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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죽으리라
allellu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먼저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살겠다고 발버둥을 친다. 여기서 하나님과 인간의 생각은 엇갈리기 시작한다. 하나님을 향하여 인간이 하는 반역은 살겠다고, 살아있는 존재로 인정해 달라고 덤비는 것이다. “저는 죽어 마땅한 존재입니다. 저는 이미 죽었습니다”라고 받아들이면 될 것을 인간은 기어코 살아 있는 티를 내고 싶어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예수를 찾아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던 부자 청년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착각했다. 영생을 스스로 쟁취하려 애쓴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런 희망을 여지없이 짓밟으셨다. 아니, 사실은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가르쳐 주신 것이다. 

 

창세기 2장17절에는 아담과 하와에게 죽음이 선포된다. ‘선악과를 따 먹는 날에는’이라는 전제조건이 붙긴 했지만 실상 그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사람들은 성경을 토막토막 잘라서, 시간과 책 순서에 따라 읽고 싶어한다. 일부 신학자들과 교회에서는 성경의 사건 속에서, 인간들이 내놓은 행위의 결과에 따라 그것을 허겁지겁 수습하시는 하나님으로 가르친다. 명백한 오해이며, 허위다. 성경은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순간, 더 나아가 역사가 펼쳐지기 이전에, 이미 완료된 사건들을 나열하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곤란하다. 

 

그래서 창세기의 “정녕 죽으리라”는 선포는 로마서 6장의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진술과 연결되고,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는 에베소서 2장이 등장하는 배경이 된다.
그렇게 보면 성경은 하나님에 의해 죽음의 자리로 밀려간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휘말려 살아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것이 곧 구원 받은 자들이 이 세상을 통과하면서 겪게 되는 역사와 사건의 과정이며, 또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었다.

 

예수께서도 그것을 설명하셨다. 누가복음 8장에서 이미 죽었다는 판정을 받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향해 예수는 “아이야, 일어나라”는 한 마디로 살려내셨다.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열두 해를 하혈하던 여자, 병을 고치고 싶어 의사를 찾아 다니며 재산을 모두 날려버린,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죽은 여인을 고쳐주셨다. 또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썩은 냄새가 진동하던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셨다. 야이로의 12살 딸이나 12년 동안 하혈했던 여인이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을 내놓을 리는 없다. 육신이 부패했던 나사로 역시 스스로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 앞에 뭔가를 내놓을 능력이 없었다. 
성도는 그저 죽어 있는 그들에게 찾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힘입어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도착했을 때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계시록 7장)라는 찬양만 내놓는다. 면류관을 벗어서 반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자신의 행위는 무가치하다는 것을 아는 자들이다. 그들은 애초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자들”(이사야 43장)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하나님의 백성이 매우 드물다는 데 있다.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 평생 내달리는 자들이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있다. 구약성경 에스더 4장에 등장하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대목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들어 있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통해 일하셨다”고 감격하고, “우리도 에스더의 용기를 본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영광 돌리자”고 주먹을 불끈 쥔다. 

에스더는 페르시아 시대, 유대인으로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가 되었던 인물이다. 당시 왕의 총애를 받던 하만이라는 자가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당시 수산이라는 궁에는 베냐민 지파로서 바벨론 느부갓네살 때 포로로 잡혀온 모르드개는 남자가 살고 있었고, 에스더는 그의 사촌 여동생이었다. 그러나 부모를 일찍 잃어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딸처럼 키웠다.

구약 에스더는 10장에 이르는 짧지 않은 성경이지만 특이하게도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위기에 빠졌던 유대인들이 죽음을 각오했던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적절한 활약 덕분에 살아난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에스더’에는 인간의 역사, 특히 죽음에 직면한, 사실상 멸절 당할 수밖에 없는 택하신 성도의 삶 가운데 불쑥불쑥 관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무한히 느낄 수 있다. 
에스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5장과 6장에는 눈 여겨 볼 대목이 나온다. 5장 1절의 ‘그때에’와 6장 1절의 ‘그날 밤 왕은 잠이 오지 않아서’, 6장 4절의 ‘마침 그때에’라는 구절 등이다. 에스더는 물론 모르드개와 유대인 사회 전체가 위기에 빠진 가운데 기막힌 타이밍에 어떤 일들이 자꾸 벌어지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그날은” “이레가 되는 날에” 등등의 구절을 앞세워 이야기의 줄거리를 끌고 간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분이 PD가 되어서 구원의 이야기를 정교하게 연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에스더는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성도라는 존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죄와 사망에서 건져진 존재”라는 복음을 전하는 메시지다. 
더 나아가 에스더는 구원 받은 백성들이 역사와 개인의 종말 지점에 서서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회상하며 읽는 복음이다. 

죽음의 자리에서 건짐을 당한 이들이 드리는 찬양은 한결같다.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 주님은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만물을 창조 하셨으며, 만물은 주님의 뜻을 따라 생겨났고, 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권세와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계시록 5장)
하늘에 있는 성도들의 찬양에서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에스더의 고백과 각오에 대한 칭찬은 어디에도 없다. 
에스더의 그 고백은 단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둔 어린 양 예수께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던, 그 자신이 죽음의 자리로 먼저 가셨던 예수의 기도를 미리 보여주신 모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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