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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에 피는꽃 [ 임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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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다선일미

다선일미(茶禪一味)/문협 회원/고길자

건강이 신통치 않은 탓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 머물면서 유리창 너머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겨울나무의 부서진 색깔을 보면서 쓸쓸함 속에 마음을 비우던 시간을 뒤로 하고 어느새 느릿하지만 서서히 녹색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겨울의 찬기를 휩쓸고 지나간 한 줄기 바람은 자취를 감추었어도 대지가 받은 기쁨이 큰 듯 봄기운이 묻어있다. 며칠 동안 오락가락하던 비가 그치고 햇살이 고운 오후, 묵직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달래보려고 오랜만에 차를 달여보았다. 잘 우려진 설록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찻잎이 뿜어내는 생기와 향을 음미해 본다. 쌓였던 피로가 조금씩 풀리는 듯하면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음을 느낀다.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지나가게 마련이고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고통은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힘을 얻는다.

 

차의 대가 초의선사는 혼자 마시는 고독 속의 끽다(喫茶)를 이속(離俗)이라 하여 최상의 경지로 꼽았다. 차를 마시면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감각적 허위에서 벗어나 밝은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속세를 떠났다는 표현을 하신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예로부터 성현들이 차를 즐겨 마신 까닭은 차가 군자처럼 그 성미에 사악함이 없고 갈증과 피로를 풀어 몸과 마음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라 한다. 조상들은 찻잎을 따고 덖어서 마시기까지 일관된 예법인 다도를 만들어 그 법도 안에서 차를 마셨는데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차와 선의 관계를 “다선일미” 혹은 “선다 일여”라고 말한다.

 

선이 망상과 집착에 물든 자신의 내면을 살펴서 순수한 참모습을 찾는 것이라면 한 잔의 차를 통해서도 잡념을 없애고 심신을 맑게 하여 자신을 통찰할 수 있기 때문에 차와 선이 한 맛이요 하나와 같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조주 스님은 120년 동안 세상에 머물면서 뛰어난 선기(禪氣)로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스님을 찾아와 “도”를 묻는 모든 이들에게 대답 대신 “차 나 한 잔 들고 가시게”라고 권유하여 저 유명한 “조주끽다거”라는 화두를 세상에 남겼다. 마음의 경지가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차별하지 않고 차 한 잔을 권하는 스님의 선풍은 다선일미라는 생활 선으로 만인을 깨우치게 하였던 것이다.

 

어떤 모임이나 찻집에서 여럿이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면서 큰 소리로 정치 얘기나 남의 얘기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 나는 그들이 차에게 결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차를 대여섯이 마시면 저속하다는 옛 다인의 말씀을 떠올리며 차를 대하는 마음을 되새겨본다. 고독 속에 홀로 마시는 이속의 차도 좋겠지만 가끔씩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차 한잔을 앞에 놓고 눈빛만 보아도 편안하고 향기로운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어설픈 외래어나 어려운 말 보다는 늘상 쓰는 우리 말 중에서 쉽고 고운 말을 주고받으며 소소한 행복을 나누고 싶다. 찻잔도 너무 화려한 것보다는 초라하지 않으면서 수수하고 기품이 있는 것이면 좋겠다.
몇 년 전 고국을 방문했을 때 인연 있는 스님으로부터 한국 최고의 명인이 만들었다는 고급 다구 셋트를 선물로 받았다. 어설프게 알고 있던 다도를 제대로 배워서 우아하고 격조 있게 차를 마셔보겠다고 벼르던 중 생각지도 못한 팬더믹을 만났다. 가까운 사람들과 남편을 모두 잃고 나 자신마저 병마와 싸우면서 그 꿈은 아직도 상자 안에 갇혀있다. 건강을 되찾는 날이 오면 상자 속의 다구를 펼쳐놓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삶의 지혜를 나누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다.

 

출처...부공산 카나다  

 

 

 

생일 선물

기고 칼럼    부동산 캐나다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31 전체: 191,705 )

생일선물     2024-08-01

 

 

 고길자(문협회원)


이른 아침 창문을 활짝 열고 싱그러운 5월의 봄 향기를 집안 가득 받아들이면서 화초에 물을 주고 있는데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벽시계를 바라보니 오전 7 시35분, 이 시각에 누구일까 궁금히 여기며 집어 든 수화기 너머로 처음 듣는 걸쭉한 남자의 쩌렁쩌렁한 음성이 고막을 때렸다. “서예하는 고 선생이시죠? 붓글씨 한 장 써 달라고 전화했습니다”로 시작된 그분의 이야기는 내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계속되었다. 하도 목소리가 커서 수화기를 귀에서 멀리하고 조금은 무례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여든 살이 넘어서 얻은 귀한 손자에게 며칠을 밤낮으로 연구하여 좋은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우리말을 전혀 모르는 서양 며느리는 단 한 번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을뿐더러 아들마저도 서양 이름만 고집한다는 것이었다. 일부러 큰소리로 손자 이름을 부르며 아기에게 가까이 갈라치면 며느리가 놀라서 애를 안고 얼른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단다. 자식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상실감 속에서 어쩌면 영원히 묻히고야 말 손자의 이름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고심 끝에 아이의 생일잔치에 붓글씨를 써서 벽에 걸고 기념사진을 찍을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가로 80센티, 세로 40센티 크기의 화선지에 ‘축 김동현의 첫 돌’이라는 문구를 써달라고 했다. 꼭 해야 할 일들이 밀려 있는 데다가 다리수술로 활동이 자유스럽지 못한 나로서는 쉽게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어떻게 하면 이 노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거절을 할 수 있을까 망설이는 순간, “저 세상에 간 집사람이 너무 그립다”며 감정이 격하여 말을 잇지 못하는 그 노인의 흐느낌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 거절 대신 “알았다”는 대답을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침에 받은 전화가 온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다른 낯선 땅에서 아내를 잃고, 홀로 된 노인이 겪는 소외감과 고독의 부피가 묵직하게 나의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나는 다른 일들을 뒤로 미루고 서예 도구를 챙겼다. 화선지를 마름질하고 먹을 갈았다 오랫동안 멀리했던 붓을 들고 한 자, 한 자 써보았다. 손이 떨리고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지난 사오 년 동안 평생 겪어도 될 만큼 어려운 일들을 감당하느라 심신이 지쳐 있었던 탓에 소중한 나의 친구인 붓을 가까이하지 않은 결과였다. ‘앞으로는 늘 붓과 함께 하리라’ 다짐하면서 심호흡을 크게 하고 쓰고 또 쓰고를 반복하였다. 몸은 비록 서양에 있으나 정신은 한국인임을 잊지 않으려는 한 노인의 염원을 담아 흡족하지는 않지만 글씨 크기가 고르고 간격이 적당한 한 점을 완성하였다. 뻣뻣해진 다리와 시큰거리는 손목을 주무르면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약속 시간에 맞춰, “말씀하신 재료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동현이의 첫 생일을 축하하는 저의 선물입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서예품을 경비실에 맡기고 밀린 일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진 내 어깨 위로 한낮의 눈부신 빛이 바람결에 내려앉고 있었다.

출처   부동산 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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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3
사랑한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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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5
눈물이 나도록 살아라

 

 

 

 

깊은 감동의 글 .

-
"눈물이 나도록 살아라".

.
(Live to the point of tears) , 감동글 입니다.

   
영국에 살던 두 아이의 엄마 샬롯 키틀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36세,  대장암 4기 진단후 간과 폐에 전이되어 25회 방사선 치료와
39번의 화학 요법 치료도 견뎌 냈지만 끝내.      
    
그녀가 남긴 마지막
블로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살고 싶은 나날이 이리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
(become grumpy with my husband)
늙어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 소리지르는
(shout at my children to wake up,
hurry up and clean their teeth)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살고 싶어서. 해보라는 온갖 치료
다 받아봤어요.
기본적 의학 요법은 물론
(not to mention the standard
medical therapies)
기름에 절인 치즈도 먹어보고
쓰디쓴 즙도 마셔봤습니다. 침도 맞았지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귀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feel like a waste of precious time).     
    
장례식 문제를 미리 처리해 놓고 나니
(sort out my funeral in advance)
매일 아침 일어나 내 아이들 껴안아 주고
뽀뽀해 줄 수 있다는게
(have a cuddle and kiss my babies)
새삼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얼마 후 나는 그이의 곁에서 잠을 깨는
(awake next to him) 기쁨을 잃게 될 것이고
그이는 무심코 커피잔 두 개를 꺼냈다가
커피는 한 잔만 타도 된다는 사실에 슬퍼하겠지요.   
 
딸 아이 머리 땋아줘야 (plait her hair) 하는데. ,
아들 녀석 잃어 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는 저만 아는데 .
그건 누가 찾아 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be given six mother to live)
22개월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로 얻은 덕에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 주는
(walk my son for his first day at school)
기쁨을 품고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녀석의
첫 번째 흔들거리던 이빨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보너스 1년 덕분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중년의 복부 비만 (middle-age spread)이요?
늘어나는 허리 둘레 (expanding waistlinr),
그거 한번 가져 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 (greying hair) 이요?  
그거 한번 뽑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 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꼭 붙드세요
(keep a tight grip on your life with both hands).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Live to the point of tears.'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눈물이 나도록 살아라

.

jny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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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엄마 미안해

.

 

친구 집 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가사도우미 아줌마가...

 

2달 정도 전부터 엄마가 일을 다니시지만, 어디로 다니는지 아무것도 몰라

물어봐도 엄만 말도 안 해주고 그냥 말 돌리고 그러셨어.

우리엄마가 나쁜 일 할 사람도 아니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었어..

내가 나 때문이냐고 물어봐도 엄마는 집에서 놀면 뭐하냐고
조금이라도 벌어서 엄마 용돈 쓰려고 한다고 그러셨었지..

나는 정말 그런가? 하고 바보같이 넘어 갔었어..

그리고 오늘 방학해 친구집에 놀러가기로 했는데, 친구 집이 우리학교에서

버스를 2번이나 갈아타고 가 거의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야.

애들이랑 한 5명정도 친구집에 가서 영화도 보고 맛있는 거도 먹기로 했어.

이때까지는 진짜 즐거웠어.

첫번째 버스 탔을 때 애들이랑 방학식이라 신난다고 장난도 치고 수다를

떨면서 갔지.

그리고 버스 갈아타려고 내려서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집주인 친구가

집에 전화걸어서 아줌마 저 친구들이랑 갈거에요.
"맛있는 거 좀 해주세요" 이렇게 말하더니,

"너네 뭐 먹고 싶어?" 이러는 거야.

우리는 우물쭈물하면서 당황했었지.. 아줌마보고 음식을 해달라니까..

그러니까 얘가 그럼 나 먹고싶은 걸로 할게~ 하더니,

"떡볶이랑 주먹밥 해주세요. 과자랑 주스도 사다놔 주세요. 네 저까지

5명정도 갈 거에요."

"거실이랑 제 방도 치워주시구요"
이러고 끊는 거야.

우리는 "뭐야? 누구야?" 이러니까,

"아 우리 집에 새로 온 일하는 아줌마" ㅋㅋ 이러는 거야.

우리는 집에 아줌마 고용한다길래 너네집 좀 잘 사나보다? 이러면서

장난치면서 얘네집에 갔어.

얘네집이 아파트였는데, 되게 넓고 좋은 아파트였어..아줌마 있을만하구나.

.하고 들어가는데...

비밀번호도 있는데 친구가 벨을 누르는 거야. 집에 사람이 있으면 열어주면

되는데 내가 왜 비밀번호를 누르냐고..

그래서 그냥 얜 이런가보다 하고 들어가려는데,
"우리는 안녕하세요~" 하면서 고개숙이고 인사하고 아줌마께서는

"왔니?" 라고 말하시고,

고개를 딱 드는데 우리엄마가 서 있는 거야.  그 일한다는 아줌마가 우리

엄마였던 거야.

내 친구가 요리해 놓으라고 시키고, 청소하라고 시킨 사람이 우리 엄마였어.

그 순간 진짜 누가 망치로 내 머리를 쿵 하고 내리찧는 기분이었고, 심장도

엄청 빠르게 뛰면서 엄마만 쳐다보면서 아무말도 못하고 눈물날 것 같은 거야.

엄마도 당황해서 나 보더니 아무말도 못하시고 내 눈 피하시면서,

빨리 들어와서 떡볶이먹으라고 식겠다고 그러시는 거야.

애들은 우와~ 이러면서, 빨리먹자 배고파ㅠㅠ 이러고..
나만 혼자 가만히 서있는데,

애들이 야 뭐해 ㅋㅋㅋㅋ
이러면서 데리고 식탁에 가서 앉았는데 눈물날 것 같아서 고개 숙이고 있는데,

애들이 떡볶이 퍼주고 한 사람앞에 하나씩 주먹밥도 만들어져 있고..

엄마는 저 쪽 옆에 씽크대 옆 테이블에 서서 과일깎고 계시고..

애들은 맛있다고 먹는데, 난 못 먹겠는 거야. 평소에 나한테도 해주던 떡볶인데..
아 뭐지..어떻게 해야 되지..

엄마는 내가 아는척 안 해서 속상하려나..
우리 엄마라고 말해야 되는데.. 이런 생각하면서 눈물을 참고 있는데..

친구가 빨리 먹으라고 나한테 하나 집어 주는거야.
그거 웃으면서 집어드는데 눈물이 확 나는 거야.

애들은 당황해서 너 왜 우냐?고 갑자기 왜 그러냐고 떡볶이가 맛있어서 감동했냐고

그러는데,

아무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울었어.
그러다가 고개들고 엄마 쳐다보니까,

엄마도 울먹거리면서 과일을 계속 깎는 거야.

근데 그때 집주인 친구가, "아줌마 휴지 좀 주시고 자리 비켜 주세요." 이러는데,

엄마가 어? 어 그래.. 이러고 휴지 찾으러 가려는데 친구한테 너무 화나는 거야.

우리 엄마한테 뭐해 달라고 자꾸 시키는 것도 화나고 당당하지 못한 나한테도 화나고,

그냥 나한테 너무 화가 나서 친구보고 됐어, 시키지마, 이러고 눈물을 닦는데,

친구가 당황해서 뭐? 이러고 있는데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방들고 엄마 쳐다 보는데,

엄마가 고개 저으면서 그냥 고개 숙이시는데 울컥하는 게 올라와서,

그대로 일어나서 가방 메고 엄마한테 가서 엄마 가자 하고, 엄마 잡았음.
엄마는 그냥 고개 숙이고 계시고,

애들은 뭐라고? 쟤 뭐라고 했어?.. ....
이러고 정적 흐르고 자기들끼리 눈짓주고받고 다들 어쩔줄 몰라하는데...

주방 한 켠에 엄마 가방이 보이길래 그거 들고 그대로 엄마보고 가자고 엄마 끌고

나오면서,

집주인 친구 보고 이 아줌마 우리 엄마야. 네가 그렇게 시녀부리듯 시키는 거 보니까...

하면서 또 눈물이 나는 거야.

어쨋든 우리엄마 여기서 일 안 해, 안 할 거야. 오늘 분위기 망쳐서 미안해.
이러고 먼저 문 열고 나옴.

엄마는 집주인 애보고 미안하다고 엄마한테 내가 연락드릴게. 친구들한테는 분위기

망쳐서 미안하다. 맛있게 먹고 놀다 가.

○○이 이해해 줄 수 있지?.. 라고 하고 나오심.

엄마랑 집에 가는 내내 한마디도 안 하고 왔어.

집에 갈 때까지 내가 먼저 앞서서 걷고 엄만 뒤에서 쫒아는데 너무 울컥 하는 거야.

내가 뭘 잘했다고 엄마가 나한테 미안해하고.

기 죽어야 하나?
내가 나쁜년인데 하는 생각에 뒤 돌아서 엄마 손 잡고 집에 옴.

그리고 집에 와서 지금까지 서로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엄마는 안방에서, 나는 내 방에서

울었어.

그리고 좀 후에 엄마가 밥 안 먹었으니까 밥 먹으라고 했는데 안 나갔어..

안 먹는다고 그러고 울다 지쳐서...
누워만 있었어..누워서 생각해 보니까 엄마는 내 학원비 보태시려고 일하시는 거였어..

내가 예체능 하는데 아빠는 반대하셔서 엄마가 좀이라도 보태려고...

맨날 예체능하겠고 아빠랑 싸워서 엄마도 중간에서 많이 힘드셨나봐. 그래서 엄마가

일하신거고,

나는 정말 나쁜 년인 게, 내가 엄마가 나때문에 일한다는 거를 무의식중에 알면서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

솔직히 아빠가 돈 내주면서 욕하고 혼나고 싸우는 거보다
엄마가 일 해서 돈 내주면 그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

근데 엄마가 내 친구집에서 아줌마로 일하고 있을 줄은 몰랐지..

진짜 어떡하지. 엄마한테 너무 미안해. 다 내 욕심 때문에 엄마가 자존심을 버린거 같고..

아까 친구집에서는 너무 화도 나고 이런저런 생각도 못하고 눈에 닥치는대로 엄마만

데리고 집에 왔어.

엄마는 일부러 집에서 먼 곳에서 일한다고 하신 건데 거기가 내 친구집일지 모르셨겠지..

그리고 이거 쓰다가 친구들한테 카톡이 왔는데,

○○아, 우리 걱정하지 말고 엄마랑 잘 풀어ㅠㅠ 울지말고ㅠㅠ

우리도 너 가고 얼마 안 돼서 집에 갔어ㅠㅠ

뭐라고 해야될지 모르겠다..

○○아, 울지 말고 엄마하고 말 잘했으면 좋겠다.

너희 어머님 떡볶이 진짜 맛있어!

어머님께 전해 드려줘 ♡카톡해~

이런 식으로 카톡이 왔어..
진짜 친구들한테도 너무 고맙고..
이해해 주는 것 같아서..

근데 카톡 안 온 2명은 좀...
얘네가 소문낼까봐 무섭기도 하고...

엄마 다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소문날까 걱정하는 내가 한심하고,

집주인인 친구는 너한테 뭐라고 말은 해야 되는데 뭐라고 해야될지 모르겠다..

새로 오신 분이 너희 어머님일지는 생각도 못 했었어..

너도 모르고 있던 것 같고ㅠㅠ.. 진짜 아줌마 아줌마 거리면서 시킨 거는 내가 원래 있던

아줌마하고 엄마처럼 지내서..편해서 그랬던거야ㅠㅠ 오해하지 말아줘..

너한테도 미안하고 아줌마한테도 죄송하다고 전해줘..

엄마한테도 내가 잘 말씀드릴 게.. 엄마한테 뭐라고 하지말고 말로 잘 풀어!

절대 싸우고 그러지말고ㅠㅠ
진짜 뭐라고 해줘야될지 모르겠어..

그냥 사랑해♡
난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너가 상처 안 받았으면 좋겠다ㅠㅠ 진심이야!

이렇게 카톡이 왔음.
그래서 더 엉엉 울었어..

친구들 생각도 못하고 내 생각만 해서 친구들이 기분나빴으면 어땠을까?

친구들끼리 모여서 내 얘기하고 나 쌩까면 어떡하나, 이제 방학인데 진짜 난 왕따겠구나 싶고...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계속 울었는데 저렇게 카톡이 먼저 와서 그래도 안심이 돼..

그리고 이거 쓰다가 엄마한테 또 문자가 왔는데,

딸, 일 하러간 엄마를 친구집에서 보고 당황했겠다 그치?

엄마는 너가 속상해 할까 봐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들통나 버렸어. 세상엔 비밀이 없다는데, 진짜로 그렇네.

엄마가 본의 아니게 속여서 미안하고, 친구들하고 곤란하게 만들었을까봐, 걱정이된다.
그래도 엄마는 딸한테 고마워.

친구들 앞에서 엄마를 창피해 할까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는데,

거기서 너가 엄마라고 불러줘서 정말 고마웠어.

집에 오는 길에 너가 엄마손을 잡아줘서 엄마는 우리 딸이 다 컸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더라.

그래도 너가 울면 엄마 속은 뭉개져.

엄마는 너가 잘 되면 좋겠고, 너가 원하는 걸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너를 위해서 일을 한

건데, 그게 널 이렇게 속상하게 할 줄을 몰랐어.

엄마가 다 미안하고 고마워.
저녁땐 나와서 같이 밥 먹자 사랑해.

이렇게 여러번 문자가 끊겨서 왔어..
괜히 더 눈물난다 이거 다 쓰고 엄마 안아주러 갈거야..

진짜 오늘처럼 많이 운 적은 없던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는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얘들아, 엄마한테 잘하자, 진짜..

.

jny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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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35
1990
2017-05-20
눈물 나는 결혼 이야기

 

 

2015-06-05
눈물 나는 결혼 이야기

 

 

기억을 잃은 신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린 신랑이 8년 만에 결혼식을 올리며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전했다.

 

지난 2월 유튜브에는 <8년 만의 결혼식>이라는 제목의 감동적인 영상이 소개됐다.

 

사연의 주인공인 나카하라 히사시(中原尙志·34)와 신부 마이(麻衣·32)는 약 8년 전인 2006년 7월 결혼을 약속했다.

 

그런데 결혼식을 석달 앞둔 2006년 12월에 마이가 100만명 중 0.33명 꼴로 걸린다는 항NMDA수용체 뇌염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

 

이때부터 병마(病魔)의 길고 긴 싸움이 시작됐다. 마이의 부모는 신랑에게 다른 사람을 만날 것을 권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묵묵히 신부 곁을 지켰다.

 

 

5년 후인 2011년 봄, 마이는 무사히 퇴원했다. 하지만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에 걸리면서 신랑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희귀병에 이은 기억상실까지, 끝이 정해지지 않은 기다림이었지만 신랑은 단 한 번도 신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갸륵한 마음이 하늘에도 통한 것일까. 어느 날 마이는 결혼식 날짜가 쓰인 옛날 수첩에서 과거 신랑과 찍은 스티커 사진을 발견했다.

 

기적처럼 기억이 되살아난 마이는 마침내 신랑과 눈물겨운 재회를 했고 지난해 6월, 8년이라는 긴 기다림의 마침표를 찍고 결혼식을 올렸다.

 

현재 신부는 곧 출산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해당 영상은 조회 수가 65만 건을 넘어서며 여전히 큰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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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18
1990
2009-01-14
갈처사와 숙종대왕
갈처사와 숙종대왕 숙종대왕이 수원성 고개 아랫쪽 냇가(지금 수원천 부근)를 지날 무렵 허름한 시골 총각이 관 하나를 옆에 놔두고 슬피 울면서 땅을 파고 있는게 아닌가. 상을 당해 묘를 쓰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파는 족족 물이 스며 나오는 냇가에 묘자리를 파고 있는 더벅머리 총각의 처량한 모습에 "아무리 가난하고 땅이 없어도 유분수지 어찌 송장을 물속에 넣으려고 하는지 희한도 하다" 그래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며 다가갔다. "여보게 총각, 여기 관은 누구 것인고?" "제 어머님 시신입니다" "여기는 왜 파고 있는고?" (짐짓 알면서 딴청으로 묻는다) "묘를 쓰려고 합니다." 짐작은 했지만 어처구니가 없는 숙종이다. "여보게, 이렇게 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어찌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하는가?" "저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갈처사라는 노인이 찾아와 절더러 불쌍타 하면서 이리로 데려와 꼭 이 자리에 묘를 쓰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 분은 유명한 지관인데, 저기 저 언덕 오막살이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총각은 옷소매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자신의 곤혹스런 처지를 처음 보는 양반 나리에게 하소연하듯 아뢰었다. 숙종이 가만히 듣자하니 갈처사라는 지관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궁리 끝에 지니고 다니던 지필묵을 꺼내어 몇 자 적었다. "여기 일은 내가 보고 있을 터이니 이 서찰을 수원부로 가져가게. 수문장들이 성문을 가로 막거든 이 서찰을 보여주게." 총각은 또 한 번 황당했다. 아침에는 어머님이 돌아가셨지. 유명한 지관이 냇가에 묘를 쓰라고 했지. 이번에는 웬 선비가 갑자기 나타나 수원부에 서찰을 전하라 하지. 도무지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추어야 할 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급한 발걸음으로 수원부로 가게 되었다. 서찰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명! 수원부사는 이 사람에게 당장 쌀 삼백 가마를 하사하고, 좋은 터를 정해서 묘를 쓸 수 있도록 급히 조치하라. 수원부가 갑자기 발칵 뒤집혔다. 허름한 시골 총각에게 유명한 지관이 동행되지 않나, 창고의 쌀이 쏟아져 바리바리 실리지를 않나. "아! 상감마마, 그 분이 상감마마였다니!" 총각은 하늘이 노래졌다.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냇가에서 자기 어머니 시신을 지키고 서 있을 임금을 생각하니, 황송하옵기가 말할 수 없었다.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놀라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한편 숙종은 총각이 수원부로 떠난 뒤 단단히 혼을 내 주려고 총각이 가르쳐 준 갈처사가 산다는 가파른 산마루를 향해 올라갔다. 단단히 벼르고 올라간 산마루 찌그러져가는 단칸 초막은 그야말로 볼품이 없었다. "이리 오너라" "..............." "이리 오너라" ".............." 한참 뒤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게 뉘시오?" 방문을 열며 시큰둥하게 손님을 맞는 주인은 영락없는 꼬질꼬질한 촌 노인네 행색이다. 콧구멍만한 초라한 방이라 들어갈 자리도 없다. 숙종은 그대로 문밖에서 묻는다. "나는 한양 사는 선비인데 그대가 갈처사 맞소?" "그렇소만 무슨 연유로 예까지 나를 찾소?" "오늘 아침 저 아래 상당한 총각더러 냇가에 묘를 쓰라했소?" "그렇소" "듣자니 당신이 자리를 좀 본다는데 물이 펑펑 솟아나는 냇가에 묘를 쓰라니 당치나 한 일이요? 골탕을 먹이는 것도 유분수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요? " 숙종의 참았던 감정에 어느새 격해저 목소리가 커졌다. 갈씨 또한 촌노이지만 낮선 손님이 찾아와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비란 양반이 개 코도 모르면서 참견이야. 당신이 그 땅이 얼마나 좋은 명당터인 줄 알기나 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통에 숙종은 기가 막혔다. (속으로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어디 잠시 두고 보자 하고 감정을 억 누르며) "저기가 어떻게 명당이란 말이오?" "모르면 가만이나 있지, 이 양반아 저기는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쌀 3백가마를 받고 명당으로 들어가는 땅이야.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발복을 받는 자리인데 물이 있으면 어떻고 불이 있으면 어때? 개코도 모르면 잠자코나 있으시오" 숙종의 얼굴은 그만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갈처사 말대로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총각은 쌀 3백가마를 받았으며 명당으로 옮겨 장사를 지낼 상황이 아닌가! 숙종은 갈처사의 대갈일성에 얼마나 놀랬던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공손해 진다. "영감님이 그렇게 잘 알면 저 아래 고래등 같은 집에서 떵떵거리고 살지 않고 이런 산마루 오두막에서 산단 말이오?" " 이 양반이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있을 것이지 귀찮게 떠들기만 하네" "아니, 무슨 말씀인지" 숙종은 이제 주눅이 들어 있었다. 저 아래 것들은 남 속이고 도둑질이나 해 가지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 가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도 여기는 바로 임금이 찾아올 자리여. 지금 비록 초라하지만 나랏님이 찾아올 명당이란 말일세" 숙종은 그만 정신을 잃을 뻔 했다. 이런 신통한 사람을 일찍이 만나본 적이 없었다. 꿈속을 해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왕이 언제 찾아옵니까?" "거, 꽤나 귀찮게 물어 오시네. 잠시 기다려 보오. 내가 재작년에 이 집을 지을 때에 날 받아놓은 것이 있는데, 가만.... 어디에 있더라" 하면서 방 귀퉁이 보자기를 풀어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먼지를 털면서 들여다 보더니...... 그만 대경실색을 한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에 나가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종이에 적힌 시간이 바로 지금 이 시간이었다. 임금을 알아 본 것이다. "여보게.... 갈처사, 괜찮소이다. 대신 그 누구에게도 결코 말하지 마시오.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 뭍힐 자리 하나 잡아주지 않겠오" "대왕님의 덕이 높으신데 제가 신하로서 자리 잡아 드리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어느 분의 하명이신데 거역하겠사옵니까?" 그리하여 갈처사가 잡아준 숙종의 왕릉이 지금 서울의 서북쪽의 서오릉에 자리한 "명릉"이다. 그 후 숙종대왕은 갈처사에게 3천냥을 하사하였으나, 노자로 30냥만 받아들고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이야기입니다
jny0801
jny0801
40481
1990
2008-10-11
따듯한 어머님의손 [옴가는글]
따뜻한 어머님의 손 날씨 덥기로 보면 아직 한 여름이다. 그러나 지나는 날들이야 어찌 막으랴 추석의 대 명절 선물 보따리 행렬에 미소 가득 찬 얼굴들이 보름달처럼 환하게 고향으로 달려가곤 한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 따라 철 이른 코스모스가 길손을 맞이한다. 예전엔 동네 어귀 저 멀리 발자국소리에도 뉘 네 집 아들이여 하며 예감하시든 그 아버님, 어머님 이젠 너무나 뒤바뀐 세월의 차량행열만 물끄러미 바라 볼 뿐이다. 손자 손녀들이 앞장을 서고 반백이 된 자식이 할아버지를 아버지를 불러보며 뜁니다. 하나 둘 떠난 빈자리 외로이 남은 마루턱에 걸터앉아 큰 소리로 누굽니다 해야 얼굴 어루만지며 억센 손으로 남은 눈물 훔치신다. 멍석에 말리고 있는 붉은 고추 툇마루 구석마다 아무렇게나 얹혀있는 호박들 사이사이에 끼여 있는 사랑의 봉지 당신께서만 아시는 첫째네, 둘째네 것 가슴속에 있는 그대로 당신의 입에 넣어 보질 못한 가격도 없는 최상품 말이다. 허리를 얼마나 굽혔다가 펴야 저렇게 영걸 것인지 자동차가 집이고 신발인들 어찌 알겠는가? 놀고 쉬는데서 인생을 얻는 것이 아니고 한 걸음 한걸음 걸어 온 속에서 뿌리가 내리고 과일이 익혀질 것이다. 얼굴에 폐인 주름살과 억센 손발을 보고 애처로이 하지 말고 땀이 흐를 때 눈물과 콧물을 닦든 그 치맛자락으로 쓱 닦아 주시던 숟가락의 마음을 알았으면 한다. ‘석 달 열흘(100일)간 장마의 흙탕물이 더럽다고 세수를 하지 않은 사람보다 그래도 그 물에 세수를 한 사람이 깨끗하다‘는 말이 생각난다.
jny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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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35
1990
2007-07-06
바람따라 흘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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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ny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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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57
1990
2007-06-19
살가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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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ny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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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57
1990
2007-05-21
꽃 향기가 스트레스 감소 시킨다
꽃 향기가 스트레스 감소 시킨다 2007/05/22 오전 8:03 | 좋은 글 모음 꽃 향기가 스트레스 감소시킨다 [YTN뉴스] 2007년 05월 21일(월) 오후 06:08 가 가| 이메일| 프린트 [앵커멘트] 식물에서 추출한 향기가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고 치료에 이용되는 '아로마 테라피'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생화를 이용한 이른바 '플라워 테라피'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임상호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실험용 쥐를 전기로 자극해 스트레스를 준 뒤 꽃이 있는 투명 상자와 없는 상자에 넣었습니다. 1시간이 지난 뒤 꽃이 있는 상자의 쥐는 대부분 평온하게 잠이 든 반면 꽃이 없는 쪽의 쥐들은 여전히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험을 볼 때 한 쪽 반에는 꽃을 놓고 다른 반은 그냥 시험을 치렀습니다. 꽃이 있는 쪽의 학생들은 편안하게 시험을 봤다는 응답이 많았습니다. [인터뷰:최윤성, 초등학교 6학년] "문제도 쉽게 풀리고 또 냄새 때문에 머리가 맑아지는것 같고, 어쨌든 시험이 쉬웠어요." [인터뷰:김하빈, 초등학교 6학년] "꽃 냄새 맡으니까 향기 때문에 스트레스 별로 없었고, 시험도 점 더 쉬웠던 것 같아요." 실험용 쥐의 혈액과 학생들의 침을 채취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증가하는 호르몬인 코티졸의 농도를 측정해 봤습니다. 실험용 쥐는 코티졸 농도가 평소 ml(밀리 리터)당 평균 150ng(나노그램)이었는데 꽃이 있는 상자의 쥐는 50ng으로 줄었고 170ng이던 학생들의 코티졸 농도는 150ng으로 감소했습니다. 꽃 향기가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기자] 실험결과 스트레스 완화에 효과가 있는 꽃은 '나팔나리'와 '나도풍란'이었습니다. 이 꽃들의 향기 속에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테르펜계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김광진,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 연구사] "아로마 테라피만 알려져 있는데 생화를 직접 해봐도 스트레스를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향이 너무 강하거나 없는 꽃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YTN 임상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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