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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greenon
프랭크의 수석과 목조각 공예와 모니카의 케나다의 삶을 주제로 살아 나가는 생활상을 소개하고 함께 하는 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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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또 한분의 만남
evergreenon

고마운 또 한 분의 만남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난 뒤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우리집 부엌에서 창문을 내다보면 호수가 보이는 아퀴테인 호수가 보였다. 정말 풍치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의 별장 기분을 자아내게 하는 그러한 분위기 였다. 밖의 날씨도 완연한 봄의 기운을 찾아 모든 식물들은 새파아란 머리를 내밀고 일찍 나온 잎사귀는 제법 나무의 본연의 모습을 나타낼 정도로 우거졌다. 봄의 상징인 민들레가 잔디밭에 노오랗게 수놓고 우리가 생각하는 감정의 민들레를 이곳 케네디언들은 잡초로 생각할 뿐이고 천덕 꾸러기로만 여긴다. 어디서 날아온 노랑나비가 하늘 하늘 하늘과 맡닿은 호수 경계면을 날라 다녔다. 우리는 호수 한바퀴를 워킹하기로 하고 남편과 호수를 거닐면서 이곳의 문화와 앞으로의 우리의 할 일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했다. 집으로 들어올 수 있는 뒤뜰을 경유하여 들어오려고 하는데 노오란 개나리의 만개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국 같으면 벌써 지고 없어졌을 이 늦봄의 계절이 이곳은 초봄이기 때문에 아직 볼 수가 있었다. 우리가 이주해오기 이전에 살던 분들이 심어둔 빨강,노랑,분홍색의 튜울립도 만개해 개나리의 조화 색이 되어 있었다. 점심식사를 하던 중 딩동…. 갑자기 도아벨 소리가 귓전에 들어왔다. 아직 영어에 자신이 없는 나는 남편에게 나가 봐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내심 지금 이 시간에는 도어 벨을 울릴 사람이라곤 조선생님댁과 우리 아이들 행여 렌트 오피스의 사람 등으로 거의 한정되어 있었다. 나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한국 말소리가 들렸다. 다소는 반가워서 밖으로 나와보니30대의 젊은 남자였다. 그의 말에 며칠 후 우리가 살고있는 타운하우스로 이사 오려고 방금 오피스에서 계약을 마치고 메니저로부터 한국분 이 살고 계신다는 정보를 듣고 잠시 들렀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 반갑기에 잠시 들러서 차 한잔하고 가시라고 권했다. 잠시 이분들을 소개하자면 애기 아빠는 한국에서 K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하고 한국에서 모 회사에 취업해 있다가 뜻이 맞지 않아 이민 길을 택했다는30대의 젊은 사람이 였고, 애기 엄마는 애교가 넘치는 전형적인 서울 색시였다. 그리고 큰딸아이는 유학 중에 미국에서 낳게 되어 미국 시민권자인 6살짜리, 그리고 15개월 된 동생해서 4식구 였다. 왜 캐나다로 이민신청을 했는가에 대한 나의 질문에 그는 처음에는 미국으로의 이민을 생각하고 미국에 있는 자동차 회사와 접촉을 하던 중 일단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캐나다에서 직업을 알아 보는 편이 빠를 것 같다는 생각에서 이곳으로 이민을 신청하였는데 다른 사람은 그리도 애태우고 기다려도 받기 힘든 영주권이 이내들은 신청 후 6개월이라는 초스피드로 이루어 졌으니 내가 안부러울래야 안 부러울 수가 없었다. 서류를 제출하는 동시와 함께 인터뷰면제 등등해서 날개 달린 돛단배 마냥 하나의 어려움 없이 통과가 됐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는 그들을 보면서 현제의 나의 처지와 너무나 상반되는 듯 싶었다. 이날 저녁 우리는 이들을 초대했다. 그래도 한달 정도는 이들보다 선배다. 억지로 우기자면 인생선배이자 이 타운하우스의 선배라 할 수 있다. 아직 한국에서 본 짐도 도착이 되지 않았기에 불편했던 나의 몇 달 전 일들이 떠올라 이들에게 마음 푸근히 가지고 와서 저녁식사를 하자고 제의했던 것이다. 젊은 사람들로서 예의도 갖춰져 있고 본배가 있어 호감을 더욱 가졌는지도 모른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나는 일찍부터 외국문화와 그 생활을 접한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아이의 이름을 따라 그녀의 아빠를 예준아빠라 불렀다. 예준 아빠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미국에서 살았었지만 캐나다의 지리도 온 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카렌트를 해서 잘 다니고 있었다. 다음날 집으로 전화가 와서 오늘 운전면허증 신청하러 간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 나섰다. 한국에서 올 때 1년짜리 국제 면허증을 바꿔 왔지만 이곳에 온 이상 캐나다 면허증으로 바꾸고 싶었다. 나는 이곳에서 제일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는 한국에서 외교사업을 가장 잘 해놓은 것은 바로 한국의 운전 면허증을 이곳에서 시험도 없이 등록만하면 인정하여 대치해 주는 이점을 꼽고 싶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한국인이 면허증 시험을 치룰 때 자기 모국어로 시험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력검사를 마치고 등록비를 지불하고 나니 임시 면허증을 발부해 주었고 또 2주내에 본 면허증을 주소지로 보낸다는 사무직원의 말을 들었다. 만약 예준 아빠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러한 소오스를 구하기 위해 더 힘든 노력을 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더 나는 가슴속으로 고마운 분임을 속으로 뇌 아렸다. 다음으로는 예준 아빠가 임시 면허증만 있으면 차량 구입을 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녁에 혹시나 하고 우리집에 이사를 해주셨던 운송회사 사장님이 이곳에서 20여년을 살았기 때문에 이곳 사정에 밝을 것으로 사료되어 자택으로 전화를 내어 차량구입에 대해 상의를 했다. 그의 대답은 나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차량문제나 부동산 무엇이든지 비지터로서 구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지 팔 때 이익금이 생긴다면 그에 대해 세금만 내면 된다고 하기에 낮에 예준 아빠의 말에 수긍이 갔다. 옛날 말에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고 했다. 그래서 확인을 해보았을 따름이다. 차량 구입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접하니 우리아이들이나 우리의 불편함을 다소 덜 수 있겠다 싶었고 가고 싶은 곳도 가보면서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예준아빠와 남편이랑 함께 차량 구입을 위해 우리는 중고차 회사 몇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들만한 차들을 선별하기에 이르렀다. 외국생활을 오래 한 선배의 말을 빌리자면 가능한 한 차는 벤과 같은 큰 차를 사는 게 승용차보다 낫다는 것이다. 여행이나 또 외국은 물건을 하나 구입하더라도 운송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손수 자신들의 차량으로 운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벤을 택하기로 하고 여느 중고차 상회를 들렀다. 중고차 상회에서 외국인 딜러를 만나게 되었는데 아주 성심 성의껏 설명을 해주고 자신도 4년 전 보스니아 내전 때 이 나라로 이민을 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동병상련 이라고 같은 처지에 있는 그를 도와주고 싶었고 또 그곳에 꼭 마음에 드는 벤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개인이 사용했고 마일리지가 낮게 기록된 벤을 구입하게 되었다. 차량 구입이후로 남편과 그 딜러는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고 자신의 집에 초청도 하고 아이들과 지내도록 주선도 해 주며 차량 오일교환이나 점금시에 자신이 약속 시간을 정해 집으로 통보해 주곤 했다. 그때 그 이후로 지금 이 글을 적는 순간에는 승용차 한대를 더 그곳에서 구입하게 되었고 나의 애마인 밴은 그다지 말썽 피우지 않고 잘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