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계정 찾기 다시 시도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역경에 피는꽃 [ 임정남]

jny0801
41101A39-E7A2-444D-B190-2B0C3AE4C9D7
2540
Y
jny0801
jny0801
102889
1789
2023-01-28
제 3의 고향 토론토

 

제 3의 고향 토론토

 

오늘은 1 월 14 일 이날은 내 일생에 아주 커다란 변화가

시작된 날입니다.

바로 제가 카나다에 이민 온 날입니다.

1977 년 1 월 14 일 오후 10 시 김포 공항을 출발 일본에서

벤쿠버 가는 비행기로 갈아 타고 다시 토론토로 오는 비행기로

갈아 타고 마침내 긴 여정을 마치고 토론토에 도착 했습니다.

그날 잊을 수 없는 것은 벤쿠바엔 비가 내리는데 토론토에 도착

하니 마이너스 23 도에 눈보라가 몰아치는 아주 험상 궂은 날이

었읍니다.

우리 식구는 빅토리아팍에 있는 형 네 집에 여장을 풀고 카나다의

이민 생활이 시작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46년이란 세월이 흘러 갔습니다.

35살 이었던 내 나이는 81살이 되었고 13살이었던 딸은 59살이

되었고 9살이었던 아들은 55살이 되었습니다.

나는 오자 마자 영어를 배우는 멘파워수쿨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6개월을 다니는 동안 영어를 배우며 주일마다 돈까지 받았읍니다.

이기간은 참으로 꿈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멘파워 수쿨이 끝나자 곧 생활 전선에 뛰어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호텔 정리 원으로 6개월 다음 접시 닦기로 6개월 그리고

집사람이 마련한 돈과 이웃의 도움으로 영과 로렌스에 있는 허술한 가게를 매입 운영하기 시작 했습니다.

빈손으로 시작한 가게 이다 보니 난관이 이만 저만 아니 었으나

차차 자리를 잡혀가기 시작 했습니다.

가게를 하다 보니 실협을 알게 되었고 이사로 15년 열심히 뛰었고

한인회도 20 년 이사로 열심히 뛰었습니다.

나아가 시니어 골프협회 불교인회 무궁화 사랑모임 등에도 참여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했습니다.

또한 인터냇 활동도 열심히 하여 6개의 홈피를 운영 중에 있으며

방문수가 현재 700만을 넘어 섰습니다.

카나다에 이민 올 때 맨 몸으로 특별한 기술도 없이 가족을 이끌고

이민 생활을 시작 어려움도 없지 않았으나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으며

늘 분에 넘치는 행복을 누렸습니다.

또한 보람이 넘치고 벅찬 희망 속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46년 동안 정이 너무 들었습니다.

이제는 이곳이 나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3번째의 고향 인 것입니다.

첫 번째의 고향은 내가 타고 난 곳 경기도 개성 입니다.

그러나 6 25 전쟁으로 9살때 구사 일생으로 피난 나온 나에게는 고향집도 희미하고 친구의 얼굴도 이름하나 기억에 없는 희미 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두 번째의 고향은 서울입니다.

이곳 저곳 떠돌던 피난살이 해어진 형과 만나 정착 하게 된 곳은

서울 동대문구의 전농동 입니다.

12살의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 공부 19살에 학교를 떠나 공사판에

떠돌다 시작한 구멍가게 고달픈 생활이었지만 작은 봉사 속에 큰 보람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나의 봉사 생활이 언론에 나고 수기가 당선 되고 티비 단막극으로

라듸오 연속으로 36회 방송 되었을 때 얼마나 감격 했는지 23 년을

살아온 서울은 저의 제2의 고향인 것입니다.

오늘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을 합니다.

내일의 아름다운 이민 생활을 위해서.

멋진 이민 생활이 되도록 성원 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  

jny0801
jny0801
102235
1789
2023-01-01
2023년 새해인사

. 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감사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이 풍성한 결실로 맺혀지기를 기원합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jny0801
jny0801
102031
1789
2022-12-23
가슴 뛰는 한해 였읍니다

가슴 뛰는 한 해였습니다

jungnam     2022-12-22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12월도 하순에 접어들어 미풍에도 날아갈 듯한 조각만 남았습니다. 매년 이 때가 되면 나에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새로운 각오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올 해도 가슴 벅찬 한 해였습니다. 가슴은 늘 뛰었고 희망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눈 검사를 마치고… 가끔 야간 운전을 하다 보면 사물이 분명치 않아 운전 하기에 불편을 느껴 안경을 새로이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 동안 코로나 관계로 안과를 몇 년째 못 가서 눈 상태가 궁금했는데 내 눈을 검사 하고 난 후 왼쪽은 1, 오른쪽은 0.75 라고 알려 줄 때 난 그만 와 하며 감격에 소리쳤습니다.

사실 컴퓨터를 하느라 눈이 나빠졌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번함이 없다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신기한 것은 혈압이 120에 70으로 수십 년 동안 변함없다는 것입니다.

80 나이에 이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궁화 공식 국화 지정 운동

무궁화 하면 누구나 국화로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무궁화에 관심을 갖고 살피다 보니 무궁화가 공식 국화로 지정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수없이 국가에서 추진했으나 이루지 못한 무궁화 국화 지정을 이루고자 무궁화 국화 지정 운동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캐나다에 이민자로서 무명인 내가 그런 큰일을 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기에도 가당치 않은 일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꼭 돼야 한다는 것이요, 꼭 되도록 적은 목소리나마 내어보려 합니다. 다행이 많은 분들이 저의 글에 동참하고 있어 희망이 보입니다. 저의 무궁화에 대한 홈피 방문은 55만 명을 넘고 있습니다.

 

아슬아슬 접수

매년 해외동포넷에서는 해외 문학작품을 공모합니다. 저는 참가하고 싶어 신청하려 했으나 매년 이뤄지지 못했는데, 올해는 꼭 이루고 싶어 메일로 사정을 얘기하고 ‘한카 우정의 꽃 무궁화’란 수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접수 마감 1 시간 전에 한국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새벽 3시였습니다.

“임정남씨인가요?” “네” “접수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물론 당선은 둘째로 참가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살다 보니

매주 수요일은 버거킹에서 버거를 세일하는데 맛도 있고 커서 배불리 먹을 수 있어 가끔 가서 먹기도 하고 픽업도 합니다. 7월 11일 버거킹에서 픽업하려고 갔습니다. 도착하여 지갑을 찾으니 아차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어찌 하나 난감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업는 돈 순간 생각이 났습니다. 청소하다 주운 5불짜리 2장, 나는 얼른 일복을 찾아 호주머니를 뒤지니 10불이 나왔습니다. 여기 저기 동전을 찾아 15불을 만들고 버거를 사서 집으로 달렸습니다. 정말 이것은 큰 행운이요,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고마웠던 순간

10.23 매주 일요일은 손자들의 하키가 있는 날입니다. 이 날은 하키가 끝나면 가끔 들르는 곳이 있습니다. 자장면 집입니다. 오늘도 들러 자장면과 탕수육 등을 시켰습니다. 거의 음식을 끝낼 무렵 계산대에 갔습니다.

그런데 지인이 우리 식구의 음식 값을 모두 지불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식구의 음식 값이 적지도 않은데 갚아 주다니 놀랍고 기쁘고 고마워서 나와 우리 식구는 감동을 금치 못했습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딸네 깨 밭과 무궁화심기

온타리오 런던에 사는 딸네 집 뒤뜰에 텃밭을 만들고 집에서 가지고 간 깨 모종을 심고 무궁화 나무와 국화를 심었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딸이 깻잎 먹을 생각하니 너무 신이 났습니다.

 

한국전 참전 희생자 백중 제사

매년 불교에서는 조상을 그리는 백중 제사가 있습니다. 이 날이 되면 평화사에 516 한국전 희생자를 위한 백중제 신청을 하고 참여하고 있는데 금년은 8회째 입니다. 비록 공동 제사이지만 그 보람과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현충일 행사

올해로 13회를 맞는 무궁화 사랑모임 현충일 행사. 매년 주말에 하다가 목요일 주중 행사를 잡아 참여가 적을까 걱정했는데, 예년과 같은 분들이 참여하여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손자의 선물

저에게는 손자가 둘이 있는데 큰 손자는 워낙 공부를 잘해서 걱정이 없지만 작은 손자가 늘 걱정이었는데 선생님으로부터 공부도 잘하고 친구와 우애가 깊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나에게는 손자가 준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손자의 선물2

두 손자가 하키를 하는데 큰 손자는 팀에서도 제일 잘 하지만 작은 손자도 늘 3골씩 넣으며 팀을 승리로 이끌 때 얼마나 신나고 기쁜지 모릅니다.

 

맺는 글

이 밖에도 구글을 쳤을 때 저의 수필 무궁화 동산에 감동의 물결이 맨 앞에 보일 때를 잊을 수 없고, 하루 만 명이 넘는 분이 내 글을 방문할 때와 12월 5일 700만 명의 방문 기록을 이룰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올 한해도 보람과 행복이 가득한 해였습니다. 새해는 수필집을 만들고, 무궁화 화보도 만들고, 무궁화의 날 행사도 멋지게 꾸며 보고 싶습니다. 새해에는 어떠한 일들이 생길지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가슴은 벌써 희망이 부풀어 옵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jny0801
jny0801
101476
1789
2022-12-04
방금 700 만을 넘어 섰읍니다

사)한국기술거래사회 대전/세종지회장 당선에 대한 감사의 말씀

 

12 월 4 일  

방문 기록  7 0 0 만    고맙습니다

 

2003 년 컴퓨터를 배우기시작  인터냇을 알고 서투른 글을 

올리기 시작 했읍니다 

여기 저기 다니며 글을 올리고 내 홈피도 만들고 글을 올리기

시작 했읍니다 

그런지 20년이 됀지금 700 만의 방문 기록을 새웠읍니다 

서투른 글이나마 관심을 갖으시고 성원해 주신 여러분  !!!

짐심으로  고맙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도 열심이 좋은 글을 올리도록 노력 하겠읍니다 

 

2022년 12 월 4 일 3시 30분    방문 기록    7000011 명 

jny0801
jny0801
101312
1789
2022-11-28
무궁화 동산에 파도처럼

“일년 중에 제일 큰 과제가 무엇이냐 “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 무궁화 사랑모임

현충일 행사입니다“라고 선뜻 대답할 것입니다.

그만치 내게 있어 현충일 행사는 보람있고 즐겁고 희망과 행복을 주는 아주

소중한 일입니다. 

올해는 12 회로 제임스가든 이상온 무궁화동산에서 열렸습니다.

전에는 집에서 준비물을 챙기고 가다가 달라상과 수퍼마켙에서 꽃과 준비물을

챙겼는데, 올해는 한번도 현충일 행사에 참여하지 않던 아내가 참여한다니 기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찍 서둘러 꽃과 철사를 사다 놓고 9시30분경

집을 출발했습니다. 

공원에 도착하니 회장님이 먼저 와 계셨습니다.

매년 행사 전에 공원 집회 신고를 해야 하는데, 마침 공원을 살펴 보니 공원 직원이

눈에 띄어 다가가 더듬거리는 말투로

“매년 ‘무궁화 사랑모임’에서 현충일 행사를 하는데 오늘 합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
“먼저 책임자 나딘은 승진해서 관리국으로 가고 저는 임시 관리를 맡고 있는 폴입니다.”
“우리가 자유를 누리는 것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분들의 덕분인데 사람들이

몰라주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내가 영어가 짧아 더듬거려도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주고 얘기해 주는지 나는 너무나

기쁘고 신났습니다.

두 개의 동산에 한 개씩 행사 안내 입간판과 두 개의 꽃다발을 갖다 놓고 대형 태극기를

세웠습니다.

그러는 사이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한국일보 김명규 사장님, 불교인회 전회장 최종학씨, 한카노인회 이 우훈회장, 재향군인회

송승박 회장, 변의섭 작가님, 김근래회장, 정진홍 장로님 등 모두가 반갑고 고마운

분들이었습니다.

11시가 되자 리본 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두 팀으로 나눠 50 그루의 무궁화 나무에 한국참전 희생자 516명을 기리는 516개의 빨간

리본이 무궁화 가지에 매달렸습니다. 참말로 리본꽃이 아름다웠습니다.

이 세상 단 한 곳에만 피어 있는 516 명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꽃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리본을 달고 나자 간단한 회장님의 인사말씀 후에 회장님이 준비한 음식들로 다과회를

베풀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느라 자리를 떠날 줄 몰랐습니다. 

공원을 찾는 분들은 처음에는 이상한 눈으로 보다가 내용을 알고 나서는 
“ 땡큐 땡큐 “를 연발하며 감격해 했습니다 
그동안 현충일 행사를 하면서 잊지 못할 일들이 있습니다.

어느 케네디언 중년여인이 무궁화동산 앞에 서더니 마구 울기 시작 하는 것입니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어깨를 들먹이며 엉엉 우는 것입니다. 
영문을 몰라 "왜 그러세요?“하고 물으니

“우리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했었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고맙기도 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요.“

그 소리를 듣자 반가움과 고마움으로 나도 따라 눈물이 흘렀습니다. 

순간 나는 그녀를 포옹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해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릅니다. 

또 한번은 할머니 두 분이 행사장 앞에 와서 이상히 여기기에
“한국전에 회생하신 카나다 516 명의 영혼을 기리는 것입니다”하니
“땡큐 땡큐“를 연발하며 감동에 넘처 나를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그 순간이 얼마나 기뻤는지 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한번은 현충일 행사 시설물을 정리하고 있는데 지나던 두 여인이 다가와

“ 무얼 하세요?“하고 묻기에 “ 한국전에 희생하신 카나다 참전 희생자를 위하여

516개의 리본을 달았는데 오늘 치우는 중입니다“하니 또 “땡큐 땡큐“ 를 연발하며

두 여인이 거들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얼마나 그분들이 고마운지 고마움이

파도처럼 몰려 왔습니다.

사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답고 훌륭한 뜻깊은 행사를 갖게 된 시작은 김병선 회장님때

였습니다. 2011년 7월경인가… 김 병선 회장이 나에 물었습니다.
“임 회장, 카나다 현충일에 516 개의 리본을 달고 현충일 행사를 하면 어떨까요?“
“좋지요“ 순간 대답하고 나는 멋진 구상에 신이 났습니다. 
“그럼 임 회장이 행사 문구를 만들어요. 나는 리본을 만들테니.“

그렇게 하여 김병선 회장이 서둘러 516개의 리본을 만들었고 2011년 11월 카나다

현충일에 무궁화사랑모임 첫 현충일 행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행사를 만들게 해준 김병선 회장을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 김 회장님 고맙습니다 "

jny0801
jny0801
98208
1789
2022-08-15
무궁화의 날 유감

야외, 문구: '무궁화 축제 8월8일 무궁화의 -토론토 무궁화 사랑모임'의 이미지일 수 있음

 

 

 무궁화의 날을 아시나요.

 

8월 6일은 무궁화사랑모임 제4회 무궁화 축제가 제임가든 이상온무궁화동산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어떻게 해야 즐겁고 뜻 깊은 행사가 될까, 사람들은 얼마나 올까 이런 저런 걱정으로

가슴이 조여 왔습니다.

우선 걱정되는 것은 언론사에 늦게 알리고, 많은 사람에게 알리지 못한 것과 한인회

행사가 있어 어려움이 짐작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축제라 하니 무언가 즐거움이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 그래서 이번에는 상품 뽑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그 동안 상품으로 타온 선풍기 그리고 잔디 깎기 기계에다 몇 가지를 추가하기로

하였습니다

. 추첨을 할 때는 추첨권이 있어야 하는데 티켓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토요일 일하는 날입니다.

다행인 것은 아침 6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라 시간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9시에 일을 끝내고 상품 몇 가지를 샀습니다.

쌀통 2개, 비타민 드링크 1박스, 마스크 1박스, 고추장 1통.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나눠줄

풍선과 추첨 티켓을 사러 달라 가게에 들렀습니다.

그러나 풍선은 있는데 추첨 티켓은 없었습니다.

다시 문방구에 들러 겨우 찾았습니다. 티켓이 문제였는데 구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가기 위해 407로 달렸습니다.

달리면서 저는 7년 전의 제 1회 무궁화의 날 축제를 떠올렸습니다.

2015년 8월 7일 축제가 있는 전날입니다

. 공교롭게도 온 가족이 3박 4일 알곤퀸공원 근처로 캠핑을 간다는 것입니다.

200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입니다. 우선 나는 가족 캠핑을 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말 못하는 가슴은 타들어 갔습니다. 사실 무궁화 축제를 추진한 것도,

배너와 풍선, 음료수도 제가 맡아 하기로 했고, 그 물건들을 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 나는 아들 차에 다 탈수 있는 데도 내 차를 우겨 따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사실 요번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8월 5일 며느리가 토요일 점심을 하자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나는 행사 얘기를 안했던 것입니다. 야단났습니다.

행사 얘기를 하면 야단맞을 게 뻔합니다. 그래도 어찌합니까 실토를 할 수밖에…

“내일 나 행사 있어” “무슨 행사?” “무궁화 축제”

“아이구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다른 일 있다고 하니,

가족이 중요해 행사가 중요해” 하며 집사람에게 잔소리를 들었으나 그래도 쉽게

넘어갔습니다

. 다시 돌아가서 캠프장에 가니 아들이 묵을 곳을 얻어 놓았습니다. 전기에 바비큐 등

시설이 잘 가꾸어 있었습니다.

갈비 바비큐에 저녁을 먹고 장작불 피워놓고 옥수수, 솜사탕 구워 먹고 모두 잠에

들었습니다.

밤 3시경 몰래 일어났습니다.

일찍 떠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집사람이 알고는 “왜 그래. ” “행사가 있어 가야 돼”

“뭐라구? 아이들이 자서 음성을 높일 수가 없으니 아침 6시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 행사장을 향했습니다. 좀 늦기는 했으나 다행히 회장님이

여러 준비를 하셔서 행사는 아주 잘 치렀습니다.

다시 407 입니다. 400을 타고 401을 거쳐 공원에 도착하니 9시 45분, 아침인데도

후끈한 열기에 땀이 흘렀습니다. 우선 풍선에 바람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공원에 부모님과 같이 온 어린이들에게 풍선을 하나씩 건네 주면 웃음이 가득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즐겁고 신이 났습니다.

얼마 있어 회장님이 오셨고 같이 배너를 달고 풍선을 달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행사 시간인 11시가 돼도 한 사람도 오지 않았고, 12시가 넘어서도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정말 이럴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있어도 후회는 없습니다.

그래도 무궁화를 알리고 무궁화의 날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심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하루에 500명 이상 무궁화 사랑모임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시고 누적 방문자가 45만

명이 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앞으로 내 힘이 닿는 한 무궁화와 8월 8일 무궁화의 날을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8 월 11 일자    부도동산 카나다   칼럼 에서 

mugungwhasarang
mugungwhasarang
97943
1789
2022-08-08
제주 입국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진 태국인 55명

. 지난 2일 이후 제주에 입국한 태국인은 280명.이들 가운데 55명이 단체관광단에서 이탈해 사라졌습니다.이들은 지난 2일부터 태국과 제주를 오가는 전세기 편으로 제주에 입국했습니다.지난달 3일에도 관광 목적으로 입국한 태국인 166명 중 36명이 이탈해 현재까지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지난 6월 제주 무사증 입국 제도가 재개된 이후 외국인 단체관광객 무단 이탈이 잇따르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jny0801
jny0801
97422
1789
2022-07-20
나의 무증상 가끔 기침을 할뿐

열이 없고 두통도 없고 먹기도 잘 먹고 

4번 맞은 주사 덕일 까 

 

7 월 18일 요사이 가끔 목이 깔깔하며 기침을 했으나 

아무 통증이 없고 열도 없어  일도 열심히 했읍니다 

그런데 아내가 냄새가 안 난다며  진단을 해보자고

했읍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빨간줄이 2줄  나와 양성이었읍니다 

정말 놀라지 않을수 없었읍니다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니 

그동안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사람 접촉도 별고 없었는데 

어디서 걸렸는지 모르겠읍나다

이래서 아마 요사이 코로나가  재확산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읍니다 

열도 없고 통증도 없고 아무 증상을 느끼지 못하나 

우리 부부는 문밖 출입을 못하고 감옥 생활을 하고  있읍니다 

이런 무증상은  그동안 접종을 잘해서  그런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한번 기침 날때 진단해 보시고  에방 접종도 빠지지 

마시고 맞으셨으변 합니다  

 

 

삼우스님 추모법회
캐네디언 불자들의 추모열기 대단  성대한 추모법회 

9 월 24 일 토론토 84 vaughan rd 에 있는 선련사에서는  지난 8 월 6 일 
입적 하신 주지스님 삼우스님에 대한 추모 법회가 있었읍니다 
법당안 중앙테불에는 평소 스님이 쓰시던 유품들이 스님의 영종사진과 함께
진열 되어 있었고  법당안은 캐네디언 불자들로 북적였읍니다 
북소리로 시작한 법회는  곧 스님을 추모하는 추모사로 이어 젔는데 얘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스님의 일화에 폭소도 
끊아지 않았읍니다 
여러분의 추모사에 이어 추모 영상이 상영 돼었는데 모두가 숙연해 지기도 
했읍니다 
2 시간 30분에 걸친 추모 법회를 끝내고 지하에서는 떡 김밥 과일 커피등 
준비한 음식을 들며  대화의 시간을 갖었읍니다 
이날 법회는 아주 감동 적이 었읍니다 
한국인 스님으로서 한국사찰인 선련사 하지만 한국인은 겨우 5명 정도에 불과 한데 
법당을 가득메운 캐네디언 들을 보니 놀랍고 감격 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저를 더욱 놀라게 한것은 선련사에 등록됀 신도가 400 명에 달하고 이중에는  의사
변호사 정치인 사업가 등 다양한 지도층인사가 많다는 것입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미국에 4개의 사찰을 세우 셨다는 것입니다 
엔에버  시카코  뉴욕씨티  멕시코 씨티
이중 멕시코 선련사는 등록 신자가 1800 명이나 됀다고 합니다 
실로 스님의 업적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읍니다 
68 년부터 미주와 카나다에 불교를 전파한 스님의 노고를 실감 하며  감사를 드리지
않을수 없읍니다 
스님은 68 년 몬트리올에 잠시 계셨다가 1972 년 토론토 마캄에 선련사를 개설 
햐셨읍니다 
조그마한 지하실 이었읍니다 
비록 조그마한 지하실이었지만  카나다불교의 씨앗을 심으신 첫 사찰인 것입니다 
사찰이 없던 불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었고  한인 불자들은 모여 들기 시작 했읍니다 
1970년대 많은 불자들은 이 사찰을 다녔읍니다 
그래서 불자 들에겐 고향같은 사찰입니다 
이후 불광사  대각사 한마음선원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선련사는  한인 불자 들에게 언제 부터인지 멀어지게 돼엇읍니다 
물론 다른 문제도 있겠지만 결혼한 적 있는 과거 였읍니다 
그런데 캐네디언 들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읍니다 
오히려 그들은  홀로 계신것을 안타까워 했읍니다 
얼마나 외로우셨냐고
정말 우리는 스님은 결혼은 해서 안됀다는 편견을 버려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오늘 삼우스님 법회를 통해서  스님의 높리운 업적에 감사드리며  불교 발전에 
회망을 주신것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진열 되어 있었고  법당안은 캐네디언 불자들로 북적였읍니다 
북소리로 시작한 법회는  곧 스님을 추모하는 추모사로 이어 젔는데 얘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스님의 일화에 폭소도 
끊아지 않았읍니다 
여러분의 추모사에 이어 추모 영상이 상영 돼었는데 모두가 숙연해 지기도 
했읍니다 
2 시간 30분에 걸친 추모 법회를 끝내고 지하에서는 떡 김밥 과일 커피등 
준비한 음식을 들며  대화의 시간을 갖었읍니다 
이날 법회는 아주 감동 적이 었읍니다 
한국인 스님으로서 한국사찰인 선련사 하지만 한국인은 겨우 5명 정도에 불과 한데 
법당을 가득메운 캐네디언 들을 보니 놀랍고 감격 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저를 더욱 놀라게 한것은 선련사에 등록됀 신도가 400 명에 달하고 이중에는  의사
변호사 정치인 사업가 등 다양한 지도층인사가 많다는 것입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미국에 4개의 사찰을 세우 셨다는 것입니다 
엔에버  시카코  뉴욕씨티  멕시코 씨티
이중 멕시코 선련사는 등록 신자가 1800 명이나 됀다고 합니다 
실로 스님의 업적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읍니다 
68 년부터 미주와 카나다에 불교를 전파한 스님의 노고를 실감 하며  감사를 드리지
않을수 없읍니다 
스님은 68 년 몬트리올에 잠시 계셨다가 1972 년 토론토 마캄에 선련사를 개설 
햐셨읍니다 
조그마한 지하실 이었읍니다 
비록 조그마한 지하실이었지만  카나다불교의 씨앗을 심으신 첫 사찰인 것입니다 
사찰이 없던 불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었고  한인 불자들은 모여 들기 시작 했읍니다 
1970년대 많은 불자들은 이 사찰을 다녔읍니다 
그래서 불자 들에겐 고향같은 사찰입니다 
이후 불광사  대각사 한마음선원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선련사는  한인 불자 들에게 언제 부터인지 멀어지게 돼엇읍니다 
물론 다른 문제도 있겠지만 결혼한 적 있는 과거 였읍니다 
그런데 캐네디언 들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읍니다 
오히려 그들은  홀로 계신것을 안타까워 했읍니다 
얼마나 외로우셨냐고
정말 우리는 스님은 결혼은 해서 안됀다는 편견을 버려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오늘 삼우스님 법회를 통해서  스님의 높리운 업적에 감사드리며  불교 발전에 
회망을 주신것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jny0801
jny0801
96721
1789
2022-06-24
600 만 달성 고맙습니다

 

6 월 24 일 오후 7 시 30분 현재

6001065

 

 

 

성원 해 주신 여러분  소맙습니다 

 

오늘 하루 9369 의 방문 기록이 나왔읍니다 

정말 감사 드립니다 

600만의 고지도  머지 않았읍니다 

 

5995258    

99.97 %

 

 

 

 

jny0801
jny0801
96612
1789
2022-06-21
우리가 해냈습니다' 누리호 발사 성공

. 누리호 발사성공하여 우리대한민국 자력으로우주시대를 열어 자부심과 세계속의 선두 대한민국이 우뚝 섰습니다.그동안 피땀흘린 연구원님

더보기
위로가기