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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greenon
프랭크의 수석과 목조각 공예와 모니카의 케나다의 삶을 주제로 살아 나가는 생활상을 소개하고 함께 하는 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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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장기 근속으로 직장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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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장기근속으로 직장을 청산 내가 몸담아온 종합병원 그것도 1-2년이 아닌 전 직종을 합하면 23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일찍 전공한 임상병리사란 타이틀로 줄곧 근무를 해왔다. 오늘은 이제껏 감추웠던 이민에 대한 나의 결심을 발표하면서 사직서를 제출하는 날이다. 남편 역시 같은 직장에 근무를 했지만 남편보다 내가 먼저 입사를 했고 또 근무하는 근무지가 다르다. 그렇기에 나는 이미 장기근속 20년을 넘어서게 되었고 남편은 20년에 몇 개월이 모자랐기 때문에 내가 먼저 사직서를 제출하게 된것이다. 내가 정든 병원 직원들 앞에서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소식과 또 케나다로 이민을 간다는 소식을 접한 직원들은 모두가 너무나 놀라워했다. 한결같은 그들의 목소리는 첫째 어떻게 두사람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둘 수가 있으며, 둘째는 어느정도 삶의 기반을 단단히 굳혀놓은 상테에서 이민을 결정하게 되었는지, 셋째 40대 중반의 나이에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서 언어와 문화가 넘나도 다른, 어린아이 걸음마 배우듯 어떻게 살아갈수 있으며 일부러 사서 고생은 왜 하는지에 대해 이 모든 것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원들은 실지 우리를 잘 안다. 하물며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도 잘안다. 삶의 질 평가에서도 항상 그들을 앞서 나갔던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결정되었고 새로운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새삶을 살기로 마음속에 굳게 맹세한 이상 이제 내가 가야만 하는 방향으로 전진해야 하지 않는가. 오랜 기간동안에 정말 한솥에 밥을 먹은 정든 식구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한번만으로 족하지 두번은 아니할 것이였다. 남편은 나보다 실지 또 다른 감회와 감정이 있었으리라. 난 이쯤에서 이야기를 돌려 남편에 대해 약간 언급을 하고져 한다. 그는 내성적인 소유자로서 어떤 주어진 일이나 목적이 있으면 꼭 그것을 해내고 말며 어떻게 보면 학구자 스타일이기도 하다.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페스하고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할 만큼 학구열이 대단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취미분야를 보면 낚시, 동양난 기르기, 야생화 기르기, 수석체집 및 좌대제작, 목공예등 다양하기도 하다. 여기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 가고픈 것은 그냥 취미삼아 하는 취미가 아니다는 것이다. 취미 한가지 한가지 마다 전문서적을 동원하여 연구하고 분석하고 실험하고해서 완전히 자기것으로 만든다. 어느정도 수준에 올라와 있느냐에 대해서는 그 분야의 동호회 어디에서든지 입증이 가능할 정도로 대충이라는 단어를 뜨올릴수 조차 없다. 이런 문제로서 나자신도 마음 고생을 많이 했고 입방아로 정말 수없이 싸웠지만 어떻게 보면 그사람의 성격과 연관된 모든일이였기에 나중에는 잊고 살기로 하였다. 이러한 연유에서 그는 직장에서도 능력있는 직원으로 평가되었고 상사로부터 주어진 모든 직무들을 유능하게 소화시켜내는 그야말로 인정받고 창조적인 한사람으로서 대우를 받았다. 이건 남편에 대한 자랑일지 몰르지만 그는 너무 부지런하다. 정말로 노년기가 실지 걱정이다. 잠이 없기 때문이다. 1978년 웨딩 마치를 울리면서 나는 그를 잠자리에서 일어나라고 깨워본적이 없고 그야말로 반대다 그가 나를 깨우는 것이다. 잘못하는 술이긴 하지만 술을 마시고 들어올때나 언제나 정확하게 그시간에 일어나서 나를 깨우는 것이다. 이부문에서 난 너무나 고맙게 생각한다. 또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각을 해본적이 없고 약속장소에서 늦어본 역사가 없다. 이러한 남편의 이야기를 이곳에 접목을 시키는 것은 그와 내가 같은 직장에 사표를 내면서 갖는 감정이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다. 남편의 취미생활에 대해 언급을 했듯이 그는 병원에 기여한 바도 상당수가 있다. 직원들의 단합과 친목 도모를 위해서 낚시회를 조성하여 총무직의 일을 무려 7년동안을 역임했는가 하면 난우회나 수석회등을 직접만들어 그 분야에 대한 많은 지식을 직원들에게 보급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환자들에 대한 배려의 일환으로 병원 구석구석에 문화공간코너들을 여러곳에 만들어서 주단위나 월단위로 수석전시나, 야생화전시,우표전시등등을 번갈아 가며 오고가는 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나 보호자들을 위해서 읽을거리 볼거리등을 제공함으로서 마음의 안정을 가질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또 직접 운영하면서 나보다 남다른 감정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모든것들을 못잊어 그는 사표를 쓰기 전에 자신이 수집해 왔던 수석들과 우표들을 병원에 기증을 하였으니 어느정도의 관심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고 본다. 사연이 이렇고 보니 정든 직장을 등지고 이별을 고하는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을 할수 있겠는가. 항상 나는 만남보다 이별이 더 힘이든다. 대부분의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