 캐나다는 여행객으로서 여행 이외의 어떤 것도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여권 뒤를 잘 살펴보면 어떤 단체활동에 가입을 할 수 없으며, 교육목적으로 학원이나 학교등에 등록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영어를 배워볼 목적으로 ESL School에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그곳을 남편과 방문했다. 그곳의 메니저는 방문객으로서 영어를 배우는 게 가능하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이미그래이션 오피스와 다소 맞지 않는 정책이라고 생각은 했다. 그리곤 이민자들은 대다수 공짜거나 아니면 10-20불 정도씩을 받고 있었는데 비지터의 신분으로서는 200불을 한 달에 지불해야 하는데 1주일에 3일 이고 당일 2시간을 한다고 한다. 어떻하건 간에 무의미하게 세월을 보낼 수 없어 우리는 등록을 했다. 그것도 2시간 중에 1시간은 컴퓨터 교육 이였고 1시간은 Conversation이었다. 다음날 학교 등록에 필요한 서류인 여권복사 문제로 우리는 전에 보아 두었던 대형 그로서리 스토어 입구에 설치해둔 복사 기계가 있는 곳을 알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복사를 하였다. 여기서 우리의 큰문제가 발생된 것 이였다. 복사기에서 여권 복사를 하고 여권을 챙긴다는 것을 깜빡 잊고 복사된 내용을 여권으로 남편과 나 모두 잠시 정신을 팔았던 것 같았다. 이 스토리에 얽힌 사연이 지금 생각하면 우스움이 나오는 문제이지만 그 당시에 영주권도 없는 우리에게는 정말 치명적 이었다.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서...... 어느날 집에서 큰아이가 학원에서 단체로 미국을 간다는데 자신들은 미국 비자가 없어 못 가게 되었다고 불평을 하면서 대체 미국 비자는 어떻게 생겨 먹었냐고 물어 왔다. 우리는 한국에서 재직 당시에 이민 결정을 하고 난후 미국 비자를 받기가 어렵다고 확실한 직장 있을 때 미국 비자를 신청하라는 주변의 권고에 10년짜리 미국 비자를 받아 두었었다. 그래서 그걸 보여 주려고 늘 상 넣어두는 핸드백을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었고 그 일로 하루종일 온 집안 구석구석을 쥐잡듯이 다 뒤졌지만 행방불명 이었다. 우리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했다. 그게 그렇게 소중한 것인데도 당연히 있을 장소에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하루종일 내내 어디서 어떻게 된 거냐는 기억만 더듬었었다. 아버님과 미국 갔을 때는 분명히 사용했고 또 다녀 와서는 등등…… 마침 결론에 도달했다. 상기 내용에서 밝혔듯이 도미니언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복사를 하고 난 뒤 원본을 꺼 집어 내는 것을 잊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게 약 한달 전 일인데. 그 생각이 나자마자 우리는 그로서리 스토어로 달려갔다. 매니저를 만나서 이런 사실이 있었다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했다. 꼭 찾아야 한다고 거의 빌다시피 매 달렸다. 잠시 후 이사람 저 사람들에게 그는 물어보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사무실에 가서도 물어보곤 하면서 우리에게로 다가와서 그런 것을 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너무나 난감했다. 우리의 기억으로 여기서 그렇게 된 게 분명한데도 대충 물어보고 적극적인 의지도 보이지 않으면서 결과만 선뜻 일러주는 메니저가 너무 무심하기 까지 했다. 하지만 우리의 실수 였으니 누구에게 무어라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힘이 빠질 대로 다 빠져 있었다. 나는 문밖까지 걸어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대로 이 자리에 주 져 앉아 펑펑 울고 싶었다. 남편이 집에 가서 대책을 강구하자는 부치킴에 억지로 그 자리를 뜨게 되었다. 집에 와서 남편은 인터넷 접속을 하여 대사관 정보 사이트에서 여권 분실 시 행동요령 이라는 내용을 프린트 해내었다. 그리고는 우리는 함께 읽어 내려 갔다. 이 내용을 다 읽었을 즈음에는 하늘이 노래 보였다. 신고 절차도 너무 까다롭고 시일도 굉장히 오래 걸렸다. 다음달이면 우리는 캐나다를 출국도 해야 하는데 앞이 너무나 막막했다. 남편은 나를 잠시 안정 시켜놓고 내 방법대로 한번 해보아야 겠다고 하더니 컴퓨터 앞에 앉더니만 그때부터 편지를 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에게 보내려고 라고 물었더니 이 그로서리 스토어는 이렇게 크지만 이게 각 지역마다 있기 때문에 분명 최고 책임자 즉 사장이 있을 거야. 그 사람에게 직접 편지를 써보고 안된 다면 어렵지만 다시 발부를 받자하고 말을 하는 것이 였다. 동감은 했으나 과연 하나님이 도우시면 일이 잘 풀리겠지 하는 한 가닥의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안겨주는 그의 행동 이였다. 남편은 존경하는 도미니언 사장님께라는 문구를 서두로 케나다에 비지터로 온지는 얼마가 되었고 이곳을 늘 이용하는 고객으로서 왜 귀하의 스토어를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정말 아름답게 표현하고 또 칭찬을 곁들여 적었다. 아울러 현지의 우리의 처지와 또 우리가 돌아가게 되면 갖게 되는 귀하의 스토어에 대한 이미지 등의 내용을 A4용지 한 장에 가득 실어 E-mail로 송부를 했다. 그러고도 내가 허탈에 빠져있는 동안 정확하게 하루하고 6시간이 지난 시쯤에서 남편은 갑자기 여권을 찾았다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어 이게 꿈인지 생신 지 하고 나의 살을 꼬집어 보았지만 역시나 아팠다. 정말 이구나 싶었다. 남편은 흥분을 가라 앉히고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사장한테 편지를 쓴다는 소리는 얼른 들었지만 경황이 경황이니 만큼 나는 새로 발급 받아야 하는 사실에만 집중이 되어 있어 사실 그렇게 해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그러나 그 상상은 바로 현실로 돌아왔다. 남편의 메일을 받은 사장은 일이 일어났던 그로서리 스토어로 직접 전화를 해 모든 직원을 동원하든지 수소문해서 이런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도와 주라고 직접 지시를 했다. 그리고는 이 메니져는 종업원들 모두에게 이사실을 배포하고 난후 당시 우리의 여권을 복사기에서 챙긴 당사자가 나타나게 되어 대형 몰 안에 있는 파출소로 넘겼다는 것이고 또 이분이 파출소로 가서 여권 본인이 나타났다고 이야기하게 되었고 파출소에서는 2주간 동안 보관을 하고 있다고 경찰서 본부로 그 여권을 보냈다는 것이다. 현지 경찰서 본부에 귀하들의 여권이 보관되어 있으니 찾으면 된다는 것이다. 경찰서에서는 1달을 보관하다가 주인이 안 나타나면 이를 캐나다 한국 대사관으로 보낸다는 거였다. 우리는 경찰서 전화를 하고 약속 시간을 정하고 난 뒤 정확하게 캐나다에 와서 경찰서라는 곳을 처음 찾아가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경찰서 민원실에 근무하는 경찰들은 모두가 여 경찰들이었다. 우리가 왔다고 신고를 하고 우리는 잠시 자리에 앉아 벽에 붙어있는 현상금 수배란 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보통 범인들을 잡기위해 증명사진이나 또 몽타즈 밑에 사연을 적고 현상금 얼마 이런게 우리의 상식이거늘 여긴 그야말로 개 투성이다. 몽타즈 중간 중간에 전부 잃어 버린 개 현상금.. 정말 생각만 해도 아직까지 웃음이 나왔다. 몇분 후 우리의 이름을 호출 하길래 달려갔다. 그 여경의 손에는 맑은 비닐 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주소지와 사진만 보이도록 하고는 모두를 진공처리해서 아무도 손을 못 대도록 만들어 놓았다. 우리의 겉 모습과 주소와 전화를 묻고는 그렇게도 애타게 찾던 보물 처럼 귀한 여권을 우리 손에 넘겨 줄 때 나는 이게 마치 복권에 한번도 당첨되어 본적은 없지만 복권에 당첨될 만큼의 기분 이였다 우리는 너무나 고마워서 그 여순경과 옆에 있는 동료 직원들에게 한국의 전통 하회탈 목거리를 한분 한분에게 선물을 하니 그들은 너무나 고마워 벌어진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그런 분위기를 뒤로하고 우리는 집을 향했다. 남편은 E-mail을 통하여 도미니온 그로서리 사장에게 여권을 찾았다는 소식과 함께 감사함을 전한다는 내용의 글을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